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없는 주막 외 1편 - 송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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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번지 없는 주막

 

 

송진권

 

 

 

버드나무가 빨빨 쇠어 이파리 내밀자
밑동에 매었던 나귀를 끌러 흐드러진 살구나무 둥치에 비끄러맨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 너머
살구나무는 살구꽃을 화르르 날린다
나귀 등에 앉았던 꽃잎이 날아가 물살에 둥둥 떠간다.

 

사내는 주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고
개는 사내의 신발을 물고 마루 밑으로 기어든다
방에서 나온 여자가 머리를 만지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뒤따라 나온 사내가 감발하다 개를 걷어찬다
이놈의 가히 새끼
살구나무에 묶인 고삐를 풀어 바투 쥐고
사내가 주막을 나선다

 

시방 가믄 원제나 온다는 겨
솥을 가시던 여자가 삐끔히 어둔 부엌에서 토음으로 묻는다
아, 가봐야 알지
깨목이나
물견이나 다 팔려야
나귀를 앞세우고 너덜너덜한 봄이 간다

 

그러구러 여러 명의 사내가 드나들지만
창살에 비친 버드나무 그림자와 나귀 그림자 떠나질 않는다

 

 

 

 

 

 

 

 

 

 

 

 

 

우화

 

 

 

빠알갛게 잘 익은 앵두가
다닥다닥 달렸단다
넌 여기서 망을 보고 있다가
누가 오면 얼른 뻐꾸기 울음소리로 신호를 해
내가 들어가서 앵두를 따올게
제일 잘 익은 건 너 줄게

 

그 애가 담을 넘어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호랑이 눈썹에 수염이 허연 늙은이가
그 애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들어가는 걸 보았습니다

 

저 놈 잡아라
저 도둑놈 잡아라
외치는 소리가 담 너머까지 들렸습니다
한참이나 떨어진 냇가까지
숨이 차게 달아났습니다

 

뚝뚝 물에 떨군 어린 날의 눈물
흐르는 물에 비친 내 얼굴이 깃털로 덮이며
송홧가루 묻은 뻐꾸기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뻐꾹 뻐꾹 그 집을 돌며
평생을 울어야만 했습니다

 

 

 

 

 

 

 

 

 

 

 

 

 

 

작가소개 / 송진권

1970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04년 『창작과 비평』에 『절골』로 등단, 시집으로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동시집으로 <새 그리는 방법>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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