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미러 - 김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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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사이드미러

 

 

김덕희

 

 

 

– 1 –

 

    "별일 없지? 저녁에 나와서 술이나 한잔해."
    종규였다. 무슨 재단에서 창작지원금을 천만 원이나 받게 돼서 한턱내는 자리라 했다. 종규가 선정자 명단에 있다는 얘긴 다른 데서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 봐서."
    "시간은 개뿔. 이따 보자."
    종규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개뿔?'
    나는 불시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불쾌해졌다. 동갑내기 대학 동문의 스스럼없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기분이 상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어떤 술자리든 빌붙는 걸 개의치 않고, 자리에 부르지 않아도 어떻게든 찾아가는 걸 잘 알아서 하는 소린 줄도 알았다. 그래도 데뷔 연차로는 까마득한 후밴데 바짝 기어오르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장난 좀 쳤다고 질질 짜던 병아리가 어느새…….'
    종규가 신춘문예에 투고해 놓고 전화를 기다리던 때였다. 투고자로서는 휴대폰 화면에 서울의 전화번호만 떠도 가슴이 철렁하는 시기였다. 나는 그런 의례는 오래전에 통과해 놓았기에 어느 학교 누구의 제자가, 동문이 모 신문 무슨 부문에 됐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들려오는 소식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내 첫 시집을 낸 직후라 출판사에 갈 일이 있었는데 문득 전화기를 붙들고 있을 종규 생각이 나서 출판사 전화를 이용해 신문사인 척해 봤다. 종규는 내 목소리를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고분고분 받았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정체를 밝혔다. 그날 종규는 전에 없이 화를 냈고 안 하던 욕도 하다가 결국 울어버렸다. 뭘 울기까지 하냐며 면박을 주곤 끊었는데 생각해 보니 꽤 놀랐을 것도 같았다. 기왕이면 진짜 당선 전화를 받아서 확 풀어졌으면 싶었는데 그해는 그렇게 그냥 넘겼고 이듬해에 됐다.
    새해 첫날 마주하는 당선자들의 프로필과 당선소감은 당선작이나 심사평만큼, 아니 그보다 조금 더 흥미로웠다. 암묵적인 성과평가를 받고 있을 각 학교 선생들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문단 안에 학연이 없는 듯한 당선자가 보이면 그래서 반가웠다. 종규는 그 반대였다. 당선소감 말미에 학과의 모든 교수들의 이름을 나열한 뒤 감사하다고 했고 깃털 같은 인연만 있어도 선배 문인들을 마구 끌어다 놓았으며 심지어는 내 이름도 넣어 뒀다.
    장황해.
    작년 겨울 한 출판사의 송년회에서였다. 맥주로 입술만 적시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종규에게 최근 발표작에 대해 독후감을 말해 줬다. 종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더니 왜 걸핏하면 그러냐고 되물었다.
    니가 무슨 대가야? 모르는 것 같아서 얘기해 주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려.
    그때 나는 종규의 얼굴에서 싸구려 야망 같은 걸 보았다.
    어쩌라고? 다 꺼지라 그래! 뭐가 진짜 창피한 건 줄 아냐? 되도 않는 걸 써 갈겨 놓고 잘난 척하는 거야 인마!
    목소리가 컸는지 몇몇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종규는 그게 못내 창피한 듯했다. 얼마 안 있어 편집부 직원 둘이 우리 쪽으로 와 앉더니 종규를 감쌌다. 근작에 대한 매우 호의적인 평가를 붙여 가며 종규를 떠받들었다. 그때 종규의 머리 뒤에서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평소처럼 잔뜩 취했고, 꽤 유명한 어떤 시인 선배와 시비가 붙어 여러 사람에게 깊이 각인되었다는데 정작 나는 하도 잦은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까 종규가 나를 피했다. 문단에서 누가 어느 자리에서 누구와 있었다는 얘기 정도는 어떻게든 떠돌기 마련이라 아마 이번에도 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겠지만 이다음에 마주쳤을 때 민망해지지 않으려 전화한 것 같았다.
    옛날 일을 생각하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책장으로 가서 내 시집을 꺼냈다. 처음에는 이 출판사의 시집 목록이 유명해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것만으로도 기뻤으나 나중에는 홍보에 무심하기로 작심한 듯한 출판사의 영업 기조가 못마땅했다. 초판 1쇄가 소진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고, 2쇄는 1쇄의 절반도 안 되는 부수를 찍었는데 아직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종규가 지원금을 받는다는 소식에 불현듯 창작욕이 불탔다.
    '구간을 살리는 건 신간이지.'
    나는 노트북 하드디스크에 방치되어 있는 시들을 떠올렸다. 발표한 날짜와 매체로만 나눠 둔 상태라 시집을 꾸리려면 서둘러 목차와 구성을 짜야 했다. 노트북을 켜고 프린터를 연결했다. 퇴고를 할 때는 늘 이면지에 출력했는데 새것을 얻은 기분이 그리웠다. 카트리지에서 이면지를 빼내고 새 종이를 한 뭉치 넣는데 이번엔 토너 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 깜빡거렸다. 영감의 고갈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졌다는 문장이 떠올라 메모해 뒀다.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휴대폰에서 종규의 이름을 보자 숙취와 함께 잠결의 곳곳에서 나를 괴롭히던 꿈이 떠올랐다. 꿈이 아니라 새벽에 실제로 벌어진 일의 온전치 못한 기억인 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비몽사몽이었고 목젖이 갈라터질 것만 같아서 여보세요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걸 아는지 종규는 곧바로 용건부터 말했다.
    "차주한테서 전화 왔어."
    알아듣기 힘들었다.
    "차주가 누군데?"
    내가 듣기에도 짜증날 만큼 꽉 잠긴 목소리가 성대를 긁으며 나왔다.
    "쯧. 벤츠 말이야."
    종규는 혀를 차며 말했다.
    "벤, 츠? 음흠흠."
    가늘게 뜬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며 헛기침을 몇 번 해서 목을 가다듬은 다음 천천히 한 번 더 발음해 봤다.
    "벤…… 츠……."
    그 순간 천장이 무너지는 환상을 봤다. 새벽에 벌어졌던 일이 꿈결보다는 구체적으로 기억났다. 내가 또 사고를 쳤다. 바닥에 눌어붙다시피 한 몸을 일으키려는데 허리께가 날카로운 칼이 들어오는 것처럼 아파서 도로 누웠다. 몸이 왜 이런 거지? 허리만 문제가 아니었다. 각 관절을 모조리 끊었다가 다시 이어붙인 듯 뭐 하나 내 것 같지가 않았다. 몇 번 심호흡을 하고 중환자처럼 손으로 바닥을 조금씩 짚어 가며 일어나서는 전화기를 귀에 바짝 갖다 댔다.
    "그래서, 얼마래?"
    "몰라. 맡겨 보고 연락하겠대. 잡아뗄까 싶어서 전화한 거지. 근처에 CCTV가 세 대나 있었고 차 안엔 블랙박스도 돌아가고 있었다는데 확인 전화라니, 지독하지."
    "씨발, 있는 새끼들이 더하다니까. 왜 길바닥에 주차를 해 놔서는……."
    "야, 그런 소리 마. 니가 잘못하긴 했어."
    "누가 뭐래냐."
    "어쩔 거야? 아는 형한테 물어보니까 한 이백은 잡아야겠던데. 그 형이 차를 좀 알거든. 아, 너도 알겠다. 소설 쓰는 K형 말야."
    안다. 최근에 포르셴지 페라린지로 차를 바꿨다는 얘기를 들었다. 니미럴, 그 돈 있으면 술이나 살 것이지. 그나저나 문단 돈은 죄 소설가들한테만 쏠리나……. 그런데 이백?
    "좆도! 무슨 백미러 하나가 이백이야?"
    "벤츠야 벤츠. 그리고 백미러가 아니고 사이드미러."
    "아우, 너는 이 상황에 씨발…… 됐고, 혹시 그 차 불법주차나 뭐 그런 건 아니야?"
    "기억 안 나? 순찰하던 경찰도 보고 갔잖아. 비상등 켜놓고 담배 사려고 편의점 앞에 잠깐 세웠단다. 그사이에 누가 날아 차기로 차를 부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냐."
    기억이 난다. 3차인가를 하고 나온 참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 무엇엔가 잔뜩 골이 나 있는 상태였고 일행 뒤에 멀찍이 혼자 처져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나를 떼어 놓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어렴풋이 감지됐다. 그리고 저 앞에, 내가 일행을 따라붙어야 할 경로 위에 허옇고 커다란 짐승 한 마리가 시뻘건 눈을 껌뻑이며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비켜…… 그렇게 경고했지만 짐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나는 조급해졌다. 막고 있지 말라고…… 한 번 더 경고했다. 짐승이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포효하는 걸 봤다. 나는 급기야 이판사판으로 달려들었다. 짐승의 한쪽 눈을 뛰어넘듯 해서 펄쩍 뛰어올랐는데 오른쪽 발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벤츠 주인의 연락처를 물었다.
    "그래, 뭐, 니가 전화할 거라고 얘기는 해놨어. 저쪽에도 니 연락처를 줬고……. 챙겼어야 하는데 괜히 우리 잘못 같다. 워낙 다 취했고 눈 깜짝할 새 일어나서 말이지. 아무튼 차주한테 얼른 전화부터 해. 그게 예의겠어."
    종규의 말투에서 귀찮은 숙제를 끝냈다는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그래 넌 이쯤에서 빠지고 싶겠지. 잘 먹고 잘살아라 새끼야…….'
    전화를 끊고 곧바로 벤츠 주인에게 걸었다. 뭐라고 사과부터 해야 할 텐데 마음은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일단 끊었다가 멘트부터 준비하고 다시 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어쩐지 이대로 끊으면 저쪽에서 나를 우습게 볼 것만 같아 통화대기 신호를 계속 듣고 있었다. 노래나 음악이 아닌 그냥 평범한 벨소리였다. 분명히 현장에 있었는데도 얼굴이나 목소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의 손에 의해 나는 벤츠에서 멀찌감치 떼어 놓아졌던 것 같다. 어딘가에 내동댕이쳐진 채 쭈그리고 앉아서는 아직 덜 풀린 분을 삭이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종규 일행과 어떤 사람이 경찰들의 커다란 등짝에 가려진 채 마주하고 있는 장면만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마저도 알록달록하거나 지나치게 환한 간판들이 그들의 실루엣을 뭉개버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이동……"
    나는 얼른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걸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받지 말길 바라고 있었던 것도 같다. 피차 불편한 사이에 목소리를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차를 파손한 사람입니다. 수리하신 뒤 영수증과 계좌번호를 보내주시면 송금하겠습니다.

 

    문자를 찍어 놓고도 전송 버튼은 누르지 못했다. 다시 읽어 보니 너무 사무적이었다. 벤츠가 기분 상해서 덤터기를 씌우면 어떡하나 싶었다. 선처를 호소할까. 이백이면 현재 내 통장 잔고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십니까. 간밤에 선생님의 차에 불미스러운 짓을 한 사람입니다. 오늘 심기가 많이 어지러우실 것 같습니다. 불원천리 찾아뵙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함이 마땅하나 선생님의 일정에 누가 될까 싶어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문자를

 

    나는 성의껏 문장을 만들어 나가다가 한 번에 다 지웠다. 바짝 엎드린 문투도 마음에 들지 않았거니와 너무 산문적이었다. 이런 문장은 종규 따위의 소설가나 쓰라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 몸에서 말들이 비늘처럼, 깃털처럼 일어서길 기다렸다. 뮤즈의 숨결은 나의 들숨에 섞여 들어오고 내 안에 고착된 습벽들은 모두 날숨과 함께 배출되길 기도했다. 심호흡을 해보니 뮤즈가 들어오는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으나 들척지근하고 시큼한 날숨에서 술 냄새는 분명히 맡아졌다. 그때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저장되어 있는 번호는 아니었다.

 

차부순분이죠지금회의중인데이제번호확인했으니수리후연락드리겠습니다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데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문장의 형태가 독해를 지연시켰다. 띄어쓰기를 몰라서가 아니라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다. 그저 보이는 그대로라면 무성의한 메시지인데 읽어 볼수록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들여다보면서 행간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읽어내고 싶었다. 내가 한심한가? 안타까운가? 무서운가? 그러나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가 있긴 있었다. 천천히 소리 내어 다시 읽어 보았다. 문자메시지 하나를 들고 끙끙대고 있는 게 우스웠지만 나는 글에서 상대의 감정이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어라? 이거 시적인데?'
    볼수록 세 줄의 글자 뭉치 안에서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수면 저 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커다란 물고기의 그림자 같았다. 기본 글자 수 제한 때문에 띄어쓰기를 포기한 것이겠지만 어쩐지 시를 좀 아는 사람일 것만 같았다. 행장을 고려해 어휘를 골라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띄어쓰기와 문장부호를 없앰으로써 기표를 잠시 미끄러뜨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순간적인 표류 안에서 새로운 운동성이 움트는 걸 보았다. 어쩌면 발신인은 벤츠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 또한 수신인이 아니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점차 뒤엉켰고 우리는 계속해서 미지의 영역으로 흘러갔다. 우리는, 우리는…….
    '뭐라는 거야 씨발.'
    나는 망상에 빠져들었음을 깨닫고는 서둘러 답신을 보냈다. 최대한 정중하게, 그리고 착해 보이게.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 2 –

 

    며칠 동안 벤츠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라 수리비를 마련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궁리 끝에 원고 뭉치를 들고 첫 시집을 낸 출판사로 달려갔다. 안면 있는 직원들이 인사를 걸어오는 것도 무시하고 무작정 대표실로 갔다. 대표는 나를 보자마자 드러나게 어색해했다.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연락을 했다면 요리조리 피하며 만나주지 않을 게 뻔했다. 언제는 내 첫 시집을 꼭 직접 내고 싶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사주더니 이제는 대놓고 나를 피하고 있다. 대표는 괜히 넥타이를 매만져 보다가 사자 갈기처럼 기른 머리를 쓸어 올려 뒤로 한번 질끈 붙잡아 보기도 했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각진 턱 밑에 짧게 기른 거친 수염까지 가세해서 전체적으로 위압적인 인상을 풍기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인들을 향한 동경과 측은지심을 함께 간직한 유순한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마저 나를 피해 다닐 정도니 내가 그동안 너무 까불긴 했던 것 같다.
    직원이 바깥에서 쭈뼛거리다가 열린 문 사이로 목만 들이밀고는 차를 내올지를 물었다.
    "난 됐고, 넌 뭘로 할래? 믹스도 있고 녹차도 있고……."
    "저도 됐어요.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좀 앉죠? 긴히 할 얘기도 있고요."
    주인이 안 마시겠다는데 객이 차를 내라 마라 할 수는 없었다. 대표는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와서 나와 마주 앉았다. 나는 여기까지 찾아올 때 어차피 쪽팔리기로 작정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가방에서 원고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놨다. 지구를 가격하는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를 기대했으나 A4 용지 육십 장이 채 안 되는 무게가 말해 주듯 내 시들은 너무나 가벼웠다. 일단 계약을 해놓고 출간 때까지 최선을 다해 퇴고하기로 했다.
    "형, 시집 좀 내줘요. 계약금이 필요해요."
    대표는 그제야 노골적으로 피곤한 얼굴을 하고 소파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었다. 동시에 한쪽 다리를 들어 다른 쪽 다리 위에 포갰는데 슬리퍼 밖으로 튀어나와 꼼지락거리는 쥐색 발가락 양말이 허공에서 소심한 호를 그리는 게 눈에 들오는 바람에 처지에 맞지 않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시집…… 언제 또 이만큼이나 모았어?"
    대표가 어물거리기만 하다가 마지못해 상체를 숙여 원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리를 꼰 상태에서 짧고 두툼한 몸을 접는 게 힘겨워 보였다. 허공에 동동 떠 있는 쥐색 발가락들이 일제히 꽉 오므려지며 기합이 잔뜩 들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대표는 몇 장 건성으로 뒤적이다 말했다.
    "알다시피 책을 내고 말고는 나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거든. 출간위원회에 부쳐서 회의를 해봐야 해. 그러려면 일단 한두 달은 걸릴 테고……."
    그는 원고를 그대로 내려놓은 뒤 원고를 들추던 손으로 발가락을 매만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다 나를 한 번 보더니 잊고 있던 걸 기억한 사람처럼 고개를 홱 돌려 책상 위의 서류들을 봤다. 그때 다시 까딱거리는 쥐색 발가락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잘 익은 열매처럼 포동포동 맺혀 있었다. 중년 남자의 발가락이 저렇게 앙증맞을 수 있을까. 나는 발가락들이 무척이나 평온해 보여 문득 내 신세가 서러워졌다.
    "그럼 인세라도 좀 당겨서 받을 순 없을까요. 절판은 안 시키시니까 어쨌든 다 갚게 되잖아요."
    나는 이왕 질러버린 거 바닥까지 훤히 드러냈다. 이러는 것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체면을 차리려고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건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인세를 가불해 달란 거네? 형편 어려운 시인이 한둘도 아닌데 괜한 선례를 남겼다간 내가 부담스러워서 안 되겠고……. 야, 그러지 말고 정 급하면 회사 일을 좀 도와주지 그래?"
    나는 의외의 대답에 눈이 번쩍 뜨였다. 출판사 일이라면 필요한 만큼은 알고 있었다. 편집은 열두어 권쯤 통으로 진행해 봤고 영어 번역도 초벌 정도는 가능했다. 무슨 일인지 아직 듣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뭐든지요."
    대표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상체를 이쪽으로 기울였다. 그놈의 발가락이 탁자 아래로 사라지자 한결 시야가 편해졌다.
    "차 있지?"
    차? 10년쯤 된 아반테가 있긴 있었다. 첫 시집을 내고 수도권 외곽에 있는 대학의 학부 창작 수업을 한 학기 맡은 김에 중고로 산 건데, 전국 각지에서 특강 요청이 쇄도할 걸 대비해서였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을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샀다. 왜 그랬냐면, 모르겠다. 뭐에 홀려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겐 필요보다는 핑계가 있을 때 사는 게 있다. 내 경우엔 그게 차였다.
    "네, 있죠."
    "물류에 대해 좀 아나?"
    "물류요?"
    "창고 말이야."
    언뜻 그려지는 게 없어 대표의 눈만 바라봤다. 그 눈빛이 조금 전까지와는 달랐다. 착각인 줄 알았는데 분명히 광채가 어려 있었다. 기필코 회유하고 설득해 내고 말겠다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갈급함이 있었다. 대표는 분명히 오늘이 아닌 과거의 어느 날도 나를 저렇게 봐준 적이 있었다. 첫 시집을 내자고 했을 때였다.
    한국의 시단은 이제 자네 이전과 이후로 나뉠 거야.
    그렇게 말했다. 얼마나 아득한지 그때와 지금 사이에 서너 개의 우주가 가로놓인 기분이었다. 그동안 문단 행사 같은 이런저런 자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를 향한 저 광채는 조금씩 흐려졌다. 그리고 시단이 어떻게 어떻게 나뉠 거라는 말을 다른 시인에게 하고 있는 것도 봤다.
    "실은 얼마 전에 우리 창고에 아르바이트 애 하나가 입대 때문에 그만뒀는데, 이게 위치도 위치고 해서 사람이 잘 구해지지가 않네. 파주 알지?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탄현이라고 있거든. 좀 외지긴 했지. 벌써 한 달이 다 돼가. 창고에서는 이러다가 출고도 펑크 나게 생겼다면서 지나가는 고양이 발이라도 빌릴 판이래. 알바비가 한 달에 백이십인데…… 백오십 어때? 가불도 돼. 당장 필요한 게 얼마야?"
    창고지기라니까 처음엔 불쾌했다. 그러나 꼭 나쁘게만 생각할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계산도 동시에 돌아갔다.
    "책은 맘대로 가져다 봐도 돼요?"
    "그러엄!"
    "할게요."

 

    자유로를 타고 한참 북진하다가 통일동산 못미처에서 국도로 빠진 뒤, 몇 개의 한적한 마을을 지났다. 대표가 주소를 잘못 일러줬을 리 없고 내비게이션이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희박했지만 마을들을 그냥 지나칠 때마다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커졌다. 급기야 산을 깎아 길을 낸 비탈을 내비가 가리켰다. 나는 구불구불한 비탈을 마지못해 오르면서 주소를 다시 찍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그것은 또 하나의 마을이었다. 출판사 로고를 소형차 크기로 붙여 넣은 거대한 창고들이 오와 열을 맞춰 단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대표네 회사만의 창고가 아니라 수많은 출판사들의 '창고 연합체'쯤 되는 것 같았다. 연합에 속한 각 출판사들이 경쟁하듯 크게 붙여 놓은 회사의 마크들을 차창에 얼굴을 붙이고 올려다보는데 마치 고대의 유적지에 진입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마우스만 깔짝거려 주문할 줄 알았던 나로선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창고 건물들 사이로 잘 닦인 아스팔트 위를 지게차며 트럭 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스칠 때도 많았는데 복잡한 중에도 각자의 속도와 방향은 미리 약속돼 있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비는 비어 있는 도로 위에서 대표네 출판사의 창고로 인도했다. 내비에 표시된 길들은 사다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사다리의 외곽에서 차를 몰고 올라가다가 곧 발판 쪽으로 들어갔다.
    열려 있는 철문 안으로 복잡한 구조물들이 보였다. 창고 앞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작달막한 사내가 어디선가 나타나더니 차를 바깥쪽에 대고 오라고 소리쳤다. 창고장은 오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내 턱에도 못 미치는 작은 키로 나를 훑어보는 시선이 마치 깐깐한 노예상 같았다. 내가 이 출판사에서 시집까지 낸 시인인 건 말하지 않기로 했다. 피차 불편해질 수 있다며 대표가 당부했다. 그래서 내 신분은 대표의 지인이 잘 아는 후배와 군대 동기쯤으로 돼 있었다. 이름도 본명인 주형식이 아니라 가명을 써서 주연무라고 했다. 창고장은 창고 안쪽에 딸린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초봄인데도 난로를 켜놓아야 할 만큼 창고 안은 서늘했다. 밀도 높은 공기에서 종이 냄새와 기름 냄새가 함께 맡아졌다. 우리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낡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자가 일어서서 반겼다. 창고장보다 키가 컸고 조깅을 하러 나온 사람처럼 입고 있어서 몸이 가뿐해 보였다.
    "이쪽은 주연무 씨고, 이쪽은 송윤정 과장. 커피나 한잔씩 하고 시작하지."
    창고장은 나를 여자에게 넘기고 직접 커피를 타서 사무실 구석에 둔 소파에 앉았다. 나는 창고장이 테이블에 놓여 있던 신문을 펼쳐드는 걸 눈으로 좇으며 여자의 말을 들었다.
    "어서 와요. 그냥 송 과장이라 부르면 돼요. 믹스밖에 없는데 어떡하나?"
    "괜찮습니다. 저도 믹스 좋아합니다."
    "첨엔 좀 헷갈리는데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고등학생 애들도 일주일이면 다 하니까."
    송 과장은 먼저 창고를 둘러보자고 했다.
    창고는 보통 건물의 3층 높이는 되는 것 같았는데 두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넓이는 빼곡히 차 있는 선반 등의 구조물 때문에 짐작이 어려웠지만 못해도 농구장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모든 선반은 4단짜리여서 선반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들여다보면 반대편의 소실점을 향해 여덟 개의 선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선반마다 덩이째 묶인 책들이 가득했다. 내가 할 일은 전국의 각 서점에서 보내온 주문서를 들고 통로를 뒤져 책을 찾는 것이었다. 과장은 2천 5백 종, 80만 권쯤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책을 찾다가 행방불명되는 남자에 대해 시를 쓰고 싶었다. 오랫동안 주문이 없던 책처럼 구석진 선반 사이의 작은 틈에 낀 채 발견되길 기다리는 상상을 했다. 창고장이나 송 과장은 물론 출판사의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잊고 있는 책일 것이다.
    "넓죠? 우선은 주문서에서 내가 체크해 주는 것만 찾아다 줘요. 어디에 있는지 창고장님이나 나한테 물어보고 가고요. 잘나가는 책 위주로 시작해요. 몇 번 하다 보면 그런 책들 위치는 빨리 기억할 수 있어요. 그런 담에 그 책들을 기준으로 머릿속의 지도를 넓히는 거예요. 별거 아니죠?"
    손에 든 종이컵이 그새 다 식어 있었다. 때마침 도트프린터가 째재쟁, 째재쟁 하며 창고 안을 울렸다. 구식 도트프린터의 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어 본 게 못해도 십오 년 저쪽은 아닐까 싶었다. 마치 신경질적인 감독관이 일을 시작하라고 재촉하는 소리 같았다. 도트프린터의 소음은 주문서 한 장당 적게는 서너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까지 울려댔다. 잠깐 듣고 있었을 뿐인데 관자놀이가 얼얼해졌다.
    '한 줄 주문, 비명, 공간이 찢어진다. 터진다.'
    시상이 떠올라 휴대폰을 열고 메모했다. 그걸 본 송 과장이 혀를 찼다.
    "일할 땐 그거 보고 있을 여유는 없을 거야. 창고장님이 아주 싫어하기도 하고요."
    나는 그런 게 아니라 일종의 예술적인 활동이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휴대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감추듯 넣었다.
    일은 걱정했던 것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송 과장이 장담한 대로 금방 대강의 책 지도를 갖게 되었다. 친정 같은 출판사라서 평소에도 내놓는 책마다 관심을 둔 덕분에 눈에 익은 책이 많았다. 창고에서도 시리즈나 분야별로 분류를 잘 해놓고 있었다. 종수가 많다지만 나가는 것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따금 주문서에 찍혀 있는 제목과 저자 이름만으로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 책이 있었는데, 창고장이나 송 과장이 정확한 위치를 말해 줬다. 가리킨 곳에 가보면 이런 걸 누가 찾을까 싶은 책이 아주 적은 양만 보관돼 있었다. 나는 2천 5백 종, 80만 권의 책을 모두 외우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이 초능력자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벤츠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은 것도 잊고 있었다. 오전 내내 선반 사이를 누비면서 책을 한 아름씩 찾아오다 보면 점심쯤엔 정강이가 뻐근해졌다. 몸을 움직이니 입맛도 돌았다. 점심은 늘 배달시켜서 먹었는데 주로 중국음식이었다. 두 사람 모두 10분도 안 되어 자기 그릇을 비워버리는 건 잘 적응되지 않았다. 굳이 식사 시간을 맞출 필요는 없었으므로 나는 소파에 오래 앉아 내 몫의 음식을 다 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오후를 버텨낼 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오전에 책이 빠져나가서 훌렁해진 선반들을 채우는 작업을 했다. 청소부터 했다. 책을 찾는 게 우선이라 복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댐지와 밴딩 끈 들을 주워 마대자루에 담았다. 매일 마대자루 세 개가 꽉 찼다. 그러곤 2층에 가서 빈 선반의 책들을 몇 덩이씩 가져와야 했다. 2층에는 수백 권은 돼 보이는 책 무더기들이 팔레트라고 부르는 사각형의 커다란 받침대 위에 반듯하게 쌓여 있었고, 그런 팔레트가 두 사람이 몸을 비껴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을 사이에 두고 가득 보관되어 있었다. 매일 정신없이 바빴고 집에서는 곧장 뻗었다.
    서점들이 반품하는 책이 창고 한쪽에 잔뜩 쌓여 있었다. 그걸 풀어헤쳐서 되팔 수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구분하는 게 이른바 반품 작업이었는데 내가 들어와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오후에도 출고 처리에 여념이 없어 도무지 손을 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조금씩 짬을 내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일단 작업에 손을 대면 판을 크게 벌여서 오랫동안 붙들어야 하기 때문에 모아 뒀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했는데 사람이 없어 수 주째 밀려 있었다.
    반품들 중에 재생되지 못할 책은 도살장으로 옮겨졌다. 창고 단지 구석에 설치된 도살장은 전체 출판사가 공유하고 있는 듯 쌓인 책이 산더미였다. 갈기갈기 분해되길 기다리는 책들은 저마다의 고향이 있었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대여섯 권씩 한 데 묶여 책등을 위로 한 채 엎드려서는 저 위쪽에서 가로로 돌아가고 있는 톱날을 향해 보내졌다. 너는 어디에서 왔니, 우린 어디로 가는 걸까. 어깨동무를 한 책들이 그렇게 불안한 눈을 굴리며 말하는 듯했다. 기어코 톱날이 책등을 썰 때는 내 정수리로 칼날이 들어와 목덜미와 등짝을 훑고 꼬리뼈까지 길게 한 겹 벗겨내는 듯 아팠고 톱날에서 쏟아지는 비명과도 같은 소음에는 식은땀마저 났다. 그렇게 척추가 저며진 책은 수백 조각의 낱장으로 흩어져 자루에 담겼다.
    어디 기증이라도 하면 안 되는 거냐고 송 과장에게 물으니 책은 파는 거지 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출판사들이 책을 공짜로 풀어버리면 시장이 어지러워진다고도 했다. 도살장 근처는 하얀 종이 분진 같은 것이 뼛가루처럼 쌓여 있었다. 이번엔 창고장이 가루에 대해 설명했다. 당연히 종이라고 생각했는데 돌가루였다. 나는 종이에 왜 돌가루를 섞는지 물었다. 탈크라고 하는 활석가루인데 종이 표면의 요철을 매워 매끄럽게 해주었다. 재생지나 한지의 거친 질감을 떠올리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창고장은 크게 한 수 가르쳐준 장인처럼 입꼬리를 내려 웃었다. 도살장 견학은 거기까지였다. 원래는 인수증만 받고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학살되고 있는 책들을 향해 마음으로나마 애도하고 등을 돌렸다.
    도살장을 목격한 뒤로 어쩐지 싱숭생숭해졌다. 나는 내 시집도 다른 책들과 함께 창고에 있다는 걸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단 한 권도 나가지 않았다. 다른 시집들은 못해도 하루에 한두 권씩 주문이 있었다. 신간 쪽에 가까이 있는 어떤 시집은 서른 권짜리 덩이가 밴딩 끈을 뜯을 것도 없이 통째로 나가기도 했다. 나는 주문장의 책을 찾느라 오갈 때마다 내 시집의 표지를 한 번씩 닦아 줬다. 그러나 팔일이 지나고 구일이 흘러 열흘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주문은 들어오지 않았다. 간밤엔 내 시집들이 모조리 도살장으로 실려 들어가는 꿈을 꿨다. 꿈에서 대표가 나타났다. 대표는 파쇄기를 돌리는 전기세도 아깝다며 그냥 묻으라고 했다. 나는 생선처럼 펄떡이며 흙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것들을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밴딩 끈을 뜯다가 손을 베었다. 장갑이 더러워졌는데 새것으로 갈아 끼는 걸 미루고 맨손으로 만진 게 화근이었다. 핏방울이 댐지 위로 떨어진 걸 보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피 묻은 책이 배송되는 건 생각만으로 끔찍했다. 반창고를 붙이고 장갑을 끼니 그만큼 둔해져서 책 덩이를 옮기다 떨어뜨렸다. 발등을 찍을 뻔했는데 창고장은 내 발은 전혀 걱정해 주지 않고 책 모서리가 바닥에 찍혀 깨진 것만을 봤다. 출고해 봐야 반품될 게 빤하니 덩이째 폐기 더미 쪽에 던져 놓으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살릴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끈을 끄르고 책들을 살폈다. 하필이면 내가 지독히 샘내고 있는 시집이었다. 대중적으로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지만 어쨌든 당대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시집이었다. 나는 폐기 더미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도살장이 아니라 매대에 나갈 수 있을 만한 걸 최대한 골라냈다.
    3주째 되는 날에서야 내 시집도 한 권 주문되어 나갔다. 나는 감격에 겨워 모든 것에 감사했다. 요전에 동료의 시집에 대해 마음을 곱게 썼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나는 내 책을 주문한 서점 인근의 지역민들을 축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온라인 대형 서점이었기 때문에 주문서만으로는 어디서 내 책을 찾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면지에 "미지의 독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라고 써주고 싶었다. 서점으로 가는 화물차에 다른 책들과 함께 실어 보내며 '잘 읽혀라' 하고 속으로 외쳤다. 아마도 한 달에 한두 권은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한 달에 한두 사람 정도는 내 시집을 찾는다는 말이 되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오후까지도 힘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었고 송 과장이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럴 일이 있다고만 했다.
    그런데 벤츠에게서는 왜 아직 연락이 없나.
    나는 좋은 일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기어코 불운한 일을 떠올려 감정의 균형을 약한 강도의 우울에 맞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가라앉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벗어나려 애썼다. 시상을 떠올리는 데 좋다고 해서 들인 습관이었다.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이제는 그냥 습관일 뿐이다. 희로애락은 언제나 습관성이고 만성이다.

 

    월급날이 다가왔다. 그동안 일이 몸에 익어 이제는 퇴근해서도 곧바로 곯아떨어지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정신도 한결 맑아졌다. 이대로 창고에 다니며 시를 써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글을 쓰는 게 조금 귀찮아졌다. 적으나마 밥벌이를 하게 되니 느슨해진 게 분명했다. 문득 선득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고 내려갔다. 어떤 채찍질도 그렇게 나를 잡아챌 순 없었다. 나는 시인이므로, 애초에 사이드미러 수리비 때문에 시작한 일이므로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맞았다. 기회를 봐서 창고장에게 얘기하기로 했다.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월급날을 맞이했다. 바빠서였던 것도 같고 무뚝뚝한 창고장에게 말을 걸기가 무서워서였던 것도 같고 잘 챙겨 주고 있는 송 과장에게 미안해서였던 것도 같다. 마음을 먹고 출근해서 창고에 들어서기만 하면 머릿속이 비어버렸다. 주문장을 출력해 내는 도트프린터의 쨍한 소리를 들으면 간신히 먹은 마음이 풀어져 버렸다. 그런 한편으로는 앞으로 받을 수 있는 월급들이 아까워서가 아니냐는 힐난이 내 안에서 들렸다. 절대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정말로 '절대' 아닌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휴대폰에 떠서 확인해 보니 급여명세서가 와 있었다. 대표가 처음에 약속한 금액에 못 미쳤는데 4대 보험과 근로소득세를 징수해서였다. 내가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고 4대 보험의 적용을 받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게 다 벤츠 때문이야.
    아무래도 사이드미러 수리비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그저 제자리에서만 맴돌 것 같았다. 나는 약간 화난 상태가 되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차 수리는 아직인지요. 바쁘시더라도 얼른 처리했으면 합니다. 이백 정도면 될까요? 영수증 없이 정리해도 좋습니다. 괜찮으시면 계좌번호 주십시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몇 번 반복해서 읽어 봐도 고칠 데가 없었다. 발송 버튼을 누르자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점심으로 배달되어 온 송이덮밥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한 달 사이에 창고의 두 사람과 식사 속도가 비슷해져 있는 걸 깨닫고 잠시 놀랐다.
    오후에는 밀린 반품들을 싹 정리하기로 했다. 석 달 밀린 것에 매일 조금씩 또 들어오는 바람에 끝이 보이지 않더니 이제야 다 정리할 듯했다. 출고대를 치우고 그 위에 반품된 박스들을 까서 책을 쌓았다. 늘 놀라지만, 그냥 봐서는 하등 반품될 이유가 없는 깨끗한 책들이었다. 송 과장은 인터넷 서점이 늘면서 반품이 폭주했다고 했다.
    "서점에서 손으로 만져 보고 눈으로 살핀 담에 사는 사람들은 약간의 하자는 감수해 주는데 택배로 배송된 책을 받는 사람들은 티끌 하나도 못 참더라고. 책을 읽으려고 사는 건지 책장에 전시하려고 사는 건지……. 그래서 창고장님이랑 나는 온라인 서점에 내보내는 책들은 선반에서 꺼낼 때부터 한 번씩 더 봐. 우리 눈엔 다 똑같은 새 책인데 사는 사람들은 안 그렇거든. 아, 우리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 샀다가 반품하는 사람들은 독자라고 안 해. 구매자, 소비자, 고객이지. 어쩌겠어, 우리가 더 꼼꼼해야지. 그러니까 연무 씨도 지금까지는 그냥 꺼내왔겠지만 내일부터는 온라인에 나가는 건 한 번씩 더 봐줘요. 고객님들 안 언짢으시게."
    나중에 써먹고 싶은 얘깃거리였다. 나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 송 과장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반품된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선은 손에 잡히는 대로 높이 쌓기만 했다. 평상 하나 넓이의 출고대를 반으로 나누어 가급적 많은 책을 쌓아야 작업의 동선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눈에 익은 책을 발견했다. 잔뜩 쌓여 있는 책의 탑들 사이로 책등의 일부만 보였을 뿐이었으나 나로서는 그것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 시집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작업에 여념이 없는 창고장과 송 과장의 눈치를 보며 그것을 빼냈다. 이미 반품 박스에서 꺼내 쌓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어느 서점에서 온 것인지는 몰랐다. 접근 권한이 있다면 거래 내역을 전산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대체 이 많은 책들을 반품하는 이유가 뭐랍니까?"
    나는 지나가는 척, 넌지시 물었다.
    "하자가 있거나 안 팔려서지."
    창고장이 눈길을 주지 않고 말했다.
    "무슨 하자가 있다고 그런답니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 나조차 놀랐다. 창고장은 일손을 멈추고 눈을 치떠 나를 봤다. 나는 손에 들려 있던 내 시집을 떨어뜨리듯 내려놓았다. 창고장은 시집을 잠깐 쳐다보기만 했을 뿐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송 과장이 받지 않았다면 좀 어색해질 분위기였다.
    "우리도 모르지. 본사 영업자들이 와서 좀 보고 멀쩡한 걸 반품했다 싶으면 서점들이랑 싸워 줘야 하는데 어디 그럴 짬이 있나? 짬이 나더라도 안 싸우지. 요새 말로 서점들이 갑 아니겠어? 서점에서 하자가 있다면 있는 거야. 그 사람들도 갑갑하겠지, 대금 줄 날은 돌아오는데 책은 죽어라 안 팔리지, 그러니 받아 놨던 책 중에 가망 없다 싶은 건……."
    "거 쓸데없는 얘기 좀 그만하고 일들이나 하지."
    창고장이 말을 막았지만 송 과장의 이야긴 다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팔릴 가망이 없는 건 대금 대신 돌려준다는 얘기였다. 창고장이 왜 그런 말을 막았을까 생각하니 어쩌면 내가 주연무가 아니라 주형식인 줄 아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송 과장만 이따금 서점들을 욕할 뿐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작업을 마치고 창고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 송 과장이 옷을 털며 다가와서 한 대 달라고 했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도 가끔 피워요. 오늘처럼 일 많았을 때."
    나는 송 과장의 말이 곧이들리지 않았다. 안에서 잠깐 창고장과 둘만 있었던 게 신경 쓰였다. 송 과장도 내가 주형식인 걸 알아버렸을까? 송 과장은 말없이 담배만 즐겼다. 가느다란 목이 부풀도록 크게 마셔서 천천히 길게 내뿜었다. '가끔' 피우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검고 커다란 짐승의 형태를 느끼고 눈을 던지니 고급 세단이 사다리 외곽에서 천천히 지나가는 중이었다. 발판 쪽에 서 있는 우리의 시선에서는 곧 사라졌지만 송 과장이 알아보았다.
    "사라고 출판사 사장님 나오셨네. 오늘도 한 푸닥거리 하나 봐."
    "사라고요?"
    "웃기지? 우리도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아무리 그래도 사라고는 아니지……. 신생인데, ㅇㅇ 출판사 창고 구석에 세 들어 있대. 저러고 들어와서는 팔라고, 팔라고 하고 외친다나? 신생이 뭘 얼마나 벌었다고 벤츠야 벤츠가……."
    나는 벤츠 소리에 생각나는 게 있어 전화기를 찾았다.

 

 

– 3 –

 

    벤츠에게서는 아무 답장이 없었고 종규의 메시지만 들어와 있었다.

 

야, 그거 장난이야. 너는 알 만한 놈이 그러냐? 미안하게.

 

    나는 답장을 보냈다.

 

무슨?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르고서야 퍼뜩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이어서 들어온 종규의 메시지가 그걸 확인해 주었다.
    벤츠의 사이드미러는 처음부터 멀쩡했다. 앞쪽에서 가격한 바람에 그대로 접혀버려 약간의 흠집만 났을 뿐 크게 파손되지는 않은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만 모두가 부서졌다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아니... 난 문자도 오고 그래서 진짠 줄 알았지...

 

    종규를 죽이고 싶었다. 놈이 날 골탕 먹여서가 아니라 내가 속은 게 분해서였다.

 

그건 내가 후배 시킨 거지. 이상하지 않았어?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내 시집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꿈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한 달에 한 부 출고된 게 좋아 설레던 그날도 떠올랐다. 책이 반품되어 온 오늘의 절망은 어디에 하소연할까. 이건 누가 뭐래도 반격이었다. 그 옛날 내가 장난쳤을 때 놈이 그랬듯이 울어버리고 싶었는데 나는 울 명분이 없었다. 내가 운다면 고작 이백만 원에 쫄았다는 걸 실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름 일리 있더라고. 속아줄 만했지. 한방 제대로 먹었네.

 

니가 코치해 준 거라 그런가? 벤츠, 아니, 후배라고 했지. 문장이 좋던데?

 

    나는 메시지를 이어 달았다. 정말이지 옹알이하던 힘까지 다 짜내서 이 상황에 대해 유쾌하게 받아치고 싶었다. 메시지를 기다렸는데 종규에게서 전화가 들어왔다. 목울대가 뻐근해서 받기가 부담스러웠지만 할 수 없었다.
    "문장은 개뿔. 아무튼 내가 괜히 좀 그랬네. 그나저나 이백은 어떻게 준비했대? 애썼겠다 야. 그래도 아주 뻥은 아니지, 안 부서졌지만 기스는 났잖아."
    "그래, 알았다."
    나는 기스가 아니라 흠집이라고 고쳐 주고 싶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야, 너 진짜 화났구나. 알겠어, 내가 너무 나갔다. 미안해. 술 한잔 크게 살게. 근데 말야……."
    종규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 건지 듣기도 전부터 불안해졌다. 어서 이 지옥의 통보문 같은 전화를 끊고만 싶었다.
    "여자가 어떡할 거냐면서 엄청 날뛰다가 내가 너 쥐뿔도 없는 시인이라니까 좀 흔들리더라고. 그러더니 그냥 됐대. 얼떨떨했지. 게다가 떠나기 직전에 슬쩍 니 이름을 묻는 거야. 와, 난 그때 너한테 감동했다. 팬인가 싶어서 말이지. 근데 이름은 모르는 눈치더라. 그냥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했지. 아는 사람 중에 시인이 있나? 좀 물어볼 걸 그랬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밤엔 아무래도 술을 좀 마셔야겠다. 빌붙지 않고 마시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월급을 탈탈 털려도 좋다. 잔뜩 취할 것이다. 토하도록 들이부을 테다. 누굴 부를까. 누가 나와 줄까…….

 

 

 

 

 

 

 

 

 

 

 

 

 

 

작가소개 / 김덕희

1979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데뷔했고, 소설집으로 『급소』가 있다. 제23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문장웹진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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