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풍경 - 채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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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뼈의 풍경

 

 

채현선

 

 

 

1.
    여름이 끝나 갈 무렵에는 폭풍이 분다.
    세상을 뒤집어엎으며 비와 바람이 거센 회오리로 일어서는 밤.
    후드드 창문이 흔들리고 담쟁이덩굴이 몸을 꺾으며 우는 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누워 소리를 듣는다. 폭풍이 집어삼키는 어둠을 상상하며, 수런거리는 숲과 나무와 바람의 결에 몸을 맡기는 것들의 소리가 내 공간 속으로 스미도록 내버려둔다. 다 가버리고 그저 고요뿐인 것들, 그것은 뼈의 풍경이다. 살점이 발리고 핏줄이 무늬처럼 남은 뼈로서 기억되는 순간, 안도하며 흙의 숨을 쉬는 풍경, 사랑스럽다.

 

    열어 둔 창문으로 빗방울이 비쳐들었다. 사방에 아직 푸슬푸슬한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이다. 방바닥으로 쏟아지는 작고 서늘한 물의 알갱이들을 보자 무시로 솟아나는 혓바늘처럼 잠들지 못했던 밤의 뒤척임이 떠오른다. 머리맡의 메모지에 밤새 끼적여 놓았던 문장들을 들여다본다. 내가 쓴 것이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글자들이 까만 벌레처럼 깜박거린다.
    텃밭으로 나와 상추를 뜯는데 금세 속옷이 다 젖었다. 쪼그려 앉아 움직이다 보면 이파리의 이슬이 엉덩이를 쓸며 속옷까지 스민다. 우우 숲처럼 날마다 푸른색들이 일어서기에 하루도 거를 수 없다.
    무성하게 키가 자란 토란잎마다 물이 고여 있다. 호미로 살짝 건드리자 땅바닥으로 잎의 물이 성급하게 쏟아진다. 토란은 생각보다 토실하게 살이 올랐다. 나는 이 집에 살면서는 여름에 주로 상추를 따고 가을에 토란을 캔다.
    토란으로는 어떤 요리를 해도 질리는 법이 없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점점 뿌리를 뻗어 나가더니 텃밭을 가장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저쪽에 심어도 이쪽까지 뻗을 정도로 번식력이 무섭다. 국을 끓이거나 가루를 앉혀 부침을 해먹는 게 가장 맛있다.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 아린 맛과 독을 빼고 다시 쌀뜨물에 데쳐내야 하지만 귀찮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고요한 이 집에서 하루를 보내려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토란을 솥 가득 넣고 불에 얹어 끓이면 뽀얗고 조금은 걸쭉해진 상태가 된다. 그 시원하고 고소하게 뜨끈한 국물을 떠먹으면 온 가을을 내가 다 먹는 기분이다.
    내 유년의 할머니는 토란 이름이 불알이라고 알려주었더랬다. 나는 한동안 털이 부숭부숭하고 까맣고 밑으로 처진 모양의 토란을 불알이라는 이름으로 알았다. 눈이 새까만 여덟 살 아이에게 불알을 가르쳤다며 아버지가 세숫대야를 마당에 내던진 후에야 바로 알았다.
    집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려다 속옷만 갈아입었다. 햇볕에 잘 마른 냄새와 촉감에 기분이 나아졌다.
    아침부터 옆집 노파가 왔다.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 보니 노파가 서 있다.
    마루 끝에 앉아 누렇고 탁한 눈동자를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늘 웃지만 나는 그녀를 기괴한 노파라 여기고 있다.
    "몇이나 지나갔누? 다리 사이로 말이다."
    방에 그대로 앉아 있는 나더러 대뜸 묻는다.
    매번 이런 식으로 노파는 묻고 나는 대답하지 못하며, 노파는 웃고 나는 어두운 얼굴이 된다. 치아가 없어 홀쭉한 볼로 웃는 웃음에 늘 무력한 이유는 모르겠다. 노파는 인기척을 내지 않으면 기어이 문을 열어젖히고 안부를 확인하는 사람이다.
    노파는 내가 나물을 좋아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지만 직접 내 손에 쥐여 주지 않는다. 슬며시 마루 끝에 비닐봉투를 놓아두거나 마당 수돗가에 바구니를 놓고 가거나 한다. 계절을 거스르거나 혹은 계절의 것이거나 갖가지 마른 식물을 말없이 가져온다. 왜 아무 말 없이 놓고 가는지는 알 수 없다.
    된장과 채소만 넣는 상추쌈이 지겨워 참기름을 듬뿍 넣어 상추무침으로 아침을 먹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앞집 여자인 리사가 왔다. 노파와 리사는 우리 집 뒤뜰의 상추를 뜯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눈이 시리게 푸른빛의 식물을 향한 그녀들의 걸음은 집요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곱다, 곱다, 하며 엉덩이에 흙이 묻는지도 모르고 상추를 뜯는다.
    스물셋의 리사는 붙임성이 좋아 나는 친절한 리사라 부른다.
    그녀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선한 인상에 피부는 하얗다. 처음 봤을 때 필리핀이나 베트남 쪽이 아닐까 했는데 몽골이란다. 외국인이기는 해도 이런 시골, 그것도 몇 가구 살지 않는 곳에선 보기 드문 젊고 아름다운 여자다. 부모와 여덟 형제가 게르 하나와 그 옆에 초가집 같은 걸 지어 놓고 함께 늙어 가고 있다고 했다. 함께 사는 것이 아닌, 함께 늙어 간다니. 나는 좀 묘한 기분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어 교육을 받았다는데 제법 잘해서 말을 못 알아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리사가 송금하는 돈으로 부모님은 야크를 열 마리나 샀고 이웃이나 손님이 올 때마다 자랑한다고 했다.
    리사는 상추 이파리처럼 푸르고 투명한 빛이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기운이 솟는다. 어느 날은 팔 여기저기에 푸른 멍을 달고 오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옷 속은 더 짙은 멍이 있을 거였지만 더 묻지 않았다. 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을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닐뿐더러 나도 엿보고 싶지 않다. 또 어느 날엔 눈에 시퍼런 멍을, 며칠 후에는 코가 부어오른 얼굴로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나도 배시시 웃어 주었다. 리사가 유일하게 말을 섞는 게 나인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 굳이 묻지 않는 내 방식 때문일지 모르겠다.
    생각을 더 하지 말자 하는데도, 얼마쯤을 더 미끄러져 나가 리사와 그녀의 남편이 벌이는 한밤의 소리 없는 장면에 가닿는다. 퍽퍽, 베개 같은 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며칠 잠잠하다 푹푹, 무언가를 찔러대는 소리가 건너오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잘못 알았다.
    그들의 싸움이 일방적인 것만은 아님을 리사의 남편을 보고 알아차렸다. 그는 일주일 만에 집 밖으로 나와 다리를 절룩이며 일터로 출근했다.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리사가 남편 이야기를 한 건 딱 한 번이다. 남편이 주먹을 휘두르면 자기는 칼을 휘두른다고 했다. 멋지구나, 나는 그런 말을 해주었다.
    리사는 청소를 잘한다.
    내 집에 오면 대뜸 걸레를 집어 들고 마루부터 닦는다. 처음에는 미친 여자가 아닐까 했지만 리사가 오고 내 일상에서 귀찮았던 일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소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분명 손이 가야 하는 일, 그런 것들이 사라지자 나를 둘러싼 일상은 단순한 동선으로 정리되었다. 해를 끼치지 않는 것들이므로 리사의 호의가 권태로울 정도로 편안했다.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상추를 가져가는 값이 아닐까 나는 짐작한다.
    그 외에는 고요의 시간이었다.
    낮은 곳에서 벌레 기어가는 소리도 들릴 듯한 적요, 나는 그 속에 있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무엇도 스미지 않은 게으른 시간이다.

 

2.
    바람도 불지 않아 먼 곳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 한가운데 있으면 밤이 부드럽고 물컹한 흐름으로 지나간다. 내가 있는 세상은 낡은 집과 나뭇결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마루와 텃밭이 다라고 할 수 있다.
    계속 그랬어야 한다.
    "비 내리는 계절은 끝났어."
    등에 업힌 노파가 말했다. 노파 말대로 비는 이제 그쳤고 가을을 부르는 바람이 시작될 거였다.
    비로 사방의 숲은 축축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 따위를 스친 옷이 몸으로 감겨들었다. 자동차가 있더라도 이곳은 오지나 다름없어 눈이나 비가 내리면 일단 고립을 예상해야 한다. 사람이 아닌 휘돌거나 순환하는 자연의 결에 몸을 맡기며 살아야 하는 곳이라 했다.
    걸음을 멈춰 노파를 추어올린다.
    등 뒤에서 따뜻한 몸뚱이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헉 하고 딸꾹질 소리를 냈다. 노파는 막대사탕을 핥는 중이다. 사탕은 리사가 떠나기 전에 주었다. 황토빛 종이봉투를 내밀기에 뭔가 했더니 막대사탕이 들어 있었다. 소중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잊어버리지 말라고 몇 번씩 당부했다. 사탕은 빨강과 파랑과 흰색이 알록달록한 선을 이루며 나선으로 모아지는 막대 모양이고 몽골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곳에서는 좀체 구하기 힘든 것이라 귀한 선물로나 주고받는다 한다.
    쩝쩝쩝, 사탕 핥는 소리가 뒷목을 타고 오른다. 참 마뜩찮은 노인네다.
    처음 마을로 들어와 인사를 갔을 때 인상이 끝내 변하지 않는다. 마루에 앉은 노파는 작고 검게 쪼그라든 감자처럼 보였다. 파마를 한 지 오래되어 머리카락들이 구불구불 아무렇게나 흩어진 모습으로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들이 맥없이 허공에 떠 있었다. 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나는 거무스름한 몸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하얗기만 한 손바닥을 오래 들여다보기만 했다. 노파가 사는 흙벽의 집처럼 손바닥은 아무런 생기가 없었다. 노파의 세상은 허물어지는 중이고, 그렇게 허물어져 사라지는 게 흙집일지 노파일지 알 수 없겠다 생각하며 뒤돌아섰더랬다.
    노파를 업은 채로 몸을 조금 구부려 사탕의 비늘을 뜯는다.
    금방 죽을 것처럼 방바닥을 뒹굴더니 사탕봉지를 안고 내 등에 얌전히 업혀 있다. 괜찮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병원을 고집한다. 기괴하고 마뜩찮고 알 수 없는 노인네다.
    "줘."
    "까고 있잖아요."
    나는 사탕 껍질을 땅바닥에 그대로 버렸다.
    "까고 있다니, 까고 있다니."
    노파가 사탕을 받아들며 쿡쿡 웃음소리를 낸다. 늘 그랬듯 일그러뜨린 표정, 누르스름한 흰자위 위로 자잘한 실핏줄들이 솟아 있을 터였다.
    "벗기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지."
    작은 입으로 말을 잘도 한다. 노파는 한쪽 팔로 내 목을 감싸고 나머지 한 손은 막대사탕을 쥐었다. 가죽만 남은 뼈다귀 같은 팔이 목울대를 눌러 숨쉬기 힘들다.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지금은 상당히 무거워졌다. 처음 업었을 때만 해도 사람이 한줌의 재로 돌아간다는 말이 작고 가벼워지고 볼품없어진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했더랬다.
    숲의 길을 걸어 산을 넘어가려면 족히 삼십 분은 더 걸어야 한다.
    이 길을 오르며 대충 시간을 계산했으니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였다. 쏴아아 바람이 불자 습습한 공기가 얼굴로 다가왔다 흩어진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내 이마로 흘러내렸다.
    "추워."
    아까보다 몸을 웅크렸는지 노파를 감싼 팔 사이가 조금 좁아졌다.
    노파 말대로 이제 계절이 바뀌겠지만, 숲 속이라 해도 추위가 느껴질 날은 아니다. 나는 아무 대답 없이 숲길을 걸었다. 노파가 다른 쪽 팔을 목으로 둘러 왔다. 또다시 목울대를 눌러 마른기침이 나온다. 사탕만 아니라면 노파는 두 팔로 내 목을 바짝 그러안았을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등 뒤에서 사탕을 깨물어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무언가 바스러져 나는 자주 균형을 잃었다. 노파는 저 사탕을 다 먹고 나면 더 달라 보챌지 모른다. 도대체 리사는 왜 사탕봉지를 남겼나 모르겠다.
    "응?"
    노파가 내 귀에 입을 바짝 붙이고 물었다. 뜨거운 입술이 귓바퀴에 닿았다. 오랫동안 이를 닦지 않았는지 입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지금은 괜찮은 거예요?"
    나는 되물으며 머리를 반대편으로 살짝 기울였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찔러댔다. 쩝쩝 입맛을 다시던 노파는 또 말이 없다. 한 번 더 물었는데도 그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고 등 뒤에서 고요해졌다.
    노파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으니 조용한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조용했던 것은 윤, 그는 그런 모습으로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아마 그랬던 모양이라 나는 여기고 있다.

 

3.
    리사는 웃는 여자.
    처음 마주했던 순간은 여태 선명하다.
    리사를 보면 누구나 그렇다. 사람이 그토록 환한 빛일 수 있을까. 리사가 나타나면 동네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본다. 왁자하게 말을 주고받고 웃다 리사가 지나는 순간만큼은 정지화면이 된다. 부드러운 물의 흐름 같은 뒷모습이 작은 점으로 변하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면 머리를 모아 수군거렸다.
    무리에 끼어 본 적 없는 나로선 그들이 무슨 비밀을 나누는지 알 수 없다. 좋은 얘기일 리 없다. 사람들은 험담을 보란 듯이 떠벌리지 않는다. 깊고 어둡고 은밀할수록 달콤할 것이고 개미떼가 꼬이기 마련이라 언제나 비밀의 말을 몰고 다니는 리사다.
    리사는 한국말을 잘하지만 말을 나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유일한 한국 친구고 이곳이 타향인 나도 마찬가지다. 담 너머로 보이는 이국에서 온 아름다운 여자, 초원에서부터 시작된 햇볕 알갱이가 쏟아져 내려 코를 간질이는 묘하게 푸른 여자. 먼저 인사를 한 것은 내 쪽이다. 상추 좀 뜯어가요, 내가 말했고 알았어, 리사가 대답했다. 반말이 참 우습고 귀여워 나는 한참 웃었다. 리사가 따라 웃었고, 다음날부터 상추를 뜯으며 한 뼘쯤 가까워졌다.
    "너 정원은 빛나. 다른 곳 안 그래. 너 정원은 특별해. 알아?"
    상추를 뜯은 지 한 달쯤 됐을까, 리사가 말했다.
    "특별해. 내 정원은 빛나. 나도 알아. 이미 알았어."
    거짓말이다. 리사 말을 듣고서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푸르게 일어선 물기 머금은 식물들이 햇빛 아래서 아름다웠다. 내 텃밭의 풀빛은 다른 집들의 것보다 두 배로 짙고 선명하고 키가 크다. 이파리가 억세 보여도 만지면 우윳빛을 띤 벨벳처럼 부들부들했다. 곳곳에 피어난 꽃은 방치하듯 내버려두어도 잘도 자라나 꽃잎을 펼치고 줄기 밖으로 잎을 떨어뜨리고 다시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잡초를 뽑다가 뿌리를 할퀴어 놓아도 며칠 후면 흔적도 없이 아물고 땅속으로 더 깊게 파고들었다.
    리사가 식물들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다.
    포클레인을 불러 자신의 집 뒷마당을 파고 반듯하게 다졌다.
    내 텃밭은 상추와 토란이 주를 이루지만 리사는 여러 식물을 심었다. 나로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몽골의 채소들이다. 삭막한 들판이 거의 대부분인 몽골에도 그렇게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자란다는 게 신기했다.
    리사의 채소들은 내 것의 싱싱하고 선명한 빛을 따라잡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그만 하면 훌륭했다. 문제는 리사와 그녀의 남편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채소가 자란다는 거였다.
    노파가 기침을 하더니 퉤, 하고 가래침을 땅바닥에 뱉는다.
    굵은 빗방울이 또 후두둑 내 목덜미로 쏟아진다.
    "태풍이 지나가고 바다가 뒤집어져야 다시 고기가 많이 잡힌다. 기다릴 줄 알아야지. 숨도 쉬지 마라."
    잠잠하던 등 뒤의 노파가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안 쉬면 죽어요."
    "우린 다 죽어. 공평하지."
    비가 여러 날 내렸으므로 숲이 온통 물기로 가득한 것은 당연하다. 내리지 않은 날들이 없기에 마를 새도 없었겠다. 나는 노파를 엎고 걷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의 장면 같은 것들을 자주 떠올렸다. 햇빛이 사방을 흐르듯 떠다닌다. 아주 천천히 움직여서 늘 몸으로 달려드는 먼지처럼 보였다.
    "응? 응?"
    노파가 내 귀에 입을 붙이고 무언가를 묻는다. 이번에는 온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얼마 동안 씻지 않아야 저런 냄새를 풍길 수 있나.
    "산다는 게 그래. 실망이 끊이지 않는 법이지."
    귀신도 아니면서 내 생각을 들여다본다. 나는 기괴한 노파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녀도 그걸 안다.
    "누가 산 것이고, 누가 죽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냐."
    나는 생각도 다물기로 한다. 이상한 말들을 해대는 사람과는 생각이든 말이든 섞지 않는 게 좋다. 노파가 캑캑거리며 기침을 하고 그 움직임을 따라 내 몸이 허공으로 한 뼘쯤 솟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노파와 닿은 등이 눅눅한 빨래처럼 몸에 감긴다.
    "한없이 깊고 어두워서 추워. 손이 떨리고 온몸이 떨려."
    노파가 말했다. 이렇게 조금씩 노파는 내 몸으로 스미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종내에는 심장 깊은 곳까지 휘돌겠지. 이상한 사람과 함께 있으니 자꾸 묘한 쪽으로 흐른다.
    "조금만 더 걸으면 돼요. 참아요."
    그렇게 말했지만 나도 자신은 없다. 아까 보았던 나무들이 다시 보였다. 몇몇 나무 몸통에 하얀 선이 그어져 있다. 곧 베어질 고사목 같은 건가 싶다.
    "도시에선 무엇을 보며 살았니?"
    노파 말에 도시의 복잡한 풍경이 순식간에 몸을 불리며 일어선다. 시끄럽고 끈적끈적한 사람들의 살과 닿는 일은 지금도 끔찍하다.
    "사람들, 시끄럽고 더럽고 싸늘한 사람들과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 같은 것들. 다들 불쌍한데 또 다들 불쌍한지도 모르고 살아."
    "세상으로 나와 목숨 달린 건 다 불쌍하지."
    "그래요. 다들 끝장나거든."
    "도시 나가면 내 신발이나 한 켤레 사다오.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시멘트 덩어리 사이로 바글바글 사람이 끓더라. 신발 가진 것들은 죄다 집 밖으로 기어 나와 뽈뽈뽈 다니는 곳이 아니냐."
    노파 말에 나는 하하 크게 웃었다.
    발밑에서 소리가 들리면 나뭇가지겠지 싶어 내려다보게 된다. 사람들의 발길로 반질하게 닳은 평평한 땅만 보였다. 노파를 업고 있지만 내 발은 쉬지 않고 땅을 밟아 나간다. 예전 자동차가 있을 때 액셀러레이터를 오른발로 밟았더랬다. 이곳으로 와 유일하게 그리운 게 있다면 운전을 했던 날들이다.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 버튼을 누르고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람을 움켜쥔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몸에 새겨진 감각들. 떨어지는 컵을 향해 반사적으로 손을 뻗거나 피하는 일들. 위협을 느끼는 것을 제거하는 손의 반사, 먼 시원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기억일 것이다.
    "누구든 자기보다 큰놈에게 덤비는 법이 없지. 작은 것을 사랑하면서도 작아서 하찮게 여기지."
    잠시라도 입을 다물어 주면 좋겠는데 쉬지 않고 알 수 없는 말들을 한다. 계속 듣고 있으려니 붉은 내장이 몸 어딘가에서 토해지듯 튀어나올 것 같다.

 

4.
    지독하게 굴던 것들이 휴식이 필요하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와 오래전 헤어진 연인들.
    그들은 온갖 피딱지 앉은 폐허의 마음을 안고 와 하나씩 펼쳐 내려놓는다. 귓바퀴에 뜨거운 입술을 대고 사랑의 말을 뱉고 모두들 영원을 약속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을 휘젓던 열기가 사라지면 뒷걸음으로 슬며시 물러나며 머리를 긁적인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모두들 버스정류장에 잠시 앉았다 버스를 타고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없다. 그들에게 나는 마지막까지 머무를 수 있는 종점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내 곁에 오래 머문 사람이 윤이다.
    한 번도 왕래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십 년 만에 집으로 찾아왔다.
    내 행방을 몇 년 수소문했다는데 나는 믿지 않았다.
    입 밖으로 뱉은 모든 말을 믿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지 않을 거였다. 그들은 금방 죽을 것처럼 마음을 내보이고 말을 쏟아 놓다가도 원하는 걸 얻고 나면 두 배 세 배의 대가를 요구했다. 연락이 점점 뜸해지고 신경질이 늘고 성의 없는 행동과 말로 이미 떠나갈 준비를 한다. 모두들 나와 함께하는 내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 속만 걸어 다녔다. 나는 사탕을 놓친 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혓바닥에 맴돌았던 단맛을 붙잡느라 애쓰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더 멀리 더 빨리 떠났다. 그러며 내 집의 천장이나 벽에 세모나 네모, 혹은 동글동글한 그림자 무늬를 새겨 놓았다.
    나는 잠들지 못하는 한밤이나 자다 깨 허기가 밀려들면 그것들로 그림자놀이를 한다. 세모를 가져다 코를 만들고 동그라미로 둥근 입술을 만들고 네모로 얼굴을 만든다. 도형들이 모여 눈사람이 되기도 하고 기다란 막대가 되기도 한다.
    다른 건 다 생각나지 않아도 그런 장면들은 기억하고 싶다.
    그들의 하얗다 못해 흰빛인 배의 살결. 햇빛을 한 번도 쐬지 못한 듯한 핏기 없는 얼굴이라든지 동굴의 작은 짐승처럼 웅크린 잠의 자세라든지. 가슴 중앙에 좁쌀처럼 돋은 사마귀 같은 것들. 특별히 누구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그저 뭉뚱그려진 세모나 네모나 동그라미의 무늬인 자들이다. 그들이 분명하지만 일부분일 것들, 그것만으로는 한 사람을 다 설명할 수 없는 신체의 일부 같은 것만 내 곁에 남았다.
    "가장 잔인한 밤은 무엇인가."
    노파가 젊었을 때 혹시 소설이나 시를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누구에게나 파릇하게 빛나는 시간은 있고 아니란 법도 없는 거니까.
    "푸른 물감처럼 푸른 밤. 오늘 같은 밤. 자다 깨 바라보는 창문 너머의 밤. 영영 푸르기만 해서 시퍼렇게 날이 서며 지나가는 시린 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일이 재밌는지 노파는 자꾸 그런다.
    나도 그런 밤을 안다.
    눈앞에서 물이 파랗고 차갑게 일어서 숨이 차는 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어둠의 틈새가 열리며 찰박찰박 물이 밀려온다. 발끝부터 차오르는 일렁임의 결들을 감지하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아득하고 아득해 내가 사라지는 순간이 올 때쯤 눈을 뜬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한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애도가 되는 것일까. 밤마다 밀려오는 물은, 윤에게서 시작된 파도다.
    그가 그런 식으로 죽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란 생각은 소용없다.
    인기척이 들려 문을 열어 보니 윤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찾아온 것은 그 자신이면서도 동그래진 내 눈을 보며 윤의 눈이 더 크게 동그래졌다.
    "왔어?"
    "십 년 만에 보는데 인사 참 예쁘게 한다."
    "그럼, 뭐라고 해."
    내 말에는 또 대답이 없었다.
    나는 방문을 연 채로 윤은 마당에 선 채로 쭈뼛거리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갔다. 그가 저벅저벅 걸어와 마루로 올라서고 방문을 닫고 우리가 몸을 섞기까지 한 시간 나절이 또 지나갔다. 십 년 만에 만난 옛 연인이 함께 보낸 것은 고작 세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옷을 입고 담배를 피워 문 그의 등이 파리했다.
    그것이 마지막 등일지 꿈에도 몰랐지.
    나는 스르르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눈에 힘을 주어 버티는 중이었다. 맨몸에 닿는 이불의 보드라운 감촉이 오랜만의 숙면을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조금은 들떴다. 그런 모습으로 마루를 나서는 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잘 걸어 나가던 사람이 신발을 꿰어 신다 갑자기 마당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대로 땅바닥에 꼬꾸라지며 잠시 몸을 떨더니, 멈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할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방금 전까지 온기를 전하던 생기가 사그라지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질 수 있다니 놀라웠다. 맨몸으로 걸어가는 동안 땀에 젖었던 발바닥이 마루 위에서 찰박찰박 소리를 냈다.
    윤의 옆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내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눈물이었다. 그가 숨을 놓는 마지막 순간 나를 그렇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윤의 눈동자, 그가 지나왔을 생의 순간들이 휘도는 걸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우물이었다.
    "눈 뜨고 죽거든 당신이 좀 감겨 줘."
    죽음을 예감한 윤의 말에 나는 조그맣게 웃었다.
    "당신 눈을 가리면 내가 움직이는 걸 볼 수 없잖아.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 봐야지."
    윤은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그는 그렇게 끝장났다. 숨 붙어 있을 때도 그러더니 제대로 끝까지 말을 들어준 적 없다. 늘 자기 말만 하다 사라지는 습관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목에 손을 대었다. 툭툭 뛰는 맥박과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목의 곡선을 느끼며 그렇게 있었다.
    "추워."
    노파가 몸을 웅크리며 내 등으로 파고든다.
    "가만히 있어도 눈앞이 흔들리며 절벽에 선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바닥도 보이지 않고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게 깊고 어두운 곳에 서 있죠."
    노파는 아무 대답이 없다.
    "꿈 얘기냐?"
    한참 만에 들려온 말이다.
    나는 자꾸 고개를 갸웃거린다.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노파의 몸이라니, 숲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묵직한 추를 달아 놓은 듯해 몸이 왼쪽으로 갸우뚱하게 기울었더랬다.
    "너는 사탕 먹어 봤니?"
    "단걸 좋아하지 않아요. 애기 때도 좋아하지 않아서 맛을 잘 몰라요. 그리고 지겨워. 사탕이란 건."
    "그런 주제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주제에. 사탕 맛도 모르는 주제에 나를 등에 업고 걷고 있다니까."
    "그런 주제의 등에 업힌 건 할머니예요. 아픈 사람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몸도 흔들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요. 춥다는 말도 그만 하고."
    "늙은이는 서러워서 춥다는 말도 못 한다."
    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좀 미안한 마음이다.
    "추워서 춥다고 그러는 거지. 제대로 가고 있긴 한 거냐? 똑같은 곳을 돌고 있는 건 아니냐고."
    "걱정 말아요. 내리막길이 나오고 도로가 보일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없다.
    내내 큰비가 내리더니 얼마 전 산이 흘러내렸다. 쏟아진 흙무더기로 도시로 나가는 길이 막혀버렸고 마을은 고립되었다. 면사무소에 전화를 넣으니 비가 좀 그쳐야 복구공사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비가 그친 날에도 공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길에 흙무더기가 흘러내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였다.
    하얀 칠이 된 나무, 아까 본 나무들이 다시 나왔다.
    우리는 계속 같은 곳을 돌고 있었다. 아침에는 맑다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 비로 사방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것도 한몫 했다. 나무들이 울울한 숲을 택한 것은 내 의지였다. 평소 자주 오르던 곳이라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의심 따윈 하지 않았다. 익숙한 것을 그대로 믿은 대가다.

 

5.
    "니 집 상추는 끝내줘. 하지만 아침댓바람부터 고기는 굽는 게 아니었다."
    노파 말대로 고기를 굽는 게 아니었다. 오늘 아침의 내 초대만 아니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풍경 속에 우리는 있을 것이다.
    "이런 날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래요. 얌전히 방바닥에 엎드려 있어야 해."
    "니가 사와서 구웠다, 고기는."
    "리사가 사와서 리사가 구웠지."
    "아무려나. 마두금 말이다. 소리 들어 봤냐?"
    마두금 이야길 묻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아침에 흘려들었던 얘기를 또 꺼낸다 싶지만 나는 잠자코 걷기만 했다. 내 등 뒤에 있는데도 어디에서 들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가 멀다. 노파는 감자만 하게 쪼글쪼글하더니 등에 업혀 바윗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서서히 종이의 무게로 변해 가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그릇 건조대에 얌전히 엎드려 있던 그릇들이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덜컥, 소리를 내며 저절로 비껴나는 일 같은 건 언제나 그렇다. 세상에 그런 일은 얼마든지 많아.
    "마두금은 바람의 악기지. 줄이 두 개밖에 없어. 줄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며 소리를 만들고 슬픔을 만들지. 들어 봤냐?"
    "아니라고 했잖아요. 안 들어 봤다니깐."
    "그런 주제에."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누구나 꼭 한 번은 들어 봐야 한다. 얼마나 신비한 소리를 내는지 눈을 감고 들으면 울울하고 푸르게 숲이 일어서고 구름이 휘돌고 눈송이들이 흩날리지. 딱 한 번 들었는데, 죽기 전에 들을 수 있을까 나는 늘 생각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다시 들을 수 없었어. 지금도 마찬가지다."
    "들으면 되지."
    "들을 수 없겠어. 나는 이미 흩어졌으니까."
    노파의 흩어졌다는 말의 의미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태어난다면 마두금이 된다, 나는."
    "사람이 어떻게 악기로 태어나.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사탕 맛도 모르고 아는 건 하나도 없는 주제에. 텃밭에 그저 상추나 기르고 토란이나 캐는 주제에. 목이나 조르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내 목에 둘렀던 노파의 팔이 얇아졌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변하고 이동하는 것들의 모습은 늘 똑같다. 살이 발리고 뼈만 남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생각하자 윤이 떠올랐다.
    "상추에 참기름 넣고 깨소금 넣고 무쳐내 뜨거운 밥에 얹어먹고 싶다."
    파릇한 상추를 생각하자 입에 침이 고였다. 이제 노파는 얇은 담요 같은 무게로 등 뒤에 있다. 물기 어린 바람에도 함부로 몸이 펄럭거리며 내 등의 곡선을 따라 휘어진다.
    "허망한 맛이지. 금세 없어지고. 나는 늘 그런 것들을 견뎌 왔다. 너는 또 모른다고 할 테지만 살아 있는 것들의 가장 큰 일이 허망함을 견디는 거다. 사람 외롭게 하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아니. 사는 게 좋으면 좋을수록 언제 죽여야 하나 망설이게 된다."
    "죽여요?"
    "사는 게 좋으면 좋을수록 모르지. 언제 죽여야 하는지. 셋은 너무했다. 둘의 목을 조르는 것도 얼마나 모진 일이더냐. 텃밭에 묻은 건 잘한 일이야. 뼈들은 상추와 토란을 키우고 정원을 울울하게 만들지."
    노파의 목소리가 원래 저렇게 가늘고 높은 톤이었나 싶다.
    사람의 목소리보다는 악기에 가까운 소리다. 아니다. 수많은 음표들이 떠다니는 허공을 가르는 바람의 소리, 그것도 아니다. 어떤 짐승이 마지막 숨을 뱉어내며 내는 소리 같기도 하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동안 심장이 점점 크게 뛰었다.
    걸음을 멈추고 등 뒤를 돌아보았다. 들판, 아무것도 없는 들판이 보였다. 분명 노파와 나는 숲 속의 길을 걸었더랬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평평하게 펼쳐진 깜깜하고 허허로운 들판이 이어질 뿐이다. 바람이 밀려오며 마른 풀들을 일으켜 세웠다. 우우, 하나로 울어대는 식물들을 보자 내 텃밭의 토란들은 잘 있는지 안부를 묻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숲은 구불구불한 오르막으로만 계속되며 도로나 불빛은 어디에도 없다. 노파의 손가락이 내 갈비뼈를 어루더듬고 장난스럽게 만지며 쥐었다 놓았다. 이상한 사람을 등에 업고 있으니 나도 점점 이상해지는 모양이다. 노파의 엉덩이를 받치느라 뒤로 둘렀던 팔을 제자리로 가져왔는데도 노파는 말이 없다. 맥없이 흔들리는 팔의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라 제대로 붙어 있는지 자꾸 보았다.

 

6.
    "여기 있을 거냐?"
    감자만 하게 쪼그라들었다가 바윗덩이처럼 무거웠다가 이제는 종잇장의 무게인 무언가가 말했다. 이미 노파는 보이지 않고 담요 같은 것은 내 등에 들러붙다시피 해서 나는 두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미안하지만 길을 잃었어요. 산책하던 곳인데 낯설고 무서운 건 처음이야."
    "어차피 멀고 힘든 게 목숨 붙은 것들의 일이야."
    노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참기 힘든 입 냄새는 여전하다. 무언가 썩는 동안의 냄새는 낯설지 않다. 내 텃밭에서도 그런 냄새는 얼마든지 피어올랐다.
    그날, 어쩌자고 나는 윤의 마지막을 오래 들여다보았는지 모르겠다.
    입술이 검푸른 빛으로 변해 가고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일들을 천천히 보았지만, 윤의 죽음에는 십 분 남짓의 시간이 걸렸으니 그런 풍경은 스치듯 지나갔을 거였다. 아주 잠깐 눈을 마주했는데도 푸른 입술과 눈동자가 길게 늘어진 자국으로 남았다. 너무 오래 들여다봐서 뒤돌아도 하나하나 선까지 다시 돌올해지는 그림처럼 그랬다.
    일 년이 지났지만 윤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리던 오후의 시간에 엎드려 있다. 주변을 흐릿하게 물러나게 하며 압도적인 장면의 하나로 언제나 한 곳에 있다. 덕분에 내 텃밭의 채소들과 토란은 무섭게 뿌리를 뻗어 나가고 꽃을 피우고 푸른 잎들을 밀어 올리고 알이 굵어지며 몸을 불려 나간다.
    발밑에서 마른 풀들이 몸을 꺾으며 누웠다. 노파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악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토란국은 너희 집 것이 가장 맛나다."
    노파가, 아니, 등에 들러붙은 무언가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완벽한 하루였다.
    맑은 하늘과 조금은 물기어린 바람이 마당을 가로지른다. 마루로 햇살이 스미는 아침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당을 쓸고 물을 뿌렸다. 물방울이 햇살 속으로 퍼지는 작은 무지개를 보며 와, 와, 박수를 치기도 했다.
    물에 우려낸 토란을 넣은 솥에서 자박자박 끓는 소리가 나서 몇 번이나 침이 고였다. 무엇보다 혼자 먹는 일이 마뜩찮아 미루고 미루던 고기를 구웠다. 리사 덕분이다. 그녀가 돼지고기를 네 근이나 사오고 앞집 노파를 업어오고 숯을 피우고 불판에 고기를 구웠다. 내가 한 일은 텃밭에서 상추를 뜯어와 씻고 그릇에 담은 것이다. 노파도 나도 리사도 모두 토란국을 좋아한다. 리사는 자신의 고향에도 뿌리식물로 끓인 스튜가 있다고 했다.
    "그건 이거보다 많이 끓여. 오래 끓여. 끈끈해."
    리사가 토란국을 떠먹으며 말했다. 우리는 뜨거운 국물에 고개를 박고 수저를 놀렸다. 먹을수록 허기가 졌다. 나는 세 그릇째였고 리사와 노파는 두 그릇을 비웠다. 중간에 노파가 마두금 이야기를 꺼냈지만 리사도 나도 상추쌈을 싸고 국을 떠먹느라 정신없었다. 나는 리사의 입가에 묻은 고추장을 휴지로 닦아 주고 다시 상추쌈을 쌌다. 지글거리는 삼겹살의 윤기에 배가 부른데도 자꾸 먹었다. 왕성한 식욕으로 서로 대결이라도 하는 듯한 맹렬한 식사였다. 노파의 머리가 바람을 타며 조금은 기묘한 박자로 까딱까딱 흔들려 리사와 나는 마주 보고 웃기도 했다.
    리사가 내게 토란국 끓이는 방법을 물었다. 표정이 하도 진지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알려주었다. 멸치육수를 얼마나 우려야 하는지, 파는 잎보다 단맛이 나는 뿌리 쪽을 써야 하며, 무는 되도록 얇게 썰고 국의 간을 맞출 때는 액젓을 써야 한다고 내가 아는 방법을 모두 말했다.
    리사는 내 토란국 방법을 들고 마을을 떠났다.
    고향인 몽골로 돌아가느냐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늘 그랬듯 더 묻지 않았다. 마당을 가로지르고 대문 밖으로 몸을 감추자 배가 부른데도 허기가 밀려들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어떤 음표 같은 것들이 남았다. 지치고 힘들 때만 내게 왔던 그들과는 다른 흔적이었다. 리사는 그림자로 불러낼 수 없는 도형이다. 바람을 훑는 기묘하게 서글픈 소리다. 흔적의 형체가 없으니 나는 그녀를 소리로 기억하기로 했다. 리사는 그렇게 없어졌다.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입안에 남은 고기를 옴질거리던 노파가 켁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배를 움켜쥐고 굴렀다. 그대로 두면 꼭 죽을 것 같아 식은땀이 솟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노파는 얼굴이 어둡게 변하고 점점 쪼그라들었다.
    집을 나올 때만 해도 날은 맑았다. 대문을 나서며 마주친 한 노인이 마을에서 도시로 나가는 길이 막혔다고 했다. 산을 넘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노인이 마을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모르기에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이 마을에는 죄다 늙고 스러지는 것들만 산다. 젊은 기운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낮고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이 전부인 이곳이 마음에 들어 들어온 지 오 년째였다.
    노파는 이제 소리도 없이 고요해졌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나인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걸었다. 크게 소리 내지 않고 텃밭이나 가꾸는 일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이 순간에는 기억의 맛일 뿐이므로 오래 끓여 국물이 뭉근해진 토란국도 다시 먹고 싶었다. 모든 것들이 멀리 물러나자 저 밑바닥에서부터 헛헛한 기운이 일었다. 노파 말대로 무엇이든 허망한 것들을 견디는 일이 가장 큰 숙제일지 모른다.
    "노래나 할까?"
    "시끄러워요. 몸도 없어지고 담요 같아진 주제에."
    "노래를 잊어선 안 되지. 웃는 걸 잊어버리는 건 불쌍한 일이지. 너만 모른다."
    "또 나만 모른다지."
    "리사는 그대로 보냈어야 한다. 셋이나 묻을 게 뭐니."
    "어디서 말하는 거예요? 아직 내 등이에요?"
    "나는 노래나 불러야겠다."
    "부르지 마요. 노래라면 끔찍해."
    "리사가 가르쳐준 노래야. 그 아이가 마두금 얘기를 했잖니. 줄이 두 개라지, 아마. 소리가 얼마나 서글프게 울리는지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난댔어."
    "우리는 지금 길도 못 찾고 숲 속을 헤매는 중이에요. 무슨 노래가 필요해. 부르지 마."
    "부르고 싶을 때 부르는 게 또 노래 아니겠나."
    "마두금이 된다고 했던 건 할머니였다니까. 아침에 토란국이랑 고기 구워먹을 때 리사와 내게 당신이 그 얘길 했어요. 내가 끓인 토란국을 귀신처럼 함께 먹어댔잖아. 부숭부숭하게 털이 솟아난 불알을 내가 다 길렀어. 기억 안 나요?"
    아랑곳 않고 노파가 노래를 부른다. 마음이 사나워졌지만 나는 노파의 노래를 들었다.

 

    세상에서 불리던 너와 나의 이름이 덧없어지는 시간.
    너는 공포를 업고 온다네.
    너는 별처럼 사랑스럽네.
    너는 달처럼 사랑스럽네.

 

    허미였다. 몽골에서 온 리사가 부르며 뜻을 알려준 것이라 나는 노래를 기억한다.
    허미는 두 가지 소리로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하늘을 가르는 높은 소리, 땅을 훑는 낮은 소리. 몽골에선 어릴 때부터 자신의 할머니나 할아버지로부터 허미를 배운다고 한다.
    저 멀리 누군가의 눈동자 같은 노란 불빛이 깜빡거렸다.
    다시 보니 예의 빛은 사라지고 없다. 이런 숲 속의 길에 불빛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 빛처럼 이렇게 걷는 동안에도 목숨 붙은 모든 것들이 조금씩 사위어질 거였다.
    이제 사방은 너무 어둡고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걷는 것이 나인지 노파인지, 어쩌면 리사가 나를 업고 걷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한 발을 떼면 뼈가 부딪고 다른 발을 떼면 삐걱삐걱 소리가 난다. 내 몸에서 들리는 뼈의 소리가 신기하기만 하다. 음표들을 일으켜 세우는 박자 같다. 노파는 누구든 노래 속에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므로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나는 벽이나 천장에 새겨진 그림자들을 불러내려 눈을 감는다.
    한밤의 소리를 듣는다. 천장의 무늬를 세는 시각.
    여름이 끝나 갈 무렵에는 폭풍이 분다.
    세상을 뒤집어엎으며 비와 바람이 거센 회오리로 일어서는 밤.
    후드드 창문이 흔들리고 담쟁이덩굴이 몸을 꺾으며 우는 밤.
    다만 뼈들이 울어대는 밤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 그들이 아니길, 땅속에서 고요히 숨 쉬다 몸을 불리고 일어나 바람 속으로 솟구치거나 휘돌지 않기를. 무사히 밤을 보낸다면 내 텃밭에서는 눈이 시리게 푸른빛의 식물이 솟고 토란들이 자라날 것이다.
    썩은 냄새를 풍기며 담요 같은 것으로 등에 업힌 노파가, 자신의 손가락을 내 입에 조용히 가져다댄다. 쉿.

 

 

 

 

 

 

 

 

 

 

 

 

 

 

 

작가소개 / 채현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아칸소스테가」로 등단. 창작소설집 『마리 오 정원』, 장편 『207mile』, 테마소설집 『1995』와 『시린 발』 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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