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크

[단편소설]

 

 

바 크

 

 

임국영

 

 

 

    이것 봐. 이제 세상에 불가능은 없어.

 

    짧은 코멘트와 함께 업로드 된 한 영상이 전 세계 음악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어둡고 비좁은 스테이지에서 중년의 두 백인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며 흘러간 유행가를 사이좋게 부르는 영상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 둘의 정체가 오와 비라는 사실을 빼놓는다면 말이다. 스너프 필름이야? 저 둘이 언제 IS에게 납치당했지? 화면 밖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을 거야. 마지막엔 둘 다 머리통이 뚫릴 테고. 그렇지 않아? 그게 아니라면, 맙소사,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올라잇. 인류의 기술력이 여기까지 왔단 말이군. 합성한 티가 전혀 나질 않네. 알겠으니까 그만둬. 이런 농담 재미없어. 이것이 오와 비의 듀오를 접한 리스너들의 보편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SNS상에 연달아 포스팅 되는, 각자 다른 업로더의 영상과 생생한 증언이 담긴 메시지들이 이 일이 실제 상황임을 끈질기게 증명했다. 결국 화면을 통해 이 기적적인 공연을 지켜보던 이들은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 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여기 어디야? 그곳은 오의 나라도 비의 나라도 아닌 변방의 소국, 그곳에서도 수도로부터 차로 반나절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낙후된 도시의 어느 지층 바였다. 바의 이름은 K.
    BAR-K의 입구는 허름하기 짝이 없었으나 은근하게 새어 나오는 기품을 숨기지 못했다. 순전히 발밑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음악 덕이었다. 그 음악이란 메인 스트림 팝에 조금이라도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라, 이 노래가 왜 나와? 하는 마음으로 걷는 속도를 늦출 만한 것들이었다. 빗대자면 엘비스가 나올 대목에서 클리프가 나온다거나 마이클 말고 프린스를, 너바나를 틀어 놓을 바에는 펄잼을, 용필 대신에 영록을 선곡하는 미묘함이었다. 대중적이라고도 마니악하다고도 비난하기 힘든 플레이리스트. 알 만한 사람은 알긴 알 건데 모르는 사람은 모를 법도 한 절묘한 사각의 파퓰러 넘버들. 이런 곡들이 한데 묶여서 흘러나오는 장소를 외면하기란 어떤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BAR-K는 동네에서 나름대로 명소로 불렸다. 특별히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상은 고만고만했으나 어떤 부류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극소수 백패커는 배교자의 성지라며 과장되게 일컬었다.
    제격이군. 가죽 재킷의 옷깃을 세우며 오가 지하로 내려갔던 것도 BAR-K의 독특한 아우라 덕이었다. 바 테이블에 앉아 올드 패션드를 마시던 비가 오에게 인사를 건넨 것도 순전히 바가 지닌 기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스테이지에 오르기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

 

 

    맙소사.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우린 몸을 숨길 데가 이다지도 없군. 지난 그래미 애프터 파티에서 마주치고 처음인가. 비가 알은척을 해오자 오는 이마를 씰그러뜨렸다. 무슨 소리야. 그런 퀴어 퍼레이드 같은 곳엔 참석한 적이 없는데. 비는 오의 대꾸는 듣지도 않고 바텐더를 불렀다. 내 오랜 친구에게 나와 같은 것을 줘요. 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봐라? 아주 좆같은 걸 다 먹이는군. 오는 바텐더가 자기 앞으로 올드 패션드를 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지막하게 하이네켄을 주문했다. 바텐더는 이건 어떻게 할까요, 하는 표정으로 자기 손에 들린 잔을 바라봤다. 개나 줘버리라지. 오의 말을 들은 비가 아주 즐겁다는 듯이 굴었다. 마침 내 잔이 비었어요. 비는 반쯤 남은 잔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바텐더는 비에게 새것을 내어주고 빈 잔을 치웠다.
    오와 비는 생각에 잠겼다. 기이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만한 장소를 찾아 헤매다 도착한 곳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상대와 마주치다니. 이 이상 지독한 농담도 없겠지. 새삼 기세등등한 싸움을 시작하기에 그들은 조금 늙고 지쳤다. 이미 지난 시대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먼저 꼬리를 말고 도망치지 않을 만큼은 자존심과 기운이 남았다. 오와 비가 자리를 함께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쯤에서 매듭을 짓는 게 좋겠지.
    어색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뚫고 비가 짐짓 과장된 어조로 오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친구. 저길 보라구. 아시안 넷이 시시덕거리고 있는 저 테이블 말이야. 한참 전부터 저들을 지켜봤어. 남자 둘이 먼저 왔고 여자들이 나중에 도착했지. 구면은 아니야. 저들은 홀의 트랙이 다섯 번이나 바뀔 동안 서먹해 하다가 지금 막 서로에게 편해진 참이거든. 남자 한 명이 심각한 얘길 시작한 모양이야. 표정들 좀 보라구. 코흘리개 시절부터 기르던 반려동물이라도 잃어버린 것처럼. 가엾게도. 하지만 내 생각에 저 친구는 본심이 따로 있어. 짝을 찾아 떠난 터키시앙고라나 핫도그 내용물이 돼버린 웰시코기 같은 것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걸. 알 것 같지 않나? 바텐더가 하이네켄을 오의 앞에 놓았고 오는 그것을 단숨에 비울 기세로 들이켜기 시작했다. 여자들로부터 위로받기 쉬운 포즈를 취하고 있을 따름이야. 어른은 밤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지. 죽을 때까지 말이야. 저치 옆자리에 앉아 험상궂은 얼굴로 머드셰이크를 홀짝이는 친구는 오늘 땡잡았군. 속으로 응원하고 있을걸. 내 친구 잘한다! 하지만 여자들도 바보는 아니야. 그럴 리 없지. 저들도 어른이야. 알고 있어. 알고 있는 거야.
    언젠가 공석에서 말한 적 있지? 빈 잔을 테이블 위로 큰 소리 나게 내려놓고 오가 입을 열었다. 니가 구제 불능의 변태 새끼라고 말이야. 아니라고 해봐. 한 잔 더! 내가 옳았어. 오늘에야 확실해지는군. 기자들을 불러야겠어. 지금 당장 전용기를 띄워 주면 그걸 타고 이곳에 얼굴을 비출 스톤지나 빌보드지 기자가 몇이나 있으려나. 모르긴 몰라도 아주 햇병아리 녀석들로만 한 놈씩 올 테지. 애새끼들 고무줄놀이 같은 디스코 음악이나 듣고 자란 꼬마들로 말이야. 알아듣겠어? 저들이 오늘 밤 테트리스를 하든 집 밖을 뛰쳐나간 게 자전거 탄 ET든 간에 니가 신경 쓸 바가 아니란 말이야. 지난 시절의 난 어땠지? 넌 어땠냐구. 온갖 가십과 스캔들, 참견에 시달리던 그 시절이 그리운 모양이군. 너와 나를 사이에 두고 일어났던 소모적인 싸움들 말이야. 정신을 못 차렸어. 도무지 배운 게 없다구. 니놈이랑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지만 내 진즉에 알아봤지.   
    비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오를 바라봤다. 그러나 미소를 지우지는 않았다. 자네한테 이런 얘길 듣다니. 장난이 심해. 왜 이래, 알잖아? 본심을 말해. 내가 모르는 사이 오스카라도 수상한 거야? 심각하게 구겨 놓았던 이맛살을 풀면서 오가 재채기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니놈이 지껄이는 빤한 얘길 참을 수 없었을 뿐이야. 제대로 살피라구. 그래야 알 수 있어. 잘 봐. 지금 막 울음을 터뜨린 놈의 등을 옆에 앉은 새끼가 두들겨 주고 있잖아. 명백한 증거지. 저 둘은 게이야. 이렇게 말하고 있군. 난 이제 좆 됐어. 에이즈에 걸렸단 말이야. 오와 비는 유쾌하게 낄낄댔다. 한 잔 더! 한 모금씩 목을 축인 뒤 그들의 대화는 흐름이 끊겼다. 부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조금 더 취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오는 주변을 살폈다.
    저걸 봐. 넌덜머리가 난 모양이야. 여자 둘이 자리를 떴어. 그리고, 어딜 가는 거야? 휘청거리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잘도 걷는군. 그런데 어째서 저런 곳에 계단이 있지? 고장 난 주크박스 옆 말이야. 출입구가 하나 더 있나? 비가 대꾸했다. 자네도 발견했군. 이상한 구조야. 저 어두운 구석에 위를 향하는 계단이 또 있다니. 가만 보면 마치 이 공간이 오래된 선박의 실내처럼 느껴지지 않나? 묵은 해수 냄새가 나는 목제 인테리어 하며. 저 계단을 오르면 갑판에 다다르는 거지. 오는 코웃음 쳤다. 그럼 저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빌어먹게 쏟아지는 폭우와 약이 바짝 오른 기네스색 바다뿐이겠군. 아무튼 말이야, 그들이 우리가 들어선 출입구가 아니라 굳이 멀리 홀을 돌아 저 계단을 택한 이유는 뭘까. 화장실도 다트판도 당구대도 이곳에 있다구. 우리가 상상할 만한 것은 모조리 이 공간에 존재한단 말이지. 알 수 있겠나? 뭐가 있을지. 우린 짐작도 할 수 없어. 안 그래?
    난 알 것 같은데. 저년들도 큰일이군. 레즈비언이었어. 이제 삼십 분 뒤에나 나타날걸. 장담하지. 선상 난교파티가 벌어지고 있어. 난리도 아니겠군. 배가 다 뒤집히겠네. 그런 시답잖은 얘기보다는, 저 세 명 보여? 어디 말인가. 흑인들 말이야. 너무 까매서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지. 친구, 말소리 낮춰. 이런 깡촌에서 바람구멍이 나기는 싫단 말이야. 겁쟁이! 잘 봐. 밀담을 나누고 있잖아. 가서 얻어와 봐. 코카인이든 헤로인이든 아무거나. 많이 해봤을 거 아냐? 냉동고에서 갓 꺼낸 생선 같은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지. 안 그래? 자네, 생각보다 더 짓궂군. 그보다 그 선글라스 좀 벗지 않겠나? 충분히 어두운 곳이라구. 혹시 동공이 말랑말랑하게 풀려 있는 건 아닌가? 헛소리. 너 같은 약쟁이랑 같은 취급 하지 마. 그래? 이상하군. 내가 아는 쿠바 출신 딜러는 자네가 자기 브이아이피라고 하던데. 아하, 그 빌어먹을 스카페이스. 하지만 너야말로 그 찐따 같은 빵모자 좀 벗어 보지 그래. 누가 알아볼까 봐 겁나? 그 말을 듣고 비는 웃었다. 사실 여길 오는 것은 두 번째야. 맘에 들어. 여기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해.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거겠지만. 비가 오에게 가까이 몸을 숙여 비밀스럽게 말했다. 바텐더의 얼굴을 봤나. 예의 바르지만 무심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드문드문 나를 뚫어져라 볼 때가 있어.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절대 알은척하지 않아. 아니야 이 미친놈아. 그냥 니가 별로 안 유명한 거야. 내가? 이런. 유명세에는 끝이 없군. 장난을 쳐볼까? 무슨? 뭐든. 애새끼 같은 소리. 안달이 났구만. 군중 한가운데 외로워 보이는 꼬라지를 하고 눈에 띄고 싶어서 말이야. 왜 이래. 자네도 알잖아. 이런 포즈만큼 위로받는 일도 없다는 거.
    그때 바 한구석이 밝아졌다. 밝아졌지만 아주 밝다고는 할 수 없는 명도로 무대가 드러났다. 앰프와 스피커, 마이크 스탠드, 단출한 악기가 준비된 비좁은 공간이었다. 듬성듬성 자리 잡은 손님들이 자그맣게 환호했다. 오와 비는 잔을 든 채 낯빛을 바꾸고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비가 중얼거렸다. 저기 있었군. 전혀 몰랐어. 잠시 후 그 위로 한 사내가 나타났다. 갈증을 느낀 오는 하이네켄을 한 모금 마셨다. 히스패닉이군. 히스패닉은 인사를 마치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 빌어처먹을 라티노 새끼가. 오가 얼굴을 손에 파묻었고 비가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나는 씨발 이 곡 싫어. 이러지 말라구. 자네의 첫 밀리언셀러 싱글이잖아. 제발 닥쳐. 나 같으면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자네가 이겼어. 헛소리. 여기는 아놀드보다 실베스타가 어울리는 곳이야. 우는소리도 할 줄 아는군. 이봐, 자넨 상상도 못 할걸. 반평생 자네랑 비교 당했어. 판매량이 어떻고 대중성이 어떻고 하면서 말이야. 오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런 건. 알잖아. 그런 건 됐다구. 비는 오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중얼거렸다. 저 친구. 스카우트할까?
    연주가 중단됐다. 높고 긴 하울링이 홀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귀를 막았다. 히스패닉은 침착했다. 잠시 후 관계자가 무대에 올랐다. 따로 사과는 없었다. 그는 음향기기를 대충 살핀 뒤 모습을 감췄다. 오와 비는 신경이 곤두섰다. 굳은 얼굴을 숨기기 위해 얼른 쾌활함을 가장했다. 그러고 보니 니가 자랑하던 그 빌어먹을 고릴라 탈 쓴 친구들은 어디 갔지? 나의 밴드 메이트들 말이군. 탈을 너무 오래 썼나 봐. 인간의 말을 잊어버려서 대화가 통하지 않게 돼버렸어. 자네야말로 그 자랑이던 가족 밴드는 어떻고. 화해는 했나? 말도 마. 명절에 모이지도 않아. 차라리 다행이지. 내 눈에 띄는 날이면 따발총으로 갈겨버릴 것 같으니까 말이야. 잠깐,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자네 집에 히트맨을 보낸 적 있는데. 오는 마시고 있던 맥주를 밑으로 흘릴 정도로 웃었다. 뭐라고? 오는 웃는 낯으로 비의 얼굴을 살폈다. 비는 멀뚱하게 오를 바라봤다. 주소를 잘못 알려줬나? 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완전히 돌았군. 이거 왜 이래. 나는 자네 고향에 공연하러 갔다가 무대에서 석궁에 뚫릴 뻔한 적도 있다구.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없다고? 아니잖아. 누가 그래? 나 아니야. 확신할 수 있어? 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시킨 거 아니야. 적어도 맨정신에는. 맨정신에는? 그래, 맨정신. 취해 있었겠지. 약이나 술에. 그건 내가 아니야. 나 참, 그럼 누구라는 거야.
    공연이 재개됐다. 히스패닉 역시 음향 사고에 관해 사과하지 않았지만 단골들은 괘념치 않았다. 오와 비는 관심 없는 척 공연에 귀를 기울였다. 들어 본 적이 없는 곡이 흘러나왔고 그들은 신경을 껐다. 이봐.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주지. 알 만하군. 뭘 알아? 친구, 장담하지. 재밌는 얘기라 장담하고 시작하는 말치고 재밌는 얘기 하나 없단 걸. 내가 그랬나? 그럼 좆나 재밌는 얘기를 해줄 테니까 입 다물고 들어. 어릴 적에 동네 어중이떠중이들을 긁어모아서 수영을 하러 간 적이 있어. 근처에 좆나게 큰 호수가 있었거든. 그곳에 빠져 뒈진 놈들이 아마 니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동원한 관객보다 많을 거야. 과장이 심하군. 입 다물고 들으라니까. 아무튼 그 패거리에 나보다 몇 살인가 많은 녀석이 있었는데 죽이 잘 맞았지. 음악을 시작할 때 그치의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흥미롭군. 지금 그 사람은 무얼 하지? 글쎄. 소문으로는 캘리포니아에서 롤을 만다던가. 그거, 대단하군. 아무튼 호수에 들어갔다고. 나랑 그 녀석이 제일 먼저 말이야. 경쟁하듯이. 가장 빨리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어. 그런데 여기서 웃긴 점은 나나 그나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단 거야. 그래서 갑자기 발밑이 뚝 꺼졌을 때는, 씨발, 다시는 물가에 가지도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도 그때까진 웃고 있었어. 웃을 수 있었다구. 조금만 허우적거리면 발이 닿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위치였거든. 그런데 그 자식이 겁을 집어먹고 내 머리를 누르기 시작한 거야. 저 살겠다고 말이야. 그때 생각했지. 다시는 물가에 가지도 말아야겠다고. 잠깐, 그 말 조금 전에 한 것 같은데. 맞아. 그 생각이 두 번 들었거든.
    결론을 말하자면, 우린 살아남았어. 각자 물을 양동이 한 통씩 가득 채울 만큼 토했지만 말이야. 우리 꼴을 보고 다른 놈들은 자지러지게 웃더군. 재롱이라도 떠는 줄 알았던 모양이야. 아무튼 그 많은 양을 게워내고 옆을 살폈는데 녀석이 하얗게 질려서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라고. 그러더니 별안간 웃어재끼기 시작했어.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마주 웃어버렸어.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말이야. 아무래도 물을 너무 마셨는지 웃음밖에 안 나오더군. 의외인데. 자네라면 흠씬 두들겨 팰 줄 알았는데. 물론 그 녀석 덩치가 나보다 컸던 것도 이유지만 사실은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죽을 것 같진 않았거든.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영원히 살 거라 믿었으니까. 말하자면 살 만했어. 살 만했으니까 웃고 넘겼지. 무슨 얘긴지 알겠어? 알 것 같아. 딱 우리 짝이군. 맞아. 좋았어. 좋을 때였잖아. 하지만, 역시 그다지 재밌는 얘기는 아니군. 비는 마지막 말을 속으로 삼켰다. 오가 그 사실을 모르고 꺼낸 이야기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와 비는 침묵했다. 그사이 계단 위로 사라졌던 여자 둘이 삼십 분 만에 나타났다. 그녀들이 내려오자 아프리칸 아메리칸 셋이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남아 있던 아시안 남자 둘이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키스를 했고 MTB 자전거를 들쳐 멘 ET가 등 뒤를 지나쳤지만 오와 비는 그 광경을 모조리 놓치고 말았다. 리넨으로 잔에 묻은 물기를 닦는 바텐더만이 그들의 모습을, 생각에 잠긴 오와 비를 포함해 바에 있는 모든 이들의 면면을 무심하게 훑어볼 따름이었다. 오와 비가 공연을 시작하기 대략 이십 분 전이었다.

 

    두 사람이 침묵을 깬 것은 히스패닉이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였다. 세상에. 이러지 말자구. 비가 고약한 냄새라도 맡은 듯한 얼굴을 했고 오가 시끄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텔레파시가 무사히 도착했군. 내 신청곡이 나오고 있어! 아까 얘기했던가? 저 친구 내 마음에 쏙 들어. 그럼 자네가 데려가. 저 친구, 해고야. 오는 맥주잔을 든 채 비의 히트송을 열렬히 따라 불렀다. 기타 솔로 파트마저 한 음도 틀리지 않고 입으로 따라서 소리를 냈고 비는 그 모습을 발개진 얼굴을 하고 웃으며 쳐다봤다. 그들은 잔을 부딪쳤다.
    터놓고 말하자면, 나도 마찬가지야. 히스패닉의 무대가 끝나자마자 비가 한 말이었다. 뭐가? 그래미 말이야. 애프터 파티에 참석 못 했다고. 퇴짜 맞았어. 완전히 뒷방 늙은이 취급이더군. 가드가 날 막아서더라니까. 농담 마. 진짜야? 그래. 정말이야. 더 유명한 사람을 원한다더군. 내년에 보자고 하더라고. 씨팔, 그건 아니야. 정말 아니라고. 그래선 안 돼. 니놈이 못 말리는 찐따인 것에는 백 번 천 번 동의하지만 그런 취급 받을 수준은 아니야. 명예의 전당에 오르거나 플래티넘 앨범도 만들어 본 적 없는 녀석들이 뭘 안다고 그럴 수 있지? 그들은 아무것도 몰라. 우리가 얼마나 더 브이아이피여야 할까. 글쎄, 아무튼 히트곡 하나가 더 필요한 모양이야. 그래, 젠장, 작업을 새로 시작하자구. 그래. 해야지. 할 거야. 내년에 할 거야, 내년에. 그런데 이것 하난 깨닫게 되더군. 우린 맛탱이가 갔어. 우리라니. 너만 그래. 난 아니야. 그런 것 같아? 됐어. 뒤처진 것은 너로 충분해. 기분 우중충하게 만들래? 망할 자식들. 신경 쓰지 마. 그리고 난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야. 왜? 그런 데는 게이나 가는 거니까.
    당신들이 누군지 알아. 오와 비는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히스패닉이, 금방 무대에서 내려온 그가 있었다. 히스패닉은 오와 비를 노려봤다. 비는 옆으로 한 칸 움직여 자리를 내어줬고 히스패닉은 오와 비 사이에 앉았다. 오가 히스패닉에게 내줄 테킬라를 주문했다. 이 바의 슬로건을 알고 있어? 아는 일은 모르느니만 못하다. 히스패닉이 술잔에 맺힌 물기를 손끝으로 닦았다. 하지만 모른 척할 수가 없군. 당신들은 이래선 안 돼. 함께 있어선 안 된다구. 그리고 술을 들이켰다. 오와 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히스패닉이 하는 소리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았다.
    아니. 당신들은 아무것도 몰라. 뭘 모르냐면, 내겐 동생이 하나 있었어. 내 말은 동생이 지금은 없단 뜻이야. 따돌림을 견디지 못했지. 처음엔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을 거야. 그야 그 녀석이 눈치가 없고 뚱보에다 싸가지도 없어서 나한테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그래, 눈엣가시였겠지. 당신들은 그저 계기였어. 하지만 당신 둘을 둘러싼 아이들 간의 싸움은 도를 넘었어. 모른다고 하지 마. 그때 우리에겐 그게 신앙이었으니까. 단지 동생의 종교와 동생이 속한 무리의 리더가 믿는 신이 달랐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겠지. 잘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래도 당신들이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단 것만은 알겠어. 하나 물어보지. 부처를 용서하는 예수에 관해 들어 본 적 있어?
    히스패닉은 울음을 터트렸다. 비는 그의 등을 두들기며 오에게 눈짓을 보냈다. 오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유감이군. 정말 안된 일이야. 그런데, 이봐. 아까 당신 무대를 보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말이야. 좋더군. 아직 완성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상적이었어. 자작곡이 있다면 들어 보고 싶을 정도로. 진심이야. 이걸 가져가. 내 폰 넘버야.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라구. 오는 히스패닉의 호주머니에 쪽지를 집어넣었다. 히스패닉은 흐느낌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어두운 조명 밑에서 보기에도 심각할 정도로 새빨개져 있었다. 취기나 모욕으로 인한 것인지 고양감에 상기된 혈색인지 알 수 없었다. 히스패닉은 자리를 뜨기 전에 오와 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인은 받지 않겠어.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면서 촉촉해진 눈으로 비가 입을 뗐다. 누가 봤으면 나더러 게이라고 했겠군. 오는 답하지 않았다. 의문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 둘 중 누가 예수라는 거지? 오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비는 자살을 했다는 소년이 믿은 신이 오였을지 비였을지 궁금해 했다. 말하자면 둘은 완전히 같은 생각에 골몰했다.
    이런 일이 다 있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누가 누굴? 저 친구가 우릴. 오는 히스패닉이 남기고 간 테킬라 잔을 바라보며 성의 없이 대꾸했다. 비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 수가 없는 노릇이야. 뭐가. 아는 일은 모르느니만 못하다는 말. 그게 어때서. 그럴싸해.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뭘 안다고 할 수가 있느냐는 거지. 무지를 표방하는 일이 앎보다 정말 나은 태도라면 우리는 결국 세상을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게 아닌가.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라. 하지만 그는……. 그런 찐따 같은 얘기는 니 새끼 가사에나 집어처넣어. 난 아는 건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할 거니까. 친구, 바로 그런 무지함이 내가 자네를 혐오하는 이유야. 독설이랍시고 욕 좀 섞어서 늘어놓으면 똑똑하고 멋있어 보이는 줄 아는 그런 착각 말이야. 공교롭군. 난 니놈이 타고난 멍청함을 숨기려고 말을 자꾸 꼬아 놓거나 늘어뜨리는 꼴이 역겨웠거든. 입 닥치는 게 좋을 거야. 얻어터지기 싫으면. 비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오를 쏘아보았다. 선글라스에 가렸지만 오는 눈을 치뜨고 있었다. 놀랍군.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난 니가 이제까지 게이인 줄 알았거든. 그래? 난 자네가 나랑 한번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오가 실소를 했다. 내가 미쳤지. 무슨 꿀을 발라 놓았다고 이런 불쾌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야. 내가 할 말이야. 미친 건 나였어. 자네가 정말 싫어. 아무도 우릴 눈치 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진심으로 말이야. 바랄 걸 바래.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알아도 모르는 척한다잖나. 그러니까 그딴 개소리를 왜 믿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금이야 독특한 척 고상하게 앉아 있지만 내일 회사 동료나 친구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하겠지. 이봐! 내가 어제 뭘 봤는지 알아? 오와 비가 함께 술을 마시더라니까! 아하, 이런 주정뱅이 같으니. 코를 비틀어버리겠어. 뭐 이런 얘기들. 기분 나쁘군. 원치 않는 스캔들이야. 하지만 이런 질 낮은 농담 같은 이슈쯤이야 잊히는 건 일도 아닐 테지. 물론이지. 시간문제야. 결국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야. 오늘 밤에는 말이야. 오와 비는 그 사실에 진심으로 속이 상했다. 그리고 완전히 취기가 올랐다.
    진짜로 해볼까? 뭐를? 장난 말이야. 자네 말마따나 애새끼처럼 굴어 보잔 말이야. 눈에 띄고 싶어서 안달이군. 물론이야. 어른은 밤을 고민하지만 아이는 더 위대한 고민을 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우리처럼 철없는 사람도 없지. 생각해 봐. 저기 무대가 있어. 그리고 같은 공간에 오가 있고 비가 있지. 그게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나? 알아도 모르는 척하라며. 그래. 하지만 이유를 몰라도 하게 되는 일투성이라네. 무얼 알고 모르고는 결국 대단치도 않은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멍청하긴. 그러니까 내가 아까부터 그 말을 하고 있잖아. 지금 이 바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복권에 당첨된 격이군. 일평생 일어나지 않을 기적 같은 광경을 보게 될 테니까. 오는 선글라스를, 비는 모자를 벗고 무대로 향했다. 그들은 기타를 들고 마이크 스탠드 앞에 섰다.
    "담소를 나누는 중에 소란을 피워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나는 오고 이 친구는 비야. 우릴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BAR-K는 혼란에 빠졌다. 아는 일은 모르느니만 못하다. 오와 비를 아는 사람은 이 둘을 안다고 하기 곤란했다. 적어도 이 장소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모른다고 하기에 오와 비는 너무도 대단한 뮤지션이었다. 둘은 앙숙이기로 따지면 영국과 프랑스보다도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했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선 장면을 무시하기 힘들었다. 반면 오와 비를 모르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람들은 다른 까닭으로 당황했다. 이 공간에서 아는 일에 대해 모르는 척해 왔다면 적어도 모르는 일에 관해서는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딜레마에 빠진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로 자신들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오는 두 사람의 기묘한 열의가 그들을 복잡한 심경으로 만들었다. 모른다고 하지 마. 부탁이야.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열렬히 살폈다.   
    "오늘 우리는 우연치 않게, 그 어떤 약속이나 조짐도 없이 이곳에서 마주쳤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친구들?"
    "여러분들이 우려하던 것처럼 우리 사이는 나쁘지 않았어요. 막상 만나고 보니까 말이에요. 그렇지?"
    "맞아. 나쁘지 않아. 정말 바보 같은 시절이었지."
    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자그마한 무대를 꾸며 보려 합니다."
    호응은 미미했다. 몇몇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지만 오와 비는 눈치 채지 못했다. 오와 비는 이제 발을 뺄 수도 몸을 숨길 데도 없었다. 굳은 얼굴로 두 중년 뮤지션이 공연을 시작했다. 오와 비는 번갈아 가면서 그들의 흘러간 명곡들을 불렀다. 그들은 마치 상대의 곡이 자기 것인 듯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목소리를 겹쳤다.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다렸던 것처럼, 오와 비가 느끼기에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관객석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예상 밖이었다. 내심 두 사람이 기대하던 광경과 달랐다. 자신들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었다.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고. 아직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들은 마치 무명이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더러운 기분으로 공연을 이어 갔다.
    "아마 다시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겠죠."
    "멍청이. 모든 순간이 그래."
    "그래 맞아. 무대에 선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없었다고 하기보다는, 무서웠거든요. 잊혔을까 봐."
    "난 그런 걱정 안 했어."
    "알겠어, 알겠다구.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빛나던 그 시절 말입니다. 결국 나를 지탱해 줬던 것은 몸이 깨져라 부딪칠 수 있는 누군가 덕분이 아니었는가 하고요."
    작은 박수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홀의 어두운 조명 때문에 누가 손뼉을 치는지 볼 수 없었다. 이제 피날레였다. 둘은 오의 곡도 비의 곡도 아닌 어떤 포크송을 택했다. 그 곡은 오와 비가 유년이었던 시절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끈 작자 미상의 노래였다. 당시 한 심야 라디오 방송의 DJ가 '내가 제일 사랑하는 노래'라며 곡과 아티스트에 관한 소개도 없이 송출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DJ는 그 곡이 누구의 어떤 곡인지 밝히지 않은 채 얼마 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훗날 DJ의 집을 뒤졌지만 그 곡의 원본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괴담처럼 떠돌았다. 단 한 번 방송된 것이 전부인지라 음원이라고 할 것이 없었으나 몇몇 사람이 녹음한 테이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테이프는 복사되었고 복사된 테이프들은 리스너들 사이에서 서서히 퍼져 나갔다. 그렇게 이 포크송은 당대에 알 만한 사람은 알긴 알 건데 모르는 사람은 모를 법도 한 사각의 명곡이 되었다.

 

I know you
But I don't know you
And you know me
But you don't know me

 

I can't but I can

 

    오와 비는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공연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지켜봤다.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청하던 이들마저 채팅창에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무대에 오른 두 사람마저 설명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였다. 울분이나 회한 같기도 했다. 연주가 아우트로에 접어든 그때 괴물의 발톱으로 금속을 긁는 듯한 하울링이 스피커를 뚫고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귀를 막았고 연주는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 오와 비는 서로 마주 봤다. 둘의 안색은 완전히 같았다. 아무도 둘을 대신해 사태를 수습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그들은 인사말도 남기지 않고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공연을 관람하던 모든 사람이 퇴장하는 오와 비의 뒷모습을 잠자코 응시했다. 그 광경을 바텐더는 가장 뒤편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감동적이야. 사랑해요, 오 그리고 비! 이것 봐. 지금 내 눈에서 콧물이 흐르고 있어. 역시 그들은 레전드야. 하지만 연기는 좀 배워야겠는걸. 둘 다 얼굴이 시뻘겋잖아! 이런 거 예전에도 본 적 있어. '이집트의 왕자' 주제곡을 부르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딱 저 꼴이었다구. 다정하게 손을 붙들고서 너에겐 질 생각 없다는 듯이 열창했지. 잠깐, 내 눈에는 창백해 보이는데? 더러운 배신자들. 죽어버려. 내가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얘네 음악 게이 같지 않아? 그래도 마지막 곡은 힙했어. 미발표곡인가? 그들의 공연 영상을 살핀 네티즌들의 다양한 반응을 간략하게나마 추리자면 이렇다.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이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작업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니콘서트까지 함께한 마당에 현실성 없는 얘기도 아닌지라 오와 비의 팬덤뿐만 아니라 매스컴까지 그 소문에 뜨겁게 반응했다. 진위를 알기 힘든 뜬소문이 쏟아졌다. 작업 도중 음악적 견해 차이로 충돌을 빚다가 비가 오에게 석궁을 발사했다, 오가 히트맨을 고용해서 비를 저격했다, 그래서 둘 다 입원했다, 이미 뒈졌다, 까지 이야기가 진행됐다.
    오와 비에 관한 자극적인 가십이 연일 보도되던 중 관계자로 보이는 누군가가 SNS에 공개한 정보가 전 세계 리스너들의 이목을 끌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각종 음해는 사실과 다르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멀지 않은 시기에 발매될 예정이다. 앨범명은 <ARK-B>. 총 네 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진 미니앨범이다. 오와 비가 마주쳤다는 바의 이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대홍수라는 종교적 테마를 두 사람의 혼란스럽고 첨예했던 악연의 시작 그리고 끝에 빗댔다. 앞에 배치된 트랙 세 개는 대규모 코러스가 삽입되는 인스트루멘탈이다. 경건하면서 소름 끼치는 타종으로 재앙의 공포를 떠올리게 만들고 스트링을 삽입해서 무겁게 출렁이는 어두운 바다의 질감을 표현할 계획이다. 현재 런던 필하모닉과 협의 중이다. 점진적인 희망과 회복을 상징하는 블루스 하모니카 솔로는 세계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리 오스카에게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상징성과 기술력이 고도로 집약된 트랙 세 개가 끝이 난 뒤에는 대망의 넘버 <Olive Boy>로 연결되는 구성이다. <Olive Boy>는 진정성 있는 포크송으로 두 거장의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포개지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곡이다. 대홍수의 끝, 방주에서 노아가 떠나보낸 비둘기가 가져왔다는 올리브 가지가 뜻하는 바처럼 그것은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다. 또한 팬들에 대한 사과이기도 하다.'

 

    진위를 판단할 수 없음은 매한가지였으나 오와 비의 앨범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던 터라 리스너들은 이 내용을 공식적인 발표로 받아들였다. 매스컴은 런던 필하모닉 그리고 리 오스카 측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사실무근이라는 답을 받았다. 이목이 집중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철천지원수였던 두 거장의 운명적 만남과 화해가 이루어진 BAR-K는 그 위치가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오와 비의 마니아들은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라고는 쥐뿔도 없는 깡촌까지 찾아가서 당대의 팝 음악사적 예루살렘을 직접 방문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붐을 탄 직후 BAR-K는 그야말로 문전성시에 대성황이었다. 오와 비가 공연했던 영상을 스크린으로 반복해서 재생시켰고 벽에다가 그들의 사진과 앨범 커버와 사인을 벽지처럼 발라 놓았다. 선곡마저 바뀌었다. 빗대자면 엘비스와 마이클, 너바나 그리고 용필의 타이틀 넘버들로 꽉꽉 채운 플레이리스트가 BAR-K의 출입구 앞까지 피어올랐다. 한편 목조 계단은 폐쇄됐다. 성지순례를 온 팬들은 주인에게 저 계단을 오르면 무엇이 있냐며 묻곤 했지만 주인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고 말았다. 그는 실제로 그 장소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외지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차츰 줄었다. 그러나 단골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BAR-K는 그들이 원하던 사각의 장소가 아니었다. 오와 비의 즉흥적인 공연을 처음 SNS에 공유했던 누군가의 선언처럼 불가능했던 모든 일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오와 비의 대화를 지척에서 지켜봤던 바텐더는 BAR-K가 미디어에 공개된 직후 모습을 감췄고 그 뒤로 행방이 묘연했다. 온갖 언론사의 스캐빈저 떼 같은 기자들이 그의 자취를 좇았지만 제주도에 숨은 바텐더의 거처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롤링스톤지와 빌보드지였다. 각 잡지를 대표해 바텐더를 찾아온 기자 두 사람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였다. 말하자면 로큰롤과 사이키델릭, 모던록 따위는 건너뛰고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즐겨 듣던, 오의 말을 빌리자면 고무줄놀이 같은 디스코 음악을 듣고 자란 꼬마들이었던 것이다.
    차? 커피? 전직 바텐더였던 그가 무심한 투로 기자들에게 마실 것을 권했다. 해변이 보이는 창가 티 테이블 앞에 세 사람이 앉았다. 기자들은 그를 찾아온 용건을 밝히며 그날 오와 비가 나누었던 대화에 관한 인터뷰에 응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순순히, 확실히 알고 있는 부분에 관해서라면 말할 수 있다고 답했다.

 

    Q1. 당신은 오와 비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는가?
    아니다. 그러나 그날 오와 비가 누구인지 그들 스스로 줄기차게 말했기 때문에 이제는 안다.
    Q2. 오와 비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가?
    대체로 자기 자랑이었다. 스스로 얼마나 대단하고 똑똑한지 대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죽이 잘 맞았다. 그밖에도 온갖 상스러운 발언을 남발했으나 귀담아 듣지는 않았다. 자의식이 심각하게 과잉돼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일반적인 진상 손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Q3. 기억에 남는,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대화 내용이 있는가?
    어떤 맥락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줄기차게 입에 '게이'라는 단어를 올렸다.

 

    .
    .
    .

 

    Q18. BAR-K가 유명해지고 난 직후 일을 그만둔 이유는 무엇인가?
    임대료가 올랐다. 지금은 건물주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Q19. BAR-K는 나름대로 마니아층을 이룬 공간이었다고 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오와 비가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마주친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해 본 바 없다. 자영업이란 게 그렇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잘한다고 꼭 잘 되란 법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들이 하필 내 영업장에서 마주친 일이 어떤 필연적인 인과 때문이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Q20. '아는 일은 모르느니만 못하다'는 BAR-K의 슬로건은 무슨 의미인가?
    처음 들어 본다. 단골들끼리 정한 말인 것 같다.

 

    .
    .
    .

 

    Q33. 폐쇄된 목조계단 위 공간은 어떤 곳이었나?

 

    마치 질문지를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막힘없이 응답하던 그가 처음으로 입을 닫았다. 창밖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기네스색 바다가 요동쳤다. 두 기자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가 내온 차와 커피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게. 뭐였을까. 바텐더는 그 이상 질의에 응하지 않고 기자들을 돌려보냈다. 고국으로 돌아온 기자들은 고심 끝에 기사를 싣지 않았다. 딱히 이슈가 될 만한 요소가 없었다. 무엇보다 오와 비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신선함을 잃는 중이었다. 그들은 장난삼아 직장 동료나 친구에게 거짓말에 과장을 보태고 기억을 왜곡해서 이야기를 전했다. 과장되고 왜곡된 그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과 손을 타고 옮겨지며 더 흉측한 꼴이 되었다. 결국 원본이 훼손된 그 내용을 누군가 SNS에 업로드했다.

 

    '난 씨발 서로 죽고 못 사는 연인인 줄 알았다니까. 그 둘은 영락없는 게이였어. 알아들어?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지. 하여간 그네들이 예수든 ET든 관심 없어. 알고 싶지도 않고 알 것 같지도 않고. 알겠으면 니네 상사한테 가서 전해. 내 집에 또다시 사람을 보내면 미간에다가 총으로 구멍을 뚫은 뒤에 불붙인 마리화나를 다섯 개비 정도 쑤셔 둘 거라고. 잘 가라, 머저리들.'

 

   와전된 바텐더와의 인터뷰는 한동안 뜨겁게 주목을 받았다. 한편 팬들은 목을 길게 빼고 오와 비의 신보를 기다렸지만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매스컴은 잠잠해졌고 이 이슈는 얼마 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완전히 잊히고 말았다. 그뿐이었다.

 

 

 

 

 

 

 

 

 

 

 

 

 

 

 

작가소개 / 임국영

2017년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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