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여름방학

 

[단편소설]

 

 

여름방학

 

 

윤성희

 

 

 

    *

 

    퇴직을 하던 날, 나는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을 했다. 이병자. 그게 내 본명이었다.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남은 명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도장은 버리려다 따로 챙겨 두었다. 한자로 새긴 도장도 하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책상 서랍을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칫솔과 슬리퍼도 버렸다. 이만 하면 오래 다녔지. 오십이 넘은 뒤로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으므로 퇴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내 의지로 그만두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붓고 있는 적금이 만기가 되면 사표를 쓸 계획이었다. 목표 금액까지는 몇 달 남지 않았다. 퇴직을 하고 무얼 할 계획이냐고 묻는다면 세계 여행을 다닐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퇴직 후의 계획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여행이라고는 제주도에 두 번 갔다 온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한 번은 출장을 겸한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가고 싶은 나라는 텔레비전에 다 나왔다. 선풍기를 틀고 소파에 누워 사람들이 낯선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내겐 여행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트렁크를 끌고 공항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무서웠다. 아버지가 목을 매 죽은 이후로 내겐 두 려울 게 없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고, 말린 단풍잎을 책갈피로 쓰던 여고생이었고, 오남매 중 막내였지만, 침착하게 부엌칼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목을 죄고 있는 끈을 잘랐다. 시체가 된 아버지의 머리가 마룻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이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겁나는 일이 없었다. 이보다 더 한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공항만은 달랐다. 그게 뭐라고. 그 환한 건물이, 수많은 사람들이, 트렁크 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무서웠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를 위해 꽃다발을 샀다. 그 정도 선물은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작별 선물 하나 없던 동료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섭섭지 않게 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들은 집을 떠나고, 나는 어머니와 둘이 남았다. 사정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근처 중학교의 행정실에 사무보조 자리를 하나 구해 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석 달 전이었는데,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졸업을 할 수 있게 처리도 해주었다. 중학교 행정실에서 사무 일을 하면서 야간 대학교를 다녔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있었지만 일을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에 한 끼를 겨우 삼키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운 좋게 중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와 상업계 여자고등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제법 큰 재단의 학교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게 이십오 년 전의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꽃병을 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찬장을 뒤졌다. 안쪽에서 맥주잔이 나왔다. 호프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00cc 맥주잔이었는데, 어디서 났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잔에 꽃을 꽂고 나니 맥주가 한 잔 먹고 싶어져서 상가 안에 있는 치킨집에 갔다. 가끔씩 들러 맥주를 마시는 집이었는데,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홀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서 혼자 마시기가 좋았다. 늘 그렇듯 나는 생맥주 한 잔과 골뱅이 무침을 시켰다. 나는 프라이드치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입술에 기름이 묻는 게 싫었다. 그래도 주방에서 기름을 튀길 때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좋았다. 기름 냄새를 맡는 것도 좋았다.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벽에 달려 있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연예인들이 의자 뺏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듯 끝날 듯하다 계속되는 바람에 연예인들이 의자에 엉덩이를 댔다가 다시 춤을 췄다를 반복했다. 그 장면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의자 뺏기 게임을 보다 보니 어릴 적에 했던 짝짓기 게임이 생각났다.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게임이었다. 소풍 전날이면 나는 짝짓기 게임에서 첫 번째로 탈락하는 아이가 되는 악몽을 꾸곤 했다. 넌 저리로 가. 짝을 이룬 아이들이 나를 밀쳐내는 꿈. 그렇다고 외톨이로 학교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친한 친구들도 꽤 있었다. 나는 안주를 내온 가게 주인에게 오늘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이 축하주예요, 위로주예요? 하고 물었다. 둘 다예요. 내가 대답했다. 나도 한때는 짝짓기 게임을 무서워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는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짝짓기 게임. 그까짓 게 뭐라고. 그렇게 중얼거려 보자 여행은 안 가더라도 여권은 가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 뺏기 게임은 이제 두 사람만 남았다. 하얀색 의자 하나가 잔디밭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외국인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상상을 해보았다. 리 병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저어졌다. 병자 리. 그것도 싫었다. 여권에는 다른 이름이 적혔으면. 나는 포크로 소면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러자 어떤 생각이 번쩍 하고 떠올랐다. 이름을 바꾸면 되잖아! 이름을 바꾸면 여권에도 다른 이름이 새겨질 테니까. 나는 가게 주인에게 맥주 한 잔을 더 달라고 말했다. 이름을 바꾼다고 생각하니까 마시고 있는 술이 위로주가 아니라 축하주 같았다. 나는 맥주잔을 들어 허공에 대고 건배를 했다.

 

    나는 어머니가 서른여섯에 낳은 딸이었는데, 가족 중 유일하게 병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스물둘에 첫아들을 낳은 뒤로 이 년 간격으로 아들 셋을 더 보았다. 그러다 팔 년 뒤,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 다섯 남매의 이름에는 모두 ‘병’자가 들어갔다. 병철, 병곤, 병만, 병준. 그리고 병자. 내가 태어났을 때, 병철 오빠는 백점을 맞은 수학 시험지를 어머니에게 선물로 주어 어머니를 울게 만들었다. 어머니 대신 태몽을 꾼 것도 큰오빠였다. 어렸을 적에 큰오빠는 마루에 앉아 태몽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내가 논두렁을 걷고 있었어. 잠자리가 하늘에 가득했지. 길을 걷다 보니 개울이 나와 거기에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글쎄, 건너편에서 소 한 마리가 물을 마시고 있지 뭐야? 거기까지 말을 하면 어린 나는 그래서? 그래서? 하고 추임새를 넣곤 했다. 개울을 건너갔더니 소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라고. 내가 소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어. 그러곤 집으로 돌아오는데 소가 자꾸 따라오더라고. 가라고 돌을 던져도 자꾸 따라왔어. 그러면 나는 또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돌을 던졌어? 소가 맞았어? 아니 안 맞았어. 그냥 바닥에다 던졌어. 그랬는데도 집까지 소가 따라오더라고. 이 마당 한가운데로. 나는 오빠가 해준 태몽 이야기가 좋았다. 오빠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온 소라니. 둘째인 병곤 오빠는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자고 있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잠든 아기의 얼굴을 보니 동시 몇 편이 저절로 떠올랐고,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다. 둘째 오빠는 검지로 아기인 내 볼을 톡톡 치는 것을 좋아했다. 나를 낳고 건강이 나빠진 엄마를 대신해 나를 업어 준 사람은 넷째인 병준 오빠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가르쳐준 사람도, 방학 때마다 탐구생활이라는 학습장을 작성해 준 사람도, 그림일기를 대신 써준 사람도 넷째 오빠였다. 마지막으로 셋째 오빠. 가족사진에서 오래전 잘려 나간 병준 오빠. 나는 셋째 오빠를 생각하면 등목을 하던 장면만 떠올랐다. 뭐가 그리 열이 나는지 셋째 오빠는 자주 등목을 했다.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책가방을 마당에 던지고는 웃통을 벗었다. 그러고는 내게 소리쳤다. 이리 와. 물 좀 끼얹어! 마당 수도꼭지에는 녹색 호수가 달려 있었는데, 나는 그 호수의 끝을 잡고 오빠의 등에 물을 뿌렸다. 어떤 날에는 오빠 등에 물로 바보 등신 따위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똑바로 해. 팬티에 물 들어가. 한겨울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셋째 오빠는 등목을 했다. 군대에 갔다 휴가를 나온 큰오빠가 등목을 하는 셋째 오빠를 보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너라면 얼음을 깨고 계곡에 들어가는 훈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겠다. 큰오빠의 말처럼 셋째 오빠는 혹한기에도 입수를 가장 잘하는 병사가 되었다. 셋째 오빠의 생활기록부에는 참을성이 있는 아이라는 평이 있었다. 그랬던 오빠였는데. 오빠가 감옥에 간 뒤로 어머니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소파의 손잡이를 검지 손톱으로 뜯어 가면서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 거기서부터 잘못된 거야. 셋째를 낳고 나니 이상하게 모유가 안 나오더라고. 어머니는 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애는 배고파 우는데 젖은 나오지 않고. 나는 그 말을 십 년 동안 들었다. 미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머니가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혼자서 끝말잇기를 했다. 그때부터였나.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찾아와서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는 오빠들이 우습게 여겨지기 시작한 게. 이름을 바꾼다고 생각하니 이제야 오빠들에게 복수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왜 이름을 바꾸느냐고 물어본다면 오빠들과 돌림자를 쓰는 게 평생 짐이었다고 대답하리라.

 

    *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기 위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과 그 배우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 가면서. 나는 사주에 맞춰 이름을 짓고 싶지 않았다. 장손이라며 작명소에 쌀 두 가마니 값을 주고 이름을 지었던 병곤 오빠의 삶도 평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생명선이 길었던 병준 오빠는 마흔을 넘기지 못했다. 내 운명에 맞는 이름보다는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에서 고르는 게 더 나았다. 케이블 채널을 뒤져 종영된 지 몇 년이 지난 드라마까지 보았는데, 재미있는 드라마가 생각보다 많아서 밥 먹는 시간도 잊곤 했다. 열두 시가 되면 다 같이 식당으로 몰려가는 게 징그럽다는 생각을 종종 했으므로, 아무 때나 밥을 먹는 생활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열한 시가 되면 졸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노트에 이름을 적다 보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소소하게 떠올랐다. 정미는 중학교 일학년 때 전학을 온 아이의 이름이었다. 드라마에서도 깍쟁이 캐릭터였는데, 실제의 정미도 그랬다. 내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정미는 자연스럽게 짝이 되었다. 그전에 짝이었던 아이는 방학 때 강릉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같은 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개학이 되어서야 알게 된 아이들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모두가 죽은 아이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썼다.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짝인 내가 죽은 아이의 집에 찾아가 부모님께 편지를 전했다. 그날, 돌아오는 길에 경운기에 치인 뱀을 보았다. 납작해진 뱀을 향해 반장이 침을 뱉었다. 부반장도 침을 뱉었다. 나도 침을 뱉었다. 우리 잊지 말자. 십대 여자 아이들은 그렇게 다짐을 했지만, 슬픔은 며칠 가지 않았고, 죽은 아이는 기억에서 잊혔다. 그 아이 이름이 뭐였더라. 영으로 시작되는 이름이었다. 나는 노트에 영희라고 적었다. 영주라고도 적었다가 가위표를 그었다. 새 짝이 된 정미는 물에 빠져 죽은 아이가 앉았던 의자에는 앉고 싶지 않다고 했다. 차가운 년. 나는 자리를 바꾸어 주었다. 죽은 짝이 공부했던 책상에는 ‘수학 싫다!’라는 낙서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 난 다음부터 나도 수학이 싫어졌다. 정미는 도시락을 먹을 때 내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았지. 나는 정미라는 이름에도 가위표를 그었다. 은영이란 주인공은 드라마 속에서 끝없이 행운을 맞이했다. 타려던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는데 십 분 후 그 버스가 트럭과 정면충돌을 하거나, 전화를 받으려고 잠깐 걸음을 멈추었는데 한 걸음 앞쪽으로 베란다에 올려놓은 화분이 떨어진다거나,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주인 잃은 개를 찾아주었는데 알고 보니 개 주인이 오랫동안 짝사랑을 했던 남자이기도 했다. 나는 그 드라마가 좋았다. 은영의 주변에는 세 명의 귀신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 그 귀신들은 사랑하는 딸의 곁을, 사랑하는 동생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귀신들은 엄청난 행운을 은영에게 주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복권에 당첨된다거나 하는 일들. 은영은 여전히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나는 노트에 은영이라고 적고 동그라미를 두 번 그렸다. 일주일이 지나자 노트 한 장에 이름이 가득 찼다. 고등학교 때 전교 회장을 했던 아이의 이름이 뭐였더라? 나중에 딸을 낳으면 그런 이름을 지어 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듣기만 해도 똑똑해 보이는 이름이었다는 기억만 나고 이름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이름들이 있다. 듣기만 해도 공부 잘했을 것만 같은 이름. 듣기만 해도 부모님에게 사랑받았을 것만 같은 이름. 나는 노트에 적은 이름들을 하나씩 중얼거려 보았다. 내가 원하는 이름은 뭘까? 듣기만 해도 …… 청춘 같은 이름. 듣기만 해도 …… 운이 좋을 것 같은 이름. 듣기만 해도 …… 긴 머리가 어울릴 것 같은 이름. 아니. 그런 이름은 아니었다. 그래, 듣기만 해도 …… 달리기를 잘할 것 같은 이름! 나는 그런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잘할 것 같은 이름이란 과연 뭘까? 나는 열 개의 이름 후보를 포스트잇에 적어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노란색 포스트잇이 펄럭였다. 나는 일부러 냉장고 문을 세게 열고 닫았다. 떨어질 놈들은 떨어져라. 그런 심정으로. 달리기를 잘할 이름이라면 악착같이 붙어 있을 테니까.

 

    나는 하루 세 번씩 후보인 열 개의 이름을 중얼거려 보였다. 며칠을 그렇게 중얼거려 보니 혜정이라는 이름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를 잘할 것 같지 않았다. 하루 종일 비가 오던 날, 김치전을 부쳐 먹고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나는 우선이라는 이름도 떼었다. 드라마에서 방우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는데,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이십대 대학생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우선이라고 발음해 보니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산이라고 놀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에 하나씩 이름 후보들을 탈락시켰다. 갑자기 여름이 찾아왔다. 이제 곧 학교는 방학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기간에는 점심을 먹고 난 뒤 혼자 교실 복도를 걷곤 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빈 교실. 그게 좋았다. 학생 때도 나는 빈 교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일을 그만둔 건 섭섭하지 않았는데 그 복도는 그리웠다. 중학교 건물에는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다 왼쪽으로 꺾으면 갑자기 서늘해지는 지점이 있었다. 한 발짝 디디는 순간 지하실에 들어선 것처럼 오싹해졌다가 다시 한 발짝 디디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기분이 사라졌다. 나는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마다 거기를 찾아갔다. 거기 서서 심호흡을 서너 번 하면 내가 꽤 이성적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방학이라고 생각해 볼까? 나는 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어머니는 방학 첫날이면 우리들에게 생활계획표를 그리게 했다. 그게 이름이 뭐였더라. 가위처럼 생긴 도구였는데. 그걸로 동그라미를 그리면 정중앙에 바늘구멍이 생겼다. 큰오빠는 생활계획표라고 적고는 그 옆에 두 눈동자를 그려 놓곤 했다. 누군가 약속을 지키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넷째 오빠의 생활계획표에는 ‘가만히 있기’라는 칸이 있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오후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였다. 부엌 뒤쪽에 있는 쪽문으로 나가면 오래된 의자가 하나 있었는데 넷째 오빠는 주로 거기 앉아서 ‘가만히 있기’ 계획을 실천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던 장소였다고 했다. 나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베란다에 의자와 탁자를 들여놓으면 어떨까? 거기 앉아서 책도 읽고, 해가 지는 것도 구경하고, 또 꾸뻑 꾸뻑 졸기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직장 동료들과 장난으로 본 인터넷 사주에서 나는 그렇게 노년을 보낸다고 했다. 말년에는 화초를 키우거나 서예를 하면서 보낼 상입니다, 라고.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노년이라니. 그건 십 년 후, 아니 이십 년 후의 일이었다. 나는 내일 당장이라도 복싱이나 암벽등반 같은 운동을 시작할 자신이 있었다. 한국어 자격증을 따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도 하고 싶었다. 중국어도 배울 것이고,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이 도대체 뭔지 책도 찾아볼 것이다. 스케치를 배우는 것도 꿈이었다. 이미 노트와 연필도 사두었다. 물론 근사한 필통도. 바꾼 이름으로 학원에 등록할 것이고 바꾼 이름으로 자격증을 딸 것이다. 나는 오늘이 방학 첫날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맨바닥에 누웠다. 여름방학이라고 생각하니 마루에 누워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해야만 할 것 같았다. 구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름이 하늘에 있다고 상상을 해보았다. 그만 뒹굴어. 누군가 내게 그런 잔소리를 해주었으면. 방학이 끝날 때까지만 이대로 있고 싶어. 나는 부러 투정을 부리는 말투로 말해 보았다. 늦잠을 자던 나를 깨우던 엄마에게 하던 것처럼.

 

    *

 

    매주 월요일은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나는 월요일이면 장터에 나가 떡볶이와 순대를 사먹었다. 그리고 노각을 서너 개씩 샀다. 내게 노각을 파는 총각은 노각을 물외라고 불렀다. 어느 지역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노각보다 물외가 더 예쁘게 들렸다. 새콤달콤하게 노각을 무쳐 밥에 비벼 먹으면 여름을 여름답게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각무침을 비빔국수 위에 올려 먹는 것도 좋았다. 냉국을 해먹는 것도 좋았다. 나는 남은 후보 중에서 은영이란 이름을 떼어냈다. 은영의 행운은 드라마에서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지원과 진명. 두 이름만 남았다. 거울을 보고 지원아, 하고 불러 보았다. 진명아, 하고도 불러 보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둘 다 달리기를 잘할 것 같았다. 나는 냉장고 앞에 서서 입 바람을 불어 보았다. 힘껏 불었다. 진명이란 이름을 적은 종이가 펄럭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제부터 내 이름은 지원이야. 나는 남은 한 장의 포스트잇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은. 이병자 씨 전화인가요? 전화를 건 사람이 물었다. 이병자. 이름을 바꾼다고 생각한 뒤로 다른 사람 입으로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나예요. 박우석. 너무 오래간만에 들어 본 이름이라 나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떠올리지 못했다. 나예요. 박우석. 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얼마 전에 결혼식장에 갔다가 우연히 작은아버지를 알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고,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일한다는 학교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학교에 전화를 해서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연락처를 받고 전화를 할까 말까 며칠은 망설였다고, 그는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했다.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조금만 당황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버릇 때문에 고민하던 이십대 시절의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가 물었다. 목소리가 늙었다고 생각하니 이제 와서 얼굴을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가 내일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말했다. 혹시 싫으면 전화를 안 받아도 돼요. 그가 말했다. 그를 소개시켜 준 사람은 내가 처음으로 일을 했던 학교의 교감선생님이었다. 나를 예뻐해서 아들만 있으면 며느리 삼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던 분이었는데, 그와 헤어지게 된 일을 두고 오랫동안 미안해하셨다. 몇 년 뒤, 교감선생님은 지리산 등반을 갔다가 실종되어 보름 뒤 시체로 발견되었다. 방학 때면 전국의 산을 다니는 게 취미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교감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부인이 옆에 있어서 나는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날, 로마경양식집이라는 곳에 가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었다. 세상에. 아직까지 그 경양식집 이름이 생각나다니. 가게 이름은 로마경양식이었는데 벽에는 베네치아의 풍경이 그려진 대형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가 자기가 다녔던 대학 앞에는 베네치아라는 경양식집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고 말해 주었다. 감탄사를 아껴라. 베네치아에 가기 전까지는. 그러면서 자기는 베네치아와 베니스가 같은 곳인지 그때까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에게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늘 헷갈린다고 말해 주었다. 함박스테이크를 먹고 우리는 <쾌찬차>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는 원표라는 배우를 좋아했다. 그해 우리는 많은 영화를 보았다. <그렘린>이란 영화를 보고 내게 영화에 나오는 인형을 사준 적도 있었다. 그는 내가 조금이라도 화를 낼 기미가 보이면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 마요. 길을 걷다가 꽃을 꺾는 아이라도 보게 되면 그 말을 했다. 그러지 마요. 그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늘 존댓말을 했다. 우리는 꼬깔콘이라는 과자를 먹으면서 가장 예쁜 고깔 찾기 놀이를 하곤 했다. 구부러지지 않은 고깔. 허리가 반듯한 고깔. 마지막이 뾰족한 고깔. 그와 헤어지고 난 뒤에 나는 주차금지 구역에 세워 놓은 라바콘만 보아도 화가 났다. 어떤 날은 그 주황색 원뿔들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내겐 화풀이를 할 상대가 없었다. 그에게 다시 전화가 오면 받지 않으리라. 나는 휴대폰 벨소리를 진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대신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종이에 카페 이름과 약도를 그려서 그걸 사진으로 찍어 전송한 것이었다. 두 시에 봐요. 다섯 시까지만 기다릴게요. 약도 아래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것일까? 카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혹시 맞은편에 다른 카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일찍 집에서 나왔다. 맞은편 카페에 앉아서 그가 오는 모습을 구경만 할 것이다.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날이 더워서 마을버스를 탔다. 두 정거장 후에 내려 카페가 있는 골목길을 걸어 보았다. ‘점심 한식 뷔페 5000원’이라고 적힌 식당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 한 끼도 먹지 않았다. 입에 맞는다면 집에서 밥을 해먹는 것보다 여기서 끼니를 해결하는 게 더 경제적일 것 같았다. 언젠가 토크쇼를 보다 어느 여배우가 남편이 죽은 후로 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은퇴를 하면 밥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달걀찜이 좀 따뜻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단체로 들어왔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아서 부엌에서 직원 두 명이 나와 배식을 도와주었다. 지난번에 파래무침 맛있던데. 그거 없어? 대화를 들어 보니 인근 경로당에서 단체로 온 듯했다. 나는 오이무침이 새 반찬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먹는 걸 포기했다. 마지막 두 숟가락이 남았는데 갑자기 배가 불러왔다. 그릇을 반납하는데 직원이 맛있게 드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또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대학이 하나 있는데 다음에는 거기 구내식당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젊은 아이들 사이에서 밥을 사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밥을 먹고 나니 그를 만나는 게 뭐가 문제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면 그만이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카페를 찾아갔다.
    두 시가 되려면 삼십 분이나 남았는데 그가 이미 와 있었다. 나는 커피를 그는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걸을 때 보니 그는 다리를 살짝 절었다. 염색을 했는지 흰머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게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어머니는 그를 좋아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엄마,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요. 아버지처럼 중간에 말을 자르지 않아요. 나는 그에게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고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그가 말했다. 요양원에 계신 지 팔 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자식들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고 그가 덧붙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야 고향집을 부쉈어요. 거의 폐가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건드리지 못하게 하셔서. 그 집터에 형제들이 돈을 모아 사층 건물을 짓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포클레인으로 집을 허무는 걸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병자 씨를 한번 만나야겠다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어머니는 내게 살인자의 동생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내게 자살한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느냐고 물었다. 불쌍한 것. 불쌍한 것. 그러면서 내게 막내며느리는 발랄하고 구김살 없는 여자로 얻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에서 나왔다. 그의 할아버지가 전국에서 가장 솜씨가 좋은 목수를 데려다가 지었다는 집이었다. 터가 좋아서 아들 셋이 모두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다는 집이었다. 나는 그때 그의 집을 나오면서 기도했다. 그가 나를 따라 나오길. 따라 나와 내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길. 그날, 나는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만 보고 걸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왜 내가 생각났는지 나는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제 이름은 병자가 아니에요. 지원으로 바꾸었어요. 그는 냅킨으로 유리잔에 맺힌 이슬을 닦았다. 탁자 바닥의 물기도 닦았다. 병자 씨. 예쁜 이름이었는데. 그가 혼잣말을 했다. 카페에는 커피보다는 팥빙수를 사먹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는 화장실에 가다가 팥빙수의 팥은 직접 집에서 만든다는 안내 문구를 보았다. 그래서 카운터에 들러 팥빙수를 주문했다. 단것이 먹고 싶어서요. 팥빙수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면서 내가 말했다. 그는 말없이 팥빙수를 먹었다. 나는 팥빙수를 먹으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고향집을 팔아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큰오빠 욕을 했다. 간암으로 죽어버린 막내 오빠 욕도 했다. 창원에서 쌀국숫집을 하면서 그럭저럭 살고 있는 둘째 오빠 욕도 했다. 작년에 손녀 돌잔치를 했는데 나를 초대하지도 않았다고. 그는 내게 부인이 죽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통사고였는데 부인은 죽고 자기는 살아남았다고. 나는 그가 다리를 저는 것이 사고 후유증은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한국이 지긋지긋하다며 스페인으로 떠나버렸다고. 거기서 결혼식을 올렸다는데 자기는 아직 며느리의 얼굴도 못 봤다고. 그는 아내가 죽은 뒤로 편의점 전문가가 되었다고 했다. 병자 씨도, 아니 이제 지원 씨라고 했나요, 암튼, 밥하기 지겨울 텐데 편의점 도시락 먹어요. 생각보다 맛있어요. 그러다 그가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선해지거든 우리 도시락 싸가지고 공원에 가요. 나는 팥빙수에 들어 있는 인절미를 골라 먹었다. 그러고는 탁자 위에 올린 그의 손에 내 손을 가볍게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지 마요.

 

    *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일곱 번이나 틀렸다. 태풍이 온다 그래서 나는 소파의 방향까지 바꾸었다. 거실 창 바로 앞으로. 아로마 향초도 하나 사두었다. 소파에 앉아 비를 실컷 구경할 마음으로. 그랬는데 태풍은 오지 않았다. 소나기 예보도 번번이 벗어났다. 후두둑. 비가 떨어지는 것 같아 소파에 앉아 보니 이내 비가 그쳤다. 장터의 야채 가게 주인이 바뀌었는지 더 이상 노각을 가져오지 않았다. 물외라고 말하던 청년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끔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끓였던 물을 또다시 끓이면 안 된다거나 특정 번호로 전화가 오면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거나 하는 내용들이었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보다 좋은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었는데 그런 말을 믿다니.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며 아래층 남자가 찾아왔다. 남자는 늘어진 메리야스를 입고 있었다. 가슴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늘어난 메리야스를 보니 난닝구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난닝구. 사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단어들을 보면 왠지 슬퍼졌다. 아파트 현관을 들고 날 때마다 메리야스만 입은 채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을 종종 보는데,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들을 비웃곤 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음식을 나르는 식당에는 가지도 않았다. 야구 모자를 쓰고 택시 운전을 하는 기사들도 싫어했다. 아무래도 원인이 이 집에 있는 것 같아서. 아래층 남자가 말했다. 나는 남자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남자는 내가 보는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2468. 숫자를 외우고 싶지 않았지만 나열이 너무나 쉬워 잊는 게 더 어려울 것만 같았다. 내가 남의 집 비밀번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불쾌하게 느껴졌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둘 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한 곳에는 드라마가, 다른 한 곳에는 배구 중계가 틀어져 있었다. 얼핏 보니 지난 주말에 했던 드라마의 재방송 같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약 이십 분 후 주인공 여자가 뺑소니차에 치일 것이다. 남자가 천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처음에는 여기가 갈색으로 변하더라고. 그러더니 점점 갈색이 이쪽으로 번지더니, 어제부터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물은 거실 형광등 근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 양은냄비가 놓여 있었다. 어제는 일 분에 한 방울씩. 오늘은 삼십 초에 한 방울씩. 남자가 말했다. 나는 냄비에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냄비를 발로 건드리며 말했다. 냄비가 하나라 라면도 못 끓여먹고 점심엔 사발면을 먹어야겠네. 내가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가 농담이라며 웃었다. 그러니 빨리 고쳐 달란 말이에요. 그때 작은 방에서 누군가 남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애비야. 잠깐만요. 남자가 내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내 나와 부엌으로 가서는 물을 한 잔 들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한참 걸렸다. 나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텔레비전 옆 장식장에는 아이의 사진이 있는 액자가 서너 개 놓여 있었다. 모두 같은 아이였다. 남자의 얼굴과 비슷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똑. 물이 떨어졌다. 냄비를 들여다보니 꼭 오줌물이 고인 것 같았다. 나는 작은 방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고쳐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관리사무소에 가서 사정을 말했더니 누수 탐지 전문 업체를 소개해 주었다. 여직원이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한 달에 한 번 꼴로 누수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꼭 여기서 안 해도 상관없어요. 알아보고 더 저렴한 곳이 있으면 거기서 하세요.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여직원이 일러준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내일 아침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걸어 보았다. 총 2400세대가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구조는 모두 똑같았다.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 내 이름으로 된 첫 번째 집이었다. 빚을 갚는 데만 십 년이 넘게 걸렸다. 나는 이 많은 집들에 파묻혀 있는 파이프들을 생각해 보았다. 삼십 년 동안, 막히지 않고, 터지지 않는, 파이프들. 나는 암에 걸려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제발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일만은 없었으면. 갑자기 오메가3가 생각났다. 이 년 전인가. 이사장이 전 직원에게 추석 선물로 비타민C와 오메가3를 선물로 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비타민만 먹고 오메가3는 어딘가에 넣어 두었던 기억이 났다. 당장 찾아야지. 오늘부터 하루에 한 알씩 오메가3를 먹을 것이다.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지 않도록. 그나저나 인간처럼 CT를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시멘트 덩어리 안에서 물이 새는 곳을 어떻게 찾아낼까? 아파트 정문 옆에 있는 공원에서 분수를 틀어 놓았다. 바닥에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였는데 물줄기가 약해졌다가 세졌다가를 반복했다. 아이 하나가 강아지와 분수를 피해 가며 놀고 있었다. 애 엄마는 어디 있나? 주변을 둘러봐도 어른은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편백나무 욕조를 가지고 싶었다. 작년에 편백나무 욕조를 전문으로 제작한다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견적을 문의해 보기도 했다. 엄두가 안 날 정도의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금액도 아니었다. 편백나무 욕조를 생각해 보니, 거실 수리비와 아래층 도배비가 아까웠다. 나는 발소리가 날까 봐 집에서는 늘 슬리퍼를 신었다. 식탁 의자도 끌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일러 파이프가 터진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수에서 노는 아이를 보니까 얼마 전에 봤던 동물원에서 코끼리가 돌을 던져 구경을 하던 아이가 죽었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이런 꿈을 되풀이해서 꾸었다. 아버지와 네 명의 오빠들이 낚시터에 앉아 있었다. 매미가 요란하게 울었다. 꿈속에서도 귀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머니는 해먹에 누워 있었다. 이게 이름이 뭐라고?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해먹이라고요.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젊고 예뻤다. 내가 태어나기 전, 큰오빠를 낳기도 전, 이십대의 얼굴 같았다. 해먹에 누워 어머니가 낚시를 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소리쳤다. 많이 잡아. 다섯 남자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도 젊고 예뻤다. 오빠들도. 모두들 이십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얼굴을 확인해 보고 싶어 저수지로 달려갔다. 하지만 한 번도 내가 몇 살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물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늘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신발을 벗고 분수로 걸어가 보았다. 물줄기에 발바닥을 대보았다. 간지러웠다. 강아지와 같이 놀던 아이가 내게 다가와 여긴 아이들이 노는 데예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여긴 애완동물 출입금지 구역이야. 하지만 어른이 나밖에 없으니 내가 모른 척 해줄게.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가 젖은 티셔츠를 벗어서 물기를 짜내더니 다시 입었다. 방학인데 어디 안 가니? 내가 물었다. 아이가 방학이라 할머니 집에 온 거라고 말했다. 원래는 아빠랑 둘이 살아요. 그래서 방학 시작하면 할머니 집에 왔다가 방학 끝나면 아빠한테 가요. 나는 아이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강아지가 나를 보고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넌 든든한 친구가 있구나. 내가 말했다. 이제 곧 아빠한테 가겠네. 방학이 끝나 가잖아. 내 말을 듣던 아이가 갑자기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방학이 끝나면 우리 할머니 슬퍼서 어떻게 해요. 그러더니 갑자기 아이가 집으로 달려갔다. 강아지가 아이를 따라 뛰었다. 나는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물이 나오는 시간이 끝났는지 분수는 작동을 멈추었다. 지금 누군가 날 본다면 비도 오지 않았는데 옷이 젖은 걸 이상하게 여길 것만 같았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었다. 속옷이 비칠 것이다. 누가 보면 어때. 나는 창피해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여름방학 때는 누구나 물놀이를 하는 법이니까.

 

 

 

 

윤성희 소설가

작가소개 / 윤성희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웃는 동안』, 『감기』, 『베개를 베다』, 장편소설 『구경꾼들』이 있다. 2011년 제11회 황순원문학상, 2013년 제14회 이효석문학상, 2015년 제23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부문 수상.

 

   《문장웹진 201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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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안

… 너무 잘 보았습니다. 회사인데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네요… 괜히 문득… 제가 다 서글퍼집니다. 잃어버린 것들을 잊고 싶네요…

김부용

퇴직하는 장면이 슬프네요. 저도 며칠 안 남았거든요…
퇴직 후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담담하면서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