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아카이브즈 기고문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지 지원사업의 흐름과 그 양상 - 이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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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이버문학광장 '문예지 아카이브즈' 기고문]

 

≪문장웹진≫ 9월호의 [기획] 코너에서는 사이버문학광장의 '문예지 아카이브즈'의 개시와 함께 기획된 두 편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지발간지원사업에 대한 과거와 미래를 짚어보려 합니다. (* 이 글은 2018 문학주간의 '문예지 활성화 워크숍'에서 발제와 토론으로 다루어집니다.)
 
* '사이버문학광장 문예지 아카이브즈'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974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문학의 유통 활성화와 안정적인 생태계 조성을 위하여 문예지의 발간을 지원해왔습니다. 이에 사이버문학광장은 '문예지 아카이브즈'를 통해 그간 지원받은 약 100여종, 4,000호에 이르는 문예지의 표지 및 목차를 디지털 아카이빙했습니다. 이 문예지들은 곧 현실 세계로 나와, 직접 관람객들과 만날 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문예지부터, 패션잡지만큼 세련되고 감각적인 요즘의 문예지까지……. 사이버문학광장의 '문예지 아카이브즈'에 방문하시고, 우리 문예지의 다채로운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세요. (바로가기 : http://archive.munjang.or.kr/)
 
* 2018 문학주간, '문예지 아카이브즈' 관련 행사 안내
– 문예지 기획전시 : 8. 31(금)~9. 6(목) 10:00~20:00 / 마로니에공원 지하 다목적실
– 문예지 활성화 워크숍 : 9. 5(수) 14:00 / 마로니에공원 지하 다목적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지 지원 사업의 흐름과 그 양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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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

 

 

 

 

1. 들어가며

 

      본 기고문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7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의 일환으로 과거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시절부터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지 지원 사업을 중심으로 문예지 지원의 역사와 의의 및 그에 따른 파급 효과에 대해 살펴보는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은 1974년 문예진흥원의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의 연속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에게 일정 액수의 원고료를 지원하게 하여 작품 창작 역량을 고취하고 우리 문학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원된 문예지 지원 사업에 비해 아카이브에 대한 필요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문화예술 기관 및 단체 등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개별 작품에 대한 아카이브가 문학 분야에서는 전무한 상황이다. 개별 문예지를 출판하고 있는 출판사의 아카이브와는 별도로 문예지 전반에 걸친 아카이브 작업이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화적 축적으로서 문예지가 지닌 역할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1974년에서 2016년까지 진행되어 온 문예지 지원 사업에 대한 정책적 차원의 문제점 파악 및 제안을 거칠게나마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이 글은 졸고 「문예지 지원 사업의 정책과 구조 변화 연구」(『한국학연구』49집,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8)를 '2017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의 기고 형태에 맞게 내용 전개 및 결론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2. 문예진흥원 시대와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

 

      계간 문예지 『시작』 2016년 가을호에 게재된 「문예지 지원 제도의 현황과 제언」 심포지엄 토론 글에서 도종환 당시 국회의원은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받은 2015년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에 대한 예산 집행 사항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에 편성된 예산이 10억이었는데 3억만 집행하고 7억은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2017년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을 위해 받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업실적보고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도종환 의원이 열람한 회의록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담당자는 예산 집행에 관해 "본래 예산은 10억 원이 책정되어 있지만 문학계 현장에서 문예지사업에 대한 개선의견이 많고, 개선안 마련을 위해서 또 대체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이번 심의에서는 3억 원을 배정하여 심의를 진행하고자 합니다."2)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하여 문예지 심사 대상 98종 중에 14종을 선정하여 지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3) 문예지 지원 대상과 지원금 축소에 자행된 이 시기는 2015년으로 이른바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명단이 돌던 때였으며 도종환 의원이 열람한 회의록은 문화예술계에 대한 간섭과 지원 배제가 정책적 차원에서 실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갑작스러운 문예지 지원 사업의 축소는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절충적 대안으로 문예위의 후속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그것이 '문예지우수콘텐츠아카이빙' 사업이다. '문예지우수콘텐츠아카이빙' 사업은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에 배정된 예산을 축소하여 발생한 잉여 예산으로 집행한 것으로 총 43종의 문예지에 6억 5천3백만 원을 지원했다. 2016년의 경우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이 폐지되자 그 자리를 '문예지우수콘텐츠아카이빙' 사업으로 대체하였으나 이 사업 역시 지속성을 지닌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의 축소에 따른 일정한 수준의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다만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의 예산 축소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하는 완충제로써의 역할은 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예지 지원 사업 자체의 폐지로 말미암아 그 의미는 퇴색되고 정부의 간섭을 반증하는 사례로 전락하고 말았다.4) 문화예술계에 대한 이러한 간섭은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은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7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언급한 문예중흥정책에 의해 '문예중흥5개년계획'이 추진되면서 마련된 '문화예술진흥법'이 1972년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시작되었다.
      1971년, 문예중흥5개년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윤주영 당시 문공부장관은 그 기본방향에 대해 "과거지향적이며 비합리적 의존적인 국민의 정신자세에 변화를 가져와 정신근대화를 이루려하며 일본의 식민지정책과 6.25동란 등으로 단절된 전통문화를 발굴, 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창조를 이루려는 데 있"5)다고 하며 이를 위해 문화예술창작기금 설치, 관계법령의 개정, 문화와 공보의 분리, 분산된 문화관계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는 정부조직의 개편, 문화정책 수립과 집행에 전문가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기구 설치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정부의 구상을 환영하면서도 기초적인 연구 없이 계획을 수립하는 경향을 지양하고 문화예술 부문을 천대하는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소기의 성과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가장 큰 논란을 벌인 것은 창작의 자유 보장과 창작기금에 관한 것으로 반국가적이거나 현 정부의 고위층을 비평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음양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은 창작 의욕은 물론 자유로운 상상도 저해, 문화 창조에 큰 장애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정부의 문예중흥 계획에 동조하면서도 정부 주도의 정책이 문화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할 위험이 다분하다는 것을 지적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예진흥법은 1972년 8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어 1972년 8월 14일 정식으로 제정·공포되었다. 문예진흥법의 주요 골자는 국무총리 산하에 '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구성하고 예술진흥사업을 전담할 기구로 '문예진흥원'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문예진흥원은 1972년 11월 13일에 곽종원(건국대 총장), 여석기(고려대 교수), 유치진(드라마센터 소장), 이마동(미협 이사장), 임원식(서울예고 교장), 조성길(문공부 문화국장), 김재연(문공부 예술국장)으로 설립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후 1973년 3월 28일에 문공부 장관으로부터 법인설립허가를 받아 원장에 곽종원, 부원장에 조성길을 임명, 4월 1일부터 문예진흥원이 출범하게 되었다.6) 이렇게 출범한 문예진흥원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든 특수법인형태였으며 문공부의 실질적 관리 아래에 있었다. 국가 권력의 정책적 목적에 의해 설립된 문예진흥원이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문화예술의 본질인 자율성을 침해할 여지가 다분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은 문화예술 창달을 주창하였으나 문예중흥을 추진하기 위한 실질적인 동력인 재원마련에 있어서는 '인식'과 '실천'의 동일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부는 정부재원만으로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지원이 어렵고, 경제발전 제일주의를 타파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음에도 지속적으로 문예중흥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결국 재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모금방식의 문예진흥기금을 만들었으며 이렇게 조성된 문예진흥기금이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목적이 내포된 문예중흥정책의 추진재원으로 활용된 것이다.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은 이렇게 조성된 문예진흥기금을 활용하여 시작되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1993년에 펴낸 『문예진흥원 20년사』를 참고해서 언급하면, 1974년 2월 문예진흥원은 문예지 원고료 지원 심사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이후 매 차년도마다 지원심사위원회를 열어 지원 문예지와 규모를 결정했다. 심사위원회는 지원대상을 심의하여 우선적으로 월간 문예지인 『현대문학』, 『월간문학』, 『한국문학』, 『문학사상』을 선정했다. 문예지 원고료 지원 방식은 1개의 문예지에 일정액을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잡지사는 자체고료와 문예진흥원의 보조금을 합하여 원고료를 지급하였다.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에 우선 선정된 4개의 문예지는 3월부터 매호 발간마다 5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문예진흥원은 1974년 6월부터 원고료 지원 대상 문예지를 확대하여 시 전문지인 『현대시학』, 『심상』, 『시문학』과 수필 전문지인 『수필문학』에 매월 10만 원씩 지급하였으며, 계간지인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아동문학』은 매호마다 15만 원씩 지급받았다.7)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은 "고료의 인상으로 문인들의 전반적 지원이 가능하며 저작권의 존중은 물론, 신문, 출판, 잡지 등 에 파급 효과를 미치게 함"8)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문인들의 기대 또한 컸으나9) 문인들에게 어느 정도 실제적 고료로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지원된 문예지들은 대부분 조연현, 김동리 등 한국문인협회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 발간한 문예지들로 유신체제에 대한 입장과 연계성을 가지고 있거나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즉 당시 문단권력의 정치적 입장은 유신체제의 옹호자 혹은 방관자였고,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을 통해 기존 문단권력과 연관된 문예지를 중심으로 '선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지향성과 다르고 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지닌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에 대한 지원을 이듬해 취소하는 것을 통해 미루어볼 수 있다.
      문예진흥원은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을 1974년에 시작하여 1989년까지 지속하다가 1990년부터 폐지한다. 그 이유로 1)개개문인 지원을 목적으로 '74년도부터 실시해온 동 사업 문예지를 통하는 지원방식으로 인하여 문예지 편집자의 기호와 정실 등에 따른 특정인기 소수문인에 대한 편중지원제도라는 불만이 고조되어왔으며, 2)동 사업의 부수적 효과로서 문예지 이외의 잡지고료인상에 결정적인 파급을 끼친 점은 사실이나, 문인 창작활동의 주 무대인 문예지의 자사고료 인상을 억제하는 역효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3)원고료 지원에 의존하는 타성화된 문예지들의 개성 없는 편집체계와 판매부진에도 불구하고 고료지원을 기대한 문예지 창간이 급증하여 현재 50종의 문예지가 발간되고 있는 실정이며, 4)게재된 모든 작품에 대한 획일적인 물량위주의 지원체제로 인해 열등 작품에도 지원하는 결과가 초래되어 동 사업의 지원목적인 우수한 문학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10)다는 점을 들어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은 이듬해 '문학작품 창작지원' 사업과 '우수작품선집 발간 배포' 사업, '문인창작집 발간지원' 사업으로 전환되게 된다.11) 문예진흥원의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의 폐지 이유와 그 정치적 맥락은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문예진흥원의 문예지 지원 사업은 1989년 폐지되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개편한 2005년에 이르러서야 다른 형태로 실시되었다.

  2)  「문예지 지원 제도의 현황과 제언」, 『시작』, 2016년 가을호, 28~29쪽.
  3)  2014년의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은 93종의 신청 대상 중 55종을 선정하여 1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였으며, 2013년의 경우, 39종의 신청 대상 전부를 선정하여 7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였다. 그러나 2015년의 예산 축소 과정을 겪으면서 2016년에는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이 폐지되고 '문예지우수콘텐츠아카이빙' 사업만 실시하였으며 44종 문예지의 콘텐츠 507건을 선정하여 334,920,000원의 예산을 집행하였다. 2013년 7억, 2014년 10억이었던 것이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2015년 3억 + 6억 5천만 원으로, 2016년 3억 3천여만 원으로 축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그런 이유로 '2017년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에서는 '문예지우수콘텐츠아카이빙' 사업 지원을 받았던 문예지들 역시 문예지 지원 사업과 동일하게 간주하여 아카이브를 진행하였으나 엄격하게 보면 두 개의 사업은 동일한 지원 사업으로 볼 수는 없다.
  5)  「문예중흥의 기본방향」, <동아일보<, 1971. 9. 30, 5쪽.
  6)  조성길,「문예진흥원의 운영방향과 사업」, 『문예진흥』 제1권 제1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4, 6쪽.
  7)  그러나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제공한 각 연도별 심사분석보고서와 차이를 보인다. 『아동문학』의 경우 1974년 1회 지원에 그쳤다가 1983년 이후 지속적으로 지원을 받았다고 나오지만 해당 년도 심사분석보고서에서는 『아동문학』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같은 액수의 지원금을 받은 『아동문예』(1980년부터 지원)가 있는데 『문예진흥원 20년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과 관련하여 받은 각 년도 심사분석보고서 중 1974년 자료는 누락되어 1974년에 한정하여 『문예진흥원 20년사』의 기록을 따른다.
  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FA75년도 심사분석보고서』, 1976, 1, 109쪽.
  9)  「창작활동 뒷받침 될까 최저고료제 운용에 한가닥 기대」, <경향신문>, 1974. 2. 2, 5쪽.
  10)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989년도 4/4분기 심사분석보고』, 1990, 2, 18쪽.
  11)  한편 문예지 지원 사업과 유사한 형태로 문예진흥원은 1980년 20개의 동인지를 선정하여 '동인지 지원 사업'을 실시하였다. 동인지 지원 사업은 1981년 39개, 1989년 100개, 1991년 148개로 늘었다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100개, 1999년 45개를 끝으로 동인지 지원 사업을 폐지하였다. 이 역시 문인협회의 지부가 주 지원 대상이라는 점, 시대적 요구에 부흥한 정치 참여적 동인지들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에서 정부 지원의 정치적 경향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개편과 청소년문예지 지원 사업

 

      1973년에 설립된 문예진흥원은 한국의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지원기구로 중추적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공부 산하의 독임제 구조로 운영되면서 예술계의 현장성, 정책수립의 전문성, 독립성, 자율성 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6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독임제 구조의 문예진흥원을 민간 합의제 구조로 개편한다는 선거공약을 제시하였고, 2003년 출범 후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기구 개편작업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부는 문화예술지원정책에의 핵심적인 정책문제의 본질을 지원기구의 역할 한계로 보았고, 그 대안으로 현장 예술인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하여 지원정책을 수립 및 집행할 수 있는 기구 개편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정부 산하 기구로서 예속되어 있던 문예진흥원은 그 구조적 한계로 인해 관료적 문화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결국 현장 예술계가 필요로 하는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칠 수 없었으며 전문성에서도 미흡한 부분을 보일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그에 대한 주요 비판으로 첫째, 독임제 체제로는 문화예술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둘째, 현행 지원정책은 예술인·예술현장과 괴리되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셋째, 문화예술 지원 정책에서 끊임없는 공공성 논란 즉 정부 친화적인 문화예술계에 지원이 편중, 왜곡되었다는 점, 넷째, 현행 지원 정책이 기금의 단순 관리·배분에 국한되어 왔으며 '소액 다건식' 배분으로 인해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12)
      이에 정부는 2003년 7월, 위원회 설립을 위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 작업을 마무리하고 각계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 또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위원회 구성의 객관성과 공정성 담보를 위한 추천위원회를 설치하여 여기서 추천한 위원들 중에서 문화부 장관이 위원회 구성 위원을 위촉하는 것으로 하였다. 이로써 2004년 국회 의결을 거쳐 2005년 8월 26일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으로 문학과지성사 대표와 상임고문으로 활동해 온 문학평론가 김병익을 초대 위원장으로 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렇게 현장 문화예술인을 바탕으로 출범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한 기대는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지원에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설립된 위원회는 합의제를 바탕으로 지원 업무를 결정하기 때문에 전문성, 자율성, 현장성, 민주성 부족 등이라는 독임제 구조 자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은 치유할 수 있었으나, 위원회 자체가 가지는 책임성 부재의 문제, 회의진행의 비효율성 이외에도 예술의 수월성 측면에서 예술작품의 획일성 문제, 창작지원의 형평성 측면에서 위원들 간 장르별 나눠먹기 편중지원, 장르별 소위원회 위원장에 의한 소통령 독임제 등의 문예진흥원 시절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와 내홍을 안고 사업을 진행하던 김병익 위원장은 사무처가 위원회 승인과정 없이 시행한 '원 월드뮤직 페스티벌'의 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위원들 사이의 분쟁을 계기로 2007년 돌연 사퇴하게 된다.
      이 시기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지 지원 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실시한 것은 현재 및 미래의 문학 향유자로서 그동안 지원이 미흡했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이었다. 물론 복권기금을 통해 '문예지게재우수작품선정지원'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문예지 자체의 지원보다는 개별 작가의 창작 고취하기 위해 과거부터 지원했던 사업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청소년문예지발간지원'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동안 문화예술 향유자로서 소외되어 왔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문예지발간지원' 사업으로 인하여 이 시기 청소년문예지들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005년에는 9종의 청소년문예지가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1종이 빠진 8종에 9천5백만 원의 지원금을 집행하였으며 2006년에는 12종, 1억 8천6백7십만 원, 2007년에는 11종, 1억 9천만 원, 2008년에는 10종, 1억 9천만 원, 2009년에는 9종, 2억 원을 집행하였다. 이후로는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 사업 안에 포함되어 선별적으로 지원을 받게 된다. 청소년문예지 지원은 그동안 생산자 위주의 문학예술 지원에서 벗어나 문화예술 향유자로 초점을 옮기는 혁신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문예진흥원 시절부터 향유자에 대한 지원을 진행하였으나 그것이 제대로 시행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그 와중에 문화예술, 특히 문학의 향유자로서 미래세대인 청소년은 문화예술 생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소년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은 자신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다시 말해 "'삶의 독서'와는 거리가 먼 '입시 독서'의 경로를 밟"13)아 온 청소년들을 주 독자층으로 그들의 삶을 다룬 문학 작품들을 보다 폭넓게 접할 수 있게 하는 한편 그들 자신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사업으로 말미암아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문예지 및 청소년들이 직접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문예지가 창간되면서 새로운 문학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14) 특히 이들 청소년문예지는 충북(『이다』), 대전(『미루』), 경남(『통통』), 경북(『푸른나무들』), 광주(『상띠르』), 경기(『문학아』), 전북(『전북청소년문학』), 전남(『다도해 푸른작가』) 등 각 지역에 골고루 퍼져 있어 문화예술의 소외 지대였던 지방과의 교류를 확장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예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소년문예지 지원 사업은 2009년까지 지속되어 문학동네의 『풋』과 『푸른글터』, 『어린이책이야기』 등을 비롯한 청소년 대상 전문 문예지들이 발간되어 청소년 문학에 대한 성찰과 활성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청소년문예지 발간 지원은 꾸준히 지속된 것이 아니라 2010년 들어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 안으로 포함되면서 결과적으로 지원 축소되었으며, 2005년 창간되었던 문예지들의 상당수가 폐간되고 말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소년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은 2000년대 들어 활성화되었던 청소년 문학에 대한 관심을 청소년문예지의 창간과 더불어 문학의 향유자인 청소년들로 하여금 쉽게 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차기 문화예술을 이끌어갈 청소년의 참여를 가능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단순 수용자에서 생산자, 향유자의 위치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되었다. 다만 이러한 사업이 장기적인 계획 하에 지속적으로 지원되었다면 보다 질 높은 생산물이 나왔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 속에 청소년문예지 지원이 포함됨으로써 전문작가들이 생산하는 문예지에 비해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여 생산하는 문예지의 경쟁력이 떨어져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던 것 역시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12)  이종열, 「한국 문화예술진흥원 조직의 개편방안」, 『문화정책논총』16, 2004, 69~70쪽.
  13)  원종찬, 「청소년문학 어디까지 왔나」, 『푸른글터』 창간호, 2006, 14쪽.
  14)  「대산 청소년문학상 후보작 공모」, <연합뉴스<, 2005. 3. 5. 이 기사에 따르면 2005년 문예진흥원의 지원을 받은 9종의 청소년문예지가 발간되었으며 "기존에 발간되던 『푸른작가』외에 8종의 청소년문예지가 새롭게 창간"되었다.

 

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기 이후와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

 

      2007년 9월 7일, 김병익 위원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위원장 자리에 김정헌 미술 분야 위원이 선출되었다. 김정헌 위원장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이사 출신의, 흔히 '민중미술1세대'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 정부 흔적 지우기'의 일환으로 노무현 정부 당시 임명되었던 김정헌 위원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는 등의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김정헌 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문화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금을 부적절하게 운용하여 국가기금에 평가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김정헌 위원장을 해임하기에 이른다. 이에 문화부를 상대로 해임무효 소송을 제기, 승소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이 2명인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기금지원 선정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어나는 등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들어 여러 위기와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 시기의 문예지 지원은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문예지게재우수작품선정지원'을 제외하고 2007년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문학 향유의 기회를 높이기 위한 '문학나눔' 사업의 일환으로 '우수문예지구입배포' 사업이 실시15)되었다. 2008년에는 23종의 문예지에 총 2억 3천1백5십만 원을 지원하고 2009년에는 40종의 문예지에 총 9억 9천2백만 원으로 확대 지원하였으며 기관지 발간 지원 사업을 병행하여 14곳의 문학단체 기관지에 2억 원의 지원을 하였다. '우수문예지구입배포' 사업은 2010년 들어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으로 바뀌어 향유 독자가 아닌 생산 작가를 위한 지원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문예지는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1차 지면인 동시에 1차 수입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문예지에 대한 지원은 작가에 대한 간접 지원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에 대한 직접 지원은 문학창작기금 지원 방식으로 각 장르별 작가들을 선정하여 6백~1천만 원의 일시금 지원을 이전부터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작가들에 제한되어 지원되는 양상이기 때문에 보다 폭넓은 작가들에 대한 지원 방식으로 채택한 것이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과거에 진행되어 왔던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과 유사하다.
      우수문예지에 대한 발간 지원 사업이 작가의 원고료 인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70년대 진행된 원고료 지원 사업의 경우 지원을 받는 문예지에 게재된 원고에 한해서 원고료 인상이 되었으나 지원을 받지 않는 문예지들의 원고료까지 인상시키기에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이는 2010년대 들어와 진행된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 역시 동일하다. 원고료만으로 생활하는 전업 작가의 수는 현저하게 적으며 대부분의 작가들은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을 발표하는 1차 지면으로써 문예지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지만 문예지 발표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문예지의 특성 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부분의 작가에게 고르게 지원되는지도 알 수 없다. 문예지를 발간하는 주체의 특성이 반영되어 작가들의 불만을 초래한다는 점도 문제 삼을 수 있다. 문예지를 발간하는 주체가 출판 자본인지 문학인(비평가와 작가) 그룹인지에 따라 문예지의 전반적 운영 시스템은 달라진다. 두 경우 모두 잡지 편집의 주체는 대부분 편집위원회가 되지만 편집위원회 구성과 운영 시스템은 상이하다. 문예지를 발간하는 주체가 출판 자본인 경우, 편집위원회는 출판 자본의 요구와 지향에 부응하는 인적 구성을 갖게 된다. 이는 문학적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조명하기보다는 이미 일정한 고정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인기 작가를 중심으로 원고를 청탁하려는 경향을 강화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반면 문예지의 발행 주체가 문학인 그룹인 경우, 유사한 문학적 정체성을 지닌 작가들의 비상업적 결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문학적 방법론의 정당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특정 문예지와 관련이 약한 작가들에게 문예지의 운영이 전반적으로 폐쇄적이라는 인상을 갖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는 우수문예지 역시 이들 문예지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예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문예지가 순수 문학 발전과 작가 발굴을 주 기능으로 하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민간에서 지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판시장의 위축으로 인하여 문예지의 자생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으로 고려하면 문학 분야에 대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의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문예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원은 일정 수준의 원고료를 작가들에게 지급할 수 있게 되어 작가의 현장 만족도를 높이는 한편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자체적인 시장을 형성할 수 없고 수요를 창출하기 어려운 청소년문예지 및 장애인문예지 등의 발간을 돕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이점이 있다.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우리 문학 발전을 위한 창작 의욕 고취 및 창작 역량 강화, 창작 여건을 조성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또한 향유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전국 단위의 지원으로 일정 수준의 문예지들을 지방 도서관 등에 배포할 수 있게 되어 독자들이 우리 문학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문학 향유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예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은 2010년(39종, 6억8천만 원)부터 시작되어 2011년(37종, 7억 원), 2012년(37종, 7억 원), 2013년(39종, 7억 원), 2014년(55종, 10억 원)까지 문예지 종수와 지원액 면에서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5년(14종, 3억 원) 들어 급격한 감소세를 보인다. 이는 박근혜 정부 들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하여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문화예술인에 대한 전반적인 지원 축소와 맥을 같이 한다. 이에 대한 불만을 줄이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예지우수콘텐츠아카이빙' 사업을 2015년 실시하여 43종의 문예지에 6억 5천3백만 원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2016년 들어 44종의 문예지의 507건의 콘텐츠에 한하여 3억 3천여만 원으로 그 지원금이 축소되었다.
      문예지 지원 사업의 축소 및 중단은 곧장 문학장에 영향을 미쳤다. 지원금의 축소 및 중단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2015년 이후 오랜 역사를 지녀온 문예지들 중 일부가 폐간 또는 휴간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재정난을 이유로 2015년부터 『솟대문학』, 『세계의문학』, 『소설문학』, 『유심』 등이 폐간하고 『문예중앙』과 『작가세계』 등이 휴간하였다. 정부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정책의 변동이 문예지의 위기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목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래 문예지에 대한 지원은 순수 문학을 지원함으로써 작가의 창조적 역량을 고취하고 독자의 우리 문학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집권층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문화예술 지원 대상을 조직적으로 선별하고 배제하는 일이 발생함으로써 장기적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할 문화예술 기초 사업이 그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15)  '문학나눔' 사업의 총 예산은 40억 원이었으며, 그 중 일부를 '우수문예지구입배포' 사업에 사용하여 전국 1,372곳의 배포처에 『현대문학』 등 21종의 문예지 49,932권을 구입 배포 하였다. 구체적 문예지명과 사업 금액은 확인할 수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7년 문예진흥기금사업 종합운영평가보고서」, 2008. 5. 참조.

 

5. 맺음말

 

      본 글에서는 1974년 문예진흥원 설립 배경과 '문예지원고료지원' 사업의 양상 그리고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의 개편 양상 및 이후 진행된 '우수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정치적 문제를 제외하고 정책적 차원에서 지원된 양상을 살펴보면 문예지 지원 사업의 핵심은 문학 창작자인 작가에 대한 지원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유자인 독자를 위한 지원 사업은 소외계층 지원 사업 부문을 통해 실시되고 있었으나 문학 분야에 제한해서 살펴보면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우수문예지구입배포' 사업이 독자를 위한 사업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한계를 지닌 것은 분명하다. 정부의 지원 자격이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근래 문단 권력 문제와 맞물려 보면 정부의 지원이 문단의 특권을 공고히 하게 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문예진흥원 시기, 정부 친화적인 문단 권력이 발행하는 문예지를 중점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과는 다르면서도 일정 부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이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지원의 영속성이 단절되는 경우 역시 문제이다. 2017년 '문예지발간지원' 사업이 재개되었으나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예지 지원 사업의 장기적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문예지 지원 사업이 정부의 지원 없이도 자생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상업적인 대형 출판사의 문예지보다는 자체적으로 수요 창출이 어려워 시장을 형성할 수 없는 비상업적이고 특수한 형태의 문예지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문예지 자체의 생산 체계의 문제를 검토하고 이를 반영하여 지원을 한다면 보다 다양한 문학적 시도가 발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2000년대 중반 시작되었다 사라진 청소년문예지나 『솟대문학』과 같은 장애인문예지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문학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며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문학 향유층에 대한 유효한 지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대부분 문학 생산자 중심의 지원이라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는 작가, 작품 중심적 지원은 문단의 입장에 따라 작품 평가가 달라지는 문제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미 완성된 작품에 대한 지원이 과연 문학의 질적 향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보다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여 작가의 창작 활동 및 이후 활동에 대한 지원을 고려해볼 필요도 있다. 작가와 시민사회와의 접점을 마련함으로써 작가의 생계담론에 머물러 있는 지원의 방향성을 문학의 생산과 향유의 방향으로 확장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문학장의 변화 양상을 통해 그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다. 전통적인 문예지들이 재정난에 폐간, 휴간을 선택하는 와중에 새로운 형태의 독립잡지 및 문예지들이 독립출판 등의 방식으로 발행되는 한편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웹진 등이 출현하였다. 새로운 독립 문예지 및 웹진은 일정 부분 동인지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생산자 그룹의 자기만족만이 아니라 기존의 문학장이 하지 못했던 독자와의 접점을 새롭게 만들려고 하는 시도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종의 문학플랫폼으로써 기능하는 이러한 시도는 독자를 단순한 향유자의 자리가 아니라 생산자의 자리로 옮김으로써 독자 경험의 폭을 확장시킨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은 기존의 문단의 문예지를 넘어 이런 개방적 시도들이 변화하는 현재를 담지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문화적 축적으로써 포용해야만 할 것이다.
      문학은 작가 개인의 소유를 넘어 공공재로서 공유되고 향유되어야 하는 문화적 축적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예지의 발간뿐만 아니라 그 배포에도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문예지구입배포 사업이 진행되었던 전례를 이어 각 지역 내 도서관에 중앙 문예지 외에 지역에서 발간하는 문예지들을 구입 배포하면 지역 작가의 활동 지원까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의 일환으로 가능한 지원 형태일 수도 있다. 개별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수집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국가적 아카이빙 사업의 일환으로 수집, 보관하여 아카이브 함으로써 문예지에 대한 독자의 접근성을 제고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도서관끼리의 연계망을 구축한다면 문학에 대한 독자의 선택권을 확대,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요자 중심의 문예지 지원 방향은 문학에 대한 특정 정치 이념의 사유화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물론 정치권력의 지향성에 따라 선택적 지원을 하고자 하는 정책입안자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될 위험 역시 다분하다. 이를 막기 위해 장기적 안목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원을 위한 법률적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문예지에 대한 정부의 아카이브 정책은 향후 국립문학관 설립을 위한 기초 작업이기도 하다. 음악이나 영화 등은 그 분류체계가 정립되어 상당 부분 아카이브 되어 있지만 문학은 그렇지 못하다. 이번 '2017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을 넘어 광범위한 아카이브 작업이 수행되어 기술 데이터가 구비될 수 있다면, 문학 역시 여타 장르의 예술처럼 독자와의 접점을 찾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문예지에 대한, 그리고 문학 전반에 대한 아카이브 작업은 국가의 자산이랄 수 있는 문화의 축적만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작가와 독자의 접점을 마련하여 보다 다양한 문학적 시도를 가능하게 하여 양적, 질적 성취를 도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작가소개 / 이병국

1980년 인천 강화 출생. 인하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 박사 수료. 2013년 <동아일보>에 시,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에 평론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문장웹진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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