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모임 –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11 - 김주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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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독자모임]

 

 

언제나 다층적인 읽기를 위한 좌담 11(마지막 회)

– 신진 문예지 탐사

 

 

참여 : 김주선(사회, 문학평론가), 강소희, 김영삼, 송민우, 차유진

 

 

 

 

김주선 : 오늘이 《문장 웹진》 좌담회 마지막 날입니다. 어떻게 이런 날이 왔네요. 지난 10회 때도 뭔가 감격이 있었는데 오늘은 또 다른 의미로 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오늘 이야기할 주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오늘은 새로 등장한 문예지에 관한 논의를 할 건데요. 모든 잡지를 다 이야기하는 건 어려우니 튼튼하고 안정적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잡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릿터》, 《문학3》, 《악스트》, 《웹진 비유》가 대상입니다. 먼저 《릿터》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릿터》는 민음사에서 나오는데 본래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던 《세계의 문학》이라는 문예지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폐간되고 나서 등장한 문예지입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잡지여서 다들 아시겠지만 기존의 문예지와는 성격을 달리하면서 나타났습니다. 단적인 예 중의 하나는 연예인 인터뷰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죠.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차유진 : 《세계의 문학》 정기 구독자가 굉장히 적었다는 점에서 《릿터》가 갖는 성격이 이해돼요. 《릿터》는 이제껏 잘 읽지 않았거나 큰 관심이 없던 사람도 가볍게 집어 들 수 있는 스낵 위주의 글이 실려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릿터》의 인터뷰이는 대중이 더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많은 사람에게 더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가겠다는 의도가 보여요. 또 앞쪽에 보면 '이슈'난이 있는데, 문학 안에서만의 이슈가 아니라 시의적인 이슈를 가져와요. 다른 신진 잡지들과는 구별되는 점이라 생각해요.

 

송민우 : 《릿터》는 확장성이 그 특징인 잡지로 여겨져요. 설정된 의제들은 거의 매 호 시의적이고요. 독자들이 기존의 문예지에 대해선 무겁게 생각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릿터》의 경우엔 부담스럽지 않게 펼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돼요. 《릿터》만의 고유한 특징이 또 있다면 말씀한 대로 연예인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일 텐데요. 그것을 작가 인터뷰와 함께 배치해 놓은 것이 좋더라고요. 문학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고 할까요. 확실한 건 그로 인해 무겁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로 재생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에요. 잡지의 구성은 건축 설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콘텐츠 배치의 방식은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 저로선 이러한 《릿터》의 인터뷰 배치 방식에 대해 특히 더 생각해 보게 됐네요.

 

강소희 : 개인적으로는 오늘 다룰 문예지 중에서 특이성이 잘 잡히지 않는 잡지가 《릿터》라고 생각했어요. 전문적인 문예지와 대중적인 문화잡지 그 중간의 성격이랄까. 창간호를 보니 편집위원을 문인들로 구성하지 않고 민음사 출판그룹의 편집자들이 참여해 "문학을 읽어 왔던 이들에게는 즐거운 읽을거리가, 문학을 멀리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즐길거리가 되고자 한다."는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더라고요. 즐길거리와 읽을거리로서의 《릿터》. 그래서인지 기존의 문예지와 같이 시대적 이슈와 문학을 다루기는 하지만 그 깊이나 무게가 확실히 얕고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여기에 새로운 독자들의 눈을 붙잡기 위한 아이돌이나 영화배우의 인터뷰 등이 기존 문화잡지의 형식 그대로 덧붙여져 있고요. 《릿터》가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성은 확보했다고 할 수 있지만, 잡지 자체를 놓고 보면 기존의 문예지와는 다른 새로움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실험이 부족해 보입니다.

 

김영삼 : 좋게 말하면 시대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문학과 문학 언저리의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들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요. 아주 오래전 《사상계》가 생겼을 때 사회과학 글이 굉장히 많이 실렸는데, 그 시대가 필요로 했던 것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현시대에는 현시대의 시대정신이 담긴 잡지가 필요할 텐데 《릿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안타까운 점은 여성 소수자, 난민 등의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기존의 계간지들이 지녔던 깊이에까지 근접하지는 않는다는 점인데요. 아마도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무게 중심의 위치를 고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강소희 : 덧붙여서, 기존의 문예지들이 작가 중심이라면 《릿터》는 독자 중심의 문예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출발하는데, 독자 중심의 성격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김주선 : 독자 중심의 성격이 옅다고 느끼시는 이유가 뭘까요?

 

강소희 : 제가 지금 《릿터》에서 느낄 수 있는 독자 중심의 성격은 최대한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문예지가 되겠다는 방향성 정도예요. 독자 중심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독자에 대한 작가의 일방적 소통을 흐트러뜨리는 것인데, 《릿터》에서는 그러한 기획이 보이지 않아요. 오늘 이야기할 다른 문예지들에서는 독자의 독특한 시선과 경험들이 담긴 글에 지면을 할애하고, 그래서 작가와 독자가 함께 읽고 쓰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문예지를 만들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와 비교했을 때 독자 중심의 문예지가 되겠다는 포부에 걸맞은 실험들이 《릿터》에는 미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차유진 : 확실히 독자 중심이라고 할 때 그 독자 중심은 독자와의 양방향 소통이 아니라 문학으로의 접근을 조금 더 쉽게 끌어 준다는 차원에서 독자 중심을 말하는 것 같아요. 《릿터》는 뉴스의 헤드라인을 모아 놓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제 주변만 봐도 지금 무엇이 이슈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고, 내가 왜 그런 것을 알아야 하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문학은 물론이고요, 읽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사람. 그런데도 미미한 관심의 불빛을 깜빡이는 잠재적 독자들에게 《릿터》가 길을 잘 제시해 준다는 생각이에요. 읽는 즐거움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출입구 역할을 한달까요.

 

송민우 : 《릿터》에는 외국 소설 또한 번역 게재되곤 하죠. 나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외국 작가라면, 그 작가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함께 그 작가의 소설을 실질적으로 접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지평을 넓히게 되고요. 문학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의 문화 향유 방식이 '짧음'과 '가벼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당장 지금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유튜브나 웹툰을 익숙한 문화콘텐츠로 접하며 성장해 온 세대고, 《릿터》뿐만 아니라 민음사가 그동안 이러한 시대적 특징에 기민하게 반응해 온 출판사라고 생각해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의 존재와 그 성공이 그에 대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고요.

 

김영삼 :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전반적으로 많은 문예지가 부정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가벼워졌다는 생각인데요. 이것이 현실 추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할 지점인지, 시대에 어울리게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해야 할지 현재로서는 명확히 단정 짓기 어려워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현재 그 변화를 같이 겪어내는 동일한 시공간에 있기 때문에 시야가 객관적이기 어렵기도 하고, 어떤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대상이 달라 보이게 마련이니까요. 많은 변화 속에 있을 때 그 변화가 급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잘못 판단했을 경우도 많잖아요. 다만 근래에는 문화 소비자들이 향유하는 플랫폼과 내용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잡지가 모든 짐들을 다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볼 때, 오늘 다루는 잡지들이 가져가는 포지션이 많은 독자들에게 환영받고 있다면 그 또한 출판문화의 발전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보입니다.

 

김주선 : 그럼 이쯤에서 마치고 《문학3》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문학3》은 창비에서 낸 잡지죠. 어찌 보면 굉장히 독특한 포지션을 갖고 있습니다. 잡지로도 나오고, 온라인에서도 움직이고, 실제 오프라인 모임도 이루어지고 있죠. 동시에 세 가지가 돌아갑니다. 저는 참석해 본 적은 없지만 창비학당에서 '요즘비평포럼'도 하고 있죠. 여러 시도를 많이 하는 중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김영삼 : 창비에서 나오는 잡지잖아요. 《창작과비평》과는 좀 다르지만 창비의 DNA는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창간사를 보면 공공성, 참여 이런 말이 나오고 촛불에 의해 탄생했다는 말도 나와요. 창비의 사회성이라 할까요. 그런 측면을 부담스럽지 않게 접촉하도록 하는 것 같아요. 웹은 6개월에 6000원이에요. 물론 잡지도 다 읽을 수 있고요. 그러니까 접근성도 좋죠. 웹툰 일주일에 하나 올라오는 것처럼 웹소설도 일주일에 하나씩 올라와요. 웹에 있는 글 중에 짧은 글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에요. 카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할 때 쓱 보기 좋아요. 즉 현대사회의 다양한 대중 독자들이 소비하기 좋은 형식으로 편집되고 공급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해 보여요. 이 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도드라진 특징인데요. 《창작과비평》은 여전히 나오고 있잖아요. 그 공간은 여전히 농도 짙은 담론을 생산하는 곳으로 존재하면서 《문학3》은 조금 더 부담 없이 사회와 문화에 접근하는 느낌이어서 역할 분담이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강소희 : 저도 진중한 문예지의 성격을 가진 《창작과비평》이 한 축에 놓여 있고, 기존의 문예지와는 다른 새롭고 다양한 실험을 시도 중인 《문학3》이 다른 한 축에 자리해서 둘 사이의 밸런스가 참 좋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적 이슈를 다루더라도 《창작과비평》의 시선이 포괄적이라면, 《문학3》은 세밀하달까. 창간호를 보니 '문학-삶'의 관계는 '문학-시스템'의 관계로 바뀌고 이때 소외되는 것이 구체적인 삶이라는 문제의식을 밝히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문학3》의 '현장'이 그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만들어진 코너 같아요. 성매매 집결지나 장애인 거주시설, 사드반대 투쟁현장 등 잊힌 장소들을 찾아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담아내는데, 읽으면서 '그래, 이게 창비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8년 1호에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함께 있는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문학3》을 점자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고, 그 시작으로 특수교사의 독서 경험에 관한 글을 '현장'에 실었어요. 배제된 삶을 찾으려는 고민과 삶의 구체성을 기입하려는 시도들이 읽혀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송민우 : 《릿터》가 상대적으로 사회적 의제에 집중하고 있다면, 《문학3》은 문학적 의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겨요. 또,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원고 모집을 통해 작품을 게재하기도 한다는 것, 기존 문예지들과 달리 문학 작품에 관한 좌담을 '중계'라는 제목을 통해 소위 '문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진행한다는 것이 《문학3》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특히 중계 코너의 경우 어쩌면 문단 내부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되레 솔직하게 발언하는 점이 좋더라고요. '문학몹'을 통해선 문학의 사회적 실천을 육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요. 아, 그리고 창비가 문예지 서포터즈를 모집하는 걸 봤는데 제법 새롭더라고요.

 

차유진 : 저는 《문학3》이 오늘 다루는 잡지 중에 종이 질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웃음)

 

김주선 : 아, 종이 질 중요하죠. (웃음)

 

차유진 : 저는 공간에도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책이라는 물성은 공간이 없고선 쌓을 수가 없으니까. 이북의 출현이 반가우면서도 약간 서글프기도 해요. 많은 책을 쌓고 싶어도 녹록치 않아 이북을 사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문학3》은 웹에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것만 남겨 놓고 싶을 때 갖고 싶은 잡지예요. 《릿터》는 "여기에 이런 게 있어. 들어와 봐." 하는 잡지라면 《문학3》은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의식이나 질문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에요. 저도 중계 지면이 정말 재밌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다양한 시선으로 중계를 해주잖아요. 10년 정도 시를 전혀 읽지 않은 사람이 시 중계를 해주기도 하고요. 나이대며 직업군도 다양해 작품을 바라보는 앵글이 달라 재미있어요. 아, 그리고 소설의 길이 말인데요. 중계에서 읽었는데, 어떤 분이 작가가 그간 익숙해 온 원고지 매수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나가다 보면 다양한 길이에 적합한 이야기와 문법을 더욱 갖출 거라 하셨거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길이에 딱 맞는 소설을 《문학3》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시간을 갖는다면 계속 더 좋은 소설이 등장할 거라 생각해요.

 

송민우 : 아까 잠깐 했던 얘기지만, 분량 축소 현상은 문예지만의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많은 것이 얇아지고 작아지고 있는 추세니까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도 그렇고, 문지문학상에서 개편된 '소설 보다 시리즈'도 그렇고요. 뭐가 됐건 읽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단편소설의 분량 축소 현상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되어 온 것인데, 다만 우려가 되는 점은, 이러한 변화를 소설가들이 온전히 떠맡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창작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이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구조 문제와 비슷해요. 변화에 적응하라고 하기 이전에 예술가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 둬야 하지 않을까요. 관련 제도는 존재하지만, 충분치 않고요. SF문학계에서 '#최저고료_원고지1매_만원'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원고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10년 전과 지금 평균 원고료에 변화가 없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거든요. 오래전에도 글쓰기에 대한 노동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길 숱하게 들었는데, 바뀐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을 부쩍 해요. 변화도 좋지만, 이젠 순서의 문제를 정말 생각해야 할 때 같아요.

 

강소희 : 《릿터》와 비교한다면, 《문학3》은 확실히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언어들이 뒤섞여 있어서 문학과 비문학, 작가와 독자의 구분을 흐트러뜨리려는 시도가 읽혀져요. 개인적으로는 '3X100'에 연재되는 황정은, 최은영, 김봉곤과 같은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글에서부터 '그냥 올려 본다'에 올라온 일반 독자의 글까지, 이것들이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도 좋고 그래서 짧은 글의 형식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송민우 : 《문학3》의 경우 짧은 평론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평론은 깊이가 담보되는 형식이라고 여겨요. 엄밀하게 말하면, 리뷰나 칼럼과는 다른 성격과 역할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러한 짧은 평론들을 비평적 에세이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은 할 텐데요. 아무튼, 길이와 깊이가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분량 제한 때문에 그걸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제겐 있었어요. 물론 개별 평론마다 《문학3》과 평론가 사이의 Q&A 코너가 있는 건 육성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것 같아 새롭더라고요. 명료하게 개별 평론에 대한 입장을 파악하기 용이하다고 할까요.

 

김영삼 : 그게 이번에 다루는 잡지들의 공통된 특징이죠. 평론이라는 장르가 문학의 무거움, 시대의 무거움이라는 형벌을 대신 지고 있어요. 마치 평론을 빼면 무겁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생산하죠. 그게 출판사들의 전략이고 그것이 문학시장의 확장에 기여한다면 좋은 일인 건 분명하겠죠. 다만 예상컨대 머지않아 반대 측면의 고민이 생길 거라고 봐요. 1차적 문화 콘텐츠들의 다량생산은 선택의 장애, 다시 말해 무엇을 골라서 읽고 어떤 것들이 더 볼 만한 것인가에 대한 어지럼증을 가져올 것 같고요. 그때가 되면 1차 콘텐츠들의 의미를 확대재생산하든 길라잡이 역할을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비평과 비슷한 역할의 2차 콘텐츠들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요. 일정한 형식은 어느 정도 내용을 결정짓기도 하기 때문에 내용의 다양성과 깊이에 대한 요구가 있을 것 같아요. 평론이든 소설이든 길이가 짧아야 한다는 형식이 주어져 있다면 바로 그 때문에 발생하는 한계가 수년 안에 오지 않을까 싶어요. 창비는 《창작과비평》과 《문학3》이 그런 역할을 나누고 있지만,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있을 때를 준비해야 된다고 여겨져요.

 

차유진 : 인터넷 공간 관리가 좀 덜 되는 것 같아요. 양질의 독자 참여가 쉽지 않아 그렇겠지만, 참여자의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 주고 또 주고받았으면 해요. 문학몹의 경우에는 서울에서만 이루어져서 좀 아쉬워요.

 

김주선 : 《문학3》 보면서 놀랐던 게, 잡지도 하고, 웹도 하고, 오프라인 모임도 하잖아요. 그럼 여기에 관련한 인력과 그들에게 쓸 자본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역시 창비의 정신도 정신이지만 자본을 포함한 여러 힘 때문에 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소희 : 혹시 또 몰라요. 있는 자본 다 끌어 모아 불태우고 있는 것일 수도. (웃음)

 

차유진 : 사람이 막 갈려 있는 거 아니에요? (웃음)

 

(일동 웃음)

 

 

김주선 : 《악스트》로 넘어갈게요. 이런 류의 문예지는 악스트가 제일 먼저 등장했는데 가격이 2900원이었죠. 지금은 바뀌었지만. 정말 파격적인 가격에 대단한 퀄리티가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몇 년 정도 정기구독 신청했어요. 싸서. 다들 어떠셨나요?

 

송민우 : 《악스트》는 리뷰 비중이 높아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여기도 리뷰의 경우 문학 관계자들에게만 맡기지는 않는 것 같고요. 고정 리뷰어가 있다는 것도 특징인 것 같아요. 표지가 소설가의 얼굴 혹은 전신이라는 점은 인상적이에요. 굿즈 같더라고요. 특정 소설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악스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수집 욕구를 충족하는 일이겠죠.

 

차유진 : 처음에 2900원일 때는 다른 신간 살 때 별 생각 없이 같이 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좋아하는 작가, 궁금한 작가들의 인터뷰를 의식해 사게 되었어요. 《악스트》의 인터뷰는 다른 인터뷰와는 달리 좀 더 내밀하다는 느낌이에요.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된다는 차원에서요. 작가에게는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 팬의 입장에서는 너무 좋아요.

 

강소희 : 가장 큰 인상은 《악스트》가 소설가들을 위한 놀이터라는 느낌이죠. 글 곳곳에서 소설가의 외로움이나 고달픔 같은 것이 묻어나는데, 창간사에서 밝히고 있듯이 《악스트》는 무엇보다 지금 한국에서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놀 수 있는 공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잡지라는 생각이 들고요. 1주년을 기점으로 소설과 소설 서평이 대부분이던 《악스트》에 새로운 형식적 시도들이 생겨나는데, 사진과 시, 소설과 에세이, 문학과 영화를 결합하고 넘나드는 코너들이 만들어지잖아요. 점차 《악스트》의 '놀이'가 다양해지는 것 같고, 특히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텍스트를 촘촘히 읽어내는 황현산 선생님의 글은 읽을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요. 송민우 샘이 굿즈 같다는 얘기를 하셨는데, 《악스트》에 좋아하는 소설가의 사진과 그의 인터뷰가 실린다, 그렇다면 팬심이 요동칠 수밖에 없죠.

 

김영삼 :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박수를 보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악스트》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라이트한 느낌을 전면에 최초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칭찬 받아 마땅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난 건데, 한 작가를 표지 전면에 내세우는 게 《악스트》가 21세기의 《작가세계》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없어져서 아쉽지만요. 다만 비교하자면 《작가세계》의 글들은 논문에도 인용되지만 《악스트》의 글들은 그런 방식으로 소비되지는 않는다는 게 차이랄까요. 창간사에 세 가지 모토가 나와 있는데요. 다른 두 가지는 다른 분들이 했던 이야기여서 세 번째 이야기만 해볼게요. 《악스트》 모토 중 세 번째는 오브제로서의 매력을 갖추겠다는 건데요. 실제로 그런 시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일기장이나 원고지에 쓰인 글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매력적인 사진을 많이 넣어서 미적 감상의 풍미도 다양한 것 같아요. 최근호에서는 정영문 작가의 사진이 완전 멋있고요, 최인훈 특집에서는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고인의 작품에 대한 글을 실어서 신선했어요. 이런 게 《악스트》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차유진 : 《악스트》는 정말 보라! 읽으라! 하는 잡지 같아요. 소설가들의 놀이터라는 문구도 그렇고요. 우리들 논다, 너희는 구경해, 라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약간 거리감이 생겨요. 그걸 바라보는 일이 물론 즐겁기도 한데요, 야광봉 흔들고 떼창도 하니까. 하지만 읽는 나는 좀 소외되는 느낌이 있죠. 《악스트》의 종이 질에서부터 그런 게 느껴져요. 펜 먹이기에 종이 질이 별로였거든요. 지금은 안 그렇지만. (웃음)

 

김영삼 : 창비, 문지, 문동을 볼 때 좀 의무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악스트》는, 아니 《악스트》뿐만 아니라 오늘 다루는 다른 문예지들은 다 읽지 않아요. 물론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잡지들이 다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측면을 강조하잖아요. 저는 그런 걸 쉽게 쉽게 소비하며 넘어가지 옆에다 뭘 적게 되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책을 대상화 시킨다는 느낌이에요. 활자가 아니라 사진과 같은 시각적 이미지에 많이 노출될수록 작품과 주체들의 거리는 멀어지게 되고, 그만큼 작품들은 대상화된다고 생각해요. 활자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독자는 (아니 저는) 작품에 이입되는 정도가 강해지지만, 이미지로 이루어진 세계를 볼 때 저는 상당히 객관적이고 비평적인 거리를 두게 되거든요. 그렇게 잡지들의 대중성이 혹은 그런 대상화되는 처지에 빠지게 되고, 독자들은 수동적 소비에 머무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차유진 : 선생님 말에 동의해요. 기존의 문예지는 부분만 읽으면 약간 죄책감이 들었어요.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은 느낌? 그런데 요즘에 나온 신생 잡지들은 흥미로운 부분만 골라 읽는 게 당연하게 느껴져요.

 

송민우 : 《악스트》에 수록된 소설가들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들 각자의 애환을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들의 일상적인 요소들과 밀착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 예전에 어떤 소설가의 인터뷰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다들 각자 서 있는 위치와 입장에 대해 말하게 되곤 하잖아요. 소설가는 소설가로서의 고충을, 평론가는 평론가로서의 고충을 얘기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여전히 소설가와 평론가는 마치 서로 적대적 관계여야 한다는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어요. 꼭 서로 적대시해야 되나? 그런 의문이 일차적으로 들었고요. 저로선 그런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한 것이라 느껴지진 않아요. 담론에 관한 비판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대목을 읽었을 땐, 아, 한국에서 문학평론가는 직업인으로서는 별로 존중을 못 받나 보네,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저는 비아냥대듯 툭툭 건드리고 마는 방식은 선호하지 않아요. 그건 비판이 아니라 시비에 가깝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 생각해요. 달리 생각하면 한 소설가가 과감하게 자기만의 생각을 밝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더 많은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차유진 : 정말 덕후를 위한 책인 것 같아요. 내 작가가 무슨 말을 하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이런 느낌. (웃음)

 

강소희 : 확실히 그들만의 놀이터라는 느낌이 강하긴 한 것 같아요. 소설가로서 느끼는 소외감만큼 강한 자부심이 드러나기도 하고, 몇몇 문제가 되었던 인터뷰에서처럼 《악스트》의 시선이 편협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문학인들 사이의 소통이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것도 좋지만, 때로는 거칠고 솔직한 말들이 오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날선 언어들이 부딪힐 때 드러나는 것이 있기도 하고, 그것을 계기로 새로운 담론이 형성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구경꾼의 입장에서야 가장 재밌는 놀이는 싸움이죠. (웃음)

 

송민우 :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담론이 형성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만, 너무 흥미 위주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어요.

 

김주선 : 이제 《웹진 비유》로 넘어가겠습니다. 《웹진 비유》는 사람들에게 조금 덜 알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들어가 보면 정말 예뻐요. 그리고 여타 잡지들에서 하고 있는 작업과는 정말 다른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잡지들이 만든 새로운 꼭지는 상상할 수 있었던 범주에 있었는데 《웹진 비유》의 꼭지는 상상도 못 한 모습이더라고요. 신선하다는 생각을 가장 크게 했어요. 어떠셨나요?

 

송민우 : 그 말씀에 동의해요.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흥미로운 코너가 많아요. 세 가지 정도 꼽고 싶은데요. 첫째로는 '선물하는 시' 코너예요. 말 그대로 시를 선물하는 스케치가 담겨 있는데, 시인들이 촬영한 영상도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캡처' 코너인데요. 문학평론가들이 여성주의 관점으로 한국 문학의 한 장면을 꼽아 쓴 짧은 평론들이 게재되어 있어요. 뛰어난 평론가들의 해석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제게는 유익했고요. 공부가 돼요. 세 번째는 <자기만의 방> 코너인데, 10만 원으로 작업실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실험하는 프로젝트라고 할까요. 더욱이 서울 기준이니까 애초에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을 테지만요. 작가들에 대한 사회적 입지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대목이 있고, 그리고 이건 정말 생활의 문제니까, 저와 밀착된 문제니까 더 관심 있게 볼 수밖에 없었어요. <자기만의 방>은 다른 잡지에선 거의 본 적 없는 시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웹진 비유》만의 프로필 구성도 새롭더라고요. 대부분의 문예지에서는 나이, 학력, 등단 지면과 시기를 관습적으로 쓰곤 하는데, 여긴 각자만의 다짐 같은 것이 적혀 있더라고요. 덕분에 학력이나 등단 지면과 같은 정보로 인해 생기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요. 그 점이 되게 좋더라고요.

 

차유진 : 《웹진 비유》에 들어가면 대안공간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신선해요. 어디를 들어가도 만족스럽게 보고 나오고요. 웹진이다 보니 이동시간에 짬짬이 보기도 좋아요. 한데 소설이 좀 아쉬워요. 소설이 짧은 편이잖아요. 길이로서 아쉬운 작품이 많았어요. 웹진이다 보니 청탁 지면에 한계를 두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 부분이 자유로운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이에요.

 

강소희 : 《웹진 비유》에 들어가 본 첫 느낌은 '아기자기의 끝판왕이구나'였어요. 웹 디자인의 전체적인 느낌도 그렇고, 웹진을 구성하고 있는 작고 다양한 시도들도 그렇고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가볍지만은 않구나, 라는 인상이 강해졌던 것 같아요. 《웹진 비유》는 크게 '하다' '쓰다' '읽다'로 되어 있잖아요. 그중에서 '하다' 코너가 정말 좋았어요. 작은 놀이에 그친 시도들이 없진 않았지만, 어떤 것들은 정말 참신해서 새로운 사유의 지점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적이기도 했고요. 반면에 '쓰다'와 '읽다'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아직은 힘도 약하고 방향도 불분명해 보여요.

 

김영삼 : 《문장 웹진》과 비교해 보자면. (웃음)

 

차유진 : 본진을 쳐요? (웃음)

 

(일동 웃음)

 

김영삼 : 기존의 문예지와 다른 출발을 《악스트》가 먼저 했다면 《웹진 비유》는 그 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웹진 비유》의 구성을 보면 첫째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그 시도가 말 그대로 다양함을 위해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얘들은 소품인 거죠. 웹진으로의 특징은 영상이나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좀 더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강소희 : 김영삼 샘이 이야기하신 건 '하다' 같은데, 이 프로젝트는 시민들에게 공모를 받아 선정한 것을 진행하는 형식이더라고요. 만약 《웹진 비유》를 기획하는 사람들만이 '하다' 프로젝트를 만들어 간다면 그 새로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의문이지만, 지금처럼 시민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면 계속 추진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개인적으로 '하다' 코너에서 가장 좋았던 기획은 '읽는 퀴어:우리는 어디서든'이었어요. 춘천, 청주, 목포, 창원, 제주를 경유하며 그 지역의 사람들과 같이 책을 읽는 프로젝트인데, 함께 읽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퀴어예요. 비수도권의 퀴어들과 함께 퀴어를 담은 책을 읽는 공동체를 꿈꾸었던 거죠. 참 무모한 시도이기도 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의 폐쇄성은 차치하고라도 그곳에 가는 일 자체가 자신이 퀴어임을 밝히는 행위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감동적인 것은 그들이 남긴 실패와 반성의 기록이에요. 퀴어들에게 안전한 공동체의 경험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여행자의 오만이었다는 후기가 있는데, 저에게는 이 글이 큰 울림을 주었어요. 이들의 실패한 여정과 반성의 기록이야말로 나와 우리, 문학과 삶을 어떻게든 엮어 보려는 시도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하고요.

 

송민우 : 저는 <자기만의 방>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작가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을 구했던 경험을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어떤 분은 부동산에 가보고, 또 어떤 분은 호텔에 가보고. 그런데 조금 슬펐던 건, 호텔에 가서 방을 구해 보려고 했던 작가 분 에피소드였어요. 그분이 자신이 글을 쓰는 작가인데 호텔에서 집필을 할 수 있느냐고 문의를 했어요. 그랬더니 호텔 직원이 처음엔 호의적으로 대해요. 그러면서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냐고 물어요. 아마 그 작가 분은 동화를 쓰는 분 같았는데, 자신이 동화 작가라고 밝히니까 호텔 직원의 호의적인 모습이 금세 사라져 버린 것 있죠. 한국에서 문학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장면이었어요. 어쨌든 작가들의 분투기는 이론의 차원에서 논한 걸 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건 본 적이 없었어요.

 

차유진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품 하나하나보다 이들의 도전이 더 새롭게 와 닿는 것 같네요.

 

김주선 : 신생 잡지 넷을 살펴봤는데요. 잡지가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기존의 문예지보다 좀 더 라이트하고, 독자의 접근이 좀 더 쉽고, 글도 대체적으로 짧다는 건데요. 자꾸 느껴지는 것 중의 하나가 깊이 있는 사유로써 치밀하게 들어가는 것보다는, 감각과 모티프, 체험의 차원에서 잡지의 정체성이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동시에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쓺》은 완전히 비평적 깊이나 실험만을 위한 잡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이제 두 극단적 성격의 잡지가 등장했구나 싶은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자가 받는 영향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김영삼 : 저도 이런 흐름 뒤에 물음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잡지가 열림, 접근성이라고 하는 강력한 힘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데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웹적인 성격에 문학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 휘발성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요.

 

강소희 : 대안잡지, 독립잡지가 나오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신경숙 사건과 문단권력에 대한 문제였잖아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잡지들은 그에 대한 자성과 대안의 몇 가지 사례들이라고 생각해요. 문학과 제도의 문제를 반성한다는 것은 문학 혹은 문학성 자체를 다시 묻고 정립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저는 이 과정이 긴 시간에 걸쳐 다기한 양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을 테고, 따라서 휘발성을 동반한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글 쓰는 자들의 치열함과 깊이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을 테니까 그것을 담아내는 매체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고요. 어떤 밸런스를 잡아 가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창작과비평》과 《문학3》의 관계처럼요.

 

차유진 : 저는 문학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문학성과 문학적인 것에 경계를 지어 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 놀랐어요. 《웹진 비유》의 시도들은 문학을 바라보는 제 앵글을 더 자유롭게 흔들었어요.

 

 

김주선 : 이제 잡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좌담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소회 한 마디씩 하는 걸로 마무리 짓죠.

 

강소희 : 구체적인 문학 작품을 가지고 사람들과 모여서 이야기하는 게 저에게는 참 오랜만이었어요. 문학 공부를 하면서도 철학책을 읽는 스터디는 했지만, 그동안 작품을 읽는 모임은 못 했거든요. 그래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품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서 참 좋았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게 참 아쉽고요. (웃음)

 

차유진 : 소설 쓰는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하는 것과는 정말 달랐어요. 거기선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그렇구나 하고 지나간다면 여기선 기록이 되니까 좀 두렵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 모임에 와서 제가 가져 보지 못한 눈으로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며 즐거웠던 게 더 커요. 작품에 관한 제 생각이 창작자에게 닿을 가능성이 있는 것도 재밌었고요. 즐거웠습니다.

 

송민우 :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걸 느껴요. 1년간 함께하는 동안 제 자신의 한계에 대해 여러 번 실감했어요. 덕분에 성장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고요. 또, 말들이 공적 지면에 기록되는 일이다 보니 신중함에 대해 실질적으로 생각하고 배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는데요. 어떤 분이 제게 자신의 작품을 좌담에서 다뤄 주어 고맙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창작자에게 피드백은 정말 소중한 일임을 깨달았어요.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몸으로 조금이나마 깨달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학을 한다는 게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글을 써왔던 것인지.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돼요. 오래도록 품고 가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김영삼 :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공간과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김주선 : 저는 처음에 좌담할 사람 구했을 때, 지금은 여기 없는 이다희 시인과 이서영 학우 그리고 송민우 평론가, 김영삼 선생님이 흔쾌히 참여해 줘서 고마웠어요. 우리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셨는데 그 시간도 굉장히 즐거웠고요. 나중에 이다희 시인과 이서영 학우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졌을 때 차유진 선생님과 강소희 선생님께 좌담에 참석해 주십사 부탁드렸는데 그때도 흔쾌히 좋다고 해주셔서 그 또한 정말 감사했어요.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지만 3개월만 같이하게 돼서 아쉬웠고요. 음…… 제가 처음에 좌담 시작할 때 속으로 결심한 게, 최대한 말을 줄이고 말 그대로 독자의 말을 듣자, 사회자의 역할에만 충실하자고 생각했는데 그 결심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마지막으로 광주에 있는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준 《문장 웹진》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참여자 소개 / 김주선

전남 화순 출생. 2015년 문학과사회 평론부문 등단. 조선대학교 강사

 

참여자 소개 / 김영삼

전남대학교 국문과 강사

 

참여자 소개 / 송민우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등단.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재학

 

참여자 소개 / 강소희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대와 동신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참여자 소개 / 차유진

광주대 문창과 졸업

 

 

   《문장웹진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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