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의 말 외 1편 - 석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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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가지의 말

 

 

석지연

 

 

 

쓸쓸해요
쓸쓸하여 까마득해요
쓸쓸한 건 달콤하고도
씁쓸한 맛 자꾸만 쓸쓸해져
온몸에 멍이 들었어요
두 팔을 가슴에 모았어요
두 다리를 오므렸어요
웅크린 검은 개처럼
물컹해졌어요

 

도마 위에서 잘린다면
반듯한 토막들로 나뉠 텐데요
나는 모로 누워 있어요
얼굴 안에 진짜 옆얼굴들을 숨겨 놨어요
텅 빈 느낌인데
흰 내면으로 꽉 들어차 있어요
이유도 없이 슬퍼져요
눈물주머니인 줄 알았는데
쓸쓸해서 피가 돌지 않아요

 

*

 

나는 고독보다 가벼워요
외로워, 발음하면
한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줏빛의
단백질
고요
빗방울
물고기

 

자꾸만 미끄러져요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멍이 조용히 익어 가요
나를 눌러 보아도 좋아요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포옹의 부피

 

 

 

당신과 나는 없는 풍선을 사이에 두고
두 팔을 벌려 마주 서 있다
우리는 풍선에 배를 맞댄다
천천히
가슴으로 풍선을 누르는 일
팽창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최대한 긴밀해지기 위해
별안간 두 귀가 멀기 위해
포개어지는 모든 일이 되고 싶다
해변과 파도
종이와 책갈피
달과 그림자
가려지는 중이어서 어두워
네 어깨는 바늘 같구나
네 열 손가락은 가시덤불 같아
풍선에 뚫린 구멍 바깥으로
공기가 새어 나온다
없는 풍선이 작아지고 작아져서
서로의 배꼽이 맞닿는다면
펑, 하고
당신과 나는 교집합이 되어
등뼈가 둥그렇게 휠 텐데
덤불 속에 몸을 숨겼을 텐데

 

 

 

 

 

 

 

 

 

 

 

 

 

 

작가소개 / 석지연

1992년 서울 출생. 2012년 《작가세계》로 등단.

 

   《문장웹진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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