담배

[단편소설]

 

 

담배

 

 

함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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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눌린 두부와 대파 한 단과 치자를 샀어요. 어머님이 사오라고 하신 모든 것을 이미 샀어요. 오늘은 운이 좋았죠. 명절 전날이면 어머님이 늘 가는 단골 두부가게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지요. 가게에서 직접 콩을 삶아 만드는 두부는 맛이 좋아요. 다른 동네로 이사 간 어떤 사람이 일부러 와서 두부를 몇 모씩 사간다고 두부가게 여자가 떠드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막 나온 두부는 썰어서 그냥 부치기만 해도 고소하고 담백하죠. 입 짧은 민이도 이 집 두부로 찌개를 끓이거나 조림을 하면 밥을 아주 잘 먹어요.
    언젠가 설에는 낮에 가서 기껏 기다렸는데 준비된 재료가 동나는 바람에 결국 두부를 사지 못했고, 저녁 설거지를 끝낸 후 다시 가서 줄을 서야 했잖아요. 새치기라도 당할까 봐 서로를 날카롭게 쏘아보거나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여자들 틈에서요. 나 역시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무릎이야 하는 늙은 여자들의 곡소리를 들은 척도 안 했죠. 하긴 차례상에도 올려야 하고 만두나 동그랑땡도 빚고 탕국도 끓여야 하니 두부가 없으면 여러 집이 낭패를 보긴 하지요.
    두부가게부터 갔는데 마침 몇 판을 한꺼번에 판매대에 늘어놓던 참이더라고요. 기다리는 줄도 길지 않아 금방 두부를 살 수 있었어요. 그다음에 대파를 한 단 샀고, 건어물 가게에 가서 말린 치자도 잊지 않고 샀어요.
    어머님이 심부름을 시킬 때는 두부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 할 거라 계산했을 거예요. 오전에 시장에 다녀와야 점심상을 물린 뒤 바로 녹두전을 부칠 테니까요. 지금도 두부가게 여자와 남자와 명절에만 나와 일하는 그들의 딸과 아들이 콩물을 끓이고 두부를 자르고 젖은 거스름돈을 건네느라 분주한 그 앞에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숨이 가쁠 정도로 잰걸음으로 시장에 갔고, 어느 가게에서도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았기에 내게는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겼어요.

 

    나는 이 카페에서 잠깐만 쉬었다 갈게요. 어머님 집에서도 멀지 않아요. 일층엔 할머니 뼈 해장국 식당이 있고 이층이 카페인 삼층 건물인데 어머님도 그 앞을 종종 지나쳤을 거예요. 그렇지만 생전 어디 나가 국수 한 그릇, 차 한 잔 사먹지 않으니 어머님은 오래된 이 카페를 아마도 모르실 거예요. 나는 이제 막 카페에 들어왔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페 주인이 알은체를 해요. 주인은 내 또래로 보이는 중년 여자죠. 두 번째 오던 날,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더라고요. 나를 아느냐 물으니 지난번에 와서 저쪽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지 않았느냐 하고 정확히 기억하는 거예요. 놀랍고 고마웠죠. 내가 딱히 인상적인 얼굴은 아니잖아요. 지나치게 평범해서 지나고 나면 주위에 그런 이가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할 정도이죠.
    민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부형으로 만난 한 명이 고등학교 동창이었어요. 같은 반이었던 적도 두 번이나 되고요. 나는 바로 알아보겠는데 그쪽에서는 날 모르더라고요. 민이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행사나 모임에서 더러 봤는데 나를 민이 엄마 이상으로는 기억 못 하는 거 같아 쭉 모른 척했어요. 2년이나 한 교실 안에 있던 동창도 몰라보는 나를 잊지 않고 맞아 주는 카페 주인에게 호감이 갔죠.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곧 장사를 접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카페 안은 한산해요. 그래도 문을 닫지 않고 여전히 영업하는 걸 볼 때마다 이 건물 소유주인가 건물주의 딸인가 아니면 부인? 그래서 고정적이고 꾸준한 수입 따위는 개의치 않나, 그냥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부업 정도인가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해요. 어디 나가 십 원 한 장 벌어 본 일 없는 내가 카페 주인을 걱정하고 있으니 어처구니없지요, 어머님.
    나는 창가 자리에 앉을 거예요. 탁자 아래 대파와 치자와 두부가 든 장바구니를 넘어지지 않게 기대 놓아요. 아주 잠시만 머물다 갈게요. 그 잠깐 동안 대파는 시들지 않고 두부도 상하지 않을 거예요. 막 쪄낸 두부는 아직 뜨거워요.
    추석 전날이라 더 한가한가 봐요. 일층 식당에서 할머니 뼈 해장국을 먹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러 더러 올라오기도 할 테지만, 지금은 추석 전날이고 이른 시간이기도 해서인지 카페 안에는 주인과 나 이렇게 둘뿐이에요. 6인용 자리가 두 개, 4인용 자리가 여덟 개 있는데, 몇 번을 와도 열 개의 자리가 꽉 차 있는 건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앉은 자리와 대각선으로 구석 자리에 먼저 와 있던 남자는 만나기로 한 일행이 오자 음료는 주문하지 않은 채 잠깐 대화를 하더니 그대로 일어나요. 바쁜 일이 있으니 다음에 와서 마시겠다며 나가는데도 주인은 무심히 그러세요, 하고 말아요. 출입문 위에 달린 부엉이 모양의 작은 종이 흔들리다 곧 멈춰요. 그녀는 남자가 앉아 있던 자리로 가서 비뚤어진 의자와 쿠션을 정리하고 카운터로 돌아가요.

 

    음료는 뭐로 드릴까요.
    그녀 등 뒤의 메뉴판을 찬찬히 훑어보았어요.
    글쎄요.
    서른두 개의 메뉴 중에서 선뜻 고르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주인은 따뜻한 음료를 권해요. 메뉴를 새로 추가했는지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벽면에 동글동글 구부러진 필체로 '유자 얼그레이차'와 '레몬 생강차'라고 쓴 종이가 두 장 붙어 있어요.
    유자 얼그레이차는 어때요. 날씨가 쌀쌀하니 따뜻한 음료가 좋지 않을까요.
    얼그레이차는 마셔 본 일이 없어요. 더군다나 유자와 얼그레이를 섞은 맛은 어떨까 상상이 안 되지만 그걸로 주세요, 라고 순순히 대답해요. 유자 얼그레이차는 4000원이래요. 처음 마셔 본 음료가 입에 맞지 않아도 다 마실 거예요. 기껏 권했는데 남겨버리면 그녀는 마음이 상할 거예요.
    나는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요. 음료가 만들어지면 그녀가 직접 가져다줄 거예요. 바삭한 크래커 몇 조각을 담은 작은 종지도 함께 나와요. 다른 카페는 대부분 셀프서비스라서 진동 벨이 울리거나 카운터에서 부르면 완성된 음료를 받으러 가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앉아서 기다리면 옻칠한 나무 쟁반에 받쳐 자리로 가져다주니 대접받는 기분이에요.

 

    카페는 이층에 있어요. 창가에 앉아 사람들의 정수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누가 신호등이 점멸하는 횡단보도를 향해 빠르게 뛰어가요. 그 옆을 스치듯 엇갈려서 또 다른 누가 한 손으로 전화를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전거를 끌고 가요.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어요. 입 모양을 골똘히 보며 무슨 말을 하는지 혼자 맞춰 보기도 하며 주인이 음료와 과자가 담긴 쟁반을 들고 내 자리로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는 동안 지나가는 누구도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지 않아요. 하염없이 바라봐도 시선이 부딪쳐서 민망해지는 일은 없어요.

 

    어머님, 왜 내가 이 카페를 좋아하는지 아세요? 친절한 주인과 한적한 실내도 물론 좋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바로 흡연실이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여기 왔으니까요.

 

    요즘엔 어딜 가든 금연구역이라 눈치 보지 않고 맘 편히 담배 한 대 피울 곳 찾기가 쉽지 않아요. 물론 담배연기 때문에 누군가 코를 틀어막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것도 원치 않죠.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개인 찻집에서 이렇게 흡연실을 갖춘 곳은 매우 드물어요. 그녀는 역시 카페가 입주해 있는 건물의 주인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쩜 이렇게 흡연실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을까요.
    언젠가 갔던 3층짜리 프랜차이즈 카페의 흡연실은 정말 엉망이었어요.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적나라한 부스 안은 환기가 전혀 되지 않아 연기가 자욱했고 편히 앉을 의자도 없었죠. 멋도 뭣도 없는 커다란 쓰레기통만 가운데 떡하니 있더라고요. 제때 비우지 않은 쓰레기통은 담배꽁초와 함부로 뱉은 침 때문에 얼룩지고 악취가 나서 인상이 찌푸려졌어요. 불결한 쓰레기통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는 서둘러 나와야 했죠.
    이 카페의 흡연실은 아늑해요. 여기 있으면 작게 틀어 놓은 음악소리가 더욱 속삭임처럼 들리죠. 마치 물속에 잠긴 것 같아요. 늦더위가 이어지더니 요 며칠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어요.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힙니다.
    말랑말랑한 쿠션의 의자도 두 개 있어요. 같이 담배를 피울 누군가 있다면 서로 담뱃불도 붙여 주며 나란히 앉아 있으면 좋겠어요. 슬리퍼를 벗고 빈 의자 위에 발을 올려 무릎을 끌어안아요. 나는 길고 깊은 숨을 쉽니다.

 

    아까 음식 준비할 때부터 속이 좋지 않았어요. 어머님 집에 도착해서부터 줄곧 모든 것이 뒤섞인 냄새를 맡아야 했지요. 고사리와 시금치를 삶고 데치는 냄새, 핏물을 빼기 위해 물에 담아 둔 소갈비의 피비린내, 지지고 볶는 콩기름 냄새, 퀴퀴한 걸레 냄새, 붙이거나 바르거나 복용하는 약품들의 냄새, 사람이 오래 산 집의 냄새까지 한꺼번에 맡으니 속이 울렁거리더라고요. 어머님 집의 모든 창은 작아서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잖아요. 언제 가도 묵은 냄새들이 고여 있지요.
    어젯밤, 계속 못 자다가 새벽에야 겨우 잠깐 눈을 붙였어요. 알람을 끄고 5분만 누웠다 일어날 생각이었는데 깜박 잠들어버렸지 뭐예요. 그러다 퍼뜩 깨어 서두르느라 아침에 뭘 챙겨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어차피 민이와 민이 아빠는 아침을 거르고 점심때쯤 일어나 어머님네로 바로 올 거라 새로 밥을 하지 않았고요. 집에 언 식빵이나 찬밥도 없었어요.
    점심부터 대가족의 밥상을 차리려면 서둘러야 하죠. 좀 늦으면 어머님이 언짢아하시잖아요. 왜 아직 안 오느냐 성화하시니 최대한 빨리 가야 했어요.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머님은 욕실에서 녹두를 씻고 계셨고 형님도 진작 도착해서 무릎걸음으로 걸레질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또 늦어버렸지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매번 하는 사과를 또 했지요.
    아까 검정 비닐봉지가 꽉꽉 들어찬 냉동실을 한참이나 뒤적이던 어머님이 아무리 찾아도 치자가 없다고, 분명 지난 설에 쓰고 남은 치자가 다섯 개쯤 있을 텐데 없다고 탄식하셨을 때 그러면 제가 시장에 가서 사올게요 하고 얼른 나섰어요. 치자 찾기를 포기한 어머님이 냉동실 문을 도로 닫으며 그러면 간 김에 파도 모자랄 거 같으니 대파 한 단과 눌린 두부도 함께 사오라고 하셨을 때 앞치마를 풀어 식탁의자에 걸쳐 놓고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그랬죠. 담배를 피우고 싶다, 숨 좀 쉬고 싶다, 마침 그런 참이었거든요.

 

    주민 센터에서 요가를 배운 적이 있어요.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수업인데 한 달에 수강료가 만 원이에요. 선생님의 시범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면 수강생 사이를 돌아다니며 비뚤어진 자세를 고쳐 주곤 해요. 자, 이번에는 나무자세를 할게요. 그러면 한 다리로 서서 합장한 채 유지해요. 다음엔 물고기 자세를 해봐요. 그러면 천장을 보고 누운 채 팔꿈치를 밀어 가슴을 펴요. 수업의 가장 마지막은 언제나 사바사나, 송장 자세예요. 몸에 힘을 빼고 누워 있는 거죠.
    내가 한 다리로 서 있거나 팔꿈치로 버티거나 송장처럼 누워 있을 때 요가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와서 왜 숨을 안 쉬느냐고 물었어요. 숨을 안 쉰다니요. 그럼 나는 이미 죽은 건가요. 죽은 채로 여태 돌아다닌 건가요. 손이 차가운 여자였는데, 내 복부에 자신의 찬 손을 얹고 다섯 번 수를 셀 동안,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다시 다섯 번 수를 셀 동안, 숨을 뱉으라고 했어요.
    귀에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도록 크게 숨을 쉬어 봐요, 회원님.
    석 달을 다니며 그녀에게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참지 말고 호흡하라는 거예요. 어머님, 난 이제까지 숨을 제대로 쉬는 법도 모르고 살았나 봅니다.

 

    담배를 피운 지는 3년쯤 되었어요. 외출했다 돌아오면 벗어 놓은 운동화 밑창에 으깨진 꽃잎이 들러붙어 있던 무렵, 봄부터죠. 여의도나 어린이대공원에서 벚꽃 축제할 때 피는 자잘한 그거 말고요, 송이가 더 크고 풍성한 겹벚나무요. 그 꽃은 소란스런 축제가 끝나고 나서 비로소 피기 시작해요.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도 겹벚나무가 한 그루 있잖아요. 어머님도 바람에 꽃잎이 우수수 날리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참 곱다, 이 꽃이 뭐냐 하신 적도 있어요.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 아래에서 내가 어머님 사진도 찍어 드렸는데 기억하세요. 나무 아래 서 있는 어머님과 좀 떨어진 나 사이를 남자애 둘이 빠르게 휙 지나가기도 했죠. 뛰어가며 그중 한 아이가 친구에게 물었어요. 야, 너 벚꽃 꽃말이 뭔지 아냐? 그러자 다른 아이가 진지하게 대답했어요. 어, 사쿠라. 나는 한참을 킥킥댔어요. 내가 웃음을 오래 멈추지 않자, 얘가 왜 이래 하고 어이없어 하다가 어머님도 피식 웃었는데 기억하세요.
    웬일로 그날은 내가 어머님과 소원하지 않았는지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고 자청했죠. 가까이에서도 찍고 멀리서도 찍고 여러 장 찍은 후, 인화해서 갖다 드렸지요. 어머님은 늙으면 사진이 밉게 나오는데 잘 나왔다며 마음에 들어 하셨지요.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쓰고 싶다고도 하셨지요.
    내 신발에 묻어 왔던 건 바로 그 꽃잎이었어요. 그러니 담배를 처음 피운 건 분명 겹벚나무 꽃잎이 다 지고 난 4월 말쯤이에요. 어머님, 겹벚꽃의 꽃말은 정숙이에요.

 

    처음엔 하루에 두 갑도 피우고 세 갑도 피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하루에 한 갑만 피우기로 다짐했고 지키려고 노력 중이에요.
    뭐를 먹으면 어디에 암이 생긴다거나 또는 뭐를 먹으면 어디에 암이 안 생긴다거나 그런 말을 인이 박이도록 들을 때마다 앞에선 네 하고 뒤로는 흉을 봤는데요, 살 만큼 살다 죽으면 그만이지 얼마나 더 살려고 노인들이 저렇게 악착스럽나 이해를 못 했는데요.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긴 했나 봅니다. 내 몸 아픈 것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거 보면 말입니다. 지끈거리는 편두통이 쉽게 가라앉지 않으면 뇌종양인가 싶고 가슴께가 뻐근하면 유방이나 폐 아니면 다른 내장 어딘가에 암이 생겼나 싶어 덜컥 겁이 나요. 지금까지 살며 미련스러울 만큼 참는 거밖에 한 게 없는데, 지금 병에 걸려 죽기라도 하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요?

 

    이렇게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오래된 기억과 묵은 감정들이 슬금슬금 떠오르곤 해요. 그것들은 눈밭에 눈을 굴리듯, 점점 더 커지고 딱딱해지기만 하지 도무지 작아지지 않아요. 그러다가 난데없이 퍽 하고 뒤통수를 때리죠.

 

    유년 시절, 제사 때문에 할머니 집에 다니러 갔던 한 날이 생각나요. 나는 오줌을 누러 뒤꼍으로 갔다 장독대 뒤에 쪼그리고 앉은 여자를 봤어요.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요.
    이리 와.
    말없이 손짓하던 그녀는 그대로 우뚝 서 있는 나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그때 아버지와 불화했던 어머니는 집을 나가 따로 살고 있었죠.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를 따라 들어왔던 여자였어요. 체구가 작고 몸에서 화장품 냄새가 나는 여자였죠. 몇 달을 같이 살았지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그날 처음 보았어요.
    이리 와, 은희야.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너무 낯설었죠. 마르고 조그만 여자가 우리 집에 처음 들어설 때도, 이제부터 새엄마라고 부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생경한 기분은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이야 교복 입은 여자애들도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우지만, 담배 피우는 여자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여자 옆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다가가기가 어색했을 뿐 팔꿈치를 부딪치며 가까이 있으니 다시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너도 피워 볼래?
    여자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내밀었어요. 거기 빨간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었죠.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저 담배의 립스틱 자국을 골똘히 바라봤어요.
    잘 봐, 재밌는 거 보여줄게.
    여자가 담배를 물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그리고 입으로 동그란 구름 모양을 만들었지요. 구름은 눈앞에서 빠르게 흩어졌어요.
    이거 피우면 기분이 좋아져. 슬프고 속상했던 마음도 다 사라져.
    정말요?
    정말.
    여자는 항상 붉은 립스틱을 바르죠. 하얀 피부에 붉은색이 잘 어울렸어요. 립스틱 자국이 선명한 담배를 입에 댔어요. 여자가 나를 보며 숨을 들이마셨다가 숨을 길게 내뱉었죠. 그녀가 하라는 대로 따라했어요. 그렇지만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 연기 때문에 목이 맵고 기침이 터져 나왔죠.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어깨를 떨며 소리 내지 않고 웃었어요. 울 것 같던 여자를 웃게 만들어서 기침을 하면서도 난 좋았어요.
    아줌마 담배 피우는 거 비밀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어요. 눈을 감고 연기를 내뱉는 여자의 얼굴이 슬프고 속상해 보여서 어쩐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눈을 뜬 여자가 내게 입을 맞추었어요.

 

    두 대째 담배를 피우러 흡연실로 들어왔어요. 지금 내가 앉은 의자 앞에는 아주 작은 탁자가 있어요. 그 탁자 위에 젖은 원두 찌꺼기가 담긴 납작한 접시가 있죠. 다 피운 담배꽁초를 거기 비벼 끄면 돼요. 원두 찌꺼기가 탈취에 좋은 건 아시지요.
    지난번에 내가 원두 찌꺼기로 탈취제 만들어 드린 거 잘 사용하고 계신가요. 신발장에도 넣고 냉장고에도 넣고 서랍장에도 넣으라고 일러드렸는데 그렇게 하셨나요. 다이소에서 파는 다시백 한 통과 원두를 담아 꽁꽁 여밀 노끈 한 묶음 이렇게 두 가지만 있으면 탈취제를 넉넉하게 만들 수 있어요. 별 재주 없는 나도 눈 감고 만들 수 있을 만큼 아주 쉽죠. 혹시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이 있으면 원두 찌꺼기는 꼭 그늘에 넓게 펼쳐서 바싹 말린 다음에 사용하세요. 젖은 원두 찌꺼기를 그대로 사용하면 곰팡이가 펴요.
    접시 옆에는 향초도 켜두었어요. 깍두기처럼 썬 알록달록한 조각들이 박힌 예쁜 초예요. 일렁이는 작은 불빛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기가 느껴져요. 초에서는 기분 좋은 냄새도 납니다. 어떤 향인지 이따 나가면 물어봐야겠어요. 언젠가는 페퍼민트 향이 언젠가는 로즈마리 향이 났는데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이 향은 무엇일까요.
    흡연실 안까지 세심하게 꾸며 놓은 것을 보면 주인의 취향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집에도 분명 예쁜 접시와 좋은 냄새가 나는 초가 있을 거예요. 집어 던져도 절대 이가 나가거나 깨질 일 없는 오래된 스텐 주발에 밥을 먹지는 않을 거예요.
    장독대 뒤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여자처럼 눈을 감아 봅니다. 슬픈 일이 연기처럼 사라져. 여자가 내 귓가에 속삭였죠. 길게 숨을 마시고 다시 숨을 내쉽니다. 입을 동그랗게 모아 작은 구름 모양을 만들어 봅니다.

 

    여자는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아침에 계란을 부쳐서 간장으로 밥을 비벼 줬던 그녀는 학교에 다녀오니 집에 없었죠. 사람이 만나면 헤어지는 건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최초의 이별도 아니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숱한 이별을 했지만, 느닷없이 닥친 그 헤어짐이 가장 아팠어요. 떠날 거라는 아무런 신호도 미리 감지하지 못했으니까요.
    어머니도 나를 버렸지만, 어쩌면 날 버릴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싸웠어요.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모질게 화풀이를 했고요. 그러니 어머니가 집을 나가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도 실은 괴롭지 않았어요. 밥 먹듯 악 쓰는 소리며 살림이 내던져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은 고요했어요. 등짝을 때리지도 않고, 머리통을 쥐어박지도 않고 지 애비 닮은 년이라는 모진 욕도 하지 않고, 시장에 데려가면 언제나 솜사탕을 사주는 새엄마가 생겨서 나는 좋았어요.
    여자는 머리를 묶어 주며 방울이 달린 머리끈을 새로 사주겠다고 약속했지요. 은희야, 너는 어떤 색을 좋아하느냐 물었고 난 보라색을 좋아한다고 대답했지요. 그러면 보라색 방울이 달린 머리끈으로 사주겠다고 여자는 약속했지요. 나는 연두색을 좋아해. 그러면서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지요.
    강촌 어디쯤, 기차역에서 내려 한동안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그녀의 부모가 사는 집 앞에는 얕은 천이 흐르는데 더워지면 그곳으로 물놀이를 가자고도 했지요. 기차 안에서 사이다를 사 먹자고도 했지요. 그렇게 가버릴 거였으면 나중에 뭘 하자 이런 약속 같은 건 하지나 말지. 설레며 기대했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녀가 야속했어요.
    그녀를 오래 기다렸지만 다시는 볼 수 없었고 대신 따로 살던 어머니가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지금 부모님은 번갈아 만성 질환을 하나씩 얻어 가며 같이 살고 있어요. 어머니에게 골다공증이 오고 몇 달 후, 아버지에게 당뇨가 오고 다시 어머니가 관절염을 앓으면 얼마 후 아버지가 고혈압 진단을 받는 식으로요. 아마도 누군가 먼저 죽을 때까지 병든 일상을 함께 보내겠지요. 소리 나지 않는 총이 있으면 진작 쏴 죽였을 거라고 서로를 증오하면서 말이에요. 그런 악담을 퍼붓는 쪽은 주로 어머니지만 아버지 속내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난 오랜만에 본 어머니에게 매달리기는커녕 쭈뼛거리며 피했답니다. 돌아온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 실망했는데 그 마음을 들킬까 봐 겁이 나서 어머니와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거든요. 어머니가 아버지와 싸운 후 아예 집을 나가거나 아니면 병에 걸려 죽거나 하면 여자가 돌아오려나, 다시 온다면 이젠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고 새엄마라고 불러 그녀를 기쁘게 해줄 텐데, 이런 생각이 들면 혼란스러웠고, 죄책감에 오래 시달렸죠.
    때로는 여자가 아무도 모르게 나를 데리러 오는 상상을 했어요. 그녀는 나와의 약속을 절대 잊은 게 아니었던 거죠. 잠든 내 어깨를 살살 흔들어 깨운 그녀와 함께 까치발로 몰래 집을 빠져나오죠. 우리는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요. 그리고 강촌에서도 더 들어가는 어느 깡촌에서 나는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자맥질하고, 돌 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은 그녀는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그러다 물속의 나를 향해 여자가 손을 흔들죠.
    이리 와, 은희야.
    그녀는 오소소 소름 돋은 내 어깨 위에 마른 수건을 둘러 주고 사이다를 함께 마신 다음, 일부러 트림을 크게 하며 깔깔 웃어요. 그러고는 그녀 옆에 누워 따뜻한 돌 위에서 몸을 말리는 거예요.

 

    흡연실에서 나오니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네요. 어머님, 그새 전화하셨군요. 언제쯤 오나 궁금하신 거겠죠. 형님과 둘이서 고사리 무치고 산적 양념하느라 분주하신가요. 아니면 줄이 너무 길어서 여전히 눌린 두부를 못 사고 있을까 봐 신경 쓰이나요. 유자 얼그레이차를 다 마시고 나면, 충분히 담배를 피우고 부대끼는 속이 가라앉으면 들어갈 텐데요. 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팬 북어도 조리고 당면을 삶고 볶고 버무려서 잡채도 만들 텐데요. 다라이 한 가득 만든 녹두전 반죽도 싹 다 부칠 텐데요. 염려 마세요, 어머님.

 

    유자청을 넣은 얼그레이는 적당히 달고 따뜻해요. 입에 안 맞으면 어쩌나, 남기면 저이가 속상할 텐데 이런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어요. 다음에 와도 커피 대신 카페의 서른세 번째 메뉴인 유자 얼그레이차를 주문해야겠어요.

 

    언젠가 어머니가 노래교실에 가고 집에 아버지와 둘이 있던 날 물은 일이 있어요.
    아줌마 이름이 뭐였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반응이었지요. 누구? 누구라고? 자꾸 묻자 그런 일은 없었다고 네가 너무 어릴 때라 뭔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라며 딴소리를 하더라고요.
    같이 뜯어먹은 솜사탕에 묻은 립스틱 색깔도, 그녀가 피우던 담배 냄새도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요. 나란히 쪼그려 앉은 장독대 옆에 있던 나무가 탱자나무였다는 것도, 촘촘한 가시 틈에 익지 않은 탱자가 동글동글 매달린 것도 다리에 쥐가 나서 어느 순간 일어나 콩콩 뛰기도 했던 것도 나는 잊어버리지 않았는데요.
    나는 이 모든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의 기억은 절대로 왜곡된 것이 아니다 하고 정색하자 아버지는 네 엄마는 나가기만 하면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고, 점심에 밥을 안 차려 준다고, 어쩔 때는 저녁때가 지났는데도 밥을 하러 들어오지 않는다고, 지금도 봐라, 노래교실 끝난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 아마 어디 가서 노닥거리는 모양이라며 어머니 험담을 오래 하더니 아예 딴 데로 가버리셨죠.

 

    그녀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누군가 자주 이름을 불러 줄까요. 어딘가에서 무탈하게 살고 있을까요. 혹은 병을 얻어 죽어가거나 아니면 이미 죽었을까요. 죽었다면 한참 앓지 않고 많이 아프지 않았기를요.

 

    나는 어머님 집과 가까운 아파트에 살아요. 내가 사는 101동이 32평이고, 102동과 103동이 24평이에요. 시부모가 신혼집으로 32평 아파트를 빚 없이 사주셨다고 하자 다들 시집 잘 갔다고 부러워했죠. 그때 부러워했던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다 연락이 끊겼고요, 시부모가 집 사줬다고 그 자랑을 친정어머니는 아직까지도 하긴 해요. 미용실이나 남대문시장 같은 데서요. 또는 전철 옆자리에 앉은 모르는 노인들에게요.
    그러는 동안, 나는 여전히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요. 체리색 몰딩과 소라색 변기와 뻐꾸기가 나오지 않는 뻐꾸기시계가 있는 그 집이요. 벽이 허전하다며 아버님이 직접 골라 걸어 놓은 가로 156센티미터 세로 91센티미터 산수화가 이십 년째 걸려 있는 그 집이요.
    친구가 놀러 와서 간짜장과 볶음밥을 시켜 먹던 참이었어요. 아버님이 웬 남자와 액자를 앞뒤로 나눠 들고 불쑥 찾아오셨죠. 물론 오겠다는 사전연락도 없었고 오로지 아버님 취향인 그림을 선물하겠다는 말도 당연히 없었지요. 아버님이 가져온 못 두 개와 망치로 벽에 구멍을 뚫어 액자를 걸고 가신 후 친구가 삐죽거렸어요.
    나 같으면 벌써 이사 갔겠다.
    그때 시가에서 고작 이백만 원 보태 줘서 방 한 칸짜리 전세 살던 친구였거든요. 내가 그년하고는 그 이후 바로 절교했어요.
    가깝고 먼 산봉우리가 몇 개 솟았고 그 골짜기 사이로 물이 흐르죠. 그 풍경 속에 돛을 달지 않은 배에 선 채로 노를 젓는 한 남자가 있어요. 이십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그를 노려보다가 증오하다가 마치 산 사람에게 하듯 욕을 내뱉죠. 어머님은 모르시지만 나는 욕을 엄청 잘합니다. 욕 잘하는 어머니 밑에서 컸거든요. 아무튼 그림 속의 그 남자에게 어쩔 때는 반말로 어쩔 때는 존댓말로 욕을 합니다. 망치로 액자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정말 아주 가끔이에요.
    어떤 날은 욕실에서 머리를 감고 나오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면 아버님이 딱 서 계시기도 했고, 외출에서 돌아오던 어떤 날은 마침 문을 열고 나오시던 어머님과 마주쳐서 화들짝 놀라기도 해요. 또 다른 어떤 날은 빈집에 다녀가신 것도 모르죠.
    그러다가 저녁밥을 하러 주방에 들어가서 흠칫하는 거예요. 나는 주방세제를 항상 개수대 왼편에 놓고 사용하거든요. 우리 집에서 설거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요. 난 설거지를 할 때 오른손에 수세미를 들고 왼손으로 세제를 꾹 눌러 짜요. 그런데 그게 오른편에 있는 거예요. 지겨워서 무슨 일로 다녀가셨느냐 묻지도 않았어요. 세제 통을 원래 있던 왼편으로 도로 옮겨 놓는 일이 자주 있었어요.

 

    꽃잎이 신발 밑창에 으깨지던 그때요, 3년 전 4월 말에요. 한 여자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어요.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수군거리고 있었어요. 심란한 얼굴의 이들 중 아래층 아주머니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이리 오라 손짓했어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102동에 전세 살던 젊은 여자라고요. 흔적을 치우느라 물청소를 해서 바닥은 흥건했어요. 사람이 죽는 소리도 못 들었고 끔찍한 현장도 못 봤어요. 격앙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한 아래층 아주머니는 내게 입단속을 시켰지요. 그렇잖아도 찔끔찔끔 오르는 둥 마는 둥 하는 아파트 이미지가 나빠질까 혹시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 다들 쉬쉬했고 없던 일인 척했어요. 소문이 멀리 갈까 오래갈까 염려하여 아무도 그 일을 드러내어 언급하지 않았죠.

 

    나는 죽은 여자를 본 일이 있어요. 물론 그 여자는 나를 모를 거예요. 아시다시피 나는 누가 오래 기억해 줄 사람은 아니니까요. 일 년에 한 번조차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는 유령 같은 사람이니까요. 요즘 누가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나요? 더군다나 젊은 사람들은 더 그렇잖아요. 그 여자도 마트나 지상 주차장에서 또는 놀이터 부근에서 스쳤을 나를 당연히 모를 테죠. 그런데 나는 그녀를 알아요. 혼자서 알아버렸어요. 그렇지만 누가 떨어졌다고 들었을 때 나는 그 여자를 안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어머님,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아요. 이틀이나 사흘쯤 잠을 못 자다가 나흘째 밤, 졸피뎀을 한 알 혹은 반을 쪼개 먹곤 하죠. 어느 날은 약을 먹고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취한 것처럼 집 안을 휘청휘청 돌아다니죠. 반쯤 잠든 상태에서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먹기도 하고 화장실 앞이나 식탁 아래에서 고꾸라져 잠들었다 새벽에 깨기도 해요.
    불면증이 꽤 오래되었는데 어머님께는 말도 꺼내지 못했어요. 괜히 말했다가는 불면증엔 뭐가 좋다더라, 뭐가 안 좋다더라 하고 계속 참견하실 거잖아요. 그러다가 어떤 병원에 불면증을 잘 고치는 명의가 있다더라 하시겠죠. 얼른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아침저녁으로 성화하실 테죠. 내가 골골대면 민이나 민이 아빠 밥 굶을까 봐, 뒤치다꺼리할 사람이 없을까 봐 애면글면하실 테죠. 같은 말을 듣고 또 듣고 지겹도록 듣다가 나중에는 털어놓은 사실을 분명 후회하게 될 거예요.

 

    그날도 나는 잠을 못 잤어요. 사흘이나 잠을 설쳤으니 오늘밤은 잘 수 있겠지, 수면제 없이 잠들어 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새벽 1시에 불을 껐는데요. 도무지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가깝고 먼 기억과 감정들, 심란한 생각을 저 어둑한 천장 위에 빽빽하게 적을 수도 있을 지경이었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몸을 뒤척거리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켰어요.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더라고요.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민이 아빠와는 각방을 쓰고 있어요. 이불 뒤척이는 소리, 돌아눕는 소리,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에도 잠을 못 자니 어쩝니까. 너의 숨 쉬는 소리 때문에 내가 잠을 통 이루지 못하니 숨을 쉬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어두운 거실로 나와 현관에서 베란다로 다시 베란다에서 현관 쪽으로 갇힌 짐승처럼 어슬렁어슬렁 걸었어요. 그거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어요.
    뜨개질이라도 배워 볼까 했는데 소질이 없는지 서툴렀어요. 눈은 침침하고 어깨도 아프고 영 취미가 붙지 않아 금방 관뒀어요. 그래도 민이 목도리는 하나 만들고 그만둘 것을, 구석에 밀어 둔 털실 뭉치를 보며 너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하고 민이 아빠가 비아냥거리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라고, 씨발. 닫힌 문에 대고 욕을 했는데 들었을까요.
    종교가 없으니 기도를 할 신도 없어요. 넋두리를 늘어놓을 마음 편한 누구도 없어요. 남들은 친정어머니가 늙으면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던데 나는 이십 년을 본 어머님이나 오십 년을 본 친정어머니나 똑같이 서먹해요.
    어떤 밤에는 하도 심심해서 김 한 톳을 몽땅 들기름에 재어 냉동실에 넣기도 하고, 어떤 밤에는 산수화 앞에 우뚝 멈춰 유유자적 노를 저으며 서 있는 남자에게 반말로 또는 존댓말로 욕을 내뱉기도 해요.

 

    물속을 걷듯 돌아다니다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었어요. 길게 심호흡을 하며 밖을 내다보았지요. 우리 집은 11층이에요. 건너편 102동은 모두 불이 꺼져 있었어요. 102동에서 보면 우리 집이 있는 101동도 어둠에 잠겨 있을 테죠. 새벽 4시는 그런 시간이니까요.
    그때 102동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 하고 켜졌어요.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세어 보았어요. 하나, 둘, 셋······ 7층이었어요. 709호 베란다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요. 누군가 잠을 못 이루고, 또는 자다가 깨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예요. 그걸 보니 나도 한번 피워 볼까 저걸 한 대 피우면 잠이 올 수도 있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담배를 피우면 속상한 일들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던 여자도 생각났고요. 잠이 안 오니 별의별 생각과 별의별 욕구가 다 맥락 없이 떠오르는 거겠죠. 민이 아빠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그 밤에 담배가 있을 게 뭐랍니까. 가깝기라도 했다면, 어둠 속의 이웃에게 저기요, 내게 담배 한 개비만 빌려주시겠어요 이렇게 부탁했을 텐데요. 102동 709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 졸피뎀 한 알을 쪼개 반을 입에 털어 넣었죠.
    그 후로 베란다 앞에 서면 709호 쪽을 한 번씩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저기 사는 사람도 지금 나처럼 잠을 못 자고 있을까 하고요. 그 먹먹한 시간에 나 혼자 깨어 있는 것보다는 모르는 누구라도 있으면 쓸쓸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 볕에 이불을 널기 위해 베란다 문을 연 어느 낮, 나는 709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봤답니다. 어린아이처럼 소다 맛 뽕따를 쪽쪽 빨아먹으며 단지 앞을 거닐던 여자였죠. 그녀가 만삭의 임산부였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얼굴을 찌푸렸어요. 아기 가진 여자가 너무하네. 나는 그녀가 경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나이에 참지 못할 일이 뭐가 있다고 저럴까 한심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녀가 죽고, 흔적들이 싹 다 지워지고 난 후, 그 새벽 담배를 피우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요. 어둠 속에서 한동안 작고 연약한 빨간 불빛이 스러졌다가 다시 살아나곤 했었죠.

 

    보지도 듣지도 못했는데 자꾸만 그 여자가 뛰어내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바닥에 충돌하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어요. 때로는 102동 어디쯤에서 옷가지나 비닐봉지 같은 것이 훅 날리는 것 같고, 누웠다가 펑 하고 타이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에 놀라서 일어나면 먼 곳에서 들리는 정체모를 기척이거나 했어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어요.
    창밖으로 상체를 기울여 보기도 했어요. 저 아래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칠 때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바닥으로 떨어지는 어느 찰나에 혼절할 것인가, 9층이거나 8층 사이일까, 또는 2층이거나 1층 베란다 사이 마침내 추락 지점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의 찰나일까 그러면 보도블록 틈에 납작 엎드려 핀 민들레꽃을 볼 수도 있겠네, 집요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보면 또다시 무언가 혼처럼 너풀거리는데 그건 분명 내 옷인 거예요. 하도 입어서 목이 늘어난 티셔츠이거나 무릎에 꿰맨 자국이 있는 고무줄 바지이거나 암튼 그건 분명 내 옷인 거예요.

 

    방에 누워 뒤척이다 도로 나와 거실과 주방을 서성거렸어요. 민이의 단단히 잠긴 방문을 괜히 한번 만져 보다가 베란다에 나가 아득한 바닥을 오래 내려다보다가 허공에 나부끼는 어쩌면 내 것일 옷자락을 섬뜩하게 노려보다가 마침내 서랍을 열었는데 몇 알 남았으려니 했던 졸피뎀은 다 먹고 없었어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들고 집을 나왔죠.
    편의점으로 가서 눈에 보이는 아무 담배 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이거요? 마일드세븐?
    네, 바로 그거요.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하나 사서 돌아왔어요. 나는 다만 숨을 쉬고 싶었고 다만 잠을 자고 싶었어요. 새벽이었고 다니는 사람도 없었지만, 내가 그랬듯 누군가가 내려다볼 수도 있어서 길에서 피울 수는 없었어요. 아시잖아요.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은 세 동짜리 아파트 단지예요. 더군다나 시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 것도, 시어머니와 같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도 다 알잖아요. 생선가게에 가서 가자미 한 마리 주세요, 그러면 주인이 가자미를 담아 건네며 자기 시어머니는 조림을 한다고 도루묵을 사갔어, 하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숨어서 피울 곳이 필요했죠. 어린 시절의 그 여자처럼, 709호 여자처럼 말이에요. 집에 들어와도 숨을 곳은 많지 않았어요. 베란다로 나가 쌓아 둔 잡동사니 옆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그때부터 쭉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 앞으로도 금연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건강을 위해 하루에 한 갑 이상은 피우지 않기로 했어요. 여름마다 니코틴 해독에 좋은 복숭아도 자주 사먹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좋은 것이 생긴 것만으로도 내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거든요.

 

    제발 전화 좀 그만 하세요. 곧 들어가서 어머님과 형님이 하는 수고를 나눠서 한다니까요. 텔레비전 앞에 옆으로 누운 남자들 먹을 점심을 함께 차리자고요. 따분하면 입이 더 궁금하기 마련이니 사과도 깎아서 갖다 주고 그저께 하루 종일 만들어 김치냉장고에 넣은 살얼음 낀 식혜도 한 잔씩 갖다 주자고요. 밥알을 좋아하는 아버님께는 밥알을 넉넉하게 넣어 숟가락과 같이 드리고 삭은 밥알을 싫어해서 국물만 싹 먹고 남기는 아주버님과 민이 아빠에게는 밥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국물만 가만히 떠서 갖다 주자고요. 씹을 것과 마실 것을 골고루 갖다 주자고요. 먹고 마신 다음에는 소화 잘 되라고 훼스탈을 한 알씩 미지근한 물과 함께 갖다 주자고요.
    자, 이제 우리는 녹두전을 부칩시다. 치자를 물에 우려 노랗게 부칩시다. 서너 장을 서둘러 부쳐 아버님께 한 접시 갖다드리고 맛이 어떻다 하시는지 기다려야죠. 짜다고 하면 급히 물과 간 녹두와 찹쌀, 고기를 더 넣고 싱겁다고 하면 소금을 두어 꼬집 휘휘 뿌려요. 얼른 수습을 해야 나중에 밥상 앞에서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죠. 기껏 만들었는데, 공은커녕 타박을 들으면 짜증나잖아요. 짜다거나 싱겁다거나 마늘이 덜 들어갔다거나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진짜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요. 차례상에 올릴 커다란 녹두전 세 장을 부치고 나면 베어 먹기 좋게 동글동글 작은 녹두전을 부쳐야죠. 어머님과 형님과 나 이렇게 셋이 부엌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요.
    줄이자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기름 냄새가 나야 명절 기분이 나지, 그래도 돌아갈 때 전이라도 두둑이 싸가야 명절 기분이 나지 이러는 어머님 고집대로 이번 추석에도 다라이 한가득 녹두를 불리고 있어요. 프라이팬에 콩기름을 붓고 녹두전을 부쳐요. 막상 상에 올라가면 서너 개 집어먹고 마는, 녹두전을 수백 장 부쳐요. 아버님 닮은 손님들과 어머님 닮은 손님들이 왔다 갈 때마다 한 봉지씩 담아주고 이 집 저 집 냉동실 한 칸 그득그득 돌덩이처럼 언 채 처박혀 있다가 다음 명절 전 주엔 새로 부친 전으로 채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뭉텅이째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녹두전을 어머님과 형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부칩시다.

 

    잠깐 담배 피울 시간이면 나는 충분해요. 딱 다섯 대만 피우려고 여기 온 거예요.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막 네 대째 담배를 피우고 나온 참입니다. 그사이 또 전화를 하셨네요. 형님 번호로도 부재중 전화와 문자 한 통이 왔고요. 문자를 보낼 줄 모르는 어머님이 오죽 답답하셨으면 형님을 재촉했을까요.
    지금 가는 길이에요, 형님.
    할 수 없이 답장을 보냅니다. 아니면 받을 때까지 계속계속계속계속계속 전화하실 거지요, 어머님?
    어차피 한 대만 더 피우고 나면 일어날 거였는데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유자 얼그레이차는 벌써 다 마셨어요. 다음 명절엔 녹두전은 그냥 전집에서 몇 장 사 차례상에 올리기로 하고 어머님, 형님과 이 카페에 오면 어떨까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유자 얼그레이차도 같이 마시고요.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주머니 속의 담배도 슬쩍 내밀고 싶어요. 그렇지만 녹두전을 부치지 않는 명절도 담배를 피우는 여자도 어머님은 용납할 수 없을 테니 아쉽네요.

 

    그사이 누군가 커피를 사서 나갑니다. 아메리카노는 2500원인데 테이크아웃을 하면 500원을 깎아 줘요. 원래도 싼 커피를 할인까지 해주니 저이는 역시 돈이 많은가 봐요. 돈은 많고 전 부쳐야 할 시가는 없는 여자인가 봐요. 아니면 돈이 아주 많으니 전 따위는 부치지 않아도 참아 줄 수 있는 입장일지도 모르죠. 일 년에 두 차례, 녹두전을 한 다라이 부쳐야 하는 나는 일어납니다.
    탁자 옆에 기대 놓았던 장바구니를 챙겨요. 두부는 조금 식었지만 여전히 따뜻해요. 말랑한 두부가 으깨지지 않게 살살 들어요. 녹두전을 다 부치고 나면 저녁상을 차릴 시간이 될 거예요. 다시 밥을 차리고 다시 밥상 위의 가시와 뼈를 추려 버리고 다시 스텐 주발은 잘 씻어 마른 행주로 닦아 엎어 놓고 집으로 돌아가면 나머지 담배는 베란다에 숨어, 마저 피워야겠어요.

 

 

 

 

 

 

 

 

 

 

 

 

 

 

 

함지연

작가소개 / 함지연

1967년 서울에서 출생.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풍」이 당선되어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