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한 인생의 고소미 외 1편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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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근면한 인생의 고소미

 

 

김현

 

 

 

주인님 오늘은 출근하며 저도 모르게
말해버렸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수에 젖어서 바늘로 손목을 흠뻑 찔렀습니다
과연 제게 한이 있을까요
주인님은 한이 있는 사람을 매질하고 싶다고 하셨죠
울음이 없는 사람을요
매미 울고 작은 개 한 마리가 화단을 뛰어 다녔습니다
저는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주인님은 싫어하시겠죠
살아 있는 것이 한을 쌓는 것이니까요
핏방울을 꿰뚫어보면 보입니다
저의 밑바닥
숙변이요
냄새는 지독해도 먹음직스러워서
주인님이 제 숙변을
저의 가장 나중 지닌 것으로 여겨 주면
간질이면 해죽해죽 웃었습니다
인간의 우주란 이토록 광활하지요
저는 주인님이
일하고 온 발가락을 핥으라고 하면
좋아요 어쩔 줄 몰라요
허공을 향해 불알을 까고 두 손 두 발을 들었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영롱하죠
맛있는 겁니다 인간사는
주인님은 저한테 그렇게 예쁘게 굴어 놓고
가정에서는 점잔을 빼고 앉아
시대와 역사를 고려하며
혀를 차고 욕을 하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홍동백서조율이시를 따지겠죠
하찮은 인간이라는 것 그게
제가 주인님을 따르는 유일한 이유랍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저만 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점심에는
매콤달콤한 주꾸미를 깻잎 위에 올려 먹으며
공 이사와 허 부장이 들려주는 지난한
노조의 역사를 청취하였습니다
노조 부심 오지고요
그런데도 공 이사는 전립선비대증에 시달리고
허 부장은 우울하여 개를 내다버렸습니다
그런 이들이 지난날 강성노조의 일환으로
투석하였다는 허풍선만으로도
알이 터졌습니다
식감이 재밌죠
알 중의 알은 임의 알
임의 알을 입에 넣고 굴려 보았습니다
어디까지 가나
가나 하니까 아주 가더라고요
태초로
임의 알에서 태어난
비굴과 치욕을 저는 어린 나이에 좋아했지요
대머리가 되려고요 그러니
주인님이 밤이면 밤마다 제게
가발을 씌울 때면
사타구니가 뻐근하고 눈물이 솟습니까 안 솟습니까
명색이 저도 과장인데요
저도 주인님의 갈라진 턱이 싫어요
핥고 싶어요
죽여주세요
다 먹었으면 일어나지
저는 쌈무 위에 마지막 주꾸미와 날치알을 얹어 먹으며 기원했어요
오늘은 임도 먼 곳에서
헐벗은 마음이길
거룩하게 다리를 들고
오줌을 찔끔찔끔 싸다가
눈물 육수가 터져 마음으로 흘러
건널 수 없는 강을 이루길
주인님 주인님에게도
버젓이 임이 있겠죠
어딘가로 흘러가 버린
둘이서만 하다가 셋이서도 하고 넷이서도 하고
인류애를 배우는 것이라고 하셨죠 그래도
오늘은 단둘이 해요
공이 허리를 숙이자 허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개새끼를 생각하노라
오늘은 세상이 참 아름답고 죽을래요 잠시라도
주인님의 밧줄에 목을 끼고 낑낑거릴래요
매질을 독점할래요
주중에는 고소하게 근면하게
살아 있었으니까요

 

 

 

 

 

 

 

 

 

 

 

 

 

혼니

 

 

 

 

오늘은 사평이 말했다

 

엄마, 바다 화났어?
아직 화났어?

 

사평은 난생처음
바다를 보고 꽃게를 보고
꽃게처럼 옆으로 걷다가 모래사장에 꽃게를 그리고 그 순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된다
그날 사평의 가슴에
남들은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 밀려가지 않았지
아직 어린 나이에 망망대해의 진리를 알 수 없을 텐데도
사평은 짐작했다

 

엄마, 엄마 냄새는 너무 예뻐.
아직, 예뻐.

 

사평은 파도가 높아
부모가 신선해물탕집에서
간장에 고추냉이를 너무 많이 풀어서
알을 먹다가 눈물바람으로
휘청거리는 걸
보고
들었다

 

여보, 이맘때면 자꾸 현이 오빠 생각이 나
그 오빠가 그렇게 쉽게 갈 오빠가 아닌데 어쩌다가 그리 쉽게 가냐 가길
여보, 저기는 참 어두컴컴하다 보이는 게 없네
여보, 이맘때면 자꾸 현이 언니 생각이 나 그 언니 그렇게 쉽게 갈 거면서 뭘 그렇게 어렵게 살았을까
여보, 우리는 모두 연약해 앞뒤가 꽉 막혀서

 

부모가 소주잔을 들고 우두커니 창밖을 보는 사이에 사평은
펄펄 끓는 해물탕에서 꽃게를 꺼내려다가
눈물이 터졌다
인생의 뜨거운 맛을 보았다 처음으로
부모는 사평 때문에 바다에서 멀어졌다
자러 갔다
꿈에서도 미더덕을 씹어서 입안에 물이 가득했다

 

엄마, 화났어?
아직 화났어?

 

사평은 부모가 신선하게 잠든 사이에
깨어나서
햇빛 창가에 앉아서
부모가 그리워하던 이와 대화했다
너도 부모 되어 알리라
사평은 놀라 검푸른 바다를 마음에 엎지르고
커나가리라
그땐 몰랐으나
사평은 부모의 슬픔
냄새를 그때부터 잊지 못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이었다

 

 

 

 

 

 

 

 

 

 

 

 

 

 

작가소개 / 김현

시집으로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슬픔의 미래』, 산문집으로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가 있다.

 

   《문장웹진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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