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가 익는 계절 외 1편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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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석류가 익는 계절

 

 

김은경

 

 

 

"우리의 겨울은 당신의 여름보다 뜨겁다"
지난겨울 에스모텔에 내걸렸던 현수막이 여태 펄럭인다
철 지난 것과 철모르는 것들이 여름을
뒤집어쓴 채 엉켜 있다

 

오십 원짜리 동전처럼 주울까 말까 고민하는
기억들이 매일 늘어 간다 목 늘어난
셔츠가 서랍에 쌓여 간다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 겁니까
누구에게 물을 수라도 있다면

 

거두는 이 하나 없는 열매의 무색함처럼
한없이 붉기만 한 석류
시어 빠진 앵두처럼

 

– 우리의 여름은 대체 뜨겁기라도 하였습니까?

 

마흔 번 살아 본 여름인데도 겨우
처음인 것 같은 여름

 

먼지 덧입은 선풍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
흐려진 시력을 탓하며 두 눈을 찡그리는 소리
서른 개의 다리로도 마지못해 돈벌레가 기어가는 소리

 

세상의 모든 음악들 당신의 창을 향해 날아가네,
끄는 법을 나는 알 수 없고

 

팔월 석류알 벌어지듯
슬픔이 조금씩 새나오는 소리

 

 

 

 

 

 

 

 

 

 

 

 

 

 

마음

 

 

 

 

키 작은 내가 가끔은
키 큰 수숫대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한 것처럼

 

어느 날엔
애 둘 낳고 서른에 집 떠난 큰삼촌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우리 몰래 무언가를 숨겨 놓던 다락에도
장롱처럼 깊고 캄캄한 곳에도
그것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었다

 

조약돌만 할까 그것은?
솜사탕처럼 바스라지기 쉬운 걸까?
불같다는 소문이 돌았고
누구는 귀신같다며 가만히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기실은 물뱀의 무늬처럼 여린 배신자의 마음
추분이 오기 전 벼락같이 떨어져 내리는 능소화의 마음
기어이 물을 건너가는 사공의 마음

 

사탕 봉지를 열면 달콤한 사탕 냄새
곧 죽어도 괜찮을 것 같던 사랑스런 냄새

 

어떤 사람은 그 냄새를 찾는 데 일생을 바치기도 한다

 

 

 

 

 

 

 

 

 

 

 

 

 

 

 

작가소개 / 김은경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량 젤리』,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냈다.

 

   《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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