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과 흰색 외 1편

[신작시]

 

 

검은색과 흰색

 

 

이성진

 

 

 

원래 없는 색은 검은색인가 흰색인가

 

일단 보기로 한다
안경 너머 걸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너무 많다

 

사실 그건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물로 눈을 돌린다

 

한 사람은 아프고 다른 한 사람은 침대를 서성이고 나머지는 웃음이다
가깝지 않게 옆에 있다

 

나는 한 사람일까 웃음일까

 

기억으로 간다
밤 고속도로 휴게소 떠도는 자동차의 마음과 대학 동기들 졸업 그리고 나만 읽었던 표정들
다시 들을 수 없는 눈빛들과 수많은 한 장면들
다시 움직이지 않을 복수명사들

 

우리는 뻔하게 살 거야
우리는 뻔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학과 답사 지역 노래방 앞에서 같이 난장을 까다 술이 된 그 선배가 개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런 기억들이 밤을 밀어 올리기도 한다

 

밤은 얼마나 검은색인가
이렇게 많아도 되는 걸까
그렇다면 흰색은 텅 빈 걸까

 

검은색과 흰색은 왜 반대편에 있을까
그들은 원래부터 마주 보고 서 있었을까

 

사실 그런 것은 애초에 없거나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밤은 밤으로 있다
누구나 알고 있다

 

나머지도 어딘가 있을 것이다
나마저도 거기에 있을 것 같다

 

나는 없어지기도 한다
원래 없었다는 듯이

 

그때 나는 검은색일까 흰색일까
아무래도 좋다

 

없거나 아닐지도 모르니깐

 

오래된 카메라로 찍는다
오래된 얼굴을 갖고 싶어서

 

사실 얼굴은 이름처럼 아무것도 모른다

 

흰색 천을 뒤집어쓰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

 

나는 조금 뚫려 있는 것 같은데
뜨거워서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그건 흰색일까 검은색일까

 

아무래도 여기는

 

세계가 아니다
세계관들이다

 

침대가 되어야겠다

 

 

 

 

 

 

 

 

 

 

 

 

 

 

시집의 생각

 

 

 

 

식물원에서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래된 출판 연도가 좋아 시집을 한 권 읽고 있었다
물론 주운 것이었다

 

낭비되는 금화와 사라진 영화들
쳐다보는 것과 고개를 돌려 보는 것
어둠 속에서 생각하는 개

 

이런 것들을 읽고 있다가

 

비슷한 사람이 지나갔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보다 더 아는 사람 같은 모르는 사람

 

아무 생각 없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일몰을 그린 그림 같았다

 

바라보는 시간은 끝을 몰랐고 나는 계속 보고 있었다
바라보는 시간은 끝이 났겠지만 나는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끝이 났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시집을 다시 버렸다
그림이 일몰이 되지는 않았다

 

우연히 나는 시집과 한번 조우한 적이 있다

 

시집은 나를 아는 척했지만 나는 팔짱을 끼고
가던 길을 갔다

 

시집은 어깨를 한번 쓱 올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던 길을 갔다

 

오래된 연도는 그대로였고
그때는 누구나 착한 사람들이었다고

 

시집이 말했다

 

차는 차갑게 식어버렸고
나는 식물원을 영원히 나가는 중이다

 

 

 

 

 

 

 

 

 

 

 

 

 

 

 

작가소개 / 이성진

2012년 《실천문학》 신인상 시 등단. 2017년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 – 최초예술지원 문학 분야 선정.

 

   《문장웹진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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