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귀신 외 1편 - 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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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옛날 귀신

 

 

이민하

 

 

 

죽은 사람이 밤마다 따라왔다
하루 이틀 사흘 나는 눈을 감고 달리다가
백 일이 되던 날 눈을 뜨고 달렸다
천 일이 되던 날 달리기를 멈추었다
발끝에 힘을 주자 나는 날았고 내 발로 꿈속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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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자각몽이 뭐야?
내가 우물거리자 아버지는 채널을 돌렸다
커트 머리 엄마와 쌍둥이 동생과 오빠들이 나란히 앉아 납량 드라마를 시청했다
나는 뒤돌아 앉았다 커다란 벽거울 속에서
여섯 개의 뒤통수가 검은자위처럼 마주 보았다
나는 할머니 방으로 뛰었다
마루가 강처럼 깊어서 푹푹 빠졌다
방문을 잠그고 웅크려 앉았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주먹을 말아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서늘한 음악이 귓불에서 뚝뚝 흐르는데
나무 꼬챙이 같은 손가락이 머리칼 속으로 쑥 들어왔다
십 년째 생선처럼 누워만 있던 할머니가 퀭한 눈으로 속삭였다
우린 같은 방에 있구나

 

#

 

어른들은 마당에서 잔치를 하고
아이들은 나무총을 들고 방에 모여 있었다
누나, 같이 놀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머리끈을 풀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칼을
앞으로 쏟았다 까맣게 얼굴이 지워지자
아이들이 까르르 흩어졌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까지 달아났다
소녀 귀신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그런데 말이야
시골 외갓집 창고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나곤 했어
혼자 노는 꿈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귀신이 우는 거라고 사람들은 달아났지
난 갇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검은 제복의 아침

 

 

 

 

기다란 외투가 벽에 매달려 있다 폭포수처럼 아래로 아래로
바닥까지 떨어지는 악몽 속에서
발을 자르고

 

누군가 빠져나간 듯이

 

닫히다 만 서랍 속에는
행려병자가 구겨져 잠들어 있다 지우지 못한 배설물만 남아
수취인 주소는 폐가가 되어 버렸는데

 

누군가 불러들인 듯이

 

새벽에 돌아온 신발은 왜 혼자 젖어 있나
칼부림하는 빗줄기 속에 흘리고 온 사람을 왜 내 귀에 흘리나
동명이인의 부음처럼
아침이 오고
풀빛 소파 위로 빨갛게 비가 내린다

 

누군가 물려준 듯이

 

나뒹굴던 두 발을 발목에 붙이고 지그시 눌러 준다
냄새 나는 본드가 아직 반이나 남아 있다

 

끊을 수 없는 날들이 아직 반이나 남아 있다
어제 입은 외투를 걸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주인을 기다린다

 

수하물 코드 B01
분실된 적 없는

 

이 방은 누구의 캐리어일까

 

수평선처럼 문이 열리고

 

소실점을 모으면 날개를 만들 수 있을까
점, 점, 신앙에 가까워지는

 

천사,
가 아니라 철사

 

옷걸이는 어깨가 조금 틀어져 있다

 

 

 

 

 

 

 

 

 

 

 

 

 

 

 

작가소개 / 이민하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모조 숲』, 『세상의 모든 비밀』이 있음.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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