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외 1편 -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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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부정(不淨)

 

 

이덕규

 

 

 

염천에 논두렁을 걷다가 슬쩍
오리알 둥지를 스쳤을 뿐인데 알을 품던 어미오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만지기만 하면 멀쩡했던 토종 오이 꼭지들이 짓물러 떨어지고
참외 배꼽이 새카맣게 썩어 들어갔다

 

독사를 잡아먹은 암소가 유산을 하고
노랗게 곪은 젖을 뚝뚝 흘리며 돌아다녔고 뒤꼍 장독대 새로 담근 장이 푹푹 썩어 갔다

 

멀리서 오다 말고
주춤거리는 신생을 가로막고 서로 붙어먹는
싸늘한 상극(相剋)들, 부엌칼이 날아가 꽂힌 마당에 검은 피가 흘렀고 잡초가 우북이 돋아났다

 

한쪽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새가 쥐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눈먼 고양이가
무덤 위에서 날카롭게 울자
집 나간 개가 붉은 명정(銘旌)을 물고 돌아왔다

 

반쯤 부화된 오리알 속에서 구더기들이 쏟아졌고 나는 고통 없이 내 살이 검게 썩어 들어가는 걸 본다

 

 

 

 

 

 

 

 

 

 

 

 

 

밥벌레

 

 

 

죽어가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한 술이라도 밥을 먹이고 싶었던 거라
그래 병 깊은 아이 몸속에서
못된 벌레들 불러내자고
한밤중 고이 잠든 아이 머리맡에
정성껏 고봉밥 지어 놓았다가 새벽녘
앞 냇가에 슬그머니 풀어버렸던 거라
그 아이 거짓말처럼 일어나
축 난 밥을 잘도 먹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아무도 못 알아보고
보는 이마다 밥 주셔요 하는 거라
밥만 먹는 거라 하루
아홉 끼니를 먹고도 허기져
꿈결인 듯 밥 주셔요 하는 거라
어디 먼 물소리 따라
하염없이 떠도는 정 깊은 병 찾아가
밥 나눠주고 오는지, 촉촉이
몸 젖어 돌아와 허겁지겁
밥 찾아다니는 거라
보이는 대로 꾸역꾸역 밥만 먹는 거라

 

 

 

 

 

 

 

 

 

 

 

 

 

 

작가소개 / 이덕규

경기 화성 출생. 98 《현대시학》 등단.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 『놈이었습니다』 등.

 

   《문장웹진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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