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바람꽃 외 1편

[신작시]

 

 

너도바람꽃

 

 

장문석

 

 

 

    마땅히 네게 죄를 묻겠다
    그래서 네 앞에 낮은 자세로 앉은 것이다
    이실직고하렷다!
    네 도대체 무슨 연고로
    요렇게 요염한 바람개비로 서 있는 게냐
    원앙금침 화사한 침실도 아니고
    마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이 바람 부는 외진 등성에서
    다짜고짜 길손의 바지춤을 잡아채는 게냐
    바위의 뒷덜미엔 아직도 잔설이 차거늘
    이런 궁벽한 곳에서 연분을 짓자는 게냐
    네 정녕 바람이 난 게 분명쿠나
    그 연유 알 만하다 조그마한
    입김에도 이리 살랑 눈웃음 도는 걸 보니
    이제껏 네가 홀린 한량이 몇이나 되더냐
    나만을 기다렸다는 그 말, 믿어도 되느냐
    길고도 추운 동지섣달이었다
    밤마다 처마 깊숙이 매달려
    설창(雪窓)을 넘보던 고드름
    너도 알고는 있었느냐
    그 속에 새하얀 달빛이 있었다
    그 은밀한 반짝임 들킬라
    입춘보다 앞질러 서둘렀던 것인데
    요, 앙큼하고 귀여운 것

 

    확,
    튈까

 

 

 

 

 

 

 

 

 

 

 

 

 

 

늙은 전나무

 

 

 

 

    혁명의 시대는 이제 가버렸다
    부름켜는 켜켜이 녹슬었고
    물관의 수원도 고갈되었다
    평생 껴입었던 초록 갑옷에서
    갈색 살비듬이 부스스 흩날린다

 

    한때 성탄의 은총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
    온몸에 소망의 알전구를 감고
    밤새 반짝이거나
    온종일 은종을 흔들기도 했다
    그래도 빵과 포도주는 멀었다

 

    함박눈 가마를 타고 온 순록과
    사랑을 나누던 계절도 있었다
    그러나 순백의 사랑은 쉬이 부패했다
    봄이 오기도 전에 순록은
    툰드라의 설원으로 되돌아갔다

 

    척추의 마디에 누런 송진이 엉겼다
    누구는 때 놓친 씨방의 눈물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영롱한 호박의 잉태라고도 했다

 

    저물 무렵, 비둘기 한 마리가 찾아왔다
    감람나무 이파리 대신 사소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당신이 새들을 춤추게 하고 별을 굴린다는,
    그 시인을 꿈꾸던 사내가 맞소?

 

 

 

 

 

 

 

 

 

 

 

 

 

 

 

장문석

작가소개 / 장문석

1990년 《한민족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잠든 아내 곁에서』, 『아주 오래된 흔적』, 『꽃 찾으러 간다』. 시산문집으로 『시가 있는 내 고향, 버들고지』, 『인생은 닻이 아니라 돛이다』가 있다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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