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기성 -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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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마지막 이기성

 

 

김금희

 

 

 

    그가 없던 출장을 만들어 도쿄행 비행기를 탄 것은 배추밭 때문이었다. 유키코가 "배추밭이 곧 없어진다고 해" 하며 인문동 맞은편 사진을 첨부해 이메일을 보냈고 얼마 뒤 그쪽 대학 동아리에서도 연락이 왔다. 그가 교환학생으로 도쿄에 가서 일구었던 그 밭은 유학생활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이기성은 없었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많은 부분이 없었을 거였다. 그가 부단히 보태서 마련한 아버지의 개인택시라든가. 아버지는 택시를 그만두면 정리해서 그에게 돌려준다고 했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회사택시를 해온 삼촌이 몇 해라도 개인택시를 몰아 볼 생각으로 탐을 내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자기가 좀 희생해야 하나, 일생 남의 택시만 몰아온 삼촌의 소원을 모른 체하면 되는가 갈등하다 보면 머리가 아팠다. 대체 이 나라 노인들은 왜 끝까지 아득바득하는지 모르겠다 싶었고, 그때마다 늙는 일이 두려워졌다. 모 기업의 문화재단에서 비교적 안정되게 생활하고 있는 그조차 이렇게 앞날이 아득하고 불안해지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을 때마다 진보정당의 후원금을 올렸다. 물론 연말정산 혜택을 받는 십만 원까지는 몇 단계가 지나야 할 만큼 처음의 후원 액수가 미미했지만 이런 스트레스가 계속되다가는 그 혁명에의 갈구가 언젠가 십만 원을 돌파할 터였다. 물론 이르게 오지는 않겠지만. 그는 생활비가 떨어지면 나머지 날들을 오로지 계란 요리로만 버티는 금욕주의자였다.
    유학 시절 유키코를 만날 때도 그들의 데이트는 주로 입장료가 없는 도쿄의 관광지들에서 이루어졌다. 유키코는 스스로 말하듯 청정한 대양의 땅, 홋카이도에서 왔기 때문에 냄새에 민감했다. 도쿄 곳곳에서 매번 견딜 수 없는 불쾌감을 감지했고 향냄새라도 맡으면 어디선가 나쁜 냄새가 난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깃짱, 오래되었다는 건 썩어 가고 있다는 거야, 라면서.
    우연찮게 '사건'을 함께 겪으며 가까워진 그에게 유키코는 처음부터 재일코리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유실'이라는 한국 이름도 알려주었지만 부르지는 말라고 했다. 일본에서 한국계들은 흔히 그런다고. 그런데 그만은 아닌 것이, 언젠가 가부키초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유키코는 "나는 유키코를 고집한다. 유실과 유기는 분명 차이가 있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 가족에게 세상은 유실보다는 유기에 가까운 행위를 했으며, 재일코리언은 조국이 잃어버린 사람이라기보다는 조국이 버린 사람들이라 생각한다고.
    유기는 일본 이름 '유키코(有紀子)'에 들어간 한자를 한국식 발음으로 읽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유키코는 잃어버린 것과 버린 것은 홋카이도의 키문 토오만큼이나 큰 차이라고 강조했는데 그가 키문 토오라는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자 머저리구나, 머저리야, 하는 말로 대화를 맺었다. 나중에 보니 홋카이도의 대형 칼데라 호수를 가리키는 아이누어였다.
    유키코와 가깝게 지낸 2006년의 도쿄는 그가 느끼기에 상당히 압착되어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복합불황'이 장기화되어서인지, 극우 정치인이 도지사로 연임하고 있어서인지, 북한이 열도를 위협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위축보다도 더 확실히 눌려 있는 압착의 상태였다. 무심코 넘길 수 없는 불쾌한 소동들이 유학생 카페를 통해 자주 전해지던 시기이기도 했다. 방을 구할 때 집주인들이 한국인임을 알고 거부했다거나, 취객에게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들었다던가 하는. 하지만 그런 얘기가 들려와도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오늘 날씨가 좋지 않네, 차가 좀 막히네 하는 정도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원래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니까, 그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듯 자동차 바퀴도 둥글고 지구도 둥그니까.
    유학 와서 다른 사람보다 빨리 적응한 건 그런 삶의 태도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서울과 도쿄가 비슷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마치 작은 어항에 든 물고기와도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은 다르지 않은 질감의 도시 속을 가만히 유영하고 다만 외부의 이동이 있을 뿐이었다. 학적의 변경과 국경의 변화, 언어의 교체 같은.

 


*

 

    '사건'은 동양철학사 수업에서 답사를 떠났을 때 일어났다. 오사카를 방문해 1박2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날, 그때도 유난히 자료에 욕심이 많던 그는 책을 사느라 뒤처졌다. 다른 일행들이 모두 기차에 오르고 나서야 허둥지둥 플랫폼에 도착했다. 그는 자유석으로 끊은 티켓을 들고, 일본인 조교에게 전화해 몇 번 칸에 타야 하는가 물었다. 조교는 자신들은 4번 칸에 있는데 자리가 없으니 편하게 5번 칸에 타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리고 몇 정거장 가지 않아 기차가 분리되어 5번 칸부터는 그로서는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와카야마라는 소도시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렇게 일행을 놓치고 비행기 출발 시간이 지나 도쿄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는 그런 모욕감 속에서야 이 도시가 일순 낯설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조교에게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고 교수의 번호로 걸려다가 그 무뚝뚝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이는 얼굴이 생각나 멈췄다. 그때 누군가 그의 등을 두드려서 돌아보니 같이 답사를 온 가네다 유키코라는 이름의 학생이 서 있었다.
    둘은 다음 정거장까지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보며 이동했다. 무슨 대화를 나누면, 그렇게 해서 동병상련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나누면 어쩐지 더 낙담하고 불쾌해질 것 같았다. 다시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나서야 둘은 짤막한 문답을 나누었는데,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인가 하는 심심한 대화였다. 유키코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옥수수라고 대답했다.
    오사카에서 돌아온 그는 고민하다 담당교수에게 사건을 알렸지만 "확인 결과 일본어가 서툰 한국 유학생이 잘못 알아들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녹음을 하지 않았으니 증명할 수 없고 곤란했다. 문학부에는 한국 유학생이 조교를 무고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물론 그의 말을 믿어 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처럼 초청 장학생으로 온 외국 학생뿐 아니라 일본인 학생 중에도. 학교 신입생들의 적응을 돕는 튜터 프로그램에서 만난 모리타 선배가 그랬다. 조교의 여자 친구가 유키코와 같은 미학과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도 선배였다. 사정을 좀 알아보더니 같은 피해자인 유키코를 만나 보라고 권했다. 그는 와카야마행 기차에서 만나 돌아올 때까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유키코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러니까 그가 부탁하면 이 일에 나서 줄까를 판단해 보려 했지만 이상하게 뚜렷한 인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너 시간의 여정 동안 기억나는 건 유키코가 그가 들고 있는 윤동주 시집을 들춰 보며 이 시들은 도쿄에서 쓰였다는 것을 알아요? 하고, 물론 일본어로 물었다는 정도였다. 그가 망설이자 모리타 선배 역시 "하긴 유키코도 자기 과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다던데." 하며 발을 뺐다.
    "왜 평판이 어떤데요?"
    그는 이 대학 학생들에게서 심심찮게 발견된다던, 학업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적 문제에서, 재일코리언 가운데 더러 있다던 야쿠자 조직원까지 상상하며 선배의 말을 기다렸다. 만약 그렇다면 자기 문제와 유키코를 엮어서 이슈화하기란 어려웠다. 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일본인 조교를 정말 무고하려는 사람으로. 선배는 잡혀 있던 손을 재빨리 빼듯 얘기를 중단하며 그건 말할 수 없겠어, 라고 했다.
    "심각한 이유인가요? 그러면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그가 우려를 늘어놓자 모리타 선배는 좀 숙고하다가 그래서가 아니라, 다만 쓰이는 단어가 훌륭하지 않아서 말하기가 그렇다고 했다.
    "그 여학생은 친구를 화장실 변기로 데려가 쿠소를 보여주었다고 해."
    쿠소······ 그건 일상에서도 욕설로 쓰여 되도록이면 조심해야 한다고 배운 일본어, 우리말로 하면 대변, 똥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당황한 그가 겨우 꺼낸 말은 자기 것을? 하는 진지한 물음이었다. 선배는 그것만으로도 어딘가 품위가 손상당하는 기분인지 인상을 썼다. 그리고 그렇지는 않았다고 일부러 그러는지 딱딱하게 대답했다.
    "아무튼 만나 봐, 도움을 청해."

 

    유키코가 만날 장소로 정한 곳은 대학 근처의 카페 겸 식당 가스토였다. 값이 비교적 싸고 24시간 영업을 해서 도서관이 밤 열 시에 문을 닫으면 남은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유키코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열한 시나 되어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날짜를 옮길까 했지만 다른 날에도 언제나 자신의 '프리 타임'은 그때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가 유키코를 기다렸다. 교대자에게 사정이 있었다며 유키코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배가 고픈지 자기 몫으로 오므라이스를 하나 주문했고 그는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오렌지주스를 시켰다. 음료는 무한리필이 가능하니까 얘기를 하다가 목이 탈 때 유용할 것 같았다.
    그는 답사에서의 그 일이 이상하게 꼬여 곤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유키코의 도움이 필요하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이제는 안전하게 유학생활을 마치기 위해서라도 결백을 밝혀내야 할 상황이라고.
    하지만 유키코는 만나기 전 전화통화에서도 잠깐 느꼈듯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심지어 두꺼운 대학 교재를 여러 권 들고 식당으로 들어선 자기 친구에게 오늘부터 필사 공부! 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당황과 낙담으로 약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서도 그는 이 일은 단순히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유학생, 혹은 유키코 같은 재일코리언, 더 나아가 도쿄라는 도시의 외국인들의 문제이고 이제 그것을 마주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중언부언했다. 자기는 잘못 들은 것이 절대 아니고 일부러 소동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반드시 밝힐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이니까.
    마지막 말은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인데도 유키코는 전혀 웃지 않았다. 미학 전공이라서 그런 인용에는 반응하지 않는 걸까 싶으면서 그는 위축되었다. 이윽고 오므라이스가 서빙 되었고 대화는 끊겼다. 초조하게 할 말을 찾던 그에게 유키코가 먹는 오므라이스의 계란 부침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의 '오므라이스'라고 하면 연상되듯 얇고 매끈하지 않고 프라이한 것처럼 두껍고 가장자리가 타들어가 있었다. 어차피 일이 다 틀렸다고 낙담하는 가운데에서도 그 계란의 형태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그는 오므라이스가 왜 잘못되었는지, 돈 받고 팔기에는 왜 부당한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활비가 부족할 때마다 수십 가지의 계란 요리로 나머지 날들을 버텨 온 베테랑답게, 그의 논지는 어느 주제보다 생생하고 조리 있었다. 유키코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했다. 여태 문제가 있다고 해놓고는 막상 유키코가 그러자 그는 당황했다. 종업원도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요청은 왜 하는 겁니까?
    "이런 계란은 먹을 수가 없잖아요."
    "맛이 이상합니까?"
    "아니, 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종업원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지친 표정의 열공생들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외워도 까먹는 해부학 용어와 공업수학 공식들 속에서 낭랑하게 울려 펴진 오므라이스의 미적 문제란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가스등'이라는 일본어와 발음도 유사한 이 심야식당을 채우는 희부윰한 피로감과, 출몰과 종적을 가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은은한 불안과 짝패를 이루는 그 모호한 말이라니.
    "그렇습니까?"
    종업원이 그렇게 물으며 왜 그런지 자기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쥐죽은 듯 이 년을 지낼까, 생각했다. 뭘 밝히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겸허하게. 그렇게 자포자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서도 일단 유키코가 보고 있으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였고 종업원이 알겠습니다, 하며 접시를 주방으로 들고 갔다.
    그렇게 식사와 식음의 시간이 끝나고 유키코에게서는 별다른 답을 듣지도 못한 채 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음식값을 나눠서 내고 유키코가 거스름돈을 받아다 그의 손바닥 위에 히, 후, 미, 요, 이 같은 줄임말로 세면서 동전을 떨궜다. 그 얼굴이 지금까지 그의 호소를 들을 때와는 다르게 천진하고 맑아서 그는 은근히 부아가 났지만 마음을 누르고 그중 한 개를 돌려주며 다섯이 아니라 넷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유키코는 넷이 절대적으로 맞네요, 하더니 내일 여기서 또 만나자고 말했다. 항의서를 같이 쓰면 되겠습니다, 라고.

 

    하지만 유키코는 조건을 하나 달았는데 이 문제에 있어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연관 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든, 자기와는 케이스가 다르다고 선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래서 글에는 인종차별에 대한 그의 확실한 입장이, 유키코의 경우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같은 피해의 대상이 되었다는 애매한 항의가 담겼다. 교수와 조교에게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

 

    도쿄에 도착한 그는 배추밭을 둘러보기 위해 대학으로 향했다. 동아리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참고해 보면 학내 한인 차별 금지의 상징이자 한국 학생들의 긍지였던 그 밭은 연내에 학교 측에 의해 팸플릿 안내소로 바뀔 예정이었다. 동아리에서는, 안타깝지만 학교 당국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라고 수용의 이유가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다만 거기에 묻은 타임캡슐의 처리 방법을 선배들이 알려주었으면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메일은 양해를 구하거나 허락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처분에 대한 통보였다.
    한 로맨스 영화가 흥행하면서 그 당시 한국에서는 타임캡슐이 유행하고 있었다. 너도나도 무슨 행사만 있으면 땅을 파고 캡슐을 묻곤 했다. 지금 보면 그런 타임캡슐들이 과연 예정된 기한에 다 개봉될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득한 미래에 현재인들이 퐁당퐁당 던지는 물수제비 격인 그것들은 과연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연속의 파문을 그려 줄 것인가. 묻은 사람에게 있었던 당위와 낭만이 꺼낼 사람에게도 유지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도쿄에 와 있었다. 약속과 달리 너무 일찍 온 미래인이기는 했지만.
    그 두 평짜리 밭은 그로서도 인생 최대의 공적 투쟁을 했던 특별한 장소였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뒤 떠올린 적은 거의 없었다. 그는 마치 유학 시절 전부를 폐기하고 싶은 사람처럼 도쿄와 거리를 두며 지냈다. 유키코와 가장 나쁜 경우로 헤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나쁜 경우란 한 사람은 여전히 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누군가는 영원한 가해자로, 누군가는 영원한 피해자로 남는 구도였다.
    그가 유키코에게서 마음이 정확히 왜, 어떻게 떠났는지는 끝내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눈 오는 풍경처럼 온통 환하고 완벽한, 압도적인 충일함에서 시작하지만 일단 지워지기 시작하면 또 그것이 녹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얼룩이 연쇄되며 진행되니까. 헤어질 무렵 유키코가 했던 오해처럼 유키코의 국적, 출신이 결정적이지는 않았다고 그는 지금도 장담할 수 있었다. 대화하다 일본어도, 영어도, 한국어도 통하지 않을 때면, 그렇게 어떤 한계와 맞닥뜨릴 때면 "그저 티슈 한 장의 차이야"라고 상대에게 말해 준 사람은 언제나 그였으니까. 하지만 그 잠깐의 '이해할 수 없음'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유키코는 가족 중 하나가 실패한 연애로 오랫동안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상기하곤 했다. 너는 다르다고 상대 가족들이 말했다고 해, 너의 피에는 더러운 것이 있다고.
    11월의 도쿄는 그가 기억하는 것처럼 송년 준비로 분주했다. 트리와 조명으로 도시 전체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이십대의 그가 걸었을 거리를 되짚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대학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오쿠보로 향했다. 유키코가 보낸 이메일에는 그곳 여행사 주소가 전자서명으로 붙어 있었다. 이렇게 알리지도 않고 불쑥 찾아가는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지만 회사의 대표전화와 이메일 빼고는 유키코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설렁탕집 옆의 작은 건물을 올라가자 '신성여행사'가 나왔다.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책상 명패들을 읽어 보니 가네다 유키코라는 이름도 없었다. 잘못 찾아왔을까, 아니면 전 직장 주소일까. 그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출입구로 한 여자가 들어왔다.
    "투어객이셔요? 신청은 5시가 마감이에요."
    그가 유키코를 찾아왔다고 말하자 여자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좀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유키코는 오늘 야간 투어 담당이라서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연락처를 물어보려다가 여기는 더구나 일본이니까 그런 걸 가르쳐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포스트잇을 빌려 그의 연락처를 남길 수 있을 뿐이었다. 그가 메모지에 깃짱, 이라고 유키코가 부르던 이름을 오랜만에 적고 전화번호를 남기자 여자가 건네받으면서 푹, 하고 웃었다.
    "죄송해요. 유키코상의 강아지 이름과 같아서 그랬어요."
    의아해하는 그에게 여자가 사과했다. 그리고 자기 말에 신빙성을 더하려는지 굳이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유키코의 계정에는 '유실'이라는 한글 이름과 함께 완고한 조소가, 성실한 가이드, 그리고 아마추어 미학자라고 자기소개가 쓰여 있었다. 그 어울리지 않는 세 개의 직업을 가진 유키코는 갈색 푸들종인 강아지를 안고 브이 자를 그려 보이고 있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여자가 야간 투어는 저녁 일곱 시에 도쿄 타워에서 시작한다고 알려주었다.
    "도쿄에 온 사람은 누구나 도쿄 타워에 올라야 하잖아요. 가본 적 있으세요?"
    "없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입장료가 있는 관광지는 거의 가보지 못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잘 됐네요, 하며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꼭 가봐야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워잖아요."
    그에게 유키코는 미학을 공부하는 예술학도라기보다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도쿄의 흔한 20대처럼 기억에 남아 있었다. 주로 주말에 만나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라고 하면 유키코는 아르바이트를 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되물으면 그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어, 라고 하는. 그는 한국 대기업에서 해외유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는 중이었으니까 그렇게 답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잦았다.
    장마가 있던 어느 여름날이 되어서야 둘은 비로소 예술과 가까운 장소라 할 수 있는, 대학의 미술관에서 만났다. 세찬 비가 그 오래된 건물을 완전히 덮듯이 내리면서 빗소리가 외부와의 단절을 만들어준 날이었다. 정말 세상에 그와 유키코만 있어서 둘의 사이를 불편하게 할 티슈만큼의 문제도 존재하지 않을 듯한. 그러면 새로운 언어 같은 것을 만들게 되리라고 이십대의 그는 상상했다. 한국어와 일어, 영어, 그가 외고에 다닐 때 전공했던 프랑스어와 유키코가 <전함 포템킨>의 자막을 수없이 돌려보며 익혔다는 러시아어, 아이누어로 된 홋카이도의 몇몇 지명들까지 모두 섞여든. 유키코는 대학 안에 있는 연못 이름이 유명한 소설에서 왔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알고 있다고 하자 깃짱은 물론 그런 책들을 다 읽었겠지, 전공이 그러니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깃짱이 서울 집에서 그런 걸 골똘히 읽는 장면을 상상해."
    "나도 유키코가 홋카이도 부모님 집에 가 있는 걸 상상해."
    "그럴 땐 어때?"
    "뭐가?"
    "내가 뭘 하고 있느냐고."
    그의 머릿속에서 유키코는 언제나 피곤을 모자처럼 눌러쓴 채 어디론가 걷는 중이지만 그는 아주 편안하지, 라고 대답했다. 유키코는 이번에도 과제를 내지 않으면 정말 낙제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 얼른 과제를 써야지, 도서관으로 가자."
    등 떠미는 시늉을 했지만 유키코는 그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뭘 쓰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해야지, 뭘 쓰고 싶은데?"
    "예술."
    "그러면 간단하다. 컴퓨터를 켠다, 예술에 대해 쓴다."
    그러자 유키코가 예술이 그렇게 간단한 줄 아느냐며 피식 웃었다.
    "나는 가끔 모르겠어. 사람들이 뭘 아름답다고 느끼고 뭘 혐오스러워하는지. 그런 건 어쩌면 영영 모르게 되는 걸까."
    밤의 도쿄 타워는 야경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무척 붐볐다. 서둘렀지만 일곱 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그는 매표소가 있는 층에서는 유키코를 찾아내지 못했다. 가족들과 여행 온 중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그는 유키코를 만나면 뭐라고 인사해야 할지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재회하면 유키코가 당황하지 않을지, 그러면 연락처만 주고 나와야 하는지, 아니면 말을 걸지 않고 지켜만 봐야 하는지. 승강기에서 내리자 환영인사가 이어지고 사진사가 이 멋진 공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라며 중국인들을 조명 아래로 안내했다. 신주쿠 대로를 조망할 수 있는 메인 전망대를 중심으로 서너 줄이 만들어질 만큼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이상하게 대체로 동양인들이었고 유키코와 같은 동양인 여성을 안내자로 삼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그는 유키코를 잘 찾아낼 수가 없었다. 배낭과 모자, 듀티 프리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쇼핑백과 여행사에서 일괄로 채워 준 인식용 팔찌, 그리고 그 무리 가운데에 간편한 옷차림으로 마치 꽃잎 두 장처럼 섞여 있는 일본인 연인들 틈을 비집고 들며 이동할 뿐이었다.
    전망대를 한 바퀴 돌았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았지만 유키코는 없었다. 알록달록한 전구로 만든 하트 불빛과 조경수를 밝히고 있는 무더기 불빛 아래에서 그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가방에서 여행사 유인물을 꺼내 야간 투어의 동선을 읽어 보았다. 도쿄 타워에서 시작한 2시간짜리 투어는 로컬 식당들이 밀집한 유라쿠초 지역과 몬자 거리, 긴자를 지나 롯폰기에서 종료되고 있었다. 어느 식당을 가는지, 어느 숍에 들르는지는 당연히 나와 있지 않았고 다만 롯폰기라는 종료지를 써넣고 괄호로 "희망자가 있을 경우 모리 아트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할인가 1600엔"이라고 표기해 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한마음'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는 항의서가 실패한 뒤 그가 찾은 곳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조총련계인가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고 굳이 정의하자면 한국계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한류문화에 대한 일본 학생들의 관심을 고취하려는 이런저런 목적의 느슨한 친목 동아리였다. 그런데 그가 가입할 때쯤에는 대학 내 공기가 좋지 않아 한국 유학생들이 겪는 차별과 곤란이 동아리에서 이슈가 되고 있었다. 동아리에서는 집단행동을 제안했다. 그는 그런 공개적인 행위까지는 하지 않으려다 며칠 뒤 생각을 바꿨다.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도서관 자리에 책에서 찢어낸 어느 페이지 쪼가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몬모우, 문맹(文盲)이라고 적혀 있었다.
    첫날 조용히 시작했던 시위는 의외로 열띤 상황이 되었다. 시위를 만류하는 학교 관계자들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런 행동은 옳지 않다고 의견을 내며 지나갔다. 모리타 선배마저도 이거 마치 우리가 트리거가 된 기분이야, 라고 말할 정도였다. 드러나지 않고 수면 아래 잠겨 있던 감정들이 표출되는 데는 열 명 남짓의 시위대, 그들이 서 있는 인문동 앞의 작은 공터, 그리고 피씨실에서 프린트한 유인물 한 장이면 충분했다. 그런 표출은 한쪽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한국계 사이에도 번졌다. 특히 학교 인트라넷에서 쟁점이 되었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러자 유키코가 더는 못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될 건데 왜 그러는 거야?"
    사람들이 그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 주고 거기에 자신의 경험까지 얹어 동의해 주는 활력에 취해 있던 그는 유키코의 행동에 당황했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키우는 건 우리에게 도움이 안 돼."
    "도움이 안 되다니? 한국의 언론에서도 다루어 준다고 했어. 왜 도움이 안 돼?"
    "지금 네가 이렇게 문제를 키우는 건 우리를 위험으로 모는 거야. 너는 유학생활이 끝나면 한국으로 가겠지만 우리는 아니야.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해."
    그러면서 유키코는 아주 단호하게 처음부터 언급했듯이 자기 출신과 이 문제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있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키코가 어리석어 보였다. 그래서 왜 자기 정체성 문제와 마주 보지 않느냐고 했다. 유기니, 유실이니 하며 그저 풀풀 날아가는 슬픔과 우울로 반응하는 건 일종의 지체이고 감상일 뿐이라고. 그건 지력이 아니라 미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유키코 같은 미학과 학생에게는 더 옳지 않다고. 유키코는 입술에 묻은 팝콘 부스러기 같은 것을 털어내듯 검지로 얼굴을 톡톡 치며 있더니 레이케츠닌겐, 키에로, 하고 돌아섰다. 가버려, 냉혈인간, 이라는 말이었다.

 

    유키코는 더 이상 집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를 취재하러 온 한국의 기자는 유키코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더니 납득하지 못하다가 끝내 기사를 내지 않았다. 동아리에서도 시위를 계속할지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온 활동 방식이 아니라서 일본 학생들이 표 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새 학기가 되자 그의 곁에는 집회 중간중간에도 법전을 뒤적이며 급한 공부를 해야 하는 모리타 선배와, 어쨌든 동아리 일이므로 건성으로라도 도와야 하는 동아리 회장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시작될 무렵, 정해진 시간에 나와 보니 아무도 없이 그 혼자였다.
    그는 그렇게 소강된 항쟁의 현장에서 특별한 흥분도 열의도 느끼지 못한 채 피켓을 들고 한 시간을 버텼다. 아직도 아버지가 택시 타는 손님들에게 자신의 외아들이 서울 유수의 대학을 간 것도 모자라 도쿄까지 유학 갔다는 묻지도 않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어머니의 전언을 떠올리며.
    "너네 아버지는 너 장학금 준 그 회사 제품만 이제 쓴단다."
    "철강회사에서 쓸 게 뭐 있다고요?"
    "시골집 수리하면서 철물점에 묻던데, 그 철판 메이드 인 포항 맞냐고."
    그런데 그가 혼자가 되자 유키코가 인문동 앞에 다시 나타났다. 유키코는 그에게 합류하지도 그냥 모른 척 지나가지도 않은 채 맞은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사라졌다. 누구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한마디 해야겠다고 결심한 날에는 비닐봉지 가득 면장갑 같은 도구와 곡괭이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 말도 없이 그가 서 있는 자리 뒤편, 건물과 건물 사이, 잡초와 들꽃 따위가 듬성듬성 핀 손바닥만 한 땅을 갈기 시작했다. 땅을 간다는 것 자체가 어떤 행위인지 실제로 본 적 없던 그에게는 그래서 더 놀라운 장면이었다. 이 무슨 신선놀음이란 말인가. 지금껏 자기는 지지자들도 다 떨어져 나간 이곳에서 무관심의 모욕을 감내하며 하루하루 버텼는데 한가롭게 가드닝이라니.
    역시 유키코는 점잖게 말해서 이해에 가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이가 없어진 그는 유키코에게 말도 걸지 않고 며칠을 보냈다. 그러면서 유키코의 행위가 그를 향한 야유인지 아니면 정말 그가 서 있는 풍경을 보기 좋게 ─ 혼자 있으면 너무 신산하니까 ─ 꾸며 주려는 행위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견디다 못해 그가 먼저 유키코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유키코 잘 지냈어? 그런데 지금 뭘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유키코는 못 들었는지 답이 없었다. 유키코의 답을 기다리며 서 있자니 현장은 정말 안온한 오전 11시의 교정일 뿐이었다. 새가 날고, 깊고 깊은 교정의 숲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들이 흔들려 솨아─ 소리를 내는. 학생들의 컨버스 신발들이 경쾌하게 페이브먼트를 밟고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종종걸음 치는.
    "문제를 해결 중이야."
    유키코는 제법 고랑이 생긴 공터도 밭도 아닌 모호한 공간에서 노동을 멈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 중인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다 배추를 심는 편이 너가 그렇게 멍청이처럼 서 있는 오전보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
    배추를 심다니, 세상이 망하기 전에 심겠다는 사과나무도 아니고 배추를. 그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사과나무야 기독교권에서 아담과 이브가 탐하는 바람에 인간이 오욕칠정을 다 겪으며 무참한 현실을 살게 되었다는 인류학적 맥락이라도 있지, 배추는 대체 배추가 뭐란 말인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유키코가 배추라고 하자 일본에 와서 주로 간단하게 때우느라 챙겨 먹지 못했던 그 맛이 입안 전체에 느껴진 건 사실이었다. 그의 부모는 김치에 곁들임 채소를 넣지 않고 우직하게 배추 하나만으로 김치를 담그던 고장에서 오래전 서울로 올라왔는데, 세 들어 살던 주인집에서 화려만발하게 무채며 갓이며 배며 쪽파를 넣어 김장하는 장면을 보고 자신들이 도시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했다. 그 풍요와 사치 속에 도시살이의 맛이 있다는 것을.
    택시가 잘 될 때는 아파트를 늘리기도 했던 부모의 서울살이는 그러나 원했던 만큼은 아니었고 이제 모든 희망을 그에게 걸고 있었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그 만발한 맛을 느끼며 성장했으니까. 유키코가 발음한 배추라는 단어는 그렇게 그를 깊은 상념에 빠뜨렸다. 오금을 톡 쳐서 무릎이 꺾이게 만든 셈이었다. 배추가 뭐라고, 그거야 무, 고추, 마늘과 함께 한국의 4대 채소로 중국에서 유래된 양귀비목 십자화과의 식물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한번 축축한 방식으로 투쟁 의지가 꺾이자 그는 그냥 손바닥만 한 햇볕을 맞으며 앉아 있고만 싶었다. 어디서 얻어 왔는지 겨우 여린 서너 잎을 틔우고 있는, 배추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유키코가 열심히 심고 있는 모종들을 보면서, 겨우 스무 포기 정도 심고 나서는 발딱 일어나 오늘 정말 필사 작업했다고 손을 탈탈 터는 유키코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그 배추밭은 당연히 사람들 눈에 띄었다. 공터에는 어느 날에는 배추가, 어느 날에는 다 뽑히고 장미 따위가 또다시 어느 날에는, 유키코가 그러지는 않았지만, 싹 다 정리되고 공터가 되었는데 그러면 다시 유키코가 위풍당당하게 모종을 심으러 나타났다. 곡괭이와 면장갑을 들고,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홋카이도 본가에서 공수했다고 주장하는 배추 모종을 들고. 그런데 사람들 마음이 이상한 것이 누군가들이 서서 소리 치고 갈등하고 배척하는 것보다 그렇게 심어져 있던 푸릇한 것, 여린 잎들과 흙 같은 것이 손상될 때 더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래서 별수 없이 특별해진 이곳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학내에 없을 정도였다. 유키코와 그가 심고 있으면 멈춰 서서 구경하거나 이런저런 조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누가 그 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제보를 받기도 했는데 유키코는 그런 얘기를 듣고도 확인하러 달려가거나 막아야 한다고 나서지 않았다. 내일 또 심지 뭐, 라고만 했다.
    9월은 그렇게 투쟁의 가드닝이 이어지는 시간들이었다. 거기에는 구호도 피켓도 없어서 어떻게 보면 식물애호가인 학생들이 학교의 빈 땅을 그냥 두지 못해 경쟁하듯 가드닝에 나서는 장면처럼 비춰졌는데 그 옥신각신을 견디다 못한 학교에서 어느 날 접근금지 선을 만들어버렸다. 붉은 선이 사방으로 쳐지고 '위험'이라고 쓰여 있었다.
    교내에 갑자기 생겨난 금지와 통제의 선은 그 앞을 매일같이 지나던 한 물리학과 교수의 심기를 불쾌하게 했다. 대학 해체와 강당 해방을 외쳤던 전공투 세대답게 그는 이런 특정 장소의 결락을 아주 문제적으로 받아들였다. '빙하기 세대'라는, 무기력하고 내일 없는 존재로 명명되던 청년들이 도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는 것, 인간성에 대한 규정과 희망을 국적을 초월해 노동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학교가 통제선을 쳐서 모처럼의 활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었다. 교수는 학교 측을 비난하는 긴 글을 교내신문에 기고했다. 가장 강조한 부분은 학생들의 가드닝이 가지고 있는 그 느리고 비전문적이고 헛수고에 가까운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이러한 완고한 아마추어들의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고정된 세계를 뒤흔드는 도화선이 되었다고.
    학교에서는 사건의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를 시작했다. 유키코는 조사위원회에서 불러도 가지 않았다. 조교는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이 5번 칸으로 안내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4번 칸이 만원이었기 때문이라고 눈물을 글썽여 가며 주장했다. 자신은 절대 레이시스트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정말 기차 안이 만원이었는지가 결정적일 텐데 그 기준은 답사 참가자들 서로 달랐다.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고 학교 측의 중재를 받아들였다. 그 일이 있었던 봄은 벌써 너무 멀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유키코가 더 이상 곡괭이를 들고 등교하지 않고 배추도 심지 않는데도 그 공간은 내내 배추밭이라고 불렸다. 동아리에서는 아예 자기네 공간처럼 그 자리에서 행사를 열었고 타임캡슐도 묻었다. 학교에서는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가을이 깊어지자 정말 배추 하나가 주먹만 하게 자랐는데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유키코에게 마음을 고백한 것도 그곳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그 앞에서 만나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있을 때였다. 배가 고팠는지 한창 섭취에 열중하던 유키코가 손가락으로 멀리 보이는 교내의 숲과 지금 그들의 발 앞에 놓인 땅을 이으며, 날아온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심지 않아도 저 숲에서 자라는 것들이 날아와 여기에 자리 잡는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흘에 한 번씩 뒤엎고 갈아 가며 필요 이상의 개간 작업을 한 공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이 다시 자라고 있었다. 날아와서, 행로와 목적도 없이 날아와서 여기에.

 

    그러니 그날의 사랑한다는 말은 그 살아 있는 것들의 이동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

 

    그는 롯폰기 힐즈에 도착해 미술관 티켓을 끊으러 가는 길목에 자리 잡았다. 그가 유학할 당시는 이 광활한 계획도시가 완성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기였다. 마치 거대한 미래가 오는 듯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롯폰기인이 됩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우주인 캐릭들이 도시를 활보했고 정원에는 일본인 과학자가 컬럼비아호를 타고 가서 배양한 '우주 송사리'가 방사되었다. 그 송사리들은 우주에서 길러진 최초의 척추동물이라고 했다. 그도 유키코와 함께 보러 갔었는데 물결 아래 잠겨 얼룩얼룩한 음영으로 짐작될 뿐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유키코가 지나갈까 봐 그는 허기를 견뎠다. 물론 희망자가 없다면 유키코는 여기에 오지 않을 것이었다. 미술관을, 그러니까 이 거대한 미래도시에서도 뭔가 예술을 누리고 싶어 하는 관광객이 없다면. 맛집을 이어 가다가 마지막에 당고 같은 디저트로 마무리하고 유키코는 집으로 돌아가겠지. 지하철을 타고 걷고 뭔가를 사거나 모자를 쓰거나 벗거나 하면서 가면 그와 같은 이름의 강아지가 유키코를 맞이할 것이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연락이 완전히 끊긴 다음에도 변함없이 계속되었을 유키코의 일상이 무겁게 마음을 눌렀다. 어쩌면 그와 유키코가 재회하는 것은 그렇게 그들이 일상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이별하고 나서도 꽤 이기적으로 살아냈다는 현실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는 돌아갈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목격자가 있지 않은가. 여행사에서 만나 도쿄 타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 여자가 그의 연락처를 내일이면 유키코에게 전해 줄 것이다. 그리고 연락이 오면 오는 대로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그의 삶은 어느 방향으로 조금 더 이동할 것이었다.
    투어 종료 시간인 9시가 가까워지자 그는 말할 수 없이 긴장되었다. 잠깐 스치듯 사진으로 확인했던 유키코와 체구나 인상이 닮은 누군가가 지나갈 때마다 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마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한 채 초조하게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아홉 시 삼십 분이 넘어서 이제 미술관이 관람객을 받지 않는 시간이 되어서야 그는 오늘의 재회는 가능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아무도 예술을 원하지 않았고 그도 누군가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 뒤로 사흘 더 도쿄에 머물렀지만 유키코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하릴없이 관광지들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오래전 그런 곳들을 다니며 유키코가 했던 불평들은 사실 슬픔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오히려 그것들이 낡아 가는 장면에서 비감을 포착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부감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그랬던 유키코가 이제 가이드가 되어 이 도시를 찾은 사람들과 함께 그런 곳들을 돌고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낯설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느껴졌다. 관광객들이 도착하고 떠나가는 루틴은 마치 흙을 여러 번 돋워 모종을 심던 손길처럼 끊임없이 유키코가 이 도시에 남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키코에게서 전화가 온 건 마지막 날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였다. 유키코는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을 줄 알았다면서 아직 그가 도쿄에 있다는 데 당황해했다. 그는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유키코의 마음을 느꼈고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이미 공항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고 대답했다. 몇 번 칸이냐고 유키코가 물었고 그가 네 번째 칸이라고 하자 그러면 절대적으로 맞겠네, 하며 농담했다. 대화는 문제의 타임캡슐로 넘어갔다. 그는 유키코에게 이제 와서 뭔가를 한다는 게 어색해서 가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출장으로 와서 그런 시간을 낼 수는 없었다고.
    "이해해."
    "이해하지?"
    "그래, 출장이라는 게 그렇잖아. 그리고 열었다가는 너는 정말 코가 썩어 들어갔을 거야."
    "왜?"
    "내가 거기에다가 편의점 계란을 넣었거든."
    "뭐?"
    대체 누가 그런 음식물을 타임캡슐에 넣는단 말인가. 그는 유키코의 괴팍함을 다시 확인한 게 반갑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크게 웃었다.
    "대체 그걸 뭣 하러 넣었어?"
    "미래인들한테 오감으로 느끼게 해주려고."
    "뭘?"
    "과거가 만만치 않았다는 걸."
    전화를 끊고 그는 타임캡슐을 열어 볼 필요는 더욱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기에 유키코와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넣었는데, 그렇다면 몇 년간 계란이 상하면서 캡슐 안의 모든 것을 최대한, 아주 활발히 오염시켰을 것이다. 땅속 온도와 밀폐 상황 그리고 계란의 풍부한 단백질과 철분, 황.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대학으로 찾아갔다. 유키코의 목소리를 듣고 나자 그것의 처분을 자기라도 확인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과거로 빠르게 회귀되는 것을 느꼈다. 그건 어디부터 어디까지 기억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때의 모든 감각을 다시 입는 기분이었다. 배추밭에는 정말 공사가 시작되려는지 주의(!)라는 노란 푯말이 서 있었다. 그는 일단 땅을 툭툭 차보다가 손으로 좀 파내려갔다. 하지만 이천년대 기력 좋은 대학생들이 얼마나 깊이 묻었는지 어림없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또 한마음 동아리회를 찾아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어딘가 모리타 선배를 닮은 일본인 학생이 하나 남아서 동아리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메일 한 동아리 회장은 아니었지만 배추밭에 대해서는 자기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가 저녁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하자 학생은 고개를 차분히 끄덕이더니 어디론가 가서 삽을 들고 왔다. 두 개였고 자기도 돕겠다고 했다.
    그와 테츠야라는 이름의 학생은 묵묵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중간에 학생들이 테츠야, 뭐 해? 하고 묻자 그는 발굴 중이야, 라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나 관광지 같은 화제가 오갔지만 나중에는 힘이 들어서 그마저도 말이 끊겼다. 생수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는데 테츠야가 선배는 뭘 묻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사실 묻을 때는 서로 비밀로 했지만 이제는 말해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그때의 모두는 이제 이 미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 같으니까. 사진이라고 하자 테츠야가 여자 친구의? 하고 약간 부끄러워하며 물었고 그가 그렇다고 했다.
    "지금은 헤어졌겠지요?"
    마치 모든 결말을 안다는 듯 테츠야가 다시 묻는데, 그는 그 담담하고 순한 말투가 마음에 걸려 대답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철물점에 의뢰해 만든 문제의 타임캡슐, 정확히는 철제 통이었다. 그는 혹시 계란이 썩고 있으면 밖에서도 냄새가 나고 당연히 어딘가 상한 흔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통은 멀쩡하고 안전해 보였다. 그는 캐리어에서 원래는 유키코에게 주려고 사온 제주 섬 모양의 캔들을 꺼내 테츠야에게 내밀었다. 테츠야는 한사코 거절하다가 그가 부탁하자 그때서야 정말 감사합니다, 하며 받아들었다.
    "이제 돌아가도 됩니다. 열어 보는 건 혼자 할게요."
    그가 캡슐을 열었을 때의 상태가 걱정되어 그렇게 말하자 테츠야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이 안이 얼마나 부패했을지, 유키코가 장난으로 집어넣은 망할 계란 때문에 우리가 어떤 혐오스러운 냄새를 맡게 될지를 설명하자, 테츠야는 대단하네요, 라고 할 뿐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원한다면 하는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쪼그려 앉아 나사를 풀었다. 이제 슬슬 해가 지고 있어서 정말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늘도 비행기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둘 다 숨을 멈추고 딸깍 하고 그것을 열었을 때 아무런 불쾌한 형체도 질감도 없었다. 동아리 부원들의 이름이 적힌 주머니들이 그냥 얌전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가 가네다 유키코라는 주머니를 들었을 때 그것은 마치 공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 가벼웠다. 오래되면 계란이라는 것은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까. 그가 당혹스러워 하며 손바닥 위로 주머니를 털었을 때 거기서 나온 것은 '가스토'라는 견출지가 붙은 50엔짜리 동전이었다.

 

*

 

    도쿄에서 돌아와 바뀐 계절들을 겪으면서도 그는 동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늘 생각했다. 그건 귀국길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된 고민이었다. 비행기에서는 유니세프 모금함에 넣어 재난 지역의 아이들을 도울까 생각하고 백화점을 지날 때는 안 그래도 조금씩 줄고 있다고 하는 구세군함에 넣어 불우한 이웃들을 도울까 고심하고,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면 그가 지지하는 진보정당에 보태 민주주의 발전을 도모할까 갈등했다. 그는 동전을 어디든 손닿는 곳에 둔 채, 깜박 잊고 출근길에 나섰다가도 돌아와 꺼내가곤 했다.
    그것을 손안에 넣고 굴리고 있으면 아직은 모호하지만 결국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이 알아내야 할 삶의 마지막 진실들을 만져 보는 기분이었다. 그의 미래와 소소한 혁명과, 동산과 부동산으로 이루어진 그의 생활과 살아 있는 한 마지막까지 그를 불안하게 충동할 생의 추구 같은 것과 연관 있게 느껴졌다. 왜냐면 그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희부윰한 피로와 절망, 불안의 청춘이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으로 던진 것이기에. 동전을 만지고 나면 손가락에는 복잡한 금속 냄새가 남았다. 어쩔 때는 여름의 비 내음 같기도 하고 때로는 흙냄새나 막 깨뜨린 계란 따위의 비린내 같기도 한. 하지만 그가 그것을 정확히 알고 싶어 가까이 더 오래 가져다대면 희미하게 옅어지다 종국에는 사라지고 없었다.

 

 

 

 

 

 

 

 

 

 

 

 

 

 

작가소개 /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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