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하루

[단편소설]

 

 

사적 하루

 

 

최정나

 

 

 

    온천 지구에서 비켜나 마을 쪽으로 붙어 있는 '사계절 온천'은 새로 지어진 호텔이나 리조트에 비해 노후했지만 주변 지세와 어우러져 소박하고 아담한 인상을 풍겼다. 회색 벽면에 붉은 지붕을 얹은 단층 건물 주변에서는 김이 뿜어져 나왔다. 고양이들은 맨홀 뚜껑 위에 앉아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잡으려 앞발로 허공을 할퀴었다. 지하수가 흐르는 배수로 옆 콘크리트 바닥에도 몇 마리의 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누워 지열을 쬐고 있었다. 온천 입구로 걸어가던 종은이 고양이들을 향해 발을 쿵쿵 굴렀다. 갈색 얼룩 고양이가 화단으로 뛰어오르자 검은 얼룩 고양이가 등을 곧추세우고 종은을 위협했다. 종은은 뒷걸음질 치면서도 고양이를 내쫓으려고 손을 휘저었다. 수연은 그만하고 가자는 듯 종은의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둘은 다시 온천 입구를 향해 걸었다. 둘의 발걸음을 따라 수증기가 얼어붙은 흙바닥에서 살얼음 깨지는 소리가 났다. 수연이 먼저 회전문 안으로 들어갔다. 종은은 따라 들어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고양이들이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처음 자리로 되돌아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로비로 들어선 종은은 일부러 쾌활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눈 밑에는 검은 그늘이 졌다. 기대에 찬 표정과 달리 수연은 등을 한껏 움츠린 데다 팔짱을 낀 탓에 커다란 가슴이 팔뚝에 눌렸다.
    괜찮아? 종은의 얼굴에 걱정이 스몄다.
    나오니까 좋아. 수연이 대꾸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애가 병명을 모르는 중병이라니. 수연을 바라보는 종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기가 보기에는 이래도 물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고 들었어. 몇 번만 와도 병을 싹 고쳐 나간다는 거야. 지역 사람들도 다른 데 안 가고 다들 이곳으로 온대. 종은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누가 그러는데?
    다들 그러던데.
    다들?
    검색해 봤지. 다들 그렇다니까 너도 곧 좋아질 거야.
    종은이 매표소 앞으로 다가가 감정을 애써 추스르고 직원을 쳐다봤다. 수연이 그 뒤를 따랐다.
    저, 중병에 걸린 사람이 온천을 해도 되나요? 종은이 훌쩍거리며 물어보자 직원이 당황해서 미소 지었다. 종은은 제 감정을 내세우느라 직원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둘을 지켜보고 있던 수연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직원이 종은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온천 지구 안내책자를 내밀었다.
    자세한 것은 가이드북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직원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종은을 바라봤다.
    아니요, 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요. 종은이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면서 수연을 바라봤다.
    직원은 또다시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수연의 몸을 빠르게 훑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지역의 온천 개발과 역사를 함께해 온 우리 온천은 최상의 수질과 설비를 자랑합니다. 그 때문에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이곳 온천 지구에서 우리 온천을 가장 좋아해 주십니다. 주로 몸이 아프신 분들이 치유를 목적으로 방문하고 계십니다만, 중병이라면 글쎄요, 장시간 온천은 무리가 될 수도 있겠군요. 그런 이유로 입욕 시간은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오 분이나 십 분으로 하고, 사이사이 일정 시간 휴식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온천에 들어가기 전에는 먼저 탕 물을 끼얹어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머리까지 충분히 적신 후에 탕으로 들어가야 뇌빈혈 예방의 효과가 있습니다. 온천을 즐기시고 난 다음에는 노천탕에 나가 찬바람을 쐬며 반신욕을 하는 것도 추천 입욕법 중 하나입니다. 특히 지역에서 정평이 난 세신사가 고객의 위생을 관리하고 있으니 세신을 이용해 보는 것도 권장할 만하고요.
    아, 그렇게만 하면 중병이라도 아무 문제없겠군요. 대단한 걸 알아냈다는 듯 종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온천수는 병후 회복과 피로 해소, 건강증진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입욕법과 다른 점은 없는 거네요. 수연이 껴들었다.
    그렇습니다. 대다수 고객이 가이드북을 보고 거기 나온 대로 따라 합니다. 그러나 가이드북은 일반적인 권고사항이라 탕 안에서 반드시,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탕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고객에게 있어 가장 내밀한 시간이기 때문에 목욕 중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저희와 무관하다는 것을 알아 두셨으면 합니다. 다시 말해 대중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이 우리 온천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원은 이제 그만 계산하라는 듯 손을 펼쳐 보였다.
    종은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직원의 손바닥에 신용카드를 올려놨다. 직원이 이만 사천 원을 계산했다. 수연이 만 이천 원을 건넸는데 종은은 받으려 하지 않았다. 수연이 만 이천 원을 도로 지갑에 넣으며 물었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내가 너보다는 형편이 좀 낫잖아.
    무슨 형편이?
    몸이 아프지 않은 것도 큰 형편이지.
    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마. 너도 곧 좋아질 거야. 종은이 수연의 어깨를 건드리며 위로했다.
    둘은 여탕으로 들어갔다. 입구 판매대에 앉아 있는 직원 뒤로 벽걸이형 열쇠 보관함이 있었다. 직원은 주르르 걸린 수백 개의 사물함 열쇠 중 두 개를 빼내 수연과 종은에게 건넸다. 종은이 열쇠고리에 적힌 숫자를 확인했다. 수연은 주위를 둘러봤다. 평상을 중심으로 오른편은 거울 달린 화장대가, 왼편은 라커룸이 이어졌다. 레이스 자수가 화려하게 수놓인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은 여자가 거울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느리게 움직였다. 또 다른 여자는 화장대에 놓인 로션을 손바닥에 덜어 허벅지에 발랐다. 헐렁한 러닝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중년 여자는 화장대와 평상 사이 마룻바닥에서 잠을 잤다. 평상에는 노인 셋이 앉아 있었다. 노인들은 주름지고 반들반들한 얼굴을 쳐들고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드라마는 막바지에 이르러 다음 편을 예고하는 중이었다.
    아이고, 시간이 이렇게나 됐네. 노인 중 하나가 시계를 보고 말했다.
    벌써 그렇게나 됐어? 두 번째 노인도 시계를 힐끗거렸다.
    참 세월이 빨라. 세 번째 노인은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네. 세월이 쏜살이라더니, 드라마 보다가 한 세월이 다 지나가는 줄도 몰랐어. 첫 번째 노인이 평상에서 일어나 출입구를 향해 느릿느릿 걸었다. 잘 있으시오. 나는 먼저 가오. 빠이빠이! 출입구 앞에서 첫 번째 노인이 인사했다.
    빠이빠이! 먼저 가시오. 두 번째 노인이 텔레비전을 보며 대꾸했다.
    다시 만납시다. 빠이빠이! 세 번째 노인이 말했을 때 출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연과 종은은 그들을 지나쳐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칸막이 역할을 하는 사물함이 다른 사물함과 맞닿아 끝없이 이어져 있는 듯한 라커룸은 한두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고광택 시트지를 붙인 사물함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맞은편 사물함에 되비쳤고, 그것은 맞은편 사물함도 마찬가지였다. 사물함이 반사하는 빛 때문에 통로는 병실처럼 환했다. 종은이 똑같은 형태의 사물함 사이에서 자신의 사물함을 찾아 그 앞에 섰다. 수연은 바로 옆에 있는 사물함을 열었다. 텅 빈 사물함에는 플라스틱 옷걸이 하나가 압축봉에 걸려 대롱거리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외투를 벗어 각자의 옷걸이에 걸었다. 탈의한 종은의 몸을 수연이 힐끔거렸다. 수연의 벗은 몸을 종은도 곁눈질했다. 상대방이 눈치 채지 않게 서로의 몸을 보고 있을 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종은은 문자를 확인하고 답신을 보내느라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아까부터 누구야? 수연이 물었다.
    누구겠어. 남편이지. 종은이 스마트폰에 문자를 입력하며 대꾸했다.
    너를 되게 사랑하나 보다.
    결혼 후에 이렇게 멀리까지 혼자 나온 건 처음이라, 허락을 해주고도 막상 내가 없으니까 불안한가 봐.
    허락을 받았어?
    응. 네 얘기를 좀 했지. 그러지 않았으면 이런 여행은 꿈도 못 꾸지.
    아, 나도 결혼하고 싶다. 이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 수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결혼한 지 삼 년이 넘어가니까 조금 심심해. 아이도 가져야지.
    작년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잘 안 생기니까 그렇지. 올해까지만 기다려 보고 안 되면 시험관아기로 전향하려고. 돈이 많이 들어서 걱정이야. 한 번 할 때마다 수백만 원씩 들어간다는데 보통 한 번으로는 잘 안 되나 봐. 자연적으로 애가 들어서면 돈을 버는 거지만 그게 안 되면 별수 없이 돈을 써야 하는 거지.
    태어나는 거나 죽는 거나 돈이 많이 드는구나.
    시부모님이 기다려. 애가 생기면 잔소리도 안 하시겠지. 게다가 육아휴직도 받을 수 있어. 그러면 나도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돼. 여러모로 다 좋아질 거야. 아무튼 빨리 임신해서 출산휴가 받는 게 요즘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소원이야.
    수연과 종은이 욕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탕 안에서 피어오른 증기가 그들 앞으로 훅 끼쳐들었다. 자욱한 수증기 때문에 욕장은 희뿌옇게 보였다. 둘은 눈이 욕장에 익기를 기다리며 입구에 서 있었다. 대욕탕 두 개가 나란히 붙은 한쪽 벽면은 전체가 유리창이었고, 그 너머에 노천탕이 있었다. 노천탕을 감싸고 있는 나무숲이 유리창에 비쳐들었다. 수면에도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자 수면에 작고 동그란 파문이 일었다. 수연과 종은의 정수리에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둘은 샤워 부스로 다가가 몸을 씻은 후 곧바로 욕탕으로 들어갔다. 물에 들어간 수연은 약간 들뜬 표정으로 수증기 낀 유리 너머를 내다봤다.
    괜찮은 거야? 종은이 걱정하는 투로 물었다.
    수연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종은을 쳐다보면서도 습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종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연이 종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잠수했다. 탕 밖으로 물이 흘러넘쳤다. 욕탕 좌대에 둘러앉은 노인들이 물장구치는 수연을 흘겨보며 꽥, 꽥, 소리쳤다. 종은이 킥킥 웃으며 수연의 등을 건드렸다.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수연이 상황을 알아채고 혀를 쏙 내밀었다. 탕 안으로 들어오려던 중년 여자가 수연에게 경고하듯 고개를 두어 번 저어 보인 후 발가락으로 수온을 확인했다. 욕탕 좌대에 누워 있던 노인이 천천히 일어나 중년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서 왔어?
    저요? 탕에 들어가 앉은 중년 여자가 두리번거리다 노인을 보고 대답했다. 안마을에서 왔어요.
    거기, 절 있는 데?
    아뇨. 유적이 있죠.
    그래. 거기 황금온천 들어섰잖아.
    그렇죠. 다 아시네요.
    이 동네에서는 여기 물이 제일 좋아.
    그렇죠. 지역민 할인도 가장 많이 되고요.
    등 밀었어?
    밀었죠. 이제 나가려고요. 힘들어서 더는 못 밀어요.
    그러지 말고 한 두어 번만 밀어 줘. 내가 아직 등을 못 밀었어.
    안마을 사세요?
    아니.
    그런데 잘 아시네.
    두어 번만 밀어.
    정말 두어 번만 밀어 드릴 거예요.
    조금 뒤 탕에서 나온 여자가 때수건으로 노인의 등을 밀었다. 대충대충 문지르고 물을 끼얹는 여자를, 노인이 고개를 비틀어 쳐다봤다. 여자는 때수건을 노인의 손에 쥐여 주고는 욕장을 빠져나갔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이 시선을 돌려 수연과 종은을 쳐다봤다. 둘은 노천탕으로 나가는 것에 서둘러 합의하고는 탕에서 나왔다. 노인은 주위에 노인들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세신사를 바라봤다. 세신사는 침상에 누워 있는 여자에게 뜨거운 물을 끼얹었다. 천장을 향해 드러누운 여자의 허벅지에 세신사의 손바닥이 닿았다. 여자가 몸을 떨었다. 세신사는 여자의 몸 위로 때수건을 낀 양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누워 있는 여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괴로워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고는 세신사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몸을 내맡겼다. 세신사는 비누 거품을 내 여자의 몸을 꼼꼼하게 닦고 다시 물을 끼얹었다. 세신사가 퍽 소리 나게 등을 치자 여자가 기계처럼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갔다. 비어 있는 침상에 세신사가 물을 뿌렸다. 여자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이 물에 쓸려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각질과 머리카락, 물에 뜬 허연 기름때가 배수구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수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름때가 들러붙어 더러워진 배수구와 바닥 타일에 다시 허연 각질과 머리카락이 흘러들었다.
    수연과 종은은 대욕장 구석에 있는 작은 유리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무숲이 두 개의 욕탕을 감싸고 있어 노천탕은 작은 정원 같았다. 욕탕과 나무숲 사이에는 군데군데 인조 바위가 놓여 있었고, 인조 바위 옆으로 꽃나무가 조밀하게 심겨 있었는데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다. 온천수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바람을 타고 휘어지며 욕탕 주변을 떠돌았다. 지붕 달린 히노키탕에는 아이와 함께 온 여자들이, 바위로 마감한 허브탕에는 중년의 부인들이 앉아 있었다. 종은이 이쪽저쪽 번갈아 보고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 수연이 몸을 부르르 떨자 종은은 손가락으로 허브탕을 가리켰다.
    저기 앉자.
    둘은 돌계단 옆 바위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물에서 페퍼민트 향이 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중년 부인들이 둘을 흘깃거렸다. 부인들 뒤쪽으로는 인공폭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배관을 따라 올라간 물이 바위에 파인 홈을 따라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수연의 가슴골에도 물살이 모였다가 밀려 나갔다. 종은은 물에 잠긴 자신의 빗장뼈를 내려다보고 등을 곧추세웠다.
    그래도 친구밖에 없구나. 여행도 같이 와주고. 수연이 미소 지었다.
    곧 좋아질 거야. 종은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수연은 감상에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종은을 보고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어려울 수도 있대.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를 앞에 앉히고는 눈을 똑바로 보더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수연이 말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증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뭐라는데?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거야.
    돌팔이 아냐? 종은이 기다렸다는 듯 화를 냈다.
    저명한 분이라니까 돌팔이는 아니겠지만 좀 그렇기는 했어. 진단서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눈빛이 여간 거만한 게 아니더라고. 아무튼 그 말을 듣는데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 병원비도 꽤 많이 나왔는데 좀 억울하기도 해서 용기 내 물어봤지. 그러니까 내가 죽는다는 겁니까?
    그랬더니?
    내가 죽는다는 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거야.
    의사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계속 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걸 알 수 있는데 희소병일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했어. 아직도 해야 할 검사가 많이 남아 있나 봐.
    의사들은 겁을 주는 게 버릇이 됐어. 수법이 아주 전형적이라고!
    알아. 하지만 겁이 나는 걸 어떻게 해.
    그래도 의사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이번에 상조보험에 가입했어. 다달이 돈을 내면 거기서 알아서 해준대. 보험이 있어야 죽어서도 안심한다기에 가입을 하긴 했는데 증서를 받는 순간 죽는다는 게 정말 실감이 나더라.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는 거야. 보험증서가 내 시체 같았다고나 할까. 품에 안고 엉엉 울었다.
    네가 왜 죽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잖아.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그래?
    그냥 하루하루 살아갈 생각이야. 생각하면 무섭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도 같거든. 보험증서만 어디 안 보이는 데다 잘 숨겨 놓으려고. 그게 안 보이면 사는 게 조금은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해. 수연이 말하고는 헤헤 웃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니?
    그럼 울기를 바라는 거야?
    둥그렇게 무리 지어 앉은 중년 부인들이 수연과 종은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이야기하는 소리가 조금씩 커지더니 나중에는 큰 소리로 바뀌었는데 주로 건강에 관한 말들이었다. 건강식과 건강보조제, 잘 먹고 잘사는 법과 병치레 없이 잘 죽는 법 등을 말하던 부인들은 화제를 운동으로 돌렸다. 부인 중 하나가 배드민턴을 치며 알게 된 회원들과 운동 후 브런치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떤다고 말했다. 다른 부인은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집에 들어가 저녁밥을 못 짓는다며 맞장구쳤다. 또 다른 부인은 아이들이 다 커서 이제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우울감 때문에 불면증이 생겼다고 걱정했다. 부인들은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서로에게 조언하듯 말하면서도 각자 생각에 잠겨 고개를 떨궜다. 부인 중 하나가 그런 이유로 브런치 카페에 가는 건 사치도 아니라고 경쾌하게 말했다. 나머지 부인들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수다만 한 것이 없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원래 집은 편안해야 하는데 나는 집에만 들어가면 그렇게 화가 나. 부인 중 하나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그래. 집은 스트레스의 온상이야. 챙겨야 할 인간이 수두룩하게 모여 앉아 우리만 보고 있잖아. 다른 부인이 동의했다.
    맞아. 치워야 할 건 왜 그렇게 눈에 띄는지. 확실히 집은 화가 날 일이 지천으로 깔렸어. 또 다른 부인이 말했다.
    다 그런 거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어디다 말도 못하고 혼자 울화통이 터질 뻔했는데 다 그렇다니 마음이 놓이네. 부인 중 하나가 안도했다.
    다 그래. 그러니 울화통이 터지기 전에 수다나 실컷 떨고 털어내야지 별수 있어?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니까 참으면 좋아지겠지. 다른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별일 없이 잘사는 거야. 또 다른 부인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 양 중얼거렸다.
    맞아. 별일 없이 살다 별일 없이 죽는 게 가장 행복한 거야. 다른 부인도 중얼거렸다.
    맞아. 못난 놈이 잘난 체한다고, 저 혼자 잘난 체해 봤자 결국은 외롭게 늙더라. 또 다른 부인이 눈을 끔뻑이며 중얼거렸다.
    맞아. 이 정도면 우리는 잘살고 있는 거야. 나머지 부인들이 다 같이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연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종은의 팔뚝을 톡톡, 건드렸다. 종은이 수연을 바라봤다.
    집주인이 돈이 없나 봐. 전세금을 못 주겠대.
    그게 아직도 해결이 안 됐어? 종은이 놀라 물었다.
    빚이 많아서 지금 당장 빼줄 돈이 없대.
    너는 늘 속더라.
    누가 그럴 줄 알았나. 전세금이 하도 싸서 이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은행에 다니는 남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좀 알아봐 주기로 했어. 그 사람이 그러는데 이번에 우리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더라고. 그래서 몇 번 더 만나 보기로 했어.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거기에 희망을 좀 걸어 봐야지.
    그게 누군데?
    이혼남이야. 애가 하나 있다는데 나한테 잘해 줘.
    결혼도 안 한 애가 애 딸린 이혼남이라니?
    주저앉은 코 때문에 일이 자꾸 꼬이는 것 같아. 수연이 손가락으로 콧대를 올리며 말했다. 코를 좀 높여 볼까?
    학교 다닐 때 네 얼굴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얘 좀 봐라, 너도 마찬가지야.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라. 남편은 아무것도 몰라.
    왜 모르겠어? 누가 봐도 이렇게 딱 티가 나는데.
    딱 티가 나다니?
    그러니까 뭐랄까, 성형한 얼굴의 전형이랄까?
    얘 좀 봐라, 전형으로 치면 네가 더 전형이야.
    아무튼 나는 좀 더 예뻐지기로 했어. 예뻐져서 그동안 못해 본 거 다 해보려고. 운동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고, 닥치는 대로 연애도 할 거야. 애인이 생기면 둘이 같이 다니면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하고 싶은 것도 죄다 할 거야.   
    그건 좀 낭만적이다. 그런데 뭐 하고 싶은데?
    이제 생각해 봐야지. 수연이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다. 생각났어! 해외여행!
    아, 나도 가고 싶다! 그런데 어디?
    글쎄, 어디로 갈까. 눈동자를 굴리던 수연이 외쳤다. 스페인!
    스페인? 거긴 뭐가 좋은데?
    그냥 좋잖아. 먹을 것도 많고. 수연이 해맑게 웃었다. 정열의 나라.
    나는 그런 낭만을 잊은 지 너무 오래됐어.
    그런 말 말아라. 나는 네가 부러워.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못 낳고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는 게 좀 무서워. 죽을 게 두려워서 요즘은 아무것도 못한다. 이러다 사는 것도 망치고 죽는 것도 망칠 것 같아. 그래서 재미있게 살자고 매일 다독이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살게 두지를 않아. 다들 나를 죽을 사람 취급한다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종은이 수연을 다독였다.
    아프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연락을 끊어버리더라고. 전에는 모임 회비 내라는 연락도 자주 오더니 이제는 모임이 있어도 연락이 안 와. 그러면서도 부모상이나 조부모상 같은 부고는 꼬박꼬박 들어오더라. 모임에는 나오지 말고 부고만 챙기라는 건지. 아무래도 나를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봐.
    그건 건강해도 마찬가지야. 재미있지가 않아.
    수연의 눈에 눈물이 맺혔을 때 종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둘은 훌쩍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허공에 뜬 뿌연 증기가 둘의 시야를 가렸다.   
    남편한테 전화해야 하는데, 귀찮네. 종은이 훌쩍거리다 말고 말했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 소유당하고 싶어. 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연애를 너무 오래 했어. 이제는 나한테 정성을 안 들여. 정말로 오래된 부부 같다니까. 남편이 이번에 생일선물을 건너뛰더라고. 나 정말 충격받았어.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내가 막 뭐라고 하니까 다음날 꽃다발 하나 달랑 사서 들어오더라고. 꽃으로 때려 줄까 하다가 관뒀어. 그것 때문에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여기 오려고 내가 먼저 말 걸었어.
    생일을 그냥 넘기는 건 너무했다. 꽃다발 하나로 때우려고 하다니.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돈을 모으고 있긴 한가 봐. 나중에 유럽 여행 데려간다고. 그거나 기대해 봐야지.
    하긴 선물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건데 결혼하면 그게 잘 안 되나 봐.
    꼭 그런 건 아니고 평소에도 선물을 주기는 해. 그래도 특별한 날은 기억에 남잖아.
    무슨 선물을 받았는데?
    종은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수연을 바라보다 천천히 대답했다.
    얼마 전에 너 아프다는 얘기 듣고 나도 건강에 신경 좀 써야겠더라고. 그래서 남편한테 말했더니 요가 프로그램 끊어 줬어. 운동해서 건강하게 살아야지.
    이번에는 수연이 침울한 얼굴로 다른 데를 쳐다봤다.
    여자아이 둘이 욕탕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한 아이가 뛰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본 다른 아이도 같이 뛰었다. 수증기를 헤치고 나온 아이가 탕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아이도 풍덩거리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잔잔하던 허브탕에 물결이 일었다. 수연과 종은의 얼굴에도 물이 튀었다. 신이 나서 까르르 웃던 아이들이 수연과 종은을 힐끗 보고는 다시 물장구를 쳤다. 중년 부인들이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엄마 옆에서 놀아라. 부인 중 하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없어요! 한 아이가 되받아치자 다른 아이가 킥킥댔다. 엄마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또 다른 부인이 화를 냈다. 아이들은 대꾸하는 대신 깔깔거리며 탕 밖으로 뛰어나갔다. 중년 부인들이 아이들을 바라봤다. 수연과 종은도 아이들이 뛰어간 쪽을 바라봤다.
    히노키탕에는 여섯 개의 수중 안마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여자 셋과 아이 하나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여자가 뛰는 아이들을 향해 그만 뛰라고 소리쳤다. 다른 아이가 시무룩해져서 탕 안으로 들어갔다. 한 아이는 탕 주위를 맴돌며 소리 내 웃었다.
    춥지도 않은가 봐. 꽈배기 모양으로 머리를 올려 묶은 여자가 뛰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우리 애가 확실히 달라졌어. 비실비실했잖아. 물결 모양의 머리를 한 여자가 뛰고 있는 아이를 보고 말했다.
    그랬나?
    그랬지. 실은 몸에 좋다는 걸 어렵게 구해서 먹였잖아.
    뭘 먹였는데? 꽈배기 머리가 관심을 보였다.
    비밀이야.
    같이 좀 알자.
    물결 머리가 주저하다가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목욕도 함께하는 사이니까 내가 특별히 알려주는 거야.
    꽈배기 머리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물결 머리를 바라봤다. 옆에 있던 단발머리 여자도 물결 머리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물결 머리가 입을 열었다.
    요즘은 물범 한 마리 잡아 먹이지 않으면 애한테 죄짓는 거라는 말도 있어.
    물범? 꽈배기 머리가 소리쳤다.
    가격은 꽤 비싸도 효능이 좋아.
    우리가 물범 살 돈이 어디 있어. 단발머리가 말했다.
    그러니까 죄짓지 않으려면 부업이라도 해야지. 좋다는 건 다 해봐야 나중에 후회도 덜할 것 아냐.
    물결 머리가 계속 뛰는 아이를 향해 그만 뛰라고 소리쳤다. 꽈배기 머리와 단발머리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자신의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우리 애는 얼마 전에 마인드 케어 받았어. 꽈배기 머리가 불쑥 말했다. 그간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더라고. 아이한테도 그렇지만 부모한테도 좋은 것 같아.
    물결 머리와 단발머리가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꽈배기 머리를 바라봤다. 꽈배기 머리가 말을 이었다.
    케어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억 중에 가장 좋았던 게 뭐였는지 애한테 써보라고 시켰나 봐. 난 우리 애가 우리랑 다녔던 여행지에 관해 썼을 거라고 기대했거든. 왜, 방학이면 태국이고 일본이고 데리고 다녔잖아. 그런데 아니었어. 자기를 괴롭히는 애랑 말다툼해서 이긴 걸 적어 놨더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어.
    맞아. 애들은 우리 예상을 항상 비껴가. 단발머리가 수긍했다.
    맞아. 아이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물결 머리가 고개를 숙였다.
    처음 키우는 건데 당연하지. 그래도 상담 받고 처방대로 했더니 애가 밥도 잘 먹고 말도 잘 들어. 좀 차분해진 것도 같고. 게다가 몰랐던 재능도 하나 알게 됐잖아.
    그게 뭔데? 물결 머리와 단발머리가 동시에 물었다.
    케어 선생님이 집중력 발달에 도움이 된다며 피아노를 가르쳐 보라고 하길래 가르쳤는데, 음악 선생이 글쎄, 우리 애가 음악 신동이라는 거야. 꽈배기 머리가 웃었다.
    우리 애도 얼마 전에 스케이트 배웠는데 스케이트 선생이 우리 애가 스케이트 신동이라고 했어. 물결 머리가 웃었다.
    애가 셋 있는데 셋 다 신동이야? 이거, 사건인데. 사실 우리 애도 미술 신동이잖아. 단발머리가 웃었다.
    뛰던 아이가 계속 뛰었다. 한데 뭉쳐 떠다니던 증기가 아이의 움직임에 따라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물결 머리는 아이를 탕 안으로 끌어들이고는 자기 앞에 앉혔다. 지붕에 걸린 조명등에 불이 켜지고 등불 주변으로 빛무리가 졌다. 탁하고 누런 불빛이 아래로 쏟아졌다. 그들의 얼굴에도 갈색 그림자가 졌다. 한 아이가 지루해하며 탕에 설치된 붉은 버튼을 눌렀다. 욕탕 안에 공기 방울이 일었다. 거품이 수면에서 터지며 잔 물방울을 일으켰다. 아이들이 소리에 놀라 깔깔거렸는데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도 이번에 기억할 만한 사건이 생겼다. 수연이 종은의 어깨를 건드렸다.
    뭔데? 종은이 수연을 바라봤다.   
    며칠 전에 경찰서에 다녀왔어.
    참 별일이 다 생기네.
    예전에 만나던 남자가 나를 찾아왔더라고. 카페에서 이야기하는데 뭔가가 좀 이상했거든. 나사가 하나 빠진 느낌이랄까? 그 남자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그 남자의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봤지. 정말 놀라운 얘기를 해주더라. 그 남자가 그새 결혼을 했는데 와이프가 그 남자를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감금시켰다는 거야. 그런데 그 남자가 탈출을 감행해서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지 뭐야. 그러면서 나한테 도망 못 가게 꼭 붙들고 있으라는데 정말 난감했어.
    요즘 가게는 잘 되는 거야?
    학생들 상대로 액세서리 파는 게 뭐 그렇지. 그래도 요즘은 액세서리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어.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까 좋겠다.
    그래서 말이야. 수연이 종은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커피도 사주고 밥도 사주면서 좀 데리고 있었더니 경찰이랑 그 남자 와이프가 진짜로 들어오더라고. 그 남자가 얼마나 무섭게 말을 하는지, 정말 얻어맞지 않은 게 다행이었어. 경찰서에 여덟 시간이나 붙잡혀 있다가 나왔잖아. 그런데 그게 참 묘하더라. 겁이 나면서도 은근히 재미있더라고. 살아 있으니까 이런 일도 다 겪는구나 싶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사건이 점점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거야. 희한하지? 왜 그런지는 몰라도 기념해야겠다 싶었는데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 그걸 또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그냥 나를 위한 선물을 하나 샀어. 수연의 볼이 발그레하게 빛났다.
    병원비 때문에 돈도 없는 애가?
    그러니까 육 개월 할부로 샀지.
    그게 이자가 얼만데?
    이자는 조금 비싸지만 한 번에 내는 것보다야 낫잖아. 죽기 전에 효도하려면 우리 엄마도 하나 사드려야 할 텐데.
    어머니도 너 때문에 힘드시겠네.
    엄마 때문에 내가 힘들지. 내가 아픈 뒤로 엄마는 교회에 나가 기도하느라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를 않아. 덕분에 집안이 엉망이 됐어.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요즘은 라면만 먹는다. 그래도 라면 끓이는 실력이 제법 늘었어. 이것저것 넣어 보면서 다른 맛을 찾아보려고 애쓰는데 그것도 재미있더라. 집에 가면 다양한 방법으로 라면을 끓여 보는 게 일상이 됐어. 수연이 말하고는 종은의 어깨를 쳤다. 그런데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아무래도 신경 쓰여 안 되겠어. 남편한테 전화 좀 하고 올게.
    아까도 했잖아?
    실은 남편이 화가 많이 났어.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데 어떻게 해, 달래 줘야지.
    탕에서 벌떡 일어서는 종은의 몸에서 물방울이 튀었다. 수연이 종은을 바라봤다. 종은이 수연의 시선을 모른 체하고 탕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세신사가 노천탕으로 걸어 나왔다. 백이십삼번! 세신사가 출입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물결 머리가 제 아이를 데리고 세신사를 따라 욕장으로 들어갔다. 종은이 그 뒤를 좇아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수연은 출입문 쪽에 시선을 둔 채 멀뚱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햇빛이 수면에 촘촘히 박혀들어 얇고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는 수면 아래서 굴절돼 빛살처럼 퍼져 나갔다. 물결무늬 그림자를 바라보던 수연은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면 위에서 사선으로 기울어진 빛줄기가 다양한 색과 형태로 쪼개졌다. 빛줄기는 수증기를 통과해 나무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바람이 일정하지 않은 리듬으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수연이 바람 소리에 맞춰 물에 잠긴 발목을 까딱까딱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중년 부인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우리 집 위층에 사는 사람들은 좀 시끄러워. 시도 때도 없이 쿵쿵거리는 데다 얼마 전부터는 개까지 짖어. 부인 중 하나가 토로하자 다른 부인들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밤낮 가리지 않고 피아노를 쳐. 엘리베이터에 경고문이 나붙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게다가 우리 옆집은 복도가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나 봐. 쓰레기를 복도에 내놔. 뭐라고 좀 하려고 관리실에 갔더니 관리소장이 나를 보고 마침 잘 오셨다는 거야. 우리 집으로 항의가 들어왔대. 애들 뛰어놀지 못하게 하라는데 남편이 그런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냥 알았다고 하고 돌아왔어. 카펫을 깔든지 슬리퍼라도 신겨야지 창피해 못살겠네. 제각각 이야기하는 부인들의 목소리가 하나의 목소리처럼 이어졌다. 부인들의 목소리에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요즘 분열증이나 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이 꽤 많아. 겉은 멀쩡해 보여도 집에서는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무섭지. 사회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런 사람들은 병원에 보내야 해. 내가 아는 사람은 이런 거 저런 거 죄다 싫다고 제주도로 갔어. 남편이 강박증 걸린 사람처럼 자꾸 진심이 뭐냐고 물어서 이혼했다는 거야. 결혼 전에 사진을 찍었다는데 그 일을 다시 시작했대. 진심을 말하면 되지, 왜 이혼을 하고 그래? 제주도도 사람 사는 곳인데 거기 가서 사진을 찍으면 뭐 하겠어? 혼자 외롭게 살 텐데.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다시 중년 부인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모두 누군가를 걱정했고 그런 다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이해하는 체했다.
    수연이 물속에 잠겨 있는 발을 움직여 물장구를 쳤다. 수연의 발끝에서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부인들은 수연을 일부러 빤히 쳐다봤다. 히노키탕에 유령처럼 앉아 있는 아이들도 수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종은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고는 서둘러 욕장 밖으로 나갔다. 직원이 판매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평상 아래 마룻바닥에서 중년 여자가 잠을 잤고, 평상에 앉은 노인 둘은 입을 벌린 채 드라마를 시청했다. 종은이 종종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쳐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종은은 똑같은 형태의 사물함 사이에서 자신의 사물함을 겨우 찾아내 외투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종은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남편과 통화하는 종은의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수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내용도 약간 부풀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럼 라면을 끓여먹어! 종은이 전화를 홱 끊고는 스마트폰을 사물함에 내던졌다. 몸이 아픈 애도 저렇게 재미있다고 잘사는데! 화가 난 종은이 말하고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놀라 주위를 살폈다. 종은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뾰로통해진 종은이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욕장 안으로 들어갔다.
    물결 머리가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때를 밀어야 깨끗한 어린이가 된단다. 노인 중 하나가 말했다. 샤워기 아래서 비누 거품을 내던 중년 부인은 아이를 향해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는 울면서도,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결 머리의 표정을 살폈다. 울음이 잦아들자 세신사가 아이를 번쩍 들어 침상 위에 눕혔다. 아이가 놀라 버둥거렸다. 세신사는 아이의 몸에 물을 끼얹은 후 때수건을 낀 양손을 민첩하게 놀렸다. 아이는 몸을 뒤틀며 악을 쓰다 팔을 축 늘어뜨렸다. 물결 머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복부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어서 왔어? 욕탕 좌대에 누워 있던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종은에게 물었다.
    여행 왔어요. 종은이 머뭇거리다가 대꾸했다.
    아이고. 그럼 힘도 좋겠구먼. 나 여기 등 좀 밀어 줘. 노인이 씨익 웃었는데 앞니가 하나도 없었다.
    전 일행이 있는데요.
    내가 힘이 없어서 그래.
    아까도 밀었잖아요?
    예끼! 그게 아흔 먹은 늙은이 앞에서 할 소리야?
    네?
    복 받을 거야.
    복이라고요?
    두어 번만 밀어.
    종은은 쭈뼛거리다 노인이 내민 때수건을 받아들었다. 노인이 등을 내보였다.
    궁둥이도 좀 밀어. 관절염 때문에 오일에 한 번 오는데 요즘 관절염이 도져서 통 오지를 못했어. 근처 살아?
    여행 왔다고 아까 얘기했잖아요.
    젊을 때부터 건강을 챙겨야 해. 나는 매일 먹는 약이 스무 알은 돼. 우리 손주가 약을 많이 보내줘. 요즘은 무슨 약이 좋아?
    글쎄요. 종은은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저는 한약 먹어요. 임신에 좋대요.
    안 들려. 크게 말해! 귀가 먹었어. 노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귀먹으니까 할아범이 딴살림 차렸다가 들어왔어. 나를 간호해 준다는 거야. 요새는 잘해. 애는 있어?
    아직 없어요.
    뭐 하느라 결혼을 안 했어?
    결혼은 했는데 애가 아직 없다고요.
    종은이 큰 소리로 말하고는 노인의 등에 물을 끼얹었다. 앙상하게 굽은 등이 벌겋게 부풀었는데 밀려 나온 때는 없었다. 종은이 노인의 손바닥에 때수건을 올려놨다.
    수건이 여기 있었는데 없어졌네. 노인의 시선이 종은의 손에 가 닿았다가 주위에 있는 노인들에게로 옮겨갔다.
    거기 있잖아! 옆에 있던 노인이 턱짓으로 노인의 엉덩이를 가리켰다.
    어디?
    똥구녕에! 이번에는 다른 노인이 외쳤다.
    아이고, 깔고 앉았었네.
    노인들이 키득거리자 여기저기서 붉게 부푼 등이 들썩거렸다. 수건을 찾은 노인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는데 주름진 입술이 목구멍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종은은 노인의 입술과 노인이 깔고 앉은 수건을 번갈아 보다가 몸서리를 쳤다. 욕장 문이 열렸다. 찬바람이 훅 끼쳐 왔다. 증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자 구부리고 앉은 사람들의 알몸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고개를 홱 꺾어 입구에 서 있는 외국인을 주시했다. 여행자로 보이는 외국인 둘이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욕장 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물이 차가워졌어! 누군가 외쳤다. 낭패로군. 관리가 엉망이야! 사람들이 제각각 투덜거렸다. 외국인 둘은 어리둥절해져서 구석에 있는 샤워 부스로 걸어갔다. 샤워 부스에서 몸을 씻던 여자가 목욕 의자가 있는 거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는 거울에 비친 외국인을 힐끔거렸다. 나란히 이어진 거울은 옆에 있는 사람들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뒤편에 있는 거울이 다른 거울을 되비쳤고, 다른 거울 안에서 비슷비슷한 알몸이 끝없이 늘어났다. 끝없이 늘어난 몸은 또 다른 거울에 비쳐 더해지고 보태져서 모두 다 같은 소리를 냈다. 소리는 수증기에 실려 한 방향으로 휩쓸리다가 거울이나 벽면, 유리창에 부딪혀서 천장 아래 고였다. 하나로 고인 커다란 소리는 익숙해서 편안한 소음처럼 욕장 안에 고루 퍼졌다.
    종은은 젖은 발바닥을 찰박거리며 노천탕으로 뛰어갔다. 히노키탕에는 여자 둘과 아이 둘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고 허브탕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탕 안에서 불쑥, 물살을 가르는 희고 긴 팔이 드러났다. 날렵한 손바닥이 물을 끌어당기자 몸 주위에 크고 작은 물결이 일었다.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은 허공에서 잘게 부서졌다. 수연이 헤엄치고 있었다. 물결은 흰 거품을 내며 수연의 몸 뒤에서 사라졌다. 둥근 엉덩이에서 허벅지, 물을 내리치는 발끝에도 석양빛이 부서졌다. 빛을 받은 수연의 몸은 비늘처럼 반짝였다. 수면 위에서 펼쳐지거나 오므라드는 머리카락은 촉수를 내뻗는 해파리 같았다. 욕탕 끝에 다다른 수연이 발가락에 힘을 모아 벽을 찼다. 수연이 잠영했다. 수면 아래서 수연의 몸은 물고기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구름 사이에서 쏟아진 붉은 빛이 수연과 함께 이동했다.
    종은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수연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태양빛을 받은 수연의 얼굴은 눈부셨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종은을 본 수연의 낯빛이 느닷없이 바뀌었다. 얼굴은 노인처럼 주름졌고, 비틀린 목에도 주름이 잔뜩 졌다. 탄력을 잃은 볼은 움푹 파였다. 입술은 검었고 눈두덩은 우묵했다. 그 안에 탁한 눈동자가 박혀 있었다. 종은은 우두커니 서서 유리 너머에 있는 대욕장을 바라봤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도 바라봤다. 수연이 손짓하며 탕으로 들어오라고 외치고 있었다. 종은은 어정쩡하게 서서 뒷걸음질 치다가 수연에게 다가갔다.
    남편이 뭐래? 수연의 어깨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잘 놀다 오래. 종은이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
    아까 그 할머니 등 밀어 줬어. 종은은 유리창 너머 대욕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할머니, 좀 전에도 밀었잖아.
    등을 내미는데 하는 수 없었지. 연세가 아흔인데 몸이 아파서 몇 주 동안 못 왔대.
    때가 많았겠는데?
    아니, 때는 전혀 없었어.
    때도 없는데 왜 자꾸 때를 밀어?
    때보다는 때를 미는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았어.
    웃기는 할머니네.
    수영은 언제 배웠어? 종은이 손가락을 물에 넣고 천천히 휘저었다.
    보험증서 받고서. 아직 잘 못하는데 물에 들어가면 재미있어.
    수영할 때 예쁘더라.
    코가 높지 않아도? 수연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잡고 비틀었다.
    응.
    다른 데로 가볼래?
    종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나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 종은이 몽롱한 눈으로 수면에서 피어나는 증기를 바라봤다. 그래도 말이야, 난 정말 고양이가 싫어. 특히 눈이 무서워. 눈동자는 동그래야지, 세로로 길쭉하면 안 되는 거잖아. 종은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그래도 모든 게 다 좋아지겠지.
    종은의 입에서 허연 김이 빠져나왔고, 바위에 걸쳐 놓은 한쪽 팔이 스르르 미끄러져 물에 잠겼다.
    나는 있잖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누가 좀 가르쳐주면 좋겠어. 다들 나를 죽을 사람처럼 대하니까 정말 죽은 사람 같다고나 할까. 수연이 허공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지만 나는 아직 죽은 게 아니잖아. 수연이 훌쩍훌쩍 울었다. 종은아, 자는 거야?
    수연이 물었지만 종은은 죽은 사람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연은 퀭한 눈으로 자신의 몸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날은 조금 더 어두워졌고, 바람은 차고 부드러웠다.

 

 

 

 

 

 

 

 

 

 

 

 

 

 

 

작가소개 / 최정나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전에도 봐놓고 그래」가 당선되어 등단.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

 

   《문장웹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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