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이화정

 

 

 

    아버지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침대에 앉아 있다. 은영이 팔꿈치로 툭 건드리자 몸이 비스듬히 기울더니 허리를 중심으로 상반신은 침대에 발은 바닥에 닿은 채 엎어졌다. 은영은 대통령을 꿈꾼 적도 없지만 벌거벗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 서 있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산다는 것이 조금씩 발랄함과 멀어지는 일이라면 지금 은영은 아주 오래 산 기분이었다. 털썩, 바닥에 앉았다. 접은 무릎을 팔로 감쌌다. 창밖의 구름이 아버지 몸에 음영을 만들며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항문이 드러났다.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양쪽 엉덩이에 길이가 같은 칼집을 넣어 그 내심을 칼로 콕 찍으면 벌건 수박 속살 같은 항문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은영은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심장은 혈액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경계끼리 신호를 주고받는 중인지도 모른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버지는 죽었다. 은영이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방은 조그만 실험실 같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를 목표로 신약 개발에 힘쓰는 중소기업의 팀장이었다. 아버지 책장의 상당부분은 실험기구와 기자재들로 채워졌는데, 실제 연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인테리어였다. 은영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사각 비커와 메스실린더 사이에는 둥근 플라스크가 놓여 있었는데, 그 오른쪽 모퉁이에 은색 철제함이 보였다. 손바닥만 한 상자는 몸체가 거의 가려져 있었다. 은영은 길게 팔을 뻗어 손가락을 더듬거리며 힘겹게 그것을 집었다. 붉은 십자가 장식이 있는 뚜껑을 열었다. 비닐 지퍼 백에 희고 미세한 가루가 봉해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꼭지를 비틀어 개봉하는 증류수 앰플 몇 개, 그리고 주사기 두 개가 함께 들어 있었다. 가루에 코를 갖다 댔다. 연한 건초향이 났다. 이것은 은밀하고 나쁜 어떤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거실로 나오자 은영을 위한 생일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일 초는 케이크 몸체를 지저분하게 물들이며 녹아내렸다. 사랑하-는 으-녕-이 생일 추욱-하 합니다. 그녀의 노래는 미적지근했다. 빈 케이크 상자에 아버지 방에서 가지고 나온 은색 함을 넣었다. 끈으로 상자를 묶고 마지막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 은영은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챙겨 집을 나왔다.
    조그만 배낭을 메고 옆구리에 케이크 상자를 낀 은영의 모습이 쇼윈도에 비쳤다. 친구 생일에 초대받은 학생 같았다. 조금 전까지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있던 사람 같지는 않았다. 마음에 들었다.
    정류장의 그녀 앞으로 버스들이 멈췄다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은영은 갈 곳이 없었다. 자신 옆에 서 있는 광고 스탠드에서 정보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구인광고란을 펼쳤다. '입주 간병인 구함. 자격증 불필요. 가족같이 지낼 분.' 정류장 벤치에는 은영밖에 없었다. 멀리서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은영이 일어섰다.

 

 

 

    현관문이 열리고 은영을 맞이한 것은 휠체어에 앉은, 목만 살아 있는 남자였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배경처럼 우르르 서 있었다. 그 남자에게서 가족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겉모습에 당황한 것은 은영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렇게나 자른 짧은 머리에 스모키한 화장, 스터드 장식의 가죽잠바를 입은 방문객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구인광고 보고 왔는데요."
    은영이 입을 열자 가족들의 눈도 커졌다. 마치 그녀의 혀 피어싱이 그들을 찌른 것처럼.
    "일단 들어오시죠."
    목만 살아 있는 남자가 그렇게 말하자, 가족들은 은영에게서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족들과 다 같이 지내는 것은 아니에요. 이 집에서 나와 아가씨만 생활하게 됩니다. 괜찮겠습니까?"
    이 사람들과 다 같이 사는 것은 곤란하겠다, 는 은영의 생각을 읽은 것마냥 남자가 물었다. 대답을 하려는데 가족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호감을 보이는 남자가 그들을 다급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간병해 본 경험 있어요?"
    "얘를 들어 올려 씻기고 해야 하는데, 몸이 너무 약하지 않나?"
    "어려 보이는데, 변 처리까지 할 수 있겠어요?"
    잘할 수 없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이 은영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지만, 그들의 마음을 받아 주기에는 그녀의 처지도 만만찮았다.
    "해볼게요."
    남자는 엷게 미소 지었으나 가족들은 재앙을 겪는 얼굴이었다. 그중 엄마로 보이는 늙은 여자는 급기야 문을 꽝 닫고는 나가버렸다. 나가기 전에, 몸을 홱 돌려 남자를 쏘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또, 저런 애냐!
    그렇게, 남자와 은영의 어정쩡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문,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은영 또한 특별히 할 얘기가 없었으므로 그들의 생활은 조용했다. 문의 몸은 뒤틀리거나 기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사고로 인한 장애 같았다. 짙은 눈썹과 단단한 턱은 차갑고 반듯했다. 저음으로 간략하게 용건만 전하는 말투 또한 단호하고 확고해서 종종 그가 그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졌다는 것이 은영은 믿기지 않았다. 방심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양팔을 벌려, 서프라이즈! 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것만 같았다.
    문은 혼자서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양치를 하거나 면도를 할 수도 없었다. 아주 노력하면 팔을 약간 들어 올려 손가락을 구부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힘이 잘 실리지 않아 팔이 허공에서 괜한 진자운동 몇 번을 하고서야 가능했다. 그렇게 간신히 노트북 자판을 눌러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책장을 넘겨 독서를 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은영의 일은 간단한 식사준비와 자질구레한 청소, 그리고 단순한 간병이었다. 문의 아파트는 꽤 큰 평수지만 휠체어가 다니기 쉽게 바닥의 턱을 모두 없애서 청소가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는 배설을 의식해서인지 많이 먹지도 않아 요리도 별반 할 게 없었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문의 바지를 내리고 소변 통을 갖다 댈 때마다 기막히게 은영의 손길을 감지하는 그의 성기였다. 전신이 마비된 상태에서 그것이 반응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지만 문은 모르는 척, 은영은 태연한 척했다.
    은영은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들로 문의 밥상을 차렸다. 짧은 모히칸 스타일로 그의 머리를 바꿨다. 아이돌에게나 어울릴 법한 옷들을 문에게 입혔다. 가끔씩 방문하는 그의 가족들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정작 문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문을 돌보는 날이 거듭될수록 은영은 모종의 평화를 느꼈다. 얌전한 일상이 좋았다.
    "이름이 뭐랬지?"
    문이 물었다. 걸레질을 하며 은영은 첫날, 즉흥적으로 내뱉었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내려 애썼다.
    "아니다. 됐어."
    조금 뜸을 들이다가 문이 다시 말했다.
    "운전할 줄 아니?"
    은영은 멈췄던 걸레질을 하며 되물었다.
    "알면요?"
    그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든 가자."
    은영도 문득 궁금하던 것이 생각났다.
    "또 저런 애, 는 누구예요?"
    문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잠깐 생각했으나 곧 알아들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순순히 대답했다.
    "아내."
    문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알코올중독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과 어린 나이에 보호소로 보내졌던 경험을 얘기했다. 아내는,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충격과 혹독함을 가감 없이 그에게 전했다. 문이 사랑에 빠진 것은 정확하게 그 지점이었다. 그는 아내의 어두운 그림자, 그 그늘에 끌렸다.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쓴 힘도 거기에서 나왔다. 문은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헌신적인 구원자가 되어 그녀를 뒤덮은 모든 우울과 어둠을 걷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처음 은영이 차를 몰고 간 곳은 집과 가까운 수목원과 미술관 정도였다. 그러나 그와 외출을 꺼리던 다른 간병인들과 달리 은영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자 문은 조금씩 더 먼 곳으로 가길 원했다. 그렇게 그들의 외출은 여행이 되었고 문의 말대로 어디든 갔다. 차창을 내리고 속도를 높이면 세상의 모든 바람이 그들에게 불어오는 것 같았다. 과거의 은영이 마구 흔들린 채 코르크 마개 아래 갇힌 샴페인 같았다면 지금은 잔잔히 흐르는 강물 앞에 나와 앉은 기분이었다. 힐끗 쳐다본 문의 시선은 언제나 밖을 향해 있었고, 생각에 잠긴 듯한 그의 옆모습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짧은 여행의 어느 날이었다. 간병의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목욕이었다. 그것은 은영의 일과 중 가장 비중 있는 것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문에게 청결한 피부 유지는 필수였다. 조금만 방심해도 욕창이 생겼다. 목욕 후에는 재빨리 물기를 말려 체온을 유지하는 것 또한 아주 중요했다. 면역력이 약한 문은 사소한 감기도 곧바로 폐렴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에게 치명적인 병이 될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감기로 문이 몇 번 입원한 후 은영은 강박적으로 이 일에 예민했다. 여행지에서 그를 씻기는 일은 더욱 그러했다. 욕조의 구조나 샤워기 사용법이 조금씩 달라 서툴렀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이미 문의 옷을 벗겼는데 막상 씻기려니 물 사용법이 헷갈렸다. 은영은 그의 벗은 몸이 걱정되었다. 일단 그를 먼저 욕조에 눕혔다. 그리고 온수 버튼을 눌러 욕조를 채워 나갔다. 문의 몸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 은영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눈을 감는 문을 뒤로 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저녁을 준비하는 은영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젠 요리도 제법 능숙해져 곧잘 그럴싸한 밥상을 차려내곤 했다.
    식사 준비를 거의 끝내고 은영은 다시 욕실로 갔다. 어느 정도 피로가 풀렸을 문을 비누로 씻길 차례였다. 문은 눈을 반쯤 감은 채 몸을 물에 맡기고 있었다. 스펀지에 바디 클렌저를 묻혀 문의 몸으로 가져가다 은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몸에는 비눗방울 같은 수포가 터지기 직전으로 부풀어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온몸에 솟아 있는 그 물집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화상이었다. 은영은 물 온도를 체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았던 눈을 뜨며 문이 은영에게 미소 지었다. 은영은 그의 몸을 뒤덮은 수포와 그의 미소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은영이 손을 대자 수포는 기다렸다는 듯이 피를 밀어 올렸다. 은영은 일단 욕조의 물을 빼고 휴대폰을 찾았다. 몇 개 안 되는 번호도 손이 떨려 제대로 누를 수가 없었다. 상황을 파악한 문이 괜찮다고 했다.
    "괜찮아."
    은영은 두어 번의 실패 끝에 막 마지막 숫자를 누르려던 참이었다.
    "하지 말라고!"
    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제야 은영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문을 보았다. 은영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지 않아. 잊었어? 나는 전신마비야."
    은영이 거즈로 문의 몸을 닦아낼 때마다 살 껍질이 잘 구워진 식빵의 결처럼 벗겨졌다. 문은 거듭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몸을 가진 한 영원히 괜찮지 않은 거라고, 은영은 생각했다.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성실하고 근면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 눈에는 그랬다. 은영은 생리를 시작했고 가슴선이 옷 밖으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외모가 사진 속의 엄마와 아주 비슷해지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밤이었다. 은영은 거실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중간고사가 코앞이었다. 아버지가 다가왔다. 술 냄새는 나지 않는데 눈은 취해 있었다. 아버지는 은영의 손을 다짜고짜 낚아챘다. 은영의 손에는 그대로 수학문제집이 들려 있었다. 은영을 침대 위로 던지듯 내팽개쳤다. 얼결에 딸려온 문제집이 펼쳐졌다.
    <일정한 속력으로 달리는 기차가 길이 430m의 터널을 완전히 통과하는 데 20초가 걸리고, 길이가 720m의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가 30초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차의 길이는 얼마인가?>
    은영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우선 기차의 길이를 x로 두었다. 아버지는 은영의 뒤에 있었다. 길이가 430m인 터널을 완전히 통과하는 데 20초가 걸렸으니 . 아버지가 바지 지퍼를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길이가 720m인 터널을 통과하는 데는 30초니까 . 아버지는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기차는 일정한 속력으로 달리므로 = . 그 소리는 점점 속도를 냈다. 양변에 60을 곱하면 3(430 + x) = 2(720 – x). 허어억, 억! 1290 + 3x = 1440 – 2x. 5x = 150. 기차의 길이는 30미터였다. 은영이 건너야 할 터널은 그보다 길었다.
    은영에게는 처음부터 엄마가 없었다. 은영은 엄마를 몰랐다. 나를 보는 아버지는 나를 보고 있지 않다고, 은영은 어릴 때부터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찾는 것은 엄마라는 것을. 은영을 낳다 죽은 엄마를 은영이 잡아먹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은 언제나 화가 나 있었다. 은영은 엄마를 모르고, 자신에게서 엄마를 찾는 아버지도 알 수 없었다. 모르거나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사는 일은 즐겁지 않았다. 유령의 집 같았다.
    은영은 성폭력위기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내 친구 얘긴데요, 로 상담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간다 해도 출소하면 은영은 아니 은영의 친구는 다시 아버지와 살아야 된다고 상담사는 말했다. 법이 그렇다고 했다. 아버지가 유일한 보호자이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은영은 전화를 끊고 입을 오므리며 따라했다. 보. 호. 자.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가 은영의 몸을 어찌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은영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단지 은영의 치마를 벗기고 엎드려 있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 은영은 자꾸 항문이 아팠다. 엉덩이를 엉거주춤 걸치고 의자에 앉았다. 학생들 사이를 오가던 선생님이 치질이냐? 물었다. 반 아이들이 일제히 와, 하고 웃었다. 은영은 학교를 자주 빠졌다.
    그럼에도 은영은 이웃돕기 행사에는 꼭 참여했다. 식빵 모양의 저금통에 돈을 모아 기부하면 그 돈으로 가난한 나라 아이들을 돕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은영에게 용돈을 넉넉하게 주었다. 은영은 그 돈이 징그러웠다. 저금통의 돈이 쌓일수록 더 가난해지는 기분이었다. 피부가 까맣고 눈이 퀭한 아이들을 떠올렸다. 기쁘지 않았다.
    은영은 일 년에 한 번 피어싱을 했다. 그날은 엄마의 기일이자 자신의 생일이었다.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처럼 그날은 은영이 정한 절기(節氣)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념했다. 간판에 조그맣게 적힌 '타투&피어싱'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검은 소파에 정물처럼 앉은 주인이 있었다. 벽면을 채운 갈고리 모양의 귀걸이와 세공이 섬세한 여러 가지 은제품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그제야 주인이 굼뜨게 일어섰다.
    "피어싱? 타투?"
    주인은 노란 염색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다리가 길고 빼빼한 남자였다.
    "피어싱."
    "내 전공은 타툰데, 손님들이 실력발휘할 기회를 안 주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망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바늘이 이쪽 살을 뚫고 저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은영은 좋았다. 해마다 한 개씩의 구멍이 적금처럼 몸에 쌓였다.
    어리석게도 이제 끝났다고 은영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시시한 직장이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진 부품 조립공장의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을 때다. 야근을 막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던 어느 날,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니 생일이잖니, 얼른 집에 가자. 아버지가 은영의 손을 잡았다. 뱀처럼 미끈했다. 은영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예전보다 자주 취했다. 약을 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생일 케이크에서 초가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케이크를 손으로 뭉텅 떠 입으로 가져갔다. 끈적이는 손으로 벨트를 풀었다. 눈이 풀린 아버지가 은영에게로 다가왔다. 그 순간 아버지의 발이 서로 엉키며 비틀거렸다. 아버지는 너무 쉽게 중심을 잃었다. 벽에 쿵, 부딪치는가 싶더니 이내 침대로 고꾸라졌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침대에 걸터앉은 형상이 되었다. 은영은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그 눈은 이제 엄마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었고, 이곳은 진짜 유령의 집이 되었다.

 

 

 

    드레싱을 하면서 은영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냐고 물었다. 마비니까, 문은 심플하게 답하며 방으로 가겠다고 했다. 침대에 눕히자 그는 눈을 감았다.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 은영은 서둘러 그의 방을 나왔다. 그녀가 방을 나서는 소리가 들리자 문은 눈을 떴다. 그리고 그 꿈을 떠올렸다. 문을 늘 그때로 데리고 가는 그것은, 아내가 심연의 물속에서 그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녀를 물 밖으로 건져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이후 그 꿈은 지치지도 않고 문을 그 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그 마지막 눈을 보고 또 보아야만 했다.
    아침에 은영이 눈을 뜬 곳은 문의 방이었다. 비명을 지르는 문의 곁을 지키다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문을 보살핀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정작 은영 자신을 위한 것인지도 몰랐다. 고개를 드는 그녀의 이마에 무게가 느껴졌다. 문의 손이었다. 문의 손을 걷어내면서, 그의 손이 자신의 이마에 얹히기까지의 수고를 생각했다. 가늘고 힘없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었다. 그날부터 은영은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의 손은 불면의 밤마다 은영의 이마에 얹혀졌다. 타인의 신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은영은 처음 알았다.
    은영은 문의 침대에서 달팽이처럼 오그리고 잠을 잤다. 문은 민달팽이의 잃어버린 집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이면 그의 발기한 성기에서 소변 통을 빼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집 밖을 산책했다. 은영과 문의 생활은 단조로웠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그들의 감정은 모호했지만 우정은 아니었다.
    재활치료는 없고 약만 타면 되는 날이었다. 은영은 문을 집에 남겨두고 혼자 병원에 갔다. 약을 타는 순간에도 마음이 급했다. 문의 몸은 몇 시간마다 자세를 바꾸어 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기 일쑤였다. 문의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며 약사의 입만 쳐다보았다.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막혔다. 차들이 아주 느리게 앞으로 나아갔다. 창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밖을 내다보았다. 경찰이 검문을 하는 중이었다. 은영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집에서 홀로 썩고 있을 시신을 떠올렸다. 검문 순서가 점점 다가왔다. 은영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핸들을 꺾었다. 차를 반대편 차선으로 돌렸다. 앞 운전자의 면허증을 훑어보던 경찰이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은영은 속도를 높였다. 곧 경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따라 붙었다. 다행히 문의 차는 최고성능이었다. 조금씩 속도가 벌어졌다. 골목길로 접어들자 은영은 차를 버리고 도망쳤다. PC방에서도 찜질방에서도 은영은 문이 마음에 걸렸다. 인사도 없이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처음처럼 우르르 그의 가족들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문은 은영에게는 들어오라는, 가족들에게는 돌아가라는 고갯짓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번에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걸핏하면 죽겠다는 애와 기어이 결혼해서 그 꼴이 되더니, 아직도 부족하니? 이제 쟤 때문에 죽을 뻔하니까, 좋아? 만족하냐구! 은영이 도피하던 며칠 동안, 그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문의 집 근처에 일이 있던 누나가 우연히 들러 그를 발견할 때까지 문은 혼자였다. 그의 어머니의 화가 정확히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은영은 말했다.
    "아버지가 죽었어요."
    "경찰이 왔다갔어."
    "제가 죽인 건 아니에요."
    "차를 도난당했다고 말했지만, 믿는 것 같지 않았어."
    "아니 어쩌면, 제가 죽인 건지도 몰라요."
    문은 뭔가를 말하려다 말았다. 꽤 오랜 시간의 침묵 뒤 입을 열었다.
    "떠날 거니?"
    "그래야겠죠."
    그날 밤 은영은 마지막으로 문을 씻겼다. 평소보다 훨씬 정성을 들였다. 면도를 할 때는 문이 혀로 뺨을 봉긋하게 만들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저녁상을 차렸다. 그 나이 대에 어울리는 옷으로 골라 입혔다. 눈을 살짝 가리는 옆머리를 빗어 넘겼다. 근사했다. 문이 잠들자 은영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올 때처럼 짐 같지 않은 짐이었다. 문의 책장 제일 위 칸에서 아버지의 상자를 꺼냈다. 그때 건드렸는지 나란히 꽂혀 있던 문의 노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우수수, 같이 끼워져 있던 사진들이 쏟아졌다. 문은 건장한 어깨와 튼튼한 다리를 하고 있었다. 함께 있는 여자는 작고 여윈 몸에 말간 얼굴이었다. 은영은 그녀가 바로 '또 저런 애'라는 것을 직감했다. 분명 처음 보는 사진인데 그것들은 이상할 정도로 은영의 눈에 익었다. 은영은 곧 그 이유를 알아챘다. 사진의 배경들이 그동안 문과 함께 여행했던 곳들이었다.
    문은 또 같은 꿈속에 있었다. 아내의 우울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녀의 자살시도가 거듭되자 문은 혼란스러웠다. 아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방해하는 것 같았다. 문은 지쳐 갔다. 아내에게 삶은 기쁘지 않은 것이었고 문은 바꿀 수 없었다. 그것은 좌절 이상의 고통이었다. 문은 구원자가 되려 했으나, 아내는 구원을 원하지 않았다. 둘은 점점 더 불행해졌다. 문은 아내를 찾아 곧장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력을 다해 아내를 찾았다. 그러나 정작 아내를 발견했을 때, 그는 망설였다. 문은 고교 시절 학교 대표로 뽑힐 정도로 수영 실력이 좋았다. 문은 아내에게로 가지 않았다. 아내는 자신에게로 오지 않는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 하염없는 물이 있었다.
    아내가 죽은 뒤, 문은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가족은 문을 의사에게 데려갔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심인성 질환, 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문의 몸은 운동과 감각 기능이 소실되었고 사지마비와 대소변 장애가 지속되었다. 욕창과 요로감염, 폐렴이 번갈아 찾아왔다. 의사는 전신마비라는 새로운 진단을 내렸다.
    꿈을 꾸면서 문은 신음했다. 그 소리는 다 타버린 재에서 힘없이 올라오는 연기 같았다. 은영은 이불을 걷고 소변 통을 확인했다. 발기한 문의 성기는 슬퍼 보였다. 마비여서 괜찮다는 그의 말은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른다. 그를 안았다. 그의 앙상한 뼈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뜨거웠다. 열이 있었다. 간헐적으로 기침을 했다. 문이 눈을 떴다. 그를 안고 있는 그녀에게 문이 말했다. 짐들을 차곡차곡 싣고 트렁크 문을 닫았다. 손바닥을 탁, 탁, 털고 은영은 차에 올랐다. 옆자리의 문을 보았다. 나도 같이 가, 문은 은영의 귀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오, 정말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높은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남자는 여전히 검은 소파에서 굼뜨게 일어서며 말했다.
    "또 어디에 피어싱을 하시려나?"
    남자가 노래하듯 고저와 장단을 붙여 문장을 늘어뜨렸다.
    "오늘은 타투, 할 거예요."
    남자는 눈을 크게 뜨며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거 아주 잘 됐네."
    은영이 타투를 해서 잘 됐다는 것인지 본인이 실력발휘를 하게 되어 그렇다는 것인지 애매했지만, 상관없었다.
    문이 말한 산은 험한 곳이었다. 근처 산장에 짐을 풀었다. 그들을 맞이한 노부부는 문을 알은체했지만 달라진 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차를 몰고 꽤 높은 데까지 갔다. 그러나 문이 원하는 곳은 더 높은 곳이었다. 은영은 안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곳은 가는 길이 지나치게 좁았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았다. 길도 문제였지만 비를 잔뜩 품은 검은 구름도 심상치 않았다. 문은 막무가내였다. 그가 그렇게 고집을 피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길 수가 없었다. 문의 말대로 오를수록 산은 훌륭했다.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과 황색 바위 언덕은 웅장했다. 처음 듣는 소리를 내며 새들이 날아다녔다. 열어 놓은 창으로 푸르른 향기가 밀려왔다. 그리고 마술처럼 호수가 있었다. 은영은 이제껏 그토록 아름다운 호수를 본 적이 없었다. 문은 은영의 표정을 보며 즐거워했다. 호수가 그들을 반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에서는 어둠이 순식간에 내렸다. 칠흑 같은 어둠에 비마저 내리자 은영은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휴대폰은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어디에, 뭘 그릴거야?"
    "이마에, 손요."
    남자는 한참을 말없이 은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는 조금 흥분되어 보였다. 멸균 건조기에서 시술 장비를 꺼냈다. 손을 오므렸다 폈다 몇 번 반복한 뒤에 깍지를 끼고 새끼부터 엄지손가락까지 차례대로 꺾으며 파도를 탔다.
    "아플 텐데, 마취크림 바를래?"
    "괜찮아요."
    "그래, 사실 별로 효과도 없어."
    남자와 은영은 어색하게 웃었다.
    문은 밤새 기침을 했다. 산속의 기온은 놀랄 만큼 낮았다. 문의 자세를 바꿀 수도, 씻길 수도 없었다. 은영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금이라도 편하게 그의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히는 것뿐이었다. 초조했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은영과 달리 문은 태평했다. 늦은 새벽까지 문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니, 호수만을 보았다. 시간이 얼마쯤 되었을까. 비로소 문이 눈을 감았다. 그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자 은영도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꿈은 또다시 문을 호수로 데려갔다. 문은 아내와 함께 호수에 있었다. 문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피크닉 가방을 푸느라 한눈을 파는 사이 아내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상황을 파악한 문은 곧장 아내를 뒤따랐다. 가라앉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바라만보고 있지 않았다. 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내를 향해 헤엄쳤다. 팔뚝에는 힘줄이 불거졌고 다리는 힘차게 물을 밀어냈다. 그의 팔과 다리가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아갔고 마침내 그녀에게 닿았다. 아내의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았다. 그녀의 팔이 문의 목을 안았다. 그들은 그렇게 안은 채 가만히 있었다.
    은영은 잠결에도 어떤 움직임을 감지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문의 몸이, 그의 팔 다리가, 힘차게 허공을 가르며 움직이는 모습을. 은영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차 천장을 더듬어 서둘러 등을 켰다.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문은, 그러나 미동도 없었다. 그녀가 너무 급하게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언제나처럼 이마에 얹혀 있던 문의 손이 맥없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비는 산봉우리를 넓게 감싸는 운무를 만들어냈고, 그 운무 사이를 산새와 산짐승들이 그들의 속도대로 움직였다. 나뭇잎은 한층 푸르렀고 공기는 투명했다. 산 안의 풍경은 경이로웠으나 태양은 아주 더디게 떴다. 그리고 문은 아무리 거칠게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문의 가족은 은영에게 어떠한 책망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떠나면서 은영은 배낭 속에 가지고 다니던 상자를 꺼냈다. 아버지의 은색 철제함이었다. 은영은 잠시 그것을 만지작거렸으나 이윽고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조문객들의 담배꽁초가 그 위에 던져졌다.
    은영의 이마에 조그만 손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빈디처럼 그 손은, 불행으로부터 은영을 지켜줄 것 같았다. 타투 염료가 피부를 태울 때마다 향냄새가 난다고 은영은 생각했다. 그 냄새는 마치 그녀의 지난날을 염(殮)하는 것 같았다. 마취크림을 바를 걸 그랬나, 은영은 조금 후회가 되었다. 없던 손가락이 생겨날 때마다 아파서 자주 눈물이 났다.

 

 

 

 

 

 

 

 

 

 

 

 

 

 

 

작가소개 / 이화정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천사의 손길」 당선.

 

   《문장웹진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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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콩이

진짜 오랫만에 소설 한대목 읽음서 울컥하기는 은희경의 '아내의상자' 이후에 첨 입니다
마지막 은영의 이마에 손이 타투되는 순간 ㅠㅠㅠ
문과 은영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문은 죄책감서 해방되었고
이마에 짚어진 문의 손에서 은영은 편안해지고~
역쉬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될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봅니다
이화정 기대되는 소설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