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단편소설]

 

 

외출

 

 

장희원

 

 

 

    나는 정우를 데리고 청계천 끝자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며칠 동안 찌는 듯한 폭염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열이 채 기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폭우. 그 특유의 눅눅함과 더운 기운 때문에 어디를 가도 머리가 무거웠고 물비린내가 났다. 마치 물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잠시 어둑한 다리 아래에서 우산을 쓴 채 건너편 사람들을 구경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이나 연인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이 조형물을 찍거나 광장 아래로 내려와 불어난 냇물을 구경했다. 대부분 여과기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잠깐 보다 금세 자리를 떠났다. 솨아 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추워지는 것 같아 정우의 머리 위로 우비를 씌워 주었지만 아이는 답답하다는 듯 으응 하고 짜증을 냈다. 정우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우는 아가미로 호흡하듯 천천히 숨을 골랐다. 나는 아이가 집중할 때는 가만히 두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정우 옆에서 한동안 세차게 튀는 흙탕물 같은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정우의 검진 결과가 나오고 나서 선영은 자주 이유 없이 아이를 끌어안았다. 어디로든 가버리지 말란 듯이. 그러고는 품안에 있는 정우의 귓가에 연신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였다. 나로서는 선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없었다. 의사는 정우가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럼 자폐증이나…… 뭐 그런 건가요?" 우리 둘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린 시절에 이런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나는 아주 어린아이라도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 말은 마치 이렇게 만든 주범이 바로 나라는 뜻 같기도 했다. 의사는 입을 다문 나를 지켜보다 작은 목소리로 "모든 게 나아질 거예요." 하고 말했다.) 그녀는 그동안 정우를 키우면서 수도 없이 봐왔던 백분율 표를 보여주면서 네 살 또래에 비하면 키가 크고 몸무게도 정상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정우는 잘생긴 편이었다. 특히 선영의 코를 닮은 콧대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을 우리가 처음 알아차렸을 때가 언제였을까? 돌이 지났을 무렵? 아니면 정수기 앞에서 무-울 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말했을 때?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가 정우야, 하고 아이를 부를 때마다, 정우가 이쪽을 바라볼 때마다 그래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이 이야기를 살면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와 나눌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예감했다. 당연히 선영에게도.
    "말을 자주 걸어 주세요. 느끼고 있는 감정 위주로 말을 해주셔야 해요."
    의사는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선영과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 과정이 우울하다거나, 결코 슬프기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우 때문에 자주 웃었고, 심지어 기쁘기까지 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어떨 때는 한밤중에도 터져버릴 것같이 가슴이 아파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다. 아주 많은 자책의 시간(나 때문이야…… 나의 어떠한 부분이 우리 아이의 마음을 닫게 만들어버렸어…… 생각해 봐 이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이나 결점이 있겠어?)이 지나서야 나는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덤벼들거나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채 유속의 속도로 함께 흘러가 버리기도 하는 게 삶이라는 것. 그래서 인생에 있어서 상처를 받는다는 것까지도. 상처든 삶이든(어떤 차원에서는 이 둘은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인과관계나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영역이 있었다. 실제로 선영은 처남이 다섯 살 때까지 말을 못 했고 심지어 기저귀까지 차고 다녔다고 했다.
    "외식하러 갈 때마다 뒷좌석에서 창밖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짐승처럼 우우거렸어."
    처남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재수 중이었다. 괜찮다는, 그러니 힘을 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만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끝없는 기대 끝에 내가 지금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차마 현실을 바라보지 못해 스스로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
    아마 선영도 나와 비슷한 시기를 통과했을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기억할 수도 없는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비난의 말을 퍼붓다가 한 달 넘게 말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이게 다 무엇인가, 왜 우리가 이런 것들에 붙들려야 하나 싶어 서글퍼졌다. 나는 한밤중에 옆에서 자고 있는 선영에게 울지 말라고, 왜 우냐고 (정작 내가 울먹거리면서) 울컥하며 말하기도 했었다. 선영은 한숨을 쉬며 안 울어, 안 운다니까, 하고 나를 안아 주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의사의 말이 맞았다. 모든 게 나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에 경제적인 위기도 한 차례 찾아왔지만, 선영이 도하로 승무원 일을 하기 위해 떠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정우도 많이 좋아졌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우와 비슷한 아이들 모임에 나가는 게 전부다.
    나는 경기도 외곽에 있는 학교에서 강사로 영문학 입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혼자서 정우를 돌보려면 매일 출근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어릴 적부터 평생 공부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꿈꾸었기에 이 일은 괜찮았다. 다만 학생들에게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을 읽는 법을 가르칠 때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끝을 향해 막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대부분 전망이 나은 통번역 대학원에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이 많았고, 그런 학생들에게 인물이 말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따금 드물지만 맨 앞줄에 앉아 눈을 빛내며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있어 아주 조금 위안이 되긴 했다. 적어도 우리가 같은 곳을 짚고 있구나 하는, 그런 작은 마음. 나는 당연히 정우가 자라서 저기 있는 학생처럼 저 자리에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읽거나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여겼다. 선영이나 나나 무언가를 읽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우리는 학부 시절 같은 과에서 만나 닥치는 대로 읽고, 틈만 나면 우리가 각자 읽은 글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 여행을 다녔다. 주말마다 서울 근교를 떠돌다 방학 때는 해남 쪽을 떠돌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남부나 보스니아, 이집트 같은 먼 곳을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우리의 연애 시절, 그녀가 페루의 어느 기차 안에서 밤늦게까지 주워온 무가지를 들여다보던 모습을 기억하곤 했다.
    "뭐 해?"
    "아니, 그냥 심심해서."
    "어차피 이해할 수 없잖아."
    "그러게……."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자신은 알 수 없는 언어를 신중하게 훑어 내려갔다. 나는 흔들리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던 그녀의 손가락의 윤곽을 조금 이상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장면은 이따금 새벽녘에 보던 그녀의 등줄기보다 더 인상 깊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한 줄, 한 줄 천천히 내려가는 그녀의 손가락이 끝나지 않기를, 언제까지나, 우리가 감히 상상해 볼 수조차 없는 먼 미래에도 우리가 영원히 이러한 모습일 거라고 멋대로 상상하다 혼자서 웃음을 피식 흘렸다.

 

*

 

    학교에서 밤 열 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정우는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정우를 돌봐주러 오는 엄마가 아빠 왔네 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우는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엄마는 피곤한 얼굴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사이 정우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거실 한가운데에 깔아 둔 차렵이불 위에 누워 자신의 발을 만지며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우는 눈이 부시지 않는지 조명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불쑥 말을 건넸다.
    "아빠, 어디 갔었어?"
    "응, 학교." 나는 수건으로 발을 닦으며 말했다.
    "아빠, 어디 갔었어?"
    정우는 특정 문장을 반복하는 버릇이 있었다. 응, 학교. 나는 똑같이 대답하며 세탁기에 수건과 양말을 넣었다.
    "아빠, 어디 갔다고?"
    "그만 해라, 아빠 힘들다."
    엄마는 정우의 휘젓는 팔을 바로잡아 주며 말했다. 그러고는 "주말엔 애 데리고 어디라도 좀 다녀오고 그래라." 하고 타박했다. 나는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고, 내일 정우와 함께 광화문에 있는 서점에 갈 거라고 했다. 말하고 보니 진짜 오래 전부터 그러기로 한 것같이 느껴졌다. 아들과 함께 서점에 들러 신간 코너에서 필요한 책들을 찾아보고, 근처 빈백에 앉아 동화책에 집중하는 아들을 보며 웃는, 같은 곳을 짚으며 비슷한 표정을 짓는 우리들……. 하지만 다음날 나는 어쩐 일인지 점심 무렵이 한참 지나서야 눈을 떴다.
    어차피 주말은 남았으니까.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베란다 창문에 입을 맞추는 놀이를 두 시간째 하고 있는 정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는 동안 정우는 내 팔을 붙잡고 내 어깨에 기댔다. 앞에 서 있던 한 아주머니가 정우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애가 참 잘생겼다고 불쑥 말을 걸었다. 나는 정우 대신 고맙습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정우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신음소리를 내며 이마로 내 어깨를 밀었다. 조금 민망해지려는 찰나 그녀는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괜찮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다 그래요."
    "이해해요."
    그녀는 진심이라는 듯 흐뭇하게 정우를 바라보았다. 정우는 낯선 사람을 부끄러워하는 수줍음 많은 아이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기 손주도 그러더라, 라는 말을 덧붙였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 익숙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들었지만, 그녀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곧이어 물밀 듯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살짝 뻣뻣해진 등을 덜컹거리는 지하철 좌석에 기댔다. 그리고 몸 어디에선가 올라온 알 수 없는 뜨거운 온도가 서서히, 아주 천천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서점 안은 주말인 데다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귀를 막는 웅성거리는 소리, 실내를 밝히는 조명들, 사람들한테서 나는 퀴퀴하고도 더운 습기 같은 것들 때문에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책이나 몇 권 사갈까 하는 마음에 어린이 서적 코너로 정우를 데려갔지만, 정우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손을 잡고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다녔다. 그러다 불현듯 내가 정우의 손을 잡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쳐다볼 만큼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정우는 여전히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아이는 빤히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단순한 착각이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과 함께 불쑥 화가 치미는 것을 느끼며 정우에게 주의를 줬다.
    "꼭 붙잡아."
    정우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알겠어? 아빠 손 놓치면 안 돼. 꼭 붙잡으라구."
    정우는 부산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내 눈을 피했다. 계속 다그치는 소리에 아이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응, 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붙잡는 아이의 손에서 익숙한 감각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의 작은 손가락들은 무게가 없는 것 같았고 어딘지 비현실적이기도 했다. 어쩐지 허공 속의 무언가를 한 움큼 움켜잡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는 서점 안을 몇 바퀴 더 돌다 카페로 들어갔다. 바나나 주스를 마시는 정우에게 맛있냐고 물었지만 정우는 대답이 없었다.
    "맛있어?"
    나는 재차 정우에게 물었다. 맛이 어때? 괜찮아? 계속해서 묻는 내 질문에 아이는 빨대를 빨며 무심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까 일이 마음에 남았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선영을 보았다. 연갈색 머리칼이 매끄럽게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히스페닉계 남자와 함께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유유히 우리 앞을 지나쳐갔다. 나는 입을 벌린 채 사라져 가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어째서 선영이 여기 있지. 분명 지난달 휴가를 받아 우리와 함께 지내고 다시 도하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선영은 석 달에 한 번 한국에 들어와 닷새 정도 머물다 가고는 했다. 휴가 때마다 전 세계 각국에서 사온 선물을 한 아름 안기고 한참 동안 정우를 어르다가 세 식구가 다 함께 여기저기 외식을 하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쫓아갔다. 옆에 있던 구불구불한 단발머리의 외국인으로 봤을 때 그들은 외국 서적 쪽으로 갔을 확률이 높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선영의 이름을 외치려고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마 선영이겠어? 하는 마음과 이름을 불렀을 때 진짜로 뒤돌아볼 선영을 마주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나는 끝내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두 사람을 놓아 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금은 황망한 마음으로 제자리에 멈춰선 채 옆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어 책을 나눠 보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정우는 테이블 위에 빈 머그잔과 빨대들을 가지고 열을 맞추고 있었다.
    "손님들이 마시고 간 건데 얘가 자꾸만 이러네요……."
    앞치마를 두른 아르바이트생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우는 손님이 마시다 남긴 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조용히 컵을 빼앗았다. 정우는 잠시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더니 주먹으로 내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자 정우는 코를 훌쩍였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청계천으로 걸어갔다. 정우와 나는 말없이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비가 점점 더 거세지면서 조금씩 어깨가 젖어 가는 바람에 우리는 다리 아래로 몸을 피했다. 다리 건너편 어둠 속에서는 말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이내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든 채 옮기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더운 듯 하나같이 교복 상의를 풀어헤친 티셔츠 차림으로 거친 숨을 뱉으며 힘을 쓰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묻는 말과 함께 다 왔어,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돼……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몇몇은 우산을 들어 다른 친구들의 머리 위로 씌워 주었지만, 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에이 씨. 비를 맞더라도 빨리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한 남학생이 우산 안에서 뛰어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안경을 쓴 남학생의 하얀 얼굴 위로 빗방울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흘러내려 미끈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래주머니 아래로 진흙 더미가 투둑 떨어졌다. 하천 쪽에 제방 장비를 교체하는 봉사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봉사 활동하러 왔나 보다."
    정우는 지나가는 학생들 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어서 다른 학생들도 모래주머니를 안은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
    정우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정우는 저 멀리 하천 쪽을 가리켰다. 우리 앞으로 검푸른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정우는 이어진 이 길을 쭉 걸어 보자고 했다.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물 냄새가 짙어졌다. 동굴 안처럼 축축한 공기 탓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어난 냇물로 솟은 젖은 돌에는 이끼가 피어 있었다. 수면을 훑고 불어오는 바람이 바짝 날을 세운 칼날처럼 목을 파고들었다.
    "안 추워?"
    내 말에 정우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하천 건너편에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보였다. 바람이 불자, 딸아이는 즐겁다는 듯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아버지의 다리를 붙잡았다.
    "안 춥냐니까."
    나는 살짝 짜증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우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서늘한 정우의 뒷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 약한 목덜미를 잡고 흔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정우는 조그만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응?"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응, 뭐라고?"
    그러나 정우는 다시금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길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계단에 앉아 냇가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깨진 블록 사이로 푸른 잡초가 군데군데 솟아 있었다. 다행히 비가 그쳐서 우산을 접을 수 있었지만 하천은 아까보다 더 세차게 흘렀고, 탁류소리는 점점 더 거세져 갔다. 냇물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바로 근처에서 세차게 돌고 있는 소용돌이가 보였다.
    "정우야, 이리 와봐."
    나는 아이를 냇가로 데려가 시커먼 냇물을 가리켰다.
    "보여?"
    물살에서 독특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정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더욱 가까이 허리를 숙였다. 시커먼 물고기가 꽈리를 틀며 튀어 올랐다 사라졌다. 어? 정우는 신기하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뭐야?"
    나는 정우의 반응에 조금 신이 났다. 물고기. 물고기야. 방류한 물고기가 저렇게 큰 줄 몰랐지만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정우는 시커멓게 흐르는 냇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로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바위틈 사이로 넓은 물풀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아까보다 훨씬 강한 빗줄기를 느끼며 우리는 근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차양 아래에 낡은 벤치가 있었다. 노숙자가 머물다 갔는지 신문지와 낡은 박스가 보였다. 그것들을 옆으로 치운 다음 정우를 앉혔다. 투둑투둑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은 점점 더 거세졌다. 우리는 점점 진해지는 젖은 흙냄새를 맡으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추위 때문에 팔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주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커다란 파초나무가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잡초처럼 보이는 풀들은 허리께까지 높게 자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도로 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커다란 잎에 매달려 있던 굵은 물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어디선가 묻은 흙을 털면서 정우를 달래서 돌아갈까 아니면 그냥 아이를 안아 올라가 버릴까 고민했다. 하지만 올라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비상용 사다리가 백 미터 간격으로 차벽에 붙어 있었지만 나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 볼까?"
    정우는 젖은 벤치 위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러지 말고. 나는 정우의 손을 잡았다. 엄마한테 전화해 보자. 그러나 연결음이 흐르다가 뚝 끊어졌고, 다시 연결됐을 때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낮아진 환율 때문에 비행시간을 더 늘렸다고 했으니 지금쯤 남미나 세르비아에 있을지도 몰랐다. 정우는 계속해서 주변 자리를 마구 문질렀다.
    나는 아까 본 선영의 잔상을 떠올렸다. 낯설지만 분명한. 나는 그 여자가 선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아니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확신이었지만, 내가 선영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듯, 선영 또한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가질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난 휴가 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어디든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트렁크에 잔뜩 짐을 실은 채 마음 내키는 대로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오고 가며, 조금은 우왕좌왕하면서 길을 찾아다녔다.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았는데, 산속에 있는 작은 암자에 가보기도 하고 속초에서 해변을 따라 걷기도 했다. 정우도 기분이 좋은지 뒷좌석에서 내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선영이 얘기해 주는 같이 일하는 외국인 동료들, 비행 중 만났던, 현실에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진상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도 안 돼, 설마,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급기야 그들의 악센트까지 똑같이 흉내 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뒷좌석에서 정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듯, 자신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정우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창밖에서 비치는 햇살 덕분에 차 안의 온도가 달아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산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좋다며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열어 둔 창으로 향긋한 풀 냄새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원래 삼일 정도 계획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선영이 하루만 더 돌아다니자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우리는 하루를 더 보내고 난 뒤에야 아주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선영은 다시 짐을 꾸려 공항으로 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여행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눠선지 아무도 말이 없었고, 정우는 뒷좌석에서 혼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무척 위험한 일이었지만 휴가 내내 신나게 즐겼던 터라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우리…… 그동안 정말 즐거웠다. 그치?"
    무거운 침묵 속에서 선영이 불쑥 말을 꺼냈다. 나는 맞아, 정말 재밌었어, 하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그 말은 슬프고 어딘가 툭 치면 모든 게 바스라질 것처럼 들렸다. 선영도 딱히 의미를 두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순수하고도 단순한 의미일 뿐.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거운 적막이 가라앉고 있었다. 선영도 나와 같은 기분인 것 같았다. 선영은 이내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우리 중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영 또한 자신이 왜 사과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약간은 당황스러워 보였고, 무언가를 바로잡고 싶어 했지만 그 어떠한 말로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각자 앞에 놓인 어둠을 응시했다. 아마 선영도, 나와 같이 즐거웠던 '그동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머나먼 미래에 일어날 어떤 가능성을 현재의 우리에게 언뜻 보여준 것 같았다. 특히나 선영의 "미안." 소리가 그 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는 것 같았고, 연이어 우리의 침묵이 점점 더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것 같았지만…… 도저히 그 속에서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삶은 그렇게 유속의 속도로 함께 흘러가 버리니까.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나는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보았다. 정우는 고개가 꺾인 채 잠들어 있었다. 애 목 아프겠다. 고개 좀 바로 해줘. 나는 선영에게 부탁했다. 선영은 안전벨트를 풀고 뒷좌석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는 정우가 잠들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가자."
    점점 더 거세게 내리는 소나기를 보며 정우를 재촉했다. 정우는 고집스럽게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가자니까. 대체 언제까지 계속 걸을 건데. 정우에게 짜증을 냈지만, 정우는 더욱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좋아. 그러면 너는 여기 있어."
    나는 우산을 펼치며 빗속으로 뛰어갔다. 솨아 하고 강하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돌다리가 보였다. 나는 납작한 돌 위로 훌쩍 뛰었다. 그리고 연이어 성큼성큼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정우는 아무 표정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정우가 고집을 부리면 흔히 하는 일이었다. 누구나 유년 시절에 한 번쯤은 겪었을 그런 종류의 것. 넌 여기 있어, 엄마는, 아빠는 갈 테니까. 나는 정우가 떠나는 날 보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아니면 나를 부를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귀를 기울였지만 점점 더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신경 쓰이던 뒷모습이, 정우가 멀거니 바라보는 모습 같은 것들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내 쪽을 쳐다보지 않는 정우가 떠올랐고, 웃지 않는 정우가 떠올랐다. 나는 점점 더 앞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는 한번 고집을 부리면 모든 일이든 끝날 때까지 해야만 하는 성마른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몫은 온전히 나에게 있었다. 이 자리에 선영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선영을 떠올리자 걷잡을 수 없을 것처럼 여러 감정이 물밀 듯 쏟아졌다. 나와 선영, 선영과 나…….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처음에는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상하게 걸을수록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실제로 정우에게서도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간절히 점점 더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향해서? 남미에 있는 선영에게? 아니면 어디로? 정신을 차리자 어렴풋이 수로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만 들렸다. 황급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는 거짓말처럼 정우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근처 파출소에서 정우의 옷차림과 생김새 등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정우가 어떤 아이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파출소장은 어쩌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정말 별것 아니었었습니다. 그게, 그러니까……. 나는 더듬더듬 그때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압니다. 고집 센 아이를 훈육하려면 어쩔 수 없지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금 안심이 됐다.
    "네,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그는 내 말에 동조하듯 작게 한숨을 쉬더니 여기저기로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근처에 시시티브이 관제실이 있는데 거기서 곧 연락이 올 거라고, 잠시만 기다려 보라고 했다.
    나는 파출소 밖에서 서성거리며 연락을 기다렸다. 초조해서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다. 주위에 있는 제지공장들 사이로 지게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나는 초조하게 파출소 안을 살폈다. 소장은 여전히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별안간 하얀 스쿠터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뒤에 여학생을 태운 채 스쿠터를 몰고 있었다.
    "아저씨, 광장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남자 아이는 피부가 까무잡잡했다. 왜소한 몸집에 핸들을 잡고 있는 가녀린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뒤에 있는 여학생의 짧은 교복 치마 아래로 맨다리가 드러났다. 여학생은 바닥에 조심스럽게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남학생의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나는 갓 중학교를 졸업했을까 싶은 아이들을 보며 정우를 떠올렸다. 정우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뒤에 여자 친구를 태우고 오십 시시 스쿠터를 모는, 저런 무모한 젊음을 누릴 수 있을까. 나는 청계광장 반대쪽을 가리켰다.
    "저기다."
    "저쪽으로 죽 가면 된다."
    남학생은 스쿠터의 방향을 돌리며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리고 속력을 내며 사라져 버렸다.

 

    파출소장은 미아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시시티브이를 확인해 봐도 이 근처에서는 길을 잃은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상하네, 거참. 나는 그에게 알겠다며 혹시 모르니 다시 하천 쪽으로 가보겠다고, 무언가 보이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

 

    날이 저물어 갈 무렵 주변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옷깃을 세운 채 목을 파묻었다. 근처에 있는 물결이 더 세지면서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천은 이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여러 물줄기와 만나 더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끼고 사람들이 좀 지나다니는 것 같더니, 이제는 고가도로가 보이면서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비는 그친 지 오래였고 서늘한 바람에 젖은 옷도 말라 가고 있었다. 나는 고요한 공기가 주는 평온함에 젖어들어 나른해졌다. 멈춰 서서 이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돌아갈까. 고요한 적막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고가도로가 만든 그림자 아래 어린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오후에 본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학생들을 떠올렸다. 땀을 흘리며 봉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던 게 떠올랐다. 미끈하게 빛나는 땀, 풀어헤친 셔츠 같은 것들. 어떤 건실한 열기가 주는 힘들. 나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학생들 쪽으로 다가갔다. 학생들은 커다랗게 원을 둘러싼 채 무언가를 보며 웃고 있었다. 높고 새된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익숙한 무언가가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정우가 보였다. 학생들은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더니 순식간에 스쿠터에 올라타 속력을 내며 사라져 버렸다.
    정우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정우야, 뭐야? 어디에 있었어? 아무리 소리를 높여 물어도 정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입힌 우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핏 살펴보니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나는 정우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정우는 그제야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빠."
    정우는 후드득 몸을 떨며 내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정우의 등에 내 손을 얹었다. 빳빳하게 선 긴장이, 뛰고 있는 한줄기 박동이 느껴졌다. 나는 말문이 막혔고, 정우가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음을,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서늘하게 땀이 흐르는 아이의 등줄기만 느껴질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저 멀리 어디선가 거칠게 모는 스쿠터 소리가 또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자꾸만 정우에게서 아주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멀리, 조금 더 멀리 가려고 했던 마음을, 내 안의 어떤 진실 같은 것을 직면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야. 나는 정우를 안타깝게 내 쪽으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게 아니야, 정우야.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주 먼 우리의 옛날, 특별할 것 없던 날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평온한 오후였고, 선영과 내가 함께 있던 시기였다. 정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우리는 하루 종일 정우를 바라보았다. 공기 중으로 포근한 아기 냄새가 났다. 정말 너무 귀엽지 않아? 맞아, 정말……. 우리는 잠들어 있는 정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정우가 손싸개로 싼 손을 기지개를 켜며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는 기대에 찬 눈으로 침을 삼켰다.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선영과 나를 향해 내뱉을 정우의 무음의 언어를, 우리의 귀를 충만하게 채울 그 적막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장희원

작가소개 / 장희원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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