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택배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택배

 

 

서동욱

 

 

 
KBS 라디오 문학관 방송듣기
🔊 KBS 라디오 문학관에서 오디오북을 만나볼 수 있어요

 

 

 

 

    택배

 

    나는 박스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요?
    받는 사람 칸에는 낯선 주소가 적혀 있었다. ××리. 점장 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데가 있어?
    그해 겨울, 우리는 내내 박스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테이프를 붙이고 화물분류법에 따라 박스들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주소를 한 번 더 확인한 다음 트럭에 실어 나르는 일이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하는데도 산처럼 쌓인 박스들이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높이 쌓여 가는 기분이었다. 직원이라고는 나를 포함해서 두 명밖에 없었다. 한 명은 배송 전담인 나였고, 다른 한 명은 말하자면 지점장 겸 경리였는데 그 형도 나처럼 이곳 사람이 아니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좋아서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지점장 겸 경리〉인 그가 하는 일은 평소에는 사무실 근무를 하다가 바쁠 때만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해 12월처럼 말이다.
    매봉산 쪽으로 더 들어가면 있나 본데······? 일단 가보고 못 찾겠으면 연락해.
    본인도 모르는데 연락한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생각했지만 군말 없이 박스들을 트럭에 싣고 출발했다. 몹시 추웠고, 하늘에서는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굵은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쌓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한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오는 곳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나는 와이퍼를 움직여 차 유리에 들러붙는 눈을 닦아냈다.
    택배도 부익부 빈익빈 상품이다. 뭐랄까, 유통계의 지니계수랄까, 받는 사람은 계속 받지만 그 반대인 사람들에게는 아프리카에 사는 북극곰 같은 것이다. 평생 볼일이 없다는 거다. 말하자면 그 택배는 그런 사람의 것이었다. ××리는 택배를 기다리는 흥분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내가 한 번도 거길 가본 적이 없다는 것만 봐도 그랬다.
    어림잡아 오십 군데쯤 배달하고 나서 그 집에 도착했다. 택배의 주인은 팔십은 돼 보이는 노파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 노인은 혼자서 밥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내가 박스를 내려놓자 잠깐 눈길을 주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식사를 계속했다. 내 쪽에서는 그 할머니의 작고 구부정한 등만 보일 뿐이었다. 그것은 기이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낯선 이의 출현은 벌써 잊었다는 듯 자기 할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후 노인이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몸을 휙 돌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택배는 뜯어 볼 생각도 않고 나에게 말했다.
    좀 먹을테여?
    나는 짐짓 점잖게 사양했다. 그러나 노인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밥을 펐다. 노인이 숟가락을 긁적거리며 밥을 퍼낼 때마다 오래된 냄비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밥상 위에 올라 있는 것들을 슬쩍 쳐다봤다. 된장국과 동치미, 마른 멸치와 고추장 한 숟가락.
    잠시만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쉬고 싶었던 걸까. 나는 한동안 멈춰선 채로 그녀의 동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넋 놓고 있는 사이 노파는 기름도 안 바른 마른 돌김을 부―욱 찢더니 밥상 위에 놓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일 년 내내 바뀔 것 같지 않은 밥상 앞에 혼자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냥 가야 되나······ 그래도 예의상 맛만이라도 봐야 되나······ 아니, 어차피 밥도 못 먹긴 했는데······ 정도의 고민을 잠깐 한 것 같다. 나는 몰래 훔쳐 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심조심 숟가락을 들어 밥상 위에 놓인 된장국을 한 번 떠서 먹어 봤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자연스럽게 밥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다른 것도 먹어 봤다. 이것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어느 순간 나는 그릇을 싹 비웠다. 뜨끈해진 방바닥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져 왔다. 얼어붙었던 손가락이 스르르 녹는 것 같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뜨끈한 바닥에 등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거기까지가 기억난다.

 

 

    밤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다. 아주 새까만 밤이었다. 이제 막 어둑어둑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까만 밤. 허공에는 눈송이가 가득했다. 하나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굵은 눈발이었다.
    피곤한개벼?
    노인이 나를 보며 말했고, 나는 얼빠진 얼굴로 어둠과 눈으로 가득한 바깥을 바라봤다. 황급히 점퍼 호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아무런 문자도, 부재중 전화도 없었다. 점장 형의 연락도, 하다못해 아내의 연락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나를 찾는 전화가 빗발쳤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핸드폰 화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핸드폰을 손에 든 채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전파 신호가 한 칸도 잡히지 않는 것이 보였다. 원래부터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인지 아니면 폭설 때문에 전파가 가로막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급하게 점장 형에게 전화를 걸어 봤더니 서비스 불가능 지역이라는 알림이 떴다. 문자도 보내 봤지만 발신 중이라는 표시만 계속 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에는 메시지를 전송할 수 없다는 알림이 떴다.
    할머니, 여기 핸드폰 안 터집니까?
    내가 소리치자, 노인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멀뚱멀뚱 내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눈 속으로 걸어갔다.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타고 온 트럭을 지나 시내 방향으로 뻗은 도로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최대한 시내 쪽을 향해 핸드폰을 치켜들고 신호가 잡히길 기다렸다. 한 칸만 잡히면 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녹았던 손가락을 다시 얼릴 듯 달려들었다. 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 칸만, 제발 딱 한 칸만······.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눈은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집은 어느새 눈 속에 깊이 파묻히고 거세지는 눈보라가 마을 전체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끔 만들고 있었다. 온통 눈으로 덮인 트럭은 타이어까지 눈에 잠겨 헛바퀴만 돌았다. 시동을 걸어 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그럴수록 바퀴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버렸다. 창밖을 보니 엄청난 눈이 땅을 뒤덮고 있었다.
    망했다. 완전히 갇힌 것이다. 짐칸에는 적어도 어제까지는 보냈어야 하는 물건들이 숱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도무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일루 들어와!
    노인이 외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노인을 쳐다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볏짚을 들고 느릿느릿 소 우리를 향해 걸어갔다. 어디선가 칼바람이 날아와 얼굴을 때렸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안 깨우고 대체 뭘 했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나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저 할머니의 잘못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불어난 눈 더미를 보고 있으니 이 모든 원흉이 저 노인이라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할머니가 소에게 다가가 소 우리 안에 마른 볏짚을 넣어 주었다. 소는 잠시 주춤하는 듯 몇 번 제자리걸음을 하더니 볏짚 위에 자리를 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할머니가 소의 머리를 쓰다듬자 소가 커다란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 떴다. 달력 표지 사진으로 써도 될 것 같은, 그런 풍경이었다. 나는 다시 바깥을 바라봤다. 짙은 어둠과 눈.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장인어른

 

    그래, 취직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지?
    장인어른은 시험에 붙었느냐는 말 대신 꼭 '취직'이라는 말을 썼다. 마치 내가 시험에 붙는 것은 물론이고 취직까지 모두 결정돼 있다는 것처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곤 했다. 그럼요, 예예······ 나는 대답했고, 그때마다 아내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 나면 쥐구멍에라도 숨어들듯 도서관으로 숨어드는 것이었다.
    이제 애도 곧 나오지 않겠나.
    아, 그것도 뭐······.
    문득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덮쳐 왔다. 그리고 다시 눈이, 흩날리는 광경이 나를 덮쳐 왔다.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어떻게든 눈을 뚫고 갈 방법이 없을까? 눈이 아무리 많이 온대도 삽으로 눈을 퍼내고 바퀴를 체인으로 감아서 페달을 있는 대로 밟으면 눈을 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잘 생각해 보면 뭔가 묘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빠진 바퀴를 빼낸다 해도 그 앞에 눈들이 너무 많고, 또 여길 벗어났다 쳐도 다른 곳의 사정이 어떤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안 좋을지도 몰랐다. 나는 영화처럼 눈 더미 위에서 꼼짝없이 얼어 죽는, 그리고 며칠 뒤 〈실종됐던 택배기사, 차 안에서 동사체로 발견〉 같은 기사가 나오는 뉴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제설차는 어떨까? 이 정도 눈이면 구조대가 급파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럼 제설차도 따라오지 않았을까? 어쨌든 다들 출근은 해야 할 테고 학생들도 학교에는 가야 하니까 말이다. 버스가 돌아다니려면 눈을 치워야 하고, 그것도 아침이 되기 전에 눈을 치워야 한다는 걸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 해가 뜨면 눈이 거짓말처럼 녹을 가능성도 있었다.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곳의 눈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눈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 눈이 녹으려면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이었다. 제설작업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번화가가 먼저일 것이고, 시내가 두 번째일 것이며, 아파트 단지가 그다음일 것이다. 여기는 나중에야, 그나마 기대할 수 있다고 해도 아주 나중에야 시청의 귀에 들어갈 것이었다. 발이 몹시, 시렸다.
    목줄이 풀린 개가 눈밭에 몸을 비벼댔다. 나는 눈 더미를 걷어찼다. 눈보라가 바람에 휘날리며 빠르게 흩어졌다. 개는 순간 멈칫하고 나를 쳐다보더니 잠시 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진동이 연속해서 울렸다.
    〈아저씨 택배 언제 오나요〉
    〈배송일 지난 지 한참인데요〉
    〈본사에 신고합니다〉
    그런 문자들이 우선 나를 아찔하게 만들었고, 뒤이어 점장 형의 부재중 전화가, 그리고 아내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나는 곧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전화를 받자마자 아내가 화를 냈다.
    나 지금 갇혔어.
    뭐? 지금 어딘데?
    일단 본사에 연락부터 해. 나는 견인차를 부를 테니까 지금 당장 본사에 연락해서 내가 눈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해.
    지금 어딘데 그래?
    여기? 여기가 어디냐면······ 아, 아냐, 배터리 없으니까 일단은 전화부터 해.
    나는 전화를 끊고 24시간 출동 서비스에 연결했다. 자동응답기 같은 명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내가 불러 준 주소를 되뇌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눈송이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귓등을 때렸다. 이윽고 여자가 대답했다.
    고객님, 지금은 모든 차량이 출장 중입니다. 조금 기다려 주시겠어요?
    얼마나요?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고요.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전 지금 너무 급합니다.
    빠른 시간 내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알려주세요.
    정확한 시간은 안내가 어렵습니다. 기다리시면 현장 기사님이 연락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대충이라도 얼마나······.
    아내로부터 본사 업무 시간이 끝나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문자가 왔다. 아차 싶었다. 점장 형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다시 서비스 불가능 지역이라는 알림이 떴다. 잠시 기다려 봤지만 화면은 그 상태에서 진전되지 않았다.
    눈 속을 헤엄치다시피 해서 돌아와 툇마루 위에 걸터앉았다. 젖은 발가락이 아파 왔다.

 

 

    목욕

 

    오늘 갔어야 할 배송지 목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제와 엊그제 갔어야 할 목록까지. 배송지가 적힌 A4 용지가 여섯 장, 도합 이백 쉰여섯 곳이었다.
    할머니가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나는 종이를 손에 든 채 솥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가마솥에서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퍼서 대형 고무통에 붓고 차가운 물도 부어 물 온도를 조절했다.
    할머니, 됐다니까요. 이 상황에 무슨 목욕이에요.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집에서 고무통에 들어가 목욕하는 것만큼 제정신 아닌 광경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내 생각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내게서 젖은 외투를 벗겨내고는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나는 툇마루에 혼자 남아 눈이나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궁이 앞에는 옛날식 대형 고무통이 놓여 있었고 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소가 조용히 누워 여전히 그 커다란 눈을 끔뻑끔뻑 대며 이놈은 대체 뭐지, 가 역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 일이 없어지자 다시 한기가 찾아왔다.
    축축하고, 무엇보다 추웠으므로 나는 바지와 양말을 벗어 약한 온기가 도는 솥뚜껑 근처에 올려놓았다. 하얀 김이 천천히 피어오르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잠시 후 나는 언 발을 통 안으로 살짝 담가 보았다. 따뜻한 느낌인지 저릿한 느낌인지 모를 느낌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천천히 몸을 통 속으로 집어넣자 물이 넘쳤다. 넘친 물은 수챗구멍으로 졸졸 빠져나갔다. 나는 말린 고추 하나가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 위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점장 형은 직원이 행방불명 됐다고 본사에 연락했을까 궁금했다. 아니, 그보다 아내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난 지금 목욕 중이야〉 이런 문자를 보낸다면, 아내는 무슨 말을 할까?
    물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눈이 마냥 좋았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서 우리는 아이처럼 뒹굴었고, 눈사람을 만들었고, 서로에게 눈을 던지며 장난을 쳤다. 그리고 사랑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내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까?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으면 싶었다. 크리스마스라고 기껏 택배나 나르고 있는 놈이 남편이라니. 게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위태롭게 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애를 원하지 않았다. 아직 이르다고, 나는 말하곤 했다. 영원히 안 낳을 거란 얘기는 아니고, 어쨌든 당장은 아니라고. 아내는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봤다.
    왜?
    왜라니.
    나에게는 그 이유가 너무나 분명해 보였다. 나는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공시생이었다. 공시생, 그러니까 수입이랄 게 하나도 없는 사람, 매일 아침 도서관에 가야 하는, 여전히 학생인 사람.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러니까 낳아야 되는 거야······.
    아내는 낮게 읊조렸고, 나는 등을 돌린 채로 그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뭐라고 할지 생각해 봐.
    그 말에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말하자면, 아이가 우리에게 어떤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이 아내의 요지였다. 나는 그때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내에게서 어떤 슬픔 같은 것을, 절망에 가까운 어떤 것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며칠 후 우리는 함께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둘 다 정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생겨야 정상 아닌가? 정상과 정상이 만났는데 안 생기면 이거 비정상 아닌가?
    이제 나오지? 곧 나오지?
    장인은 물었다. 변변치 않은 놈이 애라도 낳아줘야지, 라는 말이 뒤따라오는 것 같은 환청이 들렸다.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봤다. 연애 때는 그렇게 조심하던 문제가 지금은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되질 않는다는 게 미스터리였다. 이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었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무조건, 낳아야만 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 문득 이 집의 면모가 눈에 들어왔다. 이 물을 데운 것이 장작을 지핀 아궁이와 가마솥이라는 것도 신통한 일이지만, 내 위에서 눈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 얼핏 봐도 위태로워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이라든가, 그래서 눈 때문에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오래된 나무로 대충 만든 것 같은 대문과 창호지를 발라서 가린 방문, 빗장을 걸어 잠그는 문고리는 마치 전통문화 체험 현장에 온 것처럼 신묘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한바탕 울고 싶었다. 이제 그나마 빌붙어 있던 회사에서도 잘릴 처지였다. 어쩌면 내 이름 같은 것은 벌써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컹컹, 개가 또 짖었다.

 

 

    크리스마스 카드

 

    할머니, 여기 혹시 전화기 없나요? 아니면 핸드폰이라도······.
    나는 물었다. 물론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방 안에는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사면은 벽지도 바르지 않은 흙으로 덮여 있었다. 유일하게 있는 것이라곤 작고 오래된 문갑이었는데 하도 오랜 시간 동안 만지고 닳아서인지 니스 칠을 한 것처럼 표면이 번들거렸다. 그녀는 아무 대꾸 없이 그저 자기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어르신?
    내가 말했다.
    뭐······ 하세요?
    할머니는 잠시 나를 살펴보더니 나로서는 뜻을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순간, 불현듯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이랄지, 태도랄지 그런 것들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를. 그러니까, 할머니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는 세계로부터 어떤 응답을 얻어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아, 할머니, 그······ 음······ 아녜요.
    나는 어쩐지 나의 입술이 떨리고, 그것이 소리로 바뀌고, 마침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음성으로 전환되어 공기를 뚫고 발화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만두었다. 잠시 후 다시 무슨 말을 하려다가, 역시 그만두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다 못 가.
    얼마 후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군데군데 검버섯이 핀 진한 황갈색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방바닥을 손으로 몇 번 쳐 보였다.
    오늘 불 다 못 가.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불이 다 못 간다고요?
    나는 손으로 방바닥을 이쪽저쪽 만져 보았다. 낮에만 해도 뜨뜻한 기운이 올라오던 바닥이 차차 식어 가고 있었다. 벌써 찬 기운이 전해지는 곳이 더러 있었다.
    나무가 있어야지, 나무가.
    할머니가 문을 열고 손가락으로 마당을 가리켰다. 한쪽에 쌓인 장작들이 눈을 맞고 있었다.
    나는 장작을 가져다가 아궁이 옆에 쌓아 두고 가장 얇아 보이는 나무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장작들은 이미 눈에 젖은 상태였고, 라이터를 대고 한참 동안 불을 붙여 봐도 희미하게 타올랐다가 금세 꺼져버렸다. 라이터를 최대로 세게 해서 켜 봐도 허사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태울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하다못해 신문지 한 장도 보이질 않았다. 나는 트럭으로 가 짐칸을 열고 뭔가 태울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봤다. 평소라면 빈 박스라도 서너 개쯤 있었을 텐데 지금은 밀린 택배 박스들만 가득 실려 있었다. 이걸 태웠다간 정말이지 크게 잘못될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할머니가 방 한구석에 작은 몸을 구부정하게 접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자, 그 유난히 주름지고 얇아 보이는 발목을 보자 다시 트럭으로 가 박스를 흔들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박스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최대한 덜 중요할 거라고 짐작되는 박스를 골라냈다. 깨지기 쉬운 유리나 젖기 쉬운 책 같은 것이 나오면 난감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돌아가면 새 박스에 포장하기로 하고 주소를 따로 적어 놓았다. 뜯은 박스에서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털로 짠 장갑, 양말이 한 켤레씩 나왔다. 크리스마스 카드라니.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카드를 바라봤다. 〈사랑하는 우리 지호에게〉로 시작하는 문구가 카드 겉면에 쓰여 있었다. 카드 안에는 눈 쌓인 숲 속 한가운데에 자리한 목재로 된 이층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은은한 노란색 불빛과, 그 옆으로 3단으로 쌓아올린 눈사람이 그 불빛을 받으며 서 있는 모습 같은 것들이, 응당 크리스마스라면 그래야 할 것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나는 잠시 더 지켜보다가 박스를 찢어 불을 붙였다.
    불은 좀처럼 붙지 않았다. 결국 박스 세 개를 태우고 나서야 장작에 불이 옮겨 붙었다. 장작들이 아궁이 안에서 무거운 빛을 내며 타올랐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수맥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휴대폰을 들고 걸어 다녔다. 아주 간혹 신호가 잡혔다가 사라지곤 했다. 우연히 신호가 잡혔을 때 문자 하나가 왔다. 견인차량이 출발했다는 문자였다. 나는 초조하게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그러나 신호는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쇼? 견인 불렀수?
    네, 맞습니다.
    그렇구만. 헌데 거기 주소가······.
    견인기사가 말했고, 나는 다시 한 번 주소를 알려주었다.
    주소는 알지.
    그럼 뭐요?
    이거 어쩐대요?
    뭘 어째요?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말했다.
    집이 산 언덕배기에 있다는 말은 없었잖수?
    그게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 언덕길 올라가다 미끄러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바람에 눈 떼가 구름처럼 몰려와 몸을 덮쳤다. 핸드폰을 쥔 손등에 눈이 녹아내렸다.
    이렇게 눈이 많아서야 올라가기도 전에 차가 빠지지. 우리도 차 없으면 놀아야 된다고.
    그래서 못 온다는 말인가요?
    일단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보쇼. 제설차가 먼저 와서 눈을 치우기 전엔 불가능하니까.
    제설차가 온답니까?
    나도 모르지. 시에서 하는 일인데.
    그럼 난 어떻게 하라고요?
    그거야, 허허······.
    비웃음 같은 헛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신호는 끊어졌고, 다시 서비스 불능 메시지가 떴다. 때마침 배터리까지 다 닳아버리면서 통화는 완전히 끝이 났다. 누가 강원도 산골에 갇힌 택배기사 따위를 기억한단 말인가. 이제 정말, 끝이었다.
    나는 비를 상상한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긴 빗줄기, 어둠 속에서 눈을 향해 쏟아지는 비. 개가 벌떡 일어나 짖기 시작하고······ 소가 눈을 껌뻑거리고······ 나는 비 내리는 장막 저편을 지켜본다. 눈이 녹고 있다. 더러운 물을 꾸역꾸역 쏟아내면서 눈이 녹고 있다. 나는 얼른 차 열쇠를 꺼내 남은 박스들을 주워 담는다.
    할머니, 이제 가보겠습니다.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박스를 던져 넣고 트럭에 올라타면 얼어붙어 있던 핸들의 차가운 감각이 손 전체에 저릿하게 전해져 온다. 그런데 도대체 어느새 우리를 부수고 달려 나왔는지 소가 차창 밖으로 굵은 힘줄이 솟은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혓바닥은 점점 더 길어지더니 차 유리창까지 다가와 유리를 핥아댄다. 차 유리가 끽끽 소리를 내며 종이처럼 찢겨 나간다. 나는 황급히 시동을 켠다. 몇 번인가 그르릉 소리를 내던 엔진에 열이 붙는다.
    그러나 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미동도 하지 않는 차를 타고 나는 우두커니 차창 밖을 응시한다. 라이트가 거대한 눈밭을 비추고 있다. 긴 혓바닥이 내 몸을 휘감고 나를 공중에 띄운다. 나는 트럭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간다. 푹푹 꺼지는 발이 나를 물귀신처럼 잡아끈다.

 

 

    잠시 후 나는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작은 호롱 안에 켜놓은 낮은 불이 방 안을 밝혔다. 벽에 비친 할머니의 그림자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나는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나로서는 할머니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너무나 작아서 알아차리기조차 힘든 어떤 존재가 그 작은 세계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끊어질 듯 말 듯 미약한 숨을 내쉬면서. 아주 작은 소리만 내어도 집 전체에 균열을 일으킬 것처럼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작고, 고요했다.
    그런데 할머니.
    응?
    택배 받으신 거 뭐예요?
    할머니는 무슨 얘기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제가 갖다 드린 상자요, 서울에서 온 거.
    할머니가 한참 생각한 끝에 말했다.
    몰라.
    나는 방 한구석에 있던 박스를 가져와 테이프를 뜯어냈다.
    안에 든 것은 전기밥솥이었다. 요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최신형 전기밥솥이 이 집에 어울리지 않게 거기 들어 있었다.
    할머니, 이거 밥솥이네요.
    박스 안에는 카드도 하나 들어 있었다.
    〈할머니 메리 크리스마스〉
    어린애가 쓴 듯한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할머니, 이거 서울에서 할머니한테 온 카드예요. 손자가 카드를 써서 보냈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 말이 그녀에게 어떤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킬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는, 할머니 내일 모레면 성탄절이에요. 뭔지 아시죠? 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굽은 등은 좀처럼 돌아설 기미가 없었다. 나에게는 벽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었다.
    밤 먹어.
    갑자기 돌아선 그녀가 내 앞으로 깐 생밤을 들이밀었다. 무슨 말을 할 겨를도 없었다. 하얀 생밤 냄새가 코끝을 울렸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등을 돌렸고 나는 소처럼 우두커니 앉아 생밤을 씹으며 그녀의 앙상한 그림자가 천천히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두 평 남짓한 재래식 온돌방에서 노인과 젊은이 하나가 아무 말 없이 밤을 까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여름 내 모아 둔 곡식을 겨울철에 꺼내먹는 설치류 가족이 이런 모습일까. 나는 입안에서 생밤의 옅은 단맛이 퍼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할머니에게 전기밥솥의 갖가지 버튼이 뜻하는 바를 설명해 보려고 했다. 백미, 현미, 잡곡으로 나뉘는 메뉴 버튼을 가리켰다. 취사 버튼을 두 번 누르면 쾌속취사로 작동되는 원리가 할머니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쩐지 불필요하게 많은 버튼이 할머니를 혼란스럽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나는 다시 한번 천천히 같은 것을 반복해서 알려주고 할머니가 직접 버튼을 눌러 작동하는 모습을 확인하도록 해주었다. 삑삑 소리가 나며 불이 들어오는 버튼을 눌러 볼 때마다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내가 장작불로 덮인 방에 몸을 누이고 있을 때, 내 자식은 나에게 무엇을 보내올지를 떠올렸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올까. 최신형 전기밥솥을 보내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메시지를 보내올까. 나는 다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버튼을 눌러 보고 있었다. 밖에서 꾹꾹 눈 쌓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서동욱

작가소개 / 서동욱

1985년生. 문예창작학 석사.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