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인문학 ―샬롯 브륄레와 ‘상상’ - 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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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피스인문학]

 

 

"나, 아프지 않아. 오빠는 그대로면 돼"

―샬롯 브륄레와 '상상'

 

 

권혁웅

 

 

 

    1
    고고학자 로빈 편에서 '상징' 및 '실재'를 소개하면서 '상상'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루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회에서는 이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상상 나아가 상상적인 것(the imaginary)에 관해서 알아보자. 상징, 실재, 상상이라는 세 범주는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상징계, 상상계, 실재는 '말하는 존재(parlétre)'인 인간이 자신과 세계에 대해 말하고 생각할 때 반드시 가정해야 할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말하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말 또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말, 언어가 다름 아닌 상징계다. (중략) 헤겔에 따르면 존재 자체, 즉 순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무'와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재에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도입되어야 한다. (중략)
    둘째, 말해지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이 실재이다. 헤겔이 『대논리학』에서 '존재'라는 가장 일반적인 또는 보편적이면서도 의미를 갖지 않는 '(순수) 존재'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가장 근원적인 것은 (비록 우리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존재 자체인 것이다. 라캉은 이를 실재라고 번역한다.
    셋째, 말해지는 내용 또는 대상에 어떤 고정된 의미가 부여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서로 같은 말을 하지만 동상이몽에 빠지게 될 것이다. (중략) 적어도 우리가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어떤 중요한 단어에 대해서만이라도 (비록 나중에 착각임이 드러나더라도) 적어도 어떤 순간에는 의미를 서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상상계라는 개념도 실재, 상징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 상상계라는 라캉의 개념의 한 가지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의미의 고정성이라는 것이 그것이다.1)

  1)  홍준기,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새물결, 2017, 184-185쪽.

 

    상징계는 언어가 구축한 세계이다. 인간은 언어를 배우면서(=언어에 의해 접수되면서) 본래의 몸에서 분리된다(뒤에 남은 것, 곧 분리되고 남은 본래의 자리 혹은 언어의 지시작용 뒤에 남겨진 그림자를 우리는 '주체'라고 부른다). 언어가 구성하는 세계는 사물의 세계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상징)와 지시대상(실재)과 지시작용(상상) 사이에는 수많은 빈틈과 착오가 생겨난다. "밥"을 앞에 둔 아이가 "나 배고파"라고 말할 때, 그 말은 ① '이 밥으로는 양이 부족해'라는 뜻일 수도 있고, ② '밥이 아니라 빵이 먹고 싶어'라는 뜻일 수도 있으며, ③ '먹는 것 말고 엄마의 관심에 굶주렸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이처럼 상징(언어)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실재)과도 어긋나고, 그것이 의미하는 뜻(상상)과도 어긋난다.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거나 "상상은 허구적인 것이다"라는 역설이 그래서 생겨난다.
    지난번에 말했듯 칸트가 말한 '물자체'가 바로 실재계다. 우리는 우리가 언어로 포획한 대상만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 너머의 대상(세계)은 우리 인식의 한계 개념을 보여주는 것(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너머의 것)으로만 남게 된다. 인간은 가시광선 곧 380~780나노미터의 파장을 가진 빛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보다 파장이 큰 빛(적외선)이나 작은 빛(자외선과 X선, 감마선)은 인간의 눈으로는 지각할 수 없다. 이것은 인식의 한계가 아니라 지각의 한계다. 그런데 가시광선 범위 안에 든 빛을 우리가 분류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이를테면 우리가 무지개를 오색무지개라 부를 때, 우리에게 파란색과 초록색은 같은 색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라거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고 왕왕 말하는 것이다. 언어가 가시광선 내부의 두 영역(푸른색과 초록색 영역)을 구별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색무지개를 분리하는 이런 언어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빛은 거기에 있으나 그 둘을 포착하는 언어가 없기에 그것은 언어체계에 반영되지 않으며, 다만 언어체계 내부의 질서를 교란하는 얼룩으로 남는다. 따라서 실재는 상징계의 교란을 통해서만 측정될 수 있다.
    반면 상상계는 언어가 작용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다. 언어를 이루는 기호들은 의미의 고정점 곧 기호를 특정한 의미와 결합시키는 정박점이 없으면 무의미의 바다를 떠돌아다니게 된다. 지구에 비교하자면 상징의 세계는 지표면과도 같다. 언어와 언어 사이의 상대적인 거리나 높낮이(위계)는 거기에 있으나, 그것을 측정하려면 그 위에 가상의 좌표를 그려야 한다. 상상계란 지표 위에 상상적으로 그어둔 위도, 경도, 해발(海拔)과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그 선은 그어져 있지 않으나, 그 선을 기준으로 삼아야만 지형(혹은 언어)의 정확한 측정값을 얻을 수 있다.
    상징이 분리작용에, 상상이 미분리의 세계에 적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어는 대상(실재)과 분리된 이후에야 상징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무엇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손가락(언어)과 대상(실재)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손가락은 대상이 아니고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런데 적어도 그 손가락이 대상을 올바로 가리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방위와 각도를 가져야 한다. 이 가상의 결합, 곧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직진하면 대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상상의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상상적인 것이란 손가락과 대상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선인 셈이다. 가상의 힘으로 분리(상징) 이전의 세계(미분리)라는 환상을 구축하는 것, 이것이 '상상적인 것'의 역할이다.

 

 

    2
   상상계를 대표하는 사물이 '거울'이다. 거울이 보여주는 상은 실재가 아니면서도 거울을 보는 이에게 통일된 '나'라는 환상을 선사한다.

 

    라캉은 실체가 아닌 평면적인 이미지에 매혹되는 거울단계가 주체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필연적인 계기이자, 인간의 모든 지식과 대상관계를 허구적인 것에 기초하게 만드는 지속적 작용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주체가 나라는 자기의식을 갖고, 대상들을 자아를 중심으로 한 대상관계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상상계 덕분이다. 상상계는 주체를 소외시키고 기만하지만 주체가 타자와 맺는 관계에 불가피하게 내재할 수밖에 없는 위상학적 영역이다.2)

  2)  김석, 『에크리―라캉으로 이끄는 마법의 문자들』, 살림, 2007, 145-146쪽.

 

    어린 아이가 거울에 매혹되는 것은 그것이 통일성의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아기는 주위와 자신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세계(자신과 주변을 합친 전체)가 뭔가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 완전한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거울단계에서 자아는 부분적으로는 우리 안의 통일성과 조화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야기되는 긴장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스스로가 주위에 보이는 조화로운 사람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느낀다. (중략) 거울단계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하나(One)를 창조한다."3) 거울단계 이전의 나는 아직 '나'라고 불릴 수 없는 조각들이다. 그런데 거울은 그 조각들을 모아서 '나'라는 그림(환상)을 창조한다. 이 '나'를 자아(ego)라고 부른다. 따라서 자아는 거울이 제공한 환영, '나'라고 부를 수 있는 허구의 통일성이다.4)
    우리가 아침마다 옷을 갈아입을 때, 화장을 할 때 보는 거울 속의 '나'가 환상이라니 갸우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생각해보면 된다. 어떻게 내가 평면거울 속의 이차원 그림일 수 있겠는가? 내가 내 밖에서 통일된 '나'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거울 뿐이니, 거울 속에 비치는 허구의 그림이 나에게 '나'라는 통일성, 일관성을 부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나'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일종의 '거울상'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부모의) 아들이며, (벗에게는) 친구이며, (자식에게는) 아버지이고, (형에게는) 동생이며, (배우자에게는) 남편이다. 저 괄호 속 타자들의 시선들이 아니라면 내가 '나'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내가 '나'를 위와 같이 소개할 때, 나는 타인들의 시선에 비친 허구의 거울상을 '나'라고 인증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자아(나)가 상상계의 소산이라는 말의 뜻이 이것이다.

  3)  브루스 핑크, 『에크리 읽기: 문자 그대로의 라캉』, 김서영 옮김, 도서출판b, 2007, 189-190쪽.
  4)  "이러한 이유로 라캉은 자아를 허위 존재(false being)와 연계시킨다."(같은 책, 190쪽)

 

    3
    원피스 세계로 가자. 상상계를 대표하는 주인공은 거울거울 열매 능력자인 샬롯 브륄레다.

 

    "누구냐구? 위잇위잇, 위잇위잇. 계속 함께 있지 않았나? 달아나고 달아나도 이 숲에선 빠져나가지 못해. 날뛰면 못 써, 아가씨. 저기 내 상처 좀 봐봐. 너무하지? (중략) 귀여운 토끼애랑 귀여운 여자애······ 멋진 걸. 그렇게 어여쁜 얼굴을 보면 나는 찢어발기고 싶어지거든!"(샬롯 브륄레, 83권 832화)

 

    브륄레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디저트 음식인 '크렘 브륄레'에서 따왔다(빅 맘 해적단은 선장 빅 맘과 46남 39녀나 되는 자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람들이나 사는 곳의 이름을 요리명이나 요리도구, 음식 이름에서 가져왔다). 부드러운 크림 위에 설탕을 얹고 표면을 태워서 만든 음식이다. '브륄레'(brûlée)는 '태운, 화상을 입은'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크고 마른 체격에 크고 빨간 매부리코를 가졌으며 얼굴에 큰 상처가 나 있다(이 상처의 비밀은 나중에 밝혀진다). 마녀를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묘사다. 헨젤과 그레텔을 요리해먹으려고 했던 마녀의 모습이 아마 이랬을 것이다. 그녀도 토끼애(이름이 캐럿이다)를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아 먹으려고 했다.
    그녀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루피 일행이 빅 맘의 본거지인 홀케이크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다. 낯선 숲('유혹의 숲'이라 불린다)에서 길을 잃은 루피 앞을 또 다른 루피가 가로막는다. 거울거울 열매 능력으로 변신한 브륄레였다.

 

    "누구냐 너라니, 난 루피거든!"
    "누구냐 너라니, 난 루피거든!"
    "따라하지 맛!"
    "따라하지 맛!"(루피와 가짜 루피가 동시에)
    "뭐지? 어떻게 된 거야? 어느 쪽이 루피? 판에 박은 움직임에 같은 말을 하고 있어!"(나미)
    "아니야, 좀 달라! 거울에 비친 '거울상'처럼 상처도, 액세서리도 전부 반전 되어 있어."(쵸파, 83권 831화)

 

    브륄레의 능력은 다음과 같다. ① 거울로 '거울상'을 만들어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되받아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내는 대상은 거울상답게 좌우가 반전되어 있다. 거울의 되비추는 성질을 이용한 능력이다. ② 사람이나 동물, 사물을 거울에 비춘 뒤 다른 대상에 비추면, 최초의 대상의 모습이 두 번째 대상에 구현된다. 거울이 사물을 증식(增殖)한다는 성질을 이용한 능력이다. 양쪽으로 맞놓은 거울이 서로를 비추면서 무수한 거울상을 만들어내듯, 이 재생산 능력은 복수의 대상에 적용될 수 있다. 상디의 결혼예식 중에 웨딩 케이크를 부수고 뛰쳐나온 무수한 루피들은 (사로잡힌) 브륄레의 능력을 이용해서 루피 모습을 복제한 동물들이었다. ③ 상대를 거울 속에 가두어버릴 수 있으며, 거울 속의 길을 따라서 (미리 거울을 가져다 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앞의 두 가지 능력이 대상을 비추는 거울의 성질을 이용한 능력이라면, 뒤의 능력은 거울이 대상을 포함한 배경 전체를 복사한다는 사실, 곧 이세계(異世界)를 창조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능력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① 모사(copy), ② 증식(multiplication), ③ 다차원(multidimension).

 

 

    4
    ① 모사는 둘(double)을 만드는 능력이다. 거울단계로 돌아가자.

 

    상상적 동일시란 최초 동일시라고도 하며 거울단계에서 주체가 자신의 이미지에 매혹되면서 그것에 도취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거울 속에 비친 이미지는 이상적 자아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자아에 대해 이상화된 단위로 기능하며, 아직 무수하게 분열된 부분 충동에 시달리는 주체에게 통일된 신체와 안정적인 자아를 약속한다.5)

  5)  김석, 앞의 책, 155-156쪽.

 

    거울을 보는 주체는 거울 속에서 완전한 자기 자신의 환영(이미지)을 본다. 조각난, 부조화된 감각에 시달리는 주체는 거울 속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몸이 통일되어 있음을, 자신의 정신이 '나'라는 하나(one)의 자아임을 믿게 된다. 이 이미지를 이상적 자아(ideal ego)라고 부른다. 브륄레는 마녀답게, "예쁜 아이들을 보면 찢어발기고 싶어진다"고 말하며 해치려고 든다. 마녀는 상징체계 내에 처소를 갖지 못한 '이교도, 여성, 신비 능력자'를 이르는 이름이다.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질서를 교란하고 파괴하는―그래서 권력자들이 보기에는 절멸시켜 마땅한―이들이다. 이들의 추한 외양은 이데올로기적 부조화 내지 일탈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표현(거울상)이기에, 브륄레는 '예쁜 아이'들을 보면 '추한 자신'처럼 만들고 싶다고 달려든다. 그녀의 이상적 자아는 왜 이처럼 왜곡되었을까? 다음은 루피에게 패배한 후 쓰러져 있던 카타쿠리와 브륄레가 나눈 대화다.

 

    "패배해서 등으로 누운 오빠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어. 어째서 일부러 등으로 누운 거야? 처음에는 엎드렸었잖아?"
    "하지만 브륄레, 내가 일상생활에서도 땅에 등을 대지 않는다는 건 거짓이다."
    "응. 알고 있어. 거울로 엿봤거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남자를 연기하는 거지? 우리를 위해서."(90권 902화)

 

    카타쿠리는 빅 맘 해적단 산하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던 강자였으나, 찢어진 입과 야수의 이빨을 가진 '추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 외모 때문에 "자루 뱀장어"라 놀림을 받았고, 놀리는 자들을 폭력으로 응징했다. 그에게 얻어맞은 자들이 보복하겠다고 브륄레의 얼굴에 깊고 길고 두터운 자상(刺傷)을 남겼다.

 

    "너한테 당한 녀석들이 앙갚음하러 온 거야, 카타쿠리!"
    "그럼 왜 동생이 당한 건데."
    "오빠, 나 아프지 않아. 오빠는······ 그대로면 돼."(같은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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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타쿠리는 그 이후로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공포 그 자체가 되었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만 누워서 큰 입으로 도너츠를 먹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브륄레는 오빠의 모습을 그 자체로 인정한 속 깊은 동생이었다. 이것은 또 다른 여동생인 샬롯 플랑페의 행동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플랑페는 카타쿠리의 펜클럽 회장이자 특공대원이다. 오빠의 사랑을 기대해서 전투 중에 루피를 저격했다. 카타쿠리는 '그런 승리를 내가 바랄 거라 생각하나?'고 묻고는 플랑페에게 "얄팍하기 짝이 없는 도움 따위 집어쳐라!"고 일갈한다. 마스크를 벗은 오빠의 모습을 보자, 플랑페는 "오지 마! 만지지 마! 이 괴물, 못난이! (중략) 입이 귀까지 찢어져선 완전 자루장어네. 퉷!"(89권 893화)하며 그를 비웃는다.

 

    거울 단계의 나르시시즘적 동일시 과정에는 두 가지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는데 그것은 이상적 자아와 자아 이상의 차이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통합된 상(像)으로서의 타자의 이미지를 상상적으로 동일시하는 과정이고, 둘째는 어린아이가 자신의 파편화된 존재를 대상의 통합된 이미지 속에 놓고 보려면 부득이 자신의 존재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관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언어, 즉 상징계로 진입함에 따라 그 허구적/이상적 통합된 이미지는 깨진다. 그러나 그 이미지는 상징계 진입 이후에도 주체가 떠맡게 되고 이때 그것에는 전 단계에서 없었던 새로운 특성~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아 이상이란 자아의 허구성이 깨진 연후에 일어나는 동일시라고 말할 수 있다.6)

  6)  박찬부, 『라캉: 재현과 그 불만』, 문학과지성사, 2006, 193-194쪽. 프로이트의 용어로 하면 '자아 이상'은 초자아(superego)에 해당한다.

 

    거울을 통한 동일시에는 하나의 단계가 더 있다. 상상계에 속하는 '이상적 자아'가 첫 번째 단계라면, 상징계에 진입한 후에 만나게 되는 '자아 이상'(ego-ideal)이 두 번째 단계다. 정신분석에서 이 단계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하나의 기표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일시"7)라고도 불린다. 주체는 거울에 비친 상상적인 '자아'만으로 자립할 수 없다. 언어의 세계(상징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상징계의 법―'아버지'로 대표되는 상징세계의 질서―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아 이상은 (상상적 동일시에 의해 구성되는 이상적 자아와는 달리) 언어들에 의해 구성되는 심리적인 실체다. 아이가 어른들의 요구―"너는 우리 집안의 장남이니 의젓해야 해." "사내가 사소한 일에 울면 못 써." "계집애가 조신해야지."―를 내면화할 때, 그는 아버지―정확히는 아버지의 법―를 자아 이상으로 삼은 것이다.
    브륄레에게 카타쿠리 오빠는 '자아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빅 맘이 자식들을 얻는 과정에서 아버지들을 죽이거나 추방했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원피스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빅 맘의 남편이 로라의 아버지 파운드인데, 버림받아 숲에 묻혀 있다가 나중에 의붓아들(샬롯 오븐)에게 죽임을 당한다. 빅 맘의 딸들에게 모든 아버지는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들이다. 브륄레의 입장에서는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강인한 자아 이상이 카타쿠리였던 셈이다.

  7)  김석, 앞의 책, 157쪽.

 

 

    5
    ② 증식은 여럿(multitude)을 만드는 능력이다. 거울은 단순히 사물을 되비치는 것만으로도 사물을 증식한다.

 

    "자네는 자네 자신이 어떤 식으로는 이 모든 걸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가?" 내가 물었네.
    "그 방식은 어떤 건가요?" 그가 물었네.
    "그건 어렵지 않으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리고 재빨리 만들어 낼 수 있겠는데, 만약에 자네가 거울을 들고서 어디고 돌아다니기만 한다면 아마도 가장 신속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걸세. 곧바로 해와 하늘에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낼 것이며, 곧바로 땅과 자네 자신, 여느 동물들과 도구들, 식물들, 그리고 그 밖에 방금 언급된 모든 것도 만들어 낼 걸세." 내가 말했네.
    "네. '보이는 것들'(phainomena)은 만들 수 있죠. 그렇지만 진실로 '있는 것들'([ta] onta)을 만들 수는 없겠죠." 그가 말했네.8)

  8)  플라톤, 『국가』, 박종현 옮김, 서광사, 2005, 614쪽.

 

    소크라테스(의 입으로 말하는 플라톤)는 거울을 들고서 돌아다니기만 해도 세계와 사람과 동식물과 사물들이 증식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증식된 것들은 원본이 아니어서, 진실로 있는 것(존재하는 것, 타 온타)이 아니라 현상(파이노메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거울이 깨지면 함께 사라지는 환영에 불과하다. 브륄레가 거울로 만들어낸 모사물과 증식물들이 거울이 깨지거나 그녀가 쓰러지자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상징계가 아버지의 세계에 속한다면 상상계는 어머니의 세계에 속한다. 거울을 보는 어린아이가 처음부터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기 때문이다. 아기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어머니라는 보증인이 필요하다. 자신이 어머니 품에서 거울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어머니의 시선에 의해 인증되어야―어머니가 거울 속에서 거울을 보는 자신을 보고 있어야―상상적인 시선이 완결된다.
    브륄레의 '증식' 능력은 어머니인 빅 맘의 능력이자, 빅 맘 해적단을 이루는 자식들의 능력이기도 하다. 행적이 비교적 자세히 소개된 인물들을 살펴보자. 스위트 3장성이라 불리는 대간부는 카타쿠니, 크래커, 스무디다. 밀가루 대신인 차남 샬롯 카타쿠니는 떡떡 열매 능력자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늘이고 더해서 싸운다. 비스킷 대신인 10남 샬롯 크래커는 비스킷비스킷 열매 능력자로 무수한 팔다리를 가진 거인으로 등장한다. 여덟 개의 팔에 검 여섯, 방패 둘을 들고, 네 개의 발로 빠르게 움직이며 루피와 싸운다. 루피가 거인을 쓰러뜨리자, 그 속에서 크래커 본체가 나왔다. 앞의 거인은 그가 만든 크래커 갑주에 불과했다. 그는 무수한 크래커 병사들을 만들어서 루피와 싸운다. 주스 대신인 14녀 스무디는 즙즙열매 능력자로 수분을 짜내어 적을 미라로 만들거나 짜낸 즙을 몸에 담아 거대한 크기로 자랄 수 있다. 하나의 몸을 큰 사이즈로 증식시킨 셈이다. 장남 샬롯 스페로는 할짝할짝 열매를 먹은 캔디 대신으로 몸에서 끈끈한 설탕물을 무한히 낼 수 있다. 3남 샬롯 다이후쿠는 램프램프 열매를 먹은 콩 대신으로 갖고 있는 램프를 문질러 램프의 마인을 소환해서 싸운다. 4남 샬롯 오븐은 열열 열매를 먹은 노릇노릇 대신으로 몸에서 무한정한 열을 낼 수 있다.
    자식들은 '나'의 증식에 해당한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했다. "거울과 부성(아버지성)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9) 교정하자면, 거울에 빗댈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일 것이다. 신체를 증식하는 것은 상징계에 속한 아버지가 아니라 상상계에 속한 어머니의 일이기 때문이다.

  9)  보르헤스, 『픽션들』, 황병하 옮김, 민음사, 1994, 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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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③ 다차원에 관해서 살펴보자. 쵸파와 밍크족[獸人] 토끼인간 캐럿을 사로잡은 브륄레는 이들을 '미러 월드'(거울 속 세계)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마녀답게, 거대한 솥단지에 이들을 넣어 잡아먹으려는 것이다. 쵸파와 캐럿의 활약으로 브륄레는 끓는 물을 뒤집어쓰고 감전을 당해서(이름처럼 그녀는 화상을 입는다) 사로잡힌 신세가 된다. 이때부터 미러 월드는 밀짚모자 일행이 빅 맘의 영지 이곳저곳을 오가는 통로가 된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비유다. 거울 속은 거울 바깥의 삼차원적 공간과는 무관한 다른 차원의 세계다. 2차원의 개미에게는 3차원의 우리가 신이다. 우리는 개미가 모르는 3차원에서 나타나 개미를 집어 올릴 수 있다. 다른 개미에게는 지각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개입이다. 거울 속 세계 역시 삼차원의 공간과는 다른 특별한 차원을 품고 있다. 현실 세계(3차원 세계)의 이곳저곳에 나타나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미러 월드의 주인공인 브륄레에게 미러 월드는 거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통해 있는 네 번째 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브륄레는 3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로서는 그 출몰을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상상적인 신인 셈이다.
    거울 속 세계는 본래 무시간성의 세계다. 그것은 3차원 공간만을 반영할 뿐 1차원의 시간은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륄레의 미러 월드는 조금 다르다. 미러 월드는 현실 세계와 거울을 통해서 연결된 또 다른 현실 세계다. 포로 신세에서 풀려난 브륄레는 거울을 통해 미러 월드의 이곳저곳에 출현한다. 그러니까 미러 월드가 현실 세계의 3차원적 공간의 이곳저곳에 출현하는 다른 세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현실세계 역시 미러 월드의 3차원적 공간의 이곳저곳에 출현하는 다른 세계인 셈이다. 둘은 위상적으로 같다.

 

 

    보로메오의 고리(Borromean rings)라고 불리는 그림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명했던 가문인 보로메오 가문의 문장(紋章)이다. 라캉은 세 개의 고리가 서로 얽혀서 동형의 구조를 이룬 이 그림이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표현한다고 보았다. 각각의 원에 상상, 상징, 실재계라는 이름을 배당하고 나면, 우리는 세 세계가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서로 들고나는 국면을 목격한다. 이 과정에서 의미와 무의미가, 존재와 비존재가, 쾌락과 주이상스10)가, 자아와 주체와 타자가 교환된다. 브륄레의 거울은 이처럼 세 겹으로 중첩된 거울의 한 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두 개의 차원과 들고나는 이세계(異世界)의 입구로서 말이다.

  10)  주이상스란 고통과 함께 체험되는 특별한 성격의 쾌락을 말한다.

 

 

 

 

 

 

 

 

 

 

 

 

 

 

작가소개 / 권혁웅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마징가 계보학』,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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