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도어 외 1편

[신작시]

 

 

스크린 도어

 

 

박정은

 

 

 

    나는 기차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투명한 문은 어느 불투명한 문보다 견고했다. 커다란 바람소리와 함께 기차는 국경을 넘었다. 산으로 향했다. 나의 내면은 길고 좁고 캄캄한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자정에는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속에 웅크린 몸이 있었으니까. 낮고 어두운 곳을 계속 걸으면 다음 기차역에 도착하지 않을까. 깬 잠을 다시 청했다. 음악을 켜두었고, 핸드폰 불빛이 머리맡에서 빛났다. 잠이 들면 나는 다시 투명한 문 앞에 선다.

 

    먼 산속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투명한 문 앞에서 서면, 절벽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다만 아주 얇은 바람 한 겹이 나를 막아 주었을 뿐. 건너편에는 친한 친구에게 속삭였던 산이 보였다.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대답이 없고.

 

    '회색 건물은 나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손목시계를 풀자, 손목에 가느다란 혈관이 다 비쳐 보였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시원한 바람이 내면처럼 비좁은 통로를 빠져나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Love is our resistance*

 

 

 

 

    언젠가 한 여자는 면도하며 휘파람 부는 너를 윗집 남자라고만 여기겠지. 주말이라 느긋하게 욕조에 앉아 잡지나 읽는, 얼굴 없는 가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

 

    화장실 파이프의 벽면을 이리저리 부딪치며 굴절된 허밍.
  공중의 문에 귀를 기울이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철길처럼 이어지는 멜로디. 철로를 뜯어 사다리 삼아 위층 남자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너의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명멸했어.
  마음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혀 끊어질 듯 이어진 문장들이 스스로 메아리치듯이, 화장실 파이프처럼.

 

    우리의 사랑은 화장실 파이프를 통해서 피어났지. 온통 더럽고 희미하게 울려대는 울음이 위층과 아래층을 잇는 유일한 멜로디였어.

 

    우리는 달렸지. 같은 골목을 달리고 또 달렸지. 끊어질 듯 이어지며 아슬아슬하게 달렸지. 파이프처럼 좁고 기다란 우리들의 하루를 달렸지. 고개를 들 수 없어 엎드린 채 달렸지. 손을 잡을 수 없어 발을 잡은 채였지. 옆은 없고 컴컴한 앞뿐이었어.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랑이었지. 투명한 건물을 구획하듯이 우리의 오래된 도시를 속속들이 달렸다. 하늘이 건물을 삼키는 저녁이 될 때까지, 밤이 내려서 우리의 키가 납작해질 때까지.

 

    번뜩이는 건물 그림자로 숨어 둘이서 뒷골목으로 도망치는 것도 시위의 한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   Muse의 곡 Resistance 가사.

 

 

 

 

 

 

 

 

 

 

 

 

 

 

작가소개 / 박정은

2018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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