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 김기홍
목록

[단편소설]

 

 

마리

 

 

김기홍

 

 

 

    내가 아는 한 여자는 말에 미쳐 있다. 어느 정도냐면 말이라면 밥을 먹다가 딸꾹질을 할 정도이다.
    작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TV를 켜둔 채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 집에선 식사 시간에 늘 TV를 켜두곤 했는데, 딱히 식탁에 둘러앉아 나눌 만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TV에 말이 등장하자 그녀가 숟가락질을 멈추더니 화면에 시선을 못 박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말 떼가 무리지어 초원을 달리는 동안 그녀는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사자 가족이 버펄로 사냥을 시작하고 나서야 마침내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흡, 하고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딸의 등을 두드렸다.
    탁, 탁, 탁, 흡.
    탁, 탁, 흡.
    탁, 탁.
    탁.

 

    여자의 방은 말들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그녀는 말 그림책을 보다가 말 인형을 안고 잠든다. 다시 말하면 말 그림책이 없거나 말 인형이 없으면 자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름 때문이야. 이름을 잘못 지었어."
    설마 그것 때문일 리가, 라고 생각하지만 여자의 엄마가 그렇게 푸념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내가 자신의 딸에게 말 인형을 사다줄 때마다 한숨을 내쉬는 것도. 사실 누나는 어릴 때부터 한숨이 버릇인 사람이었다.
    "말이 왜 좋아?"
    언젠가 마리에게 물은 적이 있다. 마리는 짧고 명쾌한 질문을 좋아한다. 아니, 그런 질문에만 답을 해준다.
    "말은 예뻐."
    물론 대답 역시 짧고 명쾌하다.
    "또?"
    "말은 착해."
    "또?"
    사랑받으려면 동물도 예쁘고 착해야만 하는 세상을 인정하기 싫어서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지만 마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비쩍 곯은 망아지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다. 너도 곧 늠름하게 갈기를 휘날리는 명마로 변신하겠지? 내가 잠자코 대답을 기다리자 마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푸르르르."
    입술을 마찰시켜서 말들이 투레질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거다. 대체 누가 저런 걸 가르친 거지?
    "뭐라고 한 거야?"
    "안 가르쳐줘."
    "왜 안 가르쳐주는데?"
    "안 가르쳐줘, 라고 한 거라고. 삼촌도 해봐."
    "뭘?"
    "이거. 푸르르르."
    "푸르르르르르르."
    마리가 살짝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입술을 삐죽거렸다. 사실 마리에게 이걸 가르친 건 나다. 그리고 아직은 내가 더 잘한다.

 

 

    *

 

 

    실은 말에 대해서라면 나도 일가견이 있다.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제주마의 번식과 유전 형질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라는 건 농담이고, 그간 서울 경마 공원의 경주마들에게 말밥으로 바친 돈이 몇 년 치 대학 등록금은 되고도 남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리와 나는 제법 말이 통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중국으로 출장을 가게 된 누나가 마리를 내게 맡길 결심을 한 걸 보면 누나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누나는 외식업 프랜차이즈 컨설팅 회사에 다녔는데 호떡 가게를 내러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왜 중국 사람들이 부산의 씨앗 호떡을 먹고 싶어 하는 거냐고 묻자 누나는 턱을 약간 치켜들고 "그게 한류라는 거야."라고 말했다.
    누나와 마리는 상암동의 한 아파트에 살았다.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떨어지기 직전까지 힘껏 상체를 내민 뒤 고개를 돌리면 간신히 한강 한 조각이 보이는 집이었다. 그 손톱만 한 푸른색 한 조각이 누나의 자부심이었다.
    한때 나도 그 집에서 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마리와 나는 그때 이미 친해질 운명이었다. 우리에겐 비슷한 시기에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세상에 내팽개쳐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군대로부터, 마리는 엄마 뱃속으로부터. 누나는 몰랐겠지만 마리가 밤낮으로 그토록 울어댄 건 내 몫까지 대신 울어 주느라 그랬던 것이다.
    그 집에는 저녁을 먹고 나면 다 같이 나가 월드컵 경기장을 포위하듯 둘러싼 공원들을 순회한다는 규칙 아닌 규칙이 있었다. 산책 따위에는 취미가 없는 사람까지 끌려 나가야 하는 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게다가 그놈의 공원들은 질릴 만큼 넓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이의를 제기할 만한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검푸른 장막 같은 땅거미에 감싸인 채 유모차를 밀며 걷는 아직은 한없이 젊기만 한 부부. 그 모습을 나는 부조리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사실 마리의 아빠는 5분마다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리며 제자리 뛰기를 하느라 헉헉대고 있었기 때문에 부조리극보단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웠지만, 그때의 내겐 눈에 비치는 모든 장면이 불가해했다.

 

    서쪽 하늘이 힘껏 빨아들인 담뱃불처럼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 새 몇 마리가 깜짝 놀란 것처럼 푸드득, 날아올랐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해 담배에 불을 붙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어떻게 됐냐? 부러졌지?"
    병호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알면서 뭘 물어?"
    "야, 어떻게 바르셀로나가 부러지냐. 같이 묶은 역배들은 기가 막히게 맞았던데. 어떻게 1.1배짜리가."
    '어떻게'라. 그걸 누가 알까. 메시라고 늘 골을 넣을 순 없고, 바르셀로나라고 늘 이길 순 없다. 바로셀로나는 1년에 열 번쯤 진다. 그런 날들 중 하루였을 뿐이다.
    "얼마나 날렸어?"
    "얼마 안 돼."
    병호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도 믿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토토를 접은 뒤로 병호는 내 베팅 결과에 집착했다. 병호는 토토 대신 결혼을 선택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치킨집을 차렸다. 내가 볼 땐 그 선택이야말로 인생을 건 베팅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듯했다.
    도어 록을 열고 현관에 들어선 순간 다른 집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시사철 현관에 굴러다니던 신발들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었다. 발목만 까딱해서 벗어던진 게 분명한 누나의 구두들과 샌들, 먼지로 코팅된 채 방치된 부츠, 마리의 운동화와 장화, 누구 것인지도 모를 다 떨어진 슬리퍼까지. 텅 빈, 그래서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는 현관을 낯선 남자 구두 한 켤레가 점령하고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정 대표가 나를 보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의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정 대표가 오른손을 내밀 듯 말 듯 움찔거리며 말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행동조차 어색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정 대표는 감색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졸라매고 있었는데 가뜩이나 짧은 목이 더욱 짧아 보였다.
    나는 방황하는 그의 손을 못 본 척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가서 식탁 위에 쌓인 우편물들을 점검하는 척했다.
    "야! 너는 점심때 오랬더니······."
    숄더백을 손에 든 누나가 안방에서 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정 대표 쪽을 흘깃 보곤 볼륨이 확 낮아지더니, "지금 몇 시야?"라고 말을 마칠 땐 거의 속삭이고 있었다. 누나는 노란 꽃들이 프린트된 푸른색 원피스에 새하얀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어떻게 봐도 호떡집을 내러 출장 가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일이 좀 있어서."
    "니가 뭔 놈의······."
    누나가 다시 정 대표의 눈치를 보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 정 대표를 등지고 말했다.
    "전화는 왜 안 받아? 대표님이랑 같이 식사라도 하려고 했더니. 할 얘기도 좀 하고."
    "무슨 할 얘기?"
    "너 회사 들어오는 문제랑, 이것저것. 아무튼 꼭 좀 오라니까, 너 계속 이럴 거야?"
    누나 딴에는 속삭인다고 했겠지만 정 대표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고 있었다 해도 들릴 만한 목소리였다.
    "늦잠 잤어. 새벽에 지구 반대편 섬나라에서 조온나 중요한 공놀이를 했거든."
    누나가 눈썹을 일그러뜨리고 막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완성하려는 찰나, 정 대표가 때를 노리고 있던 사람처럼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 어제 챔스 경기 있었죠? 유럽 축구 좋아해요?"
    처음 들어 보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아뇨."
    그러자 말을 이어 가려던 정 대표가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상에서 내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게 바로 축구 얘기라면 뭐든 한 마디 아는 척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남자들이다. 참고로 제일 싫어하는 건 공놀이 그 자체다.
    딱히 누나네 회사가 싫은 건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을 받아 줄 만한 회사는 어차피 다 비슷하다. 다행히 호떡도 즐겨 먹는 편이고. 다만 속이 빤히 보이는데 선심 쓰는 척 구는 게 역겨웠다. 나를 '남들처럼' 만들고 싶은 누나의 소망과 장애인 고용 지원 혜택을 노린 정 대표의 계산서, 절묘한 윈윈이었다.
    "무슨 캐리어가 저렇게 커? 잘하면 TV도 들어가겠는데?"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현관 옆에 놓인 누나의 캐리어로 쏠렸다. 정 대표는 이제야 그 캐리어를 발견했는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누나가 캐리어 위에 숄더백을 내려놓으며 정 대표를 향해 말했다.
    "순일 씨, 여권이랑 비행기 티켓 저 주세요. 혹시 모르니까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언제부터 대표님이 순일 씨가 됐지? 나는 보란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와 마주했을 때부터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리던 정 대표가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서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누나는 다시 나를 향해 잔소리를 쏟아냈다.
    "잘 들어. 8시 반에 어린이집 차가 와. 그거 놓치면 네가 데려다줘야 하니까 꼭 맞춰 일어나. 너 요즘에도 아침에 자고 저녁때 일어나지? 휴. 됐고, 아무튼 놓치면 절대 안 돼. 데리러 갈 때도 늦지 말고. 5시까지 꼭. 응? 아니, 삼십 분 미리 가. 너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마리를 맡아 줄 사람으로 선택된 건 그런 이유였나.
    "나 할 일 많은데."
    누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번에는 주방 쪽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 뒤 나를 향해 손을 까딱했다. 나는 미적미적 그리로 다가갔다.
    "이건 돼지고기 양념해 둔 거고, 이건 김치전 반죽. 이거 마리가 좋아해. 김치냉장고에 미역국 냄비 있으니까 데워 먹으면 되고. 이건 포도. 쌀은 베란다에. 너, 귀찮다고 배달 음식 시켜 먹고 그러지 마. 알았어?"
    "출장 어디로 간다고?"
    "상해."
    쭈뼛거리며 다가온 정 대표가 티켓과 여권을 내밀었다. 누나가 신분증을 검사하는 술집 주인 같은 표정으로 그것들을 넘겨보았다.
    "상해? 냉장고에 넣어 둬도? 뭐부터?"
    누나가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보더니 온몸을 다 사용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마리한테 이상한 것 좀 가르치지 마."
    "내가 무슨 이상한 걸 가르쳐."
    "저번에 너한테 고스톱 배워 온 다음에 애가 고스톱 치자고 며칠을 졸랐는지 알아?"
    그러더니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마리! 넌 엄마 가는데 계속 방 안에만 있을 거야? 엄마 그냥 간다."
    안 그래도 마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 신경 쓰이던 참이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마리의 방문이 열렸다.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건 마리가 아니라 기묘한 생김새의 생물체였다. 몸은 딸기가 그려진 티셔츠에 노란색 운동복 바지를 입은 아이, 그러나 목 위는 머리숱이 부족한 장발 로커처럼 듬성듬성 검정색 갈기를 늘어뜨린 갈색 말이다.
    "너 또 뭐 하는 거야? 엄마 늦었어. 인사 안 할 거야?"
    그러나 정체불명의 생물체는 입을 반쯤 벌리고 초점을 알 수 없는 검은 눈을 빛내며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말 머리는 묘하게 정교해서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콧소리를 내며 투레질을 할 것만 같았다.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거실에 정적이 흘렀다.
    "누나, 그 녀석은 마리가 아니야. 마리 옷을 입은 켄타우로스라고. 켄타마리우로스랄까. 아무튼 인간의 말은 이해 못 해. 머리가 마리고 몸이 말이었으면 알아들었을 텐데."
    머리가 마리고 몸이 마리? 입 밖에 내고 나자 나도 무슨 말을 했는지 헷갈렸다. 소파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던 정 대표가 큭, 도 아니고 컥, 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냈다.
    "대체 뭐라는 거야? 마리 너 그거 당장 안 벗어!"
    신화 속의 거인처럼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누나가 마리에게 다가갔다. 마리는, 그러니까 마리의 몸에 말 대가리를 한 켄타마리우로스는 누나를 피해 거실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사람 말은 이해 못 한다니까. 말 언어로 해야지. 잘 봐. 푸르르르르르."
    이 소리는 '어이 친구, 갈기가 멋진걸?'이라는 뜻이다. 휙, 말대가리가 내 쪽을 향하더니 흥, 하는 소리를 냈다.
    "거봐, 뭔가 통하잖아."
    "몰라, 니 맘대로 해."
    누나는 맥이 빠진 듯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니가 이러면 엄마가 어떻게 가니."
    그때 소파에 부딪혀 넘어질 뻔한 마리를 정 대표가 붙들었다. 마리가 발버둥 쳤다. 아까웠다. 머리가 마리고 몸이 마리······ 아니, 머리가 마리고 몸이 말이었으면 뒷발차기로 날려버렸을 텐데.
    정 대표는 몸부림치는 마리를 가볍게 들어 올려 소파에 앉히더니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엄마는 네 밤만 자면 오실 거야. 아저씨가 오면서 마리 선물 사다줄게."
    켄타마리우로스가 발버둥을 멈췄다. 고대의 지혜로 인간의 말을 깨달은 걸까, 입도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무슨 선물?"
    "뭐든지. 무슨 선물이 받고 싶니? 마리. 응?"
    제발, 제발 인간의 달콤한 말 따위에 속아 넘어가지 마.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켄타마리우로스는 여전히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어딘가를 응시할 뿐이었다.

 

 

    *

 

 

    10월 하순, 해는 눈에 띄게 짧아진다. 점심때가 지나서야 겨우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짧다. 그게 바로 추운 계절의 좋은 점이다. 눈을 뜨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시 어둠이 찾아온다는 것.
    마리가 나를 깨운 건 첫날 아침뿐이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혼자 일어나서 우유를 한 컵 마시고, 전날 내가 사다 놓은 소시지 빵(마리가 가장 좋아하는 빵이다)을 먹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노란색 유치원 옷을 찾아 입고, 노란색으로 칠해진 유치원 승합차를 타러 나갔다.
    누나는 마리가 나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갈아입을 옷들을 전부 날짜별로 정리해 놓고 갔다. 나는 느지막이 깨어나 뒹굴다가 마리가 갈아입고 난 옷을 세탁기 안에 던져 넣기만 하면 되었다.
    아침에는 이렇게 관대한 마리도 저녁이 되면 엄격해졌다. 특히 산책을 거르려는 시도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우리는 저녁마다 실랑이를 벌였다.
    "오늘 춥대. 아까 뉴스에서 그랬어. 나갔다 오면 백 프로 감기 걸린다고."
    "난 감기 안 걸려."
    "너 말고 삼촌. 요즘 몸이 으슬으슬한 게 딱 감기 걸릴 느낌이야."
    "맨날 집에만 있으니까 그렇지. 이런 날씨일수록 운동을 해야 돼."
    "누가 그래?"
    그러나 이 질문은 마리에게 닿지 않았다. 벌써 자기 옷을 찾아 입고 털모자를 쓴 마리가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손에는 내 낡은 파카가 들려 있었다.
    "가자. 두꺼운 옷 입고 나가면 괜찮아."
    거리를 감싼 푸른 어스름이 줄 지어 선 가로등과 자동차 미등 불빛을 번져 보이게 했다. 마리는 막 달리기를 배운 망아지처럼 달려 나갔다. 나는 뒤에서 마리의 털모자 끝에 달린 붉은 술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지켜보았다. 언제부턴가 마리는 내게 달리기를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달린다 해도 이제는 자신을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농수산물센터 앞 포장마차에서 닭꼬치를 하나씩 사들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인적이 드물었다. 호수를 끼고 돌아 다리를 건너자 우리 둘뿐이었다. 한바탕 세찬 바람이 불어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수면이 흔들렸다. 마리는 호수 옆에 선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어?"
    나는 마리 곁으로 다가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지마다 작고 둥근 나뭇잎이 빼곡히 달린 나무였다. 반 정도는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이 나무가 좋아? 이게 무슨 나무냐 하면, 음······."
    이런 걸 하나하나 알려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다른 어른들처럼.
    그러나 마리는 이름 같은 건 개의치 않았다.
    "밑에서 보니까 나뭇잎이 잘 보여."
    "응? 무슨 말이야?"
    "저쪽에서 볼 땐 잎이 너무 많아서 잘 안 보였잖아. 그런데 이렇게 밑에서 올려다보니까 나뭇잎이 한 개 한 개 잘 보인다고."
    나뭇잎들에 초점을 맞추자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멀리서 볼 때는 한 그루 나무로만 보이던 잎들이 바로 아래서 남빛 하늘을 배경으로 보자 하나하나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봐봐, 삼촌. 저기 조그만 애기 잎, 그리고 저 위에 조금 찢어진 잎도 잘 보이지?"
    "그러네. 쟤는 어쩌다 반만 남았을까."
    우리는 바람에 쉬지 않고 떨리는 나뭇잎들을 지켜보았다. 농도가 짙어진 어둠이 잎의 윤곽을, 우리 자신의 형체를 희미하게 만들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삼촌, 아까 그 나무에 달린 나뭇잎 몇 개였는지 맞혀 봐."
    "그걸 어떻게 맞혀. 마리는 알아?"
    "응. 다 세어 봤거든."
    "그 많은 걸 다 세어 봤다고?"
    "잘 보이니까 다 셀 수 있지. 몇 개인지 맞혀 보라니까?"
    "오만 육천 칠백 삼백 오백 칠십칠 개?"
    마리의 눈이 똥그래졌다.
    "그게 뭐야. 아니야."
    "그럼 몇 갠데? 가르쳐줘."
    기다렸다는 듯이 키득 웃으며, 켄타마리우로스가 말했다.
    "푸르르르르르."

 

 

    *

 

 

    마리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나뭇잎의 개수 같은 건 궁금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건 다른 숫자들이다.
    "정말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저번에 했을 때랑 다른 거 같은데?"
    색연필 끝을 입에 문 채 있는 대로 미간을 찌푸린 마리가 말했다. 이 표정을 지으면 꼭 어른 여자처럼 보인다. 나는 검지와 중지를 내밀어 주름진 눈썹 사이를 펴주었다. 꼭꼭.
    "이건 특별한 빙고 게임이야. 서로 마음이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할 수 있지. 그러니까 정신을 집중해서 텔레파시를 보내야 돼. 알겠지?"
    "알았어."
    그러나 아직 불신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자, 여섯 개 골랐지? 그럼 불러 봐."
    "음······. 7, 16, 24, 37, 43, 56."
    "아냐, 아냐. 45가 넘으면 안 된다니까?"
    "왜? 왜 그런대?"
    "왜냐하면······ 그게 규칙이거든. 게임에 참가하려면 규칙을 지켜야 돼."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게임에 참가하려면 규칙을 지켜야 돼, 라니.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인가.
    마리가 또르르 눈을 굴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나 이거 뭔지 알아. 삼촌 로또 하려고 그러지?"
    "어? 아니?······ 가 아니고, 근데 마리 로또도 알아? 누가 가르쳐줬어?"
    "아빠가. 마리 다섯 살 때. 저 아래 편의점에서 했는데, 마리가 일등 해서 과자 많이 받았어. 숏다리도 받았는데 엄마가 숏다리는 못 먹게 했어. 이빨 아프다고."
    이 년 전 일을, 마리는 이십 년 전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마리는 다섯 살 때 일이 기억나?"
    "그럼. 아빠랑 살 때 일은 다 기억나."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파에 기대앉아 있던 마리를 내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린 뒤 빙빙 돌았다. 마리는 꺄하하 소리를 냈다. 내 왼쪽 다리에선 우두둑 소리가 났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웬일인지 마리를 들어 올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더 높이, 하늘 저 높은 곳까지 들어 올려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상과는 다른 공기를 맛보게 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로또 1등 되면 삼촌이 마리한테 진짜 말을 사줄게. 서러브레드로. 서러브······ 가 뭐야? 경주말이야. 진짜 경주하는 말. 무섭게 잘 뛴다고. 난 조그맣고 귀여운 망아지가 좋은데. 그럼 새끼 서러브레드로 사줄게. 그래도 조그맣지는 않지만. 삼촌은 타본 적 있어? 그 서러브······? 그럼. 얼마나 재밌었는데. 마리도 좋아할 거야. 좋아, 생각해 볼게.

 

    서러브레드를 타봤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진짜 경주마는 아니었다. 서러브레드는 오직 경주를 시킬 목적으로 개량된 말이지만 그런 말 중에도 주로에서 다른 말들과 경쟁하기를 거부하는 녀석들이 있다. 무서워서 엉뚱한 방향으로 도망쳐 버리거나 제자리에 선 채로 꼼짝 못하고 떨고만 있는 놈들. 출생의 이유를 부정해 버리는 존재들. 그들은 농장에 보내져 관상용이나 체험용 말이 된다.
    비싼 돈을 들여 교배를 시키거나 사들인 말이 그런 꼴이 되는 게 마주 입장에서는 화딱지 날 일이리라. 하지만 말들은 그편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이유도 모른 채 다른 말들보다 앞서려고 채찍질당하며 기를 쓰고 달리기보다, 그러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안락사를 당하는 것보다, 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거닐다가 놀러온 꼬마들을 태우고 높은 곳의 공기를 맛보게 해주는 편이.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다. 말을 타게 되었을 당시에는 그 겁 많고 예민한 동물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 우리가 똑같이 서로를 겁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사랑이와 친해질 수 있었을까?
    내게 재활 승마를 권한 건 마리의 아빠였다. 내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일반인들은 받아 주지 않는 승마장에 전화를 걸고, 후배인 유명 재활 승마 치료사를 불러 둔 뒤였다. 마리의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실행하는 사람. 15년 동안 한결같이 몸무게 48kg을 유지하는 건, 일 년에 이틀, 설날과 아버지 제삿날을 제외하곤 매일 9시에 잠자리에 들어 4시에 일어나는 건 그만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말 등에서 떨어지는 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충격이 크다. 나는 허공에서 날듯이 허우적거리다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아픈 줄도 몰랐다. 귀와 머리가 윙윙 울리고, 손발의 감각이 사라졌다.
    울타리 밖에서 마리의 아빠가 소리를 지르던 게 기억난다.
    "일어나! 일어나서 다시 타! 지금 바로 타지 않으면 다시는 못 타게 돼."
    그러나 그 말의 의미보다 공포감이 먼저 엄습해 왔다. 사랑이의 발굽에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승마 치료사가 사랑이를 붙잡고 진정시키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거의 기다시피해서 마장을 빠져나왔다.
    이제 충분해, 이제 충분하다고······.
    화장실에서 씻는 동안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뭔가로부터 내팽개쳐지는 기분은 이제 충분하고도 남았다.
    따라 들어온 마리의 아빠가 문 옆에 기대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얼굴을 닦았다. 사고 이후 눈물을 흘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왼쪽 종아리뼈가 세 조각난 그 순간에도, 군 병원에서 제대로 수술도 못 받고 진통제만 맞고 있을 때도, 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말에 누나가 과호흡이 온 사람처럼 연신 한숨을 내쉴 때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일부러 더 절룩거리며 걸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마리 아빠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사로 돌아가는 사랑이가 보였다. 사랑이는 언제 그렇게 날뛰었냐는 듯 우아하고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는 새까만 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

 

 

    남태령역과 선바위역 사이에는 전동차 실내등이 꺼졌다가 다시 들어오는 구간이 있다. 불이 꺼지는 찰나, 뇌 속에 전류를 흘려 넣은 것처럼 잊고 있던 감각들이 순간적으로 명멸했다. 경주가 시작되기 전의 긴장과 두근거림, 출발 총성과 함께 고조되어 가는 흥분,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함성······.
    경마는 다른 어떤 도박과도 다르다.
    "삼촌, 방금 지하철에 전기 나갔었나 봐."
    옆자리에 앉은 마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 전기가 나가면 지하철이 어떻게 달려."
    "정말이야. 불이 깜깜해졌다가 다시 환해졌어."
    "그건 마리가 눈을 깜빡여서 그런 거야. 사람들 봐봐, 놀라지도 않고 다들 가만히 있잖아."
    "아닌데······."
    "맞다니까. 다시 눈 깜빡거려 봐."
    마리는 두세 번 눈꺼풀을 닫았다가 열었다. 사인을 보내는 것처럼 짧게 또 길게. 사인에 맞춘 것처럼 방송이 흘러 나왔다. 이번 역은 경마 공원, 경마 공원······. 나는 얼굴만 보고도 누가 이번 역에서 내릴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실내등이 꺼지든 말든, 물가가 오르든 말든, 실업자가 늘든 말든,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다. 빌딩이 무너져도, 배가 침몰해도, 미사일이 발사되어도, 그들은 이 전동차 안에 앉아 있을 것이다. 변함없이 똑같은 표정으로.
    역을 나와 경마 공원 입구까지 연결된 진입로의 높은 지붕 아래를 걷는 동안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입구를 지나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예시장에선 3경주에 출전할 말들이 유도마를 따라 막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글대는 사람들을 헤치고 난간 가까이 다가가자 비로소 말을 발견한 마리가 끼아악, 하고 돌고래 같은 소리를 냈다.
    금방이라도 뭔가 쏟아질 것 같은 흐리고 쌀쌀한 날이었다. 마지막 경주가 끝나고 경마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두 배로 무겁게 느껴지는 날, 경마장 앞에 늘어선 포장마차들이 노 나는 날이다.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던 눈이 어느새 말들에게로 향했다. 무의식적으로 목 쓰는 모습을 살피고, 꼬리의 움직임과 발걸음을 체크한다. 습관은 우리가 잊고 있을 때조차 우리를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는다.
    "삼촌! 쟤 똥 싸!"
    6번을 단 흑마가 걸음에 맞춰 한 무더기씩 똥을 흘리고 있었다. 마리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았다. 그러나 웃고 있는 건 마리뿐, 다른 사람들은 심각한 얼굴로 예시장의 말들과 예상지를 번갈아가며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 예상 마번에서 6번을 지우고 있을 테지.
    "마리야, 여기 그대로 있어. 삼촌 잠깐 저쪽에 갔다 올게."
    마리가 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까이에 있는 쓰레기통 옆으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마리를 지켜봤다. 마리는 이제 난간을 붙잡은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조그만 머리통이 철제 난간 사이로 쏙 빠져나갈 것 같았다.
    처음 이 공원에 와서 말을 봤을 때 마리는 울었었다. 넌 그걸 기억할까.
    "이게 누구야, 김 사장 아냐?"
    누군가가 어깨를 건드리기에 돌아보니 고 박사였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머리가 조금 더 벗어진 것 같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띤 얼굴은 여전했다. 나는 담배를 문 채 고개를 까딱했다.
    "여기서 다시 보네. 아예 발 끊은 줄 알았더니."
    "그렇죠, 뭐."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티를 냈는데도 고 박사는 연신 싱글거리며 내 얼굴을 훑어봤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다. 다른 사람이 마판을 떠나지 못하는 게 어째서 본인에게 흐뭇한 일일까?
    고 박사가 뭔가 생각난 듯 손바닥으로 옆머리를 두어 번 두드렸다.
    "아, 참, 오늘이지? 태영이 복귀. 그래서 온 거야?"
    난 대답하지 않고 허공에 담배 연기를 길게 뱉어냈다. 마리가 이쪽을 쳐다봤다가 내가 살짝 손을 들어 주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 애는 누구야?"
    "딸이요."
    "설마."
    고 박사가 허허 웃었다. 그의 시선이 슬쩍 내 왼다리로 향하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 혹시 쟤가, 그, 태영이 딸이야?"
    이럴 때는 또 눈치가 빠르다.
    "그럼 이제 다 나은 건가? 수술 받았다며?"
    타이밍 좋게 고 박사의 전화기가 울린 덕분에 나는 대답할 필요가 없어졌다.
    "네네, 장 사장님, 지금 3경주 마필들 확인하고 있죠. 네네, 6번 상태 끝내줍니다. 대가리 백 프로예요. 제가 6번 축으로 서너 구멍으로 좁혀서 찍어 드릴 겁니다. 3분 전에 보내는 거 아시죠? 문자 확인 잘하시구요, 마권 못 사시면 안 됩니다. 네네, 아이구, 제가 감사하죠. 제 문자 받으시는 회원님들 승리가 제 승리 아닙니까. 네네, 사장님, 오늘 대승하십쇼!"
    고 박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스마트폰 화면을 탁탁 두드려 전화를 끊었다.
    "말을 보긴 봤어요?"
    내 물음에 고 박사가 삐뚤빼뚤한 치열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말이 본대로 들어오는 거 봤어? 씨발 것들."
    나는 짧아진 담배를 기둥에 문질러 끄고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가볼게요."
    "김 사장, 오늘 승부할 거지? 제대로 된 쏘스 하나 있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경마 예상가들이 말하는 쏘스라는 건 둘 중 하나다. 이미 돌고 돌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똥배당 정보. 아니면 누군가의 뇌내망상을 시작으로 부풀려진 헛소문. 생각해 보라. 진짜 확실한 극비 정보가 있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한테 퍼뜨려 배당을 낮출 이유가 있을까.
    "이거 밖으로 나도는 쏘스 아냐. 진짜 일급 정보야."
    고 박사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저 이제 베팅 안 해요."
    "그런 소리 말고. 김 사장한테는 고마운 것도 있고 해서 특별히 알려주려는 거야."
    무시하고 돌아서는데 고 박사가 에이, 하더니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좀 이따 4경주, 오늘 대가리가 승부 안 할 거야."
    "네?"
    "뺄 거라고. 승군 늦추려고. 16조 마방이야. 박영신 조교사, 알지?"
    "그 개새끼······."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고 박사가 측은한 눈길로 쳐다봤다.
    "너무 그러지 마. 그래도 태영이 때문에 난리 났을 때 박 조교사가 무마시키려고······."
    "됐어요."
    "아무튼 대가리 빠지고 2번이 갈 거 같아. '죠죠의 딸'이라고."
    "죠죠?"
    "기억나지? '히어컴즈죠죠'."
    그 이름을 어떻게 잊겠는가. 머릿속 영사기에 불이 켜지더니 몇 개의 장면이 두서없이 스쳐갔다.
    "그 녀석 자마라 막판 추입력이 좋아. 아직 승리 없이 3착만 두 번이야. 갈 때 됐어. '히어컴즈죠죠'가 진짜 끝내주는 놈이었지. 태영이가 기승하면 거의 날라다녔잖아. 그게 몇 년도더라, 암튼 대상 경주 우승할 때 말야, 그때만 해도······."
    "7번 '불패마왕'은 어때요?"
    침을 튀기며 떠들던 고 박사가 눈을 끔뻑거렸다.
    "똥말이지 뭐. 태영이가 타는 말 말이지? 아무래도 한동안은 힘들 거야. 좋은 말 받기······."
    해피빌 5층에는 처음 보는 식당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국수집에 들어가 나는 칼국수를, 마리는 쌀국수를 시켰다. 국물만 간간이 들이키며 숨은그림찾기 하듯 꼼꼼히 마리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내가 놓친 어떤 감정의 조각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마리는 무심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놀릴 뿐이었다. 가만 보니 숙주만 골라 먹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안 집히는 건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마리, 그렇게 먹으면 엄마가 뭐라고 안 해?"
    "뭐라고 해."
    마리가 손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렇게 먹는 거야. 근데 하다 보니까 습관 됐어."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일곱 살 아이에게도 습관이라는 게 있을까? 거기에 붙잡혀 살아갈까?
    밖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3경주가 끝난 모양이었다.
    "근데 우리 말 달리는 거는 안 봐?"
    "이제 볼 거야. 가자."
    해피빌 1층으로 내려가 주로로 향했다. 4경주에 나설 말들이 기수와 함께 예시장을 돌고 있을 테지만 왠지 그 모습은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통로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밀집한 사람들을 뚫고 나가는 동안 마리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실내가 그리 따듯하지 않은데도 마리의 손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오랜만에 탁 트인 주로를 보자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늘 결승선에 붙어 서서 경주를 본다. 그곳에선 말들이 마지막 코너를 돌아 직선 주로를 전력 질주하는 동안 대지가 울리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삼촌, 나 화장실."
    마리가 소매를 잡아당기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마리를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그 앞에 서서 기다리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방송이 나왔다.
    "서울 경마 공원, 마감 3분 전입니다."
    3초 정도 망설였던 것 같다. 마음이 정해지기 전에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마권 발매 창구들마다 이미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끄트머리에 선 채로 OMR 카드를 기입하는 동안 망설임은 사라지고 초조함에 심장이 죄어들었다.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도 그랬다. 마지막으로 마권을 샀던 그날도.
    "야, 얼마나 샀어?"
    반대편 창구로 뛰어가던 병호가 손가락 몇 개를 펴 보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기계 앞에서 기다릴 걸 그랬다, 야."
    배당률이 미리 떨어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까 봐 20분 전부터 마권을 사기 시작한 게 문제였다. 그깟 천만 원으로 떨어지면 얼마나 떨어진다고. 그러나 그깟 천만 원이라도 마권을 사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발매 창구에서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마권은 십만 원이 한도. 병호와 나는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구입을 완료했지만 병호는 여전히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진짜 확실한 거지? 나 따로 삼백 더 넣었단 말이야. 엄마 돈이라 이거 날리면 진짜 한강 가야 된다."
    "좀 닥치고 있어. 다리 위까지는 같이 가줄 테니까."
    배당판에는 3번 '당대무적'의 단승 배당률이 1.0을 나타내고 있었다. 맞춰 봤자 본전인, 웬만해서는 부러지지 않는 초강대가리라는 뜻이다. 그날 마리의 아빠가 탈 말이었다.

 

    마리와 함께 다시 주로로 나가 자리를 잡자마자 출발 총성이 울렸다. 대형 전광판을 통해 발주기가 열리고 말들이 쏜살같이 튀어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색색의 모자를 쓴 기수들은 날갯짓을 하듯 팔을 움직였다. 마치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중력을 벗어나 비행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방에서 함성소리가 차오르며 대기가 팽팽해졌다. 승욱아! 승욱아! 그렇지! 효선아! 믿는다! 종호 이 새끼야! 뭐 하는 거야! 기수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늘 궁금하다. 그들 생애에 또 있을까? 누군가의 이름을 그렇게 간절히 불러 본 일이. 나는 살며시 마리의 귀를 막아 주었다.
    초반부터 선두에 나선 건 다름 아닌 '불패마왕'이었다. 펜스에 바싹 붙어 달리며 거침없이 다른 말들과 거리를 벌렸다. 마지막 코너를 돌아 직선 주로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불패마왕'의 흰털이 군데군데 섞인 황색 몸뚱이였다. 말발굽 소리에 맞춰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사람들의 함성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기수들이 채찍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외곽에서 밤색 말 한 마리가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왔다. 바로 2번 '죠죠의 딸'이었다. 순식간에 앞선 말들과 차이가 좁혀졌다. 반면 '불패마왕'은 점점 처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태영이, 이 새끼야, 쳐! 쳐! 치라고! 어느새 '불패마왕'은 3위로 처졌다. 저 사기꾼 새끼 또 저 지랄이네, 저거. '죠죠의 딸'과의 차이는 점점 좁혀들었다. 4마신, 3마신······.
    경주가 끝난 뒤의 풍경은 늘 비슷하다. 귓전을 메우던 함성은 탄식으로 바뀌고, 발기발기 찢긴 마권이 허공에 흩날린다. 드물게 환호성이 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맥 빠진 한숨이다. 사람들이 욕설을 퍼붓는다. 말을 향해, 기수를 향해, 마사회를 향해, 자기 자신을 향해. 저주할 대상은 얼마든지 있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건 '죠죠의 딸'이었다. 압도적인 차이였다. 뒤이어 몇 마리 말들이 뒤섞여 결승선을 통과했다. '불패마왕'은 거기에도 끼어 있지 않았다.
    마리의 수술이 결정되던 날, 마리 아빠의 눈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잠든 딸의 얼굴에 오랫동안 못 박혀 있었다. 하얗게 마른 그의 입술이 간헐적으로 가늘게 떨렸다.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처럼. 그 대상은 처음 마리를 오진한 돌팔이였을까, 아니면 그 말을 끝까지 의심하지 않은 자기 자신이었을까.
    마리의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 믿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 사람. 비슷한 스토리로 연달아 지인들에게 큰돈을 떼이고도 그가 달라지지 않은 건, 아마 그가 믿었던 게 실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리의 한쪽 신장이 기능을 잃어 가는 동안 마리를 데리고 큰 병원을 돌아다니고, 정확한 병명을 알아내고, 국내에 두 명뿐이라는 그 분야의 권위자들에게 몇 번이나 메일을 보내 수술 날짜를 잡은 건 누나였다.
    그날 마리의 아빠는 내게 5만 원 권 지폐 다발이 든 봉투와 쪽지 한 장을 주고 갔다. 날짜, 경주 번호, 그리고 마번이 적혀 있었다. 다른 설명은 없었다. 쪽지에 적힌 마번 중에 그가 탈 '당대무적'이 없을 거라는 건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몰랐다.
    일 년에 몇 번은 꼭 일어나는 일이다. 간신히 발주기에 밀어 넣은 말이 몸부림치다가 발주기가 열리는 순간 튀어나가며 기수를 떨어뜨리는 일. 일류 기수도 말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 메시도 골을 못 넣는 날이 있고, 바르셀로나도 질 때가 있는 것처럼. 그런 날이 마리 아빠에게 찾아온 것뿐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는 딴 돈을 전부 누나에게 보내고 전화로 통장을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누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짧은 대답 뒤로 긴 침묵만이 이어졌다. 나는 누나가 한숨을 쉬길 기다렸다. 누나의 한숨소리를 들으면 왠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전화는 끝내 아무 소리도 전하지 않고 끊겼다. 그 뒤로 마리의 아빠를 본 적은 없다. 부상, 수사, 징계 같은 말들이 풍문처럼 들려올 뿐이었다. 가끔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기수 학교에서 처음 낙마를 경험했을 때 당신은 어땠느냐고. 언젠가 내게 외친 것처럼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다시 말에 올랐느냐고. 그랬기 때문에, 또 바닥으로 내팽개쳐질 것 같은 공포와 싸우면서도 계속 말을 탈 수 있었던 거냐고.

 

    경마장을 나설 무렵 기어코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진입로는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길처럼 느껴졌다. 그 길고 긴 길 위에는 마리와 나 둘뿐이었다. 경주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마리는 말없이 땅을 보며 걸었다. 불현듯 맞은편에서 핑크색과 노란색 등산복을 입은 중년 커플이 나타나더니, 선두를 다투는 것처럼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우리를 스쳐갈 때 마리의 팔을 치고 갔으나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마리는 그대로 서너 발짝 걷다가 뒤늦게 생각난 것처럼 아, 소리를 내고 멈춰 섰다. 팔을 들어 눈을 가리자마자 어깨가 조금씩 떨려 왔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마리의 보이지 않는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마리야, 아팠어?"
    마리는 고개를 한 번 가로저었다.
    "말들이 달리는 게 무서웠어?"
    다시 한 번.
    "그럼 왜 울어?"
    "······."
    나는 마리의 머리 위로 손을 뻗다가 나도 모르게 움츠렸다. 이 손으로 조금 전 환급 받은 돈이 떠올랐다. 어째서, 그 돈을 빗나간 마권처럼 발기발기 찢어 사람들 머리 위로 뿌리지 못했을까.
    마리의 턱 끝에 매달린 눈물방울이 낙하를 준비하며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반대편 손바닥을 펴고 살며시 마리의 조그만 머리 위에 얹었다. 아이의 키를 가늠해 보려는 것처럼. 그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라도 마리가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소개 / 김기홍

장편소설 『피리부는 사나이』로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목록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