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 정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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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설레임

 

 

정지아

 

 

 

    거울이 문제였다. 전화가 걸려온 순간 하필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 늦은 시간 영선을 만났을 리 만무했다. 그녀는 거울과 친한 적이 없다. 광대뼈 툭 불거지고 깡말라 한 삼십 년 강퍅한 삶을 살아온 듯한 열세 살의 저를 거울 속에서 발견한 어느 봄날 이래로. 전신 거울이 방마다 놓여 있거나 그 거울에 제 몸을 비춰 화장이나 옷차림을 점검할 만한 여유가 없는 시절을 살아온 탓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시대의 스펙트럼이란 생각보다 넓다. 누군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을 일주하며 개화기를 보내기도 했고, 누군가는 남산의 한옥에서 미제 냉장고에 든 삐루를 마시며 서울 수복을 기다리기도 했으며, 또 누군가는 비키니를 입고 해운대에서 근대화 시기의 뜨거운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잠시잠깐 거울조차 들여다볼 짬도 없이 살아온 것은 그녀, 혹은 그녀 같은 사람들의 시대일 뿐이다. 그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접할 때면 어쩐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나는 나의 시대로부터 한 발자국도 도망칠 수 없구나, 뭐 그런 낭패감이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그녀는 거울 속의 저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시대를 살아오지 못했다. 그런 탓에 거울 속의 저와 친하지 않았다. 어쩌다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든 저가 한 이십 년 연락 두절된 학창시절의 친구인 듯 낯설었다. 그래서 친한 적도 없는 거울 속의 저와 점점 더 멀어졌다.
    휴대전화가 울리기 전, 그녀는 막 샤워를 마친 참이었다. 날이 후텁지근했고, 마른 수건을 한 장 더 꺼내 몸에 남은 물기를 꼼꼼하게 닦아내던 도중, 평소와 다른 무엇인가, 그러니까 이제껏 그녀 삶에 없던 무엇인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사타구니에 수건의 올이 걸려 있는 줄 알았다. 별 생각없이 손가락으로 집어들었…으나 그것은 집히기는 했으되 들리지 않았다. 수건의 올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이물은, 그러니까, 하얗게 센 터럭이었다. 사실을 인지하고도 그녀는 한참 동안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다. 의미를 깨닫고는 잠시 멍했다. 왜냐면 음모도 하얗게 셀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거나 염려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마흔줄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겨울 온천을 마치고 나온 한 친구가 일본까지 챙겨온 족집게를 들고는 한숨을 내쉬며 흰머리를 뽑았다.
    "자고 나면 흰머리가 는다. 이것 봐. 반백이야."
    머리숱이 적어 별 수 없이 아줌마 빠마를 하기 시작한 친구가 혀를 차며 족집게를 빼앗았다.
    "있으니 귀한 줄 모르지? 좀 있으면 흰머리도 귀해진다."
    흰머리가 하나도 나지 않은 그녀는, 늙어가기는, 진작 늙었다 야, 친구들의 서글픈 농에 냉정하게 초를 쳤다. 까만 것들 속에서 선명하게 하얀 음모 한 가닥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깨달았다. 친구들의 늙음은 실감이었고, 자신의 늙음은 관념이었다는 것을. 친구들과 자신의 시간 차는 환갑 넘어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부계, 모계 혈통의 축복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고작 하얗게 센 음모 한 가닥이 그녀의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로 선반에 얹어둔 안경을 집어들면서 안경을 쓴 채 제 벗은 몸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늙음에 대해 담담할 수 있었던 데는 마이너스 디옵터 팔백의 시력 덕도 있었던 것이다. 안경을 쓴 그녀는 교정시력 일점 영으로 제 몸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오십삼 년을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랫배가 임신 사 개월은 된 듯 볼록했고, 두툼한 허릿살이 손에 잡혔다. 팔과 다리에는 언제 생겼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상처와 전에 없던 점 같은 것들이 즐비했다. 운동부족으로 굳은 옆구리를 통증이 느껴지도록 뒤틀어보니 등 뒤에는 좁쌀만 한 검은 사마귀가 세 개나 돋아 있었다. 검은 사마귀가 마치 생명 속에 음험하게 숨어 있다가 드디어 때를 만나 싹을 틔우기 시작한 죽음의 기운처럼 느껴졌다. 저것들이 생명을 에너지 삼아 무럭무럭 자라난 어느 날 생이 끝나는 것인가, 그녀는 몸을 뒤튼 상태로 거울 속의 사마귀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건조기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며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영선이었다.
    삼 년 전, 한 후배의 소개로 영선을 만났다. 후배에 따르면 2002년 사별한 이후 영선은 여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금슬 좋은 부부였다고 했다. 직업도 괜찮고 먹고 살 만한데다 인물도 번듯해서 더러 20대의 젊은 여성이 호감을 표하기도 하는데 영선은 여자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발 좀 만나봐. 둘이 정말 잘 어울린다니까! 같은 해에 혼자 된 것도 운명 아닌가?"
    그녀가 혼자 된 것은 영선과 같은 고약한 운명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의 오만 탓이었다. 고생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해봤으니 인생 선배들이 경고하는 어지간한 결혼생활의 역경 따위는 극복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인생을 살아온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산다는 것은 유경험자들의 충고 이상으로 힘들었다. 아이가 생기면 자신의 성격상 이 수렁에서 절대 발을 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조용히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남편 또한 대수롭지 않게 도장을 찍었다. 짧은 삼 년의 결혼생활은 이렇다 할 사건사고나 큰 싸움도 없이 조용하게 막을 내렸다. 그 뒤로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결혼이 상처였거나 비혼주의자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딱히 적당한 상대가 없었을 뿐이다. 아니, 남자에게 설렌 적이 없었을 뿐이다.
    서른아홉부터 자연의 섭리를 거부한 채 홀로 지내는 두 사람을 위한답시고 후배는 기어이 소개팅 약속을 잡았다.
    "이영선입니다. 천생 여자 이름이죠? 부모들은 자식에게 최소한 놀림당하지 않을 정도의 이름은 지어줄 의무가 있어요. 사내자식한테 영선이 뭡니까, 영선이. 게다가 길영(永)에 착할 선(善)이라니, 젠장. 지독하게 살아도 살둥말둥한 세상에 여엉원히 착하게 살라는 게 무슨 지랄맞은 저주랍니까?"
    그녀는 오랜만에 웃음을 터뜨렸다. 후배 말대로 영선과 그녀는 잘 맞았다. 요즘은 후배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을 정도였다.
    "뭐해요? 나오지 않을래요?"
    "이 시간에?"
    "열 시가 어때서? 한 잔 하기 딱 좋은 시간이구만."
    영선이 말하는 동안 그녀는 다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배가 불룩하긴 했지만 늘어진 살 아래로 흰 터럭이 여전히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불현듯 이제 다시는 이 몸을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보다 훨씬 보기 좋았을 때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그때의 몸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뼈대가 굵고 가슴이 지나치게 큰 자신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가슴을 늘 움츠린 채 다녔고, 펑퍼짐한 옷을 입어 굵은 뼈를 가렸다. 제 몸을 단 한 순간도 찬찬히 보지 않았다는 게, 그래서 팽팽했을 어떤 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처음으로 아쉬웠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옷장 속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나와요. 내가 그 동네로 갈게. 호프집에서 축구나 봅시다."
    "웬 축구?"
    "아… 인간이 공 쫓아다니는 거 한심하다고 했지. 그래도 월드컵 정도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워얼드-컵이잖아."
    평소의 영선은 열 시 넘은 시간에 전화를 걸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만남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쩌면 영선도 오늘, 자신의 어떤 늙음과 마주친 게 아닐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어쩐지 영선이 오래된 동무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렇기도 했다. 만난 적이 없을 뿐.
    영선은 그녀와 동갑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같은 은평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둘 다 대성학원 일타강사의 수학강의를 들었고, 주말이면 광화문을 쏘다니다 숭문서점에서 한나절을 보냈고, 당시 학생들에게 가장 핫한 장소였던 세종문화회관 뒷길의 미리내 분식에서 쫄면이나 떡볶이를 먹었다. 어쩌면 두 사람은 대성학원의 어느 강의실에서 한날 한시에 수학강의를 들었을 수도 있고, 이성에 관심이 많았으나 수줍음은 더 많았던 학생들이 모여들던 미리내 분식에서 은밀한 시선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 아마 이십대였다면 아슬아슬한 운명의 끈에 감탄하여 고교시절에는 이어지지 않았던 운명의 끈을 이어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선과 그녀는 이미 오십 대였고, 그보다 더한 인연도 뚝 끊길 수 있다는 인생의 교훈을 씁쓸하게 깨달은 뒤였다.
    "집에서 멀지 않아요. 한 이십 분이면 도착할 거야. 도착해서 전화할 게요."
    영선은 그녀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나이 들어 사귄 새 친구지만 영선은 오랜 친구보다 그녀를 더 잘 알았다. 만사 똑부러져 거절 잘 하기로 소문난 그녀에게는 침묵이 곧 내키지 않는, 마지못한 긍정이었다.
    그녀는 붙박이장 맨 왼쪽에 걸린 자줏빛 땡땡이 무늬의 원피스를 꺼냈다. 대학원 입학 때 아버지가 사준 최초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한 때는 유니폼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주 입던 옷인데 마지막으로 입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옷을 입었던 한 순간만 생생했다. 밤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학원 종강파티에서 도망쳐 마지막 버스에 막 올라탄 참이었다. 같은 과 신입생인 남자가 그녀의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종점이었고, 잠시 뒤 버스 기사가 늦은 저녁을 마친 참이었는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느릿느릿 앞문으로 올라왔다. 앞자리 남학생이 휙 몸을 돌리더니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 잔 더 해요, 우리."
    남학생의 뻔뻔할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은 말을 하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소슬한 가을바람이 밀려드는 바람에 추위 잘 타는 그녀의 팔에는 닭살이 돋은 터였다. 닭살과 홍조라니. 바보라도 홍조의 의미를 눈치챌 것 같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보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에 더 신경이 쓰였다. 운전수가 시동을 걸었고, 남학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핏줄에 닿은 남학생의 약지가 그녀의 빠른 맥박에 따라 오르내리는 게 느껴졌다. 팔백 미터를 처음 완주한 체력장 때보다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홍조와 빠른 맥박과 그녀의 귀에까지 들리는 세찬 심장박동을 허락으로 판단한 남학생은 팔목을 잡은 채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자줏빛 땡땡이 무늬의 원피스 자락이 하마터면 닫히는 버스문에 끼일 뻔했다, 그 남학생과 이 년 연애를 하고 삼 년 같이 살았다. 잔바람 일렁이는 봄밤의 쉬폰 원피스 자락 같던 설렘은 그 사이 어디쯤에서 흔적없이 사라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원피스에 두 발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엉덩이에 걸려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힘을 준다고 입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옷장에 걸린 태반의 옷들이 비슷할 터였다. 몸이 분 뒤로 그녀는 거의 옷을 사지 않았다. 언젠가 집에 놀러와 옷장을 본 친구가 그랬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수능공부하듯 운동할 생각 아니면 포기하고 새 옷 사. 나이가 안 줄어드는데 나잇살이 줄어들겠니? 아줌마 매장 가면 좋은 옷 많아. 가라구, 아줌마 매장. 친구가 스타카토로 야무지게 탁탁 끊어 발음한 아줌마 매장을 그녀는 아직 가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그녀는 허리가 고무줄로 된 검은색 롱 스커트를 집어들었다. 살 찐 뒤에 이마트에서 산 몇 벌 되지 않은 옷 중의 하나였다. 잘 늘어지는 스판 소재라 나잇살이 더 쪄도 너끈히 입을 만했다. 그 위에 배가 가려지는 검은 색의 긴 셔츠를 입고 나니 요즘 늘 입는 스타일이었다. 영선을 만날 때도 언제나 이런 차림이었다. 그레이나 다크 브라운, 그도 아니면 카키, 색만 바뀌는 정도였다.
    그녀는 흘깃 시계를 보았다. 처음 방문한 날 영선이 선물한 시계였다. 불투명한 아크릴의 원형 시계는 숫자조차 적혀 있지 않아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게 뭐야, 선물 포장을 벗긴 그녀의 첫마디였다.
    "시계!"
    영선이 시치미를 뚝 떼고 진지하게 받아쳤다.
    "시계의 본질은 시간을 알리는 거잖아요. 시간이 안 보이는데 이게 무슨 시계야!"
    "대충 좀 희미하게 살라는 깊은 뜻이 담긴 선물입니다. 저래봬도 유명 디자인상을 수상한 작품이랍니다."
    "디자인이 어떻든 시간은 알아볼 수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게 시계지."
    "본질 알아 뭐하시게? 알 수 있기는 한가?"
    움찔한 그녀는 궁시렁대면서도 디자인은 볼품없되 시간만은 명료하게 보이던 시계를 떼고 그 자리에 영선의 선물을 걸었다. 오래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어쭙잖은 문학도였다. 철학을 전공했다는 윤리선생이 웬일인지 국어선생을 제치고 문예반 담당이었는데, 만사에 심드렁해서 학생들이 부르러 가지 않는 이상 특별활동 시간에조차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언젠가 읽을 책을 좀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교무실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반쯤 잠들어 있던 선생이 눈도 뜨지 않은 채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읽어 뭐하게? 누구 앞에서든 잘나고 싶은, 속물적 욕망 짱짱한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웠고, 순식간에 두 뺨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뒤로 먼발치에서 선생만 봐도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대체 그 선생의 무엇에 설렜는지는 그때도 지금도 알 길이 없다. 키는 그녀와 엇비슷했고, 머리는 봉두난발에, 옷이라고는 사시사철 야전잠바였다. 그렇다고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었다. 총각이라고는 하는데, 나이를 요량할 수 없이 곰삭은 얼굴이었다.
    언젠가 학생들의 빗발치는 원성을 듣다못해 선생이 방과 후 토론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역시나 선생은 책상에 발을 올린 채 눈을 감고는 학생들의 열띤 토론을 듣는 둥 마는 둥했다. 1980년이었고,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 그날 토론의 주제였다. 일학년이었던 그녀는 세상사에 무지했지만 삼학년 선배 두엇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광주사태 운운하며 목청을 높였다. 책임에 민감한 그녀는 뭣도 모르면서 문학 역시 마땅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쪽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쪽이나 얼굴이 홧홧해지는 수준의 토론이었다. 선생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가장 열띤 주장을 하던 그녀와 삼학년 선배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가는 길은 꽃길인 듯싶니? 네가 가는 길에는 뭐, 정의만 펼쳐져 있을 것 같니? 이 길이나 그 길이나 똥밭이다. 사방천지 휘황찬란한 똥밭!"
    선생의 말이 어쩐지 어린 그녀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 삶의 진정한 비의처럼 느껴진 건 그녀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선생의 등을 향해 누군가 비장하게 물었다.
    "선생님!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더러운 똥밭에서!"
    선생은 야전잠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다. 똥과의 장렬한 전투 끝에 전사하든 더러운 승자가 되든 알아서 하려무나. 평생 똥 밟지 않으려 전전긍긍, 눈앞만 쳐다보며 지리멸렬하게 사시든가."
    돌이켜보면 선생의 말은 학생들이 아닌 삶 자체에 대한 조롱이었다. 그러나 그 조롱에는 어린 그녀들이 반박할 수 없을 만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교외 백일장에서 제법 수상실적도 좋았던 문예반은 그날 이후 흐지부지되었고, 그녀도 곧 문예반을 탈퇴했다. 똥밭에서 전사하기로 한 건지 더러운 승자가 되기로 한 건지 선생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선생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교무실 한 귀퉁이, 선생 책상 옆에 서서 얼굴 붉히며 가슴 설레던 그 순간만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본질 알아 뭐하시게, 영선의 말을 열일곱 소녀시절에 들었다면, 그 윤리선생 앞에서처럼 그녀는 발갛게 뺨을 물들였을까?
    구제 야전잠바를 걸친 영선이 아파트 출입구 앞에 서 있었다. 영선은 야전잠바를 즐겨 입었다. 그러나 윤리선생과 달리 후줄근해보이지는 않았다. 영선의 야전잠바는 원래 그런 것인지 직접 디자인한 것인지 소매에 줄무늬가 있다거나 등판에 용이 수놓아져 있다거나 했다. 오늘은 가슴에 어른 주먹만 한 독수리 휘장이 달려 있었다. 그런 포인트의 유무가 윤리선생과 영선의 삶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냈을지 그녀는 잠깐 궁금했다.
    영선이 말없이 앞장섰다.
    "어디 가요? 차는?"
    "호프집 가서 월드컵 경기나 보자니까요. 차야 주차해놨지."
    "그냥 술이나 한 잔 해요. 뜬금없이 웬 축구?"
    "뜬금없다니? 이 사람이. 프리미어리그 보느라 날밤 새는 전문가에게 무슨 그런 욕된 말씀을."
    영선은 멀쩡한 대기업에 다니다 출퇴근이 귀찮아 논술학원을 차렸고, 논술특수로 제법 큰돈을 벌었다. 그녀가 영선을 처음 만났을 때쯤엔 학원운영도 귀찮다며 다 정리하고 심심풀이로 일주일에 두 번 강의만 하고 있었다. 그 직후 논술학원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상의 흐름을 읽은 것인지 뒷발질에 얻어걸린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영선은 치고 빠지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를 대할 때도 그랬다. 제법 가까워졌나 싶으면 영선은 처음 봤을 때처럼 정중해지곤 했다.
    "이 근처 대형 스크린 있는 호프집 없어요?
    "나야 모르죠."
    "이 동네 오래 살았다면서 2002년 월드컵도 안 봤나?"
    2002년 초여름, 그날 남편은 한국과 스페인전을 거실 티비로 보고 있었다. 그 며칠 전에는 친구들과 단체로 이탈리아전을 관람한다며 집을 나가서는 동이 트고서야 여전히 술의 여흥이 남아 있는 몰골로 귀가했다. 그 즈음 남편은 다른 나라 경기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느라 눈에 핏발이 설 정도였다. 남편이 티비 속으로 빨려들 듯 몰입해 있을 때 그녀는 기말고사 채점을 하다 말고 김치를 담그는 중이었다.
    그때가 몇 시쯤이었을까? 시든 저녁햇살이 부엌의 서창으로 흥건히 쏟아지고 있었다. 시들었다고는 해도 초여름이라 등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그녀는 무 채를 썰었다. 남편은 집에서 담근 김치가 아니면 입에 대지 않았다. 몰래 사다놓아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시어머니는 결혼 전 세상을 떴고, 친정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었다. 어머니 회복할 때까지만 사다먹으면 안 되겠냐고 통사정을 했더니, 그럼 학기 중에만, 남편은 큰 선심 쓰듯 말했다. 채점에 성적처리에 방학을 했다고 해도 할 일이 태산인데, 전날 밤, 저녁상 앞에서 남편이 말했다. 방학했잖아. 김치 담그란 소리였다. 아침부터 서둘러 배추를 사고 절이고 씻고, 사이사이 일을 하고, 양념을 만들려 채를 써는데 그만 칼날에 왼쪽 검지를 깊게 베였다. 그녀의 비명소리는 온 동네를 뒤흔드는 함성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한국이 골을 넣은 모양이었다.
    방에 들어가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던 그녀는 몇 달 전 화장대에 넣어둔 이혼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상체가 근 사십오 도로 티비를 향해 있는 남편 앞에 내려놓았다. 얼핏 서류를 향했던 남편의 시선은 이내 티비로 향했다. 승부차기를 하기 위해 안정환이 몸을 푸는 중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옆에 선 채 기다렸다. 남편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그 위에 도장과 인주를 올려주었다. 남편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급히 도장을 찍고는 다시 화면에 열중했다. 그녀가 막 식탁에 앉았을 때 남편이 환호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었다. 마치 이혼을 축하하는 세레머니인 양. 축구에 관한 기억이라곤 그뿐이었다.
    "세상이 월드컵으로 들썩이는데 우리도 스을쩍 한발은 담궈야죠. 그게 예의지."
    무엇에 대한 예의냐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언젠가 영선이 말했다. 사는 게 참 쓸쓸하다는 그녀의 넋두리를 듣고 난 뒤였다. 그렇지 뭐. 그러니까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면서 잠시 잊는 거지. 그러니까 영선은, 그녀처럼 우울에 잠기는 대신 그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며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는 모양이었다. 월드컵 관람 또한 그에게는 맛집 탐방과 다르지 않은 견디기의 한 방식일 터였다.
    영선이 시답잖은 잡담을 끊고 2층의 호프집으로 올라갔다. 잠시 뒤 계단 중간참에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호프집은 대형 스크린 코앞의 두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만석이었다. 세상이 월드컵으로 들썩인다던 영선의 말이 사실이긴 한가 보았다. 자신은 평생 관심을 가져본 바 없는 것에 열광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게 그녀는 번번이 신기하고 거북했다. 다르다는 것은 잘못 살아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이름도 잊은 윤리선생의, 이 길도 저 길도 다 똥밭이라는 말이 꽤 괜찮은 위로가 되었다.
    "인생 첫 경험인데 하필 시시한 게임이라 좀 미안하네. 이기나 지나 어차피 한국은 탈락이거든요."
    굳이 호프집까지 보러 와서는 다들 독일과 한국전의 경기는 관심 밖인 모양이었다. 반쯤은 화면을 흘깃거리며 테이블마다 소소한 잡담들이 이어졌다. 후반전에 접어들자 잡담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열한 명이 하는 경기라는 것 외에 포지션조차 알지 못하는 그녀로서도 한국이 해볼 만한 경기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경기 종료 직전 한국의 골이 터졌다. 환호성으로 호프집이 들썩거렸다. 끌어안은 채 방방 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팔을 번쩍 들어올린 영선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 양반 참, 신나면 신난 티 좀 냅시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안 신나요. 어차피 탈락이라면서요?"
    "이 결과론자 같으니. 어쨌든 이기면 좋은 거지. 그리고 신난 게 아니면 그건 뭔데요?"
    영선의 시선 끝에 꽉 움켜쥔 그녀의 오른손이 보였다. 공이 들어간 순간 저도 모르게 움켜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의지와 상관없이 꼭 쥐어진 제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손을 움켜쥘 정도의 긴장 또한 설렘만큼 오래 전에 그녀 인생에서 사라졌었다. 그 모습을 영선이 보고 있었던가 보았다.
    "거봐요. 나오기 잘했죠? 첫 관람에서 이런 명 경기를 보기가 쉬운 줄 알아요?"
    이 정도의 긴장이 밤 외출의 귀찮음을 상쇄할 만큼 의미가 있을까, 그녀는 곰곰 생각했다. 대답은 노였다. 누군가 계속 흔들어대지 않는 한 앞으로의 인생에 이런 예외적인 날은 아마도 흔치 않을 터였다. 어쨌든 오래 잊은 감정을 잠시나마 되찾은 건 분명했다.
    루스 타임에 한국이 한 골을 더 넣었고, 사람들이 더 환호했고, 영선이 보여준 페이스북에서는 한국이 독일을 이긴 덕분에 16강에 진출하게 된 멕시칸들이 그 누구보다 열광하고 있었다.
    "뭐하고 싶어요? 해보고 싶었던 거, 뭐 없어요?"
    호프집 앞 도로에서 담배를 피며 영선이 물었다.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 그녀는 멀뚱멀뚱 영선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바람에 들린 영선의 머리카락 안쪽으로 흰머리가 수북했다. 동글동글한 동안에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 힙하다는 것은 뭐든 하고 보는 영선도 세월은 비켜갈 수 없는 것이다. 모를 리 없는 영선은 그래서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을 터였다. 영선처럼 무언가를 시도하면 사라졌던 감정들이 순간적으로나마 불타오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해보고 싶었는데 해보지 못한 게 뭐가 있을까? 없진 않았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고, 발레도 배우고 싶었다. 발레학원 창에 매달려 구경한 동작을 통금 지나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산동네 골목길에서 따라해본 적도 있었다. 삼성출판사의 세계사상전집이나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도 갖고 싶었다. 월남 간 친구의 삼촌이 가져온 제니스 전축으로 비틀즈를 들으며 그런 삼촌 하나 없는 집안이 서글펐고, 판자촌 입구의 테니스장에서 하얀 치마를 나폴거리며 공을 치던, 오월의 햇살을 받아 청량하게 빛나던 젊은 여자의 얼굴은 몇날며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좌절과 동경이 학창시절 내내 그녀의 무의식을 지배했지만 그녀의 의식은 좌절과 동경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영악하리만치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죽어라 공부했다. 한때의 그녀를 사로잡았던 그런 것들은 언젠가부터 빛 바래 윤곽밖에 남지 않은 낡은 사진처럼 희미해졌다.
    쇄골이 보이는 브이넥,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니트 원피스, 새빨간 스틸레토 힐 같은 걸 간혹 시도해보고 싶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못할 것은 없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가혹하리만치 자각하고 있기에 입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또… 가벼운 만남과 산뜻한 이별, 낯선 곳에서 낯선 남자와의 하룻밤, 정신에 지배당하지 않는 육체의 가벼운 움직임, 부끄러움 없는 당돌하고 도발적인 섹스, 같은 것들을 지금도 간혹 꿈꾼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성정과 자의식의 강도에 달려 있어 꿈꾼다고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그녀는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다. 성정이나 자의식과 무관하고 시간과 적당한 돈만 있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방금 나온 호프집 지하의 노래방 간판이 눈에 띄었다. 노래를 못하는 데다 귀청을 울리는 싸구려 기계음이 싫고, 무조건 노래를 해야 한다는 한국인의 이상한 법칙이 싫어 평생 두 번밖에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계산을 하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고백했다.
    "나, 박치예요."
    "안 물었어요."
    영선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그녀에게는 고백할 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상대가 기대하는 것도 실망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솔까지밖에 안 올라가요."
    "안 물었어요. 노래나 골라요."
    영선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듣기만 하면 따라 부를 수 있는 그들 시대의 애절한 사랑노래였다. 중 삼의 그녀가 즐겨 부르던 노래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먹먹한 사랑이 머지않은 미래의 어디쯤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별노래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고, 사랑노래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던 시절이었다. 검푸른 새벽하늘에 마음이 시렸고, 지는 노을에는 괜스레 처연해졌다. 비에 젖어 아스팔트 위로 나뒹구는 낙엽에 눈물을 떨군 적도 있다. 살면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오십삼 년을 살았으니 그녀 머리 위로 만구천삼백사십오 번 해가 뜨고 해가 졌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노을, 기억에 남는 새벽은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 그것도 대부분 삼십대 이전의 기억이다. 나머지 만구천삼백삼십오 번의 일출과 일몰은 있었으나 없었다.
    쉰세 번의 사계를 경험했으나 봄바람에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이 흥성이던 봄은, 따가운 소낙비를 뚫고 달리던 여름은, 사람 키만큼 솟아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길을 따라 달빛을 밟고 걷던 가을은, 폭설에 갇혀 고립무원의 절대고독을 느꼈던 겨울은 단 한 번이었다. 나머지 계절은 바람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버렸다. 설레지 않는 시간은 기억에 각인되지 않고 무로 화했다. 설렘이 사라진 마흔 이후의 하루는, 사계는, 광속보다 빨라 아등바등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았다. 눈 떠보면 다른 하루, 다른 계절이었다. 남은 시간 또한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녀의 할머니는 아흔셋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 한 평생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부렀어야. 그 말을 끝으로 할머니는 광물처럼 무감하게 눈을 감았고 숨을 멈췄다. 할머니의 노년은 생명의 세월이 아니라 광물의 세월이었다. 어쩌면 그녀 또한 이미 광물의 시절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언제 노래가 끝났는지 영선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나랑 잘래요?"
    영선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 아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염려하는 중일 터였다. 남녀의 눈빛이 한 점의 설렘 없이 퀴퀴한 냄새의 입자들이 떠다니는 지하 노래방의 허공에서 마주쳤다.
    "이렇게 느닷없이? 왜?"
    영선이 덤덤하게 물었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 추켜올렸다. 사귀자는 의미냐, 따위를 묻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그냥. 오늘이 아까워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니까."
    비록 최초의 흰 터럭을 발견한 날이긴 해도 남은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인 건 확실했다. 흰 터럭은 둘로 셋으로 늘어나고, 그 사이 주름은 깊어지고, 살은 늘어질 것이다.
    "그럽시다, 그럼."
    영선의 답변은 언제나 그렇듯 담백했다. 오늘은 순대국이나 먹죠. 그럽시다, 그럼. 알리오 올리오 어때요? 그럽시다, 그럼. 이게 영선의 스타일이었다.
    사방천지 어디나 흔한 모텔에 그녀는 처음 발을 디뎠다. 전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둘은 첩보영화를 찍듯 시간차를 두고 대학가 부근의 무슨무슨 장에 드나들었다. 장이 모텔로 바뀌는 사이 그녀는 혼자가 되었고, 혼자 세월을 죽이며 늙어갔다.
    모텔의 침대 시트는 겉보기에는 장에 비해 한결 깔끔했다. 호텔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영선이 샤워를 하는 사이, 그녀는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웠다. 자자고 도발한 주제에 옷을 벗고 기다릴 용기는 나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그녀는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본 적이 없었다. 설레지 않는 남자와 단 둘이 한 방에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샤워 가운을 걸치고 나온 영선은 자기 집인 듯 자연스럽게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고 휴대전화를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했다.
    "뭐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비틀즈."
    정체된 세상이 지루해 견딜 수 없는 청춘의 노래, 비틀즈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를 그녀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정체된 자신을 뒤흔들고자 영선과 모텔에 온 것이었다. 평소와 다른 어색함이 그녀를 뒤흔들고 있긴 했다. 그녀와 달리 영선은 차분하게 베개 두 개를 겹친 뒤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그녀는 숨이 막히도록 어색했다. 그녀는 두 명의 연인과도 그랬다. 어색해서 술을 마셨고, 취기로 간신히 어색함을 버텼다. 미숙했던 연인들 또한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가 더 어색한지, 누가 더 빨리 어색함을 털어내는지 내기라도 하듯 술을 마시고 서툰 손길로 급하게 서로를 더듬었다. 그 모든 순간에 그녀의 심장은 미칠 듯 뛰었다. 어색함과 부끄러움과 설렘이 뒤섞여 어느 것이 더 깊은 감정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영선의 옆자리에서 그녀는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몇 시간 전에 본 새하얀 터럭 하나와 불룩한 아랫배와 두툼한 허릿살이 지우려 해도 자꾸만 떠올랐다. 교정시력 일점 영으로 본 거울 속 장면 그대로 생생하게.
    영선은 비스듬히 누운 자세 그대로 아주 천천히, 아주 오래도록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따스한 햇살 같았다. 천천히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잦아들고 졸음이 야금야금 다가왔다.
    "자요. 옆에 있을게."
    영선은 애당초 몸을 섞을 생각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함께 잘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침대 위의 그녀에게서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읽어냈는지도 모른다. 안도와 함께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눈을 감은 채 편안한 잠 속으로 스며들면서 그녀는 전 남편과의 마지막 섹스를 떠올렸다. 이혼하기 한 달 전쯤, 잔뜩 취한 채 돌아온 남편이 겁탈하듯 그녀를 덮쳤다. 혼자 끙끙거리던 남편은 하다 말고 그녀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그게 지금까지의 마지막 섹스였다. 어쩌면 남은 날까지 통틀어 마지막 섹스가 될지도 모른다. 그날이 마지막일 거라고는, 그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지막일 줄 몰랐던 마지막 섹스. 하기야 그녀는 젊음도 설렘도 마지막일 줄 모르고 하찮게 흘려보냈다. 안구건조증 때문인지 마지막 섹스의 서글픈 기억 때문인지 그녀의 볼 위로 서너 방울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서글픔 탓이라기보다는 다정하고 섬세한 영선에게조차 설레지 않는, 광물의 시절로 접어든, 그녀 자신에 대한 쓸쓸한 조사일 수도 있었다. 쓸쓸한 조사답게 눈물은 이내 그쳤다. 그녀가 깊은 잠에 빠진 뒤에도 영선은 하염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혹여 잠을 깨울까 자세도 바꾸지 않은 채.

 

 

 

 

 

 

 

 

 

 

 

 

 

 

 

작가소개 / 정지아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로 당선. 창비에서 소설집 "행복", "봄빛", 은행나무에서 "숲의 대화" 출간.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수상.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

 

   《문장웹진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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