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익사

[단편소설]

 

 

마른 익사

 

 

이수진

 

 

 

    길이 굽이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자칫 가드레일을 들이받을 것만 같아 오른다리가 떨렸다. 먼저 지나가길 바라며 속도를 줄이고 깜빡이를 켜자 숙부의 차가 기다렸다는 듯 바퀴를 틀었다. 노면을 긁으며 중앙선을 넘은 하얀색 승용차가 내 차를 훌쩍 추월했다. 삼십 년도 넘게 오가던 길이니 어려울 것 없다 호언장담한 것치곤 우스운 꼴이 된 셈이었다. 운전자와 승객의 시야는 확연히 달라서 내가 볼 수 있는 건 한 치 앞 정면뿐이었다.
    면허를 딴 뒤로 시도하는 첫 번째 장거리 운전이었다. 주황빛이 도는 작은 포클레인을 짐칸에 실은 일 톤 트럭이 맨 앞을 달리고 있었다. 커브를 돌 때마다 트럭 뒤에 붙은 장묘업체의 이름이 드러났다 감춰졌다. 나는 업체 이름과 비슷한 드라마 제목을 떠올리곤 픽 웃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잖아.
    나는 조수석에 앉은 엄마를 힐긋 돌아보곤 말했다. 엄마는 조수석 차창 위에 붙은 손잡이를 생명줄처럼 붙들고 있었다. 등받이에 기대지 못한 허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 게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도로 경사가 완만해지자 나는 다소 느긋하게 핸들을 고쳐 쥐었다.
    느낌이 안 좋다고 했는데. 왜 하필 오늘인 거야.
    엄마가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다.
    오늘이 손 없는 날이라잖아. 다음 달까지 기다려, 그럼?
    차라리 다음 달로 미루는 게 낫겠다. 꿈자리가 정말 안 좋았대도.
    엄마의 꿈 얘기엔 인이 박일 정도라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다 와 가는데 초 치는 소리 좀 하지 마. 엄마도 아버지를 화장하고 싶어 했잖아.
    엄마는 시트에 간신히 등허리를 기대앉으며 대답했다.
    그랬지. 묻었다 꺼내는 거 말고. 장독도 아니고…….
    엄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머릿속에는 장독에 들어가 뚜껑을 달각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따금 엄마는 나로 하여금 괴상한 상상을 하게 했다. 대체로 그건 엄마의 꿈 얘기와 밀접하거나 꿈의 이미지 자체였다. 아버지가 산 채로 불에 타는 걸 봤다던 엄마의 꿈을 이어 꾼 며칠 뒤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을 때 내가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렸던가. 하지만 내가 엄마의 꿈을 못마땅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꿈에 대한 당신의 신뢰가 과한 탓이었다.
    엄마는 스스로 꿈이 잘 맞는 편이라 말했고, 정말로 그렇게 믿고는 했다. 엄마의 확신이 얼마나 단단한지 내 판단력이 다 흐려질 정도였다. 독실한 신자치곤 미신을 믿으신다고 비꼬았더니 예지는 성인들도 갖고 있는 능력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세례명을 들어 성녀 엘리사벳이라 당신을 놀렸는데 멋쩍어하기는커녕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라 더 기가 막혔다. 엄마는 무슨 굿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떳떳해했지만, 내 등을 철학관으로 떠밀며 손 없는 날을 받아오라 한 것도 엄마였다. 그 손이라는 게 날짜귀신의 이름이란 걸 알고 나선 더욱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십 년 넘게 냉담 중이긴 했지만 나도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였다.
    물론 이번 개장이 엄마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되기는 했다. 오래도록 묶여 있던 선산의 개발제한이 풀려 결정된 사안이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준 얼마 안 되는 땅이었고,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든다고 했다. 보상금 문제로 숙부 내외와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럭저럭 해결된 모양이었다. 얼마나 받았느냐고 묻자 엄마는 오른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환히 웃었다. 나는 휴게소에서 합류할 때 보았던 숙부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을 떠올려냈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마지막 안내를 전하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켜들어 하늘의 상태를 살폈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았지만 구름 모양이 수상했다. 세탁기에 잘못 돌린 솜 베개처럼 작은 구름들이 저들끼리 뭉쳐 있었다. 저런 걸 양떼구름이라고 하던가. 색이 희어서인지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양떼들이 하루 내내 얌전히 흩어져 있길 기원했다. 이번 커브 길만 지나면 선산 아래 공터였다. 마음이 놓인 나는 핸들을 꺾는 동시에 엄마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무슨 꿈이었는데?
    엄마는 아무 대꾸도 않고 입술을 달싹이다 어,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자마자 나는 브레이크를 급히 내리밟았다. 상체가 크게 요동쳐서 핸들에 코끝을 부딪쳤다. 콧잔등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자 도로 한가운데 작은 덩어리 같은 게 서 있었다.
    다람쥐야?
    청설모 같은데.
    작은 짐승은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앞발로 도약해 건너편 숲으로 사라졌다.
    엄마가 차창에 부딪친 머리가 아프다고 호들갑을 떠는 와중에 공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야트막한 능선을 오르자마자 둥그스름한 봉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내야 하는 시신은 모두 여덟 구였고 무덤은 아홉 개였다. 고조부와 고조모, 증조부, 증조모를 파내어 모신 뒤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언니의 무덤을 열기로 됐다. 엄마의 허묘가 아버지 곁에 자리해 있었고, 줄지은 데서 가장자리로 비낀 자리에 언니의 무덤이 있었다.
    엄마와 내가 도착하길 기다렸는지 그제야 일손이 분주해졌다. 토지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대신 나란히 서서 기도를 올렸다. 숙부가 조상들께 파묘를 알리는 글을 읽었다. 여자들은 짊어지고 온 교자상에 술과 과일, 말린 북어, 식혜를 차렸다. 절을 하고 향을 피운 뒤, 술을 올리고 다시 한 번 기도를 드리자 분묘 개장이 준비되었다.
    인부들은 모두 셋이었고, 자신들을 염사라 소개했다. 염사들이 '파묘!'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첫 번째 봉분에 곡괭이를 박아 넣었다. 자그마한 포클레인에 올라탄 염사가 흙을 퍼내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봉분이 걷어지고 평평한 땅이 드러났다. 나는 비탈길을 오가며 지난 추석에 올렸던 시든 국화꽃 다발들을 모아 치워버렸다. 아버지의 무덤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라 그런지 입혀 놓은 떼가 어설펐다. 아버지의 유언이 삼 년 만에 파기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유언도 엄마의 꿈 탓이었다.
    엄마가 꾸었다던 건 장작더미의 높은 데서 아버지가 산 채로 불타오르는 꿈이었다. 문제는 엄마가 굳이 그 얘길 암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했다는 거였고, 그렇게 해서 원래 무엇이었을지 모를 아버지의 유언을 확정지어 버렸다는 것이다. 고통과 정신을 동시에 덜어내는 약에 취한 채 아버지는 화장만은 하지 말아 달란 말을 넋 나간 사람처럼 되뇌었다. 엄마는 불길에 휩싸여 있긴 했지만 표정이 좋았다며 아버지를 설득하고 나섰다. 하기야 건강했을 때의 아버지는 화장이란 시스템에 호의적인 편이었다. 그런데도 엄마의 제안이 서운했는지 아버지는 임종의 순간까지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는 깊은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눈을 반쯤 뜬 채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면 가족 역사 전반에 엄마의 꿈은 그런 식으로 영향을 미쳐 왔다. 그건 언니와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언니의 무덤이 마지막 순서여서 나는 그 곁을 서성거렸다. 봉분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작은 솔이 보였다. 거머쥐고 잡아채자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던 뿌리가 투두둑 소리를 내며 잡아 뜯겼다. 산비탈에 그것을 내던지며 나는 언니를 생각했다. 무엇 때문인지 내게 언니의 모습은 결혼식 당일의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날 언니는 아이보리색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납작한 뮬을 신고 있었다. 나는 언니의 장례식에서보다 결혼식에서 더 많이 울었다. 눈이 퉁퉁 부어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내가 찍힌 그 사진은 언제나 내 화장대 앞에 자리해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으면 탈수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신부에게 흉이 되니 그만 울라는 엄마의 타박은 들리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때 불길한 예감을 이미 느꼈을지도 모른다.
    언니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지만 십오 년 전에 죽었다. 언니가 죽은 뒤로 우리 가족은 생일을 축하할 수 없었다. 서른 살이 넘자 나는 언니가 살지 못한 나이를 사는 것이 죄스럽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마음이야 알 길이 없었지만 나는 내가 언니의 엄마가 아니라서 우리의 엄마만큼 슬퍼할 수 없다는 것이 이따금 고통스러웠다. 언니의 생일 전날이면 나는 항상 친정에 가서 하룻밤을 잤고, 다음날 아침상에 올라오는 미역국을 말없이 먹었다. 그날에조차 우리는 언니의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아니라 내가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죽고 못 사는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언니는 언제나 내게 어른이었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대학교를 마치던 해에 언니는 오래 사귄 남자와 결혼을 했다. 기분이 좋을 때 언니에게 나는 꼬맹이였다. 내가 건방지게 굴 때면 언니에게 나는 애새끼였다. 언니는 아직도 서른 살 그대로인데 나 혼자 마흔이 다 되어 간다는 게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언제나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언니가 세상을 뜬 그 나이가, 실은 삶의 고비마다 내렸던 결정을 후회하는 부표 같은 시기라는 것을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염사들의 외침소리와 곡괭이질 소리가 한데 섞여 경쾌하게 들렸다. 숙부와 숙모가 그들의 시중을 분주하게 들었다. 엄마와 나는 꼭 무덤 두 개만큼 한가했다. 초여름이었다. 날이 덥고 습했다. 엄마는 나무 그늘에 앉아 염사들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연두색 도토리가 다글다글 매달려 있었다. 일찍 땅에서 오른 매미들이 어디선가 울고 있었다.
    형부는 왜 안 왔대?
    나는 엄마 곁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엄마가 팔뚝에 앉은 날벌레를 내리치며 대답했다.
    셋째가 태어났다더라.
    셋째가 태어나면 뭐, 귀신이 옮을까 봐 못 오겠대?
    엄마는 대꾸 없이 정면만 응시했다. 나는 애꿎은 발치의 풀만 쥐어뜯었다.
    엄마를 괴롭힐 생각은 아니었지만 속이 끓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형부는 언니를 보내고 삼 년 만에 재혼을 했다. 상대는 나도 아는 여자였는데, 내가 청년부 활동을 할 때 고등부 회장을 맡았던 아이였다. 나는 그 애가 언니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형부는 성가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그만큼 유명한 커플이었다. 재혼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형부가 꼭 바람을 피운 것만 같아 불쾌했지만, 엄마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만 말했다. 다행이라고 할지 당연하다고 할지 청첩장이 날아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본당식구 모두가 형부의 재혼 소식을 알고 있었다. 기왕지사 사별한 것을 어쩌겠느냐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 젊은 나이에 혼자 살 것이냐고 형부를 동정했다. 한지수 데레사만 불쌍하게 됐다고 그들은 속삭였다.
    부모님이 이사를 결심한 건 그쯤이었다. 내 사위가 남의 사위가 된다는 게 영 껄끄러워 그렇다고 엄마는 웃었지만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형부의 재혼 상대인 회장 여자애의 어머니는 경우가 바르고 교양이 넘치는 타입이라 엄마를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는 전례단에 속해 있었고 엄마는 레지오 단원이었다. 둘은 전부터도 목례 정도는 하던 사이였다. 아주머니는 처음엔 슬픔을, 그다음에는 위로를 전하더니, 마침내는 하지 말아야 할 말로 엄마의 속을 긁었다. 이번에야말로 하느님께서 아이들을 지켜주시겠죠. 저는 기도 열심히 하렵니다. 조당 걸린 혼배도 아닌데 남부끄러울 것 없잖아요.
    엄마한테 그 얘길 전해들은 나는 그 아주머니를 가만 두지 않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눈엣가시를 뽑아내려는 수작에 엄마가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엄마는 벌써 한 차례 결혼한 남자를 첫 사위로 들이는 그 장모의 속은 편하겠느냐고 나를 달랬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무조건 남 탓만을 하길 바랐다. 아무도 이해하지 않고, 누구의 속도 헤아리지 않길 바랐다. 그날 이후 아주머니는 속이 시원해졌는지 더 이상 엄마에게 말을 붙이진 않았다. 마주칠 때마다 양손을 모아 평화를 빈다는 인사를 건네는 수준이었지만, 인사하는 사람이 아니꼽다 하여 함께 평화를 빌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리는 그 사람을 피해 다녔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살던 동네였다. 부모님이 신접살림을 차린 곳이었다. 시세보다 낮게 내놓은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팔렸고, 부모님은 이사한 동네로 교적을 옮겼다. 마음 깊은 곳에서라면 진즉에 냉담을 시작했던 나는 곧바로 성당 다니길 그만뒀다. 나는 곧 직장을 잡아 고향을 떠났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집안의 셋째 아들인 남편은 종교라곤 관심이 없었고, 아기 생각 또한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막상 결혼을 하니 생기면 낳을까, 같은 흰소리를 하긴 했지만 십 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이에 아기는 없었다.
    아기 삼칠일이 아직 안 지났대. 죄송하다고 하기에 괜찮다고 했다.
    엄마도 발치의 풀을 짧게 뜯으며 대꾸했다. 삼칠일 전이라면 한 달도 안 된 신생아였다. 나는 아직도 그런 미신을 믿는 사람이 있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 제가 지수 많이 사랑했던 것 아시지요, 하더라. 안다고 했다. 지수는 지금 하느님 곁에 있을 거예요, 하더라. 안다고 했어. 그래, 저라고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니. 이제 지수 화장할 테니 더 연락할 일 만들지 말자고 했다. 지수한테 다녀갈 때마다 아내나 장모한테 얼마나 눈치가 보였겠어. 이제 성가정도 이뤘으니, 지수는 잊으라고 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민들레를 잡아 뜯어 줄기를 뚝뚝 끊었다. 머리로는 엄마 말이 이해가 됐지만, 입 밖으론 못된 말이 자꾸만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언니를 화장하지 못하게 우긴 것은 형부였다. 형부는 제 집안의 선산에 언니를 묻고 싶어 했다. 하느님이 맺어 주신 사람이니 생이 다하는 날까지라도 이따금 꽃을 가져다 두고, 보고 싶을 때면 기대어 울 곳이 필요하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드라마가 남자들을 죄다 버려 놨다고 형부 면전에서 비아냥댔지만, 엄마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자네에게 정 끌어안고 울 봉분이 필요하다면 우리 선산에 묻게 해주게. 거리도 우리 쪽이 더 가깝고, 자네 아내이기 전에 내 딸이었잖은가. 형부는 고심 끝에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가 정성들여 꾸민 것이 저 묘지였다.
    엄마가 언니를 돌려받아서망정이지 삼 년 만에 파낼 뻔했잖아.
    엄마는 픽 웃더니 내 손의 민들레 줄기를 잡아채며 말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 남자들은 혼자 못 살아. 내가 네 아버지보다 오래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양반, 안 아프고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안 아프고 죽었더라면 좋았을 사람이 어디 아버지뿐인가.
    나는 민들레 줄기를 손가락에 휘감고 앉은 엄마의 손을 끌어다 꼭 쥐었다. 엄마의 손은 버석버석하고 물렁하고, 부드러웠다. 엄마와 맞잡은 손깍지 위로 개미 한 마리가 기어올랐지만 그대로 두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앉아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 물었다.
    그래서 어제 꾸었던 꿈이 뭐였어? 꿈자리가 안 좋았다며.
    아, 그거…… 네 언니가 꿈에 나왔는데…….
    엄마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반쯤 벌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곤 곧 진저리를 치며 내 손을 뿌리치듯 놓았다. 나는 영문을 몰라 엄마의 표정을 위아래로 살폈다.
    너희 어렸을 때, 내가 물 조심하라고 했던 거 말이다.
    엄마가 짐짓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엄마 외할머니가 꿈속에서 했던 말 때문이었지.
    나는 금세 그 기억을 떠올려냈다.
    그래, 사진으로밖에 못 뵌 그 어른이 내 꿈속에 나타나선 자식들 물 조심 시키라고 말했다고 했잖아. 그때 난 처녀였는데, 내 슬하엔 딸만 둘일 거라고도 말해 줬다고 했지.
    그랬지. 그래서 아들 낳을 생각은 애초에 안 했다며.
    그래, 너희 할머니가 장손 노래를 불러대도 꿈쩍을 안 했던 게 그 이유였지. 어머니, 저는 아들 못 낳아요. 저는 딸만 둘이래요. 누가 그랬느냐고 몰아붙이시니까 우리 외할머니가 알려주셨다고 했지. 6·25사변 전에 돌아가신 양반이 그걸 어떻게 알려주느냐고 화를 내시니까 아무튼지 저는 알고 있어요, 했어. 싸가지 없는 년이라고 욕을 들어먹었지만 정말이지 나는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사실은 외할머니가 알려준 게 그것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이따금 예지몽 비슷한 것을 꾸긴 했지만 엄마가 그 꿈을 그렇게까지 신뢰하게 된 것은 모르고 있던 외증조모의 사인을 외할머니에게 들은 다음부터였다고 했다. 흑백사진 속 모습처럼 색이 밝은 한복에 쪽을 찐 외증조모는 물에 흠뻑 젖은 모양새로 엄마의 꿈에 나타났다. 그 꿈이 하도 희한해서 외할머니에게 물으니 그분은 마을에 큰 홍수가 났을 때 떠내려가 돌아가셨다는 답을 들었다. 개꿈이라 잊어버리기엔 걸리는 게 많은 꿈이었다. 아버지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도, 엄마는 그 꿈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했다.
    나는 그게 경고라고 생각했지. 조심하면 피할 수 있다는 경고. 내가 너희에게 물을 조심하라고 했던 건…… 평생 수영장이든 목욕탕이든 바다든 계곡이든 데리고 가지 못했던 건…… 우리 외할머니가 나한테 이렇게 말해서였어. 너는 딸을 둘 낳는데, 둘 중에 하나만 살 거야. 하나는 물에 빠져 죽는데, 하나는 천수를 누릴 거야. 그래서 나는 네 언니까지만 낳으려고 했다. 짧지만 깊게 새겨진, 무시하기엔 찝찝한 꿈이어서. 네 언니와 네 나이 차이가 여섯 살이나 나는 건 그래서였지. 네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건 아니지만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조를 때 해수욕장이라도 한번 데리고 가줄걸.
    엄마는 허탈하게 웃다가 이내 큰 짐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물끄러미 언니의 무덤을 보았다. 나는 속으로 당황해서, 잠시 망설이다 엄마에게 말했다.
    근데 엄마, 나 그거 알고 있었어.
    뭘?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을 거라는 꿈. 외할아버지 환갑 때 나한테 말해 줬잖아.
    내가 그걸 너한테 말했다고?
    그래, 잔치에서 막걸리를 잔뜩 얻어 마시고 와선. 그때 난 중학생이었는데.
    엄마는 놀란 얼굴로 나를 살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미간을 펴지 못하고 눈꺼풀만 끔뻑이자 엄마가 웃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랬구나. 너희에겐 평생 말 않을 생각이었는데…….
    나도 엄마한테 이 얘길 하게 될 줄 몰랐지. 다음날 엄마가 기억 못 하는 거 같기에 나도 곧 잊어버렸어. 언니가 그렇게 죽고 나서야 생각나더라. 엄마, 나는 있잖아…….
    나는 지난 십오 년간 갖고 있었던 의문을, 둘 중 하나라면 왜 하필 언니였을까 하는, 어째서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덧붙이지 못하고 그대로 삼켰다.
    증조모의 무덤 흙을 플라스틱 체로 치던 염사들이 손을 들어 올려 신호하는 게 보였다. 볕을 받는 시신이 벌써 네 구였다. 관이 파손되고 육탈이 진행되어 누런 뼈대 하나하나를 퍼즐 맞추듯 놓고 있는 게 보였다. 땅 위로 올라온 그분들은 일곱 매듭을 묶은 삼베에 싸여있거나 붉은 탑 그림이 인쇄된 곳에 검은 먹 글씨가 쓰인 한지를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이윽고 포클레인이 할아버지의 봉분 위를 기어올랐다. 나는 아버지와 언니의 순서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 문득 긴장했다. 그때 엄마가 무심한 투로 말했다.
    그런데 어제 꿈엔 네 언니가 물에 빠져 죽었더라.
    나는 엄마의 목소리 끝에 물기가 어린 것을 뒤늦게 눈치 채고 돌아보았다.
    어제 네 언니가 물에 빠져선, 몸이 퉁퉁 불어선 나를 쳐다보는데…… 나는 그 모습조차 반가워서 손을 뻗어서 걔를 건지려고 했는데…… 손을 붙잡으니까 손가락이 뚝뚝 떨어져나가고, 팔뚝을 쥐니까 그마저도 떨어져나가서…….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를 쳐다볼 수 없었다.
    내가 만질수록 그 애가 자꾸만 부서져서…….
    나는 고개를 떨어뜨리곤 땅 위를 더듬어 엄마의 손을 쥐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의 미지근한 손은 잡히질 않고 차가운 돌덩이 하나만 손바닥 가득 들어왔다. 나는 결국 눈을 들어 엄마의 눈물을 보았다. 손을 잡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한낮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쏟아내는 엄마를 모시고 선산을 내려왔다. 엄마를 조수석에 앉히곤 티슈를 쥐어 드렸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담요를 덮어 드린 뒤, 곁에 가서 앉았다. 나는 위로에 소질이 없었다. 언제나 그걸 잘하는 건 언니였다. 엄마는 눈을 감고 있다가 십 분쯤 지나자 나지막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꿈자리가 사나워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어떻게든 개장일을 미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손 없는 날은 앞으로도 많을 텐데, 하필이면 엄마가 악몽을 꾼 다음날 일을 진행할 일인가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일정을 미루는 것이 엄마에게 또 한 번의 악몽을 꿀 여지를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것이 왜 악몽이란 말인가. 엄마의 딸이 나온 그 꿈이, 죽은 사람이 또 죽었기에 악몽인가? 당신을 슬프게 했기 때문에, 우리를 또다시 좌절시켰기 때문에 악몽인가? 십오 년 전 그랬던 것처럼, 언니를 구하지 못해서.
    나는 시동 꺼진 차의 핸들을 붙잡고 한 치 앞의 정면을 노려보았다. 나는 내 조카의 태명을 잊어버렸다. 언니는 그 이름을 나에게 지어 달라고 했었지만. 나는 이제 와 아주 잊어버렸다. 한때 그 이름은 우리 가족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이름은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닌 한지수. 어떤 대모의 수많은 대녀들 중 하나인 데레사도 아닌 한지수, 내 언니였다.
    세련된 척하시지만 시어머니도 그저 옛날 사람이야.
    언니는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로 사랑받는 일들에 대해 얘기했었다. 나는 철없는 대학생 처제답게 언니의 신혼집을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렸다. 언니의 집 부엌 냄비에선 언제나 뭔가가 끓고 있었고, 냉장고 안의 무엇을 가리켜도 시어머니가 주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댁을 잘 만난 것 같단 언니의 자랑에 나는 못내 질투가 나 심통을 부렸다.
    애기가 아들이라서 그렇지, 뭐. 시 자 들어가는 사람은 믿지 말라는 말 몰라?
    언니는 픽 웃더니 파란색 일색의 아기용품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몰라. 난 지금 행복해.
    어쨌든 언니가 행복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데면데면한 성격처럼 보였지만 형부도 꽤 좋은 사람 같았다. 돌이켜보면, 언니는 온몸으로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병에 대해 몰랐고, 그건 언니와 가까운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언니가 살이 많이 쪘다고는 생각했다. 상처받을까 봐 말하진 못했지만 걱정될 만큼이나 몸이 비대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창 입덧이 심할 때에 꼬챙이처럼 말랐던 모습보다는 낫다 싶었고, 임신을 하면 살이 찌는 게 당연한 일 같기도 했다. 뱃속 아기를 먹이려니 산모가 잘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 통통해진 언니의 종아리를 검지로 쿡 찌르며, 얼마나 행복하면, 하고 농담조로 말했을 뿐이다.
    언니는 천천히, 그러나 어느 순간부턴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눈이 침침하니 머리가 아프니 하며 금세 드러누워 버렸다. 휘청거리는 언니를 부축하다 팔뚝을 잡았을 땐 내 손자국이 사라지지 않고 한참이나 그 자리에 눌린 채로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문제가 생기면 의사가 알아차리겠거늘 했다. 괜한 말로 산모를 불안하게 만드느니 입을 다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언니가 임신중독증 판정을 받게 된 건 이십이 주 오 일째의 일이었다. 언니는 복부 통증을 호소하다 경련을 하며 쓰러졌고, 형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언니의 움푹 팬 팔뚝을 떠올렸다.
    언니의 주치의는 우리 가족과 형부를 탓했다. 증상이 여러모로 나타났는데도 이제야 온 것이 잘못이라고 했다. 대체 왜 이 지경까지 참았느냐고 의사는 물었다. 언니는 침대 위에서 온몸을 떨며 딱딱 부닥치는 잇새로 대답했다.
    임신하면 다 이러는 줄 알았어요.
    의사는 이만큼이나 진행된 임신중독증의 치료는 원인의 제거라고 말했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증상이 잡히지 않으면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선택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건 언니와 아기 중 누구를 살리느냐 하는 문제였다.
    인큐베이터를 쓸 순 없나요?
    언니는 침착하게 물으려 애썼지만, 침대가 들썩일 정도로 떨고 있었다.
    이십이 주 오 일째면 조산이라고도 보기 힘들어요. 아직 아기가 오백 그램이 안 되는데……. 아기가 조금 더 자랄 때까지 산모께서 버텨 주신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의사는 일단 입원치료를 해보자고 말한 뒤 우리를 내보냈다.
    육인실 창가 침대에 누워 링거를 꽂은 언니는 기진맥진해 보였다. 경련은 멈췄지만 두통이 가시지 않는 듯했다. 안사돈어른과 형부, 엄마와 내가 그 옆에 서 있었다. 엄마는 굳은 표정으로 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는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콜타르처럼 찐득하고 어둑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기는 다시 가지면 되잖아.
    안사돈어른이 곧바로 끼어들었다.
    사돈처녀가 참견할 일이 아니야. 안사돈어른, 아니 엘리사벳 님. 견진까지 받으신 분이니 제 뜻 이해하시지요? 낙태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신자로서 할 수 없는 선택이잖아요. 몇 주만 버티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잖아요. 현대의학이 그렇게 허술하지가 않아요. 예수님께서 도와주실 거예요. 저는 아기 엄마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 데레사야, 잘할 수 있지?
    언니는 시어머니를 향해 눈을 끔뻑이다 도움을 요청하듯 제 남편을 바라보았다. 형부는 뜻밖의 시선이라도 받은 것처럼 당혹스러워했다. 형부는 잠시간 쩔쩔매더니 우물거리며 말했다.
    지수야, 나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
    핸들을 놓자 핏기가 가신 양손바닥이 새하얗게 번들거렸다. 갑작스레 속이 답답하고 피가 거꾸로 솟을 듯이 분노가 차오르는 것은 내 오랜 증상이었다.
    나는 곤히 잠든 엄마를 깨우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산소에 다시 오르니 아버지의 봉분 속이 드러나 있었다. 푸른색 조끼를 입은 염사가 포클레인이 퍼놓은 흙을 도로 메우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풀밭에 뉘어진 아버지의 시신을 살폈다. 아버지는 반쯤 삭은 삼베로 감싸여 있었다. 워낙에 풍채가 좋은 사람이었지만 돌아가실 때쯤엔 몸피가 말라 보통사람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깡마른 소년만큼 작아 보여서, 삼베를 풀어헤쳐 보면 아버지 말고 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나 보지요?
    염사가 소매로 땀을 훔쳐내며 내게 물었다.
    이제 삼 년 됐어요.
    나는 대답했다.
    관째로 옮겨도 좋은데 나무뿌리가 엉켜서요. 떼어내려니 귀퉁이가 떨어져나가서 그냥 꺼내 드렸어요. 그래도 이런 관은 잘 아는 장례업체를 쓴 거예요. 너무 두꺼운 나무를 쓰면 썩지를 않거든요. 고인을 빠른 시일 내에 흙으로 돌려드리는 게 효도죠. 오 년 정도 더 계셨으면 제대로 육탈이 되셨을 텐데. 하기야 그땐 나무뿌리가 어떻게 뻗을지 모르겠네요.
    나는 삽으로 잘라낸 듯한 나무뿌리 조각들을 굽어 살폈다.
    좋은 산소예요. 자리도 좋고, 흙도 좋고.
    도로가 난다고 해서요. 요즘은 납골당에 모시는 게 추세잖아요.
    그렇긴 한데 아쉬워서 말이죠. 어지간하면 땅 속에 모신 분들은 그대로 두는 게 좋아요. 이 일로 먹고살지만 개장해서 좋을 일이 별로 없어요. 열 배쯤 좋은 땅이 아니라면 가만 놔두는 게 상책이란 말이 이 바닥에 있어요. 고인을 편히 쉬질 못하게 하는 셈이니까요.
    도로공사가 하겠다는 일인데 막을 방법이 있나요.
    염사가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튼 아까운 자리네요. 일하기엔 좀 덥지만, 볕도 잘 들고.
    염사는 그늘을 가리키며 가서 쉬라고 말했지만 나는 숙부 내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숙부가 내게 건넬 말이야 한결같고 지루했다. 그래, 뭐 좋은 소식은 없고? 그건 나의 임신 소식을 묻는 질문이었다. 명절도 아닌데 잔소리를 참을 만큼 성격 좋은 조카도 아니었기에 나는 염사 곁에 있겠다고 대꾸했다. 구덩이를 마저 다지고서야 마침내 마지막 파묘가 시작되었다.
    포클레인의 커다란 삽이 언니의 봉분 위에 박히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평지에 쌓이는 흙이 늘어 갈수록 심장이 불안하게 널뛰었다. 흙문을 열면 언니가 돌아올 거라 착각하는 사람처럼 나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 끝을 깨물며 초조하게 서성였다. 염사가 구덩이 속으로 사라지자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귀를 막았다. 관을 비틀어 여는 소리가 손바닥 뒤를 거칠게 파고들었다. 언니는 썩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 모습 그대로 부풀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엄마가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언니의 숨이 끊어졌을 때 언니는 익사체처럼 보였다.
    나는 언니의 임종을 지킨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날 형부는 야근이었고 엄마는 몸이 아팠다. 나는 병상 곁의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가 언니 위로 고꾸라진 건 누군가 내 팔목을 잡아챘기 때문이었다.
    희수야, 방금 아기가 죽었어.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언니의 부풀어 오른 얼굴 한가운데서 코피가 흐르고 있는 게 보였다. 비몽사몽간에도 코피를 닦아 주려 손을 뻗으려는데, 언니가 내 팔목을 꼭 쥐고서 놓아 주질 않았다. 언니는 나를 붙잡은 채로 한 마디를 더 건네곤 침대 위로 무너졌다.
    희수야, 넌…… 아무것도 하지 마…….
    언니의 직접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언니가 죽은 뒤로 법원은 의사의 유책을 얼마간 인정했다. 증상이 나타나는데도 병증을 의심하지 못해 산모와 태아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판결이었다. 나는 언니가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나는 쪼그려 앉은 채 내 아랫배에 있는 자그마한 이물질에 대해 생각했다. 희고 가느다란 T자 모양의 플라스틱은 내 몸에 침입할 수 있는 불청객을 십오 년 전부터 막아내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산소로 오르는 비탈길을 살폈다. 엄마는 아직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염사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잠깐 와서 보셔야 되겠는데요.
    나는 언덕을 올라 염사가 가리키는 곳을 들여다보았다. 막 눈을 감았을 때 언니의 사체는 관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밖으로 흘러넘쳤다. 그러나 이제 언니는 고스란히 뼈가 되어 있었다. 언니가 누운 두툼한 관의 발치가 뜯겨 있었고, 그 틈으로 잿빛 물이 흘러나가고 있었다.
    이런 관은 두껍기만 하지 육탈에 도움이 안 돼요. 까딱하면 고인이 통조림 상태가 되거든요. 마음을 쓴다고 돈을 쓰는데 고인한테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에요. 물이 좀 차긴 했지만 다행히 육탈이 되셨네요. 그런데 여기…….
    염사가 관의 중간부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작은 뼈들 보이시죠. 허벅지 뼈 사이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염사가 말하는 곳을 응시했다. 자그마한 닭 뼈 같은 것이 허벅지 뼈 사이에 모여 있었다. 나는 문득 오는 길에 보았던 청설모를 떠올리며 물었다.
    관 속에 산짐승이 침입할 수도 있나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저건 관내 분만이에요. 고인이 임신 중에 돌아가신 모양이지요. 저도 말로만 들었지 처음 봤어요.
    관내 분만이요?
    표현하기 좀 그렇지만 사람이 죽으면 부패가 되잖아요. 그러면서 몸 속에 가스가 차요. 몸이 부풀어 오르는 건데, 그러면 압력 때문에 내장기관에 들어 있던 것들이 밖으로 밀려 나와요. 이 경우엔 태아가 밖으로 밀려서 내려온 거죠. 그게 꼭 관 속에서 아기를 낳은 것처럼 보여서 관내 분만이라고 불러요. 연고자께서 고인의 동생 분이라 하셨던가요?
    나는 대꾸하지 못하고 그 뼈들만 뚫어져라 보았다. 태명을 잊고 싶었던, 태어나지 않은 조카의 뼈였다. 염사는 이제 내게 물러나 있으라며, 곧 정리를 마치겠다고 했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의 팔을 붙들고서 허둥지둥 말했다.
    제가 가져갈 수 있을까요.
    저 뼈를요?
    제가 가져가야겠어요.
    나는 벌초를 맡아하던 사람에게 주려던 이십만 원을 염사의 호주머니에 억지로 넣어 건넸다. 염사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할 때에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따라가고 있었다. 염사가 한지에 싼 뼈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핸드백 속에 쑤셔 넣었다.
    화장터에 갔다가 봉안을 하고 납골당까지 다녀오니 한밤중이었다. 날이 날인지라 엄마를 혼자 두기 껄끄러웠다. 남편은 흔쾌히 침대를 내주고선 소파에 가서 누웠다. 옷장에 넣어 둔 핸드백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한참을 뒤척이다 간신히 눈을 감았다. 날이 밝자마자 나는 남편을 출근시켰다. 엄마를 고향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와선 식탁 위에 한지를 펼쳤다. 작디작은 뼈들이었다.
    나는 알코올에 적신 솜으로 뼈들을 하나하나 닦았다. 두개골을 닦을 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주먹보다도 작은 머리가 그저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는 뼈들을 한데 모아 유리병에 담았다. 견출지를 붙이고 이름을 적었다. 나는 그 이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결국 잊지 못한 언니 아기의 태명이었다.
    베로니카? 희수니?
    형부, 잘 지내셨죠.
    이틀 뒤 주일에 나는 그 성당을 찾아갔다. 교중미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 뒤편에 앉아 기다렸다. 미사가 끝났으니 돌아가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익숙한 찬송가가 흘렀고,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왔다. 나는 형부였던 남자와 그의 아내, 그의 장모를 금세 알아봤다. 내가 그에게 다가서자, 엄마에게 평화를 빌어댔던 아주머니가 멀찍이 떨어져 섰다.
    셋째가 태어났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이번에 언니 물건을 정리하는데, 놓고 가신 걸 찾아서요. 아쉬워하실 것 같아서 돌려드리려고 찾아왔어요.
    그래, 뭘까?
    형부가 아끼던 거예요. 집에 가서 보세요.
    나는 형부였던 그 남자에게 유리병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 머리를 숙여 보이고 뒤편의 모녀에게 평화를 빌었다. 손을 모으고 목례를 하는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을 떠나는 사람처럼 마음이 가볍게 나부꼈다. 언니와 손을 맞잡고 다녔던 성당이었다. 언니의 첫 영성체와 장례의 순간 모두가 이곳에 있었다. 성당 입구 오른편에 석고로 만든 성모자상이 하얗게 서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앞을 걸어 지나며 입술에 붙은 오랜 기도를 암송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 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형부였던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수진

작가소개 / 이수진

198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0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원초적 취미』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로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고, 단편집으로 『머리 위를 조심해』가 있다.

 

   《문장웹진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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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짱이야

시작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어요.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몇번 더 읽어봐야겄어요.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