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크

[단편소설]

 

 

벌크 bulk

 

 

주원규

 

 

 

*

 

    믿기 힘들겠지만 공항, 짐 찾는 곳에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를 가만히 보다 보면 꼭 두어 개 정도의 여행용 가방이 주인 없이 떠도는 걸 보게 된다.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 있는 탓에 주인이 있겠지 하는 착각을 갖게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그것들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돌고 또 돈다. 그러다 사흘째 되는 날, 가방들은 유실물 보관소, 혹은 쓰레기장으로 이동된다.

 

    이렇게 운을 띄우며 1년 전 이야기를 하는 건 적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과연 세상에 적정성이란 게 존재할까. 그래도 이야기는 늘 필요하다. 적절하지 않아도.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나는 한 사람을 좋아했다. 좋아했다기보다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여하튼 한 사람을 좋아했다. 그 사람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그 사람과 잠을 잤다. 밥 먹고 잠자는 관계가 전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 글을 쓰는 데 있어 사랑이란 말을 남기기엔 적절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정리해 보면 ··· 난 1년 전에 분명 한 사람을 사랑했다. 몇 발 양보해 객관적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했다. 그러다 3개월 정도 사귄 뒤 우린 헤어졌다. 만남과 이별의 남녀 이야기는 연령, 학력, 지역 상관없이 대개 상투적이고 지루할 것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도 지루하지만 계속한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지루한 이야기를 기어이 하려 한다. 조심할 것도, 아쉬울 것도 별로 없다. 다만 한 가지, 노파심에서 짚어 봤을 때, 이 지루한 이야기는 그사이, 곧 시작과 끝의 사이가 심한 틈을 벌리고 읽힌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벌어진 틈새를 들여다보는 건 나름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상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거의 유일한 이유다.

 

    내가 좋아한 그 사람은 ‘그녀’, 그녀의 이름은 김고운이다. 물론 그 이름이 본명인지, 어떤 이름인지는 모른다. 그녀가 자신이 김고운이라고 말했으니까 그렇게 그냥 믿는 것이다. 그녀를 김고운이라 부르는 것 외엔 다른 통로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를 김고운으로 부르는 게 적절할 것이다.
    김고운을 처음 만난 건 공항이었다. 공항에서도 김고운은 수하물 찾는 곳을 돌아다녔다. 여기 그러다 보니 김고운이 서서히, 노골적으로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확실히 인상적인 외모는 아니었다. 그냥 길을 걷다 보면 한 여자가 서 있구나 하는 생각 정도만 들게 하는 외모다. 하지만 김고운은 내게 평범하지가 않다. 나에게 김고운은 평범하지도, 완전히 튀지도 않는, 그렇고 그런 여자였다.

 

    나는 제복 차림에 허리춤엔 무기를 꽂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뭔가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면 그 상대가 아무 대책 없이 피를 쏟을 수 있는, 사람 죽이는 게 한 끼 식사 해결하는 것처럼 수월한 무기를 착용한 나는 하루 종일 공항 내 짐 찾는 곳, 컨베이어 벨트를 지켰다. 그곳에서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대비하는 게 내 직업이다. 돌발 상황 방지를 위해 난 제복을 입어야 했고, 허리춤에 꽂은 무기를 은근히 과시해야 했다.
    제복을 입고, 허리춤에 총까지 꽂고 돌아다니던 나는 하루에 두세 번은 어김없이 김고운을 발견했다. 물론 김고운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에게 나는 제복이나 입고 보안을 위해 컨베이어 벨트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한 남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김고운이 특별히 눈길이 간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결국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김고운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여행용 가방이 쏟아져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주위에 물끄러미 서 있었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가방들 중 그녀의 차지는 없었다. 김고운은 한참을 뚫어져라 그 시커먼 눈동자를 힘껏 뜬 채로 가방들을 살피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자리를 떠나곤 했다.
    김고운에 대한 내 관심은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난 그 이상 관심의 범위가 넓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공항에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대상에게 더 큰 관심을 갖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내 관심은 확장되고 말았다. 그녀가 다가온 탓일까. 김고운이거나 또 다른 김고운이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김고운은 분명 대체로 평범하다. 키 작은 것 정도가 특징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김고운은 또래 여자들보다 많이 작았던 것 같다. 김고운을 20대로 보든 30대로 보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듯 김고운은 꽤 많이 키가 작았는데, 돌이켜 보면 공항에서 김고운이 내 눈에 들어왔던 이유 중 하나도 그녀의 작은 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이 나름의 확신으로 굳은 건 또 다른 김고운의 등장 탓이다. 유독 키가 큰 또 다른 김고운이 내게 다가와 느닷없이 이렇게 말을 건네 왔기 때문이다. 김고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게 말이다.

 

    “키가 참 ··· 작죠?”
    “응 ··· 그러네요.“
    “그런데 포기하기는 싫고 ··· 그렇죠?”
    “네? ··· 네 ··· 그것도 그러네요.”

 

    또 다른 김고운을 난 거기서 처음 봤다. 키 큰 김고운은 키가 작은 김고운과 자신이 친구사이라고 했다. 또한 둘의 이름은 똑같이 김고운이라고 했다. 그때 난 공항 수하물 찾는 곳을 어슬렁거리는 김고운의 이름이 김고운이란 걸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키 큰 김고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결국 두 명의 김고운을 동시에 알게 된 건데, 그때 난 왜 키가 작은 김고운에게만 눈길이 갔던 걸까. 지금도 모를 일이다.
    더 오리무중인 건 키 큰 김고운과 나눈 첫 대화였다. 키가 작다고 묻는 키 큰 김고운의 질문에 대한 내 인정은 그렇다 쳐도 포기하기는 싫다고 짐작한 키 큰 김고운의 질문에 대한 인정은 또 뭐란 말인가. 뭘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까. 내가 김고운과 뭐 해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 답은 이미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키 큰 김고운은 자신이 키 작은 김고운을 잘 알고 있다면서 내게 조금은 황당한 제안을 했다.

 

    “사귀고 싶어요?”
    “누굴요?”
    “누구긴 누구예요. 저기 키 작은 여자 얘요. 원한다면 소개해 줄 수 있는데 ··· ”
    “글쎄요. 이게 사귀고 싶은 건가?”
    “마음속에 질문이 생기면 일단 만나고 봐요. 만나보면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걸 알고 싶은 거 아니에요? 뭐가 달라지는지?”

 

    뭐가 달라진다는 걸까. 달라지기는 하는 걸까. 키 큰 김고운은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내 오른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날 키 작은 김고운에게 데리고 갔다.
    그렇게 우리 둘은 만났다. 김고운과 난 다음날,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만났다. 김고운은 날 외면하지 않았다. 우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날씨, 연예인, 심지어 정치인에 대해서도 몇 마디 나눴다. 눈 맞추고, 인사하고, 함께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러다 처음으로 우린 공항을 벗어난 다른 곳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때 김고운이 내게 먼저 물었다.

 

    “이거 ··· 사귀는 거죠?”
    그때 사복 차림의 내가 서 있던 곳은 월 50만 원 주고 살아가는 오피스텔 문 앞이었고, 그때 김고운은 내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그게 1년 전 일이다.

 

*

 

    김고운은 함께 있을수록 의외의 관심을 끄는 스타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공항에서 계속 마주치던 순간도 거의 동일했다. 김고운은 계속 바라볼수록 눈을 떼기가 어려운 여자였다. 평범하긴 해도 여하튼 그랬다.
    1년 전 김고운은 공항 근처에 위치한 나의 오피스텔에 들어왔다. ‘사귀는 거죠?’란 그녀의 질문에 난 분명히 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김고운이 내 오피스텔로 수줍은 점령군처럼 들어와 드레스룸에 여장을 풀던 행동을 막지도 않았다. 크지 않은 여행용 가방 한 개가 가진 짐의 전부였던 그녀는 칸막이가 따로 없는 내 오피스텔에서 창고 정도로 쓰이는 드레스룸을 찾아 들어갔고, 그곳에 몸을 뉘었다. 밖으로 나오라고 말해 봐도 김고운은 듣지 않았다. 김고운은 다리를 잔뜩 웅크려야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반 평도 되지 않는 드레스룸을 자기의 보금자리로 간주했다. 그렇게 김고운은 이후, 그 드레스룸을 자기 방처럼 사용했다.
    김고운이 들어오면서부터 난 그녀와 사귀자고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제복으로 갈아입고 무기도 착용한 뒤 컨베이어 벨트만 뚫어져라 바라보다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해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나의 단순한 삶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김고운의 삶은 건조했다. 그녀는 드레스룸에 웅크리고 앉아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하고 음악도 듣고 동영상도 보고 SNS 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아침과 낮 시간 동안 김고운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퇴근한 뒤 돌아온 내가 먹을거리를 준비한 뒤에야 드레스룸에서 나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게 고작이었다.

 

    돌이켜보면 분명 지루한 연애였다. 김고운은 기가 막힐 정도로 말수가 적었다. 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 자연스러운지 몰랐기에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우리 둘은 같이 있어도 몇 마디 하지 않았다.
    물론 지루한 연애라 해서 남들 하는 걸 하지 말란 규칙은 없다. 저녁을 먹은 뒤 식탁을 대충 치우면 김고운은 다시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다리를 웅크리고 앉아 컴컴한 벽을 향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검색을 계속했다. 그사이 씻고 나온 나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김고운의 뒷모습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았다. 한참을 지켜보다 꽤나 조심스럽게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김고운은 상대인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소스라쳤지만, 그래서 썩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내 손길에 별다르게 저항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등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주무르다 가슴 근처로 손길이 조금씩 움직일 법도 한, 그 아슬아슬함이 우리가 나눈 교감의 전부였다.

 

    지루한 연애의 끝엔 늘 허탈함이 따라붙는다. 한 곳에 틀어박혀 움직이길 싫어하고 스마트폰을 삶의 전부처럼 여기는 유난히 키 작은 김고운을 좀 어떻게 해보려는 내 성욕이 드레스룸이란 그 지독히 비좁은 공간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던 탓이다. 방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그곳에서, 아무리 김고운의 몸이 아담하다 해도 성인 남녀가 옷을 벗고 뭔가 자세를 취한다는 건 요가 따위의 극도의 유연성을 연마하지 않은 다음에야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고운은 그렇게 끙끙거리던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지금도 그 사실은 궁금하긴 하다. 잠잘 곳을 내주고 밥도 먹여 주니 대가는 치러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 사실 그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난 더욱 조심스럽게 김고운을 살필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표정으로 일관했다.

 

*

 

    그렇게 무려 한 달이 지났다. 난 하루마다 쉬지 않고 김고운과 하룻밤 자기 위해 발버둥 쳤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가 원하던 섹스는 좌절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여러 면으로, 어떻게 봐도 지루한 연애가 틀림없다. 그렇다고 김고운에 대한 내 감정이 지루해진 건 아니었다. 김고운은 여전히 내가 사귀는 사람,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김고운은 틀림없이 매일 함께 밥을 먹고 한 오피스텔에서 함께 자는 사람이었다.
    김고운과 나는 그 정도의 관계로 한 달을 지냈다. 아무 일 없이, 별 탈 없이. 그렇게 한 달째 되던 날, 김고운이 나타났다. 내 오피스텔 정문에 한 달 전의 김고운이 그렇게 서 있던 것처럼.

 

    “둘이 아직까지 사귀고 있을 줄 몰랐는데 ··· ”
    “한 달밖에 안 됐는데요.”
    “그것도 그러네요 ··· 그런데 ··· ”
    “응?”
    “둘이 있기엔 좀 작지 않나?”

 

    키 큰 김고운이 내 오피스텔 벨을 울렸을 때였다. 정문에 그녀가 서 있는 걸 어렵게 확인한 나보다 먼저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어 준 건 키 작은 김고운이었다. 내겐 하루 종일 드레스룸 안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김고운이 직접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 키 큰 김고운이 어떻게 내 오피스텔을 알고 찾아 들어왔는지보다 더 신기했다.
    지루한 연애 중인 키 작은 김고운은 밝은 웃음으로 그녀를 맞았고, 키 큰 김고운은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성큼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 그녀가 오피스텔 전체를 사냥개처럼 두리번거리다 식탁 의자를 찾아 앉았을 때였다. 그때 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과 간단한 안줏거리를 사갖고 돌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에서 이곳이 작다고 말한 건 분명 키 큰 김고운의 말이었다. 우리 셋이 캔맥주 열 캔 정도 비웠을 때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날 밤과 아침까지 키 큰 김고운은 오피스텔을 떠나지 않았다. 키 큰 김고운은 술에 취한 탓도 있었지만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더 정확히 말해 딱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오피스텔을 떠날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식탁에서 떠날 생각을 않았다.
    “며칠만 있다 갈게요. 그것도 안 돼요?”
    “둘이 있기에도 작다면서요? 그런데 왜 같이 있으려 해요?”
    “작으니까 ··· 그러니까 한 명 더 있으면 더 작아질 수도 있고 아님 ··· ”
    “아님 ··· 뭐죠?”
    “아님 ··· 더 커질 수도 있고.”

 

    키 큰 김고운의 야릇한 예언과 같이 오피스텔 공간이 갑자기 커지거나 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키 작은 김고운은 한 달이 지난 뒤에도 드레스룸을 떠나는 예외를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키 큰 김고운은 달랐다. 일자리를 알아본다는 이유로 키 큰 김고운은 오피스텔로 돌아오는 시간이 매일 일정하지 않았다. 또한 내가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공항 화물보관소에 번번이 출몰했다. 늘 키가 큰 김고운이 날 알아보고 말을 걸었고, 난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어색한 표정으로 김고운을 응대했다. 한 가지 퉁명스런 질문을 나름의 안부인사라며 건네며.

 

    “일자리 알아본다면서요?”
    “그런데요?”
    “공항에 일할 데가 있는 거예요?”
    “그렇진 않아요.”
    “그런데 왜 여기 있어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

 

    건넨 질문이 도돌이표가 되어 돌아오는 기분, 키 큰 김고운과의 대화는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런 종류였다. 맥락 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 가지 묘한 투명함이 느껴진다. 과연 ‘그녀’와 ‘그’가 누구일까 하는 질문을 낳는 투명함이었다. 억울하다고까지 말할 생각은 없지만 난 늘 드레스룸에 틀어박혀 등 돌리고 앉아 있는 김고운과 연애 중이란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부러 감정을 이끌어 올리려고 노력하는 건 틀림없지만 노력은 늘 그 작은 방이란 한계조건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키 큰 김고운은 마치 나의 이 투명한 회의감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 같았다.

 

    그 회의감의 근원은 썩 독특한 지점에서 튀어 올랐다. 키 큰 김고운이 마감일이 전혀 분명할 수 없는 일자리 구할 때까지 내 오피스텔에서 내 연애 상대인 키 작은 김고운과 함께 동거하겠다고 말한 뒤, 난 당연히 찾아오는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돌려 말하지 않는다면 그 불편함은 하나의 질문으로 집중된다.

 

    “김고운과 섹스를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 불편함은 기우에 불과했다.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돌이켜보니 그 한 달 동안 난 키 작은 김고운과 성인남녀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상황이 이런데 새삼스럽게 키 큰 김고운과 함께 지낸다 해서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섹스가 제대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키 큰 김고운의 불확실한 귀가 시간이 신경 쓰인 건 사실이다. 키 작은 김고운처럼 드레스룸에서 하루 종일 박혀 있는 예측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키 큰 김고운의 등장 탓일까. 난 좀 더 스릴 넘치는 상황을 즐겨 보고자 애썼다. 퇴근 후, 제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난 바로 키 작은 김고운에게 다가가 섹스를 요구했다. 저녁도 먹지 않은 채 섹스를 요구하는 식의 약간의 파렴치함이 마음에 걸렸지만 난 사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게 후경으로 밀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앞세워 김고운과 어떻게든 섹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섹스는 정말이지 공간의 문제라는 실감이 내 자신을 좌절케 했다. 김고운은 스마트폰에서 손과 눈을 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섹스를 전혀 거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론 확실한 한 가지가 부족했다. 몸을 좌우측으로 돌려 보고 김고운의 몸 위에 내 몸을 포개어 보거나 그도 아님, 김고운의 뒤에 내 하체를 밀착시켜 봐도, 정말 뭘 해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키 큰 김고운은 나의 갖가지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뒤에야 들어왔다. 그녀는 새벽 1, 2시가 되어서야 들어오곤 했는데, 그때 난 잠들어 있었기에 키 큰 김고운이 어디서, 어떻게 잠을 이루는지 알지 못했다. 드레스룸에서 함께 몸 비비며 잠든 게 아니라면 오피스텔의 그 어딘가에서 잠을 잤을 텐데, 어딘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늦게 들어왔어도 아침만 되면 늘 나보다 먼저 일어나 식탁에 앉아 있었으니까.

 

*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굳이 정리하고 싶지 않지만 한 달은 키 작은 김고운, 또 다른 한 달은 키 큰 김고운과 함께 지낸 셈이다. 그렇게 썩 불편하진 않지만 어색한 동거가 계속되던 어느 날 저녁, 마치 일상에서 처음으로 예외를 보여준 이가 품을 법한 비장함을 보여주듯 키 작은 김고운이 식탁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드레스룸에 있지 않았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지도 않았다. 평소엔 그냥 방치해 둔 듯한 생머리도 단정히 묶었고, 두 손을 기도하듯 식탁 위에 모아 쥐었다. 표정도 약간 비장해 보였다. 상대가 오길 진지하게 기다리다 마침내 오면 일생 다시없을 제안 혹은 호소를 할 법한 분위기였다.
    키 작은 김고운을 그렇게 이해한 건 판단착오가 아니었다. 김고운은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던 말을 어떻게 해서든 꺼낼 게 분명했다. 그 분명한 결정론적 말이 전혀 의외로 들리는 것, 그걸 감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몫이었다.

 

    “부탁이 있어.”
    “··· 말해.”
    “들어줄 수 있어? 아니, 들어줘야만 해.”
    “일단 말해.”
    “그래. 말할게.”

 

    잠시 침묵. 그리고 이어지는 김고운의 말은 그 역시 의외였다.

 

    “김고운. 그 씨발년 ··· 더럽고 기생충 같은 년 ··· 여기서 제발 쫓아 줘. 부탁이야.”

 

    놀란 건 사실이다. 김고운은 키 큰 김고운을 늘 웃는 얼굴로 대했기 때문이다. 가끔 웃는 표정이라면 그 웃음이 가식이거나 형식적인 응대라고 느꼈을 테지만 김고운은 늘 키 큰 김고운을 바라볼 때 웃기만 했다. 웃는 것만이 아니다. 김고운은 키 큰 김고운이 무슨 말을 하든 일정한 추임새로 답해 주었다. 말이 끝날 때마다 키 큰 김고운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내 기억으론 한 번도 키 큰 김고운의 말에 토를 달거나 저항한 적이 없었다.
    이 정도 상황을 대략 조합해 봐도 김고운이 키 큰 김고운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망상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난 김고운의 그 ‘부탁’에 대해 이견을 내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겉으론 그렇게 실실 웃고 하는 말마다 고개 끄덕여 가며 맞춰 주면서 뒤로는 증오의 불씨를 숨겨 두고 있었냐고도 따져 묻지 않았다. 김고운이 ‘그 씨발년’으로 부르는 키 큰 김고운을 내 오피스텔에서 쫓아 달라고 했을 때, 난 아주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 뒤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사귀는 김고운은 키 큰 김고운이 아니라 키 작은 김고운이니까.

 

    타이밍이 맞았다고 해야 할까. 키 작은 김고운이 애원하던 그날 밤, 키 큰 김고운은 평소와 다르게 일찍 귀가했고,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자마자 밝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 취직했어.”

 

    난 취직이란 말을 듣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취직까지 했는데, 계속 여기에 붙어 있는 건 민폐니까 나가라고 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취직했다고 말한 키 큰 김고운이 평소처럼 내 작디작은 오피스텔의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빌트인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마셨다. 그런 그녀를 키 작은 김고운은 드레스룸 안에서 배고픈 고양이처럼 웅크린 채 바라봤고, 난 키 큰 김고운이 냉장고 문을 닫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취직했으면 ···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아도 되겠네?”
    내 말에 대한 키 큰 김고운의 물음이 이어졌는데, 확실히 불편한 구석이 느껴졌다.
    “어디에 취직했으며 한 달에 얼마 받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여기서 나가 달라는 말부터 먼저 꺼내는 이유가 뭐야?”
    “순서가 뭐가 먼저든 상관없잖아.”
    “섭섭한데 ··· ”
    “그럼 순서를 바꿔 물어볼까? 어디 취직했는데? 정말 공항에 취직했어? 월급은 얼마야?”
    “됐어. 이미 김샜어.”
    “그래 ··· 김빠진 콜라는 이미 뚜껑 열렸고, 언제 나갈 거야?”
    “하나만 물어도 돼?”
    “얼마든지.”
    “내가 왜 나가야 돼?”
    “뭐?”
    “ ··· 쟤는 있어도 되잖아. 그런데 왜 나는 안 돼?”

 

    키 큰 김고운이 키 작은 김고운을 노려봤다. 그 순간, 키 작은 김고운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해맑게 웃으며.
    키 작은 김고운의 태도와 상관없이 난 키 큰 김고운을 확실히 정리할 기회가 왔다는 걸 놓치지 않고 그녀의 질문에 바로 답했다.
    “넌 나랑 사귀는 게 아니잖아.”

 

    썩 유쾌하진 않았다. 키 작은 김고운은 내가 이렇게 말한 다음에 키 큰 김고운에게 헤어지기 아쉽다는 영혼 없는 말을 반복했고, 키 큰 김고운은 우리 둘이 이렇게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굳이 나가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고 내게 따져 묻는 것 같았다. 키 작은 김고운에게 서운함이 쌓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더러운 씨발년’, ‘기생충 같은 년’ 운운하면서 내쫓아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정작 당사자 앞에선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게 그랬다. 이건 결국 나만 최악의 악역을 맡게 되는 꼴 아닌가.

 

    그날 밤, 난 처음으로 키 큰 김고운이 어디서 잠을 자는지 보게 되었다. 잔뜩 풀이 죽은 키가 큰 김고운은 부탁 하나만 한다고 하며 오늘 밤은 재워 달라고 말했고, 난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키 작은 김고운은 아쉬워하며 같이 있으면 정말 안 되겠냐며 위선을 떨어댔다.
    여하튼, 키 큰 김고운은 샤워를 한다며 욕실로 들어갔고, 한참 있다 나오더니 욕실에서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 후, 그녀는 먼저 자겠다며 자리를 옮겼는데, 그렇게 잠자리를 찾아 들어간 김고운의 자리는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키 큰 김고운이 들어간 곳은 바로 드레스룸이었다. 내 오피스텔이 정말 작다는 걸 인정한다. 공항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 중 렌트비가 가장 싼 곳을 찾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잘 정돈해 보면 성인 남녀 네 명은 반듯이 누워 잠들 수 있는 공간은 있다. 굳이 키 작은 김고운마저도 다리를 구부려야만 누울 수 있는 그 협소한 구석을 찾아 들어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키 큰 김고운은 마치 영원 전부터 결정된 규칙이라는 듯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키 작은 김고운의 옆으로 힘겹게 파고들고 몸은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혹은 달팽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아 쥔 것처럼 잔뜩 구부린 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후 키 큰 김고운은 빠른 속도로 잠들었고, 키 작은 김고운은 숨도 쉬기 어려워 보이는 답답한 두 육체의 뒤엉킴을 뚫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난 몸을 옮겨 오피스텔 바닥에 주저앉은 뒤 나를 향해 손을 뻗은 키 작은 김고운의 손을 잡았다. 그때 난 김고운이 내게 어떤 말을 했는지 비교적 또렷이 기억한다.

 

    “고마워. 정말.”

 

    키 큰 김고운에게 하룻밤, 오피스텔에서의 유숙을 허락한 건 키 작은 김고운이었다. 김고운의 제안이 없었다면 키 큰 김고운은 잔뜩 풀 죽은 얼굴을 하고 그 다음날 바로 내 오피스텔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김고운에게 일방 퇴거를 명령한 다음날이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몽롱한 내가 눈을 뜬 건 키 큰 김고운이 주방 앞에 서서 뭔가를 하고 있던 통에 흘러나온 그릇소리 때문이었다. 그릇을 씻는 건지, 뭔가를 끓이는 건지. 정확히 뭘 하는지 알기 어려운 인기척을 낸 키 큰 김고운이 내가 일어나던 때와 맞춰 식탁 위로 아침식사를 준비해 내왔다. 대단한 건 없었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편의점에서 이천 원만 주면 살 수 있는 볶음김치가 키 큰 김고운이 준비한 전부였다. 난 일단 키 작은 김고운부터 살폈다. 그녀 역시 전날 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멍한 표정으로 키 큰 김고운이 현관문에 놓아 둔 여행용 가방과 아침 일찍부터 옷을 다 차려입고 간단한 기초화장까지 마친 친구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다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정말 이대로 떠나는 거야? 너무 섭섭해.”
    키 작은 김고운의 표정과 눈빛은 내가 봐도 정말 섭섭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키 작은 김고운이 이내 날 바라봤는데, 그 눈빛은 야속함으로 가득했다. 난 그렇게 날 바라보는 김고운으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는 출근 전 아침을 먹는 여느 남자들의 일상적 모습처럼 식탁에 앉았다. 그랬더니 이번엔 키 큰 김고운이 내 맞은편에 앉아 날 바라봤다. 한숨도 자지 못한 듯 퀭하게 가라앉은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게. 나도 나가고 싶지 않지만 ··· 나가라네.”
    “누가? 누가 널 나가라고 하는데?”
    “집주인이.”
    난 키 큰 김고운의 쓸쓸한 시선을 애써 피하며 채 익지 않은 컵라면 면발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키 작은 김고운이 키 큰 김고운을 대신해 말문을 열었다.
    “오늘 저녁만 있으면 안 돼?”
    키 작은 김고운의 질문은 대체 누가 수신자인 걸까? 키 큰 김고운일까. 아님, 집주인 행세하는 날 두고 한 질문일까. 대체 누구한테 허락을 구하는 걸까. 친구 김고운의 질문이 불확실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던 키 큰 김고운이 날 바라보며 입가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녀도 질문이다. 수신자는 확실하다. ‘나’에게 건네는 질문이다.
    “있어도 돼?”
    내 시선은 이번엔 키 작은 김고운을 향했다.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대체 뭘 원하는 걸까. 이번에도 내가 매정하게 키 큰 김고운을 물리쳐 주길 원하는 걸까. 아님, 정말 헤어지기 아쉬워 하룻밤만 더 친구를 붙잡으려 하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을 정리한 건 키 큰 김고운이었다. 그녀는 변명하듯, 하소연하듯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며 하룻밤만 자고 가야겠다고 사정했다. 시선은 내내 나와 마주했지만 부탁하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키 작은 김고운이었다.

 

    “하루만 ··· 딱 하루만 있다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될까?”

 

    그녀는 정말 새 일자리를 구한 걸까. 그날, 정오가 지나고 오후 1시가 조금 넘었을 때, 난 취직이 되었지만 공항에 취직한 건 아니라고 말한 키 큰 김고운을 공항 수하물 찾는 곳에서 보게 되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수많은 여행용 가방이 돌아다니는 컨베이어 벨트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존재가 공항 전체를 하루에도 십 수 번씩 순찰이란 이름으로 떠도는 내 시선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는 나도, 키가 큰 김고운도 서로 알은체를 하진 않았다. 시선을 먼저 피한 건 키 큰 김고운이지만 나 역시 그녀를 보자마자 시선을 피해버렸다. 하지만 우리 둘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다시 마주 보게 되었다.
    두 번째 마주침은 오후 4시였다. 왜 다시 나타났는지 난 부러 묻지 않았다. 키 큰 김고운은 잔뜩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제복 허리춤에 무기를 착용한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
    “두렵다고?”

 

    질문을 던진 그녀는 더 이상 설명을 이어 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난 짜증이 치밀었다. 억울하기도 했다. 두렵다는 말뜻에 여러 의미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지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잠시 후, 키 큰 김고운이 내 옆을 벗어났다. 시선은 여전히 내 눈이 아닌 내가 착용한 제복과 그 제복에 제법 어울리는 허리춤에 착용한 무기였다. 슬며시 내 옆을 벗어나 공항의 또 어딘가를 배회하고 다닐 김고운에게 난 정말이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기로 했다. 키 작은 김고운처럼 하루만, 이 하루만 지나면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기에 참을 수 있었다.

 

*

 

    키 큰 김고운은 내가 퇴근하기 전 이미 오피스텔에 와 있었다. 둘은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엔 쇼비뇽 레드 와인 두 병과 안줏거리로 땅콩이 담긴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와인 두 병은 이미 바닥이 보였다.
    현관문을 열고 처음 들어오자마자 목격된 두 김고운의 술자리 장면은 내 마음속에 묘한 기류를 일으켰다. 둘은 이름만 같을 뿐, 둘 사이에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둘 사이의 외형을 이처럼 확실하고 분명하게 대비해 보기는. 키 큰 김고운은 큼직한 이목구비에 짧은 쇼트커트가 돋보이는 헤어스타일에 귀걸이, 팔찌, 시계 등, 할 수 있는 액세서리는 모두 갖춘 상태였다. 반면 키 작은 김고운은 특별히 눈에 뜨이는 것도 아닌 조밀한 이목구비에 대충 빗어 넘긴 긴 생머리에 짧은 다리가 돋보였다. 스키니 진을 입은 키 큰 김고운이 유난히 긴 다리 스타일을 보여줬지만 키 작은 김고운은 왜소하다는 표현이 사치스럽게 들릴 정도로 짧은 다리 길이를 감추기 위해 길게 늘어진 롱스커트를 입었다.

 

    잠시 후, 난 둘의 조촐한 술자리에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오피스텔의 실제 주인이기도 해서였겠지만 키 큰 김고운의 적극적인 부름이 한몫 했다. 내 팔을 붙들고 식탁 의자에 앉힌 키 큰 김고운의 입에선 진한 와인 냄새가 풍겨 나왔다. 키 작은 김고운의 자리에도 와인 잔이 놓여 있긴 하지만 잔의 절반쯤 채워진 채였다. 키 큰 김고운이 와인 두 병을 거의 마셨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다.
    키 큰 김고운이 취한 게 확실해 보이자 나는 마음의 긴장을 풀고 빠른 속도로 와인을 마셨다. 몇 모금 마시니까 곧바로 두 병의 와인은 그 양을 다했고, 난 냉장고 문을 열고 보관 중이던 술이란 술은 모두 꺼내 마셨다. 주로 캔맥주가 대부분이었고, 술을 마시는 건 키 큰 김고운과 나뿐이었다. 키 작은 김고운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둘의 술자리의 조연이 되길 자처한 듯 식탁 의자에서 슬며시 내려앉더니 냉장고 옆자리에 웅크리고 스마트폰 시청을 시작했다.
    하지만 키 작은 김고운이 우리 셋의 마지막 만남에서 완전히 예외인 것처럼 굴진 않았다.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건 거의 정설인가. 키 큰 김고운과 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키 큰 김고운이 주제를 꺼내는 편이었고, 난 그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 말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 호응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편이었다. 키 작은 김고운은 바로 이럴 때, 내가 키 큰 김고운의 말에 호응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타이밍과 함께했다. 때론 작게 소리 내어 웃거나, 때론 한숨과 탄식을 내쉬며 키 큰 김고운의 말에 나와 함께 호응해 주었다.
    키 큰 김고운의 말이 쉬지 않고 이어지자 난 더 이상 그녀의 말에 호응하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귀찮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은 바로 상대가 내가 너무 지루해 미칠 것 같다는 눈치를 전혀 못 차리는 순간이다. 서너 개의 맥주 캔을 더 빠른 속도로 비워 나가던 키 큰 김고운은 나중엔 뜻을 알 수 없는 방언을 중얼거리는 광신도처럼 혼잣말을 이어 나갔다. 그때 난 문득 키 작은 김고운의 행방을 살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타이밍을 놓친 순간에 맞춰 키 작은 김고운 역시 호응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키 작은 김고운은 더 이상의 술자리가 무의미하다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스마트폰 액정에 스미는 푸른 불빛이 강렬하면서도 집요하게 어둠의 드레스룸 밖으로 새어 나왔다.
    주문과도 같은 방언을 마치는 순간, 키 큰 김고운이 머리를 식탁 위에 처박았다. 그러더니 바로 코를 골며 잠들었다.
    두 김고운이 술자리를 자연스럽게 끝내자 나 역시 더 이상 술 마시기가 무료해졌다. 날이 특별히 덥지 않지만 냉장고에서 빠져나온 맥주의 마지막 남은 캔은 마시는 이로 하여금 시들한 느낌을 줄 정도로 미지근했다.
    오기가 발동해서인지 미지근한 맥주를 한 캔 모두 비운 나는 그 후부터 빠른 속도로 취하기 시작했다. 취기와 함께 묘한 충동도 함께 일었다. 공항이란 익명의 대상들이 이리저리 유령처럼, 하지만 일관된 목표지점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곳에서 하루 종일 무기를 소지한 채 어슬렁거리던 난 이곳, 오피스텔에서 쉽게 억제할 수 없는 오만한 성욕을 느껴야 했다. 오만한 성욕의 비루하지만 확실한 진원지는 바로 이곳이 내 소유의 오피스텔이란 소유권 주장이었다. 이 공간으로 자발적으로 들어온 대상을 향해, 더욱이 그 대상과 내가 사귀는 사이가 맞는다면 그 대상이 내 오만한 성욕의 그물에 한두 번은 걸려 주는 게 자연스런 관행이란 생각이 내 머리와 몸을 채워버린 그 순간, 난 몸을 돌려 한 발자국만 옮기면 닿을 수 있는 드레스룸으로 다가갔다. 난 그 비좁고 부자연스런 곳을 향해 진격하는 군인처럼 파고들어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누워 있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비좁고 역한 입 냄새를 바로 코앞에서 주고받아야 하는 밀착된 공간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나는 어색함이나 그로 인한 망설임을 당장이라도 밀어내려는 마음에 그녀의 옷을 빠르게 벗겼다. 바로 이어 내 웃옷과 바지, 팬티까지 벗어던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고운과 함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렬하게 치솟았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소기의 짜릿한 만족감을 잉태했다.

 

    술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그건 비겁한 일이라 해도 상관없다. 난 나와 사귀는 김고운과 사랑을 한 것뿐이고, 사랑을 해도 그건 불편한 일이 아니라고 믿으면 되니까. 더욱이 내 마음과 머릿속에는 비록 좁고 지루하지만 이곳이 내가 받은 월급으로 내가 살아가는 오피스텔이란 사실이 내 행동을 안심케 했다.
    그런데, 그 안정감과 다르게 또 다른 불편함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파문과도 같이 술렁였다. 김고운과 섹스를 하는 순간, 또 다른 김고운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그건 느낌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불을 모두 끈 오피스텔 안에서 주위 어둠보다 훨씬 더 시커먼 김고운의 동그랗고 큰 눈동자가 깜빡임도 잊은 채 나의 섹스를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진짜 파문은 나와 김고운의 섹스가 누군가에게 노출된 것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었다. 김고운은 누구며, 또 다른 김고운이 누군지 확신할 수 없는 난처함이 파문의 진짜 원인이었다. 정말이지 알 수 없었다. 나와 섹스를 하는 이 김고운이 키 작은 김고운인지, 키 큰 김고운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반대로 지금 날 무표정하지만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지켜보는 시커먼 눈동자의 주인이 키 큰 김고운인지, 키 작은 김고운인지도 알 수 없었다.
    술에 취해 이런 걸까, 하는 짐작도 잠깐 들었지만 그조차 아니었다. 그때처럼 정신이 또렷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난 김고운을 알 수 없었다. 아니, 김고운이 정말 있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

 

    그 이상한 목격에 대한 내 감정이랄까. 소회는 뭐였을까. 그것은 심각할 정도로 고조된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던, 비좁았지만 나름의 소유권 주장이 가능한 그 안정적인 공간에서 분명 뭔가 알 수 없는 파문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파문이 내가 머무는 이곳을 괴이한 불균형의 확장 장소로 물들였다는 사실이 날 불편하게 했다.
    내가 머문 드레스룸, 발 한 번 제대로 뻗을 수 없는 그 공간이, 서로의 역겨운 입 냄새를 피할 수조차 없는 그곳이 엄청난 속도로 모호하게 확장되는 그 느낌, 내 몸과 김고운들의 몸도 그렇게 확장되고 길어져만 가는 공간 위에 아무렇게나 쌓이는 여행용 가방처럼, 마지막까지 찾아가지 않는 원형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남아 있는 유실물처럼 그렇게 벌어지고 열리고 넓어지는 느낌은 그나마 내가 갖고 있던 한 줌의 아늑함조차 매섭게 앗아가 버렸다.

 

    결국 그 밤의 섹스는 좌절되었다. 좌절이라고 해두는 게 맞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섹스가 좌절된 다음날 아침, 키 큰 김고운도, 키 작은 김고운도, 여하튼 김고운이라 명명된 그녀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지금도 난 공항에 있다. 제복을 입고 무기를 착용한 채로다. 지금도 여전히 두어 개의 여행용 가방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여 있다. 아직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돌고 있다.

 

 

 

 

 

 

 

 

 

 

 

 

 

 

 

작가소개 / 주원규

서울에서 태어나 2009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열외인종 잔혹사』를 비롯해 장편소설 『나쁜 하나님』, 『크리스마스 캐럴』, 『무력소년 생존기』, 평론집 『성역과 바벨』, 에세이 『황홀하거나 불량하거나』 등이 있으며, 2017년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했다

 

   《문장웹진 2018년 07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