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산 외 1편 - 현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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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토산

 

 

현택훈

 

 

 

뱀을 섬기는 마을이 있었다
토산 여자가 시집갈 때는
항아리에 뱀을 담고 집을 떠났다
여드렛당에 가서 절하고
여자는 뱀을 아기처럼 품었다

 

시집가는 토산 여자 항아리 속에는
여드레할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뒤로 힘센 사람들이
토산 사람들에게
더는 뱀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가세오름에 오른 뱀들이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 마을의 여자와 결혼하면
뱀이 여자의 치마 속에 들어가 따라온다고 했다

 

건물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바닷물이 모니터 화면에 넘실거릴 때
뱀이 스멀스멀 나타난다
여드레할망이 잊지 않고
뱀을 풀어 놓기에

 

 

 

 

 

 

 

 

 

 

 

 

 

늦잠

 

 

 

 

동쪽으로 갈수록 햇빛과 점점 가까워졌다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운 오후가 있었다
낡은 라디오는 머리맡에 잠들어 있었다
김칫국물 들이켜도 머리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비가 내리면 보이지 않던 새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를 좋아하는 새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연탄가스를 마신 눈동자가 불룩했다
팔은 다 타버린 연탄처럼 딱딱해서 잘 부서졌다
사진관이 있던 자리에는 구름이 내려앉았다
구름이 있던 자리를 찍은 사진을 잃어버렸다
안개등을 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구간을 지나는 일은 밤을 지나는 일이다
버스를 타면 대체로 앞쪽 창가에 앉는다
버스가 전복되면 어느 자리가 살 수 있을지 헤아려 본다
겨울의 근황이 차창 밖으로 지나간다
엄마 얼굴이 수제비 국물처럼 허옇게 되었다
시장바구니에 기다랗게 나온 대파처럼 목을 빼고 실려간다
어슷썰기한 기억이 시멘트 마당을 끓인다

 

 

 

 

 

 

 

 

 

 

 

 

 

 

 

작가소개 / 현택훈

1974년 제주 출생.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4‧3평화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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