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사람 - 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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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노래하는 사람

 

 

서유미

 

 

 

    지하철이 A역으로 들어서는데도 은주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어깨에 내려앉은 졸음은 끈적하고 에어컨의 바람은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원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앉아 있고 싶다고 생각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깼을 때 지하철은 이미 A역을 지나 버렸다. 내려야 할 곳에서 멀어지자 은주의 잠은 달아났다. 내선 순환선이 다시 A역에 도착하려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릴 것이다. 은주는 반대 방향의 지하철로 갈아타는 대신 이어폰의 볼륨을 높인 다음 휴대용 향수를 꺼내 뿌렸다. 머스크와 삼나무 향이 얼굴을 감쌌다.
    3일 전만 해도 퇴근길에 포일에 싸인 김밥을 먹으며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입안의 김밥을 꼭꼭 씹었고 늦을까 봐 시간을 수시로 확인했다. 카페 근처의 쓰레기통 앞에서 생수로 입안을 헹구고 포일을 동그랗게 구겨 버릴 때마다 김밥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했다. 퇴근한 뒤 지하철로 이동하는 동안에만 쉬고 다시 일하러 가는 삶에 대해 특별한 저항감은 없었다. 언제부터 투잡을 했는지 떠올리는 것보다 투잡을 안 하던 때를 떠올리는 편이 더 빨랐다. 낮에 쇼핑몰의 상담원이나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퇴근 뒤 카페나 고깃집,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게 십 년째인지 십일 년째인지 모르겠다.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게 돼서 3일째 저녁 일을 쉬었더니 휴가를 받은 기분이다. 아무도 자신을 부르지 않고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이 느슨해졌다.
    1시간 30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외곽을 돌 거라고 생각하자 여행자의 심정이 되었다. 앞과 옆이 다 오픈되어 있고 옆 사람과 허벅지가 닿는데도 느슨한 기분은 훼손되지 않았다. 소변이 마려웠지만 참을 만했고 방광이 꽉 찬 기분은 금세 익숙해졌다. 손 안에서 민 팀장의 전화가 울렸다. 점심때 전화를 안 받았더니 퇴근길에 또 전화했다. 오후에 사무실에서 마주쳤을 때 그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서로 목례만 하고 지나쳤다. 은주는 손 안의 진동을 느끼면서도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쇼핑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상품 정렬 방식을 낮은 가격순으로 해서 살펴봤다. 아름다운 옷들이 아래쪽에 묵직하게 깔렸다. 여름은 빠른 속도로 깊어졌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좀 더 얇고 시원한 옷들이 필요했다.
    집 앞 포장마차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찐 옥수수와 중국식 호떡, 계란빵을 하나씩 샀다. 3일 동안 매일 간식거리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엄마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봉지 안의 것을 하나씩 꺼내 먹는 걸 보면 손과 발끝으로 하루 동안 쌓인 피로와 독소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엄마는 관절염 때문에 하루 종일 혼자 텔레비전을 보며 지냈다. 출근 전에 도시락을 싸면서 은주는 밥통의 밥을 확인하고 물통을 채워 놓고 서랍 위에 간식거리를 올려 두었다. 견과류 한 봉과 우유 한 팩, 계피 사탕 몇 알. 쇼핑몰이나 카페에서 일할 때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혼자 지내는 하루에 대해 헤아리다 보면 뒤에서 동생도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그 애는 혼자 나오지 않고 제 딸과 아내의 손을 붙잡고 등장했다. 그들이 걸어 나오면 머릿속이 좀 더 복잡해졌다. 신경이 쓰이는데도 은주는 동생과 조카를 보러 가지 않았다. 그들이 사는 원룸의 문을 여는 상상만으로도 덥고 끈끈해졌다. 일을 안 하니까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이번 주까지만 쉬고 저녁 일을 알아보자.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불법주차 해놓은 택배 차 때문에 사람들이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걸었다.
    현관문을 열자 세 사람이 손에 수박을 든 채 은주를 쳐다봤다. 머릿속에서만 같이 있던 가족이 눈앞에 모여 있는 장면은 천천히 입체감을 확보하며 현실이 되었다. 거실의 후끈한 열기 속에서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수박 냄새와 사람의 땀 냄새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이야, 누나, 와 웬일이야? 가 중간 지점에서 어색하게 얽혔다. 엄마는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했고 조카 윤은 은주가 낯선지 제 아빠 등 뒤로 숨었다.
    은주가 오래 참은 소변을 누고 나오자 엄마와 은석이 몸을 조금씩 움직여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왼쪽에 앉은 엄마의 몸에서는 오래된 파스 냄새가, 택배회사 로고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은석에게서는 겹겹이 말라붙은 땀 냄새가 났다. 지하철 안이었다면 다른 자리로 옮겼겠지만 좁은 거실에서는 갈 데가 없었다.
    은주는 간식거리가 든 종이봉투를 내려놓고 엄마가 건네는 수박을 받아들었다. 한 입 베어 물자 미지근하고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은석은 까맣게 탄 얼굴에 머리가 덥수룩했고 오랜만에 보는 윤은 동그랗던 볼의 볼륨이 줄어들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이 집에 왔던 게 한 달 전인지 두 달 만인지 가물거렸다. 수희가 이삼 일에 한 번씩 보내던 사진과 영상 속의 윤은 긴팔 차림이었다. 그 속에서 윤은 고통 같은 건 모른다는 듯 천진하게 웃었고 수희는 매번 언니 우리 윤이 너무 예쁘죠?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은주는 수박을 베어문 뒤 씨를 뱉어냈다. 전화를 받은 은석이 골목의 차를 빼러 나갔다. 제 아빠가 안 보이자 윤은 계란빵을 베어 문 채로 일어섰다. 기저귀를 하지 않은 엉덩이가 납작했다. 지난 명절에는 쉬를 못 가린다고 걱정했는데 엄마가 없어도 아이는 자라났다.
    은주는 수박 껍질을 치우고 끈끈한 밥상과 바닥을 물걸레로 닦았다. 냉장고 옆에 놓인 커다란 검은색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하고 들어온 은석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짧은 동선 안에서 그 애는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렸다.
    – 다리는 왜 그래?
    – 별일 아니야. 누나······ 우리 당분간만 여기서 지낼게.
    은석이 뭐라 더 말하려는데 윤이 주먹 쥔 손을 흔들며 아빠, 나 쉬, 하고 외쳤다. 은주가 쳐다보자 참기 힘든지 다리를 꼬았다. 은석은 한숨을 쉰 뒤 화장실에 데려갔다. 잠들기 전까지 윤은 2, 3분 간격으로 계속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아이가 팬티를 붙잡고 보챌 때마다 다들 굳은 얼굴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애가 저래서 차에 태우고 다닐 수가 없어, 괜찮아질 때까지만 신세 좀 질게. 화장실에서 나온 은석이 검은색 가방에서 윤의 팬티를 꺼내 갈아 입혔다. 땀이 밴 얼굴에 많은 표정이 내려앉았다.
    은주는 방 한쪽에 윤이 누울 자리를 만들고 검은색 가방을 들여놓았다. 은석은 잠든 윤의 이마를 두어 번 쓰다듬은 뒤 신발을 챙겨 신었다. 11시까지 배송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 누나.
    은석이 문을 열다 말고 은주를 쳐다봤다. 은주는 그 눈동자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성인이 된 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신세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같이 잡히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말이 분주히 골인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윷놀이처럼 살아왔다. 의지하거나 도와주지 않고 각자의 길을 알아서 가는 것이 남매의 우애이자 의리였다.
    – 알았으니까 가서 일해.
    은주는 손짓으로 동생을 내보냈다.
    – 자다가 깨면 기저귀 채워서 재워.
    문이 닫히자 엄마는 무릎을 주무르던 손으로 코를 풀며 훌쩍거렸다.
    수희와 갈라선 뒤로 은석은 윤을 늦게까지 맡아 주는 어린이집으로 옮겼고 저녁에 아이를 찾으면 택배 차에 태우고 다닌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윤을 데려오자고 했고 은주는 속이 뜨거워졌지만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다만 택배 차에 실려 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은주는 잠든 윤의 옆에 엎드려 스마트폰으로 sns에 접속했다. 월세가 더 드는데도 방 두 개를 고집하는 이유는 일하지 않는 시간에 혼자 있고 싶어서다. 마흔 살이 넘으니 포기해야할 것에 대해서는 빨리 마음을 접고 사소한 것에만 욕심을 부리게 되었다. 그녀는 돈을 좀 더 절약하는 대신 퇴근 뒤의 두어 시간을 선택했다. A의 페이지에 접속해서 새로 올라온 고양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았다. 사료를 먹고 그루밍을 하고 박스에 들어갔다 나오는 고양이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았다. B가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하고 공놀이하는 영상도 여러 번 보았다.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사료 한 번 준 적 없지만 앉아서 졸고 목욕하고 주인을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비로소 하루가 마무리되는 것 같았고 내일도 살아남아 자기 전에 저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은주는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는 윤의 야윈 뺨을 쳐다보았다. 가족과 자신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타인의 일상과 관계, 부대낌을 바라보는 쪽이 더 편했다.

 

    상품 관련 문의 게시판을 연 은주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답글을 작성했다. 고객들은 화면 속의 옷이 자신에게 와서 현실이 되는 순간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 했고 옷의 소재가 어떤지, 컬러가 화면과 같은지, 웜톤의 피부에 어울리는지, 77사이즈에게 맞을지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질문했다. 은주는 질문 하나하나를 존중하되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일관된 거리감을 유지하며 게시글을 처리했다. 상담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의문 해소보다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다. 게시글에 답을 달고 상담 전화에 응대하는 동안 은주는 고객이나 주문 폭주, 불만과 만족의 실체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실재하는 건 알지만 실감나지 않았다. 그래서 맞춤법이 엉망인 문장으로 분노를 표출한 글과 전화로 화내고 짜증내고 분풀이하는 고객에 깊은 충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상담 중에 계속 깜박이는 대기 전화의 빨간 불과 전화를 끊고 나면 다시 쌓여 있는 게시글 때문에 압박을 느꼈다. 빨리 처리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고 싶은 기분을 무시한 채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다른 상담원들도 고객의 전화를 중간에 끊지 못해서 자주 오줌을 참았다. 방광염이 재발할 때마다 의사는 은주에게 소변을 참지 말라고 조언했다.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오줌을 참을 일은 많았다. 쇼핑몰에서 퇴근한 뒤 카페로 이동하는 길에도 은주는 화장실 대신 포일에 싼 김밥을 선택했다. 카페에 도착한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하면 손님이 왔고 추가로 주문을 했고 테이블을 치운 뒤 설거지를 해야 했다.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물을 덜 마셨다.
    오줌을 참으며 일해도 카페와 쇼핑몰은 쾌적한 노동 공간이다. 폭염과 폭우, 한파에 맨몸으로 맞서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자리가 주는 안락함과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내근 업무에 안도할 때마다 은석이 마음에 걸렸다. 그 애가 택배 일을 시작한 뒤로 택배사 로고가 박힌 조끼를 입고 차에서 상자를 들고 내리는 남자들이 모두 동생같이 보였다. 그들은 인상이 비슷하고 땀 냄새를 풍기고 뭔가에 쫓기듯 움직였다. 그에 비하면 모니터를 통해 보는 쇼핑몰은 매끄럽고 평화로웠다. 카테고리 안의 옷과 슈즈는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컷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고르고 친절하고 공손한 설명을 곁들였다. 게시판 댓글 작업을 마치고 나자 어젯밤에 도착한 두 사람이 머릿속에서 new 표시를 깜박거렸다. 살아서 움직이는 은석과 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민 팀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은주는 하나 남은 무말랭이를 포기하고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 그는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어디서 볼까. 은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요금 넘어가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꿀꺽 삼켰다. 민 팀장은 점심을 먹고 공중전화 박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을 것이다. 2년 동안 약속을 잡거나 미루거나 취소할 때 민 팀장은 늘 회사 근처의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아내가 통화내역과 메시지를 다 확인한다고 했다. 아내 얘기를 듣다 보면 민 팀장이 불쌍해지고 민 팀장을 보고 있으면 얼굴도 모르는 그의 아내에게 연민이 생겼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민 팀장이 전화하면 은주는 감기 몸살을 핑계로 저녁 아르바이트를 빠졌다. 오랜만에 만나면 두 사람은 인사 대신 서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채 그립고 익숙했던 냄새를 맡았다. 은주는 민 팀장의 옷과 몸에 밴 섬유유연제 향을, 민 팀장은 은주가 몇 년째 쓰는 향수의 잔향을 서로의 체취라고 믿으며 얼굴을 부볐다.
    처음 데이트했던 곳은 과천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전시는 보지 않고 밖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두 사람 다 전날 새벽까지 회식 자리에 남았던 터라 늦은 오후에도 미지근한 숙취에 시달렸다. 민 팀장이 여기라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을 거라고 했고 은주는 쉬는 날 남들처럼 미술관에서 데이트한다는 사실에 들떴다. 같이 일하는 5년 동안 민 팀장과 은주는 하루에 몇 번씩 사무실에서 마주쳤지만 목례 외에는 어떤 것도 나누지 않았다. 전날 회식에서 술잔을 비운 뒤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웃지 않았다면 공휴일에 미술관에서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은주는 잔디밭에 우두커니 서 있는 쇠로 만든 거인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민 팀장이 손을 잡으며 삼십 분만 더 있다 가자고 했을 때 거인의 입이 벌어지며 허밍 소리가 흘러나왔다. 담백하면서 애잔한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로 흩어졌다. 두 소절쯤 되는 단순하고 평이한 멜로디가 대화 내내 반복되었다. <노래하는 사람>. 은주는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은 조각의 이름을 보았다. 작품명 옆에 노래 시간이 새겨져 있었다. 20년이 넘도록 매일 정해진 시간에 노래를 불렀구나. 누가 듣든지 듣지 않든지 흩어질 노래를 불렀다는 게 서글프기도 하고 위안이 되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 노래하는 사람을 보려고 온 것 같았다. 은색의 쇠로 만든 조각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어떤 것보다 가장 노래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두 달 전에 다시 민 팀장과 미술관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을 때 은주는 5시에 끝나는 노래하는 사람의 허밍 소리를 듣기 위해 오후 반차를 냈다. 민 팀장은 외근 핑계를 대고 빠져나왔다. 노래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2년 만에 보는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입을 벌릴 때마다 오래된 기계의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허밍 소리보다 더 컸다. 벤치의 옆자리에 앉은 민 팀장의 얼굴을 보는데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만나 온 거구나, 싶었다. 노래하는 사람의 부드럽던 음성은 둔탁해지고 흔들리고 반음 정도 처졌다. 은주의 마음속에도 잡음이 끼어들었다. 어차피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하거나 줄 수 있는 게 그 정도일지도 모르지. 나란히 앉아 있는 동안 흩어지고 지워질 말이 오갔다.
    어디서 볼까. 다시 묻는 민 팀장에게 은주는 조카가 와 있다고 했다. 조카가 아파서 저녁에 봐주고 있어. 양치를 못 한 입안의 텁텁함을 참으며 말했다. 화장실에 자주 가는 윤의 상태를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민 팀장은 은주의 반응에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은주 씨, 하고 불렀다. 그 끝에도 한숨이 매달려 있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쉬는 동안 가끔 민 팀장 생각이 났지만 전화를 기다린 적은 없었다. 순환선을 타고 돌거나 미술관의 벤치에 혼자 앉아 있을 때도 문득 떠올랐지만 그리운 건 아니었다. 예전에는 공중전화를 붙잡고 서 있는 민 팀장이 안타깝고 가느다랗게 이어진 끈이 끊어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리움은 이 공중전화 속에만 존재하고 민 팀장과 자기 안의 것만 진짜 같았다. 그런데 미술관에서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내밀함은 은주가 연락처만 바꾸면 금방 끊어질 정도로 빈약하다는 걸, 그들 사이에는 결국 목례만 남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 은주 씨. 오늘 만나. 오랜만에 출장 핑계 댔단 말이야.
    통화를 하는 동안 그녀는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한다거나 진심으로, 라고 할 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불순물이 섞일 수 있는지 헤아렸다. 이 뜨겁지도 절절하지도 않은 관계의 끝에는 커피를 내리고 난 것처럼 갈색의 가루만 남게 되리라는 것이 씁쓸했다.
    – 그만 만나는 게 좋겠어.
    그만, 이라고 말하고 나자 눈물이 부풀어 올랐지만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은주는 몸 안의 물기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동여맬 줄 알았고 참는 일에 단련이 돼 있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민 팀장이 다시 은주 씨, 하고 불렀고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무언가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은주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에 가서 양치를 한 뒤 빈 도시락통을 물로 씻었다. 냄새가 새나가지 않게 지퍼백에 넣고 꼼꼼히 잠갔다.

 

    동생은 6시까지 윤을 데리러 가면 된다고 했다. 은주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어린이집 근처의 키즈카페를 검색했다. 늦은 시간이라 교실에 있는 아이는 셋뿐이고 윤만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고모가 데리러 갈 거라고 말해 두었는데도 은주를 본 윤은 놀란 것 같았다. 선생님이 가방을 챙겨 주며 기저귀는 오후 간식 먹인 다음에 채웠어요, 쉬 때문에 놀이나 활동에 집중하질 못하네요, 하며 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태가 나아지질 않아서 걱정이라는 말에 은주는 고개를 여러 번 숙였다. 선생님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죄송했다.
    – 고모랑 키즈카페 갈까.
    고개를 끄덕이는 윤의 표정이 잠깐 밝아졌다. 걸어가는 동안 아이는 은주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 의지할 사람은 고모뿐이라는 걸 받아들인 듯했다. 낯선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거나 도로에서 경적소리가 나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키즈카페에 도착해 입장료를 계산하는 동안 카페 안에서는 동요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애들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윤은 키즈카페 안을 둘러보면서도 조심스레 움직였다. 은주는 작은 편백나무 조각들이 깔려 있는 곳으로 윤을 데려갔다. 아이들은 나무 조각 위에서 뒹굴고 그걸 집어 벽에 던지고 장난감 트럭으로 싣고 옮겼다. 윤은 장난감 모종삽으로 나무 조각들을 푸다가 금세 흥미를 잃었다. 다른 데 가서 놀까? 은주가 묻자 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큰 소리로 웃고 마음껏 소리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윤은 작게 구겨졌다. 갈 때가 지난 기저귀만이 불룩했다.
    젊은 엄마들은 테이블에 앉아 일행과 얘기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은주의 가방 안에는 기저귀나 물티슈, 물병처럼 윤에게 필요한 물건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윤의 어린이집 가방을 뒤지니 지퍼백 안에 아침에 입고 간 팬티가 들어 있었다. 기저귀를 벗기고 팬티로 갈아입히자 윤은 잠시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직사각형의 트램펄린 위에서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고 제자리에서 조심스레 뛰었다. 키즈카페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이의 이목구비와 표정과 앉는 다리 모양에서 은석과 수희의 모습이 두루 보였다. 이것이 수희고 저것이 은석이라고 딱 짚어 말하기 어렵지만 수희와 은석이 고루 섞인, 두 사람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윤 속에 녹아 있었다.
    저보다 큰 애들이 와서 소리를 지르며 뛰자 윤은 얼른 밖으로 나왔다. 은주의 팔을 잡더니 발을 구르며 고모 쉬, 했다. 한 번 쉬를 하고 난 뒤 2, 3분 간격으로 은주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방금 갔다 왔잖아, 라고 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다리를 꼬았다.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히면 몇 방울의 소변이 흘러나왔다. 그 뒤로 아슬아슬한 소강상태가 몇 분간 이어졌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긴장 상태로 화장실 앞에서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윤이 팔을 잡고 쉬, 라고 할 때마다 머리 위에서 뜨거운 물이 천천히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지난주 이 시간에 은주는 미술관 벤치에 앉아 있었다. 퇴근한 뒤 버릇처럼 포일에 싸인 김밥을 먹으며 걷다가 문득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날은 환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워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미술관이 폐관한 뒤라 여름밤의 조각상 주변은 한적했다. 데이트하는 커플들이 몇 눈에 띄었지만 곧 풍경 속에 스며들었다.
    은주는 노래하는 사람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은색의 조각상은 해가 기우는 하늘 어딘가를 보며 서 있었다. 노래는 끝났고 쇠로 만들어진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옆의 테마파크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이 내는 함성이 대기 속에 퍼졌다. 은주는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혼자였지만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미술관 뜰의 가로등과 놀이공원의 조명이 모두 꺼진 뒤에도 노래하지 않는 노래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서 있겠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있고 싶었던가, 생각했다.
    키즈카페 밖으로 나오자 저녁인데도 공기가 식지 않아 후덥지근했다. 윤과 잡은 손에 땀이 배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버스 안은 한산했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윤을 데리고 탄 은주를 보고도 난처해할 뿐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시선을 스마트폰에 고정했다. 쇼핑몰에서 카페로 일하러 가거나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운이 좋을 때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가는 일이 일상이고 선 채로 졸다가 무릎이 푹푹 꺾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깨에 윤의 가방과 자신의 가방을 멘 채 한 손으로 윤을 잡고 남은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자 힘들고 고단한 것을 넘어 앉아서 딴청부리는 사람들에 대한 적의가 솟구쳤다. 활활 타오르는 적의를 누르려 애쓰자 뱃속이 묵직해졌다. 윤을 챙기고 신경 쓰느라 긴 시간 동안 소변을 보지 못했다. 은주는 다리에 힘을 준 채 버텼다.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는 동안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인 뒤 목욕을 시키자 윤은 손가락을 빨며 뒤척거렸다. 잠이 드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서 쉬를 하겠다고 했다. 은주는 쉬라는 말에 긴장해서 어깨가 뻣뻣해졌다. 쉬 마려, 라고 할 때 아이는 제 안에서 무언가가 시작됐다는 걸 감지한 듯 울먹거렸다.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양변기에 앉자 윤의 소변은 눈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적은 양의 소변이 아이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을 일으키는지 무엇이 쉬가 마렵다는 느낌을 만드는 건지 은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말하지 않는 머릿속 생각을 읽고 검게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담긴 감정을 해독할 수 있다면. 그러나 아이는 입을 열지 않고 은주는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었다. 발동이 걸린 윤을 보고 엄마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제 아빠의 차를 타고 다니며 늦게 자는 버릇이 든 윤은 손가락을 입에 문 채 삼십 분 가까이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윤이 잠든 걸 보고 은주는 스마트폰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A의 고양이는 보고 B의 강아지는 못 본 채로 윤의 상태에 대해 두서없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과 불안함의 연관성에 대해. 부모의 이혼이 문제가 된 건지,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밤늦게까지 택배 차에 실려 다닌 게 정서를 해친 건 아닌지. 구체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정리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할수록 윤의 상황은 이상하고 심각했다.
    은주는 육아 카페와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유아발달연구소에 닿았다. 불안 심리를 드러내거나 이상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상담하고 다양한 놀이로 치료하는 곳이었다. 커리큘럼이 체계적이고 사람들의 만족도도 높은 듯했다. 원장님께 감사한다, 우리 아이와 가족을 살렸다는 후기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었다. 은주는 상담을 예약하고 메일 주소를 남겨 두었다.
    잠결에 열쇠로 현관문을 여는 소리, 엄마와 은석이 웅얼웅얼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가스 불 켜고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꿈결처럼 퍼졌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하고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도 어려우면서 엄마는 은석을 챙겨 먹이려고 찌개를 덥히고 밥을 퍼서 상을 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은석이 다 먹을 때까지 맞은편에 앉아 지켜보겠지. 은주는 윤이 언제부터 저랬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은석에게 묻고 싶었지만 엄마가 자러 들어가고 은석이 담배 피우러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잠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윤의 머리맡에 펭귄 인형이 놓여 있었다. 펭귄은 보드랍고 따뜻한 털로 덮여 있었다. 윤이 펭귄의 등을 쓰다듬다가 품에 안았다.
    – 예쁘지. 우리 아빠 인형 잘 뽑는다.
    인형을 안고 웃는 윤은 수희가 보낸 사진 속의 아이와 비슷해졌다. 은주는 세수를 한 윤의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빗겼다. 아빠 혼자 키우는 티가 나지 않고 단정하고 사랑받는 아이로 보이기를 바라면서 가방에서 꺼낸 옷으로 갈아입혔다.
    은석은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출근했다. 언제 갈아입은 건지 모르겠지만 은주는 은석의 옷과 몸에서 나는 냄새를 기억했다. 동생이라고 해도 가까이하기 힘든 악취였다. 머리가 덥수룩하고 손톱 밑에 때가 꼈고 검게 탄 얼굴에 피곤과 불행이 기미처럼 덕지덕지 눌어붙은 이들을 볼 때마다 은석이 떠올랐다. 보풀 난 티셔츠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를 대충 묶은 아이, 윤기 없는 뺨에 잘 웃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구겨지는 아이를 보면 윤 같았다. 두 사람이 떠오르면 은주는 평소보다 좋은 옷을 꺼내 입고 향수를 진하게 뿌렸다.
    은주는 은석과 윤에게 선을 긋고 싶었고 실제로 잊고 지냈다. 민 팀장과 나란히 누워 직장 사람들의 험담을 하고 자신이 지은 잘못에 대해 털어놓고 신체의 비밀에 대해 고백할 때도 은석과 윤은 숨겨 두었다. 민 팀장이 자기 아내와 포기하고 싶은 결혼 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에도,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며 사는 동생과 택배 차에 실려 다니는 조카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말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동생과 조카라는 단어를 발음하고 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입 밖으로 꺼내면 돌아보게 될 것 같고 지켜보면 손 내밀게 될 것 같았다. 이쪽에 윤, 저쪽에 은석의 손을 잡는 순간 이 작은 공간과 A와 B의 고양이와 강아지 사진과 동영상을 보다 잠드는 짧은 휴식마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은주는 휴게실 구석 탁자에 앉아 도시락용 김과 콩자반, 오이지를 앞에 놓고 밥을 먹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도시락을 싸오는 동료들이 합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혼자 먹었다. 김에 싼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봤고 도시락통을 정리하며 은석의 점심에 대해 생각했다. 택배기사들이 카페 앞 도로변이나 쇼핑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운전석에 앉아 봉지에 든 빵이나 삼각김밥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은석의 점심도 그들과 비슷할 것이고 저녁에는 옆자리에 윤까지 태우고 다녔을 것이다. 은주는 운전석 옆에서 해결했을 윤의 저녁에 대해, 손으로 들고 먹어야 하는 우유와 빵, 김밥과 주스의 차가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걸 먹으며 윤은 짐칸의 상자들이 줄어들기만 기다렸을 테고 자정 무렵 일이 끝나면 은석은 자신의 옆자리에 남은 마지막 택배 같은 윤을 안고 반지하의 계단을 내려갔을 것이다. 요 며칠의 위안이란 윤이 택배 차에 타지 않는다는 것이고 새로운 고통은 쉬 마려, 라고 하면서 울먹이는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다.
    양치를 한 뒤에 자리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켜자 민 팀장이 웹으로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고 유아발달연구소에서 보낸 장문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은주는 보고 싶다는 짧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읽은 다음 지우고 연구소에서 보낸 메일을 꼼꼼히 읽었다. 연구소 방문 시 참고사항이 적힌 메일에는 연구소 소개와 예약 안내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예약비용을 별도로 받는 검사비 총액을 보고 은주는 스크롤을 멈췄다. 백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밝힌 검사 비용은 월급의 삼분의 일에 해당했다. 메일의 내용을 띄운 스마트폰의 조명이 한 단계 어두워졌다.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다는 검사는 기본과 추가, 두 단계고 아이의 상태에 따라 놀이 치료나 미술 치료로 이어졌다. 검사는 치료를 시작하겠다는 의미고 윤의 상태는 오랜 치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스마트폰의 화면이 까맣게 변했고 월세와 대출의 원금과 이자, 엄마 병원비와 약값, 공과금을 더하고 나자 부스러기가 남았다.
    쇼핑몰의 세일이 시작돼서 게시판에는 상품 문의글과 배송 전 취소 요청이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일하는 동안 은주는 계속 검사 비용에 대해 생각했다. 윤이 안됐고 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검사나 치료를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일이 밀려 평소보다 소변을 오래 참았다. 소변 끝이 뜨거운 게 방광염이 재발하면 어쩌나 불안해졌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윤도 방광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의심이 생겼다. 불안한 심리는 어쩔 수 없다 해도 화장실에 자주 가는 건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은주는 집 근처 소아과에 전화해서 윤의 증상에 대해 상담했다.
    여름인데도 소아과에는 감기나 장염에 걸린 아이들이 많았다. 열이 나고 콧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찡찡대며 대기실 안을 돌아다녔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열이 있는지 체크하는 동안 윤은 병원에 온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상에 대해서는 짧게 얘기하면서도 감정 표현은 하지 않았다. 은주는 윤의 마음이 궁금하면서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나를 왜 이렇게 두느냐고, 엄마는 어디에 간 거냐고 물어볼까 봐 무서웠다. 아이에게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늘 함께 지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마음을 닫으면 그쪽으로 향하던 감정이 사그라지게 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이 안의 버튼을 누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의사는 소변 검사 결과 방광에는 문제가 없고 심리적인 충격을 받았거나 불안함이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방광염이기를 바란 게 아닌데도 방광염이 아니라고 해서 은주는 낙담했다. 염증은 없지만 약을 먹는 게 심리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저녁밥과 항생제를 먹고 자리에 누운 윤은 삼십 분쯤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손가락이 입에서 천천히 빠져나와 바닥에 닿았다. 쌕쌕거리는 콧소리가 났고 가슴과 배가 고르게 오르내렸다. 은주는 잠든 윤의 가슴에 가만히 손바닥을 대었다. 심장이 규칙적으로 박동하고 가만히 오르내렸다. 윤아. 우리는 모두 살아서 맥박이 뛰고 가슴이 뜨겁고 아픔을 느끼는데, 이 고통에 대해 알면서도 어쩌지 못 하는구나. 미안하다. 은주는 스마트폰으로 A의 고양이와 B의 강아지를 보다가 수희가 보냈던 윤의 영상을 보았다.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온 은석이 가스 불을 켜고 냉장고를 여는 소리가 났다. 기다리다 잠든 엄마가 코 고는 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은주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갔다. 동그란 나무 밥상 위에는 막 끓인 라면과 신 김치, 냉장고에서 꺼낸 소주가 놓여 있었다. 은석은 라면을 한 젓가락 건져 먹은 뒤 김치를 씹고 소주를 반잔 마셨다. 라면 국물을 한 숟갈 떠먹은 다음 코를 훌쩍거렸다. 헝클어지고 군데군데 새치가 섞인 반백의 머리와 까맣게 탄 목덜미, 온몸에서 풍기는 홀아비 냄새 때문에 서른다섯 살이 아니라 쉰 살 넘은 초로의 사내처럼 보였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멍하게 앉아 있던 은석이 은주 쪽을 쳐다봤다. 놀라는 기색보다 고단함 위로 퍼져 가는 졸음을 참아내느라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 누나, 고생이 많지. 미안해.
    술기운이 오르는지 은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애의 몸에서 나는 땀 냄새 위에 파스 냄새가 더해졌다. 은주는 냉장고에 기대앉았다.
    – 다리는 어때.
    병원에 안 가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 침 몇 번 맞았는데······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하지. 근데 무리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
    은석이 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 누나. ······솔직히 다 그만두고 싶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으며 은주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누나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은주는 소주를 한 잔 마셨다. 은석을 보니 물어보고 싶던 말들이 속에서 다 흩어졌다. 원인을 알아서 뭐 하나. 그게 아이를 낫게 할 수도 없는데. 은석은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은주는 방에 들어와 땀을 흘리는 윤의 머리맡에서 부채질을 했다. 조카가 아니라 자식의 일이었다면 뭔가를 팔고 다른 걸 포기해서라도 연구소에 데려가 검사를 받았을까. 모르겠다. 자식이 없으니 그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주말을 앞둔 게시판에는 상품 문의, 교환, 환불 문의글이 계속 올라왔다. 더위를 먹은 건지 여름 감기에 걸린 건지 은주는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윤은 괜찮을까. 아침에 일어난 윤의 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은주는 땀이 난 아이의 이마를 쓸어 넘겼다. 땀과 미열로 범벅이 된 몸에서는 찐 감자 냄새가 났다. 괜히 병원에 데려가서 감기가 옮은 게 아닐까. 윤이 아픈 것 같다고 하자 은석은 검은 가방에서 체온계를 꺼내 귀에 댔다. 열이 없으니 어린이집에 보내도 괜찮다며 어린이집 가방을 챙겼다.
    – 밥하고 간식도 주니까 집에 있는 것보다 나아.
    은석의 말이 맞는데도 힘없이 제 아빠를 따라 나가는 걸 보니 마음이 쓰였다.
    반차를 내겠다고 하자 민 팀장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지난 2년 동안 사무실에서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일과 관련된 것은 업무용 메신저를 이용했다. 은주가 자리로 찾아가 말하자 그는 애써 사무적인 표정을 지었다. 몸이 안 좋아서요. 은주가 얼굴을 구기자 민 팀장이 잠시 눈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돌아 자리로 오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윤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자 선생님이 지금 간다고요? 하며 놀랐다. 몇 달 동안 윤은 어린이집에 제일 먼저 왔고 가장 오래 머문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이불을 덮고 누워 낮잠 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선생님이 이불과 가방을 챙기는 동안 윤은 교실과 은주와 제 발끝을 쳐다보았다.
    지하철역에서 윤은 열차가 들어오는 게 신기한지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다행히 열은 없고 컨디션도 괜찮아 보였다. 자리에 앉은 뒤에도 통로의 문을 열고 이 칸에서 저 칸으로 넘어가는 사람들과 창문에 비치는 자기 얼굴을 쳐다보았다. 호기심 어린 표정을 보면서 은주는 내릴 때까지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낮의 대공원역은 대기가 맑고 한산했다. 공기가 뜨거웠지만 코끼리 열차 안에서 은주와 윤은 평일 낮의 바람을 만끽했다. 미술관에 와서 야외 조각상 사이를 돌아다니다 윤은 화장실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은주는 윤이 쉬, 라고 할 때마다 손을 잡고 들어가 양변기에 앉혔다. 또, 라거나 왜, 라고 말하지 않으려 애썼다. 잔뜩 겁을 먹은 윤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노래하는 사람 앞의 벤치는 텅 비었다. 윤은 2년 전의 은주처럼 입을 움직이며 노래하는 은색의 거인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 로봇이야?
    – 노래하는 사람이야.
    – 저게 사람이라고?
    – 사람이 만든 건데 이름이 노래하는 사람이야.
    노래하는 사람은 두 달 전보다 더 노쇠한 듯 끼익 소리는 커지고 허밍 소리는 더 흐릿해졌다. 잡음이 섞인 목소리지만 윤과 나란히 벤치에 앉아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듣고 있자니 괜찮은 오후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의 풍경과 허밍의 평화로움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 진짜 노래하네.
    윤은 벤치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았다. 노래하는 사람이 저기 서서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까. 은주는 20년이 넘은 조각의 안녕을 기원했다.
    은주는 옆의 매점에서 차가운 커피와 윤이 먹을 핫도그와 음료수를 주문했다. 계산대 옆에 비닐에 담은 잉어 먹이가 놓여 있었다. 근처에 잉어가 있나요? 라고 묻자 커피를 내리던 여자가 손으로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 저쪽의 계단을 올라가면 연못이 나와요.
    잉어가 아주 많다며 소리 없이 웃었다. 은주는 작은 봉지에 든 물고기 밥도 같이 계산했다.
    배가 고팠는지 윤은 핫도그를 야무지게 먹었다. 낮의 아이는 좀 더 밝아 보였다. 예전에도 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지만 기쁨의 폭과 깊이가 달라졌다. 저쪽에 연못이 있다는데 가볼래?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계단을 올라가자 왼쪽에는 여러 개의 파라솔과 벤치가, 오른쪽에는 연못이 펼쳐졌다. 젊은 남녀 한 쌍이 벤치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날씨가 더워 연못은 짙은 녹색인데도 어른의 팔뚝만 한 잉어부터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것까지 무리를 지어 다녔다. 윤과 은주가 가까이 다가가 쳐다보자 잉어들이 발치에 모여들었다. 은주는 매점에서 사온 잉어 먹이를 뜯었다. 몇 개 집어서 연못에 뿌리자 잉어들이 서로 먹으려고 입을 뻐끔거렸다. 윤의 손에도 먹이를 쥐어주며 뿌려 보라고 했다. 잉어들이 먹이를 먹자 윤의 얼굴에 웃음이 동그랗게 번졌다.
    은주는 파라솔 벤치에 앉아 윤을 지켜보았다. 그 애는 신중하고 진지하게 먹이를 주었고 마지막 한 알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 얼굴에 뿌듯함과 기쁨이 떠올랐다. 은주는 윤에게 찾아온 평화와 몰입의 순간을 아슬아슬하면서도 신기한 마음으로 보았다. 윤이 완전한 타인이고 자신과 상관없으면서 동시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잠든 윤의 가슴에서 전해지던 심장박동의 팔딱거림과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던 호흡이 떠올랐다.
    파라솔 위로 여름의 햇빛이 내려앉았다. 은주는 스마트폰을 꺼내 윤의 뒷모습과 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얼굴과 잉어들이 먹이를 먹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윤이 먹이 주는 거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웃었다. 은주는 사진과 영상을 엄마와 은석에게 보냈다.

 

 

 

 

 

 

 

 

 

 

 

 

 

 

작가소개 / 서유미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문학수첩 작가상을, 『쿨하게 한걸음』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끝의 시작』, 『홀딩 턴』, 중편소설 『틈』, 소설집 『당분간 인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가 있다.

 

   《문장웹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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