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외 1편 - 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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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가발

 

 

박소란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감쪽같아요,
그 순간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가발을 고쳐 쓸 때면
살짝 웃기도 할까 나는 불안하다 수시로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거울 앞에 선다
멀끔하게 꾸며진 신촌 뒷골목 모텔 방에서

 

섹스는 해도 잠은 자지 않는, 한 침대에 나란히 눕지 않는
그런 게 다 가발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내 사랑은 아무데서나 벗겨지고 또 구겨진다
우스워진다

 

끝내 모른 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은 말이야, 로 시작되는 어떤 대화를 기대한 적도 있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삭은 깍두기 접시를 가운데 두고 함께 밥을 먹는 새벽
아, 얼마나 소박한지 부연 김이 피어오르는 두 개의 뚝배기가 얼마나 따뜻한지
이런 게 진짜가 아니라면 뭐겠어요

 

한겨울에도 식탁 앞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는
너를 보면서
국을 뜨며 고개를 숙일 때마다 조금씩 어긋나는 정수리를 훔쳐보면서

 

감쪽같아요 정말, 말하지 않는다
허기진 듯 쉬지 않고 숟가락을 놀리는 것이다 식어 가는 국물을 휘젓는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들키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왜 자꾸 힐끔거리나 뭐라고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금간 벽처럼 웃나

 

 

 

 

 

 

 

 

 

 

 

 

 

자다 일어나 장롱을 열었다

 

 

 

 

자다 일어나 장롱을 열어 봤다
누가 있을 것 같아서

 

거기서 뭐 해요? 물으면
기다려요
기다리고 있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로 돌아가 눕자
이불이 길게 한숨을 뱉었다 천장이 기울어지며 잇달아 밭은기침을 쏟았다
어떤 신호가 아닐까

 

악몽이 어른대는 창
벌어진 커튼 사이로 창백한 어둠이 다가와 보란 듯 주저앉았다
그 곁에 우두커니 서서 손을 내민 한 사람

 

누구인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커튼을 열어젖혔다, 놀라 황급히
커튼을 닫았다
어서 빨리 잠들어야 했다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돌아보지 않는다

 

거기서 뭐 해요?

 

돌아보지 않는다

 

 

 

 

 

 

 

 

 

 

 

 

 

 

 

작가소개 / 박소란

2009년 《문학수첩》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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