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식물

[단편소설]

 

 

인물과 식물

 

 

류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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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소형은 더 이상 타냐를 생각하지 않았다.
    엘우디, 컬럼나리스, 이본느, 반펠츠블루…… 2년생에서 3년생 사이의 사이프러스 묘목들과 씨앗부터 키워 아직 목질화 되지 않은 잣나무와 가문비나무 새싹들. 그 바늘처럼 가느다란 잎들이 타냐의 빈자리를 촘촘히 메워 주었으니까. 하늘로 솟구치는 줄기와 바람에 가지런히 일렁이는 이파리들. 어둔 밤 멀리서 바라보면 교회의 지붕인지 원추형 교목인지 언뜻 구별되지 않는 첨탑 같은 실루엣. 그런 웅장한 생물의 유년을 창가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벅차고 충만한 일이었으니까.
    15층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날, 귀중품은 미리 챙겨 두라는 이삿짐센터의 말에 소형은 침엽수 화분들만 따로 차에 실었다. 나중에 저것들을 다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원재가 물었을 때, 소형은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땅으로 옮겨 심어 줘야지.
    유묘 때는 성장이 멎은 듯 더디게 크다가 십 년쯤 지나면 화분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란다는 침엽수의 특성을 어디선가 읽은 날, 소형은 2년생 서양측백나무 한 그루를 집에 들였다. 나무젓가락을 흙에 푹 꽂아 둔 것 같은 볼품없는 아이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정말이냐, 너도 십 년만 버티면 노지의 위압적인 거목처럼 무섭게 솟아오를 수 있는 거냐. 창문 사이로 불어든 바람에 여린 가지와 뾰족한 잎들이 반응하듯 살랑살랑 흔들렸고, 순간 주변 공기가 맑고 서늘하게 바뀌었다. 소형은 눈앞에 펼쳐진 낯선 공간을 가만히 내다 보았다. 사람이 사라진 깊은 숲 속, 부드러운 흙에 발을 박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쓰지 않고, 오로지 빛과 물과 바람에 대해서만 골똘히 생각하는 나무가 되어서.

 

    고질적인 불면에 두 시간 이상 못 자던 무렵, 시차가 열다섯 시간 떨어진 곳에 사는 지원이 카톡으로 원예 활동을 추천했다. 식물을 키우면 해를 볼 일이 많아서 잠을 푹 잘 수 있다고, 언젠가부터 꿈에 인간 아닌 식물이 나와서 좋다고 했다. 지원은 식물이 인격을 갖고 등장하는 지루한 꿈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말을 끊고, 그래서 뭘 키우느냐고 물었더니 미키와 마일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뭐? 미키? 마일리?
    미키는 상추고, 마일리는 깻잎이야.
    소형은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입만 크게 벌린 동물 이모티콘을 메시지 창에 찍어 보냈다. 그쪽 정신과 의사가 추천한 취미 활동이었다는 설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칼정장 차림으로 여의도에 출퇴근하던 반짝이는 금속 같던 지원이 상추와 깻잎이라니. 쌈 채소에 이름을 붙이고 흙을 만지고 있다니. 결혼이 발단이었나. 잘 다니던 증권회사를 때려치우고 만난 지 두 달 된 남자와 미국 몬태나 주로 들어가더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문득 지원을 처음 만난 중학교 3학년 때, 딸을 잃고 우울증 약을 먹던 담임선생이 떠올랐다. 씨앗이 빠져나간 마른 종피 같던 눈, 감각이 둔해진 듯 힘없이 벌어진 입. 학급 임원이었던 둘은 함께 담임의 병문안을 다녀오면서, 도대체 정신과 약은 무슨 기능을 하는 거냐며 철없는 성토를 하기도 했다. 그해 다시 몸을 일으켜 돌아온 담임은 늦가을 학교 화단 한쪽에 마늘같이 생긴 야구공만 한 구근 몇 알을 심었다.
    '꽃이 자라고 있으니 건드리지 마시오.'
    나무푯말에 유성 매직으로 경고문을 적는 담임을 보고 지원이 중얼거렸다.   
    아직 많이 아프신가 보네.
    아마 학생들이 거의 하교한 늦은 오후였을 것이다. 소형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화단을 정리하는 담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흙에 박힌 자갈을 골라내고 죽은 풀을 뽑고 약하게 물을 뿌려 땅을 다지는 모습을. 늘 그렇고 그런 얼굴과 걷어붙인 소매 아래 드러난 그을린 팔, 쪼그려 앉을 때마다 근육이 도드라지는 허벅지. 대체 어디가 아프다는 걸까. 담임 입으로도 이제 괜찮아졌다고 교단에 서서 말하기까지 했잖아. 열여섯의 소형은 지원이 괜히 알은척하는 거라고, 친한 척하는 거라고, 편애 받는 학생의 무의식적인 과시라고 여겼다. 다음해 화단에 우두커니 선 커다란 보라색 꽃을 보기 전까지는.

 

    소형은 지원의 권유를 한참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마트 앞 꽃 트럭에서 그 새벽의 카톡 대화를 기억해 냈다. 손톱만 한 연두색 다육질 잎에 채도 높은 분홍 테두리를 두른 앙증맞은 잎. 한 포트에 삼천 원인 그 낯선 풀을 본 순간 소형은 이 아이가 어떤 새로운 시작점이 될 거라는 막연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울리는 이름도 바로 떠올랐다. 안톤 체호프의 「검은 수사」에 나오는 원예가 예고르 세묘니치의 딸, 타냐. 근심이 깃들어 있는 듯한 창백하고 자그마한 잎사귀가 묘하게 타냐라는 인물과 겹쳐 보였다. 좀처럼 외출하지 않는 소형이 원예 단지까지 버스를 타고 가 화분을 사오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이 타냐에게는 분명 있었다.
    식물등이라든가 가습기, 에어서큘레이터 같은 장비와 각종 영양제와 살충제, 살균제 등을 종류별로 구비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난 뒤였다. 어린 침엽수를 하나 둘 들이기 시작할 무렵, 때 아닌 식물의 성장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거듭하게 되면서 막연하기만 했던 먼 미래도 그려 보기에 이르렀다. 소형은 종종 창가에 서서 중얼거렸다. 십 년 안에 정원 딸린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야지. 우선 담벼락 앞에 사이프러스를 두르고, 그 앞에 여러 종의 수려한 침엽수를 줄 세우고, 정원에 앉아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는 수세를 감상하며 늙어 가야지.
    물론 그 일이 가능하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지금 이사 온 20년 된 아파트도 내 집이 아닌데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내 땅이라니. 전세 대출을 갚기 전에 계약 만료일이 돌아오고, 다시 대출을 갚기 전에 계약 만료일이 돌아오는 사이클을 성실히 따라가다 보면 침엽수 뿌리가 화분 찢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었다. 생각이 현실로 돌아오면 소형은 침울해졌다. 현실이 아닌 먼 미래로 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의 수명은 인간의 수명보다 몇 십 배, 아니 몇 백 배나 더 길다고 하니까. 안면도 없는 미지의 존재에게 시간과 돈과 마음, 즉 인생을 할애하고 싶지 않아 자연스레 딩크로 살게 된 것, 그래서 아이가 없고, 아이의 아이도, 아이의 아이의 아이도 없을 거라는 사실이 아쉬운 것은 오로지 화분 속 아기 나무의 긴 생을 염려할 때뿐이었다. 그 말을 진지하게 믿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2.
    처음 이 15층 아파트가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왔을 때, 소형은 의아했다. 시세보다 말도 안 되게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동네에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매매가가 담합한 듯 오르고, 실거래가 없어 전세가도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가격의 급전세라니. 부동산 측의 설명을 들어도 수긍이 갈 듯 말 듯했다. 아무리 세입자가 사정이 생겨 계약 만료 전에 나가게 되었다지만……. 사정이란 것이 무얼까. 소형은 언뜻 떠오른 한 가지 생각에 진지하게 빠져들었다. 죽음. 그것도 소문나면 집값이 떨어질 형태의 죽음. 그래서 주인도 이웃도 부동산업자도 함께 작당하고 쉬쉬하는 그런 죽음. 대단지 아파트 속 홀로 염가를 자처한 미심쩍은 매물 앞에서, 소형은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재는 서둘러 집을 보고 싶어 했다. 이런 조건이 아니고서야 우리가 어떻게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며 어지간하면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세 들어 있던 쓰러져 가는 빌라를 하루바삐 공가로 비워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좁은 골목으로 매일 이삿짐 차가 드나들었다. 쓰리엠 귀마개 없이는 노트북을 펼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전 내내 심란한 마음으로 부엌 냉장고 앞에 기대어 앉아 있던 소형은 반차를 내고 퇴근한 원재를 따라 주섬주섬 외출복을 걸치고 나섰다.
    남자 혼자 일 년쯤 살았다는 아파트는 석연치 않은 방식으로 단출했다. 냉장고는 있는데 세탁기는 없다든지, 전자레인지는 있는데 가스레인지는 없다든지, 짐을 반쯤 뺀 건지 아니면 거의 살지 않았던 건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하루에 한 장씩 뜯어 쓰는 일력은 반년 전 멈추어 있고, 식탁 위 어수선하게 놓인 조미 김 몇 봉지는 유통기한이 몇 달쯤 지난 것이었다.
    사람 살았던 집 맞아요?
    부동산 실장에게 소형이 묻자, 실장은 그럼요, 다만 출장이 잦은 분이라 집을 많이 비우셨다네요, 보세요, 지금도 출장 중이시잖아요. 대답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눈은 그대로인데 입 꼬리만 바짝 당겨 올린 표정이었다.
    아…… 그렇군요.
    소형은 속아 주는 척했다. 하지만 싱글 돌침대와 닥스 베레모, 청자 화분에 심겨 있는 난초와 소나무 분재들…… 이 집에 살았다는 남자는 아마도 해가 쨍하게 들어오는 한낮의 고즈넉한 거실에 앉아 난초 잎을 닦고, 돋보기안경을 쓰고 테두리가 바랜 고서를 몇 장 읽다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고 초저녁에 잠드는 노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바쁘게 출장 다닐 나이 대는 아닌…… 소형이 한 노령의 인물을 상상하며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물을 내려 보고 온수를 틀어 보는데, 한참 다른 방을 둘러보던 원재가 들뜬 목소리로 소형을 불렀다.
    뭔데 그래?
    수도꼭지를 잠그고 원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 소형은 묘하게 달라진 공기에 소름 돋은 팔뚝을 문질렀다. 방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벽에 흔한 못 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 가구가 닿았던 얼룩조차 없는 소독한 듯 깨끗한 방. 소형은 이 집에 살던 세입자가 방 하나를 아예 쓰지 않았다거나, 이 방만 먼저 짐을 뺐다고 추측하는 대신, 이 방이었구나, 생각했다. 이 집에 무슨 일이 났었더라면, 장소는 분명 이 방이었다. 흰 방, 하얀 방, A4용지로 도배한 듯 꺼림칙한 빈방.
    소형은 늘 흙을 만져 까슬해진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창가로 향했다. 원재가 기다렸다는 듯 창문을 열어젖혔다.
    참 높지?
    그럼, 높지. 십오층인데.
    바람에 머리카락이 마구 나부껴 소형은 손목에 차고 있던 고무줄로 머리를 바짝 묶어야 했다. 먼지로 뒤덮인 뿌연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파트는 지하철역에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십 분쯤 올라온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언덕 아래로 재개발을 준비하는 풍경이 광활하게 내려다보였다. 제1구역부터 제13구역까지. 이 어중간하게 낡은 아파트 단지만 제외하고 어마어마하게 넓은 터가 빈집 무덤이 되었다. 이미 공사가 시작돼 크레인이 들어오고 철근을 올리는 구역도 눈에 띄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뚱땅뚱땅 소리에 원재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저 부지에 전부 아파트 들어서면, 여기는 좀 떨어질까?
    떨어지긴. 오히려 오르지.
    그래도 새 아파트보단 싸겠지? 그때 대출 끌어 모아 사면 되겠다.
    여길 사겠다고? 여기를?
    재건축 들어갈 거 아냐.
    아니 그게 언제가 될 줄 알고.
    그런 게 아니고서야 우리가 외벌이로 어떻게 돈을 모으겠어? 부동산이 아니고서야 우리가 방법이 있어?
    으, 응.
    외벌이라는 단어에 소형은 입을 닫았다. 도대체 글이란 걸 써서 돈다운 돈을 가져와 본 적이 없다 보니 외벌이란 말을 들으면 위축되고 눈치가 보였다. 처지가 또렷이 자각되어 헛구역질이 나왔다. 소형은 바람을 맞아 불그스름해진 눈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아직 부수지 않은 낮은 집들 사이로 곧 잘릴 나무들이 삐죽 솟은 동네. 그 안엔 소형과 원재가 살던 집도 있었다. 멋모를 때 둘이서 발품 팔아 가며 구한 신혼집. 집주인이 보일러를 고쳐 주지 않아 사 년간 미지근한 물로만 씻어 온 낡은 빌라. 주차 문제, 택배 문제, 쓰레기 문제로 이웃과 언성을 높인 적도 몇 차례 있었다.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을 문제라며 원재는 종종 한숨을 내쉬곤 했다.
    저, 사장님, 집 보러 오겠다는 전화가 자꾸 오는데요, 어떻게, 마음의 결정은 좀 하셨을까요?
    다른 방에서 전화를 받던 부동산 실장이 들어와 물었고, 소형은 당장 가계약금을 입금하겠다는 원재를 차마 말리지 못했다. 끌어 모을 수 있는 한계치를 생각하면 사람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 하더라도 트집 잡을 수 없는 매물이기는 했다. 부엌에 창문이 없는 방 한 칸짜리 빌라에서 스무 평 아파트로의 이사였으니까. 게다가 넓은 창으로 해가 쏟아져 들어오는 남동향의 베란다와 드디어 갖게 될 '자기만의 방'까지. 가드닝과 글쓰기, 어쩌면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집을 화분이라고 생각해 보자. 식물이 죽어 나간다고 화분의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깨끗이 흙을 닦고 또 다른 식물을 담으면 화분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주곤 하지 않았나. 타냐가 살던 화분도 그랬다. 통통한 아기 천사 다섯이 포도 넝쿨을 두른 살구색 이태리 테라코타 토분. 멋모를 때 원예 단지까지 버스를 타고 가 흥정도 하지 않고 집어 온 십이만 팔천 원짜리 식물의 집. 사실 그 토분은 서양측백나무인 써니스마라그에 더 잘 어울렸다. 타냐를 비운 그 공간에 써니를 옮겨 담자 토분은 그제야 꼭 맞는 주인을 찾은 듯 생기를 띠었으니까. 아기 천사들의 포동포동한 살결이 금방이라도 만져질 듯 부드럽게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타냐가 심겨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산뜻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3.
    아마 침엽으로 관심이 조금씩 기울어 가던 무렵이었을까.
    어느 날 타냐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 보여 잎을 들추어 보았더니 뒷면에 까만 진딧물이 붙어 있었다. 수십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타냐의 무언가를 빨아먹고 있었다. 소형은 소리를 지르고 주저앉았다가,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집을 나섰다. 오월의 저녁이라 늦도록 문 연 꽃집은 많았는데 그날따라 식물용 살충제를 파는 곳은 없었다. 결국 일일이 핀셋으로 진딧물을 잡아 주고, 식초를 희석한 물로 한 장 한 장 잎을 닦아 주고, 밤새 부채질을 해주었다. 며칠 서늘한 그늘에 두고 요양시켜 가까스로 진딧물은 퇴치했지만, 그 일을 겪은 타냐는 더 이상 이전의 타냐가 아니었다.   
    앙증맞은 분홍빛 띠가 서서히 흐려지더니, 그늘에서 웃자란 줄기들이 녹은 치즈처럼 흉하게 넝쿨졌고, 토분 테두리에 닿는 부위마다 짓물러 징그러운 흉터가 생겼다.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던 특유의 기민한 속성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 잎을 오므리고 해가 뜨면 잎을 활짝 펼치던 그 신비로운 움직임은 분홍색 띠를 두르고 있을 때나 예뻤지, 물 빠진 녹색이 되어버린 뒤로는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무엇보다 늘 사랑스럽다고 여겨 왔던 통통한 작은 잎이 어느 순간 돌나물이나 톳과 겹쳐 보이면서 곧 삶아서 무쳐 먹을 채소를, 극단적으로 말하면 언젠가 도축할 가축을 집 안에 들여 키우는 듯한 껄끄러운 기분마저 들게 했으니까.
    소형은 그제야 타냐에 대해 제대로 찾아보았다. 두 종류를 개량해서 만든 원예종. 남아메리카와 동아시아. 생육 환경이 극과 극인 종을 교잡하다 보니 관리가 까다로워 오래 키우는 사람이 없었다. 다 자라도 이십 센티미터나 될까. 한해살이 식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이 실내 가드너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순간적으로 눈길은 끌지만 뒷감당이 안 되는 식물, 한철 포트째 두고 감상하다 겨울 전 처분하는 식물. 어쩌면 타냐의 꽃말 '순진'은 타냐를 개발했다는 원예가가 지었을지도 몰랐다.
    하긴 순진하기라도 해야지. 뭘 모르는 척이라도 해야지. 그래야 동정이라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니.
    소형은 머릿속에 맴돌던 말을 무심코 내뱉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언젠가부터 타냐가 듣지도 보지도 못할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저 애는 식물이니까, 식물일 뿐이니까, 중얼중얼 되뇌면서. 흙에 뿌리를 박고 있어 홀로 떠날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도 없는 타냐 앞에서 상처 될 말을 많이 했다. 역시 타냐는 식물이 맞아서, 소형이 그러거나 말거나 생존에만 골몰했다. 학대에 가까운 방치에도 좀처럼 죽지 않았다. 고의로 물때를 놓쳐도 공중 습도만으로 버텼고, 침엽 유묘가 반 이상 죽어 나가던 폭염에도 익거나 퍼지지 않았다. 그저 더 처참해진 몰골로 질기게 살아남을 뿐이었다.
    여름이 끝나 갈 무렵, 소형은 창문을 열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해가 쨍한 한낮인데도 타냐가 잎을 펼치지 않아 처음엔 드디어 죽었구나, 생각했다. 환자의 코밑에 손가락을 대보는 심정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더니, 피기도 전에 시든 꽃봉오리처럼 잔뜩 웅크린 채 잎마다 방울방울 이슬을 달고 있었다. 분명 일액현상이 없는 품종인데 습도 22%의 건조한 날씨에 잎맥에서 물방울을 뽑아내고 있었다. 청승맞게도 자신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십이만 팔천 원짜리 아기 천사 토분 안에서.   
    소형은 참을 수 없이 괴롭고 불편해져 화분을 집어 들었다. 집 밖으로 나가 몇 십 미터쯤 걸어 동사무소 근처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을 때를 틈타 회양목 다섯 그루가 늘어선 작은 화단 뒤편에 화분을 뒤집어엎었다. 과자 껍질과 담배꽁초가 버려진 그늘지고 오염된 땅에 타냐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화분 모양으로 굳어진 지렁이 같은 허연 뿌리 덩어리가 빛과 공기에 노출되었다. 흙은 일부러 덮어 주지 않았다. 어차피 겨울을 못 넘길 한해살이 식물이니까. 집으로 돌아와 화분 속에 달라붙은 잔뿌리를 칫솔로 긁어내며 헛구역질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새삼 매스꺼워서, 인간이어서 가능한 오만이 역겨워서, 그걸 깨닫게 해준 타냐가 원망스러워서, 헛구역질을 쏟아낸 것이 타냐와의 마지막 사건이었다.

 

 

4.
    원재가 출근하고 없는 15층 아파트에서, 소형은 냉동 피자를 데워 먹고 커피 한잔을 내려 책상 앞에 앉았다. 하얀 방, 무슨 일이 났다면 이곳일 거라 확신했던 꺼림칙한 빈방은 자연스레 소형의 서재가 되었다. 큰 방엔 침대를 넣어야 했고 작은 방엔 책장이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물론 전보다는 나았다. 귀마개를 하고 음식 냄새가 고인 부엌에서 노트북 펼치는 생활은 끝낼 수 있었으니까. 다만 책상 앞에만 앉으면 표백한 듯 새하얀 벽지가 자꾸만 불쾌하게 눈길을 빼앗았다. 한참 넋 놓고 벽을 바라보다 소설로 돌아오면 숨이 턱 막혔다. 빼곡히 들어찬 활자들이 흙 속에서 꿈틀대는 벌레로 보였다고 해야 할까. 화분에 알을 까고 뿌리를 갉아 먹는 뿌리파리 유충 같은 벌레. 백스페이스로 쓸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징그러운 활자들이 인물이 되어 밖으로 기어 나왔다. 쓰다 만 소설, 써놓은 소설, 모조리 찾아내어 백스페이스를 눌러야 간신히 정체 모를 두려움이 진정되었다. 소형은 빈 문서만 남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책상 위에 머리를 박았다. 어떤 수상한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마를 찧었다.
    툭, 툭, 투둑, 툭.
    불규칙하게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어딘가를 치는 소리. 그 툭, 툭, 사이에 소형아, 속삭이는 소리가 엷게 깔렸다. 소형은 책상에서 이마를 떼지 못한 채로 청각만 곤두세웠다. 상황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듯했다. 천장에 매달린 무지근한 몸이, 흔들흔들 벽을 두드리는 늘어진 발이, 소형아, 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까만 입술이. 소형은 문득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오 년쯤 홀로 지내던 그가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하던 날, 부탁받은 물건을 챙기러 그의 집에 들렀다가 한복 배자에서 금 단추 다섯 알을 뜯었다. 묵직한 순금이었다. 그날 종로3가에서 단추를 팔고 용산으로 넘어가 새 노트북을 장만했다. 역시나 일정한 수입 없이 습작하던 시절, 은퇴한 부모와 직장인 친구에게 오만 원, 십만 원씩 구걸하던 무렵의 일이었다. 그때 자괴감으로 한 번 목을 매었다. 천장 벽지가 뜯겨 도배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던 해프닝. 소형은 조심스레 노트북을 덮고 뒤를 돌아보았다. 망상이었을까. 등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 천장엔 무엇도 매달려 있지 않았다. 책상에 손을 짚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난 뒤에야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 옆 파이프에 빗방울이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였다. 비였다니, 빗소리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쇠약해졌다니. 소형은 땀으로 축축해진 이마를 닦으며 거실로 나왔고, 창문과 방충망을 열어젖혔다. 들이치는 비를 맞으며 침엽수 화분들을 베란다 걸이대 위에 올렸다. 빗물 받을 양동이도 화분 옆에 얹었다. 천둥번개를 기다렸다. 수돗물만 먹던 화분 속 아이들에게는 빗물이 보약이었다. 번개의 강한 에너지에 질소가 충분히 녹아든 빗물이어야 했다. 소형은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정보를 되새기며 기억과 망상을 내리눌렀고, 오로지 번개를 기다리는 일에만 골몰하려 했다. 하지만 비는 이내 그쳤고, 대신 현관 벨이 울렸다. 벨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택배요!   
    주문한 것도 없는데 무슨 택배? 원재가 시켰나? 소형은 현관 앞에 서서 잠자코 기다리다 택배기사가 엘리베이터 타는 소리까지 듣고서야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납작한 비닐 포장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져 있었다. 손대고 싶지 않아 쪼그리고 앉아 눈으로 주소를 살폈다. 동, 호수는 맞는데 이름이 달랐다. 김달진. 전 세입자의 이름인가? 겉봉에 '사람과 산'이라고 적힌 것을 보아 정기 구독하던 잡지인 듯했다.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잡지사까지 부고가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소형은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나 발끝으로 물건을 밀었다. 현관에서 조금 떨어진 계단 쪽으로.
    열 시가 넘어 퇴근한 원재는 죽은 이의 택배를 태연히 집 안으로 들였다.
    종일 집에서 뭐 했어? 택배도 안 챙기고.
    그걸 왜 가지고 들어와. 우리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 것이 아니니 더 챙겨 놔야지.
    대체 그런 걸 누가 가져간다고.
    이것도 한 장 한 장이 다 돈이고, 다 그놈의 나무 죽여 만든 거야. 전 세입자가 곧 찾으러 오지 않겠어? 나중에 변상할 일 생기면 어쩔 거야?
    원재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일이 변상이라는 듯 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꾸했고, 기어이 죽은 이의 물건을 집 안으로 들였다. 그 뒤로 김달진 이름이 찍힌 택배는 몇 번 더 왔다. 월간 붕어, 난과 생활, 낚시 춘추…… 택배는 주로 취미와 관련된 월간지나 계간지였는데, 김달진 이름이 적힌 고지서나 브로셔 같은 것들과 함께 우편함에 꽂혀 있기도 했다. 원재는 그 물건들을 모조리 챙겨와 신발장 옆 철제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왜 전 세입자는 주소지 변경을 아직도 하지 않는지, 어르신이라서 주소 변경 통합 신청을 모르는 것인지, 몇 번이나 투덜대면서도 그것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집 안으로 들였다.

 

    몇 주가 흐르고, 침엽수들의 촘촘한 잎 사이사이를 붓으로 털어 주던 오후였다. 누군가 벨을 눌렀고, 소형은 평소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모든 택배는 배송 요청 사항에 '부재 시 현관 앞'이라고 짧게 적어 두고 집에 없는 척했기에 여느 때처럼 그냥 던져두고 갈 줄 알았다. 몇 번 더 벨이 울려 마지못해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더니, 화면에 빨간 동그라미가 떠올랐다. 고개를 푹 숙인 빨간색 엠엘비 모자의 정수리였다. 상대는 전에 살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살던…… 사람이요?
    소형은 수화기를 든 채 잠시 심호흡했다. 아니 그럼, 전 세입자가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 현관 걸쇠를 빼지 않은 채로 문을 한 뼘만 열자,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갈라지는 쇳소리로 물었다.
    혹시 택배나 우편물 온 거 있습니까?   
    아…… 택배요. 네, 있어요, 택배.
    소형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철제 선반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챙겨 현관 걸쇠 틈으로 하나씩 둘씩 건넸다. 남자는 군소리 없이 일일이 물건을 받아 천 가방에 넣더니 등을 돌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소형도 바로 현관문을 걸어 잠갔다. 신발장에 기대어 가늘게 한숨을 내쉬는데 이상하게 속이 답답했다. 왜 거슬리던 물건을 치워버린 개운함보다 석연찮은 찝찝함이 앞설까. 텅 빈 철제 선반을 보고서야 묘하게 어긋난 문제를 깨달았다. 주름 없는 매끈한 손과 늘어지지 않은 날렵한 하관, 맨투맨 티셔츠에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 많이 잡아도 삼십대 중반이었다. 어째서 젊은 남자가 왔을까? 돌침대, 닥스 베레모, 식물과 화분에 대한 취향, 월간 붕어…… 단순한 편견으로 치부하기에는 표지가 지나치게 많지 않나? 소형은 다시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남자가 탄 엘리베이터는 막 문이 닫히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아파트 입구의 버스정거장까지 가서야 남자를 불러 세울 수 있었다. 소형은 숨을 몰아쉬며 입을 뗐다.
    저, 실례지만 설마해서 그러는데…….
    그런데요?
    김달진 본인 맞으세요? 생각해 보니 제가 확인도 안 하고 덜컥 물건을 드렸어요.   
    남자는 푹 꺼진 얇은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아니요, 하더니 덧붙였다.   
    제 친구 이름입니다.
    친구? 친구요? 그럼 그 친구라는 분은 어디로 가셨는데요?
    소형은 대뜸 큰 소리로 묻고, 순간 멈칫했다. 새댁, 어디로 가는데? 낡은 빌라에서 짐을 빼던 날, 아직 나갈 집을 구하지 못한 이웃 몇이 소형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좋은 동네로 가느냐고 물었다. 이사 갈 집에 대해 떠들고 싶지 않아 둘러댈 말을 찾는데, 생뚱맞은 질문이 불쑥 들어왔다. 혹시 생리가 불순이냐, 시험관은 해봤느냐, 신랑과는 같은 집으로 가는 것이 맞느냐, 등의 자기들끼리 쑥덕여 오던 말들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냈다. 소형은 아연해서 잠시 듣고만 있다가 가까스로 대꾸했다. 굳이 저까지 나서서 번식할 필요 있나요? 지구에 인간만 칠십억이 넘는다는데.
    그런데 그 친구라는 분은 어디로 가셨느냐니…… 소형은 자신이 그런 질문의 도입부를 꺼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무례를 자신이 학습하게 되었을 줄은. 정차했다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며 입술 각질을 만지작거리는데, 남자가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더 좋은 곳으로 갔어요.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힘없이 웃어 보였다. 힘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웃으려다 실패한 얼굴 같았다.
    아아, 그러셨군요.
    소형은 아아, 그러셨군요, 뒤에 마땅히 이을 말을 찾지 못해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렀다. 땀으로 축축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남자의 퀭한 미소를 곱씹었다. 다시 안 볼 사람 앞이어서 오히려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어떤 그늘이 담긴 미소를.

 

    하필 아득한 그 얼굴이 다시 어른거렸다. 학교 일에도 학생들에게도 무성의했던 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선생. 담임은 늘 그런 얼굴이었다. 단 한 명 지원에게만은 그렇지 않았지만. 지원에게만 내보이는 담임의 모습은 어린 소형의 눈에도 티가 났다. 그냥 공부 잘하는 모범생을 단순히 편애하는 선생들과는 결이 달랐다고 해야 할까. 각 반에 한 명만 대표로 나가는 백일장을 앞두고 담임은 소형을 따로 불러 물었다.
    너는 글을 왜 쓰려는 거야?
    저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이 보기에는 지원이가 대신 나가는 게 어떨까 싶어서.
    네?
    아니, 글 쓰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이력으로 정당히 나가는 건데…… 소형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지원이야말로 공부도 잘하고, 부반장이 아닌 반장이고, 미술이라든가 체육이라든가 못 하는 것이 없는데, 어째서 글까지 쓰겠다는 걸까. 선생의 행동도 지원의 욕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반 학생 하나가 불참해 결국 지원도 백일장에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소형은 그 소식을 전하던 순간 담임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저 사람에게도 저런 표정이 있구나, 저렇게 생기 넘칠 때도 있구나, 싶어서.       
    어느 날 종례를 앞두고, 담임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들렀다가 알게 되었다. 책상에 출석부가 보이지 않아 서랍을 열었는데 그 안에 여권만 한 크기의 나무 액자가 눕혀져 있었다. 액자 속 또래 아이, 담임이 3학년 반을 맡기 전 죽었다는 중학생 딸. 사진 속 그 애는 사풋 웃고 있었다. 그 애도 지원과 같은 둥글둥글한 커트 머리에, 동공이 사라지게 눈꺼풀을 접고 웃는 눈이 있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소형은 담임의 유난한 편애의 인과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부당하다는 생각을 오히려 굳혔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할 선생이, 세금으로 월급 받아 가는 교육공무원이 공과 사를 구별 못 하고 저래도 되는 거야?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인물의 슬픔과 혼란을 상상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간 학교에 선생은 없었다. 애초에 그해 계약된 3학년까지만 맡고 그만두기로 했다고. 교무실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다 화단 한쪽에 우두커니 선 보라색 꽃을 보았다. 소형의 키만 한 줄기에 자그마한 꽃 수백 개가 방사형으로 피어 마치 둥그런 사람 머리 같은 꽃을. 소형은 푯말이 한 문장에서 한 단어로 바뀐 것을 보았다. 알리움. 선생은 떠나고 그가 심어 둔 알리움이라는 꽃만 남은 학교에서, 소형은 자신이 너무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았다. 딱히 그럴 만한 일이 없었는데도 감정을 되짚었다. 현실감 없이 섬뜩하고 아름다운 꽃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가까스로 알게 되었다. 이유 없이 담임을 좋아했다는 것을. 액자 속 죽은 딸의 사진을 훔친 것도 그 때문이었음을.

 

    소형은 그날 자정 넘어 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녘 가끔 카톡만 주고받다 전화를 했더니 지원은 놀란 목소리로 받았다.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 그게 네 목소리여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냐며 다그치듯 물었다.
    무슨 일은.
    소형은 정말 이렇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 일도 없다고 했고, 다만 최근에 이사했다, 드디어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 등의 소소한 근황을 전하다가 문득 궁금해진 것을 물었다.
    근데 미키와 마일리는 잘 지내?
    미키와 마일리?
    상추랑 부추 말야.
    아, 그거 뜯어 먹은 지가 언젠데.   
    이제는 없는 거야?
    요새는, 요샌 도끼 게임을 해. 집에서 몇 마일쯤 운전해 가면 도끼 게임장이 있거든. 두 시간에 칠십 불, 그걸 내고 과녁에다 도끼를 던져 맞추는 게임인데…….
    거기까지 얘기하고 지원은 말을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기라도 한 듯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뭔데? 내가 지금 미국 갈까? 당장 비행기 표 끊어?
    정적을 깨고 소형이 묻자, 별안간 수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형은 깜짝 놀랐다. 지원이 울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잘 깎은 금속 같던 지원이. 간헐적으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휴대폰을 들고서, 소형은 그제야 지원이 많이 아팠구나, 짐작했다. 매번 자신의 마음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해서 좀처럼 눈치 채지 못했다. 병원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할 때도 상추와 부추 이야기로 에둘러 말하던 지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도끼는 여기서 무기도 아닌 거야.
    지원은 하다 만 이야기를 마저 했고, 소형은 그렇지, 도끼는 무기가 아니지, 그냥 나무를 패는 연장일 뿐이지 무기라고 할 수는 없지, 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원과 통화를 마치고, 소형은 아직 많이 아프신가 보네, 하고 무심히 읊조리던 열여섯의 지원을 떠올렸다. 키 큰 초식동물처럼 긴 목과 곡률이 깊어 유난히 반짝이던 눈. 학교 화단에 구근을 심고 있는 한 인간의 뒷모습만 보고도 바로 마음을 알아본 아이. 지원은 담임이 아니었더라도 편애 받을 수밖에 없는 학생이었다. 소형은 그때로 다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모를 것이었다. 백일장을 치르는 서오릉의 느티나무 아래서, 소형은 결국 원고지를 탁, 내려 두고 물었다. 넌 어차피 놀기만 할 거면서 담임한테 왜 그런 말을 했냐? 하고 화를 냈을 때, 지원은 대뜸 소형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워 배시시 웃었다. 너 쓰는 거 보고 싶어 그랬지, 하고 동공이 사라지도록 눈꼬리를 접으면서.
    그해 담임은 진심 어린 조언을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 백일장에서 분에 넘치는 상을 받지만 않았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버리지 못한 빈 문서가 덕지덕지 붙은 바탕화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들을 죽이고 내쫓아 공가(空家)로 만들어버린 소설들을.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에 나는 왜 그렇게까지 매달렸을까. 어째서 이 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그 시작점이 기억나지 않았다. 담임의 죽은 딸을 질투해 밤새 울던 그날처럼, 임종을 앞둔 조부의 단추를 뜯어 노트북을 구하던 그때처럼, 모든 일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중장비로 밀어버린 집처럼 돌이킬 수 없는 황폐한 마음이 빈 문서 안에 있었다.
    멀어지는 마음과 무한한 슬픔.
    소형은 키보드에 손을 반쯤 걸치고, 꺼진 노트북 화면에 알리움의 꽃말을 쳐 보았다.

 

 

5.
    다시 비가 내렸다. 더 떨어질 낙엽도 없는데 한여름 소나기처럼 비가 쏟아졌다. 소형은 여느 비 오는 날처럼 침엽수 화분과 양동이를 베란다 걸이대 위에 올리고, 데운 우유에 홍차를 우려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만들었다. 소파에 깊숙이 앉아 밀크티를 마시며 모서리가 닳은 소설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코브린과 이야기를 나누던 예고르 세묘니치가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저쪽으로 달려간다. 영혼을 찢어내는 듯한 절망적인 목소리로 소리친다. 도대체 어떤 개자식 협잡꾼이 감히 사과나무에 말을 매어 둔 게야? 맙소사, 다 망쳤어. 다 더럽히고 다 망쳐서 엉망을 만들었어! 이 정원은 이제 끝이야! 이 정원은 이제 죽어버렸다고!
    「검은 수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정원 일꾼이 사과나무에 고삐를 매어 나무껍질이 세 군데나 벗겨졌다며 예고르 세묘니치가 욕을 쏟아내고 울먹이는 대목을 읽을 때면, 소형은 활짝 핀 꽃을 아주 멀리서 마주한 듯한 기분이 되었다. 텅 빈 운동장 한가운데서 두둥실 떠 있는 꽃을 홀로 목격한 듯한, 도무지 뭐라 말할 수 없는 쓸쓸함에 빠지곤 했다. 소형은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듯 그 대목이 인쇄된 지면을 무연히 바라보다가,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잠결에 하늘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팔과 다리가, 손마디 하나하나가 몸에서 뚝뚝 잘려 나갔다. 쉬지 않고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숲 속으로 조각난 몸이 흩어졌다. 비바람이 불었다. 해가 뜨겁게 내리쬐어 풀들이 말랐고, 흰 눈이 내려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따사로운 바람이 불었다. 나누어진 조각들에 간질간질 감각이 생겨났다. 발은 어둡고 습기 찬 땅속으로 뻗어 갔고, 허리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으며, 가느다란 팔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소형은 자신의 분신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상한 형태의 번식이었지만 소형은 알 수 있었다. 어린 나무들로 이루어진 유령림(幼齡林) 안에서 그 애들은 모두 편안해 보였다. 나 따위 것을 왜 세상에 내놓았느냐고, 탐나는 것을 왜 보이는 곳에 두었느냐고, 소형을 무섭게 탓하지 않았다.
    그사이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소형은 식은 밀크티를 마시고, 빗물로 찰방거리는 양동이를 안으로 들였다. 어린 침엽수들은 걸이대 위에 두고 반나절쯤 바람을 더 쐬어 줄 계획이었다. 구름이 걷히고 먼지가 씻겨 나간 풍경은 먼 곳까지 또렷했다. 눈이 시리도록 맑았다. 걸이대 끝에 놓아 둔 써니스마라그가 언뜻 기괴해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인 줄 알았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든 사람 같은, 천장에 목이 매달려 죽은 노인 같은, 그 아이를 안으로 들여 살펴보니 연필 굵기만 한 목대가 완전히 꺾여 있었다. 소형은 탄식했다. 생장점이 잘린 묘목은 절대 소형이 생각한 그림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대성당의 지붕 같은 위엄은커녕, 십 년이 지나도록 화분에 자기 몸을 끼워 맞춰 살아가는 볼품없는 상록수가 될 것이었다. 일찌감치 기대를 저버린 아이, 그저 죽지 않아 데리고 있는 것일 뿐인 애물단지로 남을 것이었다.
    소형은 까슬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써니를 툭, 건드려 보았다. 이 가느다란 나무가 번개를 맞았을 리는 없고, 비바람이 목대를 끊을 만큼 불지는 않았을 테고, 살찐 비둘기가 앉았다 가기라도 한 걸까. 소형은 써니가 심긴 토분을 무심코 어루만지다 문득 동작을 멈추었다. 포도 넝쿨을 두른 아기 천사들의 사납고 강퍅한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 아이들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소형은 어쩌면 이 화분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이상한 가정에 사로잡혔다. 사람이 쫓겨나가는 집처럼, 인물이 무너져 가는 소설처럼, 식물이 줄줄이 시들어가는 화분도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소형은 목대가 부러진 써니를 화분째 안고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경비실 앞에 몰래 화분을 유기하려다 CCTV가 눈에 띄어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언덕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공기의 냄새가 달라져 있었다. 신혼집 빌라가 있던 재개발 구역의 초입에서 소형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끝없이 빈집이 늘어선 황량한 골목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인간이 떠나간 자리엔 역시 인간이 있었다. 공가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집마다 창과 문을 모조리 부수고 뜯어 놓았는데, 그 틀만 남은 창과 문은 텅 빈 동공과 힘없이 벌어진 입 같았다. 너무도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었다.   
    쿵, 쿵, 나무 찍는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할 즈음, 소형은 곧 철거될 동사무소 근처의 화단 앞에 도착했다. 관리해 주는 이가 없어 네모반듯한 형태를 잃고 솟구쳐 버린 회양목 앞에서, 소형은 그제야 안고 있던 화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섯 그루의 회양목은 간격 없이 붙어 견고한 녹색 담벼락처럼 보였다. 비밀을 품은 하나의 거대한 덤불이 되어 있었다. 소형은 눈앞을 막아선 나무를 헤집었다. 가지를 잡아 뜯고 몸을 들이밀었다. 간신히 틈을 만들어 화단 뒤편으로 들어섰을 때, 소형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를 만났다.
    이파리를 만개한 꽃처럼 펼치고 하염없이 소형을 기다려 온 타냐를. 두 번의 겨울을 어떻게 버텼는지 타냐는 개체수를 늘려 오염된 그늘을 뒤덮고 있었다. 꽃 트럭에서 첫눈에 반해 데려올 때의 채도 높은 분홍 띠를 두르고서. 소형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굽히고 홀린 듯 팔을 뻗었다.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창백한 이파리에 손끝을 대었다. 체온이 전해지자 타냐는 물 닿은 솜사탕처럼 사라져버렸다. 필름이 넘어가듯 눈앞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녹슨 캔과 찢어진 비닐과 담배꽁초가 널린 더러운 공터만 고약한 악취와 함께 눈앞에 또렷했다.
    '꽃이 자라고 있으니 건드리지 마시오.'
    '건드리지 마시오.'   
순간 어째서 그 문장이 맴돌았을까. 담임선생이 나무푯말에 유성 매직으로 눌러쓴 그 단순한 문장이. 소형은 젖은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이가 딱딱 부딪혔고, 가슴이 아프게 조여들었다. 숨쉬기 곤란할 만큼 주변 공기가 축축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소형은 악취가 올라오는 공터에 쓰러지듯 누웠다. 땅의 습기가 마른 옷과 건조한 피부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처연하고 서늘한 기운이 몸 안으로 번져갔다. 겪어본 적 없는 이상한 통증에 말라가는 꽃봉오리처럼 몸을 쥐어짜듯 웅크리자, 손끝과 턱 끝과 귓불에 물방울이 맺혔다. 땀이 솟듯 신체의 말단마다 선뜩한 이슬이 매달렸다. 소형은 이것이 어떤 현상인지 알 것 같았다. 식물이 우는 방식이었다.

 

 

 

 

 

 

 

 

 

 

 

 

 

 

 

류시은

작가소개 / 류시은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나나」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