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것들 - 오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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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부드러운 것들

 

 

오현종

 

 

 

    왜 이제 내 이야기는 안 써.
    윤호가 물었다.
    잊어버렸어.
    나는 그렇게 답했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 진심을 맨손바닥처럼 펼쳐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헤어진 지 오래된 사람에게. 잊었다는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대꾸가 없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지, 나는 머릿속으로 셈해 보았다. 금요일 밤, 아니 자정 무렵 누웠으니 토요일 새벽일 테다. 금요일 누군가와의 술자리. 자정 너머 전화. 모든 일들이 한번에 이해되었다.
    술을 또 많이 마셨나 봐.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았어. 이제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윤호의 동네, 윤호의 집 도어가 열렸다 닫혔다. 그 소리가 귓가로 넘어왔다.
    학기말이라 더 정신이 없어. 다음 주는 컨퍼런스에서 발표가 있는데······.
    윤호야말로 몇 분 전 자신이 건넨 질문을 잊어버린 듯 요즘의 일상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립대학 6년차 교수로서의 일과와 작성하고 있는 논문의 주제까지.
    나는 응, 응, 그렇겠지, 하고 되도록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답을 해주었다. 그가 근황을 물었을 때는 두 군데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9학점 강의를 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어디선가 엿듣는 사람이 있다면 일 년에 한두 번쯤 만나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나 동료의 대화로 짐작할 법한 통화였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점만은 맞지만, 그와 나는 더 이상 친구도 동료도 아니었다.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가족의 죽음을 맞닥뜨린다 해도 부고를 알리지 않을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만치 익숙한 목소리와 말투였다. 9년 만의 통화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나니 더더욱 그랬다.
    엄밀하게 말하면 오늘밤 걸려온 전화가 9년 만에 처음은 아니었다. 윤호는 지난 월요일 밤에도 전화를 걸어왔었다. 잠이 설핏 들었을 때 인스턴트 메신저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두어 번 수신을 거부하다가 휴대전화를 구겨진 이불 위에 소리 나게 엎어 놓았다. 그때 뒤집어진 휴대폰이 어떤 경로로 통화 상태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베개 옆에서 내 이름을 소리치듯 부르는 소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연달아 들려왔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애초에 들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나는 휴대폰 전원을 껐다가 삼십 분 후에 다시 켰다. 윤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월요일에 통화할 때 내일 저녁 같이 먹기로 했었지. 그래서 전화한 거야. 뭘 먹고 싶은지. 미리 물어봐야 하잖아?
    윤호는 언젠가 그랬듯 떼쓰는 소년처럼 말했다. 내가 전화한 건 너 때문이야, 라고 책임을 전가하려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 저녁이 내일이 아니라 벌써 오늘이 되어버렸다고 정정해 주지 않았다.
    어디든 괜찮아.
    뭐라고? 뭐가 괜찮아? 넌 왜 목소리가 작아. 누가 듣기라도 해? 왜 그렇게 안 들리게 말해. 끊고 싶어서 그러지.
    윤호는 무언가 물으려 전화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화를 낼 대상을 찾는 사람 같았다. 그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저녁 메뉴였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가고 싶다고 말해야 할까. 한밤의 전화에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쉽게 잊힐까. 어떻게 해야 내 그림자를 돌려세울 수 있을까.
    9년 전 미국에서 더 이상은 친구로도 지내지 말자, 너는 정말이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야, 비난하는 이메일을 보낸 뒤로도 윤호는 이따금 연락을 해왔다. 발신인 이름은 없고 수신인만 적혀 있는 터키 관광엽서를 우편함에서 꺼내 들어 보니 <세라믹, 양탄자, 석류의 고장인데 문득 '내 이름은 빨강'이 생각났어요.>로 시작되는 짤막한 안부가 적혀 있었다. 또 몇 년이 지난 밤, 저장이 안 된 전화번호로 <이젠 책임질 수 있는데>라는 앞뒤 잘라먹은 말이 휴대폰에 들어와 있어 보았더니 전화번호 뒷자리가 눈에 익었다. 아 윤호가 서울에 있구나,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돌아왔구나,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나를 가르친 지도교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9시뉴스에 등장한 날은 <잘 지내니>라는 메시지가 날아와 있었다. 오 년 전 소설책을 출간했을 때에는 인터넷서점 리뷰 란에 <오랜만에 작가의 장편소설을 읽는다>로 시작되는 칭찬인지 신랄한 비판인지 모를 글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서평을 쓴 사람의 아이디는 윤호의 구글메일 아이디와 같았다.
    어째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돌아와서 원하는 삶을 얻었잖아.
    나는 9년간 띄엄띄엄 걸려온 윤호의 전화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받지 않을 것을 알기에 거는 전화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것이 복수의 한 방편이라 믿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소설가가 아니라면 걸려오지 않았을 전화라는 생각에 내가 싫어진 밤도 있었다.
    그러면 참치를 먹을까.
    내가 말했다.
    뭐? 뭐라고?
    참치.
    동원참치를 먹겠다고?
    참치회 말이야.
    동원참치는 안 된다고? 왜 안 돼. 참치통조림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런데 왜 참치야. 참치가 뭐기에.
    전에 참치다타키를 맛있게 먹었어.
    그게 뭔데.
    참치. 일본식 주점.
    그 이상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힌트가 적힌 카드는 애초에 똑같은 두 장이었으니까. 오래전 그와 내가 부절처럼 나누어 가졌으니까. 카드를 잃어버린 사람에겐 다시 주지 않는 게 게임의 룰 아닌가?
    도대체 참치라니. 난 네가 이태리 식당이나 뭐 그런 데를 말할 줄 알았지. 참치라니. 참치라니.
    구체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소설일 수 있어.
    나는 나만 알아들을 수 있게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목소리가 작아. 안 들린다고.
    지금도 안 들려?
    빨리 끊으라는 거 아냐. 됐다. 됐다고.
    정말 내 목소리가 작아 그에게 가 닿지 않는지, 통화를 방해하고 잡음을 넣는 존재가 방 모서리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는 대신 침대에서 일어나 천장 등을 켰다. LED등 아래 맨몸으로 드러난 사각의 방은 벽 너머에 오래 숨겨져 있던 공간 같았다. 내가 막 빠져나온 얇은 이불이 바싹 말린 물고기 껍질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침대 헤드보드 위 세이코 알람시계는 새벽 1시를 비스듬히 가리켰다. 나는 도로 어둠을 찾아 눈을 감았다.
    지금 집에서 나올 순 없어?
    윤호가 물었다.
    그건 안 돼.
    왜?
    안 된다고.
    못 나와?
    싫어.
    한숨처럼 내뱉은 말을 그가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둘 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있는지 몰랐다. 대화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는.
    도대체 누구 눈치를 보고 사는 거야. 네가 지금 몇 살이야. 어?
    난 마흔다섯이 되었지.
    뭐라고? 마흔이 아니었다고?
    그래. 몰랐어?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너야말로 지금 마흔여덟이 되었잖아. 마흔여덟의 교수가 술 먹고 이러려고 나한테 그랬던 거야? 시작은 너였잖아. 그랬잖아. 스무 번도 넘게 말하고 또 말하고. 그래 놓고서. 왜 내게서 부드러운 걸 원하는 거니.
    전화를 끊어야겠어. 잘못 걸었어.
    기운 없는 목소리가 건너왔다.
    그래. 이제 그만 자.
    자라고?
    자고, 약속대로 저녁을 먹자고.
    여섯 시에?
    다섯 시도 괜찮아.
    다섯 시에 저녁을 먹겠다고? 무슨 다섯 시부터 저녁을 먹어? 어?
    그럼 여섯 시로 할게.
    여섯 시······ 그렇다면 내가 참치 집을 알아보고 점심 때 알려주겠어. 전화? 카톡? 뭐로 연락해야 받는데.
    아무래도 괜찮지만, 카톡으로 남겨.
    왜? 전화는 안 돼? 전화는 받기 곤란하단 말이야?
    그게 아니야. 그럼 전화를 걸어.
    나는 나에게도 고단한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밤이 아닐 때, 윤호가 취하지 않았을 때 피로의 기원을 설명하고 싶었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참치다타키를 씹으며 참을 수 없이 느리게 가는 시간을 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늘은 아니었다.
    네가 싫은데 보고 싶어.
    윤호가 혼잣말처럼 툭 내뱉었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말을 돌렸다. 나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는 중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렇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도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다면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아니었다.
    내일 저녁에 만나. 맥주도 한잔 하고.
    전화 끊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지. 그래 끊겠다. 그런데 너 요즘에 소설도 안 쓰더라. 어?
    안 써져서 못 써.
    지난번 소설책도 그냥 그랬어. 한두 편 좀 읽을 만하고.
    오빠, 나한테 왜 이래요.
    내 말에 윤호는 깜빡 잠이 든 사람처럼 몇 초간 말문을 닫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그거 알아? 오늘 처음으로 오빠라고 불렀다는 거.
    조금도 취하지 않은 사람의 말투였다.

 

 

    약속장소에 상대보다 먼저 도착하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나는 윤호가 예약해 놓은 식당 안쪽 방에 들어가 이십 분 정도 기다렸다. 테이블 위의 유리컵에 물을 따라 몇 모금 마신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윤호는 오후 2시쯤 전화를 걸어와 동원참치를 먹자고 말했다. 참치통조림이 아니라 시내 N호텔 2층 동원참치 지점에서 참치 회를 먹자고. 그의 목소리는 밤의 전화와 달랐다. 윤호는 늘 그런 식이었다. 십 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그가 달라져 있기를 바라는지, 그 반대를 바라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없을 거였다. 그가 아닌 나조차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여섯 시가 되려면 이삼 분이 남았다고 손목시계로 확인하는 순간,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얇은 미닫이문을 밀며 윤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정시에 도착했지. 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
    폴로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윤호는 학교에서 오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전과 다르게 동그스름한 안경테를 끼고 있었지만, 짐작만큼 달라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어제 마신 술기운이 빠지지 않아 오전 내내 힘들었는데 연구실에 나와 있는 동안 겨우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얼굴이 붓고 눈가가 벌게 보이기도 했다. 새벽에 건 전화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내가 물어본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게 틀림없었다.
    윤호는 바로 메뉴판을 펼쳐 내려다보았다. 참치 코스 가운데 비교적 가격이 높은 편인 코스를 선택했다.
    식사를 그리 많이 하진 못할 것 같은데. 간단하게 먹어.
    나는 메뉴판 아래쪽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윤호를 뒤따라 들어온 여자 직원이 가격대가 높다고 양이 많은 건 아니라고 첨언했다. 윤호는 처음 고른 코스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나한테 물어본 뒤 맥주 한 병을, 자신 몫으로는 소주를 주문했다.
    전에 그 동네에 계속 산다고 했지? 부모님이랑 같이.
    응. 부모님하고 할머니는 위층에 사시고. 나는 아래층에.
    밥은 같이 안 먹고?
    응, 밥은 따로. 대문이 다르니까 살림도 따로. 위층은 진밥이 아니면 못 먹지만, 나는 된밥만 해먹으니까.
    할머니가 아직도 살아계셔?
    음······ 할머니는······ 이제 103세가 되셨지.
    대단하네. 대단해.
    그렇지도 않아. 많이 약해지셔서 재작년엔 천주교 추모공원에 자리를 마련했어. 묘주? 관리를 도맡을 가족을 정해야 한다는데, 아버지도 여든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내가 묘주가 됐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할머니의 아흔아홉 번째 생일에 찍은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손이 귀한 집안이라 평범한 생일사진같이 사람 수가 적은, 어린아이가 네 명밖에 되지 않는 기념사진이었다.
    여기 검정 옷이 너야?
    윤호는 안경을 벗고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뜨려 응시했다.
    방문이 닫혔다 열리고, 테이블 위에 접시들이 몸을 맞대어 놓이는 분주한 시간 동안 윤호와 나는 서로가 아는 가족의 안부를 묻고 대답했다. 윤호는 수원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와, 그사이 수험생이 되어버린 조카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몇 해 전 지방 국립대에 교수로 간 남동생에 대해 얘기했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올해로 14년째 시간강사 생활을 하고 있고, 이번 학기를 마치면 수업을 맡지 않기로 마음먹었어, 같은 말은 꺼내지 않았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자마자 서울에 돌아와 자리를 잡은 사람에게, 한 번도 시간강사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에게 무엇을 이해받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윤호에게 연민을 바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너무 잘 지내서 소설이 안 써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동생에게서 드디어 교수 임용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날, 나는 조금 다른 의미의 안도감을 느꼈다. 나만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식이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겠다는 홀가분함 같은 것. 엄마의 기도를 너무 늦지 않게 들어준 남동생이 있어 고마웠다. 이번 여름이 지나면 엄마에게 말할 작정이었다. 그 무엇도 아닌 그냥 글 쓰는 사람으로만 살고 싶었다고. 너무 늦었지만, 학생도 선생도 아닌 사람으로 한번 살아 보고 싶다고.
    내 앞에 놓인 사기 컵에 맥주병을 기울이려 할 때, 윤호가 유리컵을 가리켰다.
    거기 유리컵이 맥주 잔 아니야? 사기 컵이 물 잔이고.
    말을 듣고 보니 잔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유리컵에 든 생수를 흰 사기 컵에 부어 비운 뒤 맥주를 따랐다. 6월 첫 주라기에는 더운 날씨 탓인지 맥주가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가 살짝 시릴 만큼 차가운 맥주는 없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윤호도 자기 잔을 소주로 채웠다. 하지만 반쯤 채우기만 할 뿐 그대로 내려놓는 모습이 오늘은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닌 사람 같았다. 윤호가 말하지 않아도, 소주병을 기울이는 모습만 봐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윤호가 아닌, 내가 아닌, 그 밖의 타인들에 대한 얘기만을 나누며 우리는 음식을 씹었다. 예쁘게 늘어 놓인 참치 중 한 부위를 권하거나 전복을 앞접시에 덜어놔 주는 일도 없었다. 문득, 방학 중 미국에서 들어온 윤호와 점심을 먹었던 어느 여름날이 떠올랐다. 지금 식사를 하는 참치 집에서 오 분? 아니 십 분 거리의 지하 아케이드에 있는 식당이었다. 청국장으로 유명한 밥집이라고 해서 윤호는 청국장 백반을, 나는 보쌈정식을 주문했었다. 내 몫으로 나온 달걀찜 뚝배기에 윤호의 숟가락이 쑥 들어오던 순간이던가, 나는 이물감을 느꼈다. 그가 내 팔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린 것도 아닌데, 고작 달걀찜 한 숟가락을 떠갔을 뿐인데, 낯선 느낌에 나는 밥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윤호의 입안에 들었던 포도주와 과일 조각을 내 입으로 받아먹으며 깔깔대던 시간에서 너무 멀리 떠나왔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젓가락질 좀 제대로 해봐. 아직도 못 해.
    허술하게 엑스자로 엇갈린 젓가락 두 짝이 참치 뱃살을 연달아 놓치는 걸 보았는지 윤호가 핀잔을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두어 번 더 젓가락을 미끄러뜨린 뒤에야 참치를 집어 올렸다. 요샌 길에서 넘어지진 않고?
    나는 젓가락으로 집어든 참치를 입에 넣지 않고 앞접시에 내려놓았다.
    아직 결혼을 안 한 거야?
    윤호가 멈칫하는 듯하다가 뭐라 중얼거렸지만, 분명하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이어 그는 자신이 사람을 쉽게 좋아하는 사람이 못 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설마.
    글쎄, 누가 내 공간 내 생활에 들어오는 걸 못 견디겠어. 그게 그래.
    그 말은 십 년 전, 아니 십오 년 전 내게 했던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진실로 들리지 않았다.
    요즘 윤호는 오래된 사진기를 수집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도 했다. 오래전 죽은 사람들의 세계, 손을 대기도 전에 이미 완결되어 버린 세계라니. 윤호답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는 그런 점 때문에 그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때론 나를 두고 내가 모르는 사물들의 세계로 가버릴까 봐 두렵기도 했었고. 반쯤 남은 맥주를 마저 마신 다음 내 손으로 맥주를 따랐다. 맥주의 온도는 더 미지근해져 있었다.
    나에게 왜 남들처럼 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느냐고 말했었지. 소설을 버리려는 노력은 한 번도 안 해봤냐고 물었었지. 그런데 지금 와서 왜 소설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 거야. 오빠는 왜, 어째서 남들처럼 살지 못한 거야. 뺨이 부드러운 아이의 손을 잡고 휴일에 놀러가는 계획을 세우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한 거야.
    어제 술을 마셔서 속이 좋지 않은지 윤호는 식사를 잘하지 못했다. 소주잔도 그대로였다. 방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음식들은 거의 그대로 테이블 위에 남았다. 그와 나는 접시 위에 다시 타인들의 삶을 올렸다. 우리 자신의 삶은 젓가락으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듯. 윤호가 학교 밖에서 자문하고 있는 기업체도 이야기할 수 있고, <미투>로 직장을 잃은 교수들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기에 식탁 위에 올릴 수 있었다.
    윤호는 자신이 맡은 아이들이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좋은 선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예술가이길 원하면서 좋은 선생이 되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인생에 책임을 느끼는 만큼 내 인생에 책임을 느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지는 못했다. 윤호는 말끝에 아이들에겐 자신에게 없는 젊음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윤호를 처음 만났을 때 나 역시 이십대의 마지막 해를 지나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지 모르는 척하는지 묻고 싶었다. 윤호는 한국에 와서 왜 이렇게 지내나 싶을 만큼 바쁘게 지낸다고 말했다. 아마 앞으로 칠, 팔 년 정도는 더 이러지 않을까 싶다고. 그 말이 꼭 밤의 전화는 취해서 한 실수였으며, 그 이상 아무 의미도 아니라고, 그러니 너는 내게 연락을 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는 말로 들렸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그는 전화를 걸어 원하던 꿈을 이뤘다고 자랑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를 외롭게 만들었을까.
    ​마침 직원이 방에 들어와 마지막 코스인 마끼를 건네주었다. 나는 흰 접시 위에 온전히 버려진 초밥과 참치회를 포장해 줄 수 있겠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그녀는 가능하다고 대답한 뒤 접시들을 가져갔다. 윤호는 내게 왜 음식을 잘 먹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신발을 먼저 신은 윤호가 식당 입구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그가 눈가에 주름이 팰 정도로 웃는 모습을 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를 바라보며 웃은 기억이 없었다. 도심의 건물 밖으로 나오자 낮의 열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둠을 기대했다가 너무 길어진 대낮을 맞닥뜨리자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윤호는 학교에서 차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나보다 반걸음 앞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참치를 같이 먹었던가.
    청계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윤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숙대역 근처에서. 참치 집은 아니고 일본식 주점.
    신한은행 뒤편?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그런데 난 왜 기억이 안 나지.
    청계천을 지나 종로1가 쪽으로 들어설 때, 윤호가 참치를 포장한 종이봉투를 건넸다.
    자, 난 저쪽에서 버스를 타든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갈게. 넌 이걸 들고 집에 들어가.
    나는 아무 말 없이 종이봉투를 받아들고 이 분쯤 더 걷다가 짧게 인사를 나눴다. 특별한 말도 무엇도 없는 헤어짐이었다. 곧 종로1가 정류장에 이르러 안내판을 보자 우리 동네로 향하는 버스가 여러 대였다. 나는 버스 번호를 확인한 다음 정류장 벤치에 걸터앉았다. 종이봉투를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거절의 말과 방식으로 무엇이 좋았을지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아스팔트 위를 쓸고 지났다. 각기 다른 번호를 단 버스들이 안녕 안녕 가벼운 인사를 건네듯 정류장을 지나가고, 지나가고, 안녕 우리 또 만났지? 다시 왔다 갔다. 나는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리다 문득, 부드러운 것들을 잃어버린 지 오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손목에 찬 스마트시계가 잉잉 길게 울어 손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조심해서 잘 들어가렴.
    윤호는 아마 집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참치를 잘 먹었다고 간단히 답신을 남겼다. 가장 나다운 행동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실상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는 기억나지가 않았다. 도로 위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 빠르게 멀어져 갔다. 휴대폰을 집어넣기 전에 확인해 보니 함께 밥을 먹은 시간이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래, 우리가 참치와 사케를 먹었던 곳, 신한은행 뒤편이 맞아. 오빠의 기억이 맞아. 나는 죽은 참치가 든 흰 봉투를 손에 쥐고 멈춰 선 버스에 올라탔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어김없이 불쾌한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결코 알지 못할 냄새가. 엄마는 아무리 환기해도 달아나지 않는 악취 탓에 밥을 못 먹는 때가 잦다고 했다.
    어두운데 왜 불도 안 켜고 있어요.
    엄마는 부엌 테이블 앞에 다가앉아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냥 피곤해서. 커피나 한 잔 더 마셔야겠다. 날이 더우니까 견디지를 못하겠네.
    6월인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요. 할머니한테 또 무슨 일 있어요?
    엄마는 내게 등을 진 채 커피를 만들면서 이 노릇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고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가 똑같은 말을 열 번 스무 번 하는데, 알면서도 견디기가 힘들다고.
    두 다리와 머리에 고장이 생긴 103세의 할머니는 지나간 과거를 망가진 라디오처럼 되풀이하고, 71세의 엄마는 그것을 못 견디겠다고 하소연했다. 77세의 아버지는 할머니가 증손녀에게 넌 몇 학년이니, 큰 애니 작은 애니, 두 번 세 번 물을 때마다 티브이 볼륨을 높였다.
    할머니 저녁 많이 드셨어요?
    오늘은 어쩐 일인지 반밖에 안 드셨어.
    참치회랑 초밥을 가져왔어요. 들여가 보실래요? 할머니 회 좋아하시잖아요.
    어디서 회를 사왔니.
    남은 걸 좀 싸왔어요. 손은 안 댄 음식이에요.
    나는 종이봉투를 식탁 끝에 내려놓고, 할머니 방으로 식사를 들여가는 소반을 찾아 접시와 수저를 놓았다.
    어제 장기요양 보험공단에서 전화 왔었어요. 전에 집에 찾아왔던 담당자 같아요.
    무슨 일로?
    엄마는 커피를 담은 머그에 알 굵은 얼음을 그득하게 넣었다.
    등급 판정 받고 나서 요양보호사나 시설 이용하고 있냐고요. 한 번도 이용 못 했다고 했어요. 할머니가 가족 말곤 몸에 손도 못 대게 하셔서.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커피를 다 마시기 전에 주방을 나와 할머니 방 앞으로 갔다. 선뜻 방문을 열게 되지가 않아 문고리를 잡고 한동안 서 있었다. 나는 언제고 나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의식한 채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죽음이 바로 오늘 문지방을 넘어오더라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나는 여행지의 호텔과 항공권을 예약할 때마다 갑작스런 일로 취소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다. 할머니가 아흔을 넘긴 후로 우리 가족은 남들 같은 가족여행은 갈 수 없었다. 누구든 한 사람이 집에 남아 할머니의 밥상을 차리고, 잠자리를 살펴야 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할머니를 빼놓고 모두가 놀러간 사이 할머니 혼자 세상을 떠난다면, 할머니도 물론 외롭겠지만 남은 사람들 역시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 같았다. 백 살이 넘은 사람과 한집에서 산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나는 문을 반만 열어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요 위에 모로 누워 있던 할머니는 귀가 어둡다면서 문 기척을 어떻게 들었는지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할머니, 저 내려갈게요. 쉬세요.
    나는 문을 열자마자 작별인사를 했다. 문지방을 넘고 싶지가 않았다.
    첫 손주라 신이 나서 돌에 떡을 한 가마나 했어. 너무 좋아 가지고. 그것뿐야? 내가 수수팥떡을 열 살까지 했잖아.
    그만 해요, 할머니. 그 얘기 백 번은 한 거 알아요?
    할머니는 나를 아낀 대가로 뭘 바랐던 걸까.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해서,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했다고 해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생각에 이르자 할머니가 미운 만큼 나 자신이 미워졌다. 할머니를 닮은 사람은 누구도 아닌 나였다.
    뭐라구? 무슨 말인지 안 들려. 전쟁이 나서 피란 다니면서도 내가 자식들 밥은 굶기지 않았어. 돌에 내가 떡을 한 가마 해서 온 동네에 돌렸는데.
    싫어. 내가 먹은 떡도 아닌데. 왜 자꾸 나한테 그래. 그때 떡 먹은 사람들한테 말해요.
    잘살라고, 귀한 대접 받으라고······.
    난 하나도 안 먹었다고!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방문을 밀어 닫았다. 할머니를 본 게 잘못이었다. 할머니를 보지 않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강의실에서 '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작가가 아니라고 말해 왔는데, 그것이 나도 모르게 좋지 않은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 같아.

 

    나는 느리게 첫 문장을 썼다. 집으로 돌아온 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고 생각했고,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내 마시고 나서는 결국 또 쓰는 일이 되고 말 것을 알았다. 차가운 라거 맥주를 한 캔 더 마시고 나자 몸이 더워졌다. 그밖에는 애초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받는 사람 칸에는 십 년 전 윤호가 사용했던 이메일 주소를 적어 넣었다. 몇 주 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에 대해 몇 줄 적기도 했다. 윤호가 요즘 다른 메일 주소를 사용하고 있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내가 글을 쓰는 건 이해받기 위해서라기보다 이해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내가 쓴 것이 진실에 가깝든 의문이 부질없든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쓴 이야기는 매번 나를 설득했고, 그러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왜'에 대한 답을 주었다.
    간단한 편지를 쓰자마자 보내기 버튼을 클릭했다. 어쩌면 무언가 쓸 용기를 구하기 위해 맥주를 마셨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에게 불리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수신인의 기분 역시 미루어 짐작하고 싶지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식의 행동이 자주 윤호를 질리게 만들었고, 미안한 적이 많았지만, 매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윤호에게서 답신이 온 건 커튼을 걷어낸 간유리창이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색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그는 담담한 이야기 끝에, 나를 통해 십 년 전 자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나를 마주하고서 갑자기 무력감에 휩싸였다고.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과거는 기억으로 복원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 같다고.
    윤호는 오래전 내가 쓴 소설 속에서 과거의 자신을 찾아볼 때가 있다고 했다.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보고 좋았던 적도 있다고, 그는 적었다.
    나는 윤호의 메일을 세 번 반복해 읽고 컴퓨터를 껐다. 기억을 언젠가 재생하기 위해 소설을 쓴 건 아니었다고, 내가 바란 건 그게 아니었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차라리 기억을 봉인해 잊기 위해 썼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쓴 것이 인쇄된 뒤로는 다시 펼쳐 보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러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세 번 울리고 바로 연결되었다.
    주무셨어요?
    아니, 아직.
    대답과 달리 잠을 자다 깬 목소리였다.
    엄마, 우리 이제 그만두면 안 돼요?
    끊어진 전화처럼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네? 듣고 있어요?
    응.
    우리 할 만큼 했잖아요. 그만 하고 병원 한번 알아봐요. 내가 가까운 데로 알아볼게요.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사시는 동안은 같이 살아야지.
    같이 살고 싶다고 다들 같이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혹시 남의 이목 때문에 그래요?
    아니야, 그래서가.
    그럼 왜요.
    우리가 떳떳하고 싶어서지 남들이 무슨 상관이야. 여태껏 했으니까 도리를 다하려는 거지, 다른 게 뭐가 있어.
    도리요? 도리를 누가 알아줘요.
    누가 알아달라고 그러나.
    왜 우리만 예의를 지켜야 해요. 남들은 우리한테 예의를 다 하지 않는데. 남들은 우리 같지 않아요. 자기밖에 몰라요.
    무슨 소리야.
    왜 나만 최선을 다해야 해요. 아무도 그러지 않는데. 아무도 모르는데.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아.
    할머니가······ 다른 사람 같아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달라졌어요.
    나도 모르겠다.
    그래요. 저도 모르겠어요.
    내일 다시 얘기하자.
    네, 주무세요.
    아, 그리고 전복을 주문해야 할 것 같아. 요새 이가 불편해서 식사를 잘 못하시는 것 같은데. 국거리도 마땅치 않고 전복죽이나 끓여야겠어.
    알겠어요. 아침에 주문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왜.
    작년처럼 엄마까지 응급실 실려 가면 저 못살아요.
    난 괜찮다니까. 잘 먹고 있어.
    주무세요.
    나는 앞으로도 엄마와 비슷한 대화를 나누다 전화를 끊게 될 것을 알았다. 할머니가 과거 속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도록 숨겨 가면서, 온 가족이 오래도록 밤의 대기실에 앉아 있으리라고. 한편으론 누구보다 내가 할머니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할머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유예된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오른손바닥 안에 감춰 온 죄책감과 불안을 누구에게라도 펼쳐 보이고 싶었다. 앞으로 내가 마주해야 할 죽음이 너무 많아서, 내가 먼저 그림자 뒤로 몸을 감추고 싶은 밤도 있었다.
    적어도 오늘만은 잊고 싶어서 나는 불을 끄고 엎드려 눈을 감았다. 너무 긴 하루였다. 고단해서 도리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부드러운 베개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불행한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나였다. 지금의 나보다 과거의 나를 더 잘 아는 할머니는 아무래도 괜찮겠지만, 과거를 살고 있는 할머니라면 괜찮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달랐다. 고백을 들어줄 사람이 십 년 전의 윤호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막 든 생각이 아니라 오늘 윤호를 만나러 가는 길에도 혹 그런 바람을 가지지 않았던가?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내가 몹시 미워졌다. 지금의 윤호도 아닌 과거의 윤호를 어디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는 이상. 잠시나마 불가능한 일을 기대했었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알면서도 기만하고 싶었던 허약함이 부끄러웠다. 실상 오래전 나눠 가진 부절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둘 다였다.
    나는 내가 한때 부드러운 것을 가졌었고, 그러나 지금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잃어버린 것은 누구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둠 속에서 실감하기 시작했다. 잠이 들 때까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것들의 목록을 완성하고 나면 분명 잊을 수 있을 거였다. 오늘 다 쓰지 못한다면 내일이라도. 그 믿음이 오늘밤 내게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작가소개 / 오현종

1973년 서울 출생. 소설집 『세이렌』, 『사과의 맛』,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장편소설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외국어를 공부하는 시간』, 『거룩한 속물들』, 『달고 차가운』,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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