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든 사탕 외 1편

[신작시]

 

 

생각이 든 사탕

 

 

김중일

 

 

 

    그림자를 커튼처럼 열어젖히면
    비가 오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창틀에 참새 한 마리가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비를 다 맞고 있다
    세찬 비에도 차가운 창문은 무사했다, 오늘도 깨지기는커녕
    조금도 녹지 않았다

 

    바람이, 빗방울이 돌기처럼 돋은 길고 거대한 혀처럼
    세상의 모든 창문들을 동시에 핥고 있다
    바람은 창문이 어떤 맛일까
    창문은 오늘도 녹지 않았다
    대신 반으로 쩍 쪼개지듯, 창문이 열리고 네가 얼굴을 드러낸다
    너의 머리는 금세 젖는다
    바람의 혀에 감긴다
    바람은 네가 밤새 하던 생각이 어떤 맛일까

 

    매일 빨아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사탕이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
    더구나 그것이 매일 다른 감정을 가진 사람의 생각이 든 사탕이라면 더더욱

 

    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며 나는 네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네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내 안에 든 돌멩이 같은 네 이름을 남김없이 뱉어내며
    몸과 마음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면서,
    혹시 내 그림자 안쪽 살얼음같이 낀 얇은 창문이 깨질까 봐

 

    와장창 천둥번개가 치고
    어느 날 나의 작은 부주의로 그림자 안쪽 창문이 깨지고
    내가 맨홀처럼 캄캄한 창문 속으로 빠져 세상에서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마치 지금 건너편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저 여자처럼

 

    얼마 전부터
    내 그림자 안쪽 창틈으로 바닷물이 새어 들어와서
    내 신발은 늘 젖어 있다
    물론 내 발도 퉁퉁 불어 있다
    자기 전에 젖은 신발은 벗고, 장화처럼 부은 발도 벗고, 그림자를
    활짝 열어젖힌다
    마치 스위치처럼 그림자를 젖히면, 그제야 깊은 밤이 환히 켜진다

 

    온종일 나는 내 그림자를 옷처럼 내 몸에 꼭 맞게 입고 싶었다
    온종일 그림자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크거나 작았다
    침대에 엎드려 울면, 드디어 내 몸이 내 그림자에 꼭 맞는다
    침대에 엎드려 울면서,
    나는 내 그림자 너머를 본다
    금간 창밖을 본다

 

    여태 비를 맞고 있는 새를 본다
    나는 달달 떨고 있는 새를 향해 더운 입김을 불어 준다
    그리고 뿌예진 창문을 소매로 닦으면
    창밖에는 더 이상 비도 바람도 너도 새도
    아무도 없다

 

    비는 이 순간도 뚝 뚝 떨어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링거액처럼
            이곳으로 스며들어
            아주 조금씩 천천히 뛰는 심장처럼
            아주 천천히 조금씩 모든 걸 지운다

 

    온갖 생각이 가득 든 사탕만 그대로다

 

 

 

 

 

 

 

 

 

 

 

 

 

 

나는 태어나지 않은 사람

 

 

 

 

    지금 내 옆에는 죽은 사람이 앉아 있다
    그는 죽음보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밤바다로 휘적휘적 혼자 걸어 들어가는 사람처럼,
    깊은 생각 속에 서서히 빠져들다가
    생각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급기야
    짜디짠 생각이 콧구멍을 덮자 참지 못하고 쿨럭쿨럭 기침을 한다
    내 옆에서, 혼자서 붉은 얼굴로 기침을 한다

 

    얼마 전부터 내 옆에는 죽은 사람이 앉아 있다
    분명히 그는 죽기 전보다 훨씬 젊어졌고
    자신 옆에 앉아 있는 내 존재를 느끼고 있다
    기지개를 켜다가, 벤치 등받이로 팔을 걸치듯
    내 어깨를 슬쩍 안기도 한다
    그러나 곧 팔은 허공을 휘젓고 제 허벅지 위로 떨어진다

 

    어떤 근거도 없고, 증거도 없지만 나는,
    결코 떠올릴 수 없는 기억의 형태로
    그의 옆에 앉아 있다
    물론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거의 그와 한 몸이 되어 앉아 있다

 

    (그가 죽은 날부터
    나는 태어나지 않은 사람)

 

    언제부터인지, 나는 벌써 죽은 그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죽기 이전보다 더 곁에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더 더…… 곁에 있는 사람이 되어 급기야
    그의 몸속에 마지막으로 흘러든 공기처럼 스며들었다

 

    불현듯 잊었던 사실이 생각난 듯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가 어렵게 휴가를 낸 평일로 머잖아 태어나
    그가 죽은 그날 이후 참았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리게 될,
    아직은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내가 막 죽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그리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김중일

작가소개 / 김중일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가 있음.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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