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문장이라면 외1편 - 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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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우리가 문장이라면

 

 

이종민

 

 

 

    내가 쓴 한 문장을 네가 읽으면 두 문장이 된다
    혼자 지나치던 길을 함께 걸으면 보리수가 산수유가 된다
    정박해 있는 배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안 것도
    뱃사람들은 목장갑을 배 위에 오징어처럼 말려 놓는다는 것을 안 것도
    함께였던 도시에서의 일이다
    가장 입에 맞는 반찬을 아껴먹는 습관이 나에게 있고
    생선 가시를 잘 바르는 너는 흰 스웨터를 걸치고
    예쁘다, 라고 말하면 점점 예뻐질까 봐
    나는 오이무침만 먹어서 그날 생선이 많이 남았다
    맛있는 반찬을 가장 먼저 먹는 습관이 네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함께였던 도시를 떠나고 한참 후의 일이다
    내 코 고는 소리를 네가 듣다 잠이 들면
    그 숨소리를 자다 깬 내가 듣던 도시
    언젠가 우리도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는 날이 오겠지
    화창한 햇빛 아래 손차양을 하고 자동차를 주차하고 시멘트 자갈을 밟으며
    점심으로 갈비탕은 어때, 말하지만 낙지볶음을 먹으러 가는
    그런 미래를 상상한 것도 함께였던 도시에서의 일이다
    너에 관한 기억만 모아 차곡차곡 개켜 놓아도 일생이 될 거야
    라고 말하면 우리의 일생이 거기서 끝나버릴까 봐
    옆에 두고서도 너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책을 읽어 주는 동안에는 함께일 수 있으니까
    그날 한 권의 책을 소리 내어 다 읽었다
    내가 읽은 문장이 네가 들으면 한 문장도 되지 않고
    파도처럼 부서져 네 기억 속에서 반짝이던 도시에서의 일이다

 

 

 

 

 

 

 

 

 

 

 

 

 

 

노을 霞

 

 

 

    비가 들어가는 글자에는 물기가 있고 장마철에 비 맞기 좋아하는 당신과 바다를 좋아하는 내가 앉으면 그렇게 잔잔했나 보다. 무릎을 끌어안고 쪼그려 앉은 당신에게 왜 그렇게 앉느냐 물으면 작게 숨 쉬는 소리만 들려온다. 작은 소리에도 잘 놀라는 당신은 천둥소리는 곧잘 즐기곤 했지만 뒤에서 내가 부르는 소리에는 자주 놀라 주저앉았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에 글자를 썼고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자는 '미안해'와 결을 같이하는 글자들이었다.
    어릴 적 엄마의 머리카락을 잡고 잤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난 뒤로 당신은 머리카락을 잘 자르지 않았다. 큰 바람이 스쳐 지나간 자국처럼 흉이 난 살갗과 비 그치고 처마에서 떨어진 물방울 같은 점이 난 팔을 어루만지다가 눈 밑 점을 처음 눈물점이라고 부른 사람이 흘리지 못한 눈물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이러나 저러나 사는 건 매한가지 죽는 길은 단 한 가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럴 때면 야채며 생선이며 죽 늘어선 골목 시장을 걷다 비 쏟아져 함께 집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나 매운 것을 좋아하는 당신과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내 입맛이 비슷해질 때를 상상하는 일만으로 지는 해를 서른 번쯤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작가소개 / 이종민

1990년 구리 출생. 201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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