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소년의 올바름 외 1편 - 조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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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유도소년의 올바름

 

 

조인호

 

 

 

내가 유도소년이었던 시절

 

나는 흰 띠 돼지 녀석에게 깔린 채
벌레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빅맥버거 빵 사이에 낀
싸구려 패티 한 장처럼
깔린 채

 

나는 약 30억 년 전
암모나이트처럼

 

생각이 한없이 굳어져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난 맛없다 날 먹지 마! 난 맛없다 날 먹지 마!

 

돼지 녀석은 착했다
유도 관장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고,
특히 이가 하얘서 웃을 땐
아 ······ 인정하기 싫지만 멋졌다

 

나는 그 녀석에게 깔린 채
그 녀석의 살 냄새를 맡으며 그 녀석의 땀에 젖은 유도복에서
아직도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
어쩐지 꽃밭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녀석과 내가
도장 바닥을 다이슨 진공청소기처럼
이리저리 쓸고 다닐 때

 

세상의 모든 유도소년들이 녀석과 날 보며

 

아, 씨발 저 새끼들 봐라,
존나 웃기네

 

처웃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 부둥켜 얽힌 채로
녀석은
날, 지그시 눌러 주며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지,

 

야이, 씨발아, 내가 우습지? 내가?

 

나는 그 녀석에게 깔린 채
숨을 헐떡이며

 

아니, 네 웃는 모습은 약간 설레고
넌 특히 이가 하얗고 네 엄마가 빨아 준 유도복에선
봐라, 이렇게 좋은 꽃 냄새가 난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그 힘 속에서
내 얼굴은 자꾸만 붉은 노을처럼 부끄러워지고
이윽고 내려앉는 저녁의 어스름처럼
녀석의 힘은 그렇게

 

내 세상에 눌러앉았다

 

*
독자여, 당신도 똑같다

 

당신이 내 병신 같은 시를 읽을 때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은 단 하나다

 

야이, 씨발아, 내가 우습지? 내가?

 

어느 날 길을 걷는데 그림자가 내게 말했다

 

이봐 친구,
할 수만 있다면
가위로 네 녀석의 두 다리를 잘라내고 싶다
경고하는데
내게서 충분히 떨어지는 게 좋을 거야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법원에 내고 싶은 심정이니까

 

그럴 땐 그림자라도 업어치기 한판으로
땅바닥에 눕혀 주고 싶지만

 

어차피 그림자는 땅바닥에 붙어 있다

 

내 인생이 옥스퍼드 백과사전쯤 되는 두께로
기록된다면 좋을 테지만,
옥스퍼드 사전 맨 마지막 장 맨 마지막 줄에 깔린
그 낱말을,
누가 신경이나 쓸까

 

난 내 유도복이 빨랫줄에 걸린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좋았다

 

봐라, 흰 띠로 묶은 유도복을 어깨에 걸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걷는
유도소년이었던 나를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돼지 녀석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유도관에 들어선다

 

우리 아들이 힘이 참 약해요 겁도 참 많죠
유도소년 중 가장 마른 애로
하나 골라 주세요

 

그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돼지 녀석에게 깔린 채 누르기 한판으로
질 때까지

 

세상의 모든 올바름을 배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블 위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지만

 

봐라, 성경책을 들추면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그러므로 나 역시 그것에 맹세한다

 

야이, 씨발아, 내가 우습지? 내가?

 

 

 

 

 

 

 

 

 

 

 

 

 

시계태엽 오렌지

 

 

 

 

    구급차 안에서 나는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약 일 분간 멈췄기 때문이었다. 응급실에서 집중치료실로 집중치료실에서 수술실로 옮겨질 때까지 나는 그녀의 심장이

 

    캘리포니아산
    오렌지 한 알, 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서부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가 문을 열었던 그해 그녀는 세상에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는 그녀를 작은 바구니에 담아 고아원 앞에 버렸다는 것이다.

 

    그해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오렌지처럼 따사로웠고,

 

    그녀는 오렌지처럼 붉은 얼굴로
    바구니에 담겨 웃고 있었다.

 

    모든 위대한 사람은 꼭 바구니에 담겨 버려진다는 걸 교회에 다녀 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테지만,

 

    그녀는 평생 기적을 일으키거나 그러지 못했다.

 

    다만 그녀에게 기적이 있다면 그녀가 아주 아주 어렸을 때 양부모가 있는 미국의 디즈니랜드에 갔었다는 사실이었다.

 

    1981년까지 그녀는 고아원에서 지냈다. 얼굴이 까만 남자와 결혼했고 그해 나를 낳았다. 다행히 그녀는 나를 바구니에 담아 그녀가 자랐던 고아원 앞에 버려두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를 품에 안고
    매일 같은 저녁 시간에 머리를 감겨 주던 기억을
    지금까지 기억한다.

 

    2014년 그녀의 심장이 한 번 멈추었을 때 중환자실에서 그녀는 내게 캘리포니아에 산다던 양부모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나의 어머니를,

 

    미국에 초대했다던 미국인 양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녀가 약 기운에 빠져 꾼 꿈이라고 생각했다.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그녀가 아주 아주 어렸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던 양부모의 초대를 받아 미국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 그림책 속에나 나오는 하얀 이층집에서 여름 한철을 보내고 다시 가난한 고아원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너무나 기적 같아서
믿을 수 없었다.

 

    한 번도 미국에 가본 적 없는 내가 캘리포니아 월마트에 가서 여기요, 오렌지 하나 주세요, 말하면 미국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여기요, 오륀지 하나 주세요, 말해야 한다.

 

    오렌지를 오렌지라고 부르면 오렌지가 아닌 것처럼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그녀의 세계가
    모두 가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 채

 

    12시간 넘게 수술 중 불 켜진 보호자 대기실에서 내가 떠올린

 

    그녀의 오렌지는, 그랬다.

 

    나는 눈을 감고 골동품 상점으로 들어선다. 그 상점은 미국에 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도시 어디쯤일 것이다. 골동품 상점 안에는 작은 시계태엽 오렌지 하나가 놓여 있고, 미국인 양부는 카운터에 앉아 있다. 딸랑, 하며 종이 울리고 검은 머리에 눈이 찢어진 동양인 소녀 하나가 문을 열고 맨발로 뛰어 들어온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손깍지를 끼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다.

 

    수술실 앞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노란 선이 있다.

 

    *
    그 너머
    그녀의 디즈니랜드가 있다.

 

    그곳은
    그녀 외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작가소개 / 조인호

1981년 충남 논산 출생. 2006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방독면》이 있음.

 

   《문장웹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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