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말 외 1편 -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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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난민의 말

 

 

손택수

 

 

 

나는 나의 나라로 망명했지
나는 나의 나라의 난민
덕분에 나의 모국어는 외국어 같은 것이 되었지
외국어보다 더 낯선 나라의 말이 나의 모국어라니
나의 말은 차라리 아이의 말
함부로 무시해도 되는 힘없는 말,
힘이 없어도 아이는 당당한 나라지
아이는 손짓 발짓 눈짓이 다 말인 모국어를 갖고 있으니까
눈짓만으로도 저만의 문법을 갖고 있으니까
모국으로 망명한 자의 말은 너무 잘 통해서 더 외롭지
왜 아니겠나 나는 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를 입에 달고 산다네
날씨 인사 없인 대화를 할 수가 없다네
내 사회성의 구 할은 모두 습관적인 날씨로부터 온 것,
말은 숨결 같은 것이라 가끔씩
호흡장애처럼 가슴에 통증이 일게 하지
나는 나의 나라말을 유려하게 잃어 가고 있다네
이 유려한 실어증이 나의 향수병
나의 말은 나의 나라로 추방당했다네
영영 돌아갈 수 없는 난민의 말이라네

 

 

 

 

 

 

 

 

 

 

 

 

 

 

옆이 없다

 

 

 

강변에 선다
강에겐 있는 옆이
나에게는 없다

 

모래밭과 범람을 해서
젖을 물리는 들녘
마을이 없다

 

강은 리듬이다
옆이 있어서
리듬체조 하듯 잘록하게
휘어진 허리선,
은근짜로 몸을 비틀 때 생기는
볼륨감

 

옆은 전후를 모르고도 전후를 안다
즐겨 옆으로 새면서 제 갈 길을 간다
갈대며 수초들에게 땅뙈기를 떼어줄 줄 안다

 

모래밭에 몸을 말리고 있으면 슬금
게처럼 발가락이라도 깜짝 깨물어 줄 것 같던 강
옆을 잃어버렸다
상류와 하류만 있어서
일자로 뻣뻣해진 물줄기

 

결석에 걸려 흐르는 피오줌, 오르내리는 수위만 알아 영
심심해져 버린 강

 

 

 

 

 

 

 

 

 

 

 

 

 

 

작가소개 / 손택수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목련 전차』,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이 있음.

 

   《문장웹진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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