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험하게 숭고한 사랑 - 오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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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더하기+(소설)]

 

 

 

음험하게 숭고한 사랑

─ 소설 『우리가 통과한 밤』(기준영, 문학동네, 2018)*과 영화 <도희야>(정주리, 2014)

 

 

 

오혜진(문화연구자)

 

 

 

 

    작년 가을에 출간된 기준영의 장편소설 『우리가 통과한 밤』의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최근 많은 '여성 소설'이 그렇듯, 이 책의 표지 역시 그다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여자 두 명의 '뒷모습'을 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얼굴 없는, 검은 긴 머리에, '표준' 혹은 다소 마른 체형의 여성-형상들이 '여성 서사 강세'라고 적힌 한국 문학 매대를 장악하고 난 후, 더 이상 내게 '뒷모습'은 독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이미지는 아니게 됐다. 표지 속 그녀를 돌려세워 표정을 확인하고 싶다는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이미지들은 내 상상력을 촉발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여성-이야기에 대한 한국 문학계의 빈곤한 상상력을 씁쓸하게 예증하거나, 혹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를 기각해 버린 어떤 여성-이야기의 존재를 상기하게 한다.
 

 
    『우리가 통과한 밤』 표지의 여자 둘은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는 모호한 시간대에, 어떤 랜드마크도 없이 무한으로 펼쳐진 고요한 벌판 앞에 서 있다. 두 여자는 키도, 체형도, 머리 길이도 똑같고 심지어 어깨가 드러나는 어두운 색의 슬립인지 점프 슈트인지를 입고 있는 모습도 똑같다. 무국적의 공간에 정처 없이 놓인 쌍둥이 혹은 서로의 분신처럼 닮은 두 여자. 이 이미지는 독자가 두 여자들이 거주하는 시공간을 '현실'의 어딘가로 상상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둘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닮아야 할까.
    혹자는 이 소설이 '퀴어 문학'으로 분류됨에도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 세상의 편견에 부딪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독특한 지점"1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그런가. 기실 이 소설은 두 히로인들에게 '여성 동성애에 대한 시스젠더 헤테로들의 편견과 무지, 혐오'라는 공통의 전선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녀들이 여성 동성애를 선택·실천하게 되는 내력을 거의 필사적이리만큼 곡진하게 묘사하는 데 책 한 권의 분량을 바쳤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버려지고,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또다시 버려지고, 방치되고, 도망가고, 붙잡히고, 다시 새 생활을 시작하고, 짐을 풀고, 그리고 한 걸음 내디뎠다고 믿게 되는 순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정되곤 했던 경험은 보이지 않는 상처에 불타는 낙인이 됐다."(184쪽)라는 묘사에서 보듯 스무 살의 '지연/엘리사벳/리사'는 가족-친밀성의 결핍으로 인해 유기 불안을 겪는 존재다. 놀라울 정도로 조숙하면서도 흔히 '문학소녀'의 그것으로 묘사되곤 하는 미성숙한 감정의 드라마를 노골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자신을 어필하고 '채선'을 유혹하는 지연의 언행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한편, 마흔 살의 아마추어 연극배우인 채선의 성장사에서 중요하게 서술되는 것은 얼굴을 본 적 없지만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전직 안과 의사 남자와 재혼해 정상 가족을 연기하는 어머니, 그리고 두 번째 남자-애인의 영문 모를 자살이 그녀에게 남긴 깊은 상처다. 그 결과 무대 위에서 생기 있는 '마고' 역할로 분할 때와 달리, 현실에서의 채선은 거의 강박적이리만큼 무욕하고 건조하다.

  *   이하 인용 시 본문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
  1   「스무 살 차이… 동성의 사랑… 둘은 그저 자기 마음 때문에 아프다」, 『한국일보』, 2018. 9. 28.

 

    "날 버리고 죽음을 택한 당신이 미웠어. 당신을 혼자 아프게 했던 내가 싫었어. 그날 이후로 나도 죽어 있어. 나를 벌하는 중이야. 하지만 이제 끝내려 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그가 아주 평온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 이제 서로 미안해하지 않기로 해. 마지막으로 나는……"
    나는 양손을 비벼 온기를 만들어서 그의 두 발을 만졌다. 쓰다듬었다. 따뜻한 공기로 씻기는 것처럼.
    "네가 보내줘."
    그가 말했다.
    "그럴게." 나는 절벽 끝에서 그를 깊숙이 포옹했다. 영혼을 빨아들이듯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그리고 포옹을 풀고는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밀쳐냈다. 아득한 저 아래편에서 파도가 거세게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 그가 물길 속으로 떨어져내렸다. (265~266쪽)

 

    소설의 결말부. 우여곡절 끝에 지연과의 동거를 결심한 후 채선이 꾸는 꿈은 상징적이고 전형적이다. 지연을 택함으로써 채선이 죽은 남자 친구가 남긴 상처를 극복하게 됨을 암시하는 이 장면이 성장 서사에 자주 등장하는 일종의 졸업/입사의 클리셰를 연상케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이 장면 뒤에 이어지는 것은 지연과 지연의 친구 해령, 채선과 채선의 친구 소민, 채선의 엄마와 의붓아버지가 여름 휴가철에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요컨대, 이 소설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임'이 지연과 채선의 '불가역적'인 정체성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녀들의 여성 동성애 실천을 수많은 관계의 실패와 결핍, 상처로 인한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 간의 사랑을 이 모든 곡진한 사연들의 결과이자, 그것을 보상할 가족 로망스의 한 장면으로 의미화하는 것. 이 소설은 "여자와 여자의 사랑이 세상의 편견에 부딪히는 이야기가 아"닐지는 몰라도, 여성 간의 사랑을 이렇게 지난한 서사적 설득을 요하는 주제라고 인식한다.
 

 
    『우리가 통과한 밤』을 읽고 2014년에 개봉한 화제작 <도희야>를 떠올린 건 거의 반사적이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두 여자가 성애를 포함하는 깊은 유대를 맺음으로써 각자의 '약자-됨'을 극복하고 기약 없는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는 줄거리를 두 서사는 공유한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이 소설과 영화를 동시에 떠올린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더 강력한 이유는 내게 『우리가 통과한 밤』과 <도희야>가 모두 세대를 격한 여성 간의 유대를 "어린 소녀가 자신을 희생해 어른도 구하고 자신도 구하는 이야기"2로 읽어내려는 의지의 자장에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도희야>에는 매우 인상 깊은 몇몇 설정과 장면들이 있다. 영화 내내 결코 노골적으로 말해지지는 않지만, '영남(배두나 분)'이 이곳 시골 경찰서장으로 좌천된 이유이자 이 마을에서 그녀에게 신변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적인 이유가 영남이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이라는 점, 그 때문에 삶의 어느 한 부분이 망가진 영남은 밤마다 생수통에 담긴 소주를 들이키며, 고요히 위태로운 검은 밤바다를 응시한다는 점.
    한편, '도희(김새론 분)'는 미등록 이주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마을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아버지 '용하(송새벽 분)'로부터 상시적인 학대와 폭력을 당하는 여성 청소년이다. 도희의 할머니를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이 상황을 인식하고 있지만, 용하가 마을 경제를 유지시키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감히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하고 도희의 상황을 묵인한다. 영남은 그런 도희에게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구해 준 유일한 사람이다. 물론 도희는 결코 통념상의 피해자 이미지에 들어맞는 존재는 아니다. 도희는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폭력의 문법을 역이용해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복수하고, 자신이 파트너로 선택한 영남을 위기로부터 지켜낸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통과한 밤』과 <도희야>에서 20년 남짓의 세대를 격한 이 여성 커플들은 한결같이 유사 보호-피보호자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도희가 영남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벌이는 퍼포먼스들과, 채선이 자신을 "끊어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연극적인 자아를 전시하는 지연의 모습은 꼭 닮았다. 두 커플에서 관계를 주도하는 것은 모두 상대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쪽인 지연/도희인데, 이야기는 채선/영남의 관점에서 서술된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도희야>의 제목은 '도희'가 아니라, 도희를 부르는 사람, 즉 영남이 이 영화의 초점 화자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의지가지없는 지연/도희에게 채선/영남은 유일한 친구이자 언니이자 어머니이자 연인이다. 이런 설정은 어떤 정치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가.
    <도희야>가 2014년 최고의 '여성 영화' 중 한 편으로 망설임 없이 선정될 때,3 관객과 비평가들이 읽은 것은 법이나 제도와 같은, 도희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 '동성애자'로서 받게 될 사회적 낙인을 감수하면서까지 도희를 보호·포용하겠다고 결심한 영남의 '선한 의지'다.
    그런데 영남과 도희는 그저 '순정한' 보호자-피보호자의 관계이기만 했을까. 영화는 영남이 레즈비언임을 들어 '도희를 정말 '사심 없이' 데려간 것이 맞느냐, 도희를 씻길 때 도희의 몸을 만졌느냐'라며 영남에게 아동성추행 혐의를 씌우려는 경찰의 추궁에 곤혹스러워하는 영남의 표정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그 질문의 과정에, 아버지 용하의 폭력으로 인해 상처투성이가 된 도희의 벗은 등을 보여줌으로써 영남과 도희의 신체접촉이 성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관객으로 하여금 확신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전까지, 영남이 들어 있는 욕조 안에 스스럼없이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는 도희의 질문에 당황했던 영남의 표정, 둘의 길고 인상적인 목욕 장면, 도희와 영남이 같은 디자인의 비키니를 입고 함께 바캉스를 떠나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관객에게 영남과 도희의 관계를 무성적이거나 탈성애적이라는 확신을 주는 일에 영화가 고의적으로 태만했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강조하지만, 경찰의 추궁에 대한 영남과 이 영화의 대답은 의미심장하게 모호하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교묘하고도 영리한 영화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평론가 듀나의 의심4대로 영남이 그렇게 결백하지만은 않고, 도희 또한 순정한 피해자만이 아니라 영악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는 아이라면, 이 영화의 여성 연대는 그래도 환영받을 수 있었을까.
    영화연구자 박연희는 <도희야>에서 "용하를 처벌하려고 할 때, 마을공동체가 영남에게 맞서 용하를 비호하려고 하면서, 영남의 행동은 단순히 폭력에 노출된 한 아이를 경찰이 보호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된다."5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쯤에서 내가 제기해 보고 싶은 것은 두 여성의 관계에서 성애의 가능성을 한사코 지워내거나 변명하면서까지 도희-영남(지연-채선)의 관계를 '상처받은 영혼의 상호구원'이라고 의미화 하는 것 또한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아니겠냐는 의혹이다. 도희의 안전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사회에서 영남이라는 예외적 개인의 도움이 '시혜적인 것'이라는 혐의를 피하면서 관객에게 윤리적 안도를 주기 위해 관객은 영남의 성애적 욕망에 애써 눈감는 것이 아닐까. '여성 연대'로 의미화된 영남-도희의 커플링은 도희를 둘러싼 구조적 폭력을 해결할 정치적·경제적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그것을 묵인했다는 죄책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선택된 것이라고 말해 본다면 너무 그악스러운 독해일까.
    다시 사회적으로 상처 입은 두 영혼의 구원과 치유 서사로 갈음되는 세대 간 여성 동성애 서사에 대한 독해를 곱씹어 보자. 세대를 격한 여성 커플. 유기불안 때문에 영악한 자기 연출을 감행해야 하는 불안정한 아이(지연은 미성년자가 아님에도 '조숙한 어린애'를 연기함으로써 유아화된다)를 삶의 실패와 상처 때문에 건조하고 무욕한 존재로 살던 성인 여성이 물리적·정서적으로 구원함으로써 자기 역시 갱생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 이 구도에서 '성애적인 것'은 과연 어떻게 사유되고 있을까.
    금기이면서 동시에 욕망의 대상인 미성년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주체성, 실패한 이성애를 극복하기 위한 계기, 존재론적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가족 로망스의 대리 실현. 구원, 치료, 극복, 성장······ 이것들은 여성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사랑이 끝내 해내리라고 기대되는 기적이자 사랑이 '숭고한 것'으로 상상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 동성애가 반드시 이 모든 것들을 알리바이로서 동원할 수 있을 때에만 서사화될 수 있다는 건 좀 어색하다. 세상의 모든 비규범적 성적 실천들은 이제 좀 덜 비장하고 덜 숭고해도 되지 않을까. 한없이 숭고한 것들은 반드시 조금쯤 음험하고 의뭉스러우니 말이다.

  2  장영엽, 「[이준동] 내 영화, 당신의 한 잔」, 『씨네21』, 2014. 5. 21.
  3   「이 영화들을 기억하리라, 이 영화들로 기억되리라(1)」, 『씨네21』, 2014. 12. 30.
  4   듀나, 「호평 세례 '도희야' 시골 느와르 관점서 보면」, <엔터미디어> 2014. 5. 20.
  5   박유희, 「폭력과 정체성에 대한 성찰 ─ <도희야>(정주리, 2014) 읽기, 『현대영화연구』 11-1, 2015.

 

 

 

 

 

 

 

 

 

 

 

 

작가소개 / 오혜진

문화연구자.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그런 남자는 없다』(공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 등의 책과 평론을 썼다.

 

   《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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