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라이닝 외 1편

[신작시]

 

 

실버라이닝

 

 

조윤진

 

 

 

    알 수 없는 구절이 레터링 된 티셔츠를 나눠입었지
    뜻을 알고 나면 실망할지도 몰라

 

    컵에 맺힌 물방울이 탁자를 적실 때까지
    멀어지고 멀어지다
    말라 가는 시간

 

    지하철 틈 사이로 발이 빠지는 상상을 하자
    네가 내게로 왔다

 

    헐레벌떡 뛰어오른 마지막 승객처럼
    어쩌다 씹어버린 입안의 살처럼

 

    콧노래를 잘 흥얼거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함께 조금 먼 길을 가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늘 같은 메뉴를 고르던 내게
    그런 건 반칙이야, 너는 말했지

 

    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목젖이 보이는 사진들과
    미처 숨기지 못했던 다정한 벼랑들

 

    멈춰 세워지지 않는 마음들이 떨어진다

 

    이런 마음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이럴 때는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나를 봐, 내 너머를 보지 말고
    나를 봐

 

    가로등이 놓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잔상들에 발이 빠진다

 

 

 

 

 

 

 

 

 

 

 

 

 

 

꽃말

 

 

 

 

    물을 주지 않으려고 기르는 식물이라고 했다
    그건 기르는 게 아니잖아요 물을 주지 않으면 왜 기르죠?

 

    아이, 그런 말이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물은 그냥 적당히
    꽃집 주인이 대답한다

 

    내가 데려가면 죽이고 말 거야
    내 방에 살아 있는 건 나 하나뿐인데

 

    아스팔트 위 물웅덩이에 잠기는 발바닥
    물러질 때
    발목에 스치는 바람이 따뜻하다

 

    여전히 서 있는 몇 개의 다육이
    그런 단위로 너희를 세어도 되는 걸까

 

    괜찮은 사람이 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요리 같은 건 싫어해
    서술형 답안지 같은 것도 싫은데
    적당히를 모르니까

 

    잠에서 깨 냉장고의 물을 꺼내 마시다가
    어깨에 떨어지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맞고 있다가
    너희를 떠올릴 수 있을까 내가

 

   지나치도록 고요하게
    정오가 지나간다
    한 개의 정오가 갈라지는 사이

 

    발바닥이 마른 뿌리를 이해하는 일
    같은 햇살에 잎과 어깨가 젖어드는 일

 

    가져 본 적 없는 꽃말에 대해 생각하기로 한다

 

 

 

 

 

 

 

 

 

 

 

 

 

 

작가소개 / 조윤진

2018년 《한국경제》 신춘문예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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