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Forever - 임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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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스페셜-글틴 출신 작가 초대석]

 

 

 

Live Forever

 

 

임국영

 

 

 

    2006년 1월, 임국영은 18살이었다. 눈이 많이 내렸고 나는 빵모자를 쓰고 있었다. 회색과 검정색 체크무늬였는데 지금 기준으로 따지자면 끔찍하기 짝이 없는 패션센스였으나 딴에는 멋지다며 세 살 터울 형에게 보채서 빌려온 것이었다. <문화역서울 284>라 이름 붙은 구(舊)서울역 건물 앞에 캠프 참가자와 관계자 들이 모여 있었다. 지하철을 혼자 타본 적이 없는 나를 배웅 온 형을 뒤로 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먼저 도착한 또래들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글틴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아이디- 라고 해야 할지 필명이라 하면 좋을지 모를 이름들로 서로 부르고 불리었는데 그 정경이 상당히 민망했다. 이를테면 덩치가 거대하고 원숙해 보이는 소년이 자신을 꿈꿈돌이라고 소개한 뒤 비슷한 몸집과 같은 성별인 상대에게 이름을 물어 '나는 핑크칸쵸입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만면에 반가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 같은 것들이 연출됐다. 속으로 부탁했다. 제발 나는 그렇게 부르지 마.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캠프 장소인 파주 쇠꼴마을로 향하는 버스에서 나는 유일하게 어른(애석하게도 지금은 성함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주최 측 스텝이었다)과 함께 앉은 참가자가 되었다. 익숙한 구도와 연출이었다. 빌어먹을 빵모자를 벗었다가 머리 모양이 이상하게 눌린 것을 깨닫고 도로 뒤집어썼다. 옆자리에 앉은 어른은 풀이 죽은 나를 의식했는지 엄마손 파이를 챙겨 주고 대화도 건넸지만 레퍼토리는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그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나 때문에 짊어진 것이 송구하고 민망해서 틈을 보다가 자는 척을 했다. 정말 잠이라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의식은 또렷했다. 뒷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는 아이들의 목소리 때문에 점점 속내가 배배 꼬이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마자 숙소로 안내되었고 캠프 참가자들은 빠짐없이 명찰을 받았다. 아이디와 실명이 적혀 있었는데 내 기억이 옳다면 아이디가 더 크고 굵은 글씨로 위쪽에 적혀 있었고 실명은 그 밑에, 괄호부호 안에 자그맣게 표기되어 있었다. 그 직후 참가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제발, 우리 이러지 맙시다. 야생초, 들기름, 무소유의 기쁨이 인사를 마치자 차례가 내게 돌아왔다. 빵모자 밑으로 충혈 된 눈동자를 숨기고 나를 블루 워리어라고 소개했다.

 

 

    밤이 되었다. 여전히 무리를 이루지 못한 나는 출입문 바로 앞에 홀로 자리를 깔고 누웠다. 글틴과 무관하게 알고 지낸 사이인 듯한 빼빼 마른 소년 넷은 저들끼리 엎치락뒤치락 투닥거리느라 밤새 시끄러웠다. 비교적 근처에 자리 잡은 세 사람은 꿈꿈돌이와 핑크칸쵸, 들기름이었다. 그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도는 농담이나 사건에 관한 담소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아직 네이버 정식 연재를 하기 전이었던 조석의 「마음의 소리」에서 가장 재밌는 에피소드를 꼽아 보든지 하거나 했다. 나도 그 만화를 좋아했고 그 외에도 대체로 내가 아는 화제였기 때문에 몹시 그 사이에 끼고 싶었으나 틈이 보이지 않았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꿈꿈돌이였다. 다름 아니라 이야기를 주도하는 게 그였기 때문인데 이 에세이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 그러니까 2019년 1월 중순에 그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생각난 김에 그때 직접 따질 생각이다. 말이 왜 그렇게 많아? 아무튼 제각기 소란스러운 잠자리에 누워 아직도 머리에 빵모자가 쓰여 있는 것만 같은 감각 때문에 홀로 기분이 나빴고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 됐으니까 내 이름을 불러 줘. 아니, 그래도 블루 워리어라고는 하지 마. 다음날, 가장 인격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들기름이었던 것 같다.
    낯을 가리는 성격을 숨기고 살짝 미친 척을 하자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다. 다행히 같은 조에 묶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순진했다. 나조차도 재미없는 농담을 그들에게 건네고 부러 유쾌한 척했다. 그러는 내내 귀가 달아오르고 이마에서 미열이 느껴졌지만 눈치 챈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첫날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눈썰매장에 가서도 외롭지 않게 하하호호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 와 되짚어 보니 쇠꼴마을은 분위기가 묘한 공간이었다. 썰매장과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는 공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점 한구석에 당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짐짓 어른인 척 큐대에 초크를 바르며 또 하하호호 했다. 만약 글틴 캠프를 한 번 더 쇠꼴마을에서 진행한다면 스텝으로라도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즐거운 기억이다. 그러나 2회부터 지금까지 그곳에서 캠프가 다시 개최된 적은 없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지금 술회하고 있는 시기는 1회 캠프다.
    쇠꼴마을을 들쑤시며 우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그즈음까지의 내 짧은 생에서 마주한 어떤 이들보다도 진지하고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글 솜씨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각자 뚜렷한 세계관을 품고 있었다. 삶에 임하는 태도나 에너지가 남달랐다고 할까. 어딘지 나사가 몇 군데 풀린 듯 꿈속에서나 할 법한 소리 들을 술 한 잔 마시지 않고 술술 내뱉었다(미성년자니까 당연히 마시면 안 됐다). 그 소설 읽어 봤어?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누구야. 이 음악 알아? 나도 그 영화 봤어! 그렇게 살고 싶어. 진짜 그렇게 살래. 그래, 그렇게 될 거라 믿어. 한 번도 나눠 본 적 없는 대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괴짜들.

 

 

    글틴 캠프의 유구한 전통 중 첫 번째를 꼽으라고 한다면 조별 촌극일 것이다. 총 3개 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름대로 글밥(?)을 먹은 아이들로만 모인 덕인지 급조된 콩트임에도 불구하고 퀄리티가 상당했다. 내가 속한 조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코믹하게 패러디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거기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기억이 희미하고 다른 조원들이 연기하던 장면만 인상에 남아 있다. 백설공주 역할은 꿈꿈돌이가 맡았고 우리는 촌극 1위를 차지했다.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다음 해 캠프에서도 내가 속한 조가 1위였는데 그때는 신데렐라를 패러디했다. 무리 없이 잘 진행되던 중 신데렐라와 계모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은 순간 신데렐라가 주먹을 내질렀다. 물론 계산된 연기였으나 캐릭터에 심취한 신데렐라가 진짜로 계모의 얼굴을 뭉개버렸다. 계모는 쌍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는데 그게 나였다. 신데렐라 놈의 이름과 얼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뒤로는 야외로 나가 바비큐를 먹고 캠프파이어를 했다. 진행자의 리딩을 따라 하하호호 레크리에이션에 임하다가, 왜, 그 게임 있지 않은가. 진행자가 임의로 외친 숫자에 맞게 근처에 있던 사람과 편을 짜는 놀이 말이다. 근방에 4명이 있는데 진행자가 '3'을 외치는 바람에 한 사람만 무리에서 배제되어 탈락해 버리는 그런, 외롭고 열 받고 배신감 느끼게 만드는 룰. 내가 그렇게 해서 떨어졌다. 바로 근방에 나와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지난밤 가장 시끄럽고 예의가 없어 보였던 빼빼 마른 4인방 중 하나였다. 얼굴이 하얗고 표정이 날카로워서 인상이 썩 좋지 않았다. 나와 그는 눈이 마주쳤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손을 맞잡은 뒤 게임이 진행되든 말든 간에 신경 끄고 둘이서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의 아이디는 눈물맛 사이다. 조만간 꿈꿈돌이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래, 마피아 게임을 처음 해봤다. 글틴 캠프의 전통적인 민속놀이다. 지금 시대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받는 게임이며 심지어 자신이 이른바 '인싸'임을 증명하는 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도는 요즘의 세태를 보노라면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지금도 인원수만 맞으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게임이 끝이 나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더 깊고 따뜻하게 이어졌다. 아직 술을 모를 때였지만 취한 기분을 먼저 알아버렸다.

 

    늦은 새벽이었다. 소설 게시판을 맡으셨던 이문영 선생님 앞에 앉아 나와 몇몇 아이들이 이야기를 경청했다. 다소 매정하고 날카롭게 소설평을 달아 주시던 선생님은 생각하던 이미지와 달리 부드러운 달변가였다. 그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 혹은 갓난아기였을 시절 본인이 겪었고 목도했던 믿기 힘든 에피소드들을 털어놓았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현자로부터 비밀스러운 전설에 관해 듣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언젠가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를 앞에 두고 내가 지내온 시절의 얘기를 영웅담처럼 늘어놓아 보고 싶다고. 다음 시대의 신화가 될 그들에게 나도 너희 같은 때가 있었다며 머쓱하지만 조금은 자랑스럽게. 그리고

 

    또 뭔가 있었던가. 아니다. 더는 없다. 그대로 날이 밝았고 캠프가 끝이 났다.

 

    그 뒤로 글틴도 캠프도 지속됐다. 내게 이상하고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겼다. 조금 미친 것처럼 붙어 다녔고 노래방에서 흘러간 팝송을 부르고 맥도날드에서 대여섯 명이 콜라랑 감자튀김 하나만 시켜 둔 채 대화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말을 주고받았다. 지금의 이 한 시절을 모두 불살라버리려는 것처럼. 백일장에 참가하고 마로니에 공원에 드러눕고. 더럽게 좋았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을까. 누군가는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시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와는 사이가 틀어졌고 대체로 연락이 끊겼겠지만 그중 몇몇과는 여전히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을까. 또 누구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아니면 둘 다 아프겠지. 나 역시 그렇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쓸까? 도대체 이 꿈꿈돌이들이 모조리 어디로 떠나버렸을까? 당신들이 그립다.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 이제는 내게 그 촌스러운 빵모자가 없거든. 못 알아볼까 봐 민망합니다.

 

 

    오아시스의 노래처럼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처럼 굴었다.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마찬가지일 테지. 20대 중반이 되면 인간은 노화가 시작된다. 점차 회복력과 면역력이 낮아지고 있으며 허리와 뒷목에 문제가 생겼다. 역류성 식도염과 위통은 이제 만성이다. 시력도 조금 떨어진 것 같다. 이런 얘기를 얼마 전에 이문영 선생님께 드렸더니 웃으셨다. 벌써부터 엄살이냐. 아무래도 아프고 힘들다며 징징대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보채는 엄살쟁이 어른으로 커버린 듯하다. 그래도, 영원히 살아남아 주길 빈다. 그들도,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어 준 당신도.

 

 

    덧. 나를 포함한 모든 인물의 글틴 아이디는 실제 아이디와 무관하다. 개인의 역사란 대체로 까맣게 염색되어 평생 꼬리표로 붙게 마련이지만 이제 그들을 놓아 주도록 하자.

 

 

 

 

 

 

 

 

 

 

 

 

 

 

작가소개 / 임국영

2005년 글틴 제1회 캠프 참가자. 2017년 《창작과 비평》 신인문학상에서 단편소설 「볼셰비키가 왔다」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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