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은 왜 녹색인가 외 1편 - 김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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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독은 왜 녹색인가

 

 

김신숙

 

 

 

언니는 푸르고 왜 멍들어 기어왔을까

 

어머니
망치를 들고 뛰쳐나가는 아버지를 왜 막아섰을까

 

뺨을 맞고도 성 한 번 내지 않고
아이들과 조용히 숨어버렸을까

 

마당으로 나가 계곡을 깨뜨리는 아버지
그 밤

 

별과 가장 가까워 투명했던 창(窓)들은 모두
별로 내리쳐지고 우리는 별을 피해

 

감자가 삭삭 숨 쉬는 지하 창고에나
머물렀다

 

높낮이가 다른 아이들 마음속으로

 

망치 닮은 감자 한 알씩 쿡 들어와
녹색으로 독(毒) 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날
단단히 깨진 사람은 푸르게 멍든 언니뿐인데

 

아버지 왜 망치를 들고 부르르 떨었고
어머니 감자 창고처럼 낮게 숨을 죽이고,

 

농사짓는 가난한 부모가 아이들을 길러서
아이들은 두둑으로

 

볕을 받아도 녹색으로 변하지 않는 식량이
되는 방향으로 슬픔을 숨겼다

 

딱 한 번 누구를 죽이겠다
아버지 망치를 든 날

 

유리창 같은 어머니 아버지를 막아섰고
뺨을 친 건 별똥별이었을까

 

그 밤 녹색은 모두 검은 어둠이어서 아버지는
그 사람을 평생 찾을 수 없었지만

 

 

 

 

 

 

 

 

 

 

 

 

 

 

아누차코차나에게

 

 

 

 

안녕?
아누차코차나, 너는 여덟 살부터 복싱을 했지

 

태국어로 태국은 쁘랏텟타이, 쁘랏텟타이어로
복싱은 무아이타이

 

너의 이름을 한 잎씩 뜯어 먹으며 읊어 본다
아누차코차나,

 

아프다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을
너의 모든 생계들에게

 

겹겹으로 웅크린 너의 이름은
괜찮아 점잖게 말하고 있지만

 

아누차코차나,
너의 사망소식을 읽을 때

 

나는 빨대를 꽂고 양배추즙을 빨아먹고 있었어
피가 맑아진다고 해서 말이야

 

사슴피를 구할 수 있었다면
사슴피를 먹었을 거야

 

너는 여덟 살부터 링에 올라 맞으며 성장했지
한 겹 한 겹 맞았고, 켜켜이 신음을 품었지

 

무릎을 꺾고 뛰어올라 독사의 눈빛으로
상대의 빈틈을 노려보았지

 

날렵하게 뛰어올라도 무릎이 없는 독사라
독도 여물지 않아 혀를 내밀 필요가 없었을

 

이제는 무릎 꺾인 빨대처럼
빈틈이 되어버린
아누차코차나, 아직도 키가 크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팁을 주거나 주지 않아도 된다는 가이드를 따라
무아이타이 선수들을 구경하러 간 적 있다

 

손님을 모으기 위해 너의 형이거나
너의 동생이 들고 온 흐물흐물 흐르는 뱀쇼

 

삶은 양배추처럼 짓물러진 쇼
나는 즙처럼 짠
너의 사망 소식을 빨아 먹는다

 

무아이타이 경기에 출전하는 나이를
사회운동가는 18세로
의회에서는 12세로
복싱협회에서는 10세로
바꿔 나가자고

 

서로 혀를 날름거리며 링 위에 올라섰는데
곧 조금 더 나이 든 죽음의 즙이 비닐팩으로 배달될 것 같구나

 

아누차코차나,
우리의 피는 어떻게 맑아질 수 있을까

 

 

 

 

 

 

 

 

 

 

 

 

 

 

 

작가소개 / 김신숙

2012년 제주작가신인상 ‧ 2015년 발견신인상.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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