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의 밤 - 강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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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우주비행사의 밤

 

 

강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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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캐럴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약간씩 삐걱대는 소파에 앉아 자기 나이가 일흔여섯 살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고 전화벨만 울리지 않았다면 자기 나이와 관련된 생각을 계속하면서 한 시간쯤 더 소파에 앉아 있을 작정이었다.
    – 여보세요.
    거실은 오래전에 버려진 폐광처럼 어두웠고, 커튼 틈새로 비치는 햇빛 속에서 먼지들이 떠다녔고, 아주 작은 소리들이 전부 뼈마디를 두드리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고······. 캐럴은 전화벨 소리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한동안 전화기를 바라보다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 안녕하세요, 테일러 부인. 저는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매기 브라운인데요······. 주소가 그린벨트로 되어 있는데 아직 그곳에 사세요?
    오십 년 전이라면 그랬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나는 일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그때 캐럴은 그린벨트에 살았고 마크 테일러의 아내였다. 고다드우주비행센터는 마크가 일하는 곳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마크는 매일 걸어서 그곳에 가곤 했다. 그리고 그때는 삶이 다른 어느 때보다 단순하고 선명해 보였다. 시간은 명품코너에 서서 웃고 있는 점원처럼 호의적이었고 캐럴은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잘 차려입고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 무슨 일이죠?
    캐럴은 자기 목소리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고 그 감정이 상대를 위협하거나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통화하고 있는 매기는 오십 년 전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오십 년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매기를 괴롭히는 건 공평하지 못한 일 같았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오십 년보다 유통기간이 길었다. 잊고 싶은 감정일수록 더 그런 것 같았고 고다드우주비행센터와 관련된 거의 모든 감정이 바로 그랬다. 캐럴은 오십 년 전에 걸려온 전화와 그 전화가 불러낸 감정을 잊지 못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의 목소리.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테일러 부인.
    캐럴은 한동안 남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고. 우주선 사고나 소수점 다섯 자리 이하에서 발생한 계산착오, 궤도이탈 같은 말이 어떻게 마크와 연결될 수 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우주미아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마크가 우주미아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마크의 죽음에 대해서도 몇 마디 암시만 했는데 목소리에서 잘 다린 양복과 진한 스킨 냄새가 났다.
    – 추서 형식으로 자유의 훈장이 수여되고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기념비가 세워질 겁니다. 아, 그리고 내일쯤 연금과 관련해서 담당직원의 전화를 받게 되실 거고요.
    남자가 말하는 동안 캐럴은 전화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소리를 지르거나 울음을 터트리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남자는 그러는 게 얼마나 소모적인 행동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배제시킴으로써 그 말을 했다.
    –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테일러 부인.
    하지만 매기는 몇 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 남자처럼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것 같았다.
    – 저도 부인께 이런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캐럴은 곤란한 표정으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거나 볼펜을 똑딱거리는 어린 여자를 떠올렸다. 책상에 엎드려 울기 시작하면 달래 줘야 할 텐데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한심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 원래 이런 전화는 피터슨 씨가 해야 하는 건데······ 지금은 피터슨 씨가 자리에 없거든요.
    매기가 피터슨 씨의 됨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몇 마디 하는 동안 캐럴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다음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같은 생각을 다섯 번쯤 되풀이해야 했다. 빌어먹을 이 여자애는 오십 년 전에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 그럼 피터슨 씨가 직접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아가씨.
    – 아니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매기는 괜찮은지 물어보거나 자기 말을 듣고 있다면 그렇다고 대답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건 사람처럼 그런 말을 반복하면서 마크에 대해 이야기했다.
    – 저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아요. 피터슨 씨가 그러는데······.
    인생은 가끔 성질 고약한 영감탱이 같았다.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랬고, 끝까지 자기가 해왔던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매기의 말을 듣는 동안 캐럴은 자기가 오십 년 전에 어땠는지 떠올리면서 잠깐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다음 머리에 벽돌을 맞은 사람처럼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 부인 괜찮으세요?
    어떤 게 괜찮은 건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지만 몇 가지 문제만 빼면 그런 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소파가 계속 삐걱거렸고 그 소리가 뼈마디를 두드리는 것처럼 크게 들렸고 공중에 먼지가 떠다녔고 캐럴 혼자 어두운 거실에 앉아 있었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 지금 뭐라고 했나요, 매기?
    – 마크 테일러 씨가 돌아오고 있다고요. 정확하게 말하면 테일러 씨가 타고 있는 우주왕복선이 돌아오고 있는 거지만요.
    캐럴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대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우주선에는 마크 말고도 다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더 타고 있었다. 린다와 에드와 로직과 세르게이와 안나와······ 그들은 캐럴을 지나쳐 간 사람들이었고, 캐럴은 오십 년 전에 궤도를 이탈한 그들이 왜 돌아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그런데 정말 괜찮으세요? 도움이 필요하시면 저한테 말씀하셔도 돼요.
    – 언제 마크를 만날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캐럴은 전화를 끊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지금 당장 한 잔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섯 번쯤 한 다음 부엌으로 갔다. 찬장에 먹다 남은 위스키와 아직 뚜껑도 따지 않은 위스키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캐럴은 손잡이가 깨진 찻잔과 손도 대지 않은 위스키를 들고 다시 거실 소파에 가서 앉았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고, 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1
    캐럴이 마크를 처음 만난 곳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집에서 열린 하우스 파티에서였다. 그날 캐럴은 화장을 안 한 것처럼 화장한 얼굴에 흰 티셔츠와 몸에 짝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어딜 가나 파리 떼처럼 몰려와 윙윙대는 남자들 때문에 구석으로 밀려난 다른 여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만약 양손에 샴페인 잔을 하나씩 들고 두 시간째 자기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면 그 남자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 고마워요. 그런데 이름이 뭐죠?
    – 네?
    시간이 느리게 흐르면 얼마나 느리게 흐를 수 있는지 캐럴은 마크와 이야기를 나누는 오 분 동안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 서커스 단장과 그의 코끼리가 네바다 주에 간 이야기 알아요?
    마크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아니면 캐럴이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를 했고, 캐럴은 서커스 단장과 그의 코끼리가 네바다 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듣는 동안 마크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적 있는 다른 여자들과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남자가 지금 자기 앞에 서 있고 이건 절대 공평한 일이 아니라고.
    – 실례할게요. 친구가 왔네요.
    거실은 넓었고 시끄러운 음악을 밤새 틀어댔는데 원한다면 뼈가 부러질 때까지 춤을 출 수 있었다. 술이 필요한 사람은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기만 하면 되었다. 이층에는 방해하지 말라는 팻말을 걸어 둘 수 있는 방이 세 개 있었는데 남자와 함께 이층으로 올라간 여자들은 삼십 분쯤 후에 옷이 구겨지거나 화장이 지워진 채로 계단을 내려왔다. 가끔씩 말다툼이 벌어지고 욕설이 오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캐럴은 거실 소파에서 눈을 떴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우선 배 위에 놓여 있는 누군가의 다리를 옆으로 치워야 했다. 화장실 거울을 잠깐 들여다본 캐럴은 바지를 내리고 변기 위에 앉았다. 두통 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고 목구멍을 사포로 밀어대는 것처럼 목이 말랐다. 오줌 양이 많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는 것 같았고 캐럴은 화장실 벽에 붙어 있는 파란색 타일을 멍하니 바라보며 네바다 주에 간 서커스 단장과 그의 코끼리를 떠올렸다. 오래전에 설치해 둔 시한폭탄처럼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캐럴은 변기 위에 앉아 자기 웃음소리가 화장실 벽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를 그렇게 만든 남자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마크가 재미없는 남자인지는 몰라도 재미있는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남자라는 건 확실했다. 마크는 매너가 몸에 밴 남자는 아니었다. 노력을 통해서 몸에 배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쪽이었다. 마크는 모든 걸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세계는 가변적인 대상물이었고 중요한 건 노력하려는 걸 멈추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뿐이었다.
    캐럴에게 마크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었다. 캐럴의 주변에도 대학을 나오거나 박사학위를 딴 남자는 많았지만 그 두 가지를 하버드 공과대학에서 한꺼번에 해낸 남자는 마크 한 명뿐이었다. 가르마 탄 머리로 맥도날드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는다든지 빳빳한 양복바지 아니면 너무 많이 찢어져서 방금 개한테 물어뜯긴 것처럼 보이는 청바지밖에 입을 줄 모르는 남자도 마크뿐이었고.
    – 옷 입는 방식이나 머리 모양에 대해서 조언해 줄 사람이 주변에 없나 봐요. 초끈 이론이나 중성미자에 대한 문제 말고요.
    그날 캐럴은 마크와 함께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고 아직 커피가 남아 있는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면서 앞에 앉은 마크가 끝까지 채운 와이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고 다니면 어때 보일까 생각했다.
    – 그렇게 꽉 채우고 다니면 답답하지 않아요?
    – 네?
    물리적인 문제 때문에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물리적인 문제는 그렇지 않은 문제보다 해결하기 쉬웠다.
    – 와이셔츠 단추요.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캐럴도 가슴에 털이 없는 남자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여자들이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여름에도 와이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다녔고 누군가 와이셔츠 단추에 대해 언급하면 마크처럼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더듬었다.
    – 두 개만 풀고 다녀도 훨씬 괜찮아 보일 거예요.
    안토니오는 가슴에 털이 많았고 와이셔츠 단추를 거의 채우고 다니지 않았다. 라틴계 남자 치고도 그랬고 트럭 운전사 치고도 그랬는데 트럭을 운전하는 라틴계 남자 치고도 그랬다. 얼굴을 부비면 누린내가 났지만 캐럴은 거기에 얼굴을 부비는 걸 좋아했다. 양 떼가 오래 머물다간 들판에 누워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낯설고 의도에서 멀리 벗어난 곳에 누워 있을 때처럼. 안토니오는 캐럴이 만난 많은 남자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만나지 않지만 전화 한 통이면 언제든지 화끈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남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캐럴에게는 그런 남자들이 많았다. 잔에서 맥주가 넘칠 때처럼 지저분한 소리를 내면서 입술에 바른 립스틱을 빨아대는 남자들. 브래지어와 팬티만 보면 환장하는 남자들.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더 환장하는 남자들······. 가끔씩 캐럴은 마크가 그런 남자 중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남자 중 한 명이었다면 그렇게 오래 만나지도 않았겠지만.
    마크는 물을 너무 많이 넣고 끓인 옥수수 스프 같았다. 입에 물고 혀로 굴리면서 한동안 이게 뭔지 생각해 봐야 하는 그런 맛이 났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마크가 청혼했을 때 캐럴은 이제 막 썰기 시작한 스테이크를 창문 밖으로 날려버릴 뻔했다. 사실 그건 청혼 같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 마크는 늘 가던 식당에 캐럴을 데리고 갔고, 미안한데 옆에 있는 후추통 좀 집어줄래요, 라고 말한 다음, 저녁 식탁에 앉아서 딸이 사귀는 남자에 대해 한 마디 해야 하는 홀아비처럼 고개도 들지 않고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 난 우리가 결혼하면 아주 멋질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을 듣고 싶네요, 캐럴.
    먼지가 살짝 덮인 스피커에서 컨트리풍의 하모니카 연주가 흘러나왔고 웨이터가 지나다닐 때마다 마루로 된 바닥이 기분 좋게 울렸다. 마크처럼 평범하고 시시하고 몇 번 와도 이름이 가물가물할 것 같은 식당이었다. 무난한 메뉴와 기억에 흠집을 내지 않는 음식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노부부가 주위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포크와 나이프가 잠깐 공중에서 멈췄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움직였다. 그들은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을 만큼 관심을 감출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테이블에서 가족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캐럴은 섹스보다 결혼을 먼저 요구하는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정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적어도 주변에서 그런 남자를 본 적이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남자들은 결혼을 들먹이면서 섹스를 요구했다. 섹스 후에 결혼을 들먹이는 걸 겁내거나.
    –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그럴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캐럴은 살 껍질이 홀딱 벗겨질 정도로 화끈한 잠자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잠자리가 인생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생활을 하고 늙어 간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런 것들은 오랜 시간과 많은 물건,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캐럴은 마크가 방금 쓴 후추통을 정확히 제자리에 돌려놓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 전부터 척 아저씨와 살고 있는 엄마의 말을 떠올렸다. 남자를 고를 땐 자기가 쓴 물건을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을 줄 아는 지만 보면 돼. 나는 세 번 다 운이 없었지만······ 하긴 남자 운이 좋은 여자가 몇 명이나 되겠니. 캐럴의 엄마는 진소리가 심했지만 엄마의 잔소리 치고 틀린 말이 없다는 게 캐럴의 생각이었다.
    – 아니요. 나쁘지 않은 생각 같은데요.

 

 

    2
    결혼 후 캐럴과 마크는 한동안 뉴욕에 있는 마크의 독신자용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고 생각보다 그럭저럭 지낼 만한 곳이라는 데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화장실이 하나뿐이었지만, 주방에 둘이 서 있으면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가 부딪혔지만, 침실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 말고는 장점이 없었지만, 한 명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지나다닐 때마다 다리에 발이 걸렸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한 것은 사실이었다. 마크가 메릴랜드 주에 있는 그린벨트 쪽에서 집을 한 채 구하지 못했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가능성이 컸다.
    – 당신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울타리가 있고, 정원이 있고, 누군가 빗질을 해놓은 것처럼 잘 정돈된 잔디 너머에 이층집이 보였다. 그 집은 어떤 사람들이 저런 집에서 사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바로 그런 집이었고, 캐럴은 자기가 더 이상 그럭저럭 지낼 만한 곳에서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야드 떨어진 곳에도 비슷하게 생긴 집이 몇 채 있었지만 그 집만큼 특별하지는 않았다. 캐럴은 한참 동안 이층집을 바라보다 마크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할 때쯤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최고예요, 마크.
    캐럴에게는 형제가 없었다.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건 가족 중에는 집에 부를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면에서 마크는 캐럴과 정반대였다. 마크에게는 각자 바람을 피운 상대와 살고 있는 부모를 일 년에 한 번씩 방문하거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학교 기숙사에서 받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마크네 가족은 고등학교 아이스하키 팀 같았다. 우리 팀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자고 외치며 우르르 몰려다닐 것 같았고, 오리건 주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았고, 버지니아나 펜실베이니아에서 살았다면 메릴랜드로 우르르 몰려와서 우리 팀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자고 외칠 것 같았다. 이유는 좀 달랐지만 마크도 가족을 집에 부를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 집이 멋지네요, 캐럴. 정말로요.
    어느 날 마크가 아는 사람을 몇 명 초대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캐럴은 하루만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마크가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삼 개월 동안 자기가 집을 어떻게 꾸며 놓았는지 보여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 마크는 정확하게 캐럴이 원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이런 집에서는 누가 사는지 예전부터 궁금했거든요.
    마크의 동료는 다섯 명이었고, 그들은 학교 기숙사로 배달된 크리스마스 선물과 라커룸으로 몰려가는 고등학교 아이스하키 팀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풍겼다. 무겁지 않은 유대와 기호품처럼 선택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무관심.
    – 린다, 이리 와서 거실 좀 봐. 바닥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윤이 나는 거예요? 정말로요.
    세르게이 브린은 뭉뚝한 콧등 위에 두꺼운 안경을 걸치고 있었고, 흘러내린 안경을 일 분에 두세 번 꼴로 밀어 올리면서 하루 종일 뭔가를 생각할 것처럼 생긴 지질학자였다. 린다 브린은 세계적인 생물학자였고 굉장한 미인이었는데, 왜 세르게이 같은 남자와 결혼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볍게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여자였다. 그때는 연구실에 들락거리는 남자 중에서 세르게이가 가장 잘생긴 남자였거든요.
    – 옆에 있는 후추통 좀 집어주게, 마크.
    캐럴은 그날 저녁 식탁에 앉기 전까지 후추통이 들어간 문장을 가장 멋지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마크라고 생각했다. 후추통을 가장 멋지게 제자리에 돌려놓을 줄 아는 사람도 마크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마크는 로직 홀리데이를 흉내 낸 모조품에 불과했다. 약간 달랐지만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마크는 로직에게 후추통을 건넨 다음 다른 건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 후추통이면 됐어. 고맙네.
    로직 홀리데이가 과거에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졌고, 그 목소리에 권위를 실어서 사용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리고 그건 로직 홀리데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재능 중 하나였다. 좋은 목소리가 수만 톤짜리 우주왕복선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가 좋으면 더 잘 움직일 것 같기는 했다.
    – 아니요. 우주복을 입고 밖에 나가는 일은 에드가 해요. 저는 안전한 곳에 앉아서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가끔씩 로봇 팔을 조종하고요.
    안젤리나는 화장이라는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여자였고, 접시에 으깬 감자를 한 주걱 퍼 담으면서 칼 세이건과 그의 저서인 <코스모스>에 대해 자기가 얼마나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말할 때마다 끼고 있는 장갑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손을 움직이는 걸 보면 칼 세이건과 <코스모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있었다.
    – <코스모스>는 성경하고 비슷한 책이에요.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지만 가장 비슷하긴 하죠. 누구도 더 이상 그런 책을 쓸 수 없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똑같고요. 에드요? 나를 세이건 부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남자 중에서 가장 괜찮은 남자였죠. 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렇고요.
    에드워드 세이건은 안젤리나 옆에 앉아 있었는데, 벽에 걸려 있는 그림 같은 남자였다. 아직 거기에 앉아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가끔씩 고개를 돌려야 할 만큼 말이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벽에 걸어 놓고 싶을 만큼 잘생겼다는 점에서도 그랬고. 하지만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자기도 발음기관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떠벌려대기 시작했다.
    – 우주에서는 너무 많이 움직이면 균형감을 잃어요. 움직이는 것보다 움직이지 않는 게 훨씬 더 중요하고 힘이 들죠. 그런 면에서 마크는 정말 타고난 우주비행사예요. 거의 움직이지 않거든요.
    먼 곳에서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렸고, 캐럴은 문득 그곳에 앉아 있는 일곱 명 중 여섯 명이 우주비행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우주에 대해 이야기했고, 원심력 발생장치에 앉거나 회전탁자 위에 서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이야기하다가 다시 우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블루베리파이를 먹으면서 우주를 떠올린다든지 싱크대에 쌓여 있는 접시와 우주를 연결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러지 않는 것보다 그러는 게 훨씬 쉬운 일처럼 보였다.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 농담과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웃음과 오랜 시간을 두고 단층처럼 쌓인 신뢰가 가득한 밤이었다. 캐럴은 우주비행사처럼 마시고 떠들고 웃는 법을 알 것 같았다. 우주유영을 할 때처럼 그냥 몸을 맡기면 됐다.
    – 안젤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기분 나쁘게 취하면 다른 걸 집어던지거든요.
    안젤리나에게는 아무한테나 팝콘을 던지면서 장난을 치는 못된 버릇이 있었고, 알고 보니 에드워드는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웃기는 남자였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세르게이의 견해에는 좀 독특한 면이 있었는데 세르게이의 견해가 지나치게 독특해질 때마다 린다가 나서서 좀 덜 독특한 견해를 제시했다. 마크와 로직은 거기에 모인 일곱 명 중 가장 말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마크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더 말이 없어진 것 같았고, 로직은 원래 그렇게 말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둘 다 자기 마음에 드는 구질의 공이 날아오면 정확하게 배트를 휘둘러 홈런을 날릴 줄 알았다.
    자정이 지나자 천장에서 쥐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람쥐나 청솔모일 수도 있었다. 머리 위에서 여섯 살쯤 된 남자 아이가 타악기를 아무렇게나 두드려대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입에 술을 물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한두 명은 눈을 치켜뜨고 그곳에 뭐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천장을 바라보곤 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식탁 위에서 소금통과 후추통이 계속 쓰러졌고 누군가 더 이상 아무것도 세우지 말자는 의견을 내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그 천재적인 의견에 동의했다. 한번은 식탁보에 묻은 토마토케첩을 한참 들여다보던 세르게이가 그게 마치 인상파 화가의 그림 같다고 말했고 에드워드가 이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가벼운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우주를 제외한 다른 모든 화제처럼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포크와 스푼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나머지는 누가 쓰다가 거기에 둔 건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안젤리나였는지 세르게이였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때 누군가 난장판이 된 식탁과 엔트로피의 증가에 대해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냈고, 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있던 로직 홀리데이가 그날 밤을 통틀어서 가장 긴 문장을 말하며 술잔을 들었다.
    – 인생이 원래 그래. 오래될수록 개연성이 사라지고 무질서해지고 응집력을 잃어버리지.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인생과 엔트로피를 위해 건배.
    캐럴은 잔을 부딪치면서 생각했다. 그것은 생각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웠고, 아주 먼 곳에서 운석처럼 날아와 그곳에 떨어진 것 같았고, 부피가 있는 물질처럼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은, 혹은 기억하려고 노력할 것 같은 예감. 사소하지만 내밀하고 중요한 브릭 하나가 자기의 가장 안쪽 구역에 자리를 잡으며 꽂히는 느낌.
    – 집이 멋져요, 캐럴. 정말로요.
    – 잘 자요, 캐럴. 잘 자요, 마크.
    화장실에서 나는 락스 냄새와 잘 정돈된 침대시트와 깨끗하게 세탁한 타월과 늘 제자리에 놓여 있는 물건들······. 캐럴은 그런 것들이 집을 완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고, 매일 그런 것들을 만지거나 살피면서 집이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계속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들 중 다섯 명의 우주비행사가 돌아가자 캐럴은 집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과 아주 특별한 순간이 그곳을 지나쳐 갔고 다시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지가 달라붙은 벨벳 커튼과 벽지 뒤에 감춰진 균열과 훼손된 채 고여 있는 공기와······ 차갑게 식은 음식처럼 화려함을 잃은 전등불빛이 사방에 가득했다. 캐럴은 그런 것들을 차례차례 바라본 다음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식탁을 십 초쯤 응시하다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지 못한 사람처럼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

 

 

    3
    오십 년째 같은 동네에서 산다는 건 한 블록을 걸어가는 동안 아는 사람을 적어도 세 명 이상 만날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 마침 집에 있었네. 파이를 좀 만들어 왔는데 먹어 봐요, 캐럴.
    그날 아침 캐럴은 문을 열자마자 접시를 들고 서 있는 제시카와 마주쳤고, 몇 번 이사를 다니기는 했지만 자기가 오십 년째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고마워요. 잠깐 들어왔다 가라고 하면 좋을 텐데 지금은 약속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제시카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살았고 세 곳의 자선단체와 두 곳의 봉사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파이를 만들어서 자기가 작성한 목록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사람들에게 돌리곤 했다.
    – 그 옷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누구 만나러 나가나 봐요?
    제시카는 캐럴이 십 몇 년 전에 입고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옷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로건 씨의 퇴임식 때 마지막으로 입은 옷이었고 꼭 그럴 필요가 있을 때만 입고 나가는 옷이었는데······. 캐럴은 자기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제시카가 자기에게 뭔가를 상기시킬 때마다 패배감을 느끼곤 했다. 캐럴에 대해 캐럴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수록 더 그랬다.
    – 그렇게 차려입은 걸 보니까 좋네요. 누군지 물어봐도 돼요?
    – 그냥 옛날에 알던 사람들이요.
    제시카의 파이는 항상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 방금 전에 똑같은 걸 먹었거나 손가락 하나 꼼짝 못할 만큼 배가 불러도 그랬다. 하지만 직접 파이를 들고 와 문을 두드리는 건 좀 생각해 봐야 했다. 제시카의 파이 목록에는 고아나 미혼모나 독거노인처럼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의 이름이 올라 있었는데 캐럴이 그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퍼붓던 오 년 전 여름의 일이었다. 안토니오의 몸에서 생명유지 장치를 뗀 다음날 아침 캐럴은 비에 흠뻑 젖은 우비를 입고 초인종을 누른 제시카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마침 집에 있었네. 파이를 좀 만들어 왔는데 먹어 봐요. 그때 제시카와 캐럴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고 그래서 둘은 그 일을 했다.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이 가득했고 계속 비가 퍼붓고 있었고 빗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캐럴은 제시카에게 안겨서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까지 울었다.
    – 파이는 식탁 위에 두고 갈게요. 그럼 잘 다녀와요, 캐럴.
    비슷하게 생긴 나무문과 잔디밭과 이층집이 깨끗하게 정리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보기 좋게 늘어서 있었다. 자전거를 탄 아이들은 페달을 밟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서 빠르게 달려갔고, 유모차를 밀며 지나가는 여자들이 인사를 건넬 때마다 캐럴은 그들의 코흘리개 적 모습이 어땠는지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오십 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떠나고 어떤 사람은 돌아오고, 아이를 낳아 키우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도 있었다. 캐럴의 오십 년도 그랬다. 안토니오는 좋은 남편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다마스쿠스 공동묘지에 묻혀 있었다. 길리언과 베키는 뉴욕에 살면서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그때마다 길리언은 지금이라도 당장 처와 아이들을 데리고 몰려올 것처럼 굴었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고, 길리언이 항상 말로만 그런다는 걸 캐럴도 알고 있었다. 베키는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였는데 해리스와 이혼한 뒤에 더 그렇게 된 것 같아 걱정이었다. 캐럴에게 오십 년은 그렇게 흘렀고, 이제 남은 것은 가끔씩 걸려오는 자식들의 전화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낯설기만 한 남편의 묘지뿐이었다. 캐럴은 모든 것이 지나갔고 지금 남아 있는 것들도 다른 모든 것이 그랬던 것처럼 곧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것은 그렇지 않았다.
    – 내일 오시는 거 맞죠?
    지난 며칠 동안 캐럴은 계속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무언가를 깨트렸고, 그럴 때마다 자기가 나사 빠진 사람처럼 행동한 것에 대해 화를 내야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괜찮으냐고 물은 다음 캐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정말 괜찮은지 물을 때도 그랬다. 자기가 캐럴과 완전히 똑같이 생긴 다른 누군가 같았다. 만약 매기 브라운이 매일 전화해서 수다를 떨지 않았다면 정말 나사 빠진 사람처럼 자기가 왜 그렇게 됐는지도 잊었을 게 뻔했다.
    – 제가 남자 보는 눈이 좀 없는 편이긴 해요. 수염을 안 깎은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나이는 지났는데도요.
    매기는 스물네 살이었고 볼티모어 외곽에 위치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고, 그때까지 세 명의 남자를 겪어 봤는데 매기의 말에 따르면 셋 다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쓰레기였다고 했다.
    – 침대에서 화끈한 남자는 많아, 매기. 하지만 침대에서는 남자를 알 수 없지.
    – 유익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다음 이야기도 듣고 싶어지는데요.
    – 남자를 고를 땐 자기가 쓴 물건을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을 줄 아는지만 보면 돼. 나도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맞는 이야기야.
    매기는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다섯 마리나 키웠고 지금은 자기가 여섯 번째 고양이를 주워오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가 다음날 아침 더 굳게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캐럴도 그 나이 때는 그랬던 것 같았다. 매기는 캐럴에게, 지금도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거울을 들여다봐도 시간이 부족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매기는 마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마크에 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사원증을 달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매기가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직원이 아닌 것은 아니었으니까.
    – 피터슨 씨가 꼭 확인하라고 해서요. 저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요.
    – 간다고 했으니까 가기는 할게.
    – 피터슨 씨한테 그렇게 전할게요.
    어제 오후에는 매기와 목소리만 완전히 똑같은 전혀 다른 여자와 통화하는 기분이었다. 색깔과 질감이 사라지고 명암과 형태만 남은 목소리였다. 매기도 캐럴과 통화하는 동안 똑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 내일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매기는 피터슨 씨의 이름을 한 번 더 언급하면서 캐럴만 좋다면 내일 집 앞까지 차를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캐럴은 그럴 필요 없다고 대답한 뒤 십 년 전에는 그쪽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었는데 그 버스가 지금도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덧붙였다. 매기는 그날 아침 길에서 주운 여섯 번째 고양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캐럴도 여자들끼리만 통하는 농담을 제법 많이 알고 있었고 그걸로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둘은 그러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전화를 끊어야 한다면 그게 꼭 자기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침묵이 흘렀고 침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누군가가 먼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계속 침묵이 흘렀다.
    캐럴은 버스정류장에 혼자 앉아 버스정류장의 위치가 두 번 바뀌는 동안 자기가 한 번도 버스를 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안토니오가 살아 있을 때는 안토니오가 운전하는 도요타를 타고 다녔고 안토니오가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된 뒤부터는 차를 탈 필요가 없었다. 깡통을 잔뜩 매단 웨딩카 한 대가 난리를 부리면서 지나갔고 캐럴은 다마스쿠스 공동묘지로 안토니오를 찾아갈 때마다 하는 생각을 한 번 더 했다. 인생은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남은 인생이 많을수록 더 그랬다. 딱 자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시작됐다가 딱 자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끝나는 것이 인생 같았다. 그리고 인생은 어쩌면 차를 탈 필요가 없어지는 어느 때부터 끝장나기 시작하는 건지도 몰랐다.
    캐럴이 기다리는 버스는 삼십 분마다 한 대씩 왔고 캐럴은 첫 번째 버스가 잠깐 정류장에 서 있다가 멀리 사라져 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처음에는 마크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브릭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모든 게 삐걱대거나 틀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버스를 기다리고 보내고 다시 기다리는 동안 캐럴은 핸드백에서 꺼낸 거울을 두 번 들여다봤고 옷에 먼지가 묻은 건 아닌지 계속 신경 썼다.
    마크가 그렇게 된 뒤부터 캐럴은 마크와 함께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안토니오에게는 지구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이 어떤 건지 말할 수 없었다.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볼 수는 있지만 만지면 안 될 것 같았다. 물건이 그랬고 사람이 그랬고 무엇보다 캐럴 자신이 그랬다. 그리고 만질 수 없는 인생은 진짜 인생이 아니었다.
    안 타실 거예요?
    두 번째 버스가 도착했고 차문이 열리자 선글라스와 콧수염으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버스기사가 소리쳤다.
    그냥 가요. 앉아서 생각 좀 하게.
    지난 일주일 동안 캐럴은 자기가 옷장 밑으로 들어간 브릭을 찾아낸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어느 곳에 끼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너무 많은 브릭이 꽂혀 있었다.
    이제 캐럴은 세 번째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곳에 앉아 나이를 먹은 사람처럼.

 

 

 

 

 

 

 

 

 

 

 

 

 

 

작가소개 / 강태식

2012년 『굿바이 동물원』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고, 2018년에 『리의 별』로 황산벌청년문학상을 받았다. 중편소설 『두 얼굴의 사나이』가 있다.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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