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를 읽는 연쇄살인마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 서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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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몽테뉴를 읽는 연쇄살인마

_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서희원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주제가 시기와 겹치면 나름의 납량특집이 되었다. 이 글이 주로 다루는 소설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며, 이를 위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함께 다룬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조인간, 흡혈귀, 연쇄살인마는 절대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인간을 마치 가축처럼 도살한다. 괴물의 내면에 어리는 것은 결코 인간적인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것이 아니기에 그 자리에 놓인 각자의 사정 ― 복수, 식욕, 쾌락 ― 은 읽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소설들을 세밀하게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살인광'이라는 사실보다 '독서광'이라는 점이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이 채 10권도 되지 않는 독서 소멸의 시대에 그들은 안중근의 경구를 되뇌는 프리모던 시대의 교양인들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애덤 스미스의 경제 서적을 읽으며 세태를 파악하고,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며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칼 든 손은 무섭지만 책 든 손은 아름답다고 한다. 한 손에 칼과 다른 한 손에 책을 든 괴물은 무서운 동시에 아름답다. 이를 매혹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비평가 프랑코 모레티는 「공포의 변증법」이란 글에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부르주아 문명의 두려움은 두 가지 이름, 즉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라는 이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1)라고 썼다. 하지만 이 요약에는 하나가 빠졌다.2) 비록 출신은 소설이 아니지만 이 둘 못지않게 부르주아 문명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가 20세기 대중문화를 매혹시켰던 것 이상으로 21세기 대중을 사로잡은 괴물을 프랑코 모레티가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1817년의 프랑켄슈타인과 1897년의 드라큘라 사이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 괴물은 문학이나 전설이 아닌 실제 사건에서 탄생하였다. 1888년 8월부터 11월까지 영국 런던의 이스트 런던 지역인 화이트채플에서, 확인된 것만 5명에 이르는 여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최초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가 바로 그 망각된 괴물이다.
    괴물과 매혹이라니 서로 모순되는 단어 같지만 극과 극은 통하는 것처럼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프랑코 모레티의 설명처럼 "산업혁명이 만개하던 시기에 태어난 이 두 괴물(프랑켄슈타인과 흡혈귀 ― 인용자)은 19세기 말의 결정적 시기에 하이드 씨와 드라큘라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고 이어 20세기에는 영화를 정복한다. 즉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독일의 표현주의가, 1929년의 대공황 이후에는 미국의 대규모 RKO 작품들이, 그리고 다시 1956~57년에는 테렌스 피셔가 감독하고 피터 쿠싱과 크리스토퍼 리가 주연한 영화가 이 두 얼굴을 가진 괴물들의 악몽을 멋지게 그려 보인 바 있다."3) 연쇄살인마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잭 더 리퍼를 다룬 『프롬 헬』(1989) 같은 그래픽노블을 위시하여, 다수의 영화, 게임, 뮤지컬이 이 살인마를 주인공으로 제작되었다. 잭 더 리퍼 못지않게 매력적인 인물인 식인귀 한니발 렉터 교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시리즈는 아카데미상의 환대를 받았고,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화성 연쇄살인을 다룬 <살인의 추억(2003)>, 그리고 같은 소재를 사용한 다수의 연극과 영화, 드라마가 있다. 소설에서는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2000),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2013), 정유정의 『종의 기원』(2016) 등이 있다. 현대의 관객과 독자들은 문화적 창작물을 통해서 내면을 교양으로 채우려는 것 이상으로 그 안에 이루지 못한 욕망이나 악몽을 담아 두려는 끔찍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  프랑코 모레티, 「공포의 변증법」, 조형준 옮김, 『세계의 문학』 84, 1997년 여름호, 222쪽.
  2)  솔직하게 말하자면 빠진 것은 두 가지이다. 글에서 말하지 못한 다른 하나는 언데드(Un-Dead) 좀비이다. 하지만 좀비는 책을 읽지 않기에 '살인광'인 동시에 '독서광'을 다루는 이 글에서는 생략하였다.
  3)  프랑코 모레티, 같은 글, 222~223쪽.

    먼저 누더기 인조인간의 빈곤하지만 출세와 배움의 의지로 충만한 외딴 방을 보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실험실에서 탄생과 동시에 유기되었고, 그는 인적 드문 마을의 외곽에 위치한 오두막에서 소박한 정처를 찾아낸다. 펠릭스 가족의 오두막 헛간에서 몸을 숨기고 지내며 괴물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곤 가난한 고학생처럼 그들을 훔쳐보며 조금씩 말과 문자를 습득해 나간다. 괴물은 제일 먼저 『제국들의 흥망』이라는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현존하는 여러 제국들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고, 인간에 대한 고찰과 함께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곤 숲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죽 트렁크 안에 담긴 책을 읽게 된다. 괴물은 그 책들 중에서 특히 『실낙원』, 『플루타크 영웅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감명 깊게 읽는다. "이 책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일일이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책 속에 파묻힌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상과 감정에 사로잡혀, 어떤 때는 무아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를 우울 속으로 침잠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특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하면서도 감동적인 내용 외에, 인간 삶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어 내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끊임없이 사색하고 경이로워했습니다."4) 책은 괴물에게 세상을 보게 해준 광명이었고, 그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신을 깨닫게 해준 심연이었다. 이 사색과 경이의 과정을 통과한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게 되고, 그 결과는 다 아는 것처럼 끔찍한 복수와 공멸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4)  메리 W. 셸리, 『프랑켄슈타인』, 서민아 옮김, 인디북, 2002, 224쪽.

 

    드라큘라는 백작이라는 고귀한 신분에 걸맞게 자신의 서재를 가지고 있다. 부동산 업자 조나단 하커는 하인 한 명 없는 백작의 저택을 돌아다니다 서재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서재에는 영어로 된 책들이 서가에 빼곡히 들어차 있고, 잡지며 신문 묶음들도 많이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방 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는, 최근에 나온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잡지며 신문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책들의 내용은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식물학, 지질학, 법률 등 다양한데, 한결같이 영국과 영국인의 생활 관습 예절에 관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런던 인명부』, 『신사 명사 인명록』, 『휘테이커 귀족명감』, 『육해군 인명부』, 『법조계 인명부』 등과 같은 참고문헌도 갖춰 놓고 있었다."5) 조나단 하커가 본 것은 드라큘라가 가진 서재의 일부이며, 그곳에는 영국으로의 투자 이민을 결정한 드라큘라가 보여주는 어학과 현지화의 열정으로 가득하다. 특히 드라큘라의 입장에서는 살생부나 미슐랭 가이드에 해당하는 인명록이 조나단 하커에게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드라큘라는 하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런던에 가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후로, 지난 몇 년 동안 이 책들이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소. 이것들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냈는지 모른다오. 그것들을 통해서 당신의 위대한 영국에 대한 많은 것을 알았소. 영국을 알게 되면서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소. 사람들로 붐비는 영국의 거리를 거닐고 싶소.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세상에 들어가서 그들의 생사고락과 영고성쇠를 함께 맛보고, 오늘날의 그들이 있게 한 모든 것을 함께 누리고 싶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들의 언어를 그저 책을 통해서만 공부했을 뿐이오. 어떻소, 당신이 보기에 내가 제대로 영어를 하는 것 같소?"6) 이민 가는 곳에 대한 철저한 독서와 어학에 대한 열정적인 학습을 통해 드라큘라는 현지화에 성공하고, 그의 말처럼 영국 사람들의 "생사고락과 영고성쇠를" 모두 '맛보게' 된다. 부동산 업자는 몰랐겠지만 루마니아의 귀족의 이 말은 결코 메타포가 아니었다. 역시 배운 귀족은 빈말을 잘하지 않는다.

  6)  브램 스토커, 같은 책, 39~40쪽.

    연쇄살인을 직업처럼 말하기는 어폐가 있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 김병수는 대략 25~6년 전에 30년 동안 꾸준히 해오던 살인을 멈추고 은퇴한 70세의 남자이며, 알츠하이머라는 뇌의 질병을 앓기 시작한 노인이다. 소설의 서사는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수양딸을 젊은 연쇄살인범에게서 지켜내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지만, 소설의 화자가 앓고 있는 치매로 인해 그 어떤 것이 사실이고 망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뒤섞여 있어 뭐라고 서사를 단정 짓기란 쉽지 않다.
    서사가 출구 없는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기에 이 소설의 매력은 서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의 개성적인 상념과 인생을 표현하는 관습적이지 않은 문장에 있다. 김병수는 살인 일지를 정확한 문장으로 기록하기 위해 문화센터에서 시 창작 수업을 수강하게 된다. 더불어 그의 독서도 시작된다. 김병수는 "내가 읽은 소설은 국어교과서에 실린 것이 거의 전부"7)라는 고백이 무색하게 다양한 시와 소설, 영화, 종교와 철학 등에 대한 책을 읽어 간다. 소설의 본문에 거론된 것만 간략하게 간추리자면 『금강경』, 『반야심경』, 몽테뉴의 『수상록』, 『미당 시집』,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영국 시인 프랜시스 톰프슨,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러시아 소설 등이 그것이다.
    이 연쇄살인범에게 있어 독서가 중요한 것은 그가 살인을 통해 찾으려 했던 "아쉬움"과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7)을 예술이 상쇄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와 문장 때문인지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만 같았다. 반성과 반추도 충동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23) 김병수는 나약해지고 싶지도, 충동을 억누르며 살고 싶지도 않아 자신이 다니던 문화센터의 사무원인 은희 엄마를 죽이지만 "아무 쾌감 없는 살인"(23)이라는 사실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시체를 유기하고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내고 두 번의 뇌수술을 하게 된다. 동시적인 두 가지 사건으로 김병수는 연쇄살인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을 잃어 가는 노인의 기록인 동시에 시인으로 등단한 은퇴한 연쇄살인범의 상념을 적어 내려간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은 짧은 단상과 에피소드가 에세이처럼 묶인 작품이다. 그렇기에 김병수의 독서 목록 중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설의 내용과 형식에 깊은 영향을 준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김병수는 이렇게 말한다.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14) 김병수는 몽테뉴가 나이 먹어 가는 자신의 사유와 경험을 직시하며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피로 얼룩진 시간과 살인의 경험 사이 찾아오는 인생의 깨달음을 적어 간다. 그렇기에 이런 문장은 유머러스한 동시에 날카롭게 독자의 폐부를 찌른다. "어쨌든 나는 그 뒤로 시인으로 불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38) 『살인자의 기억법』은 연쇄살인범의 '수상록'이라고 부를 만하다.

  7)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8쪽. 앞으로 이 소설에서의 인용은 간략하게 쪽수만을 병기하겠음.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한국인은 연간 평균 독서량이 채 10권도 되지 않는 독서 소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헛간에 앉아 흘러 들어오는 미약한 불빛에 의존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루마니아의 귀족은 이촌향도라는 근대화의 과정이 필연적임을 깨닫고는 낯선 영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귀족의 밤은 낮보다 길고 그 시간은 간소한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어학 연습과 현지화에 대한 탐구로 채워졌다. 살인 대신 시를 선택한 연쇄살인범의 문장은 몽테뉴의 그것처럼 독서와 관찰로 인해 비교할 수 없이 개성적이 되고 상념은 풍부해진다. 대입에 대한 걱정도, 입사에 대한 곤란함도, 심지어 자식을 위한 홈스쿨링도 필요 없는 자들이 '책'을 읽다니! 아무런 이유 없는 살인이 무섭듯이 순수한 독서도 무섭다.

 

 

 

 

 

 

 

 

 

 

 

 

 

 

 

변웅필
표지 / 변웅필

변웅필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현재 강화도에서 강아지 만득이와 살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소개 / 서희원


문학평론가. 2009년 《문화일보》, 《세계일보》 평론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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