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니다 외 1편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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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읍니다

 

 

이진희

 

 

 

토끼들이 들판을 지나 갔
에서 나의 받아쓰기는 멈췄습니다
마지막 교시의 세 번째 문장이었습니다

 

소풍에 나선 나의 토끼들은
지우개의 무차별 공격을 피하느라
고운 꽃이 핀 꽃밭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탁 트인 풀밭에서 놀지 못했습니다
배낭 속 점심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뉘엿뉘엿 마지막 문장이 끝나버렸습니다

 

그날은 하필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학교에 들른 아버지가
교실 창밖에서 나를 지켜본 날

 

읍니다에서 습니다로 바뀐 읍니다는
웁니다와 비슷한 말일까요?
학습전과에 제시된 비슷한 말과 반대말을
그대로 의심 없이 외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때 그토록 읍니다였으나
이제는 습니다인 읍니다를 습니다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그날의 소풍을 즐기지 못한 나의 토끼들은
완성하지 못한 세 번째 문장의 언저리에서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에서
웁니다 아직도 이따금 읍니다 읍니다 웁니다

 

 

 

 

 

 

 

 

 

 

 

 

 

 

믿음의 문제

 

 

 

 

할머니는 늘 묵주를 손에 쥐고 계셨다
절대 그것만은 뺏기지 않겠다는 듯

 

체구가 몹시 작은 나의 할머니는
무척 키가 큰 아들을 둘 낳고 길렀다

 

키가 큰 것 말곤 두 아들은 많은 것이 달랐다
아버지의 성도 식성도 삶의 궤적도

 

할머니는 주일이라면 반드시
평일엔 시간이 날 때마다 성당을 찾았다

 

할머니의 두 아들 역시 신을 섬겼지만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성을 냈다
각자 아버지 없이 자란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와 큰아버지와 나의 아버지가
믿었던 신은 어떤 얼굴들을 하고 있었을까

 

만나기만 하면 화를 내고 서로를 멀리했던
할머니와 큰아버지와 나의 아버지

 

그들이 믿던 신을 나는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서 불같이 화를 낼 때가 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일까
이것이 믿음의 문제일까

 

 

 

 

 

 

 

 

 

 

 

 

 

 

작가소개 / 이진희

2006년 계간 《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으로 『실비아 수수께끼』가 있다.

 

   《문장웹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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