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연인과 방아쇠 외 1편

[신작시]

 

 

봄의 연인과 방아쇠

 

 

윤여진

 

 

 

    당신은 천천히 파묻던 고개를 든다 천진하게 입가에 매단 물방울, 어느 저녁 옮아온 빛깔을 떨어트리면 당신의 입 꼬리를 쓰다듬을 수 있다 당신은 입을 벌렸을 뿐인데 탕, 신호가 터지고 도는 피를 뒤집어쓴 채 뛰어나가는 것이 있다

 

    수풀이 활짝 열리고 그것이 달아나는 동안 피어오른 연기는 가볍게 찢긴다 끼얹던 물소리가 범벅인 채로 방금 당신의 입 꼬리는 무엇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오른손은 수풀을 헤치고 왼손은 뒤로 감추는, 번갈아 먹는 다짐이란 몸 안의 커다란 풍선을 띄우는 것 그러다 팽팽해진 줄을 한순간 놓아버리는 것 그것은 가볍게 날아갔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무성해지는, 뒤늦은 마음 같은 것이

 

    수풀 사이를 헤집으면 싸늘한 그것이 놓여 있다 주위로 무수한 날벌레가 한 방향으로 돌고 있는, 소멸하는 것에는 저토록 많은 벌레가 모여드는 걸까 잠시 들여다보았을 뿐인데 오랫동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힘껏 피고 스러지던 마음, 희미해지는 발을 담그며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꾸만 넘어지던 때가 있었다

 

 

 

 

 

 

 

 

 

 

 

 

 

 

물구나무

 

 

 

 

다 쓴 연필처럼
얼굴의 겉면이 뭉툭해졌다면
거꾸로 서자
당신이 문을 열고
떠난 쪽으로 뾰족해지자
비로소 창백해지자

 

이젠 눈을 감으면
속눈썹에 달라붙는 빛을
머무르게 둘 줄 알아
몸 한가운데 꿈틀거리는
심지를 기억해 내기도 하지

 

곁을 셈해 보다
한 겹씩 깎아내다 보면
어느 날 당신은 내 앞에 서고
나는 당신임을 한번에 알아보지만

 

거꾸로 서면
화분은 모든 것을 뱉어내고
비는 하늘로 솟기 시작해
천천히 차오르는 시간이
목까지 잠겨 가도록 둘 수 있어

 

나는 당신에게 귓속말을 건네
이게 우리의 마지막일까?
대답 대신
당신은 얼굴을 지우고
미처 흔들지 못한 인사가
문 너머로 아득하게 몰려오는

 

 

 

 

 

 

 

 

 

 

 

 

 

 

 

작가소개 /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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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화

물구나무 수준이 있는 시네요.독창적 화법이 마음에 들어요..봄의 여인과 방아쇠는 좀 어렵고 난해합니다. 전 이런 머리 아픈 시를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그것은 제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특히 방아쇠는 자살을 위한 예비인지 아니면 다른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경계적인 만남인지, 그것은 숲에서도 자연에서도 드러나네요..좀 모호해서 난해합니다..그런 모습의 여인이 많이 흐릿하기도 하고요..와우~ 아마 저는깨어나도 이런 시를 쓸 수 없을 듯합니다..그리고 진짜 미인이시에요..중국에 미인은 양귀비도 있지만, 사마상여의 탁문군도 대단한 미인이지요..한나라의 왕소군의 이야기도 있지만요..과거에는 여류시인이 많지 않고 귀했다고 합니다..문학을 한다는 것은 참 제게 버거운 직업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잘 모르는 제가 말이 많았네요.늘 건안하고 평강하세요..

멜랑콜리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