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

[단편소설]

 

 

소녀들

 

 

황시운

 

 

 

    신발을 벗어야 할까.
    고개를 숙여 신발을 내려다봤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난간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쪼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운동화 끈이 풀리지 않도록 묶는 동영상을 봤는데, 방법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풀린 끈을 묶으면서, 집에 가면 유튜브 영상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끈을 다 묶고 일어나려는데 운동화 앞코에 묻은 붉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문질러 봤지만, 어쩌다 생긴 얼룩인지 아무리 세게 문질러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하얀색 운동화라서 그런지 한번 눈에 띈 얼룩은 점점 더 도드라져 보였다. 운동화는 한 스포츠 의류업체에서 한류 아이돌 그룹을 모티프로 제작한 슈퍼스타 라인 중, 블랙 몬스터를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다. 내겐 이것과 똑같은 운동화가 한 켤레 더 있다. 아직 상표도 떼지 않은 그 운동화는 신발장 맨 아래 칸에 되는 대로 쑤셔 박혀 있다. 운동화를 쑤셔 박은 건 엄마였는데, 나는 그러는 엄마를 말리지도, 이후에 운동화를 꺼내 다시 정리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마음에 들어서 산 운동화도 아니었다.
    미래는 블랙 몬스터의 래퍼 R을 좋아한다. 유난히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진 R은 연습생 시절부터 이미 거대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다. 미래는 R의 붉은 입술을 보면 발밑이 푹 꺼지는 것만 같다고 했다. R의 주변에서 알짱대는 년들은 모조리 없애버리겠다거나 언젠간 반드시 R과 자고 말 거라는 다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지은인 블랙 몬스터의 K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언젠가 미래에겐 비밀이라면서 내게 말한 적이 있다.
    “R이 너무 좋지만, R은 미래 거니까.”
    나는 블랙 몬스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컬도 퍼포먼스도 수준급임엔 틀림없지만 딱히 끌리는 구석이 없었다. R은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치처럼 아무 때나 벌쭉벌쭉 웃는 것도 싫었고 인터뷰 때마다 터져 나오는 말실수는 수준 이하였다. 멤버들의 자작곡이라며 발표한 몇몇 곡들은 기획사에 소속된 섀도 작곡가가 따로 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팬픽에 미친 초딩들처럼 연예인을 두고 네 것이니 내 것이니 하는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유치했다. 물론 내 생각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미래가 R에 대해 얘기할 때면 눈을 빛내며 들어줬고, 지은의 비밀 역시 발설한 적이 없다. 아무도 행복해하지 않을 사실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결국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불화는 언제나 말에서부터 싹튼다.
    이 운동화를 사면 스포츠 브랜드에서 프로모션 하는 블랙 몬스터의 팬 미팅 초대 이벤트 응모권을 줬다. 미래와 나, 지은은 각각 두 켤레씩 운동화를 샀고 여섯 장의 응모권은 모두 미래가 가져갔다. 애초부터 그러기로 한 일이었다. 내가 받은 응모권을 미래에게 줄 땐 지은의 눈치가 보였지만 하는 수 없었다. 지은 역시 순순히 제 몫의 응모권을 미래에게 건넸다. 여섯 장의 응모권을 보내고도 미래는 끝내 팬 미팅에 가지 못했다. 그래도 함께 운동화를 사러 다니고 이벤트에 응모해서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나로선 아무 불만이 없었다. 지은도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운동화를 사들고 들어간 날, 엄마는 똑같은 운동화를 두 켤레씩이나 사는 게 제정신 박힌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냐며 화를 냈다. 신발장에서 내 신발들을 전부 꺼내더니 싹 다 내다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내 돈으로 내가 무얼 사든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말대꾸 해봐야 욕먹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어서 잠자코 있었다. 엄마는 우르르 쏟아 놓은 신발들과 새로 사온 운동화까지 신발장에 도로 다 쑤셔 박은 뒤에야 잔소리를 그쳤다. 사실 그 신발들을 몽땅 내다버린다고 해도 나는 아무 상관없었다. 앞으로도 새 신발을 계속해서 사들일 텐데, 이미 오래전 신발장 속에 처박힌 신발들을 버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낡기도 전에 잊힌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 두는 건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한 손으로 신발장을 짚고 서서 운동화를 신거나 벗을 때마다 생각했다. 만약 미래가 이벤트에 당첨돼서 팬 미팅에 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미래가 지금처럼 차갑게 돌아서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이벤트 따위야 어떻게 됐든, 미래는 미래의 방식대로 나를 벌줬을 거다. 내가 무엇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이들은 그저 놀이를 하는 것뿐이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래가 판을 벌일 때마다 고민 없이 게임에 뛰어들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표적만 보고 달렸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이건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는 게임이었다. 표적이 된 아이가 왜 표적이 되었는지는 게임을 설계하는 미래만이 알고 있었다. 아무도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먹잇감으로 던져진 게 내가 아니었다면 그게 누구든 나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을 것이다. 한 번도 부당하다고 생각한 적 없으면서 내가 표적이 되었다고 아이들만 탓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내 칼을 빼들었지만 누구를 찔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원망의 대상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사이 저격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설계자의 손을 떠난 게임은 스스로 생명력을 획득했고, 게임 속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자양분 삼아 살아 있는 생물처럼 알아서 성장했다. 나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게임에게 잡아먹힌 기분이었다. 내가 빼든 칼로 누구를 찔러야 이 게임이 끝날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눈이 뻑뻑하다 못해 깜빡일 때마다 까끌까끌하고 가려웠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 때문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벌써 두 달째다. 그렇다고 알람을 해제할 수도 초대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여러 개의 방이 한꺼번에 운영될 때도 많아 언제 어떤 방에서 메시지가 올라올지 알 수 없었다. 잠시만 방심해도 존재했던 방이 사라지고 다른 방이 생성됐다. 초대되는 방마다 제때 들어가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아이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아무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를 부르는 모두의 말을 듣고 대답해야 한다. 그게 게임의 룰이었다. 룰을 지키지 않는 캐릭터는 무리에서 추방된다. 한번 추방되면 돌이킬 수 없다.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 새로운 표적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이전 표적이었던 날 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표적을 공격하는 아이들 속으로 스며들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견뎌야 한다. 그때가 언제든, 오긴 올 테니까.
    “발딱 못 일어나! 아침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그놈의 전화기 좀 그만 들여다봐. 눈 뜨자마자 그놈의 것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그 짓이니 수업인들 제대로 듣겠어!”
    엄마가 휴대전화를 빼앗아 갔다. 나는 벌떡 일어나 엄마의 손에서 전화기를 도로 낚아채 왔다. 그 바람에 엄마가 휘청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 일에 어른이 끼어들어서 끝이 좋은 꼴을 보지 못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엄마가 알게 되면 나도 아이들도, 무엇보다 미래가 곤란해진다. 미래가 곤란해지는 만큼 아이들은 더 악랄하게 나를 물어뜯을 터였다. 그때는 추방당하고 싶어도 추방조차 당하지 못한다. 들들들 갈릴 만큼 갈린 후에야 버려지겠지. 그런 꼴로는 누구도 멀쩡히 살아갈 수 없다. 결국 죽어서 흩어지거나 산 채로 가라앉거나 둘 중 하나가 될 텐데, 어느 쪽도 끔찍하긴 마찬가지다. 튀어 오르듯 침대에서 내려가 버둥대는 엄마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 잠깐 사이에도 알람이 네 번이나 울렸다.
    “미안해, 엄마. 정말 미안해. 얼른 씻을게!”
    엄마를 일으키자마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변기 위에 앉아 휴대전화 홈 버튼을 눌렀다. 카톡 화면을 불러오자 새로운 메시지 네 개가 올라와 있었다.
    “야, 그 씨발년은 오늘도 학교 나오겠지?”
    “오겠지. 눈치도 더럽게 없는 년.”
    “야, 걔 옆에 가면 걸레 썩는 냄새 안 나냐?”
    “걸레한테 걸레 냄새 나는 게 당연하지 뭘 그러냐?”
    그 밑으로 온갖 이모티콘들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나도 흔적을 남겼다. 그러자 아이들은 일제히 ‘ㅋㅋㅋㅋ’를 올리기 시작했다. ‘걸레년 웃는 것 좀 봐라. 좋단다. 병신.’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오고 나서야 ‘ㅋㅋㅋㅋ’의 행렬은 끝이 났고 방은 폭파됐다. 곧 새로운 방이 생성될 것이다.
    “얼른 안 나오고 뭐 해! 너 또 변기에 앉아서 자는 거지!”
    엄마가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얼른 일어나 양치질을 했다. 거울 속에선 병신 같은 걸레년이 거품을 잔뜩 문 채 실실 웃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거품을 뱉어냈다. 거품엔 피가 섞여 있었다. 잇몸이 헐어서 아물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물을 틀었다. 차고 투명한 ㅋㅋㅋㅋ가 피 섞인 치약 거품을 휩쓸고 내려갔다.
    살짝 열린 뒷문 틈새로 내 자리가 보였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 세 번째 줄.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쉬는 시간마다 서너 명쯤은 모여들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깔깔대고는 했던 곳. 그땐 저 자리에도 다정한 대화가 고였다. 살며시 뒷문을 열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뒷문을 통과했다. 시선은 바닥에 고정한 채 가만가만 걸어 내 자리로 갔다. 가능하면 그림자처럼 바닥에 납작 들러붙어 소리 없이 움직이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제각각 자신의 일에 빠져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가방 지퍼를 열었다.
    “아, 걸레 냄새!”
    누군가 소리쳤다. 가슴이 세차게 뛰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가방 속에서 책을 꺼내 책상 서랍에 넣고 공책과 필통은 책상 위에 올려놨다. 사물함은 비어 있다. 사물함에 넣어 두면 책이든 체육복이든 뭐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가방을 걸고 필통에서 자와 볼펜을 꺼내 공책에 줄을 긋기 시작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후텁지근한 바람이 들이쳤다. 바람에 일렁이는 커튼 자락이 언뜻언뜻 보였다. 눈 돌리지 않고 더 집중해서 줄을 그었다.
    ‘걸레년 뒈져버려.’
    책상 한가운데 팬 자국을 노트로 덮고 자와 볼펜을 이용해 반듯한 줄을 긋는 것이다. 이럴 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어떤 짓을 해도 비참하기만 했다. 그래도 그중 덜 비참해지는 짓이라고 고른 게 공책에 반듯반듯 줄을 긋는 거였다. 눈물이 쏟아지려 할 때도 줄을 긋다 보면 그런대로 넘길 만했다. 가로 줄을 다 그으면 세로 줄을 그었다. 한 면이 모눈으로 가득 차면 다음 면에 다시 가로 줄을 그었다. 그리고 세로 줄, 다시 가로 줄, 또 세로 줄…… 이렇게 공책 한 권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모눈으로 가득 채우면 납작했던 공책이 퉁퉁하게 일어났다. 퉁퉁해진 공책을 가방에 챙겨 넣고 다음 공책에 다시 줄을 긋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아무도 내게 말 걸지 않는 하루, 말은 걸지 않으면서 욕은 하는 하루, 모두에게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내게는 더더욱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돌아봤다. 어깨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무언가로 찌른 게 틀림없었다.
    “뭘 봐, 이 걸레야.”
    뒷자리의 민지가 내 의자를 발로 차며 말했다. 그리고 탁, 무언가가 날아와 내 머리를 가격했다. 탁구공만 한 종이뭉치였다. 잠시 망설이다 종이뭉치를 주워 펴봤다.
    ‘넌 왜 자살도 안 하냐?’
    꾸깃꾸깃한 종이를 펼쳐든 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모두가 나만 보고 있어서 나는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들고 있던 종이를 다시 뭉쳐 책상서랍 속에 넣곤 ‘걸레년 뒈져버려’라고 쓰인 책상에 엎드렸다. 겨우 그것밖엔 할 수 없었다. 그러게, 나는 왜 자살도 안 할까. 조심조심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조롱이 그치길, 남은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기다렸다. 어깨가 욱신거렸다. 도대체 무엇으로 찔렀는지 감도 안 왔다.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들 즈음 영어 선생이 들어와 노크하듯 교탁을 두드렸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앉았다. 영어책을 꺼내 아무데나 펼쳐 놓고 다시 공책에 줄을 긋기 시작했다. 가로 줄을 다 그으면 세로 줄을 긋고, 한 면이 가득 차면 다음 면에 다시 가로 줄을 그었다.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는데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고 호흡이 점점 가팔라졌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거듭 삼키다 보니 눈알까지 들이마셔 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들고 있던 볼펜으로 책상을 내리찍었다. 영어 선생이 책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나는 자를 대지 않고 닥치는 대로 줄을 긋기 시작했다. 볼펜심이 망가져 줄을 그을 때마다 공책이 찢어졌다. 갈기갈기 찢긴 공책이 너덜거리는데도 멈출 수 없었다. 영어 선생이 무슨 말인가 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오로지 있는 힘껏 줄만 그어댔다.
    “미친년.”
    그 와중에도 뒷자리의 민지가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만은 똑똑히 들려왔다. 잠시 후 영어 선생이 무언가로 내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망가진 볼펜을 손에서 놓았다. 다음 표적이 나타날 때까지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

 

    옥상에서 아주 오래 서성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깊은 밤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됐다.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현관 옆에 앉아 있는 오빠가 보였다. 몇 계단 더 내려가 오빠 뒤에 쪼그려 앉았다. 오빠에게선 술 냄새가 풀풀 풍겨 왔다. 오빠는 내가 자기 뒤에 앉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옹송그린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오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따라 일어났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오빠를 올려다봤지만 오빠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막힘없이 비밀번호를 누른 걸 보면 많이 취하진 않은 모양인데도 그랬다. 하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부터 오빠는 나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때가 한창 사춘기이기도 했지만, 오빠는 기본적으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피임이 뭔지 미처 알기도 전부터 ‘너는 피임 실패로 태어난 애’라고 했고, 동생이 있으니 덜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동생 같은 게 생기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학생이 되고 나선 간혹 한두 마디쯤 섞어 주기도 했는데, 오늘은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가족에게조차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오빠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이 컴컴했다. 현관 센서 등만 환할 뿐 거실도 부엌도 불이 꺼진 채였다. 오빠는 어쩐 일인지 조용히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새벽에도 식구들이 깨건 말건 라면을 끓여먹겠다고 수선을 피우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안방과 오빠 방문을 번갈아 쳐다봤다. 센서 등이 꺼지자 집 안은 어둠에 잠겼다. 계속 서 있다간 무거운 어둠에 짓눌려 납작해질 것만 같았다. 나도 오빠처럼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내던지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아무래도 학원을 계속 빼먹은 게 마음에 걸렸다. 이번 주 내내 빠졌으니 조만간 엄마한테 연락이 가겠지. 엄마가 내 방에서 버티고 있지 않은 걸 보면 아직은 연락을 받지 못한 것 같지만,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원장이 전화를 걸 수도 있었다. 엄마가 왜 학원에 가지 않았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이들이 지정하는 장소들을 차례로 찍으며 혼자서 시내를 빙빙 도느라 학원에 가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데 왜 그러고 다녔느냐고 물으면, 사실 할 말이 없기도 했다. 그럴듯한 변명을 궁리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번쩍 눈을 떴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어 거짓말처럼 깊은 잠을 잤다.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눈을 끔벅였다. 몸도 머리도 이렇게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잤지. 방 안이 너무 환했다.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가 넘었다. 아무리 서둘러도 지각을 면하긴 힘들 시간이었다. 엄마는 왜 깨워 주지 않았을까. 앞으론 지각하든 말든 깨우지 않을 테니 알아서 일어나라고 아침마다 잔소릴 했지만, 정말로 깨우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떡하지. 천장을 올려다보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이 씨!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잔뜩 성이 나서 있는 대로 툴툴대며 밖으로 나왔다. 집 안이 조용했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 칼질 소리, 물이 쏟아지는 소리, 무언가 끓어오르는 소리 같은, 아침마다 부엌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엄마가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틀어 놓는 텔레비전 소리, 아빠나 오빠가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거나 가래를 뱉는 소리, 무언가를 찾아달라며 엄마를 불러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모든 소리와 함께 집 안을 가득 메우던 냄새도 사라졌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었다. 성큼성큼 걸어가 안방 문을 열었다. 말끔하게 정돈된 안방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 문도 모두 열어 봤다. 텅 비어 있었다. 아빠야 이미 출근했다 해도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아, 오빠. 오빠가 있었지. 돌아서서 오빠 방으로 갔다. 방문을 열었다. 오빠 역시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표현에 따르면 거지 움막 같은 방이 오늘따라 말끔했다. 침구가 헝클어진 채여서 그나마 사람이 들고 난 자리라는 표가 나는 정도였다. 오빠는 어느새 나간 걸까. 오빠가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떠는 건 본 적이 없다. 대체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방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오빠 역시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빠에겐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아빠 전화번호는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와락 무서워졌다.
    세수와 양치질만 간신히 하고 집에서 나왔다. 걸으면서도 계속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신호는 갔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계속 통화버튼을 누르며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쳤다.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기에도 걷기에도 애매한 거리여서, 매번 버스정류장 앞을 지날 때마다 갈등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지각해 버렸으니 바쁠 것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수업 중에 교실로 들어가면 모두의 주목을 피할 수 없을 테니 1교시가 끝난 뒤 쉬는 시간에 살짝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십 분 정도만 화장실에 숨어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전화기의 홈 버튼을 눌렀다. 모두들 어딜 갔는지는 저녁때 집에 와보면 알게 되겠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까지도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터였다. 터벅터벅 걷다 문득 내려다보니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길 한쪽으로 비켜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유튜브에서 본 동영상을 다시 떠올려 봤다. 양쪽에 고리를 만든 다음 어떻게 했더라. 여러 번 묶는 게 아니어서 별로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까지 기억나는데, 거짓말처럼 매듭을 묶는 부분만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매듭을 한 번 더 동여매면서 조금 있다 화장실에서 동영상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도 교문을 통과해 화장실까지 오는 동안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2층 여학생 화장실 맨 끝 칸으로 들어갔다. 휴지통 속에 생리혈로 범벅이 된 생리대가 보였다. 비위가 상했다. 아직 1교시도 끝나기 전인데 누가 벌써 이래 놨을까. 깔끔하게 정리해서 버리면 어때서. 혼잣말을 하며 휴지통을 최대한 구석으로 밀었다.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았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칠 분 후면 쉬는 시간이었다. 전화기를 손에 꼭 쥐고 앉아 화장실 문을 응시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봤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지난 행적을 더듬고 있었다. 어떤 기억을 찾으려는 건지도 모르는 채 무턱대고 기억을 뒤적거렸다. 분명히,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불안했다.
    누군가 화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곤 화장실 문을 하나씩 열어젖히다 내 옆 칸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사람, 아니 그 애는 신경질적으로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낮고 무거운 울음이었다. 화장실 바닥을 타고 슬금슬금 퍼져 나가는 슬픔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공연히 나까지 왈칵 눈물이 솟았다. 입술을 앙다물고 눈물을 참는데,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목덜미가 뻣뻣해지면서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던 눈물이 쑥 들어갔다. 옆 칸의 아이는 여전히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 대신 예민해진 감각을 총동원해 그 애의 흐느낌에 귀를 기울였다.
    “내 잘못이 아니야…… 다 죽여 버릴 거야…… 씨발년들…….”
    흐느낌 사이사이로 흐느낌보다 낮고 무겁게 뇌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욕설은 한없이 무력했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잠시 후,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화장실은 몰려든 아이들로 금세 북새통을 이뤘다. 휴대전화를 가방 속에 넣었다. 최대한 이목을 덜 끌면서 빠져나갈 틈을 찾아야 했다. 내가 좀처럼 적기를 못 찾고 망설이는 사이 옆 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내 옆 칸에 들어앉아 숨죽여 흐느끼던 미래는 어느새 울음을 멈췄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에서 나가진 못하고 있었다. 아무 응답도 없으면서 나오지도 않자 바깥의 누군가가 화장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야, 너 누구야. 왜 안 나오는데? 똥 싸냐?”
    이번에도 아무 대답이 없자 손바닥으로 연신 문짝을 두드려댔다. 그런데도 옆 칸의 미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발이 묶였다. 미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마지막으로 봤을 때 미래는 지은을 비롯한 몇몇과 함께 K-POP 스토어에 간다며 학교를 나서고 있었다. 그게 어제였나? 아니, 그제였나? 그도 아니면 지난주였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누군가와 눈을 맞추거나 이야기를 나눈 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내가 기억하는 장면이 정말로 내 눈으로 본 것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야, 너 이미래지. 아니면 대답해.”
    문 밖의 아이가 말했다. 미래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문 밖의 아이는 다시 말했다.
    “맞네. 이미래. 어쩐지 썩은 내가 풀풀 나더라니. 야, 맨 마지막 칸엔 들어가지 마라. 누가 똥 싸놓고 도망갔다.”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문 밖의 아이, 민지가 발끝으로 문을 툭툭 찼다.
    “야, 나오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라. 절대 나오지 마. 알았냐?”
    한동안 잠잠하더니 양동이에 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양동이 가득한 물이 폭포처럼 미래를 덮쳤다. 물벼락을 맞은 건 미래였는데 나까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격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표적이 바뀌었구나. 언제 그렇게 됐는지, 왜 미래가 표적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적이 바뀐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쉬었다. 그런 식으로 몇 번 더 심호흡을 하며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슬며시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 아이들 틈에 섞여들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욕을 하는 사람도, 침을 뱉거나 모른 척 밀쳐 넘어뜨리는 사람도 없었다.
    “야, 다시.”
    민지가 말하자 빈 양동이를 받아든 아이가 다시 물을 떠서 옆 칸 변기 위에 올라서 있는 아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부어.”
    민지의 말이 떨어지자 양동이의 물은 다시 한 번 미래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한참 깔깔대며 웃던 민지가 화장실에서 나갔다. 다른 아이들도 각자 볼일을 보거나 교실로 돌아갔다. 나도 아이들에게 떠밀리듯 교실로 갔다. 새로운 저격이 시작되었다.
    가방은 자리에 두고 전화기만 꺼내 다시 화장실로 갔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사이에도 내게 관심을 보이는 애들은 없었다. 나만 보면 들으라는 듯 공연한 욕을 해대던 아이들도 잠잠했다. 수군대거나 흘겨보지도 않았다. 책상에 팬 자국과 더러운 낙서들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이제는 그걸 지워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교실에서 나오기 전 지은의 자리 쪽을 슬쩍 봤다. 지은은 앞자리 책상에 걸터앉은 민지와 무슨 얘긴가 나누고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지은의 옆모습을 조금 더 바라보다 교실을 빠져나왔다. 2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미래가 들어간 화장실은 여전히 닫힌 채였다. 끝에서 두 번째 칸, 미래가 있는 화장실 앞에 섰다. 잠시 망설이다 노크를 했다. 미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래야.”
    나지막이 미래의 이름을 불렀다. 미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래. 이제 나와도 돼. 여기 나 말곤 아무도 없어.”
    수건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체육복이라도 가져다줘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이 드는 순간 찰칵, 걸쇠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문이 빼꼼 열리면서 미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얼른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 줬다. 머리카락이며 옷자락에서 여전히 물이 뚝뚝 듣는 데다 마스카라와 아이라인이 녹아내려 미래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한동안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문 밖을 살펴보던 미래는 정말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괜찮아? 수건이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봐…….”
    내가 말했지만 미래는 별 대꾸 없이 거울 앞으로 갔다. 미래가 빠져나온 화장실로 시선이 갔다. 바닥과 벽이 온통 흥건하게 젖어 미래의 모습만큼이나 엉망이었다. 휴지통이 엎어져 있었고 생리혈로 범벅이 된 생리대는 물에 푹 젖은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비위가 상했다. 눈길을 돌려 미래를 바라봤다.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거울만 들여다보던 미래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입술을 앙다물었다. 미래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여다봤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뜯어다가 휴대전화의 물기를 닦고 홈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액정에 전원이 들어왔다. 많이 젖진 않은 모양이었다. 미래는 전화기를 핸드드라이어 위에 올려놓고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 모으더니 돌돌 감아 물기를 꼭 짰다. 교복 블라우스와 치맛자락도 비틀어 짰다. 마지막으로 세수까지 말끔하게 한 미래가 전화기를 챙겨들고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은 미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는 조금 떨어져 서서 미래를 바라봤다. 나를 저격할 때, 미래는 무자비했다. 나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더 잔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내가 왜 표적이 됐는지 궁금했다. 그걸 알면 저격을 멈출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루는 미래의 집 앞에서 무작정 그 앨 기다렸다.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미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정이 다 돼서야 귀가하는 미래를 만날 수 있었다. 미래는 나를 보고도 보지 못한 척 지나쳐 가려 했다. 나도 모르게 그 애의 팔을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미래가 내 뺨을 올려붙였다. 그러곤 더러운 오물이라도 묻은 듯 휴지로 내 손이 닿았던 부분을 반복해서 닦아냈다.
    “제발 나한테 왜 이러는지, 그것만이라도 가르쳐줘.”
    애원하는 내게 미래가 말했다.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알면 뭐가 달라지니?”
    내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자 미래는 혀를 찼다.
    “깝치지 말고 돌아가. 계속 이렇게 질척거리면 영영 못 벗어나는 거야. 게임을 하란 말이야, 게임을. 주어진 캐릭터대로 열심히. 늘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해서. 너 잘하잖아, 그런 거.”
    그 말을 끝으로 미래는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등굣길에 마주친 미래가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속삭였다.
    “이제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될 거야. 견딜 준비 됐지?”
    그날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말할 수 없이 무서웠는데 눈물조차 나지 않아 점점 더 무서워졌다.
    미래의 전화기는 끊임없이 울어댔다. 수업시간이었지만 원래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 미래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다리를 까딱댔다. 나는 나와 똑같은 운동화를 신은 미래의 발을 유심히 봤다. 같은 날 산 건데 미래의 운동화는 얼룩 하나 없이 말끔했다. 운동화 끈도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고개를 돌려 내 발을 내려다봤다. 운동화 코에 묻은 얼룩이 더 커진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느껴졌다. 운동화 끈도 풀려 있었다. 언제 또 이렇게 된 걸까. 동영상을 찾아봐야 하는데. 풀리지 않는 매듭을 묶어야 하는데. 자꾸만 초조해지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운동화 끈을 묶었다.
    “미친년들. 이런다고 내가 쫄까 봐?”
    미래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나도 전화기를 꺼내 카톡방을 열었다.
    “야, 이 또라이 수업 또 쨌다.”
    “아, 진짜 상또라이. 상황 파악을 이렇게 못 하나.”
    “아까 봤냐. 속이 다 시원하더라.”
    “저도 당해 봐야 해.”
    “씨발, 일은 다 자기가 저질러 놓고 아닌 척 생까면 다냐고.”
    “야, 증거 모아. 걸리는 대로 다 모아.”
    “더러운 걸레년. 씨발 가랑이는 자기가 벌리고 다녔으면서.”
    “안 따먹은 새끼가 없대. 독서실이랑 학원에 소문 쫙 났어. 좆나 벌리고 다닌다더라.”
    “씨발, R이랑 자기 전에 연습하나 보지.”
    “R은 무슨. 좆나 양아치 같은 새끼들이랑 어울리는 년이.”
    “계속 이렇게 유언비어 퍼뜨리면 뒤진다. 다 캡처 했으니까 알아서들 해라.”
    생각지 않게 미래가 끼어들자 정신없이 올라오던 메시지가 주춤했다.
    “와, 이 또라이가 미쳤나.”
    짧은 침묵을 깨고 누군가 말했다.
    “야, 그냥 둬. 혼자 열폭하다 뒈지게.”
    “ㅋㅋㅋㅋㅋㅋ”
    또다시 ㅋㅋㅋㅋ의 행렬이 시작됐다.
    “폭파.”
    누군가의 메시지가 올라왔고 방은 사라졌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 곧 새로운 방을 만들 테고 미래는 또다시 소환될 것이다. 저항하면 할수록 괴롭힘이 집요해질 거란 건 누구보다 미래가 잘 알고 있었다. 저 앤 대체 어쩌려는 걸까. 나는 얼룩 하나 없이 말끔하고 끈도 꽉 묶여 있는 미래의 운동화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 운동화는 왜 이렇게 더러워졌을까. 끈은 왜 자꾸 풀어지는 거고. 무엇보다, 도대체 나는 왜 미래가 밉지 않을까. 이쯤 되면 죽이고 싶은 게 정상일 텐데, 나는 미래가 밉지 않았다. 두렵긴 해도 미운 적은 없었다.
    미래가 난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대체 왜 너야?”
    한참을 망설이다 물었다.
    “왜 그랬니, 넌.”
    미래가 중얼거렸다. 그러곤 난간 너머로 몸을 한껏 기울인 채 그 너머의 어디쯤을 응시했다. 나는 차분히 미래의 대답을 기다렸다. 미래가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내 잘못이 아니야. 전부 다 네가 자초한 거지.”
    난간에 기대서며 미래가 말했다. 미래의 얼굴과 말투는 더할 수 없이 진지했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미래가 풀썩 주저앉더니 몸을 웅크렸다. 나는 미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어째서 네가 표적이 된 거지? 너는 설계자잖아.”
    미래는 대답 대신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미래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새 새로운 방이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미래가 무릎을 그러안은 팔을 풀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증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 게 어디 있어. 멍청한 년들.”
    미래가 휴대전화를 집어던졌다.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있는 힘을 다해서. 전화기는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박살났다. 이 방 저 방 조리돌리듯 끌고 다녀 봐야 증거를 없애지 못한다는 건 미래나 아이들도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까 그건, 표적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끌려 다니다 보면, 나를 비웃는 아이들이 아니라 비웃음거리가 되고 만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곤 했으니까. 무기력은 가장 마지막 것까지 포기하게 만든다. 영악한 설계자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말해 봐. 왜 나였고, 지금은 왜 너인 거야?”
    나는 부서진 휴대전화와 미래를 번갈아 쳐다봤다. 전화기를 노려보는 미래의 눈이 적의로 번뜩였다. 마치 재앙의 씨앗인 저 전화기만 사라지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증거 같은 건 없어. 내 잘못이 아니니까. 다 네가 자초한 거라고. 걸레 같은 년.”
    미래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옥상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도대체 왜 나였을까 다시 생각해 봤다. 게임을 즐길 땐 당연하게 여겼던 사실들도 표적이 되고 나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인정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애초부터 이유 같은 건 없었다는 걸. 어쩌면 내가 사소한 실수를 했을지도 모르고, 어떤 빌미를 제공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닐 터였다. 숨 막히는 생활에 지친 아이들에겐 그저 조롱하고 후려치고 밟고 짓이길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우연히 무대 위에 올라갔던 것이다. 내 앞의 표적이 그랬고, 그 앞의 표적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미래는 왜 우는 걸까. 단지 두려움 때문일까. 증거가 없다고 말하면서 우는 건 증거가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무슨 증거를 말하는 걸까.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다가 또다시 풀려 있는 운동화 끈을 발견했다. 그대로 멈춰 서서 동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묶는 동영상을 찾아 이 망할 놈의 운동화 끈을 어떻게든 해야 했다. 앞코에 묻은 붉은 얼룩이 자꾸만 커지는 것 같아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운동화 끈이 풀어지지 않게 묶는 법 같은 건 없었다. 분명히 봤는데, 수도 없이 많은 동영상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미래는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옥상에 다시 가봤지만 미래는 없었다. 부서진 휴대전화 역시 보이지 않았다. 미래가 두고 간 가방은 누군가에 의해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나는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괜히 아이들의 눈에 띌 만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굣길에도 아이들과 무리지어 가는 지은의 뒤를 따라 한참이나 걸었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함께 샀던 운동화를 틈틈이 훔쳐보았을 뿐이다. 지은의 운동화도 미래와 마찬가지로 얼룩 하나 없이 말끔했다. 끈도 단단히 묶여 가지런히 매듭지어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운동화 끈은 또다시 풀려서 너풀너풀 밟히고 끌리며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콩알만 하던 붉은 얼룩은 어느새 밤톨보다도 크게 자라 있었다. 운동화 코에 점처럼 찍혀 있던 얼룩이 잉크 번지듯 번지는 것도, 아무리 묶어도 자꾸만 풀어지는 끈도 짜증스러웠다. 어서 집으로 가서 이 이상한 운동화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집에 가면 엄마도 돌아와 있을 거였다. 걸음이 빨라졌다. 그렇다고 지은의 무리를 앞질러 걷진 않았다. 미래가 표적으로 추락했으니, 이제부터 게임의 설계는 지은이 하게 될까.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반드시 알고 싶을 만큼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엄마의 신발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놓였다. 나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안방 문부터 열었다. 대체 아침엔 어딜 갔던 거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엄마는 턱밑까지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몸살이라도 났는지 협탁 위엔 약봉지와 빈 컵이 놓여 있었다. 이맛살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였지만 숨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잠깐 깨워 볼까도 싶었지만 약봉지가 마음에 걸려 살금살금 방에서 나왔다. 부엌으로 가 밥솥을 열어 봤다. 코드가 뽑힌 솥은 텅 비어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봤지만 반찬통 몇 개가 전부였다. 날짜는 이미 한참 지났지만 아직 곰팡이가 피지는 않은 식빵을 한쪽 입에 물고 내 방으로 갔다. 그제야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학원은 가고 싶지 않았고 독서실엔 가봐야 아무것도 안 하고 딴생각만 할 게 뻔했다. 푸석거리는 식빵을 우물대며 끊임없이 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이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내내,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냉큼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오빠가 어젯밤처럼 현관 센서 등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센서 등이 꺼지자 어둑한 집 안은 길고 긴 그림자들로 가득 찼다.
    “안 들어오고 뭐 해?”
    멍하니 서 있는 오빠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오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야, 이젠 나랑은 아예 말 안 할 거야?”
    목소리를 높였지만 오빠는 대답 대신 한숨을 한번 폭 내쉬곤 신발을 벗었다. 오빠는 안방으로 가 방문을 노크했다. 방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살며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안방에서 나온 오빠가 제 방으로 갔다. 나는 있는 대로 화가 나 오빠 방으로 가서 벌컥 문을 열었다. 방 한구석에 주저앉은 오빠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제 팔뚝을 입에 문 채 소리죽여 흐느끼는 오빠를 바라보는데, 문득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꽉 쥐고 있던 양손의 힘이 스르륵 풀렸다.
    “오빠.”
    제 팔뚝을 물고 숨죽여 우는 오빠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렀다.
    “오빠. 정말 나랑 얘기 안 할 거야?”
    오빠가 나머지 한 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돌아서서 안방으로 갔다. 엄마는 여전히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잠들어 있었다.
    “엄마. 오빠가 울어.”
    엄마를 흔들어 깨웠지만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살짝 벌어진 엄마의 입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엄마, 오빠가 운다고. 엄마, 나 배고파. 응? 엄마아…… 엄마아아…….”
    울음이 터져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고 오빠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전화를 하고 싶어도 아빠의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다들 이상했다. 너무 이상하긴 한데 뭐가 이상한지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건 없었다. 언제부터 이상했더라.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대로 방에서 나와 운동화를 꿰어 신었다. 끈이 풀려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에 멈춰서 있었다. 나는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있는 건 미래였다. 학교에서 사라졌던 미래가 어째서 우리 아파트 옥상에 올라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모두가 이상했지만 그중에서도 미래가 가장 이상했다.
    “미래야.”
    조심조심 미래를 향해 걸어갔다.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미래가 일어서더니 난간을 가볍게 뛰어넘어 바깥쪽으로 내려섰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미래가 난간을 잡은 채 활처럼 몸을 휘었다. 아찔했다.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삼키며 다시 미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미래야. 그러지 마. 응? 미래야. 그러면 안 돼.”
    한동안 몸을 휜 채 허공을 응시하던 미래가 바로 섰다. 하지만 난간을 넘어오지는 않았다. 내가 다시 걸음을 떼어 놓으려는데 미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신발을 벗었어야 하는 걸까?”
    내 시선도 자연히 그 애의 신발로 향했다. 단단하게 묶여 있던 미래의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앞코엔 붉은 얼룩이 선명했다.
    “운동화가 더러워졌어. 짜증나게.”
    미래가 가볍게 난간을 뛰어넘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그 애의 운동화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미래가 걸음을 멈췄다. 미래의 운동화와 내 운동화가 마주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미래의 블라우스와 치맛자락에선 여전히 뚝뚝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냥 게임이었을 뿐이야. 너도 좋아했잖아.”
    미래가 말했다.
    “그래. 그랬어. 나도 즐겼어.”
    내가 대답했다.
    “내 잘못이 아니야.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거야.”
    미래가 다시 말했다.
    “알아. 괜찮아.”
    내가 대답했다. 이윽고 미래와 시선이 부딪혔다. 꼬박 두 달 만이었다.

 

 

 

 

 

 

 

 

 

 

 

 

 

 

 

작가소개 / 황시운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 장편소설 『컴백홈』, 경기문학시리즈 『홈』, 소설집 『파인다이닝』(공저)이 있다.

 

   《문장웹진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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