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죽 외 1편 - 김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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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흰 죽

 

 

김경후

 

 

 

심장이 하얀 새가
날고 있어
여기, 이것 봐
아이는 차가운 숟가락을 휘적대고만 있다

 

반 친구들은 스키 타러 간대
펑펑 눈송이 쏟다 얼었다 다시 녹아 흐르는 동안
점점 말갛게 묽어 가는 흰 죽
다 식은 죽

 

심장이 하얀 새는
너무 멀리 가는 새
이것 봐
누군가 가리킨다
텅 빈 침대
투명하게 남은 날갯자국들

 

창밖엔 활강하며 쏟아지는
흰 죽 냄새 나는 벚꽃들

 

 

 

 

 

 

 

 

 

 

 

 

 

원룸전사

 

 

 

 

나는, 비상구,
창문 없이,
축축하고 얼룩진 판대기와 판대기 사이,
나는, 나의, 비상구,
불이 나지 않아도, 지진나지 않아도,
살려주세요, 소리치지 않아도,
여기, 나는 하루 종일, 비상구,
곰팡이 피고 지루해도,
끝의, 끝, 잡고, 나는,
나의, 비상구,
끝방에 붙은 끝방이어서,
아니야, 방 안에 스물네 시간 비상등, 켜져서,
아니야, 머리맡에 비상탈출 완강기, 있어서,
아니야, 판대기와 판대기 사이,
내 몸보다 나는 작은, 나의 비상구,
학교 종소리보다 자주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 경찰차 소리,
저쪽, 끝방 아저씨, 오늘, 괜찮을까,
모두 괜찮아도, 괜찮지 않은,
나는, 나의 비상구,

 

눅눅한 벽 뒤 검은 매미허물들,
멀리 날아갈 것처럼 들러붙어 있다

 

 

 

 

 

 

 

 

 

 

 

 

 

 

작가소개 / 김경후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 『어느 새벽 나는 리어왕이었지』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수상.

 

   《문장웹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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