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외 1편 - 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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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지인

 

 

 

바위 위 사마귀
바위색 사마귀
그것들 뒤로 그림자
나는 벌써 백발이 되었다

 

그날 운세는 이러했다
쪽배가 큰 파도를 만나 예상치 못한 일로 변고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불의를 행하지 마라

 

트럭을 피하려다 벽에 차를 박았다
보조석 범퍼가 깊게 파였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어제는 저녁에 한강 공원을 걸었다
죽은 지렁이들을 보았다

 

실패한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괜찮은 변명거리다
누구나 실패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순 없다

 

형광봉을 흔드는 한 사람과
참 캄캄한 하늘
네가 가리킨 것은
맑고 향기로운 잘못들이었다

 

너는 슬퍼지지 않는 것 따위는 삶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고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데
손끝이 닿았다

 

다음 생은 엉망으로 살고 싶어, 마음껏 엉엉 울고 그 누구도 되지 않는, 그럼 아쉬워도 태어나지 않겠지, 나뭇가지에 옷을 걸어두고 이제 여름으로, 여름으로

 

사랑한다 말하면 무섭다
그것이 나를 파괴할 걸 안다

 

초파리가 과일 껍질 위를 맴돌고 있다
옆으로 돌아누운 너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네가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없듯이
서성이는 슬픔

 

저 멀리 섬들 보인다
이제 바다를 건널 것이다

 

 

 

 

 

 

 

 

 

 

 

 

 

죄책감

 

 

 

 

너와 손잡고 누워 있을 때
나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 세계의 끝은 어디일까
수면 위로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빛바랜 벽지를 뜯어내면
더 빛바랜 벽지가 있었다

 

선미(船尾)에 선 네가 사라질까 봐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컹컹 짖는 개를
잠들 때까지 쓰다듬고

 

종이 상자에서
곰팡이 핀 귤을 골라내며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기도했었다

 

고요했다
태풍이 온다던데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작가소개 / 최지인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창작 동인 '뿔'로 활동 중.

 

   《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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