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드는 사람들 ― 출판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 박영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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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책을 만드는 사람들

― 출판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일시: 2018년 11월 19일 오후 2시
장소: 망원동 창비카페
 
참석자: 박영준 일러스트레이터(사회) , 박연미 디자이너,
스튜디오 고민(이영하, 안서영 디자이너),
진다솜 디자이너

 

 

 

 

박영준 : 안녕하세요. 오늘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박영준이라고 합니다.

 

일동 : 안녕하세요. (인사. 웃음)

 

 

박영준 : 먼저 책을 만드는 작업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며 시작을 하겠습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을 크게 나누면 저자와 디자이너, 편집자, 그리고 인쇄 과정이 있습니다. 오늘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박연미 디자이너, 스튜디오 고민의 이영하 디자이너, 안서영 디자이너, 젊은 디자이너 진다솜 님까지 다양하게 모였습니다. 먼저, 박연미 디자이너님은 수많은 책을 만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최근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연미 : 하나만 고르기 고민되는데, 홍보에 목적을 두고 (웃음)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레닌 전집』을 말씀드릴게요. 이 전집을 창간할 때, 제가 디자인 기획을 하고 본문 포맷에서 표지 시리즈 방향까지 작업하고 세 권 런칭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정이 미뤄지면서 조정이 불가능한 개인적인 휴가 일정과 겹치면서 책 한 권을 제가 완성하고 나머지 두 권은 표지 디자인을 다른 디자인팀(물질과 비물질)에서 진행했어요.
『레닌 전집』의 원래 목표는 한 달에 한 권씩 내는 것이었어요. 권수로 따지면 100권이 넘는 분량이죠. 10년을 생각하는 프로젝트예요. 아고라라는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데 대형 출판사는 아니니까, 큰 결심을 한 거죠. 설령 큰 출판사에서 이 전집을 기획하고 긴 호흡으로 출간하려 계획해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여덟 권이 출간됐고 저는 재미있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서도 항상 제 디자인을 좋아하고요. 레닌의 모든 글을 다 출간하는 거고 이왕이면 독자를 더 많이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표4(책 뒤표지)에 연도가 크게 씌어 있는데 그 책이 실제 쓰였던 연도예요. 최근에도 65번이 나왔는데 전집을 1번부터 쭉 내는 것은 아니고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에 맞춰 더 시의적절한 텍스트를 먼저 발간한다든가 그때 그때 준비해서 나오고 있어요. 『레닌 전집』 후원회도 운영되고 있는데 저도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이 전집이 좀 더 알려지길 바랍니다.

 

박영준 : 그러면 디자이너님이 이 전집의 네 번째 책부터는 모두 진행하신 건가요?

 

박연미 : 네. 3권 런칭 후 4번째 책부터 쭉 제가 진행해 오고 있어요.

 

박영준 : 그러면 디자이너님 홈페이지에도 작업 이미지가 업로드 되어 있나요?

 

박연미 : 6권 모두 업로드는 안 한 것 같아요. 업데이트가 점점 늦어지는 홈페이지······. (웃음)

 

박영준 : 그럼 어쨌든 레닌의 글이기도 하고 보통 시리즈에는 한 가지 기조로 작업을 하기 마련인데, 매번 다르게 시안을 잡는 것이 굉장히 어려우실 것 같아요.

 

박연미 : 레닌과 혁명 등 붉은색이 연상되는 콘텐츠가 많아요. 작업을 하면서 콘셉트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 의식하고 있어요. 앞뒤 권으로 넘버링이 이어진다고 하면, 컬러와 기본 조형은 최대한 피하고 다양하게 하려고 해요. 물론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있어서 꼭 반영해야 할 부분은 반영하고요.

 

박영준 :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예전 작업이랑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어요.

 

박연미 : 그럴지도 모르죠. 사실 지금 기준은 그래픽 작업할 때 과하게는 하지 않거든요. 레이어가 엄청 많이 느껴지거나 밀도를 강하게 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산뜻하게 보이는 조형을 만들고 있어요. 이 작업은 특히요. 그러나 모르겠어요. 그 기조가 저 스스로도 언제까지 갈지 그리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여 줄지 모르죠.

 

박영준 : 재미있겠네요. 어쨌든 저희는 디자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타일이란 게 바뀌잖아요. 그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진다솜 : 10년간 한 시리즈를 만든다는 것이 출판사나 개인이나 큰일인 거 같아요.

 

이영하 : 개인의 역사가 되겠어요.

 

박연미 : 계속하게 된다면요. 저도 마음 같아서는 이런 긴 호흡을 같이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데, 어쨌든 발행하는 사람 입장은 또 다를 수 있으니까요. 지금 재정 상황이 쉽지 않거든요. 제가 능력이 된다면 어디에서라도 지원받을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어요.

 

안서영 : 그러면 100권의 내용을 모두 읽고 디자인하는 건가요? 같은 저자의 책이지만 주제에 따라 다양한 그래픽의 변주를 보여주는 작업인 것 같아서요.

 

박연미 : 기본적으로 서머리를 해주니까 그것을 바탕으로 많이 봐요. 단편을 모아 놓은 것도 많아서 대표작 같은 것을 보기도 하는데 본문 전체를 다 읽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책을 다 읽는 것보다 편집자와 대화가 내용 이해에 더 도움이 될 때도 있고요.

 

박영준 : 북디자이너들이 점점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원고를 못 읽는 상태로 일을 하게 된다고 들었어요. (하하) 그게 생각나네요. 그래도 전 줄거리 요약을 해준다는 것도 오늘 처음 들어 보네요. 대부분 단행본을 할 때는 안 해 주니까요.

 

박연미 : 편집계획서요. 디테일하게는 아니어도 1차적으로는 주니까 도움이 돼요. 차례나 프롤로그 등을 기본적으로 살펴보고 때에 따라 전체 콘텐츠를 훑어보는데 도움이 되죠. 제가 시간이 많아도 사실 이 책 100권을 정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웃음)

 

진다솜 : 이 전집은 정독하면 더 어려워질 거 같아요. 디자인하기가요.

 

안서영 : 인문이나 소설을 주로 디자인하는 분은 내용을 다 읽고 디자인을 하는지 좀 궁금했어요. 저희는 실용서나 에세이처럼 라이트한 콘텐츠를 많이 다루다 보니 한 챕터나 핵심 부분을 읽으면 전반적인 내용 이해에 무리가 없거든요.

 

박연미 : 사실 소설 같은 경우 작업하려고 읽다 보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게 되는 경우도 많죠.

 

박영준 : 그럼 진다솜 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희곡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도 디자인하잖아요. 그럼 보통 다 읽고 디자인하나요?

 

 

진다솜 : 첫 책은 다 읽었고, 김은성 작가의『연변엄마』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 못 읽어요. (웃음) 소설 그리고 희곡 등 순수문학 쪽은 에세이를 할 때랑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원고를 읽고 디자인할 때 추상적인 게 더 많이 떠오르는 분야인 거 같아요.

 

박영준 : 진다솜 디자이너는 지금 비슷한 톤으로 작업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 박연미 디자이너처럼 몇 십 권의 책이 계속해서 나오게 된다면 이런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겠어요.

 

진다솜 : 저는 어쨌든 박연미 디자이너님과 좀 다를 것 같아요. 『레닌 전집』은 기본 포맷은 있지만 계속 바뀌잖아요. 그 표지가 단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요. 희곡선 시리즈 같은 경우 제가 처음에 세운 규칙이 있기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둔다면 그 방향 안에서는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박연미 디자이너님처럼 계속 다르게 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아요.

 

박영준 : 사실 그렇게 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

 

이영하 : 타이틀 자체, 의미 자체가 뭔가 시각적으로 느낌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요.

 

진다솜 : 감사합니다. (웃음)

 

 

박영준 : 북디자인을 하실 때, 단순히 그래픽 작업뿐 아니라 『욕조』,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같은 실사 작업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 눈에 띕니다. 이러한 과정이 디자이너로서 상당히 귀찮은 과정일 거라 예상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업하는 걸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박연미 : 『욕조』(김희진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박민정 소설집)는 국내 작가의 소설집인데, 디자인을 할 때 제목을 듣고 그 내용을 읽었을 때 떠올랐던 순간적인 느낌을 표현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욕조』 같은 경우에는 빤한 욕조, 즉 많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안 쓰려고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노력을 했어요. 첫 목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욕조 이미지를 쓰지 않자, 였죠. 그게 일러스트가 되었든, 사진이 되었든. 그리고 많이 아실 텐데요, 여자분들 헤어 실핀 10개 사도 10개 금방 잃어버리잖아요. 이사 갈 때 보면 어디 뒤에서 막 나오고 욕실 구석에서도 많이 나오고요. 욕실에서 연상되는 여자 소품인 실핀을 이용해서 욕조 위에 흩어져 있는 모습으로 레터링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욕조』 'o' 부분은 욕조의 배수 구멍인데, 부분적으로 그것만 활용했어요. 제작은 유광먹박과 볼록형압을 더해 재질감을 살렸어요. 제작비용이 추가됐는데 호시절이어서 가능했어요. (웃음) 그리고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도 같은 방법이긴 해요. 이 책은 상처, 특히 가족 간의 상처를 많이 말하는데 제목만 들었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잖아요. 형상이 안 그려지는데, 그래서 상처받는다는 그 느낌에서 이렇게까지 오브제를 연결시켰어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고요. 아무래도 소설 쪽에서 이렇게 레터링을 활용해서 뚝딱뚝딱 작업을 해볼 수 있는 여건이 좀 많이 주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유독 이 두 작업이 다른 생각 안 하고 바로 진행되었던 거 같아요. 담당 편집자도 바로 오케이해서 잘 나왔고요.

 

 

박영준 : 일러스트레이터뿐만 아니라 자수와 공예 등 여러 작가와 협업을 해오셨는데, 이 경우도 비슷한 맥락이겠네요. 디자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과 작업하다 보면 재밌거나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 같아요.

 

박연미 : 엘리자베스 길버트라는 작가의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글 엘리자베스 길버트, 옮김 노진선)를 10주년 기념 판으로 민음사에서 새로 낸 거예요. 이 책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구요. 사실 다른 출판사에서 기존에 나온 책이 있었는데, 그 경우는 워낙에 원서 디자인이 유명하니까 그걸 썼거든요. 개정판과 더불어서 『빅매직』(글 엘리자베스 길버트, 옮김 박소현)이라는 에세이랑 같이 저한테 의뢰를 해왔어요. 처음에 고민이 많았어요. 『빅매직』 같은 경우는 창조성에 관한 얘기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원서 디자인이 워낙 유명해서 훨씬 부담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고민하면서 다른 돌파구가 없을까 구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한 작가의 다른 두 권의 책이 동시에 출간되지만 같은 결을 지니면서 또 차이가 보이는 아트워크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표지 자체에서요. 자수 작업자는 일러스트하고 계신 분인데 최근에 자수 작업을 하고 계셔서 의뢰를 드린 거였고, 다른 한 분은 페이퍼 아트 작업 스튜디오인데 보고 있다가 좋아서 의뢰를 드렸어요. 태국 분이라 메신저로 열심히 짧은 영어로 소통했어요. (웃음) 그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잘 나와 줘서 감사해요. 두 권 모두 제가 계획했던 대로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아트워크뿐만 아니라 제목 작업 레터링이라든지 금박을 활용한 부분이라든지. 잘 마무리된 거 같아요. 앞서서 말한 것처럼 빤하지 않게 가고 싶다는 마음, 거기에서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박영준 : 그렇다면 표지에 사용된 작품은 작가 분들께서 사진을 직접 찍어서 보내주신 건가요?

 

박연미 : 페이퍼 워크 같은 경우는 태국 스튜디오에서 촬영해서 보내주신 거예요.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할 때 조명에 따라서도 달리 표현되잖아요. 컬러감뿐만 아니라 그림자에 따라 깊이감도 달라지고요. 그래서 실시간으로 메신저를 통해 조율했어요.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이것보다는 이게 좋은 거 같아요. 이 정도 톤으로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실시간으로 소통을 해서 만들어낸 거예요. 그리고 자수는 스캔본이에요. 작가님이 스캔본을 주셔서 이것도 이왕이면 볼록하게 자수 느낌을 주고 싶어서 형압 후가공을 했어요. 형압 작업을 하면서 종이가 살짝 밀린 느낌이 들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느낌이 더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한 것 같아요.

 

박영준 : 사이트(디자이너 홈페이지)에 올린 건 그냥 원본인가요?

 

박연미 : 네, 그냥 데이터예요.

 

박영준 : 그런데도 입체감이 잘 느껴져요.

 

안서영 : 그럼 자수나 페이퍼 아트워크 같은 경우 제작 기간도 꽤 많이 드는 방식인데, 기획 단계에서 픽스 하고 의뢰하는 것까지 기간을 넉넉히 두고 작업을 진행하셨겠네요?

 

박연미 : 네, 편집자 분께서 저에게 좀 일찍 의뢰하셨어요. 그런데 사실 결국 작업은 닥쳐서. (웃음) 작업 방향을 먼저 세우고 발주하기 전에 담당 편집자하고 얘기를 해서 오케이 한 다음에 진행을 했어요. 제가 혼자 계획으로 발주하고 나중에 안 된다고 하면 낭패니까요. 그래서 편집자 분께 이 작가 분들이 이런 작업을 하는데, 우리 작품은 이런 느낌으로 하면 좋겠다, 어떤가, 라고 먼저 말씀을 드렸죠. 그다음 제가 실질적으로 이 두 작가 분하고 의견을 계속 주고받고 한 거죠. 자수는 또 다른 버전이 있기는 했어요. 디자인 모양을 잡으면서도 일러스트 작가 분하고 많이 커뮤니케이션을 했어요.

 

박영준 : 사실 보통의 디자이너라면 그 소통 과정 때문에 쉽게 시도할 수 없었을 텐데요.

 

박연미 : 굉장히 보람 있었어요. 조금 힘든 점도 느끼긴 했지만요. 너무 디테일하지만 그런 거 있잖아요. 디자인에서 저 꽃이 제목을 좀 가려야 깊이감이 좀 살아나고. 포토샵에서 체크해서 이 부분을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말씀드리기도 했고요. 정말 부분 부분도 얘기했어요. 나중에는 도저히 안 돼서, 이 겨자색 부분은 최종 이미지 데이터에서 제가 포토샵으로 조금 늘렸어요. 제목이 아트워크와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레이어 느낌이 들게 하려고요. 그런데 확실히 국내 작가면 실시간으로 소통이 되는데 그게 좀 힘들었거든요. 저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욱이 시차도 조금 있어서 감안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그만큼 저도 만족스러웠던 작업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독자들이 생각보다 많이 안 봐서. (웃음)

 

 

이영하 : 다른 질문인데요. 직접 외주 아트워크를 조율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좀 신기한 거 같아요. 사실 저희는 이런 경우 편집자님에게 일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박연미 디자이너님이 의뢰 단계부터 직접 소통하고 핸들링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북디자인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의 경우 저희는 최소한의 디렉션과 코멘트를 드리는 정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저희는 협업하고 싶은 작가가 있으면 편집자님께 추천을 해드리고, 진행하게 될 경우 구체적인 사항은 편집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해요. 편집부와 디자이너가 콘텐츠에 대해 해석하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고 전체적인 디렉팅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부분이라 그 과정이 여건상 어렵다고 생각해서요.

 

진다솜 : 참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분들도 작가인데, 핸들링을 한다는 것이요.

 

박연미 : 핸들링보다는 아트디렉터요. 제가 이 책 한 권을 할 때는 아트디렉터가 된 거라고 생각해요. 편집자들은 저에게 그것을 맡긴 거고요. 그 구조라서 우선 가능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한 출판사에서 라인 드로잉으로 작업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저에게 디자인을 의뢰해 와서 제가 일러스트레이터를 알아보고 그중 한 분께 발주를 했어요. 출판사 쪽에서 일러스트를 소스로 디자인 작업을 하니까 작업비를 저렴하게 하는 걸로 말씀을 하더라고요. 저는 지금까지 작업을 하면서 그런 내용을 처음 들어 봤거든요. 디렉터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별하고 어떻게 작업을 할지 방향 체크를 하고 그런 커뮤니케이션 관계가 있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당황스러웠죠. 제가 이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고 그 출판사랑 전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만 작업비 부분은 그렇게 하고 대신 편집자분이 일러스트레이터와 직접 소통을 한다고 했어요. 물론 제가 또 보고 의견을 드리고 하긴 했지만요.

 

진다솜 : 이 분야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연미 : 사실 편집자 분이셨는데 그런 말씀을 하셔서 놀라긴 했어요. 연차가 없는 분도 아니고.

 

진다솜 : 처음에 저는 컬처 쇼크였던 게 디자인 비를 장당 계산을 하는 게 신기했어요. 처음에요.

 

박영준 : (모두에게) 그 부분이 불리하다고 보시나요? 어떠세요?

 

 

이영하 : 저희 같은 경우는 사실 페이지로 견적을 책정하기는 해요. 왜냐하면 에세이나 실용서이다 보니까요. 어느 정도의 품이 들어갈지 잘 모르고 디자인적인 난이도 자체도 시안을 받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고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페이지당으로 견적을 계약을 해놓고 시작하는 게 더 편리하긴 해요. 저희가 느끼기는요.

 

박연미 : 이미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면 더욱 그럴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지는 않거든요. 출판사에서 룰이 있으면 그렇게 맞춰서 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저는 대부분 처음부터 전체 한 권에 얼마 정도 정하고 해요. 물론 엄청 많은 분량으로 갑자기 늘어나거나 줄거나 하면 안 되지만요. 그걸 페이지마다 하는 게 저 같은 경우는 좀 이상한 거 같아서요. 본문을 진행할 때도 거의 텍스트 위주로 하거나 별색 하나 정도만 사용하니까 그게 가능한 거 같고요.

 

박영준 : 최근 엄유정 작가와 작업하신 Baked Shapes를 재밌게 보았습니다. 간결하지만 세밀한 타입세팅에 놀랐는데 실제로 보니 그보다 종이와 제본에 더 많은 시선이 갔어요. 빵만 소재로 한 책이다 보니 저는 왠지 모르게 종이가 포장지같이 느껴지는데, 종이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박연미 : 예전에 엄유정 작가님과 단행본을 진행했는데, 그 인연으로 저에게 의뢰를 하셨어요. 개인이 의뢰를 하신 거예요. 제작비도 사비였어요. 엄 작가님의 팬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임했어요. 그리고 작가님이 일찍 의뢰를 주신 편이라, 진행을 하면서 그림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드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작가님이 여름 동안 엄청 열심히 그려서 작품 수를 좀 늘렸어요. 처음 의뢰받고 들었던 생각이 정말 빵이라고 했을 때 느껴지는 그 감각을 종이에 사용하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노루지라는 빵 싸주는 것 같은 얇고 바스락거리는 느낌의 종이도 면지 느낌으로 사용하게 되었고요. 조금 아쉬웠던 것은 지금 컬러 면지가 하나 들어가 있는데 사실 그 면지를 세 장으로 하고 싶었어요. 표지를 넘기면서 점점 컬러가 연해지게요. 진한 브라운, 브라운, 옐로우······ 빵이 점점 화이트 느낌으로 가는 그런 느낌으로 기획을 말씀드렸더니 작가님도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그런데 제작비가 예상보다 초과되어 구현은 못 했어요.

 

박영준 : 그렇다면 면지는 어떤 것을 사용하셨나요?

 

박연미 : 지금 면지는 브라운에 가까운 컬러 한 장만 넣었어요. 그래도 노루지는 빼지 않고 넣었고요. 화집이니까 제본도 처음부터 비용이 들더라도 잘 펴지는 제본으로 가야 한다고 작가님께 말씀드려서 사철 제본(PUR 제본)했고요. 그래서 비용은 추가되었지만 작가님도 구상이 너무 좋다고 하셔서 제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기획하고 구상한 부분을 제작비 때문에 못 한 부분도 있었지만 거의 80프로까지는 작가님하고 협의 하에 결정해서 진행해 낸 거 같아요. 사실 본문 용지도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용지에 따라 가격이 많이 왔다 갔다 해서요. 작가님이 후원받은 것도 아니고 자비로 1000부를 제작한 거라서, 그 부분을 계속 고려하면서 최선의 것을 선택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박영준 : 저도 그림을 그려서 그걸 인쇄물로 만들다 보면 종이에 따라서 색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걸 느끼거든요. 엄유정 작가님과 같이 감리도 보셨나요?

 

박연미 : 네, 같이 가서 봤고요. 인쇄소도 고급 인쇄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가 추천받아서 했어요. 저도 그런 곳이 처음이었어요. 일반 출판사랑 일할 때는 저렴한, 대량으로 할 수 있는, 출판사의 주거래 인쇄소에서 해요. 그래서 사실 감리를 가도 아쉬운 경우가 많았거든요.

 

박영준 : 네, 맞아요. 저희가 선택할 수 없으니까요.

 

박연미 : 그런데 이 경우는 작가님하고 상의 하에 선택한 인쇄소이기 때문에 감리를 보러 갔을 때 훨씬 수월했어요. 먼저 저희가 감리를 많이 안 봐도 될 정도로 기장님들이 1차적으로 잘 맞춰 주셨어요. 그래서 작가님이랑 갔을 때 제가 데이터로 본 것과 작가님이 실물로 그린 것을 대비하여 수월하게 진행했어요.

 

박영준 : 디자이너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확실히 스타일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실제 책을 받아 봤을 때 내용의 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진다솜 : 궁금한 게 있는데요, 실제 민음사에 계셨을 때가 제작비의 제약이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외주로 받으시는 거보다요?

 

박연미 : 사실은 거의 똑같아요. 민음사 제작부에서도 비용 많이 드는 거 당연히 하지 말라고, 코팅 당연히 해야지 등 대부분이 그랬고요. 프리랜서로 일할 때도 예를 들어 소규모 출판사 같은 경우는 (이제 막 시작한 출판사) 아무래도 경제적 부담이 있으니까 제작 면에서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가자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외주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경우, 오히려 자유롭게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출판사의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여전히 힘들다고 하는 출판사도 있고 가끔가다가 디자이너님이 골라서 해보세요, 그렇게 말해 주는 출판사도 있고요. 그런데 민음사에서는 거의 일차적으로는 제작부에서 안 돼, 라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른 말로는 제작부장님 기분 좋을 때 제작 발주하러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하하) 다 비슷비슷한 거 같아요.

 

박영준 : 자, 이제 스튜디오 고민 이영하, 안서영 님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그동안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2018년에 유독 책 작업이 많았습니다. 계기가 있나요?

 

이영하 : 계기라고 할 건 없는데 아무래도 박연미 디자이너님이 『레닌 전집』 맡으셨듯이, 저희도 휴머니스트 자기만의 방 시리즈를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게 시발점이 된 거 같아요. 그분들이 항상 노력하는 게 한 달에 한 번, 한 권씩 생각하고 계셔서 책을 작업하다 보니까요. 또 그게 나름대로 반응이 괜찮게 나온 거 같고요. 그래서 그게 인연이 되어 다른 곳에서 연락이 계속 오다 보니까 저희가 의도한 건 아닌데 올해 유독 책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의뢰를 계속 받아 놓다 보니, 그게 밀려서 계속 책 작업을 하게 된 거 같아요.

 

박영준 : 뮤지션들과의 작업이 많이 눈에 띕니다. 그중에 포토북이나 책 형태를 띤 앨범도 보이고요. 왠지 모르게 음악이란 장르는 제약 없이 자유로운 디자인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이 많은 책과는 작업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이영하 : 저희가 일반적으로 뮤지션 작업들을 많이 하는데요. 전체적으로 뮤직그래픽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희가 느끼기에는 인디 쪽과 엔터 쪽이 많이 달라요. 엔터 쪽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상업적이고 제약이 심한 편이에요. 워낙 팬층 자체가 단단하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인디 쪽은 저희가 100프로, 120프로 자유롭게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안서영 : 아트 디렉션 같은 경우, 저희는 뮤직그래픽 쪽에서 더 자유롭게 하는 거 같아요. 직접 사진을 찍는다거나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죠.

 

이영하 : 인디뮤지션과의 작업은 거의 개인 작업처럼 즐기면서 작업합니다. 엔터테인먼트와의 작업은 화보의 촬영 콘셉트부터 그래픽 디자인까지 전체적인 아트 디렉션을 하게 되는데요. 소품이나 의상 제안, 장소나 포토그래퍼 섭외, 화보 촬영과 그래픽 디자인 모두가 포함됩니다. 아이돌이다 보니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인데, 오히려 그래픽 작업 전 단계들이 훨씬 제약이 없는 편이에요.

 

박영준 : 그럼 엔터 쪽도 사진이나 포토그래퍼를 섭외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여하시는군요.

 

안서영 : 네, 저희가 같이 작업하고 싶은 작가를 비주얼 팀에 제안합니다. 저희는 표기식 작가님과 함께 작업하는 걸 선호하는데요, 화보의 콘셉트나 스타일, 무드 등에 대해 설정하고 촬영장에 가서 디렉션까지 하는 과정은 자유로운 편이에요.

 

이영하 : 즐겁게 촬영하고 와서 디자인을 시작하면 그때부터 수정이 시작되죠.

 

안서영 : 회사 내부적인 가이드가 엄격한 편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그룹은 어떤 컬러만 써야 되고, 로고 같은 경우는 어느 위치에 들어가야 하는 등 디자인적인 제약이 많아요. 초상 같은 경우도 특정 각도만 된다거나 그런 경우도 있고요.

 

이영하 : 그 대신 인디 레이블 같은 경우, 저희는 일렉트릭 뮤즈 레이블과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는데 그래서 그런지 많이 신뢰해 주세요. 아무 제약 없이요. 어떻게 보면 전시까지도 제약 없이 신뢰해 주시는 편이에요.

 

박영준 : 제가 보지는 못했는데 혹시 인디 쪽에도 책 같은 표지물을 만든 적이 있나요?

 

이영하 : 일렉트릭 뮤즈 레이블 자체도 그렇고 저희한테 의뢰가 들어오는 뮤지션들은 대부분 어쿠스틱한 포크 기반의 음악을 하는 분들이고 가사 자체가 시나 에세이에 가까운 느낌이라 저희가 앨범 자체도 책처럼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예로 편집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뮤지션인 강아솔 씨, 이아립 씨가 있고요.

 

박영준 : 스튜디오 고민의 작업을 보면 타이포그래피나 색감에 일정한 흐름이 있는 것처럼 보여요. 굳이 그것을 고집하는 것 같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묻어 나오는 것 같은 디자인이에요. 실제로 스튜디오 고민만의 그래픽 스타일이 있을까요?

 

이영하 : 박연미 디자이너님도 말씀하셨는데 저희도 레이어가 간결한, 심플한 느낌의 그래픽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어떻게 보면 클라이언트들도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의도를 하고 저희한테 의뢰를 하시더라고요. 특별히 의도치는 않았는데, 클라이언트 분들이 느끼기에는 이 팀은 파스텔 톤의 오묘한 색감을 잘 다룬다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소하지만 일상적인 행복의 느낌을 추구하는 따뜻한 느낌의 콘텐츠가 많이 들어와서 그에 맞춰서 작업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일관성 있는 톤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박영준 : 그럼 두 분이서 원래 그런 취향은 잘 맞았나요?

 

안서영 : 요즘은 원색을 쓰고 싶어서 원색을 많이 쓰기도 했어요. 그건 뭐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그 당시의 트렌드에 따라서 즐겨 쓰는 컬러가 바뀌기도 합니다.

 

이영하 : 그런데 저희 작업은 조금 서정적인 느낌을 추구하는 분들이 워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연락을 많이 해서 결과물도 그런 것 같아요.

 

박연미 : 확실히 기존 작업을 보고 의뢰를 하다 보니 콘텐츠 자체가 처음부터 톤이 정해져서 오는 것 같아요.

 

이영하 : 네, 아마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기는 해요.

 

진다솜 : 그럼 두 분의 옛날 작업을 보고 이런 식으로 진행해 달라는 클라이언트들도 있나요?

 

이영하 : 많아요.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들어와서 사실 잘 된 경우가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그 작업처럼 디자인을 하더라도 사실 저희 입장에서는 그렇게 똑같이 해줄 수도 없고, 사실 똑같이 해주더라도 본인이 느끼기에는 다르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저희가 작업을 하는데 그쪽에서 이것처럼 해달라고 했는데, 왜 그 작업처럼 해주지 않느냐고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들리네요. (하하) 근데 사실은 의뢰는 좋은데 좋은 결과는 안 나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방법론적으로 많은 방법을 가지고 접근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 거 같아요. 박연미 디자이너님처럼 여러 가지 방법들, 예를 들어 콜라주라든가 자수라든가. 저희가 그런 에너지가 없는 거 같아요. 아니면 창의성이 없는 건지. (하하) 자조적으로 들리는데, 저희는 약간 소박한 디자인을 많이 추구하다 보니까, 방법론 쪽으로 많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편이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때 그 방법론은 그 콘텐츠에 맞아서 진행을 했는데, 다른 콘텐츠를 가져와서 나 그때 그 방법론으로 해줘, 라고 하면 사실 저희도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아요.

 

안서영 :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많아서요. 콘텐츠가 똑같아도 그것도 아류가 되는 건데 그 부분도 문제가 되고요.

 

진다솜 : 자신을 답습하는 느낌.

 

안서영 : 약간 자가 복제.

 

박영준 : 저도 그림 의뢰를 받으면 그런 경우가 있어요. 아무래도 그림은 더 심하잖아요. 스타일을 보고 연락을 주시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예전 작업을 콕 집어, "이것처럼 해주세요!"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 경우도 있는지요?

 

안서영 : 저희도 종종 있죠. 이게 나의 베스트는 아닌데, 이걸 좋아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박영준 : 어쩔 수 없구나. 위안을 좀 얻고 가야겠어요. (하하) 그리고 작업하신 어반라이브 여행 매거진이 참 멋집니다. 매거진은 단행본과는 또 다른 작업이잖아요. 올리신 정보에 의하면 각 도시에 맞는 컬러와 타입페이스 등 매거진 시스템을 디자인하셨다고 했는데 이이야기 좀 들어 볼까요?

 

이영하 : 일단 도시 하나를 탐방하는 내용으로 매거진 자체가 진행이 돼요. 그래서 약간 도시의 감성에 맞춰서 구성되죠. 일단 화보의 퀄리티와 감성이 굉장히 좋고요. 글 자체도 도시의 상투적인 내용보다는 조금 더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상공인의 이야기가 많아요. 그 도시의 틈틈이 숨어 있는, 그런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반리브 매거진 작업을 할 때는 한 권 할 때마다 폰트를 하나씩 구매하기도 해요. (하하)

 

박영준 : 그걸 사세요?

 

 

안서영 : 네, 어반리브 같은 경우는 현재 두 번째까지 작업을 했어요. 먼저 홍콩 편 같은 경우는 에디터 개인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는데, 홍콩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래서 홍콩 하면 생각나는 빨간색과 홍콩 영화의 엔딩 타이틀에 있는 비슷한 서체를 골라서 디자인을 했죠. 또 하나 뉴욕 편 같은 경우는 뉴욕 타임스 오피스를 생각했어요. 그 오피스 컬러가 파란색 톤의 컬러가 많이 쓰였거든요. 그래서 도시는 파란색 색깔을 담아서 파란빛으로 했고, 서체 같은 경우도 찰리 채플린의 영화 <뉴욕의 왕> 포스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선정해 사용했어요.

 

이영하 : 아무래도 어반리브가 매거진이다 보니 고정된 시스템이 있어서 저희는 그 폼에서 약간 변주할 수 있는 부분을 항상 찾아서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에요. 그게 폰트와 컬러 시스템, 약간의 레이아웃 그런 정도인 거 같아요.

 

박영준 : 혹시 세 번째 도시는 어디인지 아세요?

 

안서영 : 아직 미정이에요.

 

박연미 : 이 매거진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예요?

 

이영하 : 어반북스입니다.

 

안서영 : 어반라이크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고 최근 레투어라는 도시 사진집 시리즈를 펴내고 있어요.

 

박영준 : 다음 폰트가 무엇일지 기대가 돼요. (하하)

 

이영하 : (웃음) 저희도 그래서 항상 기대하고 있어요.

 

박영준 : 그 폰트를 사는 비용은 혹시······.

 

안서영 : 자비로 해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거기 때문에.

 

박영준 : 저도 그럴 때가 많죠. 굳이 안 사도 되는 걸. (하하)

 

안서영 : 디자인할 때 그게 좀 즐거움인 거 같아요. 책에 맞는 타입페이스를 하나 찾아준다는, 그런 즐거움이 있는 것 같아요.

 

박영준 : 혹시 본문에도 저 폰트들이 쓰이나요?

 

안서영 : 네, 본문에도 계속 쓰이고, 약간 레이아웃도 미묘하게 달라요. 내지도요. 도시마다 조금씩 달라요.

 

박영준 : 혹시 무엇이 다른지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이영하 : 예를 들어 홍콩 같은 경우는 사진을 조금 더 날것의 느낌으로 했어요. 조금 더 무자비한 배치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진행했어요. 뉴욕 같은 경우는 조금 더 사진집에 가까운 느낌으로, 하이패션 개념을 가지고 접근했어요.

 

박영준 : 세 번째 책이 나오면 제가 그 부분을 유심히 즐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다솜 : 또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휴머니스트의 자기만의 방이 사실 임프린트의 시리즈인데, 스튜디오 고민님이 여러 번 맡아서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게 한 디자이너가 한 임프린트를 전적으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나요?

 

이영하 : 자기만의 방 같은 경우는 일단 브랜딩부터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저희에게 의뢰가 온 건 사실 브랜딩이 먼저였고, 브랜딩을 하면서, 내부에서 시리즈를 함께 진행했으면 좋겠다, 라는 제안이 온 경우예요. 한 두 권 정도는 저희가 작업을 안 한 책도 있어요. 일정이 겹쳐서. 그런데 자기만의 방 시리즈는 저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처음부터 브랜딩을 했기에, 이 책은 이런 느낌으로 진행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계속 맡아서 진행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자기만의 방 팀 편집자 분들이 워낙 좋은 분들이에요.

 

안서영 : 외부에 있지만 항상 같은 팀이다 이런 말씀도 해주시고요.

 

이영하 : 방도 하나 내주셨으면 좋겠다. (하하)

 

진다솜 : 자기만의 방. (하하)

 

 

진다솜 :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출판사에 있는 친구들이 기획회의를 할 때 자기만의 방 같은 걸 하자고 많이 얘기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에세이 시리즈를 하자.

 

이영하 : 저희도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올 때, 자기만의 방 시리즈 작업을 많이 보고 연락하세요.

 

안서영 : 자기만의 방 팀 자체도 만화 '중쇄를 찍자'의 그 느낌. 팀 소개 전단이나 도서전 홍보 부스도 직접 만드는 등, 귀엽고, 파이팅 넘치고, 감동적인 느낌이 있어요.

 

이영하 : 신뢰를 많이 해주니까 저희가 작업하기가 아무래도 굉장히 수월하죠. 그리고 또 한스미디어의 임프린트 컴인도 브랜딩 작업을 했어요. 브랜딩 작업을 먼저 진행하다 보니까 책을 작업할 때도 디자인의 결을 맞춰 나가기 좋아요. 이런 창의적인 임프린트들이 더욱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박영준 : 재미있는 점이 책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브랜딩처럼 연결해서 넓게 작업하시는 것 같아요.

 

이영하 : 네, 맞아요. 한스미디어의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의 작업 자체가 거기에 가장 걸맞은 작업인데요. 처음 기획할 때부터 강연회를 위한 텀블벅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어요. '북 레볼루션 인 서울'이라는 타이틀을 하나의 브랜딩으로 인식해 작업을 시작하고 거기서 파생 상품으로 책과 강연회 그런 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희는 그게 오히려 조금 더 편한 느낌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커버 작업을 할 때도 브랜딩을 이미 완료하였을 때에 시안을 진행하는데도 완결성이 생기고요. 그런 식으로 항상 로고타이틀 그런 식으로 먼저 접근을 하는 것 같아요. 저희만의 방식인 거 같아요.

 

박영준 :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확실히 와 닿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이런 기조가 이렇게 생긴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영하 : 네, 그런 것 같아요.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같은 경우는 책의 혁명에 관한 로고타이틀을 먼저 작업하고 거기에 파생 작품을 진행하고, 덴스토리의 『스미스 테이프』라는 책 역시 스미스 테이프 로고타이틀을 먼저 작업하고, 또 그것에 이어서 책 작업을 진행했거든요. 그런 방식을 방법론적으로 선호하는 편이에요.

 

박영준 :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엔 진다솜 디자이너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출판사 걷는사람은 유망한 작가들의 글을 많이 다루는 출판사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다고 들었어요. 출판사 내의 유일무이한 디자이너로서 고충이 많으실 것 같아요. 작은 출판사로 들어오게 된 계기와 유일한 디자이너로서의 장단점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진다솜 : 저는 원래부터 큰 회사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큰 회사를 들어가면 제가 디자인을 하는 역할이 굉장히 작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그런 회사를 경험해 보기도 했고요. 물론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은 회사도 있겠지만요. 조금 더 제 역할이 있는 작은 회사에 가고 싶을 때 마침 걷는사람 면접을 봤어요. 인하우스라는 특성상 작은 규모일수록 구성원이 굉장히 중요한데, 걷는사람은 우선 구성원 분들이 좋았어요. 많이 수용해 주는 분들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작은 회사지만 그런 점은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단점이라고 하면 그만큼 저의 책임과 부담이 많다는 거겠죠. 어쨌든 결정권이 많아지기 때문에 책임과 부담이 늘어나니까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것이고 당연히 따라오는 단점이어서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영준 : 표지나 내지를 디자인하면 누군가는 컨펌을 해야 하잖아요. 그 부분은 대표님 그리고 편집자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진행하나요?

 

진다솜 : 제 경우는 운이 좋게도 제가 설득을 하면, 그분들이 설득을 많이 당해 주세요. 그런 편집자님, 클라이언트님을 많이 만난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 연차에 비해서 빠르게 하고 싶은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분들이 너무 많이 개입하면 하려고 하던 게 갇혀버리니까요. 저희 입장에서는요.

 

안서영 : 그럼 인하우스에 있으면서 외주 작업까지 하면 스튜디오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진다솜 : 아, 사실 이상하게 된 게, 제가 외주 작업을 많이 계약을 해놓은 상태에서 회사를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 딴에는 어떻게든 하겠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올해 좀 많이 작업을 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좀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 것 같고요. 인하우스의 디자이너의 경험과 외주 디자이너의 경험을 동시에 하면서 장단점을 알게 되었죠.

 

안서영 : 그럼 언제 입사하신 거예요?

 

진다솜 : 올해 걷는사람에 들어왔습니다. 올 한 해 동안 많은 것을 한 것 같아요. (하하)

 

박영준 : 아직 1년이 안 됐다고 들었어요.

 

 

진다솜 : 그렇죠. 걷는사람에 들어오기 전에는 외주 이외의 일은 해보지 않았거든요. 이번 연도부터 출판사에 다녔으니 아직 1년차이지요.

 

박영준 : 걷는사람에서 전집 디자인을 시작으로 작업 포트폴리오를 쌓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첫 책으로 전집 디자인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동안의 '전집'이라는 흐름과는 다른 디자인이 탄생한 것 같아요. 전집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진다솜 : 걷는사람에는 시인선, 복간본, 희곡선의 세 종류의 전집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시집은 서정적으로 디자인하잖아요. 시중에서 봐도 그렇고요. 사실 저희 내부 편집자의 의견 중에 요즘 문학 책 디자인이 너무 고루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저한테는 정말 희소식 같은 이야기였죠. 그래서 저는 조금 과감하게 풀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전집이 세트로 보일 수 있도록. 그리고 제가 담고자 하는 의미도 담으려 했어요. 독자들이 시를 읽고 해석할 때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점을 차용해 패턴이 사람에게 달리 읽히는 것을 표지에 이용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걷는사람의 시인선이 어떻게 보면 다이아몬드고 어떻게 보면 원의 형태가 보이는 패턴이거든요. 이렇듯 이중성이 보이는 패턴을 중심으로 디자인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과감한 내용의 첫 번째 시집 『해자네 점집』을 읽다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박영준 : 어떤 내용인가요?

 

진다솜 : 조금만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그런 시는 아니에요. 그래서 영감을 얻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어려운 점은 늘 있었어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시인선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시리즈물을 제가 갑자기 하게 되어 사실 되게 부담스러웠어요. 전체적인 통일성을 가져가면서 개별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엄청 고민이 되었어요.

 

박영준 : 그럼 『해자네 점집』이 걷는사람에서 처음 디자인한 책이었나요?

 

진다솜 : 제 기억에는 이 시집과 희곡선이 동시에 진행되었어요.

 

박영준 : 지금 걷는사람 시인선은 패키지 디자인처럼 예쁜 색감이나 패턴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저는 솔직히 희곡선이 더 궁금하긴 해요. 굉장히 과감한 레터링인데, 레터링은 어떻게 작업했는지, 뒤에 있는 기호의 의미도 궁금하고요. 대중들 입장에서 희곡선이 꽤나 낯선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거든요.

 

진다솜 : 기존에 나온 희곡선과는 다른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레터링을 면에 내세운 희곡선이 기존에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레터링을 이용해 전체적인 시리즈의 지속 가능한 전체적인 골자를 짰어요. 그리고 희곡선 1번 『연변엄마』를 읽었죠. 굉장히 재밌었어요. 읽다 보니 러프한 느낌의 레터링이 떠올랐고, 레터링을 툭툭툭 얹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러면서 작가의 이름까지 크게 적어서 더 레터링이 꽉 찬 느낌을 주고 싶었고, 제목이 짧고 길고에 상관없이 작가의 이름이 있어야 표지 완성도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안을 가져가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다들 좋다고 해주셨죠. 사실 저만 아는 것일 수도 있지만 뒤표지는 작가 이름의 가장 마지막 글자 받침의 모양을 뒤표지와 책등에 넣는 규칙도 가지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색상은 원고와 어울리는 색상으로 선택을 하고 있어요.

 

박영준 : 순수문학이라는 장르가 원고를 한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문이잖아요. 특히 작업 중엔 소설뿐 아니라 희곡과 시도 있는데, 이러한 장르의 디자인이 에세이나 실용서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진다솜 : 순수문학이 굉장히 어렵다기보다는 막막하긴 했어요. 사실 에세이나 실용서는 대게 디자인할 요소가 많으니까 레이아웃을 구성하고 그리드를 짜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시집은 처음이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심스러웠어요. 행과 연이 중요한 문학이다 보니까 함부로 건드려서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기본을 고수하자"라는 느낌으로 본문을 조판했어요. 희곡도 대사와 등장인물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가독성에 중점을 두었고요.

 

박영준 : 그럼 작가들께서 더 많은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진다솜 : 희곡 작가 분들은 굉장히 좋아했어요. 제가 느끼기엔 다른 분야의 분들보다 더 열려 있는 것 같아요

 

박영준 : 시는 띄어쓰기 하나에 많은 의미를 구현하잖아요. 시인들과 그런 부분에서 마찰은 없었나요?

 

진다솜 : 사실 그런 면에서 제가 잘 모르는 점이 있기 때문에 편집자 분들의 의견이나 해석을 좀 듣는 편이고, 시인선 색깔 같은 것을 정할 때도 이 작가의 결과 이 색이 어울리는 것 같으냐고 물어봤던 거 같아요. 작가가 어두운 내면을 노래하는 시를 쓰는 거 같은데 제가 밝은 색만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부족한 부분은 그런 식으로 조금 조율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이영하 :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바코드가 해당 도서마다 변경되는 걸까요? 이 색상의 바코드가 유통상 문제가 되지는 않나요?

 

진다솜 : 바코드는 별색 1도인데요. 핫핑크까지는 하겠는데, 노란색이나 그런 것은 안 되겠죠. 그래서 바코드에 맞는 색을 지금 찾고 있어요.

 

박영준 : (모두에게) 바코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나만 집착하는, 혹은 나만 알고 있는, 디자인 요소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박연미 : 저는 안 찍힐까 봐 걱정돼서 거의 먹 1도로 해요. 디자인이 조금 아쉽더라도 사고를 막기 위해서죠.

 

진다솜 : 저도 걱정이 돼서 만날 스마트폰으로 찍어 봐요. (하하)

 

박영준 : 바코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이건 공통 질문인데, 나만 집착하는, 혹은 나만 알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 있으면 말씀 부탁드려요.

 

이영하 : 나만 알지는 않겠는데요, 자기만의 방 시리즈에 고양이가 숨어 있기는 해요.

 

안서영 : 중간 페이지 내지를 펼치면 고양이가 어딘가, 책 사이에 안 보이게 항상 있어요. 그런데 이걸 찾는 독자가 항상 있더라고요.

 

이영하 : 내지마다 항상 숨어 있으니까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박영준 : 걷는사람의 책 작업뿐 아니라 외주 작업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최근 밴드 '아도이'의 보컬 오주환 씨의 에세이 작업을 하셨는데, 이 책의 디자인에서는 밴드 '아도이'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렇게 작업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진다솜 : 외주로 일을 하게 되는 곳들이 작은 출판사이다 보니 작가 분을 뵙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사전에 정보를 좀 알고 나가는 편이에요. 한번은 밴드 아도이의 오주환 작가님을 만나러 갔는데, 시티팝 장르를 연주하는 밴드라 소위 '힙한' 느낌을 생각하고 미팅에 나갔는데, 막상 작가 분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가져오셔서 굉장히 클래식한 디자인의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저는 시티팝 느낌으로 이만큼 디자인을 생각해 왔는데요. (하하) 하지만 원고를 읽고 또 작가님의 의견을 들어 보고 저도 생각을 바꾸게 됐어요. 사실 오주환 작가님은 다소 특이한 요구가 많았지만 그런 게 오히려 재미있게 들렸어요. 책 안에 보면 사진이 많은데요, 주로 혼자 찍은 사진들인데 그걸 손톱만 하게 넣어 달라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제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재미있는 제약이었죠. 책 표지의 글귀도 제가 원고를 읽다가 마음에 든 부분을 임시로 넣었는데 작가 분과 편집자 분이 좋다고 해서 그냥 이 글귀로 마무리되었고요. 이렇게 진행이 되었던 책이에요. 다행히 책이 잘 팔리고 있더라고요. (하하)

 

박영준 : 작업할 때 작가님들하고 만나는 것이 작업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시나요?

 

진다솜 : 아니요. (하하) 사실 굉장히 어려워요. 그분들이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그리고 다 같이 만드는 책이다 보니, 편집자도 생각하시는 게 있고, 대표님도 생각하시는 게 있고, 여러 사람의 생각이 많으니까요. 그 생각을 모두 수용하려 하다 보면 부담스러울 때가 있죠. 물론 사람에 따라 그런 생각이 제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요.

 

 

안서영 : 박연미 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어떠세요? 엄유정 작가님을 만나서 진행하셨을 것 같은데요?

 

박연미 : 일반적으로 출판 일을 할 때는 작가님을 직접 뵙게 되는 일은 거의 없죠. 대부분은 편집자하고 소통한 다음에 정해지거나 혹은 시안 단계에서 의견을 듣고 싶을 때 정도에는 편집자 분이 작가님하고 얘기하고 만나기 때문에 저는 사실 직접 만나는 일은 없었던 거 같아요. 다만 엄유정 작가님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작가님이 저에게 직접 의뢰를 한 경우라 다른 케이스 같아요. 방금 진다솜 디자이너님이 말한 부분은 사공이 많아지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견이 같으면 모르는데, 조금씩 원하는 방향이 다를 때 문제가 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엄유정 작가님과 저랑 1:1로 두 명만 진행을 한 거라, 사실 이 경우는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고 이해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직접 의견을 주고받아서 어떻게 보면 좋은 케이스였던 것 같아요. 작가님하고 실제로 같이 진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요.

 

이영하 :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작가님이 나오신다고 하면, '어, 나를 신뢰하지 못하나' 아니면 '분명 요구사항을 분명히 하나 들고 나올 텐데' 그런 느낌이 들죠.

 

안서영 : 저는 사실 작가님과 만나서 진행한 경우가 두 번밖에 없었던 거 같은데, 좋았던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이 부분은 편집자님들의 영향이 많이 미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박연미 : 편집자 분들이 원고인 텍스트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 기획과 작가님들을 만나거나 중간에서 소통하는 기본적인 역할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박영준 : 편집자 분들과 일을 할 때, 보통 한 편집자와 여러 번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한번 보고 말 사이처럼 의견을 밀어붙일 수도 없을 텐데, 그럴 때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들어 보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조금 더 상대방에게 맞추는 스타일일 수 있고, 어떤 분들은 자기 스타일을 조금 더 고집하는 스타일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영하 : 사실 편집자들마다 다르죠. 성격이 다들 다르니까요. 어떤 분들은 조금 맞추어 줘야 하고, 어떤 분들은 조금 다퉈야 하고요. 기본적으로 저희 두 명은 둘 다 성격이 좀 예민한 편이라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사실 좀 조심하는 편이에요. 너무 긴밀하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좀 적당한 관계에서 가장 편한 지점을 찾아요. 그 지점에서 계속 유지하는 편집자랑은 오랫동안 작업하게 되더라고요.

 

박연미 : 저는 그 질문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라는 맥락에서 생각을 해봤을 때, '콘텐츠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해요. 마케터가 되었든 편집자가 되었든 저자가 되었든 아니면 출판사 사장님이 되었든.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커뮤니케이션을 제일 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고요. 예를 들어서 변죽 좋게 얘기를 잘하는 사람, 소심해서 이야기를 못 하는 사람. 사실은 이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개인적인 성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작업을 하는 거니까요. 처음 미팅뿐만 아니라 작업이 나올 때까지의 과정과 소통을 계속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의 키워드는 결국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싶어요.

 

박영준 : 맞아요. 설득을 하더라도 책에 대한 확실한 통찰력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확실히 상대가 납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박연미 : 네, 내게 확신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설득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아닐 때도 있긴 하지만요. 나는 콘텐츠를 이렇게 파악해서 제안을 했는데, 상대 쪽에서는 또 다른 포지셔닝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부분은 이것이 메인 이슈인 거 같아요.

 

박영준 : 명언이었습니다. (하하) 스튜디오 고민은 몇 년째 운영 중인지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 많이 받아 보셨겠지만 어떻게 시작하고, 유지해 오고 있나요?

 

안서영 : 저희가 스튜디오로서 시작은 2012년에 했어요. 사실 그전에도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긴 했지만 스튜디오로 일을 시작한 건 2012년부터인 거 같아요. 저희가 대학교 때부터 커플이었기 때문에 전공이 같았고 언젠가는 같이 일을 하지 않을까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저는 디자인 스튜디오들을 몇 군데 거치고 영하 씨는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몇 년 후 같이 작업을 하게 됐어요. 인디뮤지션이나 단행본 작업부터 시작해서 엔터테인먼트, 기업 등 여러 클라이언트와 협업하고 있어요. 브랜딩도 하고 있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로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이영하 : 아무래도 둘 다 회사 다니는 것보다 개인이 하는 작업을 선호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좀 겁이 많은 거고, 어떻게 보면 자아가 좀 강한 거고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둘이 같은 회사를 다녔다거나 그런 것은 아닌데, 막연하게나마 둘이서 같이 작업을 하는 관계를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여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된 거 같아요.

 

 

박영준 :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일감이 많아지면 인원을 충원하거나 잠시 인턴을 채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는 온전히 두 분이서 해결하나요?

 

이영하 :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는 종종 고용하는 편이에요. 복잡하게 일정이 꼬여 있을 때는 주변의 프리랜서 분을 고용해요. 조판을 맡긴다든가 약간 그런 식으로 진행을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요즘 약간 기로인 거 같아요. 직원을 충원해야 하나 안 해야 하나, 그 기로요.

 

박영준 : 그게 참 고민이 될 거 같아요. 어쨌든 두 분이 자유롭게 일하는 게 좋아서 시작을 하셨을 텐데, 충원이 되면 아무래도 회사의 틀을 갖춰야 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이영하 : 제가 굉장히 자유롭게 일을 하는 편인데요. 눕고 싶을 때는 눕고. (하하)

 

박영준 : 그런 회사라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요. (하하)

 

이영하 : 저희는 출퇴근은 아무래도 자유롭게 하는 편이에요. 사실 너무 자유로워서 작업에 불리한 경우도 가끔은 있는 거 같아서, 저희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로 직원을 충원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해요.

 

안서영 : 그리고 대개 듀오로 커다란 프로젝트를 소화하는 분들 중 무리 없이 진행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저희는 저희가 소화할 수 있는 사이즈의 프로젝트만 착수해요. 하지만 가끔 저희가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두 명으로 조금 힘들지 않나, 한 명 정도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박영준 : 제가 알기로도 듀오로 이렇게 작업하는 분들이 일시적으로 같이 협업하면서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박영준 : 박연미 디자이너님께서는 굉장히 오랜 시간 민음사의 디자이너로 계셨잖아요. 그리고 현재도 민음사의 책을 많이 디자인하고 있는데, 현재의 삶에 만족하시나요? 또, 같은 출판사의 일이지만 인하우스일 때와 프리랜서일 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박연미 : 민음사에서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5년 반 정도 있었어요. 민음사는 내부에서 디자이너들이 대부분의 일을 소화하는 편인데, 잡지 창간은 외주로 저에게 맡겨서 《릿터》를 작업하고 있고 근래에 단행본을 몇 권 작업했어요. 외주 디자이너로서 차이점은 별로 못 느끼지만 심리적으로 작업에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긴 해요. 인하우스 디자이너일 때와 프리랜서일 때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프리랜서는 여러 곳에서 일을 동시에 받아서 진행해서 그만큼 제가 스케줄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겠다고 요즘 더욱 느끼고 있어요. 사실 요즘 일이 많아 좀 혹사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년부터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딱 그런 시점 같아요.

 

박영준 : 그럼 프리랜서의 자유로운 근무환경은 만족하시고 계시나요?

 

박연미 : 그렇긴 하죠. 지금 아기가 있어서, 그 점이 좀 커요. 만약 9시에 출근해서 6시(나인투식스)에 퇴근하는 회사를 다녔다고 하면 제 상황에선 단축근무를 했을 테고 그러면 여러모로 좀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물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육아 병행을 하는 것도 힘든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경력 단절녀가 되지 않기 위한 현실 앞에서요.

 

박영준 : 사실 그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해요. 프리랜서는 일과 일상을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더 철저하게 시간 관리를 해야 하는데, 매끄럽게 유지해 나가고 있나요?

 

박연미 : 제 스스로 판단하기에는 매끄럽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는 일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일이 재미있으니까, 또 욕심나는 원고 작업이 들어오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적정선을 찾아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박영준 : 어쨌든 계획을 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절대적인 시간문제가 있으니까요.

 

박연미 : 정말 이건 현실이에요.

 

진다솜 : 그런데 또 국내 출판사 사정으로 봤을 때는, 같은 시간 안에 일을 많이 할수록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약간 박리다매처럼 말이에요.

 

박영준 : 돈을 벌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구조라는 거죠?

 

진다솜 : 그렇죠. 단지 돈을 벌려고 그렇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들어요. 어쨌든 단가는 항상 그대로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혹시 동의하시나요?

 

박연미 : 그런 경제적인 현실에는 동의하는데, 많지 않더라도 저는 제가 만족스럽게 작업 완료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은 사람이에요. 물론 돈 생각 하면 공장처럼 일을 해야죠. (웃음) 출판 쪽이 단가가 워낙 빤하기 때문에. 제가 굶고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것만으로도 사실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양으로 욕심내지 말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신간이 나오면 다 보게 되니까 이건 누가 했고 저건 누가 했고, 그러면 이름이 굉장히 많이 보이는 분들도 있긴 한데요. 그건 또 제가 생각하는 방향도 아니고 능력도 안 되고요. 지금만큼이라도 작업 상태를 잘 유지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영준 : 좋은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하하) 진다솜 디자이너께서는 회사 일과 외주를 병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벅차진 않으세요?

 

진다솜 : 저도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요, 사실 저도 다음 해부터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하하) 저는 경험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업을 많이 했는데, 사실 그런 면에서는 성공했지만. 다음 연도에는 내실을 좀 더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박영준 : 그러면 외주 일이 들어오면, 퇴근을 하고 시간을 따로 내서 작업하시나요?

 

진다솜 : 그렇죠. 이번 연도에는 주말이 거의 없었던 거 같아요.

 

박영준 : 자, 이번엔 북디자인 동향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기성 출판이 독립 출판과 소규모 출판사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는데, 대중의 반응도 첨예하게 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진다솜 : 저는 기성 출판이 얼마 전까지는 책 표지와 책등에는 제목, 바코드는 책 뒤표지 하단 이런 틀을 가지고 있었다면 독립 출판이나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이런 틀을 깨는 영향을 좀 받는 거 같아요. 틀이 약간 바뀌고 있다고 느껴요. 그런데 그 점이 너무 새로워서 대중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돌베개출판사에서 『역사의 역사』라는 책이 나왔는데, 책 사진이 전방에 나오고 조금 색다른 디자인이었죠. 저는 정말 좋았는데 그 디자인에 대해서 악플이 꽤 달리는 거예요. 너무 새로워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런 새로운 것이 항상 디자인을 이끌어 나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이영하 :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들이 젊어진 영향도 있지만 독립 출판의 판매량이 어느 정도 나오면서 이 시장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아, 이렇게 새롭게 디자인해도 판매량이 어느 정도 나오는구나, 라는 인식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한테 연락 올 때도 독립 출판처럼 나오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사실 『역사의 역사』도 호불호가 갈렸지만 판매량은 좋았죠. 디자인적인 요소는 독립 출판 덕분에 제한이 많이 풀어진 거 같긴 해요.

 

박연미 : 그 말씀에 동의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거부반응이 있다는 것은 이 분야가 워낙 보수적인 분야여서 그런 것 같아요. 우선 일차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는 편집자 분들도 보수성이 짙고요. 문단 왼쪽 정렬 문제도 담당 편집자들은 기존에 견고하게 쌓아 놓은 게 있어서 설득이 쉽지 않죠. 무엇이든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은 나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닌 거죠. 그냥 스테이지가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무대가 하나가 아니고 두세 개 있는 거죠. 결론적으로 볼 때는 하나 있는 것보다 여러 개 있으면 더 좋은 거 아니겠어요. 설마 후퇴할까요. 더 발전할 수 있는 다양성이 있는 거고 그 안에서 좀 더 세심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제가 작업할 때도 여전히 출판계에서는 낯설다고 어색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성 측면에서 여러 가지 시도는 환영할 만한 거 같아요. 긍정적인 현상인 것 같아요.

 

진다솜 : 잡지 《릿터》는 왼쪽 정렬이 주로 사용된 것으로 아는데, 혹시 그 부분에도 처음에 반대가 있었나요?

 

박연미 : 당연히 반대가 있었고요. 《릿터》도 단편소설 같은 경우는 양끝맞춤이에요. 그건 절대 안 된다는 게 처음부터 있었어요. 전통문학 독자들은 오른끝이 들쑥날쑥하면 항의나 거부반응이 너무 크다는 거였죠. 사실 저는 왼쪽 정렬하는 게 단어 사이가 고르고 의미 단위로 읽을 수 있어 좋은데 분명한 건 이것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다는 거예요. 처한 환경 안에서 각각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다른 시스템이 있는 거고 결이 있어서 여전히 그 건에 대해서는 그때 그때 상황을 보고 판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영준 :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서는 디자인 아이템으로 책이 유행하고 있다고 느꼈는데요, 디자인을 하다 보면 판매량에 대해서도 눈여겨보게 되잖아요. 실제로 이런 디자인 시장이 좋아지고 있는 게 보이나요, 여전히 어렵다고 보시나요?

 

안서영 : 저는 좀 전에 이야기가 나왔듯이 새로운 스테이지가 생긴 것 같아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나오는 책들은 사실 내용이 중시되기보다는 형식이나 조형적 시도가 중요한 책들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는데요. 그런 책들의 수요가 생기고 팬덤이 생기는 과정을 보면서 어떻게 보면 또 다른 독자층이 생성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예전처럼 전통적인 독자층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아도 디자인이나 이미지로 책을 구입하는 새로운 독자가 생긴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해요.

 

박연미 : 저는 사실 나아졌다 그건 잘 모르겠고요. 어쨌든 책은 잘 안 팔리니까요. 대신 굿즈를 묶어서 굿즈와 함께 책을 사는 게 강세고 그런 텍스트 외적인 것들이 많아서 책 시장이 좋아졌나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또 책이 SNS에서 아이템처럼 쓰이는 현상은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읽지 않아도 테이블 북으로서, 인테리어 요소로 보여지는 건 또 다른 문화죠. 저도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만들어진 모양을 보고 구매하기도 하고요. 소장 욕구나 보여지는 것들로 책을 구입하는 건 이미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죠.

 

박영준 : 어떻게 보면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에게는 희소식일 수 있죠. 디자인을 중점적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니까요. 저만 해도 읽을 수 없는 네덜란드의 책이라든가 그런 것을 구입해 제본이나 종이를 참고하니까요. 어떻게든 책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하죠. 지금 이런 SNS 속 현상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에서는 "사람들이 짧은 글에 중독이 되었다. 긴 글을 읽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등의 의견이 있는데, 책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저는 반갑거든요.

 

박연미 : 그게 현실인 거예요. 독자들의 호흡이 짧아졌는데 어쩌겠어요. 라디오는 사라지지 않고 보이는 라디오나 앱으로도 듣게 된 것처럼 변화한 환경에 또 맞게 변화할 부분이 있는 거고요. 기본 콘텐츠는 유지되겠죠. 정체성은 잃지 않되 유연성은 필요한 것 같아요.

 

박영준 :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앞서 말한 다양성 측면에서는 좋은 것 같네요.

 

안서영 : 그런데 이런 건 좀 없었으면 해요. 가령 SNS에 올렸을 때 어떤 색깔이 잘 보이기 때문에 콘텐츠와 상관없이 이 색깔로 해달라, 라는 요청 같은 건요. 물론 이런 요청을 처음 들어 보긴 했지만요. 주객이 전도된 거 같기도 해요.

 

박영준 : 조금 더 튀는 색으로 디자인해 달라는 요청 같은 걸까요?

 

안서영 : 요청하시는 분이 요즘 트렌드가 oo색이니까 oo색으로 해달라. oo색으로 해야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 이런 식으로 말씀해 주신 분들도 있죠.

 

박영준 : 그럼 진다솜 디자이너의 오주환 님 에세이는 이런 쪽에서 완전히 역행하고 있는 거네요. (하하)

 

진다솜 : 맞아요. 완전히 역행이었어요. (웃음)

 

 

박영준 : 다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독자의 시선으로 볼 때, 당연하겠지만 책에서 디자인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내지보다는 표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북디자이너는 작업할 때 내지에도 많은 공을 기울여야 하는데요. 내지 작업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프로세스 등 고려해야 할 점을 알려주면 북디자이너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영하 : 저희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내지가 북디자인을 할 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은 해요. 북디자인이 항상 그렇잖아요. 작가의 문체와 작가의 생각, 가치관을 타이포그라피로 조합해서 그 느낌과 정서를 충분히 담아내는 그런 과정으로 내지 디자인을 하는 거잖아요. 그 부분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고요. 그래서 이 부분을 독자 분들이 더 바라봐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위에서 말한 SNS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요. 사실 그 과정에서부터 표지 디자인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타이포그라피 조합이나 레이어를 항상 유심히 봐주는 독자층이 저희한테도 필요해요. 표지 예쁘게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려 주는 독자보다 내지를 봐주는 독자층의 반응이 사실 저희한테는 더 기쁜 반응이긴 하죠.

 

박연미 : 저 같은 경우는 거의 반반인 거 같은데요, 표지만 의뢰하는 출판사 반, 본문까지 한 권 의뢰하는 출판사 반인데요. 출판사 내부에 본문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표지만 의뢰해 오죠. 본문 디자인까지 하는 경우 더 세세하게 타입 세팅하는 재미가 있어요. 그동안 작업한 책이 쌓이다 보니 같은 분야에서 주제가 겹치는 책도 있는데, 그 안에서 제 나름대로 미묘하게 차이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들이 있어요. 많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기본이면서 중요한 부분이 본문 디자인이죠. 저는 본문 타입 자체는 안정적인 형태를 주로 사용해서 튀지 않게 하되 쪽번호나 러닝헤드 부분에서 형태나 공간감으로 변주를 주려고 해요. 한글은 본문용 서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많이 변화를 못 주지만 영문이나 숫자 폰트는 각 콘텐츠에 맞게 변화를 주려고 하는 편이고요.

 

박영준 : 네, 말씀하신 대로 폰트를 여러 가지로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저희가 이런 얘기를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많으면 독자들도 점점 알아주지 않을까 싶기는 해요.

 

진다솜 : 저도 본문이 제일 어려운 거 같아요. 영문과 한글 타입 세팅에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어떻게 타입 세팅할까, 라는 것은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부터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분야의 분들은 제가 이런 고민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신기해하세요. 사실 저는 이런 고민하는 시간이 즐겁기도 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고요.

 

박영준 : 책 만드는 작업의 여러 에피소드들 잘 들었습니다. 대담이 마무리되어 가는데 추가 질문이 들어와서 잠시 여쭤 보겠습니다. 북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과 대학생 등이 이 대담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어떤 과정을 거쳐 북디자이너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연미 :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기도 했고 오진경 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도 있고요. 시각디자인 전공 안에서 편집 디자인을 기반으로 작업하다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를 구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지원을 하게 되었어요. 그 후 지금까지 쭉 책 디자인을 하고 있고요.

 

이영하 : 저희도 거의 비슷한 이야기일 거 같은데, 사실 둘 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요, 둘이 커플로 맺어진 이유도 보면 둘 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처음 시작은 둘 다 워낙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도 우리 북디자인 하자로 출발했던 거 같아요.

 

진다솜 : 책을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저는 제가 다루는 디자인 중에 북디자인이 그나마 소모성이 적은 분야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박영준 : 소모성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진다솜 : 예를 들어 영화 등 행사 포스터는 끝나면 버려질 확률이 크잖아요. 물론 소장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책은 소장될 확률이 더 높은, 그러니까 지속성이 있는 매체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텍스트'라는 존재를 좋아하기 마련이잖아요. 내용을 읽지 않더라도. 저 역시 '텍스트'를 많이 다룰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따라갔어요. 진입이 어려운 분야이고 시장도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한 분야에 몸담을 것을 생각할 때 도전해 보고 싶은 직업이었어요.

 

박영준 : 북디자인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나 이쪽 분야를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려요.

 

진다솜 : 음, 제가 아직 딱히 해드릴 말은 없지만, 기조를 지니고 오랫동안 책 디자인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과 책이 완성돼서 손에 쥐어질 때 뿌듯함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박영준 : 그럼 진짜 친한 친구나 가족이 하겠다 하면 추천하시겠어요? (하하)

 

진다솜 : 그분이 진짜 하고 싶다면 하라고 하겠죠.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다른 것도 많다. (하하) 또 그러나 하고 싶으면 했으면 좋겠어요.

 

박연미 : 결국에는 그런 것 같아요. 출판 이쪽은 정말 하려는 사람만 결국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자기가 좋아한다면 하는 것. 이건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인 거 같고요.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연봉은 높지만 그 관계 안에서 소모되는 부분이 크고 연봉은 적더라도 책을 만들면서 또 만족하는 부분이 있고요. 세상은 일정량 법칙 같은 이치가 있는 거 같아요. 현실적으로 어딜 가도 쉬운 일은 없고, 어딜 가도 또 죽으라는 법도 없는 것 같고요. 여기서 포인트는 자기가 정말 좋아하다면, 책을 만들고 싶다면 하면 됩니다. 그런데 취업 측면으로 보면 예전보다 진입 장벽이 높긴 해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거나 준비된 포트폴리오가 있어야 현실성이 있는데 독립 출판을 하거나 소규모 출판을 하는 분들은 내부 디자이너를 안 두는 편이고 규모가 큰 곳은 기존 디자이너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요.

 

박영준 : 그래도 저는 이 분야가 '제3자가 생각하는 북디자인 시장'처럼 열정만 소모하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먹고살 만한 길이 있는 거 같아요.

 

진다솜 : 얼마 전까지 취업을 준비했던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이쪽 분야에 취업 공고나 그런 것이 많이 안 나오긴 해요. 그리고 경력자들이 즐비하고요.

 

박연미 : 한번 입사를 하면 그분들이 퇴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요.

 

이영하 : 그리고 퇴사를 해도 그분들이 작업을 계속하거든요.

 

안서영 : 그런데 또 어찌 보면 그만큼 남아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업계가 괜찮다는 건데······. (하하)

 

박영준 : 박연미 디자이너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입장벽이 확실히 높은 대신 시장 자체가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 같기는 해요.

 

이영하 : 북디자인을 한다고 사정이 어려워지거나 일감이 적다거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스튜디오 입장에서(프리랜서 입장에서) 다른 디자인 업종과 비교해 보면 예산이 적은 편이죠. 그럼에도 북디자인은 종이로 나올 수 있는 물성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책을 디자인할 때에 이 책이 인쇄되어 제본되는 결과를 보면 항상 기분이 좋죠. 종이 질감의 작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업인 거 같아요.

 

안서영 : 또 북디자인을 잘하면 다른 걸 다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영하 : 모든 게 담겨 있는 것 같거든요. 이 길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다들 잘 되면 좋겠네요.

 

 

박영준 : 오늘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북디자이너의 삶을 다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처럼 생산적인 대담이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동 : 고생 많으셨습니다.

 

 

 

 

 

 

 

 

 

 

◆ 참여자 소개

박연미(참여자)

그래픽디자이너. 민음사에서북디자이너로5년6개월동안근무했고, 2015년이후프리랜서로활동하며 주로책과관련된일을하고있다. 『밀란쿤데라전집』,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레닌전집』과문학잡지《릿터》를창간호부터디자인하고있다.www.yeon-mi.com

 

박영준(사회자)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주로 콜라주 기법에 근거를 둔 이미지 작업을 하며, 보고 들은 것을 수집해 두었다가 다시 조합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국내외 기업들과 협업해 작업하며 2018년 작품집『COLLAGES』를 발간하였다.

 

이영하, 안서영(참여자, 스튜디오 고민)

프린트 기반의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두 명의 디자이너로 이루어진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2017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 아이덴티티 부문을 수상했다. 책과 음악, 브랜딩 분야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진다솜(참여자)

출판사 걷는사람과 그 외 다양한 곳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걷는사람의 시인선, 희곡선, 다: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김은경(전사, 원고정리 및 구성 등)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량 젤리』를 펴냈으며, 2016년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했다.

 

 

   《문장웹진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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