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6

[단편소설]

 

 

예지6

 

 

김엄지

 

 

 

1

    누구든지 이상하다.
    이상한 모두를 피하고 싶었던가.
    이상한 눈, 코, 입을 본 적이 있다.
    이상한 사람의 눈은 이상하기 마련이다.
    이상한 사람의 코와 입은 이상한 사람의 눈보다 더 이상할 수 있다. 어떻게?
    어떻게든.
    이상한 자가 이상한 자에게 다가가 말할 수 있다.

 

    지금 참고 있는 게 뭐예요?
    참고 있는 표정인데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요.
    말하고 나면 훨씬 후련할 텐데요.
    후련해질 텐데요.

 

    나는 후련해지지 못했다. 내가 끌고 다니는 두 다리가 너무 무거웠다. 몸 이곳저곳, 아무리 더듬어도 내 두 다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알 수 없었다. 엉덩이에서부터일까, 골반? 정수리에서부터일까? 발바닥에서부터일까? 땅에서부터? 발 딛는 곳마다 시작일까?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다리가 땅에서 솟아나 다리 위에서 몸통이 싹트고 머리는 없는 것 같다. 머리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하늘에서부터 내가 내려와 쌓인다는 상상. 발바닥이 만들어지고 그다음 정강이가 그다음 무릎이 차곡차곡 쌓여 목까지 만들어진 나는 걷겠지.
    걸었다.   
    11월 말이 되자 곧 해가 바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마침내 11월 1일이 되자 득달같이 해가 바뀐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들어야 하는가. 11월과 10월과 해의 바뀜. 체인지 더 문. 체인지 더 썬. 흩어지는 조합, 눈과 귀가 계속 열려 있었다. 열려 있는 것은 감각만이 아니라 감각보다 더한 것, 감각보다 더 오래된 것이었다. 생각 없이 살겠다는 다짐이 자꾸 무너졌다. 무너지는 것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는데. 둑, 댐, 둑과 댐. 무너지는 것이라고는 둑과 댐 그 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둑과 댐은 다른가? 둑과 댐 중에, 실종되기 더 좋은 곳은 어디인가? 둑의 안쪽, 둑의 바깥쪽에서, 댐의 안쪽, 댐의 바깥쪽에서 사라진 것들.

 

    흉악범의 얼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던 날 저녁에 나는 밥에 물을 말아 먹고 있었다.
    흉악범의 얼굴은 브라운관 가득히 또는 브라운관 구석에 배치되었다.

 

    흉악범의 얼굴을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 공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일까요?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해진 것인가요? 뉴스 진행자가 패널로 초대된 범죄심리학 박사에게 질문했다.
    안전하려면 얼마만큼은 감수해야겠죠. 박사라는 사람의 대답이었다.

 

    무얼 감수해야 할까요?
    그게 무엇이든, 공포이건, 불안이건,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모두에게 안전은 공짜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

 

    이상한 것은 웃음소리였을까. 웃는 입 모양이었을까. 브라운관 가득히 혹은 구석에 배치되는 범죄심리학자의 얼굴을 보며 저녁식사를 마쳤다.
    나는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식사를. 맨밥과 맹물과 브라운관을. TV다이와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 어두운 창문, 창문에 드리운 나뭇가지 그림자, 흔들리는 것을 믿지 않기로 했고. 공포, 불안, 얼굴, 11월, 보도블록.
    하루 종일 걸었던 길이 떠올랐다. 보도블록, 보도블록.
    나는 리듬을 만들지 못했다.

 

 

2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이 리듬은 아니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중력에 영향 받지 않는 것.
    무한히 자기 에너지로만 움직이는 것.
    무한도 자기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런 것이 만들고 싶었다. 구석에 처박혀서 보름쯤 골몰하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고, 보름이 부족하다면 20일. 20일이면 충분하다는 낙관도 있었다. 안일함이 낙관을 낳는 것인지, 낙관에 안일함이 속해 있는 것인지.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 오늘 밤에 만들어질 것이다. 완성될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든.
    생수와 통조림참치, 바나나, 그런 것들을 편의점에서 사갖고 돌아오는 밤, 안경을 쓴 남자가 나를 스쳐 지나갈 때, 내가 들고 있는 봉투를 발로 찼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 나는 멈춰 섰다.
    안경을 쓴 남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아. 남자의 안경이 흘러내렸고, 그 이목구비가 익숙하기도 해서.
    너, 너 이 새끼 저번 날에도 내가 그냥 봐줬는데 왜 번번이 봉투를 발로 차는 거야? 물을 뻔했다.
    죄송합니다. 숙인 고개에서 그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숙인 것은 아니었다.
    더 숙여. 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내 갈 길을 걸었다.

 

3

    나는 멀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멀리에 내 어떤 기분을 두고 와야겠다고.
    겨울섬이라면 어떨까.
    겨울섬은 여름에도 겨울섬으로 불리웠다.
    겨울섬에는 겨울 바위가 있다고 했다.
    겨울 바위는 여름에도 겨울 바위로 불린다고 했다.
    어제는 화가 많이 나서 술을 마셨고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던져진 것들은 바닥에서 부서졌다. 머리를 벽에 찧어 보기도 했다. 머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화가 난 게 아니라 화가 난 제스처를 취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제스처가 전부이니. 내 전부가 진실로 화가 났었다고 치자.
    내 전부란 나의 오장육부, 뼈와 살, 눈과 눈 속의 역사,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 한낮에 큰 소리로 운 적이 있었다. 왜 울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연히 울다가, 내 울음소리가 익숙해서 더 울었다. 부모 중에 누군가, 둘 중 한 명과 똑같은 소리였다. 끄억거리는 속도, 진동. 나는 내 목울대에 부모, 둘 중 누군가가 들어와 앉은 것만 같았다. 둘 다 지금은 죽었는데 목울대에 들어앉다니. 징그럽기도 징그럽고, 무섭기도 무서워서 쉽게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틀어막을수록 터지고. 귀를 막아도 안으로 더 크게 들려왔다. 가슴이 메어. 사무치게. 징그럽게. 무섭게. 목울대를 뜯고 싶었지만 내 것이라 뜯지 못했다.

 

 

4

    어제 나와 있었던 사람은 하나, 둘, 셋. 셋이었고, 내가 참고 있었던 것은 그들의 촌스러움이었다. 그리고 그 촌스러움의 끝없음.
    피자와 표정에 대해서, 셋과 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피자에 감자나 고구마 토핑을 이해할 수 없다.
    피자에 파인애플 토핑을 이해할 수 없다.
    피자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누구도 취하지 않았다.
    먼저 취하는 자가 이기는 것인가?
    먼저 취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다.
    만취할 것처럼 마시지만, 그 누구도 취하지 않는 자리였다.
    파하지 않는,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자리.
    자리에서 자리를 옮겨도 바뀌지 않는 하나, 둘, 셋, 나, 대가리, 눈, 코, 입.

 

    표정을 만드는 것은 상황이야. 습관이야?
    살면서 같은 상황은 단 한 번도 없는걸.
    살면서 반복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하나마나한 말들을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주고받는 사이 해가 졌다. 셋과 나는 너무 일찍 만난 것이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저녁도 먹기 전에 만나 밥부터 시작해서, 밥, 술, 밥, 술, 반복하고 있었다.
    해가 지고 또 해가 뜨려 할 때 비로소 셋과 나는 헤어질 수 있었다.
    난 걸어가야겠어. 취하지 않은 내가 취하지 않은 셋에게 말했다.
    그래. 잘 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기 없는 굴뚝을 보았다. 굴뚝은 시멘트 공장의 것이었다.
    저 시멘트 공장에서 사라진 이들을 알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 찬물로 발을 닦으면서, 지금 해가 다 뜬 것인지, 아직 뜨고 있는 중인지, 화장실의 작은 창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다시 해가 지는 것만 같았다. 창문에 색은 없고 빛만이 있었다. 창문에 빛은 없고 색만이 있었다. 창밖에서 차량도난방지 경보음이 울렸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내 귀가 만들어낸 소리일 수도 있었다. 귓속에 들어 있는 차량 다섯 대가 동시에 도난 위험에 처해 있어.

 

 

5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여직원이 부담스러워. 주문을 하다 말고 뒤돌아섰다.
    아직 여직원이 내 등을 쳐다보고 있을까, 어리둥절해하고 있을까, 안도하고 있을까, 키득거리고 있을까, 그런데 여직원의 얼굴, 그걸 부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담이 아니면 무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카페에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성도 계획도 없었는데, 일기가 쓰고 싶었다. 테이블로 가 빈 공책을 펴기도 했다.
    희고 선 없는 공책을 들고 다니는 머리 없는.
    하늘에서부터 태어난 자는 없어. 나는 그런 대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6

    없어요. 지금은 쌀이 없으니 밥 달라고 하지 마세요.
    나는 소리 질렀다.
    꿈속에 나타난 자들은 자꾸 흰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흰밥 새로 지어 바치라고 다그쳤다.
    죽은 부모 중에 하나가 나의 집에 일주일에 서너 번 꿈속에 찾아와 흰밥을 달라 했다.
    그런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이면 더러운 기분으로 쌀을 씻었다.
    베란다 구석에 밥과 물을 놓고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잠근다고 해서, 못 들어오나.
    들어온다 한들.
    내 부모는 한 사람과 같은 둘이었다. 끔찍하게도.
    내가 아는 횟수로 다섯 번,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주방세제가 섞인 밥과 국을 주었다.
    내가 아는 횟수로 두 번, 아버지는 몰던 트럭으로 어머니를 치려 했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식탁 밑에서 자지 마라. 그 목소리는 어머니 것이었는지. 아버지 것이었는지.
    이제 와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 와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잊어버려도 좋은 것들이 떠오르고. 밤낮 상관없이 불쾌하다.

 

 

7

    망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넌 곧 망할 거야.
    응 난 곧 망할 거야.
    부럽다.
    응 나도 내가 부러워. 이번엔 진짜 망할 수 있을 거 같아.
    완전히 망해야 할 텐데.
    끝까지 망해야 할 텐데.

 

    그러나 둘 중 누구도 완전히, 끝까지 망할 자신은 없어 보였다.
    먼저 죽는 자가 이기는 것인가?
    먼저 죽는 자가 꼭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여기는 너무 조용해서 여기서는 죽고 싶지 않다. 우리 자리를 옮기자.
    그래 자리를 옮기자.

 

    자리를 옮기고, 옮긴 자리에서도 망할 계획만을 세우는 둘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죽음은 죽음. 저스트 데드. 체인지 더 문, 체인지 더 썬, 짧은 영어가 짧은 수면시간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구의 증가, 물질의 풍요, 지성의 발전, 오늘날 사회가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고,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고. 시간 때우기. 시간의 구멍에 납땜질 하는 노동자를 떠올려 보면서. 그 노동자는 신과 같은 사람이겠거니. 그 신은 노동자와 같은 신이겠거니.

 

 

8

    목요일과 금요일이 헷갈려.
    목요일과 금요일은 헷갈리기 쉬운 날이었다.
    일주일이 7일이라는 것은 그럴듯하지 않은 속임수였다. 모두들 속은 척 살고 있다.
    속임수에 속는 척이라니.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하고 다들 살고 있는 것이었다.
    일주일은 실패한 속임수였다.
    동그라미 같은 인생이라고 검지로 허공에 원을 그리던 여자가 떠올랐다.

 

    지금은 귀가 모자라요. 눈이 모자라고요. 없는 게 아니라 모자라다고요.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아요. 돌아가세요. 돌아가세요. 카페 여직원이 카운터 앞에 서서 소리 질렀다. 나는 카페 구석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은 귀와 눈이 모자라다는 여직원이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두 눈은 질끈 감은 채로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저 카페 여직원의 양어깨에 부모 귀신이 붙은 것은 아닐까. 부모들이란 귀신 되기 십상이니. 죽어서도 부모라는 착각이 그들을 귀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니. 커피를 달라고. 손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카운터 앞에 서서 물러나지 않았다.
    돌아가세요. 듣고 싶지 않아요. 보고 싶지 않아요. 카페 여직원은 더욱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댔다. 카페에 산소가 모자란 것 같았다. 산소란 산소는 저 카페 여직원의 부모 귀신이 들이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를 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엉덩이가, 두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 어깨에도 무언가 얹어진 것 같았다.

 

 

9

    너무 허황된 꿈만 꾸다가 죽은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꿈의 내용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다.
    그 꿈의 내용은 나날이 대단한 것이 되어 갔다.
    대단해. 난 꿈이라도 그런 꿈은 꾸지도 못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 죽음의 이유가 허황된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원통함에 죽은 것인지, 곧 이루어질 기대감에 벅차서 죽은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남자에게는 남들처럼 뚫린 입이 있었는데, 그 남자는 그 입을 이건 입이 아닙니다, 주장했다고. 그럼 당신 인중 아래 뚫린 그것은 무엇인가요? 그러한 질문에 그 남자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포털입니다, 대답했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증명할 겁니다. 일주일 뒤에. 그 남자는 죽기 직전까지 일주일, 또 일주일 미루었다고. 남자가 죽은 뒤에 그 남자 뒤통수에서 입으로 보이는 구멍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혓바닥도 있었다고 한다.

 

 

10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 다짐했던 날이 있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다는 것인가? 나는 내가 살았던 지난날이 떠올랐고. 지난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앞으로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 비전도 상상할 수 없었다. 대입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이렇게만 아니라면.
    모호해서 누구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누구도 설득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나라도 설득하고 싶었다. 그런데 밤이 되고 또 밤이 되었다. 밤이 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오고가는 것은 밤뿐이었다. 밤마다 잠에서 깨어나, 밤이 신기했다. 밤을 바라보자는 생각은 창으로 시선을 향하게 했다. 그때마다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일까.

 

 

11

    내 방 창문이 깨지고, 내 집 현관문이 쾅쾅 두들겨질 것이다. 창문이 먼저일지 현관문이 먼저일지, 부서질 것이다. 그리고 내 얼굴도 부서질 것인데. 부서질 때 나는 코부터, 입부터, 눈부터, 어디서부터일까. 어디서부터 모양이 망가질까. 그 자리에 그것이 없었던 것처럼. 없어지게 될 순서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 사실은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절대 쓰고 싶지 않은 단어가 늘어 갔다.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비웃음이 비어져 나오는 단어가 늘어만 갔다. 갑자기 소중해서 쓸 수 없는 단어가 늘어 갔다. 이래서는 한 마디 말도 못 하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는 게 그리 중요할까. 어떻게든 살아야겠지만.

 

 

12

    지난밤 이벤트는 술과 성격의 시너지였다. 사과하고 싶다. 술자리를 함께했던 셋 중 하나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너는 괜찮았다. 네가 취한 줄도 몰랐다. 그렇게 답장을 했다.

 

    이벤트와 시너지.
    시너지로 이벤트는 더 이벤트다워질 수 있었겠지.
    토악질, 괴성, 몸부림, 시비.
    나는 실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실은,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부류들.
    마치 고백하듯이 실은, 운을 떼기 좋아하는 부류들.
    부류와 부류를 나누는 것은 나의 습관이기도 했다.

 

 

13

    오늘 내가 본 것은 보지 않았던 것으로.
    눈을 감고 한 장면씩 지웠다.
    행인 둘이 엉켜 싸우고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인파. 인파의 눈. 하나같은 입 꼬리,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꼭꼭 누르던 여자. 난 그 여자 뒤에 서서 보았다. 닫힘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 끝에 들어간 힘을. 힘은 보이는 것이었다.

 

    구획을 나누는 한낮의 노동자들, 아스팔트 열기, 어지러움.

 

    사지는 흔들릴 뿐이고 중요한 것은 몸통이라는 생각. 그저 흔들리지 말고, 정확하게 땅을 내딛기 위해 나는 노력했었다. 그런 노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걸음걸이는 없었다. 나를 위해서라면 걷지 않을 것이었다.

 

    치과에 가기 위해 유리문을 밀었던 기억.
    치과에서 나오기 위해 유리문을 밀었던 기억.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유리문의 무게가 달라.
    왜 달라졌지.

 

    그리고 오늘은 보조개를 보았다.
    정말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보조개 팬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
    그 맛있는 것. 궁금하기도 했다. 맛있는 것을 먹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았다. 베란다 구석에서 맹물과 함께 흰밥을 먹으면 맛이 있을까. 왜 그리 달라고 하는 걸까.

 

    그리고 오늘은 그림자 두 개를 보았다. 한낮에 그리 검은 그림자라니. 작은 그림자가 큰 그림자에 기대어 있었고,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그림자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저건 무엇의 그림자일까? 나는 그림자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림자만이 분명했다. 그림자 주변의 것들은 모두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 없이 흔들리는 것들. 도움 없이 흔들리는 것들. 머리가 아파서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그게 방법이라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어 보기도 했고, 두 귀를 두 손으로 막아 보기도 했다.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짐을 쌌다.

 

 

14

    한여름, 나는 겨울섬에 도착했다.
    내가 겨울섬에 가져간 것은 33리터 아이스박스와 편안한 외출복 2벌, 노트북과 핸드폰 충전기, 현금 15만 원과 신용카드였다. 33리터 아이스박스 안에는 맥주와 작은 수박을 넣었고, 나머지 것들은 배낭 하나에 다 넣었다.
    아이스박스를 꼭 가지고 와야 했을까, 겨울섬에 도착할 때까지 다섯 번 생각했다.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 있는 것부터 없애기로 했다. 수박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단번에 먹을 수 있었다. 맥주는 그저 마시면 되는 것이니, 또 금방 없앨 수 있었다. 반나절을 그것들 먹는 데 시간을 보내었다. 맥주와 수박은 어지간히도 어울리지 않았다. 둘 다 배만 부르게 하는 것들이었다. 어째서 나는 그 둘을 함께 가져왔을까. 이제 와 그리 중요하지는 않으니. 한숨 자기로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겨울 바위로 가기로.

 

    겨울섬 서쪽 해안으로 가면 겨울 바위가 있다고 했다. 그 바위는 검은색이라고.
    검은 겨울 바위에는 전설이 있었다.
    해가 뜨기 전에 겨울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감은 뒤에 소원을 빌면.
    어떤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소원은 파도와 함께 사라진다고 했다.
    소원이 이루어질지, 거품으로 사라질지는 검은 겨울 바위가 결정을 하고 또 응답을 해준다고.
    이루어질 소원이라면, 소원을 다 빈 다음 다시 눈을 떴을 때, 바위가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다고 했다. 바위의 표정이 끔찍할수록 소원은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바위에서 사람의 얼굴을 본 자는 소원을 이룬다는 확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징그러운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일그러지고 또.
    마치 다친 사람 같았습니다. 지금 막 차에 치인 사람의 얼굴이요.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습니다.

 

    소원을 이룬 자들은 바위에 대해 한 마디씩 했다.

 

    그리고 겨울섬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의 소리라고 했다.
    사람의 소리를 가장한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해가 뜨기 전 겨울 바위에 소원을 빌러 갈 때에는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고.
    특히나 분주하게 들리는 구둣발 소리를 조심하라고.
    특히나. 왜? 어떻게 조심하라는 것인가.   
    겨울섬에서 들리는 소리를 인파가 우르르 달려가는 소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단 한 사람의 기침소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15

    나는 소원을 빌기 위해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해가 뜨기 전에 빌어야 했기 때문에.
    겨울 바위까지 가기 위해서는 서쪽으로 15분 걸어야 했다. 서쪽 겨울 바위까지 가려면 내가 묵은 숙소에서 나와 곧장 앞으로 걸어가면 되었다.
    걸었다. 앞으로.
    과연 우르르 인파가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본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겠지만.
    헛, 헛, 하는 사람의 기침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문득 기침을 하는 사람이 여자일지, 남자일지, 여자와 남자 둘이 동시에 기침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혹시 정말 아는 사람이 뒤에서 헛기침하고 있다면.   
    이제 바위가 사람의 얼굴로 보이기만 하면 내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해변의 아무데나 앉았다. 모래가 축축했고,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앞으로 떠밀려오는 파도가 하얗게 보이기는 했다. 멀리서 뭔가 떠밀려오는 것 같았는데, 그게 사람의 손이나 발일지, 사람의 머리통일지. 내 발 앞까지 떠밀려올 것만 같은 그것은, 결코 내 앞까지 오지 못했다. 다가올 듯, 다가올 듯, 멀리 그 자리에서 계속 부유하기만 했다.
    한여름 해변의 모래는 차가웠다. 나는 아무렇게나 모래바닥을 헤집었다. 어느 순간, 뼛조각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사방이 너무 어두웠다. 닭 뼈인 것 같았다. 아니면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의 손가락 뼈.
    나는 겨울 바위를 한번 쳐다보았다. 어두워서 그 바위가 검은색인지 어떤 색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이 겨울 바위임을 알 수 있었다. 확신은 어디에서부터였을까. 바닥에서, 혹은 내 정수리에서부터.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 바위는 웅크린 나의 몸보다 컸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감고, 소원을 하나 빌었다.
    다 빈 다음에도 조금 더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뜨고 겨울 바위를 바라보았다.
    아아. 사람 얼굴이어서 깜짝 놀랐다.
    내 웅크린 몸보다도 큰 얼굴이.
    모래바닥에 얼굴만이.

 

 

16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카페엘 갔다.
    너무나 덥고 어두운 그 카페.
    견디기 어려워.
    나는 문득 카페에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복수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공간에 복수하는 법. 그런 책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은 아무나 쓰나?
    책은 아무나 쓴다.
    두피에서 눈꺼풀로 땀이 흘러 내려왔다. 더웠고, 조금 더 버티면 뭔가 될 것 같았다.
    좋은 예감이 있었다. 예감 말고 내가 가진 다른 것은 없었다.
    쿵. 쿵. 익숙한 속도와 진동. 카페 여직원이 한쪽 벽에 자기 머리를 찧고 있었다.
    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작가소개 / 김엄지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가운데』, 장편소설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가 있다. 동인 <무가치> 활동 중.

 

   《문장웹진 2019년 05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