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사귀 할머니 외 1편 - 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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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마른 잎사귀 할머니

 

 

이제니

 

 

 

무언가 타고 남은 열기가 느껴지는 밤이었다. ​

 

잎사귀 할머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걷는 걸음 하나하나마다 죽음이 놓여 있다고 말했다. ​

 

결국은 경계를 건너가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쓰면서 쓰면서 단단해지는 마음 곁으로
빈 공기를 가르며 지나가는 아주 작은 잎사귀 할머니.​

 

밤이면 잎사귀 할머니가 날아와
잠들어 있는 내 머리맡에 흰 머리카락 하나를 놓아두고 간다. ​

 

어둠 속에서 어둠으로 어둠을 연명하는 삶.

 

잠에서 깨어나면 전날의 문장은 지워지고 없었다. ​

 

나는 우리가 참 어렵습니다.
나를 죽이고 당신을 죽이지요. ​

 

잎사귀 할머니는 여전히 하늘과 땅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더는 가 닿을 수 없는 사랑도 있다고 말하듯이.

 

쉽게 비탄에 빠지는 백지 위로
마른 잎사귀 하나가 내려앉고 있었다.

 

 

 

 

 

 

 

 

 

 

 

 

 

 

우주의 민치

 

 

 

 

    지평선은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끝 간 데 없이 늘어나는 직선의 행렬. 민치는 어둠 속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양치식물의 얼굴로 서서. 어둠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듯. 나는 다가가지 않는 방식으로 민치에게 다가간다. 민치는 말하지 않는 마음으로 멀리 멀리에서 민치 민치한다. 우리의 기억은 민치의 곁에서 자줏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바람은 바람처럼 크고 촛불은 촛불로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는 소녀의 어린 양. 엄마는 소녀의 어린 양. 엄마는 여전히 내 주머니 속에 가만히 들어 있었다. 이제 너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 거야. 이제 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기울기를 알 수 없는 감정의 계곡 앞에 서서. 민치는 민치 민치 울면서 노래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자세로. 기억의 언저리를 맴도는 자줏빛으로 타오르면서. 그것은 붉고 푸른 먼지와도 같은 것으로.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직선 혹은 곡선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계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워진 기억을 이어 나가듯 민치가 다가오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었다. 어쩐지 그것은 묵직하고 괴롭고 그립고 아픈 것으로. 내 차가운 손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 주던 누군가의 말없음 같은 것으로. 어둠은 빛에 가깝게 타오르고 있어서 내 두 눈은 점점 더 넓게 열리고 있었다.

 

 

 

 

 

 

 

 

 

 

 

 

 

 

 

작가소개 / 이제니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2010),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2014),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2019) 출간.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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