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도 없이 외 1편 -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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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기침도 없이

 

 

정우영

 

 

 

나는 가지도 않았는데
새해가 벌써 와 있었다.
기침도 없이
설레발도 없이.

 

선악은 선악끼리
냄비는 냄비끼리
손잡고
목 빠져라
기린을 나누고 있다.

 

달력에서 가만히
빠져나온
의혹이
어제와 새날을
싸잡아 벤다.

 

눈썹이 하얗게
셌다.
오늘 나는
무엇의 잠결인가.

 

 

 

 

 

 

 

 

 

 

 

 

 

 

당신들의 신세계

 

 

 

 

나를 가두고 개가 나갔어요.
나 좀 살려 달라 빌어도 개는 갭니다.
으르렁거릴 뿐 전혀 내 말 알아듣지 못해요.
묶어 놓은 목줄조차 팽팽하고
밥은커녕 물 한 모금 넣어 주지 않습니다.
너무 배고파 벽지를 뜯어먹어요.
꺼지지 않는 허기에 붙들려
입에 피나도록 나무가구를 갉아요.
아무리 뜯어먹고 갉아먹어도
창자는 뒤틀리고 의식마저 가물거립니다.
누구를 부를까, 궁리해도 소용없지요.
시끄럽다고 개가 내 성댈 잘라버렸거든요.
바닥을 파고 부서져라 벽을 두들겨도 그뿐입니다.
누구 한 사람 오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은 다 제 집에 묶여 길러지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나돌아 다니는 건 개뿐이에요.
목도 타고 침 넘길 힘도 없는데요,
사람으로 살 때 세상한테 잘할 걸 그랬어요.
이번엔 죽은 뒤에 어찌 될까요.
전생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후생은 얼마나 끔찍한지요.
또 이 단계라면 절멸해야 하겠습니다.

 

 

 

 

 

 

 

 

 

 

 

 

 

 

 

작가소개 / 정우영

1960년 전북 임실 출생.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활에 기대다』, 『살구꽃 그림자』, 『집이 떠나갔다』,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등이 있으며, 시평 에세이 『시는 벅차다』,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 펴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역임.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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